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5코스

 

여행일 : ‘20. 7. 18()

소재지 : 강원도 속초시 대포동·조양동·청호동·중앙동·영랑동·장사동 일원

여행코스 : 설악 해맞이공원(1.6)대포항(2.1)속초항(1.3)속초 등대전망대(9.1)영랑호 둘레길장사항(소요시간 : 16.9가운데 속초해변에서 시작, 14.6/ 3시간 55)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설악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외옹치와 설악해변, 청초호, 영금정, 청초호, 영랑호를 거쳐 장사항에 이르는 코스로 속초 시내를 한꺼번에 아우른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거리는 다소 길지만(16.9) 코스의 난이도가 낮아 부담이 없는데다 영랑호 구간(7.5)에서는 호반을 따라 내놓은 호젓한 숲길을 걷기도 한다. 또한 영금정과 범바위처럼 경관이 빼어난 곳에서는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도 있고, 청초호에서는 갯배라는 색다른 체험도 해볼 수 있다. 거기다 싸고 싱싱한 활어회가 덤으로 따라 붙으니 해파랑길을 처음 입문하시는 분들에게 감히 추천드릴 수 있는 구간이라 하겠다.

 

 

들머리는 속초해수욕장(속초시 조양동 1450-104)

동해(속초-삼척)고속도로 양양 IC에서 내려와 44번 국도를 타고 청곡교차로(양양군 양양읍 청곡리)‘로 온다. 이어서 7번 국도를 타고 속초 방향으로 올라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해파랑길 45코스가 시작되는 설악해맞이공원(속초시 대포동 178-9)‘에 이르게 된다. 설악산의 입구이기도 한 이곳은 본래 내물치라는 해돋이 관광명소였는데, 19999월 개최된 국제 관광엑스포에 맞춰 가족공원으로 새롭게 개원됐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속초 해수욕장에서부터 트레킹을 시작했다. 45코스의 초입인 바다향기로외옹치해변2018년 민간에 개방되자마자 다녀왔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코로나19 팬데믹(COVID-19 pandemic)‘의 영향은 해수욕장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해수욕장 전체에 금() 줄을 치고 입구와 출구를 따로 만든 것은 기본. 발열 검사와 함께 분사식(噴射式) 소독까지 시키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의 출입을 아예 막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해수욕장에 들어와서도 마스크를 벗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집사람처럼 사진 찍을 때야 잠깐 벗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런 상황에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백사장에는 '속초여행'이라고 쓰인 조형물과 함께 '조도(鳥島)'의 경관을 자랑하는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이곳 속초해변에서 바라보는 조도가 속초팔경의 제5경이라는 것이다. 안내판은 또 소야팔경(所野八景)’논산조양(論山朝陽)을 들먹이고 있다. 이 일대의 일출이 일품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는 논산이라는 약간 높은 구릉지에서 바라보는 아침 해를 이른 것이니, 설악해변에서 사용할 비유는 아니겠다. 참고로 속초팔경은 영금정과 영랑호 범바위, 청대산, 청초호, 속초해수욕장 및 조도, 외옹치, 설악해맞이공원, 학무정 등이 포함되어 있다.

 

 

돌고래가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형상의 조형물이 눈길을 끌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아니 그 옆에 세워놓은 해변의 여인상에 더 호감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모래사장에 엎드린 자세인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으니 눈길을 끄는 건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SOKCHO' 조형물 뒤에는 전 세계 중요지점의 방향과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를 세워놓았다. 뉴욕, 파리, 베를린, 블라디보스톡, 북경 등 꽤 많은 도시들이 눈에 익다. 세계 일주를 목표로 여행을 시작한지가 벌써 6년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시도조차 못해본 곳들이 세계 방방곡곡에 널려있다. 그런데도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여버렸으니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해수욕장에서 빠져나오니 '1군단 전적비'가 우뚝하다. 19506월 평택에서 창설된 이 부대는 6.25 전쟁 중 한·만 국경선까지 진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전쟁 중(1951.6.6~1952.12.22) 이곳 속초에 주둔하면서 설악산과 향로봉, 884고지 월비산 등의 전투에 투입돼 양양·속초·간성을 적들로부터 지켜냈다고 한다.

 

 

전적비까지 다 둘러봤으니 이젠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나설 차례이다. 바닷가를 따라 내놓은 도로(청호해안길)을 따르면 된다. 이 길을 걷다보면 군의 경계초소를 만나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이리라. 반면에 경관 좋은 바닷가에는 전망대를 만들어두기도 했다.

