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36코스

 

여행일 : ‘20. 6. 13()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일원

여행코스 : 정동진역(1.5)183고지(2.8)당집(4.6)페러글라이딩 활공장(0.5)안인해변(소요시간 : 9.4/ 3시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해파랑길 36코스는 강릉바우길 8구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안보체험 등산로를 겸한다. 먼저 만든 강릉 바우길에 숟가락 하나 더 얹듯이 해파랑길과 안보체험 등산로를 포함시켰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만큼 의미 있는 구간이라는 얘기도 될 것이다. 아무튼 이 구간은 바닷길을 걷는다는 해파랑길의 취지와는 상반된다. 해발이 400m에도 못 미친다고는 하지만 구간 전체가 산길을 걷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길은 해파랑길 50개 코스 중 바다를 가장 시원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길로 알려져 있다. 바다 바로 옆에 서있을 때보다 산 위의 산책로를 걸을 때 파도 소리가 더 가깝고 크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저 느낌일 따름이지만 나 또한 그런 분위기에 빠져볼 수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신발이 바다에 빠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말이다.

 

 

산행들머리는 정동진역 앞 괘방산 입구‘(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296-1)

동해고속도로(삼척-속초) 강릉 IC에서 내려와 ’35번 국도’7번 국도를 번갈아 타며 삼척방면으로 내려오다. 모전삼거리(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서 율곡로로 갈아타고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해돋이의 명소로 소문난 정동진이 나온다. 정동진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괘방산 등산로 입구가 해파랑길 36코스의 들머리이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도 등산로 입구에 만들어져 있다.

 

 

 

트레킹을 나서기 전에 정동진역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지난번 35구간 탐방 때 길을 잘못 들어선 탓에 들러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1962년에 간이역으로 세워진 정동진역은 전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기네스북에까지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세상에 알린 것은 한편의 TV드라마였다. 1995SBS-TV에서 광복 50주년 특별기획으로 방영했던 모래시계의 주 촬영지가 바로 이곳 정동진이었기 때문이다. 이곳 정동진역의 소나무는 혜린이 형사에게 체포된 곳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보려는 직장인들이 퇴근하자마자 귀가한다고 해서 귀가시계라는 별칭까지 붙여졌던 이 드라마는 시청률이 무려 64.5%를 기록했었다. 이는 1996년 방영된 KBS2'첫사랑(65.8%)1991MBC'사랑이 뭐길래(64.9%)에 이어 역대 시청률 3위에 아직까지 랭크되어 있다. 4위는 1999MBC '허준(63.7%)이다. 참고로 정동진은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동서남북 방위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동진은 위도 37°41'29"로 광화문의 37°34'08"보다 약간 위쪽에 위치한다. 실제 광화문 정동 쪽은 동해시 어달동 대진 마을 부근이 된단다.

 

 

별도의 입장권을 구입하지 않고도 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오래 간직할만한 추억거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정동진 시비'와 몇 점의 조각 작품들이 눈에 띌 따름이다. ‘고현정 소나무'에 집중하는 이유이다. 선로 쪽으로 휘어져 있는 저 소나무에서 고현정이 간이역에서 체포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고 한다. 당시 폐역이 검토되던 역이 모래시계에 한 번 나온 뒤로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단다.

 

 

괘방산 입구로 되돌아와 트레킹을 시작한다. 아니 입구에 세워놓은 3개의 안내판들부터 살펴보고 길을 나서기로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해파랑길 안내판‘. 35코스(옥계시장정동진역)의 종점이자 36코스(정동진역안인항)의 시점임을 알려주고 있다. 가운데는 강릉 바우길안내판이다. 8구간(안인항정동진역)의 종점이자 9구간(정동진역옥계시장)의 시점이란다. 해파랑길 36코스가 바우길 8구간과 일치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저 진행방향만 다르다고나 할까? 맨 왼쪽은 안보체험 등산로안내판이 주인이다. 요것도 중간(당집)에 세 갈래로 나뉘기는 하지만 안인항으로 연결되기는 매한가지이다. 설명이 조금 너절해졌지만 해파랑길 36코스는 한마디로 한 지붕 세 가족인 셈이다.

 

 

산길은 처음부터 가파르다. 그렇다고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10분이 채 되지 않아 능선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왔다갔다 갈 지()‘자로 길을 냄으로써 경사까지 많이 죽여 놓았다.

