일당산(日堂山, 453.6m)-당산(塘山, 540m)-웅덕산(熊德山, 520m)
산 행 일 : ‘20. 12. 24(목)
소 재 지 : 경기도 양평군(양동면)·여주시(강천면)과 강원도 원주시(지정면)의 경계
산행코스 : 홈다리골 주차장→일당산→당산→곰지기→웅덕산→북쪽 능선→홈다리골 주차장(소요시간 : 7.9km/ 3시간 30분)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특징 : 집사람과 함께 다산길을 걷고 있는데 세무회계 일을 하고 있는 최 군(君)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무실을 하루 제치려는데 같이 산행할 의향이 있느냐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이 묶여버린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거기다 위치까지도 요즘 상황에 딱 맞지 않겠는가. 승용차로 접근이 가능한데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오지의 산이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찾은 일당산과 당산, 웅덕산은 경기도의 여주시와 양평군, 그리고 강원도의 원주시가 어깨를 맞대고 있는 산들이다. 세 산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니 바윗길처럼 위험한 구간이 있을 리가 없다. 안전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해발도 500m 안팎이라서 오르는데 부담스럽지도 않다. 거기다 오지라서 찾는 사람들까지 뜸하니 가파른 오르내림만 극복할 수 있다면 가족 산행지로 이만한 곳도 없겠다. 원시의 숲 향기를 만끽하며 오순도순 걸을 수 있는 산행지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 산행들머리는 ‘홈다리골 주차장’(양평군 양동면 삼산리 1340)
광주-원주고속도로 ‘동양평 TG’를 빠져나와 우회전. 곧이어 단석교차로(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417-1)에서 3시 방향의 88번 지방도(원주 방향)를 탄다. 잠시 후 삼산교(三山橋)에 이르자 ‘당산 등산로 입구(800m)’라고 적힌 커다란 이정표가 눈에 띈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까지 갖춘 널따란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가 되는 ‘홈다리골 주차장’이다.

▼ 세 개의 산 가운데 가장 높은 ‘당산’을 오르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이다. ‘솔치마을’에서 물탕골과 일당산을 경유하여 오르는 방법이 그 첫 번째(1코스)이고, ‘홈다리골 주차장’에서 일당산을 경유하는 방법이 두 번째(2코스)이며, ‘홈다리골 주차장’에서 곰지기 계곡의 끝인 여주군 강천면 도전리와의 경계가 되는 고개마루(곰지기)를 경유하여 오르는 방법이 세 번째(코스)이다. 마지막 하나(4코스)는 ‘홈다리골 주차장’에서 출발해 웅덕산과 곰지기를 거친 다음 당산으로 오르는 방법이다. 이 가운데 ‘2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된다.

▼ 앞서가던 최군이 안내도의 한쪽 귀퉁이를 가리킨다. 참나무 자생지인 이곳 당산에는 버섯이 많은 편인데 그 가운데 하나인 ‘등갈색 미로버섯’이 안내판에서까지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난 운이 좋은 편이다. 항균·노화예방에 뛰어난 효능을 갖고 있으며 특히 종암 저지율이 80.1%나 되는 대표적인 항암 약초이니 말이다. 아무튼 우리 부부는 이 버섯을 꽤 많이 채취할 수 있었다.

▼ 주차장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탐방로(2코스)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이정표 말고도 ‘당산 등산안내도’를 세워놓았으니 꼼꼼히 살펴보고 길을 나설 일이다. 진행하려는 코스를 미리 알아두는 게 안전산행의 기본일 테니까 말이다.

▼ ‘2코스’는 이곳 ‘홈다리골 주차장’에서 일당산을 거쳐 당산으로 연결된다. 정상까지의 거리는 2.3㎞. 그런데 반대 방향의 표시가 조금 이상하다. ‘곰지기 등산로 입구’까지가 1.96㎞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옆에 세워놓은 안내도에는 분명 3코스와 4코스의 등산로 입구를 모두 이곳 홈다리골로 표시해 놓았으면서도 말이다. 등산로 입구를 ‘곰지기’ 고갯마루로 오해했다 치더라도 거리가 틀렸다. ‘곰지기’ 고갯마루에 세워놓은 이정표에는 같은 코스의 거리를 2.0㎞로 적고 있었다.