 

 

전망대에 오르자 동해바다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조도(鳥島)가 놓여있다. 사람 대신 새들이 찾는다는 섬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서 이름도 조도란다. 그러니 섬에 걸터앉은 등대도 무인(無人)이다. 아무튼 저 섬은 해맞이로 유명한 섬이다. 새로운 하루가 열림을 알려주는 분홍빛 태양을 등에 짊어지기라도 할라치면 저 섬은 그림에서나 볼 법한 풍경을 만들어낸단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소야팔경(所野八景)의 다섯 번째에 논산조양(論山朝陽)을 올려놓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소야팔경(所野八景)에는 청초마경(靑草磨鏡)과 노도귀범(鷺島歸帆), 주교야화(舟橋夜火), 온정조하(溫井朝霞), 논산조양(論山朝陽), 청대화병(靑垈畵屛), 노동명월(蘆洞明月), 이동백설(梨洞白雪)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10분 남짓 걸었을까 청호초등학교직전에 이정표(속초항1.8, 아바이마을 갯배 0.8/ 속초해수욕장0.7)가 세워져 있다. 해파랑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하지만 우린 계속해서 해안도로를 따랐다. 또 다른 해파랑길 표식이 그래도 된다고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린 실향의 아픔을 담은 벽화로 가득한 벽화마을을 빗겨나 버리는 우를 범해버렸다. 그런 것도 모른 채 10분쯤 더 걷자 이번에는 청초호 물이 동해로 빠져나가는 기수역(汽水域)이 갈 길을 막는다. 이곳에는 '하나호 선장 유정충 상'이 세워져 있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인 유정충은 한국 전쟁 중 부모를 따라 월남했다. 성장하여 하나호 선장이 된 그는 제주 서남쪽 해상에서 조업 중 풍랑으로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하자 모든 선원들을 퇴선 시킨 뒤 혼자 조타실에 남아 구조신호를 보내다 배와 함께 가라앉고 말았다. 사고 후 대한민국 최초의 전국 어민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으며, 국민훈장 목련장이 추서되었고, 보건사회부는 그를 의사자로 지정했다.

 

 

청초호 기수역에서 길이 막힌 탐방로는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설악대교방향인데 이 구간은 속초사잇길의 네 번째 길인 아바이 마을길이기도 하다. 속초의 핫플레이스인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눈요기를 하고 갯배로 청초호를 건넌 뒤, 신포마을해변에서 동해바다를 만끽하고, ‘아트플랫폼 갯배벽화마을에서는 피난민의 애환을 가슴에 담는 등 아바이 마을골목골목을 탐방하도록 짜여진 둘레길이다. 참고로 아바이할아버지를 뜻하는 함경도 사투리이다. 그러니 함경도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마을이 곧 아바이 마을이다. 피난민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아바이마을은 속초의 역사와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한국전쟁과 1.4 후퇴 때 남하한 국군을 따라 내려왔다가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피난민들이 청초호 해변에 움막집을 집고 아등바등 살며 상권을 만들어 오늘의 속초를 일구었기 때문이다. 속초시 인구 중 강원도 출신을 제외하면 70% 이상이 이북 5도민 사람들이라는 사실에서 아바이마을 사람들의 역할을 헤아릴 수 있다.

 

 

'설악대교' 교각 아래에는 컨테이너 박스를 이중으로 겹쳐 만든 '아트플랫폼 갯배'가 들어서 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의 정착촌 '아바이 마을'에 조성한 문화공간으로 오대양 육대주를 부유하던 해양 컨테이너를 활용해 2016년 오픈했다. ‘아바이 마을주민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매일 11시에서 18시까지 문을 연단다.

 

 

2층 전시실에는 장롱사진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지난 2010년 처음 시작한 장롱사진공모전은 당신의 추억이 속초의 역사입니다라는 주제로 2013년까지 진행한 사업이다. 장롱 속에서 잠자던 옛 사진들이 매년 100장 이상씩 출품됐고 뜻밖의 소중한 발견도 많았다고 한다. 전투식량 상자를 이어붙인 집 앞에서 책보를 들고 있는 학생들,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청호동 방파제에서 놀고 있는 아이, 설악산 관광호텔 앞에서 찍은 설악국민학교 동창회 사진까지, 장롱 속에 잠들어 있던 빛바랜 흑백사진들이 너나없이 50~60년 전 속초를 증언한다. 누군가의 앨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 흑백사진들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대의 추억이 묻어있다. 그것들에서 난 속초만의 풍속과 생활상, 거리의 변천을 찾아내 본다.