 

 

이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능선을 탄다. 소나무들로 가득한 능선이다. 하지만 이곳의 소나무들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모진 해풍에 시달린 탓인지 키가 작고 몸통은 말랐다. 아니 자갈밭을 연상시키는 거친 토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이곳은 햇볕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조망을 허용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에는 결코 반갑지 않은 구간이라 하겠다.

 

 

’183고지에 다와 갈 무렵 걷기에 딱 좋던 산길이 갑자기 가파르게 변한다. 그것도 밧줄 난간을 매어놓아야 했을 정도로 많이 가파르다. 아직도 해발이 200m를 넘기지 못했건만 명색이 산이다 보니 산다운 모양새라도 갖추고 싶었던 모양이다.

 

 

트레킹을 시작하지 28, ’183고지에 올라선다. 통나무 의자 두어 개를 놓아 쉼터를 겸하고 있는 이곳에는 이정표가 두 개나 세워져 있다. 하나는 바우길 이정표(안인항7.9/ 정동진1.5), 다른 하나는 ’183고지안보 7지점이라는 이름표를 동시에 달고 있는 안보체험 등산로용 이정표(삼우봉 5.0/ 정동진 1.3)이다. 해파랑길은 두 이정표에 표식만 덧붙이며 숟가락 하나를 더 얹었다. 참고로 해파랑길 36코스는 안보체험 등산로이기도 하다. 1996918일 밤, 북한 무장공비 26명이 안인진 포구 남쪽 1.5km 지점으로 침투했다. 불행 중 다행이도 공비들이 타고 온 잠수정의 스크루가 고깃배의 그물에 걸림으로써 도망가지 못하게 됐고, 이에 공비들은 이곳 괘방산을 거쳐 칠성산(七星山953m)으로 도주했다. 공비들이 소탕된 후 강릉시와 강릉시 산악회원들이 길을 정비한 후 안보체험 등산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83고지에서 산길은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길이 곧게 뚫린 이 구간은 조망까지 열린다. 칠봉산과 칠성산, 매봉산은 물론이고 그 뒤에 있는 백두대간의 헌걸찬 준봉들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이후에도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그러다가 아래 사진과 같은 돌탑을 만났다. 아니 이곳뿐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이런 돌탑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그마한 돌맹이들이 유난히 많은 괘방산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명색이 세 개의 탐방로를 겸하고 있으니 그에 맞는 편의 시설을 갖추지 않았을 리가 없다. 길이 나뉘는 곳마다 이정표를 세워두었음은 물론이고, 여러 종류의 벤치와 평상 등을 갖춘 쉼터도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길도 매우 잘 정비되어 있어 초등학생도 무난하게 완주할 수 있을 정도다.

 

 

168고지를 출발하지 28분쯤 되었을까 바닥의 흙이 이전과는 달리 온통 까매졌다. 옛날 이곳에 탄광이 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내가 중앙정부에서 에너지정책 업무를 담당하던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이곳에는 꽤나 많은 탄광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경제성이 없던 이 일대의 탄광들도 모두 문을 닫은바 있다. 그러니 주변에 널린 저 검은색 흙들은 무연탄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폐석더미가 분명하다.

 

 

이 부근에서 괘방산의 정상이 조망된다. 방송사와 이동통신사에서 세워놓은 송신탑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 이 근처에서 흙이 묽게 탄 것 같다는 화비령(火飛嶺)’을 거쳐 청학산(靑鶴山)으로 연결되는 갈림길을 만난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라선지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참고로 청학산은 1996년 북한의 잠수함침투 때 무장공비들이 집단으로 자살한 장소이다. 잠시나마 긴박했던 옛 이야기를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이후부터 길은 임도로 변한다.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괘방산 지역에는 강릉광업소등 여러 개의 탄광이 문을 열고 있었다. 이 임도는 당시 광산에서 캐낸 석탄(무연탄)을 운반하던 운탄길이다. 탄광들이 모두 문을 닫은 후 사람과 차량이 오가던 길은 조용한 산 속의 임도로 남았다. 그런 옛길을 내가 옛 추억을 떠올리며 걷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걷자 사거리(이정표 : 당집 0.6/ 정동진 3.3)가 나온다. 해파랑길은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알 수 없는 임도와는 이곳에서 헤어진다.