▼ 산길은 시작부터 많이 가파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파른 곳이 나올라치면 어김없이 굵은 밧줄을 매어놓았기 때문이다.

▼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던가. 그렇게나 보기 싫던 안개가 이번에는 최고의 눈요깃거리로 변해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만난 안개는 불과 10m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짙었다. 10㎞도 못되는 속도로 고속도로를 엉금엉금 기면서 안개란 놈을 얼마나 욕했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산허리를 감싸고돌면서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려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 산행을 시작하고 10분쯤 되자 임도에 올라선다. 과거 벌목공들이 나무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 놓았다는 얘기와 함께 팀스프리트 훈련 때 탱크가 만들어 놓았다는 얘기도 전해지는 길이다. 아무튼 탐방로는 임도를 가로지른 다음 계속해서 능선을 따른다.

▼ 안개 낀 산하에 도취한 내 발길은 더디기만 한데, 그런 나를 기다리며 서있는 집사람의 모습이 흡사 적군의 침입을 경계하는 파수꾼을 닮았다. 맞다. 이곳 ‘삼산리’는 구한말(舊韓末)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봉기한 정미의병(丁未義兵)이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 아니겠는가. 역사는 1907년 이곳에서 이인영(李麟榮, 1868-1909) 의병장이 이끌던 관동창의군(關東倡義軍)이 일본군에 큰 타격을 입혔음을 전한다. 1906년 5월 민종식(閔宗植, 1861-1917)의 홍주의병이 치른 홍주성전투와 함께 을사늑약 후 항일의병들이 일본군을 상대로 전개한 전투 중 가장 규모가 큰 전투였다. 참고로 양평은 의병의 고장이다. 1895년의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반발해 전국에서 최초로 을미의병을 일으켰고,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 해산에 반발해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봉기했을 때 양평에서는 의병장 조인환, 최대현, 이연년 등이 용문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러한 인연 때문인지 인근 석곡리에는 ‘양평의병 묘역’이 그리고 아까 지나왔던 단석교차로 근처의 ‘양동레포츠공원’에는 ‘을미의병 추모비’가 조성되어 있었다.

▼ 양평의병과 관련된 사진도 하나 올려본다. 이 사진은 국사 교과서에도 실려 우리 눈에 익은 것으로 영국인 기자가 1908년에 출간한 ‘조선의 비극(F.A. 메켄지 저)’에 함께 실린 사진이다. 구한말 군대가 해산(1907)된 뒤 의병에 합류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는데, 이 사진은 의병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마지막 장면으로 재현되어 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특히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대한 의병들의 대답은 아직까지도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죽어야 할지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죽는 편이 일본의 노예로써 생명을 부지하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요>. ‘과거가 없는 민족에게 미래도 없다’고 했듯이 양평 의병의 숭고한 정신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참나무 세상에 소나무가 하나하나 개채수를 늘려나가는가 싶더니 어느덧 숲을 이루고 있다. 지자체에서 이를 놓쳤을 리가 없다. 숲속에 ‘ㄷ’자 의자를 놓아 작은 쉼터를 조성했다. ‘정상까지 30분 남았습니다.’라고 적힌 팻말도 걸려있다. 초행길 산꾼에게는 유용한 정보라 하겠다.

▼ 산길은 많이 가파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길가에 매어놓은 굵은 밧줄에 의지해 쉬엄쉬엄 오르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 요런 이정표도 보인다. 등산객들을 배려한 것까지는 고마운데, 방향표시만 달랑 있어 도움은 썩 되지 않는다. 그게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매직으로 지명을 적어 넣었다.

▼ 산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보행이 편하도록 길을 다듬었을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가파르다 싶은 곳에는 계단을 놓거나 난간용의 밧줄을 매어두었다.

▼ ‘운지버섯’도 꽤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뭉쳐있다고 해서 ‘구름버섯’이라고도 불리는데, 질감이 단단해서 그냥 먹지는 못하고 달여서 차로 마시거나 한약탕과 같이 약용으로 사용하는 버섯이다. 항암에 뛰어난 효능을 보이기 때문이다. 아까 앞에서 얘기하던 ‘등갈색 미로버섯’만은 못하지만 종암 저지율이 77.3%나 된다고 한다.

