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3코스
여행일 : ‘20. 6. 20(토)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과 손양면 일원
여행코스 : 하조대 해변(4.3km)→여운포교(2.2km)→동호해변(3.0km)→수산항 입구(소요시간 : 9.4㎞, 실제로는 13.35㎞/ 3시간 10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원래의 거리가 9.4㎞이니 지난 42코스(9.6㎞)보다도 오히려 더 짧은 구간이다. 거리가 짧아서인지 이 구간은 가슴에 담아둘만한 특별한 볼거리가 없었다. 아쉽지만 중광정해변과 동호해변 등 서퍼들에게 인기 있는 해변과 ’수산항‘이라는 마리나항이 다였던 것 같다. 그나마 하나 있는 명소마저 탐방로에서 빠져있던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한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가을동화’의 촬영지인 ‘염개호’의 갈대밭이 탐방로 근처에 있었는데도 별다른 표시가 없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우린 44코스의 일부 구간을 앞당겨 걸어보았다. 양양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은 ‘쏠비치 리조트‘가 1㎞ 전방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트레킹 들머리는 ’하조대 해변‘(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618-2)
동해(속초-삼척)고속도로 하조대 IC에서 내려와 7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 광정천(光丁川) 조금 못미처에 있는 교차로(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에서 빠져나온 다음 광정천을 오른편에 끼고 조금만 들어가면 ’하조대 해수욕장(河趙臺 海水浴場)‘의 널찍한 주차장이 나온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해수욕장의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 해변에 기대어 내놓은 데크로드를 따라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하조대 해수욕장을 오른편에 끼고 걷는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할 게 하나 있다. 중간 중간에 만들어 놓은 전망데크에 꼭 올라가 보라는 것이다. 전망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방으로 시야가 열리기 때문이다.
▼ 저 멀리 명승(名勝) 68호인 하조대의 바위절벽이 눈에 들어오는가 하면, 발아래로는 흰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얗고 고운 모래밭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손에 쥐면 스르르 빠져나가버릴 것 같은 가는 입자의 모래사장이 반월 모양으로 반듯하게 휘어 있다.
▼ 데크로드가 끝나면서 탐방로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올라선다. 오른편은 계속해서 모래사장이 이어진다. 하지만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들어갈 수는 없다.
▼ 그렇게 잠시 걷자 ’꼬띠에르(Côtier)‘라는 특이한 외관의 펜션(pension)이 눈에 들어온다. 공(球)을 1/4로 나눈 후, 그것을 다시 옆으로 쪼개놓은 모양새이다. 전면은 계단처럼 만들어 3층으로 된 모든 객실에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불어인 ’꼬띠에르(Côtier)‘가 '해안(강)을 따라가는, 연안의, 바다 근처의'라는 뜻을 갖고 있으니 이에 딱 어울리는 설계라 하겠다.
▼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공사현장이 나온다. 'The Blue Hill'이라는 호텔을 짓고 있는 모양인데 자금이라도 떨어졌는지 공사는 멈추어져 있었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8분 만에 ‘중광정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이 해변은 원래 군사보호지역이었다. 민간의 출입이 금지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다가 '서피비치'를 통해 개방되었다고 한다. 40년이나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았으니 청정자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피서객들의 입소문을 가장 많이 타고 있는 것은 단연 ‘조개잡이’다. 조개가 지천으로 깔려있어 걸어 다니다가 발에 딱딱한 게 느껴지면 영락없이 조개란다. 참고로 이곳 ‘중광정’의 원래 이름은 ’광정진‘이었다. 지금의 중광정리와 본동 경계지인 잣골 뒷산 능선에 고대에 여진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광정진‘을 설치하였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지금도 진을 쌓았던 석축의 흔적이 남아있단다. 아무튼 광성진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상광정과 중광정, 그리고 하광정으로 분할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중광정해수욕장’은 2015년에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서피 비치(Surfyy Beach)’이다. 서퍼만을 위한 프라이빗 해변이라는 얘기이다. 덕분에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과 충돌 없이 온전히 서핑에 집중할 수 있는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알려져 있다. 그래선지 동해의 파란 바닷물과 하얀 모래, 그리고 이국적인 시설물들로 꾸며진 해변에는 2030 서퍼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 탐방로는 중광정해수욕장 앞에서 바닷가를 벗어난다. 그리고는‘ 동해안종주 자전거길’을 따른다. 이후로도 탐방로는 ‘동해안 자전거길’을 대부분 공유한다. 정확히 일치한다는 누군가의 귀띔도 있었지만. 실제로 걸어보니 비록 잠깐이지만 헤어지는 곳도 만날 수 있었다.