 

 

오솔길로 변한 탐방로는 사거리를 지나면서 가파르게 변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허리를 옆으로 꿰뚫으며 나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주변의 숲이 오리나무로 변하면서 햇볕까지 완벽하게 차단해준다. 오히려 걷기 좋은 구간으로 변했단 얘기이다.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울창한 숲속에 들어앉은 널따란 공터(이정표 : 안인5.1/ 동명2.0/ 밤나무정4.2/ 정동진3.9)가 나온다. 근처에 서낭나무가 보이는가 하면 널따란 반석도 보인다. 벤치 몇 개를 놓아 쉼터를 겸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마당 한가운데는 돌담을 둘러치고 소담한 집 한 채를 들어앉혔다. 산신제를 지내는 당집이란다. 문을 열어보니 부처님과 산신이 그려진 걸개그림 앞에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먼지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는 것은 평소에도 관리를 해오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후부터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15분쯤 걸었을까 안부(이정표 : 안인 4.0/ 정동진 5.0)가 나온다. 일부 지도에는 이 부근에다 괘일고개를 그려 넣고 있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안부에 내려서니 길가 철조망에 덕지덕지 매달린 산악회 리본들이 눈에 들어온다. 무당집 처마를 연상시키는 풍경이랄까? 그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긴 세 종류의 탐방로가 함께 쓰고 있을 정도이니 오죽하겠는가.

 

 

안부를 지나자 산길은 다시 가팔라진다. 오늘 트레킹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다. 12분이면 정상에 올라설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힘들다면 쉬엄쉬엄 오르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안부와 정상 사이에는 임도가 나있다. 이정표(삼우봉1.1/ 등명락가사1.7/ 당집1.3, 정동진 5.35)는 오른편에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인 등명락가사(燈明洛伽寺)’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 절에서 공부하던 서생들이 새벽이면 괘방산에 올라 불을 밝히고 기도를 해서 과거급제자가 많이 나왔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절이다.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북쪽의 고구려와 동쪽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란다. 창건 당시는 수다사(水多寺)였으나 신라 말기 병화(兵火)로 소실되었고 고려 초기에 중창하면서 이름도 등명사(燈明寺)로 바뀌었다.

 

 

임도를 지나서도 가파른 오르막길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바위구간이다. 그게 부담스러웠던지 지자체에서 밧줄난간을 쳐놓았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40분 만에 괘방산의 정상에 올라선다. 아니 정확히는 정상의 바로 밑이다. 정상을 방송사와 이동통신사의 송전시설들이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냥 차지만하고 있는 게 아니라 철조망까지 둘러놓아 아예 진입을 막아버렸다. 전주의 모악산처럼 요즘은 개방을 해주고 있는 추세인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정상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정상 부근에서 오른편으로 바다 조망이 확 트인다. 엊그제 내린 비 탓인지 마침맞게 하늘까지 쾌청하게 열렸다. 미세먼지와 황사로 맑은 날을 보기 드문 요즘으로서는 엄청난 행운이라 하겠다. 덕분에 발아래로 파란 바다가 넘실대니 그야말로 심쿵모드다. ‘심쿵은 우리 맏손주의 태명이기도 하다. 그런 심쿵을 갖다 붙였다면 내 눈에 들어온 풍광이 과연 어땠을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탐방로는 철조망을 둘러쳐놓은 정상을 피해 오른편으로 우회를 한다. 하지만 비탈진 곳에 길을 내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데크로 계단까지 놓아가며 산허리를 뚫었다. 그렇게 4~5분쯤 걸었을까 이정표(삼우봉 0.9/ 괘방산 정상 40m/ 당집 1.5) 하나가 세워져 있다. 왼쪽에 보이는 오솔길로 들어서면 괘방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면서 말이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들어서니 괘방산(掛膀山)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해발이 원래의 높이인 ’339m‘보다 6m가 더 높은 ’345m‘이다. 방송사의 송신시설에 자리를 빼앗긴 분풀이를 높이로 보상받으려 한 것일까? 그건 그렇고 괘방산은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의 명단을 쓴 방()을 이 산에 걸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 산줄기 덕분에 예부터 강릉에서 과거 급제자가 많이 나왔다는 설도 있다. ‘택리지강원도 편에는 지방민들은 놀러 다니기를 좋아해서 노인들은 기악과 술과 고기를 가지고 산이나 물가에 가서 마음껏 논다. 때문에 그 자제들 또한 학문에 몰두하는 사람이 적은데 오직 강릉에만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많이 나왔다고 적었다.