▼ 그렇게 걷기를 35분. 1코스와 2코스가 합쳐지는 삼거리를 만난다. 왼편은 ‘솔치(松峙)’ 마을에서 물탕골을 거쳐 올라오는 1코스이다. 우리가 들머리로 삼았던 ‘홈다리골 주차장’에서 400m 남짓 떨어진 곳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길이 거친 탓에 이용하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한다.

▼ 이정표(일당산 정상↑ 0.18㎞/ 솔치 등산로입구← 1.37㎞/ 홈다리골 등산로입구↓ 1.31㎞)는 200m쯤 더 걸어야만 일당산 정상에 오를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일당산 정상에서 두 코스가 합쳐지게 그려놓은 산행안내도는 틀렸다는 얘기가 된다.

▼ 남은 구간은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진다.

▼ 산행을 시작한지 50분 만에 일당산(453.6m) 정상에 올라선다. 헬기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널따란 정상은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일당산’이라는 지명이 적힌 시설물도 둘이나 보인다. 하지만 굳이 ‘산’이라 불러야만 했을지는 의문스러웠다. 지근거리에 위치한 ‘당산(541m)’과 큰 골이 없이 부드러운 능선으로 연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다 높은 당산을 주봉(主峯)으로 삼고 이곳은 ‘일당봉’ 정도로 부르면 좋지 않을까 싶다.

▼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게 아쉬웠던지 관할 지자체인 양평군에서 ‘일당산 정상, 해발 453.6m’라고 적힌 팻말을 세워놓았다. 그 옆에는 ‘등산 안내도’도 세워져 있다. 아까 주차장에서 보았던 등산코스 위주의 안내도와는 달리 이번에는 산의 특징과 함께 지명에 얽힌 옛 이야기까지 자세히 적어놓았다.

▼ 이정표(당산 정상 0.82㎞/ 홈다리골 등산로입구 1.5㎞, 솔치 등산로입구 1.54㎞)에는 눈에 익은 정상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대구에 거주하는 산악인 김문암씨의 작품일 것이다. 그는 산을 산답게 하는 열혈 산꾼이다. 오지 산을 찾는 등산객에게 정상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다는 일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덕분에 무명 산이 그의 유별난 산사랑 덕분에 ‘무장봉’이란 새 이름을 얻기도 했다.

▼ 당산으로 향한다. 숲 사이로 잠시 후에 오르게 될 당산이 희미하게나마 고개를 내민다. 두 봉우리를 잇는 이 능선은 한마디로 부드럽다. 그래선지 심심찮게 눈에 띄던 밧줄도 매어져 있지 않다.

▼ 산의 주인이 참나무일지니 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 또한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거센 비바람에 부대끼며 살아온 인고의 세월은 나무 하나하나를 기괴한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 아래 나무는 ‘사랑나무’라 할 수 있겠다. 하나의 뿌리에서 두 줄기의 몸채가 자라났으나 또 다시 하나로 합쳐진 모양새이다. 부부를 나타내는 일심동체(一心同體)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 광대 모양의 홍보용 풍선을 닮은 나무도 보인다. 저기에 분위기를 띄우는 노래까지 더해진다면 이곳은 분명 신장개업한 가게 앞이 될 것이다.

▼ 어느 보양강장제 음료회사의 TV 광고를 보면 ‘차마 말로는 못하겠다’는 멘트가 나온다. 맞다. 아래 사진을 찍으며 뭔가 설명을 덧붙이다가 나 역시 집사람에게 된통 당했다. 외설스런 얘기를 함부로 내뱉는다나?