▼ 모퉁이를 돌자 ‘자전거휴게소’가 나온다. 자전거 마니아들을 위한 휴게소인데 주요 메뉴로 칼국수와 장칼국수, 잔치국수를 내밀고 있었다. 음료로는 커피와 팥빙수를 판단다. 그런데 메뉴판에 적힌 ‘감자전’의 정체가 의문이다. 내 상식으로는 분명 술안주였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음주자전거 금지법’을 시행해 온 나라들이 많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도로교통법에 자전거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어 이를 규제하고 있기에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자전거 마니아들을 위한 쉼터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담벼락에 자전거를 매달아 놓았다. 그런데 이 흔하디흔한 자전거 하나가 오묘한 풍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숫제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인 것이다.
▼ 탐방로는 7번 국도를 왼편 옆구리에 끼고 이어진다. 하지만 탐방로의 지대가 낮은 탓에 국도의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른편이라고 해서 별다른 풍경이 있을 리가 없다. 그저 곧게 뚫린 시멘트포장도로를 맥없이 걸을 따름이다.
▼ 그렇게 15분 조금 못되게 걸었을까 길이 둘로 나뉜다. ‘동해안 자전거길’은 곧장 직진하는데 해파랑길은 오른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길이 다시 합쳐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그냥 ‘자전거길’을 따르면 되겠다. 해파랑길이 특별한 볼거리도 없는 구간을 에둘러서 내놓았기 때문이다.
▼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100m 남짓 되는 이 구간은 아무런 볼거리도 없다.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는 양양의 네이버블루 바다도 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저 야산을 따라 이어가는 빨강색 지붕들이 다가 아닐까 싶다. 아니, 눈요깃거리가 있기는 했다. ‘원숙한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에 걸맞게 꽃 몽우리를 활짝 연 석류나무가 길손을 맞고 있었다.
▼ 다시 돌아온 자전거길, 이번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속을 지난다. 그리곤 7번 국도의 진출입 램프(ramp)를 지났다싶으면 ‘일현미술관’까지 3.8㎞가 남았음을 알리는 입간판이 길손을 맞는다. 자전거길로 되돌아온 지 10분 되는 지점이자,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愚)를 범해서는 결코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입간판에 50m정도만 더 걸으면 오른편으로 갈림길이 하나 나뉘는데 그 안쪽에 ‘염개호’라는 석호(潟湖)가 있기 때문이다. 들머리에 ‘4(상운) 소초’라고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으니 참조한다.
▼ 도로에서 70~80m쯤 떨어진 곳에서 만난 ‘염개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데크로드 등 방문자를 위한 편의시설도 일절 없다. 그러니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그저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만이 아늑하고 한적함으로 가득한 풍경화에서 만나는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참고로 이곳에는 옛날 넓은 버덩(좀 높고 평평하며 나무는 없이 풀만 우거진 거친 들)에 큰 염전터가 있었다고 한다. 그 옆에 석호가 있다고 해서 ‘염개호’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 석호인 염개호의 자랑거리는 갈대밭이다. 석호 맞은편으로 펼쳐지는 널따란 갈대밭에서 한류 붐의 도화선이 된 KBS 드라마 ‘가을동화’가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송승헌과 원빈, 송혜교, 문근영 등이 출연한 이 드라마는 친남매처럼 자란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이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해, 방영 당시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송혜교는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 탐방로로 되돌아와 조금 더 걷자 ‘여운포리(如雲浦里)’의 마을표지석(이정표 : 동호리 1.4㎞/ 하조대 4.3㎞)이 나타난다. 하조대에서 북쪽으로 3㎞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여운포리는 푸른 동해의 파도를 마주하는 곳이다. 누가 뭐래도 이 마을은 조금 전에 둘러봤던 석호와 갈대밭이 자랑거리이다. 그 자랑거리가 가을이면 한층 더 멋을 부린단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갈대의 평원이 가을의 냄새가 짙어지면 어제와는 다른 색깔로 물결처럼 일렁인다는 것이다. 거기다 갈대밭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데, 이게 다른 지역의 갈대밭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단다.
▼ 마을 표지석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버스정류소(여운포리 종점)에서 탐방로는 우측 마을길로 들어선다. 그리고는 여운포리를 꿰뚫고 지나간다. 여운포리는 알록달록한 벽화로 꾸며진 담벼락이 예쁜 마을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무 울타리로 둘러쳐진 담벼락에는 넝쿨장미가 활짝 피어났다. 길가도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를 심어 구색을 맞추었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마을이다.