 

 

정상석만 세워놓았을 뿐 마땅히 쉴 곳이 없고, 또한 조망도 터지지 않으니 오래 머무를 필요도 없다. 인증 사진을 찍자마자 곧장 길을 나선다.

 

 

2분쯤 더 걸었을까 정상에 대한 아쉬움을 보상해주고도 남을 만한 조망의 명소를 만났다.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강릉항과 강릉시청 등 강릉시가지와 강동면 일대, 그리고 경포항까지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다. 그 뒤를 헌걸찬 백두대간의 준봉들이 받쳐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고맙게도 조망도까지 만들어놓아 어디가 어딘지 모를 이유도 없다.

 

 

조금 더 걷자 삼우봉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이정표(안인2.9/ 통일공원1.5/ 정동진6.1)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삼우봉의 정상은 아니다. 그저 통일공원에서 올라오는 길이 합류되는 지점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참고로 안인진리는 북한 잠수정이 침투하기 훨씬 이전, 19456·25전쟁이 발발하던 날 북한군이 최초로 발을 디뎠던 곳이기도 하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곳이 바로 통일공원이다. 공원 오른쪽 바닷가의 함정전시관에 있는 배는 퇴역함정인 3,471t급 전북함이다. 관람객들은 함정 내를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또 한 척의 배는 1996년 북한 무장공비들이 타고 왔던 잠수정이다. 이 잠수정 역시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정상석이 있을 리가 없다. 그저 벤치 두어 개가 놓인 쉼터일 따름이다.

 

 

삼우봉의 정상은 이정표의 바로 위에 있었다.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조망을 허락하고 있어 조금 전에 들렀던 괘방산보다는 훨씬 품격이 높다. 그래선지 많은 사람들이 이곳 삼우봉을 괘방산을 대신하는 봉우리로 쳐준다.

 

 

천 미터를 훌쩍 넘기는 고봉들이 숲을 이루는 백두대간 마룻금이 광활하게 펼쳐지는가 하면, 그 산줄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모여든 임곡천이 구불구불 똬리를 틀듯이 발아래로 흘러간다.

 

 

삼우봉에는 앉아서 기념사진 찍기 딱 좋은 삼각형 바위가 있다. 주변에는 정원에서나 볼법한 멋진 소나무들도 여럿 보인다.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가 하면, 시원한 바닷바람은 뺨을 스쳐간다. ‘바위 위에 앉아 있어도 왕의 호사가 부럽지 않다는 누군가의 표현이 실감나는 풍경이다.

 

 

누군가는 이곳 강릉을 3(三靑)이라고 했다. ‘물이 푸르니 수청(水靑)이요, 소나무가 푸르니 송청(松靑)이며, 마음이 푸르니 심청(心靑)이다라는 것이다. 이는 삼우봉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푸르기 짝이 없는 동해바다에 산길을 꽉 매운 소나무들, 거기다 이런 풍광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찌 푸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우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거기다 바윗길까지 겹쳐 내려서는 게 조금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길가에 밧줄 난간이 매어져 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닥에 떨어진 산길은 이후부터 평탄하게 이어진다. 오리나무로 바뀐 주변의 숲도 햇볕을 완벽하게 차단해준다. 다시 말해 걷기 딱 좋은 구간이라는 얘기이다.

 

 

삼우봉을 내려선지 10분 남짓, 활공장으로 가는 도중에 거대한 돌무더기를 만났다. 짧지만 성벽의 위를 걷기도 한다. 고려 초기에 쌓은 고려산성터라는데, 여진족과 왜구를 막기 위해 강릉 주민들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이 성터는 1969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인에 영동화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주민들이 공사현장에 석재를 판매하기 위해 성벽을 헐어내면서 대부분 훼손되었단다. 때문에 451m였던 성은 현재 서벽 25m와 남벽 55m 정도만 남아 있을 따름이란다.