 

 

전망 좋은 창가에는 테이블도 놓아두었다.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청초호(靑草湖) 기수역의 아름다운 풍경까지 함께 즐겨보라는 모양이다. 참고로 청초호는 사주(砂洲)로 둘러싸인 둘레 5의 석호이다. 하지만 어선이 드나들 수 있게 인위적으로 수로를 넓고 깊게 파놓아 담수호는 아니다. 지금은 속초항의 내항으로 쓰이는데, 500t급의 선박이 오갈 수 있단다.

 

 

탐방로는 이제 설악대교를 건넌다. 청초호의 새로운 물길(水路) 개설로 두 동강 난 아바이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이 다리는 아트플랫폼 갯배' 부근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다리품을 팔지 않고도 다리 위로 오를 수 있다.

 

 

설악대교의 아래에서 석호(潟湖)인 청초호와 동해바다가 서로 만난다. 그 왼편은 등대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바닷가. 즉 청호해변이다. 이 해변은 청호동 아바이마을 실향민들의 주요 생활터전이기도 하다. 가을동화 촬영지로 유명한 아바이 마을은 갯배를 타는 곳과도 연결되어 있어 내국인은 물론 많은 외국인이 방문하는 명소이다. 여름에는 주민이 운영하는 민간해수욕장으로도 활용되며, ’아바이 순대촌이 따로 형성돼 있어 맛 기행도 함께 즐길 수도 있다.

 

 

설악대교를 건너면 신포마을이 반긴다. ‘신포는 함경남도 동해안 중부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신포 사람들이 피난을 와서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다고 해서 마을 이름도 신포가 되었다. 그래선지 설악대교의 교각 아래에는 옛 속초항의 흑백사진과 함께 속초 사자놀이의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속초 사자놀이는 1950년대까지 북한에서 연희(演戲)되던 사자놀이가 넘어온 이주민속(移住民俗)의 하나로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 공연은 정월대보름 전날부터 다음날까지 마을공동체와 함께 했던 마당놀이와 동네돌기(길놀이)를 재현하는데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미와 가가호호를 순회하며 놀이를 펼치는 연희적 요소가 잘 조화되어 있다.

 

 

선착장으로 들어서는데 가을동화의 촬영지임을 알리는 조형물이 눈에 띈다. 맞다. 신포마을은 TV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여자 주인공 은서가 살았던 마을이다. 은서를 찾기 위해 갯배를 타고 들어가는 준서와 무심한 표정으로 갯배를 타고 나가는 은서가 스쳐지나가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래선지 길가에는 가을동화와 관련된 상호들이 많이 보였다. 하나같이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를 파는 식당이나 카페들이다.

 

 

청초호는 갯배로 건넌다. 속초 핫플레이스인 중앙동과 청호동 아바이마을을 연결하는 줄배6.25전쟁 후 속초가 수복되면서 북한 땅 고성에서 남하한 조막손이라는 김씨 노인이 20명쯤 탈 수 있는 배를 만들어 배 삯을 받아 살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민들 또한 청초호를 빙 돌아 시내로 나가는 수고를 덜게 되었으니 감지덕지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 갯배는 마을 위로 설악대교가 놓인 지금까지도 운행되어 낭만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정취를 여행자에게 선사한다. 뱃삯으로 단돈 500원만 내면 뱃사공 노릇도 해볼 수 있다. 줄에 매달린 갈고리로 실제 뱃사공과 함께 배를 끌면서 건너가면 된다. 나름대로 추억과 운치가 동반된 여정을 만들 수 있으니 한번쯤 도전해 볼 일이다.