▼ 눈이 쌓여있는 곳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주차장에 쌓여있는 눈을 보고, 아이젠과 스패츠를 챙겨오지 않은 내 부주의를 자책하던 상황이다. 하지만 그 눈이 두텁지 않아 걷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 일당산을 출발한지 25분 만에 당산의 정상에 올라선다. 여남은 평쯤 되는 정상은 한마디로 어지럽다. 정상석이 세 개나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곳 ‘당산’의 정상이 3개 시·군의 경계선상에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나, 지자체간 협의를 통해 하나로 된 정상석을 세웠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아무튼 ‘등산 안내도’와 이정표 등의 시설물이라도 하나로 통일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 정상은 벤치와 평상을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푹 쉬었다 가라는 모양이다. 내려가는 길도 좀 살펴보라는 듯 ‘등산 안내도’도 세워놓았다. 물론 양평군의 작품이다. 그래선지 그 앞에다 양평군의 산악회에서 만든 정상석을 세웠다. 선점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듯하다.

▼ 혁신도시가 들어선 원주시는 강원도의 자랑이다. 그런 원주시가 어찌 양평군에게 뒤지겠는가. 원주시의 로고까지 들어간 정상석을 떡하니 세워놓았다.

▼ 어깨를 맞대고 있는 여주시라고 해서 어찌 빠지겠는가. 그것도 원주시처럼 지자체에서 손수 세웠다. 그런데 ‘못 당(塘)’자를 써서 ‘당산(塘山)’이라 적었다. 조금 전에 올랐던 일당산(日堂山)처럼 ‘집 당(堂)’자를 쓰는 줄 알았는데도 말이다. 귀가해서 시중에 나돌고 있는 지도들을 확인해보니 두 지명이 함께 혼용되고 있었다.

▼ 이정표가 참 이채롭다. 거리나 지명을 표기하지 않고, 그저 세 방면에 위치한 지자체의 이름만 적어 넣었다. 양평군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상석도 이런 자세로 세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정상에서의 조망은 괜찮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안개가 덜 걷힌 탓에 오늘은 예외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이의 조망 기록을 올려본다. <정다운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양동면 소재지를 비롯한 작은 마을들이 조망되며, 원주 쪽으로는 멀리 치악산이 병풍을 두른 듯 내다보이고,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들이 조망 된다. 혹 날씨라도 맑은 날이면 멀리 여주 쪽 남한강의 물줄기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아스라이 조망된다.>

▼ 마지막으로 오를 웅덕산으로 향한다. 내려서는 길목에 멋지게 생긴 소나무 몇 그루가 모여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나무 앞에 ‘당산소나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당산나무’란 마을을 지켜 주는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제사를 지내는 나무를 말한다. 때문에 동네 어귀에 있는 게 보통인데 산의 정상에 이런 나무가 있다는 것 자체부터가 이채롭다.

▼ 나무는 밑동의 굵기부터가 여간 범상치가 않다. 그만큼 오래 묵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게 ‘당산나무’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고 말이다.

▼ 나무의 자태도 만만치가 않다. 아랫동에서 뻗어 나온 굵은 가지가 바닥에 둥지를 튼 다음 또 다시 자라나는 모양새이다. 그것도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은 듯 요리조리 몸을 비틀며 날아오르고 있다.

▼ 당산나무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르게 변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가파르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통나무 계단을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굵은 밧줄까지 매어놓았기 때문이다.

▼ 정상에서 30분 조금 못되게 내려서자 ‘곰지기’라는 고갯마루에 내려선다. ‘곰지기’란 화전민이 살던 능선 아랫마을의 이름이라고 한다. 대여섯 채가 모여 살던 화전민들은 이제 제 터전을 찾아 떠나갔지만 여전히 이 골짜기는 곰지기로 통한다. ‘곰지기’란 지명은 곰이 살아가기에 딱 좋을 정도로 깊은 골짜기라는 데서 유래되었지 않나 싶다.

▼ ‘곰지기’ 고갯마루에도 등산안내도와 함께 이정표(웅덕산 정상↑ 1.0㎞/ 홈다리골 등산로입구→ 2.0㎞/ 도전리(여주) 등산로입구← 1.5㎞/ 당산 정상↓ 1.0㎞)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곰지기골을 거쳐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홈다리골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웅덕산으로 오르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이곳에서 하산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 웅덕산으로 오르는 길은 엄청나게 가파르다. ‘코에서 흙냄새가 난다’는 표현에 딱 맞는 코스라고 보면 되겠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등허리를 굽히지 않고서는 오를 수가 없을 정도로 가파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45도 정도 된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 길가에 굵은 밧줄을 매어놓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이 밧줄마저 없었더라면 우리 일행은 오르는 것 자체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웅덕산 정상의 높이는 520m이다. 반면에 방금 지나온 곰지기 고갯마루는 해발이 316m. 고갯마루에서 웅덕산 정상까지 1㎞를 걷는 동안 고도를 204m나 높여야 한다는 얘기이다. 산길이 몸서리치게 가파를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 능선의 양 옆은 산짐승도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비탈지다. 그러다보니 말 잔등처럼 생긴 능선을 걷기도 한다.