 

 

 

잠시 후 안부삼거리(이정표 : 안인2.0/ 강릉임해자연휴양림0,8, 통일공원 1.3/ 삼우봉0,7)를 만난다.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푸른 바다와 산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강릉임해자연휴양림으로 연결된다.

 

 

삼거리를 지나면서 탐방로는 다시 오르막으로 변한다. 그것도 상당히 가파르지만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어 오르는데 부담은 없다. 거기다 거리까지 짧아 산성터를 출발하고 나서 8분이면 활공장에 올라설 수 있다.

 

 

많이 가팔라진 산길을 잠시 치고 오르자 널따란 나무데크가 나온다. 왼편은 패러글라이딩을 위한 활공장, 오른편은 평상까지 놓아둔 것이 쉼터로 안성맞춤이다. 아니 최고의 전망까지 갖추었으니 비박 마니아들이 침 깨나 흘릴만한 요지이겠다. 텐트를 벗어나지 않고도 최고로 멋진 동해의 일출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하지만 강릉시로서는 그게 영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오염이나 산불의 발생을 들먹이며 야영금지라는 경고판을 곳곳에 설치해 놓은 걸 보면 말이다. ! 이곳에서는 강릉시의 시산제나 풍년기원제 등이 열리기도 한단다.

 

 

활공장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맞게 날씨까지 청명해서 시야가 막힘이 없다. 먼저 하늘과의 경계가 불분명한 망망대해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반대편에는 오대산과 방태산, 설악산 등을 품은 헌걸찬 산릉이 늠름하게 버티고 있다. 고개 한번 돌렸을 따름인데 한쪽은 망망대해가, 다른 한쪽은 첩첩산중이 펼쳐져는 것이다.

 

 

이젠 내려갈 일만 남았다. 작은 오르내림이 두어 번 반복되지만 진폭이 크지 않으니 그저 솔향기에 취해보거나 가끔가다 터지는 조망을 즐기면서 걸으면 될 일이다. 그래야 산 우에 바닷길이라고도 불리는 바우길 8구간을 걷는 진짜 맛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의 강원도 사투리이다. 그러니 표준말로 풀어쓰면 산 위에 바닷길이 된다. 산길을 걷지만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강릉 사람들은 발밑에 바다가 펼쳐지면서 파도소리까지 그대로 들을 수 있다는 허풍을 떠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랑스러운 둘레길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이 구간도 역시 잘 꾸며 놓았다. 통나무 의자에 분홍색의 벤치까지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한쪽 귀퉁이에는 돌탑도 보인다. 쉬어간 사람들의 염원이 알알이 쌓여있을 것이다.

 

 

능선은 대부분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로 이루어져 있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데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그늘도 그늘이려니와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기가 더위에 지친 심신을 상큼하게 바꿔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25분 정도를 진행하자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안인0.6/ 쉼터0.3/ 정동진8.4)가 다소 헷갈리지만 이곳에서는 오른편 방향의 쉼터로 향한다.

 

 

키 큰 소나무는 바닷바람을 막아 주고, 길옆에 가지런하게 자라는 키 작은 소나무들은 걷는 이들이 혹시라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근심거리를 바람에 실어 날려 보낸다. 솔향기를 가득 머금은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쳐가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향기에 취해 걷다보면 잠시 후 잘 가꾸어진 쉼터에 이른다. 원목의자에 식탁은 물론이고, 정자까지 지어 품격을 높인 쉼터이다.

 

 

 

트레킹 날머리는 안인삼거리’, 괘방산 입구 주차장(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13-34)

삼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10, 길게 놓인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널따란 주차장이 나오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이곳에도 해파랑길 안내도와 강릉바우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정동진처럼 안보체험등산로란 이름도 슬쩍 끼워 넣었다. 하지만 스탬프보관함은 안인항까지 가야만 만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종료하기로 했다. 37코스 답사 때 버스가 주차되어 있던 이곳까지 이미 걸어왔었기 때문이다. 스탬프를 찍지 않는 우리 부부이니 구태여 똑 같은 길을 다시 걸을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오늘은 총 3시간 15분이 걸렸다. 핸드폰의 앱에 찍힌 거리는 9.24, 전 구간이 산길이었음을 감안할 때 상당히 빨리 걸은 셈이다. 아니 능선의 오르내림이 그만큼 심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