 

 

오늘도 구우(舊友)인 형우군이 함께 했다. ‘회 없는 바닷가 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지론을 달고 사는 친구다. 거기다 이번에는 자기가 회를 살 차례라는 용띠 갑장(甲長)도 추가됐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속초관광수산시장이다. 중앙동 갯배선착장 근처에 위치하는데, 자연산을 고집하는 동명항보다는 가격이 저렴할 것 같아서이다. 그런 우리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수산시장의 지하에 들어서 있는 회센타는 규모도 컸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어종을 싼 값에 판매하고 있었다. 단 회를 떠 주는 것으로 끝. 야채나 초장 등의 사이드 메뉴는 추가로 돈을 내야만 한다. 아무튼 그렇게 준비된 회는 영금정 근처의 갯바위에서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겨가며 먹었다. 자연 풍광과 함께 맑은 공기를 음미하는 그 맛에 맛들여보지 못한 사람은 여행을 왜 한가함의 철학이라고 부른지를 깨닫지 못한다. 스스로 방랑자가 되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활어회를 챙겨들고 해파랑길로 되돌아오니 금강대교가 손짓한다. 청초호와 동해바다가 만나는 또 다른 기수역에 놓은 다리이다. 해파랑길은 다리 건너에서 동해안 자전거길과 다시 만나 속초항으로 향한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 만에 속초항에 도착했다. 핸드폰에 찍힌 거리는 3.2. 생선회를 뜨는데 걸렸던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저것 둘러보느라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나 보다. 그만큼 구경거리가 많았다는 얘기도 될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속초항은 엄청나게 넓었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여객선은 물론이고 거대한 몸채를 자랑하는 크루즈 선박과 군함까지 정박되어 있다. 하긴 여객터미널과 국제여객터미널로도 모자라 국제크루즈터미널까지 들어서 있으니 이를 말이겠는가.

 

 

부두에는 몽골텐트가 길게 쳐져 있다. 각 텐트는 복성호, 아바이호, 대경호 등의 어선 이름을 상호로 내걸었다. 속초의 또 다른 명물이라는 오징어 난전이 아닐까 싶다. 난전(亂廛)이란 무등록 점포를 뜻하는데 이곳 속초항에 수협 허락을 받은 포장마차들이 영업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선주들이 직접 운영하는 이곳은 그날 잡아온 것들만 판다고 한다. 5월에 산 오징어 맏물이 들어오면 천막을 치고, 추석 지나 오징어가 끊기면 12월 말일까지 도루묵과 양미리를 구워 팔다가 천막을 걷는단다.

 

 

코로나19’ 때문에 할 일이 없어진 속초항 국제여객터미널을 지나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영금정(靈琴亭)’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본디 저 자리에는 지금보다 높은 바위산이 있었다고 한다. 바위산의 모양이 정자처럼 보였고 또 파도가 이 바위산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신령한 거문고소리 같다고 해서 신령할 영(’)거문고 금()’ 자를 넣어 영금정이라 불렀다. 그러나 일제 때 속초항을 개발하면서 이 바위산을 부시고 영금정 옆에 방파제를 만들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현재의 영금정은 정자(亭子)로 바뀌어 있다. 바위산의 꼭대기에 팔각정을 짓고 영금정(靈琴亭)’이란 현판을 달아놓았다. 2008년 동명항 경관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전망대 겸용의 정자란다.

 

 

영금정이라 부르게 된 또 다른 연유도 있다. 옛날 이곳에 사방이 절벽을 이룬 석산이 있었다. 위에는 각양각색의 괴석들이 정자 모양으로 둘러섰는데 암반이 평평해서 몇 사람이 앉아서 놀 수 있었다. 그 바위바닥에는 장사가 천마를 타고 달린 발자국이 있었고 말죽통 같은 괴석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징바위가 있었는데 이 괴상한 돌을 발길로 툭 차면 소리처럼 괴상한 소리가 나서 징바위라 불렀단다. 괴이한 것은 파도가 석산 벽에 부딪치면 신묘한 음곡이 들려 왔음으로 이 또한 신령한 거문고 소리와 같다 해서 영금정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한편 밤이면 선녀들이 남몰래 내려와 목욕을 하고 신묘한 음색의 곡조를 즐기면서 놀던 곳이라 하여 비선대(秘仙臺)’라고도 불렀단다.

 

 

건너편에는 속초 여행의 시작이자 전망 포인트라는 속초등대가 있다. ‘영금정 속초등대전망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동틀 무렵 저곳에서 바라보는 망망대해의 일출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한다. 일출이 꼭 아니어도 좋다. 한편의 영화처럼 그려지는 아침바다의 어선들. 그리고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설악산이 바로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니 이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하지만 아쉽게도 전망대로 올라갈 수는 없단다. 이 또한 코로나19’ 탓이다. 참고로 속초등대는 6.25 후 휴전선을 바로 앞에 둔 속초의 지정학적, 군사적, 경제적 이유로 항구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5768일 첫 불을 밝혔다. 이후 2006년에 등대해양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옥외전시실과 홍보관, 옥외전망대 등을 설치했다. 목재사다리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등대 입구 마당에 우리나라 최동단 독도등대와 최서단에 있는 소청도등대, 최남단에 있는 마라도등대, 최북단에 있는 대진등대 등 4곳의 유인등대 소개와 함께 등대 전경이 담긴 대형 유리판과 조형물을 설치했다.