▼ 힘겨운 오름짓을 두어 번이나 더 치른 뒤에야 웅덕산(熊德山, 520m) 정상에 올라선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느구리봉’ 또는 ‘호랑봉’으로도 불리는 봉우리이다. 하지만 요 아래에 있는 골짜기가 ‘곰 웅(熊)’자의 ‘곰지기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웅덕산’이 맞는 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또 하나. ‘여흥 민씨’ 조상 중 한분의 묘가 도전리 소재의 웅덕산 아래에 있다는 내용이 여주군지(驪州郡誌)에 기록된 것을 ‘웅덕산’의 증거로 드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알아두자. 참고로 곰지기에서 웅덕산 정상까지는 35분이 걸렸다.

▼ 대여섯 평쯤 되는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텅 비어있는 듯한 모양새이다. 정상석이 세 개나 세워져 있던 당산과는 달리 이곳 웅덕산은 정상석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등산안내도는 물론이고 심심찮게 놓아두던 벤치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웅덕산 정상’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정표(증고개 입구→ 3.4㎞/ 곰지기↓ 1.0㎞)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 조망이 트이지 않는 정상에서 오래 머물 일은 없다. 곧바로 하산을 시작하는 이유이다. 하산은 북쪽 능선을 타보기로 했다. 아까 지나왔던 고갯마루로 되돌아가 곰지기골을 따라 하산할 수도 있겠지만, 등산객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같은 길을 같은 날에 또 다시 걷는 것 아니겠는가.

▼ 웅덕산 정상에서 내려선지 20분 남짓. 작은 오르내림을 번복하며 고도를 낮추던 산길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능선을 벗어나는 상황이라서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길을 잃었다는 후기도 여럿 보였었다.

▼ 이런 상황을 지자체에서 파악했던 모양이다. 오인하기 딱 좋은 능선의 나무에다 등산로가 아니라는 팻말을 매달아놓았다.

▼ 오른편으로 갈려나가는 능선은 시작부터가 가파르다. 아니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내려설 수도 없을 정도로 가파르다. 이러니 안전시설을 보강하기 전에도 이곳에서 길을 제대로 찾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 아직도 주차장까지는 많이 남았다.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산길이 계속된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가기 때문이다.

▼ 그렇게 40분쯤 진행하자 산길은 임도로 내려선다. 아까 산행을 시작하면서 만났던 임도의 연장으로 보이는데, 산길은 이 임도를 가로지른다.

▼ 날머리는 ‘홈다리골 주차장’(원점회귀)
8분쯤 더 걸어 숲속을 빠져나오자 새로 지은 듯한 펜션들이 여럿 나타난다. 구획정리가 반듯한 것이 영락없는 기획부동산 작품인데 산행이 종료되는 ‘홈다리 주차장’은 이 펜션촌의 길 건너에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산행은 총 3시간 55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3시간30분쯤 걸은 셈이다. 겨울 산행치고는 제법 긴 거리였다고 보면 되겠다.

▼ 점심 식사를 위해 들렀던 ‘솔치장어탕’. ‘솔치마을’ 입구의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데 꽤 다양한 메뉴를 내놓고 있었다. 밥보다 술을 좋아하는 최군과 나는 ‘수육’에 끌려 들어갔지만 준비된 재료가 이미 떨어져 버렸단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메뉴는 ‘곱창전골’. 맛이 빼어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소주를 4병이나 마셨으니 술안주용으로는 모자람이 없었다 하겠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생선 탕수육’이 엄청나게 맛있었다면 본말전도(本末顚倒) 일까? 아니다. 막국수를 주문한 집사람이 입맛까지 다셔가며 먹는 걸 보면 주인장의 솜씨가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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