▼ 여운포리 이후부터는 ‘선사유적로’라는 2차선 도로를 따른다. 옛 7번 국도가 아닐까 싶다. 이 구간은 ‘여운포교’와 상운천(祥雲川)을 가로지르는 ‘동호교’를 건너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탐방로가 따로 나있지 않다는 것이 더 눈에 띄는 특징이라 하겠다. 기존의 도로가 좁은 때문이겠지만 심심찮게 오가는 차량의 속도가 제법 빠르므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 오가는 차량을 피해가며 걷기를 25분, ‘동호다리’를 지나면서 우린 졸여오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이후부터는 별도의 탐방로(자전거길)가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고마운 자전거길을 따라 8분쯤 이어지던 탐방로가 도로와 헤어지잔다. 그리곤 오른편으로 난 샛길로 들어선다. '마이비치 250m', ‘보노 펜션’, ‘중앙대학교 동호리실습장’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갈림길이다.
▼ 6~7분쯤 들어갔을까 울창한 소나무 숲속을 통과하자 파도소리가 들리고 드넓은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양양을 대표하는 해수욕장 가운데 하나인 동호해변(銅湖海邊)이다. 동호리(손양면)의 1반에서부터 2반, 3반까지 연결되어 있는 이 해수욕장은 백사장의 길이가 500m나 된다고 한다. 강원도에 위치한 해수욕장치고는 꽤 크다고 하겠다. 아래 사진은 동호해변의 상징 조형물이다. 예로부터 이곳에서 많이 잡히는 멸치를 역동적으로 비상하는 형태로 형상화 한 작품으로, 하단 기단부는 파도의 역동성을 의미하며 물결 부위의 구는 청정한 바닷속을 뜻하고, 구조체가 겹겹이 포개져 있는 것은 멸치의 풍족한 수확을 의미한단다.
▼ 한눈에 보기에도 백사장이 넓고 모래가 곱다. 낙산과 하조대 해수욕장 중간쯤에 자리한 동호 해수욕장은 마을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데 물이 얕고 바닥도 완만해 가족단위 피서를 즐기기에 좋다고 한다. 또 하나, 이곳은 조개가 많기로 소문났다. 물놀이를 하면서 조개잡이까지 즐길 수 있다는 얘기이다. 특히 40명 이상이 함께 신청할 경우에는 이 지역에서 조상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멸치 후리기’ 체험까지 할 수 있단다. 참여 인원 모두가 함께 그물을 잡아당기고 그물에 든 고기를 다함께 잡는 전통 어로(漁撈) 기법이다. 참! 동해안의 수심은 파도가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때로는 수심이 깊기도 하고 때로는 앝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로 7월 중순경부터 8월 말까지는 대체로 수심이 얕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양양은 요즘 ‘서핑’이란 단어로 대변된다. 이곳 동호해변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길고 긴 해안에 더해진 고르고 세찬 파도가 우리나라 서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그 파도를 향해 거침없는 패들링(Paddling)을 멈추지 않는 젊은이들은 이 작은 마을을 서퍼들의 자유로운 세상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 돔 형태의 캠핑장이 있는 '트리플 펜션 & 글램핑장'을 지나 해수욕장 입구 쪽으로 가는 도중 특이한 외형의 샤워장(화장실 겸용)이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중세 성당의 첨탑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등대를 쏙 빼다 닮았다.
▼ 해수욕장의 입구에는 특수 기법을 사용한 모래조각 작품인 '클라리넷과 플루트를 연주하는 소녀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 동호해변을 지나면 탐방로는 또 다시 ‘4차선 도로(선사유적로)’로 올라선다. 함께 공유하고 있는 ‘자전거길’이 도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있기 때문이다. 이런 길은 수산항 입구까지 계속된다.
▼ 길가에는 자전거 마니아들을 위한 쉼터도 만들어져 있었다. 대여섯 평쯤 되는 공간에 파고라(pergola의 일본식 발음)를 설치하고 벤치 두어 개를 놓아 쉬어가기 딱 좋게 만들었다. 그 옆에는 공중전화박스 모양의 무인인증센터(스탬프보관함)도 배치했다. 나 같은 해파랑길 종주꾼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시설들이다. 참고로 해파랑길과 공유하는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은 통일전망대부터 고포마을까지 총 242km의 종주노선이라고 한다. 동해안의 해안 절경과 함께 이어갈 수 있어 해파랑길 여행자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코스이지만, 걸을 때 자전거와 충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 고개 하나를 넘자 진행방향 저 멀리에 또 다른 고개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가팔라 보여 조금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그다지 높지 않은 고개인데다, 자전거길 답게 경사까지 완만해서 큰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었다. 그보다는 고개에 오르기 전 오른편으로 펼쳐지는 파란 동해바다가 더 눈길을 끄는 구간이었다. 참! 이 구간에서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적힌 커다란 빗돌을 만나기도 했다. 옛 사람들처럼 선돌을 세워 두 마을(동호리와 도화리)의 경계를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다.