 

 

눈길을 돌리면 영금정과 방파제로 연결된 동명항이 있다. 동명항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어민들이 갓 잡아 온 싱싱한 자연산 활어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활어시장 입구에는 상인들이 당당하게 자연산만 판다고 선언한 문구가 보인다. 자연산이 아닐 경우 10만원을 보상해준다는 현수막이 가게마다 나붙었다. 활어시장은 방파제와 이어져 있어 시원한 바다를 거닐며 모처럼의 여유를 맛 볼 수도 있다.

 

 

영금정(靈琴亭)’은 하나만이 아니다. 동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곳에 또 하나의 정자를 짓고 같은 이름의 이름표를 달았다. 정자까지는 돌다리를 놓아 거친 파도에도 끄떡없도록 했다. 동해바다의 숨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들어보라는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해돋이정자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걸 보면 일출용으로 지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 조명시설까지 갖추었다니 저녁이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

 

 

영금정의 역사 안내판과 정자 안내판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난 뒤에야 길을 나섰다. 영금정의 풍경이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증거일 것이다. 코로나로 진입이 막힌 등대전망대를 그냥 지나치자 이번에는 거문고 쉼터가 길손을 맞는다. 신비한 거문고 소리를 간직한 영금정(靈琴亭)을 표현하기 위한 조형물로 보이는데, 쉼터의 이름도 이 조형물의 생김새에서 따왔나 보다.

 

 

쉼터는 전망대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동해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싶을 만큼 예쁜 색으로 펼쳐진다. 다만 영랑동 해변을 따라 펼쳐진 넓은 백사장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를 막기 위해 삼발이로 쌓은 제방도 아름다운 풍경을 갉아먹는 방해물이 되어 버렸다.

 

 

탐방로는 이제 영랑해안길을 따른다. 바닷가를 따라 내놓은 길을 따라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하나 같이 실내포차란 간판을 달았다. 맞다. 속초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영랑해안길의 포장마차 거리가 바로 이곳이다. 늦은 밤에도 부담 없이 찾아갈 만한 동네라서 여행자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단다. 하지만 아바이 순대라는 간판이 눈에 띄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월남한 속초 분들에게 아바이 순대는 고향일 텐데도 말이다. 그들에게 돼지의 창자에 담긴 것은 양념만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이다. 순대를 채우던 아바이와 순대를 써시던 오마니, 맴소(염소)와 새지(송아지)가 울던 초저녁 그늘. 백두산에는 호개(호랑이)가 뛰댕기고 메구락지(개구리)는 논에서 뛰댕기는 늦봄 어느 날들이 아른거리리라.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등대해변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까 지나왔던 속초해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이곳 또한 속초가 자랑하는 피서지라고 한다. 그래선지 물놀이 나온 피서객들로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바다를 끼고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빛바랜 정지 표지판이 보인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큰 도로를 건너면 영랑 호수공원이 나온다. 영금정을 출발한지 30분 만이다. 이제 해파랑길은 영랑호의 호반을 따라 한 바퀴 돌게 된다. 이 구간은 총 10개 코스로 구성된 속초 사잇길의 첫 번째 길인 영랑호길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중간 중간에 쉼터와 화장실도 잘 정비되어 있다. 운동시설도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천천히 즐기면서 걷기에 딱 좋은 코스라 하겠다. 그러려면 시간을 조절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말이다.

 

 

영랑호에 도착하니 그림 같은 호수가 하늘 반영과 함께 펼쳐진다. 거기다 배경으로 설악산까지 품었으니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하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아니다.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이루어진 암릉들이 하나같이 구름 속에 갇혀버렸다.

 

 

영랑호는 한마디로 아름다운 호수이다. 영랑호라는 이름도 영랑이라는 화랑이 호수에 매료되어 오래 머무르며 풍류를 즐긴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호수에 매료되어 머물렀단 말인가! 그 길을 내가 걷게 된다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참고로 영랑호는 8둘레에 넓이가 36만평이나 되는 자연호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주위가 30여 리인데 물가가 굽이쳐 돌아오고 암석이 기괴하다. 호수 동쪽 작은 봉우리가 절반쯤 호수 가운데로 들어갔는데 옛 정자터가 있으니 이것이 영랑 신선 무리가 놀며 구경하던 곳이다고 적고 있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일 것이다.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영랑호에 대해 구슬을 감추어둔 듯 신비롭다고 표현한 바 있다.

 

 

탐방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가정집 정원 느낌의 숲길이 나오는가 하면 아름드리 거목들이 도열한 곳도 지난다. 또 어떤 곳에서는 황토색 테이프로 밑동을 동여맨 가로수들이 늘어서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속초의료원이 나오고, 이어서 호반에 세워진 통천군 순국동지 충혼비(通川郡殉國同志忠魂碑)’가 눈에 들어온다. 공산 치하에서 생명을 걸고 싸우다 피 흘린 반공 전사자와 한국전쟁 당시 전몰용사 140여 명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고 한다. 1969년 박용학, 정주영 등 전국 통천 군민 150여 명의 의연금(義捐金)으로 세웠다는 이 탑에서 나는 남의 땅에다 터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실향의 아픔이 느껴졌다.

 

 

해병대 전우회관을 지나 소공원으로 들어서자 신라 화랑 영랑(永郎)과 용을 테마로 한 화강암 조각 작품이 세워져 있다. 영랑호라는 지명은 신라 사선가운데 하나라는 저 화랑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때 영랑과 술랑(述郎), 남랑(南郎), 안상(安詳) 등의 화랑이 금강산에서 수련한 뒤 무술대회에 나가기 위하여 고성군 삼일포에서 3일 동안 쉬다가 금성으로 가는 길에 영랑호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영랑은 호반의 풍치에 도취되어 무술대회에 나가는 것조차 잊고 계속해서 머물렀단다. 이때부터 호수의 이름도 영랑호라 부르게 되었다.

 

 

영랑호반에 들어선지 40분쯤 되었을까 영랑호의 명물인 범바위가 나타난다. 동국여지승람에서 표현했던 대로 큰 바위가 영랑호에 잠겨있는 모양새이다. 그 위엄이 당당하고 마치 범 형상으로 생겼다고 해서 범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이젠 직접 범바위에 올라가 볼 차례이다. 범을 닮은 바위일 따름인데 구태여 위까지 올라가볼 필요가 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색이 속초팔경의 하나인데 그만한 볼거리가 없겠는가. 그렇게 시작한 오름길은 모퉁이를 돌고 나서 시작된다. 그리고 긴 나무계단을 오르자 영랑정이라는 빨간색 예쁜 정자가 나타난다. 드넓은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원래 저곳은 한국전쟁 당시 속초지역 수복에 공이 많았던 제11사단장 김병휘(金炳徽)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금장대(金將臺)’가 있던 자리다. 세월이 흘러 6각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 있던 것을 2005년에 복원해 놓은 것이 현재의 정자이다.

 

 

범바위의 표면은 동네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은 채 가운데에서 씨름 한판을 벌여도 될 만큼 드넓다. 밑은 낭떠러지이다 보니 바위에 엉거주춤 앉는 순간, 묘한 울렁거림까지 느껴진다. 울렁거림도 잠시 영랑호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자 이내 감탄이 터진다.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이번엔 설악산이 길게 펼쳐진다. 예로부터 영랑호를 찾는 시인묵객들이 거르지 않고 꼭 올랐다는 얘기가 허언이 아니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라 하겠다.

 

 

범바위에서 내려와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돌아 호안으로 나간다. 이때 범바위의 웅장한 전모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범바위는 하나의 바위가 아니라 여러 개가 모인 바위군(岩群)이다. 이 거대한 몸뚱이를 일컫기에 바위라는 단어는 너무나 작다. 바위 꼭대기를 보려면 몇 걸음 뒤로 물러서 고개를 들어야 가능하다.

 

 

조금 더 걸으니 향토 시인 최명길(1940~2014)'화접사(꽃과 나비의 노래)'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나는 나비가 되오리. 그대는 꽃이 되오시라. 내가 벼랑을 날아 그대에게 다가가오리...중략... 한 즈믄 해 지난 다음쯤에야 그대가 나비 되오시라. 나는 꽃이 되오리. 집사람을 향한 내 마음을 어찌도 이리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장전마을입구에도 영랑호의 유래와 관련된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아까 보았던 영랑이라는 화랑(花郞)과 용 외에도 신라 사선의 나머지 화랑인 술랑과 남랑, 안상을 포함시켜 조각했다. 계속해서 몇 걸음 더 걸으니 '화랑도 체험 관광지 및 실내 승마장' 입간판이 길가에 세워져 있다. 화랑도(花郞道)의 가치를 현대에 맞게 개발하여 보급하는 곳으로, 옛 화랑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마상무예와 말위에서 부리는 각종 곡예인 마상재’, 말을 타고 격구채로 공을 쳐서 상대방 문에 넣는 격구등의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승마와 활쏘기, 봉술 대련, 말먹이 주기, 표창 던지기, 도인 체조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이 가능하단다.

 

 

탐방로는 대부분 호숫가로 내놓은 도로를 따른다. 자전거길과 함께 도로의 가장자리에 따로 내놓았다. 이 가운데 초록색은 보행자 전용이다. 차량과 자전거보다 우선을 두었다는 느낌이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호수가 주는 잔잔함과 푸르른 자연환경이 시원하게 몰아치던 동해바다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시끄러운 것보단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 딱 좋은 코스라 하겠다.

 

 

도로변 숲속에는 버려진 주택들이 많이 보였다. 외국에서나 볼 법한 예쁜 집들인데 하나 같이 폐허로 변해있다. 20194월에 발생했던 산불 때 피해를 입었던 주택들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가자 호숫가에 보행자 데크를 놓아 여행자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서 영랑호를 느껴볼 수 있도록 했다.

 

 

데크로드의 끄트머리에 이르자 숲속에 숨어있던 공룡 한 마리가 고개를 내민다. 안내판은 영랑 호반에 산재해 있는 여러 형상의 바위들 가운데 하나라 적고. 보는 이에 따라서 공룡 또는 하마의 머리 형상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심지어는 고래의 머리로 보는 사람들도 있단다.

 

 

영랑호를 한 바퀴 돌아 나오자 기수역에 놓인 영랑교가 고생했다며 반긴다. 아까 영랑 호수공원으로 들어서면서 보았던 다리이다. 저 다리, 아니 저 다리보다 조금 더 아래에 있는 사진교를 건넜더라면 트레킹이 종료되는 장사항에 곧바로 도착했을 텐데도 해파랑길은 영랑호반을 따라 7.5나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1시간 50분이나 투자하면서 말이다.

 

 

영랑교와 연결된 4차선 도로(중앙로)를 건너면 장사 체험마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대형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45코스의 날머리인 장사항에 이르렀다는 얘기일 것이다. ‘장사(사진)’ 마을은 본래 육지가 아닌 바다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모래가 쌓여서 영랑호는 호수로 변했고, 사진리에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모래톱에 형성된 마을이라 '모래기'라고 불렸고, 이것을 한자로 '사야지(沙也只)'라고 표기하면서 사진리(沙津里)가 되었다.

 

 

그래선지 바닷가는 결이 고운 모래가 두텁게 쌓여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곳은 장사항으로 90m에 이르는 방파제가 볼거리로 꼽히는 어항이다. 대형 어선보다는 30여척의 고깃배가 들고 나며 전형적인 어촌의 풍경을 연출하는 게 꽤 볼 만하다. 이곳에서는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에 오징어 맨손잡기 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여행자들은 이때 오징어 맨손잡기 및 먹물 글씨 쓰기와 같은 오징어를 테마로 한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다. 해조류 표본 만들기, 소형 통발을 이용한 해양생물 채집 등도 가능하다니 가족나들이 삼아 한번쯤 도전해 볼 일이다.

 

 

 

트레킹 날머리는 장사항(속초시 장사동 548-5)

해수욕장과 마을 사이에는 바다숲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배 모양 쉼터와 파고라, 벤치 등으로 잘 꾸며져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오징어 조형물이 가장 눈길을 끈다. 매년 여름 열리는 오징어 맨손잡기 행사를 형상화한 것이란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총 14.6를 걸었다. 속초해변에서부터 시작했는데도 원래 길이인 16.9에 거의 육박하는 거리를 3시간 55분에 걸쳐 걸었다. 들락거리게 만드는 볼거리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 해파랑길 45코스의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장사항 입구에 위치한 장사동 어업인회관을 지나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