▼ 한가로움은 강태공만의 것이 아닌 모양이다. 아이들이 백사장에 앉아 무엇인가 하고 있다. 그 뒤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그들을 덮칠 기세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 이번 구간에는 ‘홍합장칼국수’라는 간판이 유난히도 많이 보였다. 멸치나 다양한 해산물로 맛을 낸 국물에 비법 장으로 얼큰한 맛을 더한 음식을 ‘장칼국수’라고 부르는데, 사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장칼국수는 강원도가 ‘원조’다. 특히 이곳 양양지역에서는 홍합으로 맛을 내 살짝 짬뽕을 닮은 듯한, 그러나 깊은 장맛이 오래 기억에 남는 홍합장칼국수가 별미로 사랑받는다고 한다.
▼ 도로로 올라선지 30분, 도로가에 세워진 ‘수산항’ 표지석이 길손을 맞는다. 해파랑길은 이곳에서 수산항이 있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곤 포구를 통과한 다음 반대편 골목을 통해 옛 국도와 다시 만난다.
▼ 오른편을 방향을 들어 200m쯤 들어갔을까 양양을 대표하는 마리나항(marina)인 ‘수산항’에 닿는다. 마리나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클럽하우스’라는 격식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래선지 몰라도 이미 많은 요트 마니아들이 이곳에 자신의 요트를 정박해 놓고 세일링(sailing)을 즐긴다고 한다. 참고로 수산항의 옛 이름은 ‘수무(水舞)’였다. 낙산사에서 수산굴 암자를 바라보면 흡사 파도가 춤추는 것 같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지금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곳이라 해서 수산(水山)이라 불리고 있다.
▼ 수산항은 가자미 배낚시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단순히 낚시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 긴 방파제와 등대가 매우 아름다운 항구이기도 하다. 특히 양양에서 일출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니 기억해두자. 또 하나, 출발지인 하조대를 제외하면 해파랑길 43코스에서 유일하게 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 역시 이곳에서 물회를 안주삼아 소주 한 병을 비웠다.
▼ 수산항의 방파제도 꼭 둘러봐야할 곳 가운데 하나이다. 하얀 등대가 한껏 격조를 높이고 있는 이 방파제의 주인은 낚시꾼들이다. 우럭과 노래미를 잡으려는 낚시꾼들이 전국에서 몰려온단다. 하지만 나는 병 모양의 조형물에 눈길이 더 갔다. 하단에는 ’언젠가 플라스틱은 바다를 삼킬 거예요‘라는 문구와 함께 ’Do not use Plastic’라고 적었다. 낚시꾼들부터 플라스틱을 남용하지 말자는 캠페인용으로 설치했나 보다.
▼ 방파제로 나가면 수산항의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에, 어떤 것은 꽤 오래전에 만들어진 듯 고풍스럽기까지 한 수십 척의 요트들이 빼곡하게 정박되어 있는 것이다. 유럽 휴양지, 그것도 유명 휴양지의 항구에서나 마주할 법한 풍경이 양양에서 펼쳐지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고로 수산항 요트마리나에는 현재 35t급 56척과 55t급 4척 등 총 60척의 요트를 정박할 수 있는 192m의 폰툰을 비롯해 20여 척의 요트를 계류할 수 있는 육상 부두가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 방파제를 가운데에 두고 마리나항의 반대편 바닷가에는 동해를 쳐다보는 두꺼비 형상의 아름다운 바위 하나가 솟아올랐다. 이름 또한 ‘두꺼비 바위’인데, 이 바위를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참! 이곳 수산항에는 ‘봉수대’라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고 했다. 그런 게 있는 줄조차 몰랐던 나는 나중에야 이를 알고 아쉬워했지만 이를 보려고 찾아간 이들의 말에 의하면 군부대가 출입을 막고 있다고 했다.
▼ 마을안길을 빠져나오면 아까 수산항으로 들어가면서 헤어졌던 ’4차선 도로‘를 다시 만나는데 이곳에도 역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수산항‘이라고 적혀있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수산리‘라고 적어놓았다. 이곳에서 한 정거장만 더 가면 해파랑길 43코스가 종료되는 ‘손양 문화마을‘ 입구이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마을입구 ’버스정류장‘에 설치되어 있다.
▼ 핸드폰의 앱은 오늘 12.14㎞를 걸었다고 알려준다. 해파랑길의 조성 및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사)한국의 길과 문화‘에서 공시한 거리(9.4㎞)보다 2.5㎞를 더 걸었다. 볼거리를 찾아 그만큼 더 들락거렸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산악회 운영진이 조금 더 걷자고 한다. 500m쯤 더 진행하면 ’쏠비치 리조트(아래 사진의 건물)‘를 만나게 되는데 마침맞게 볼거리들로 넘친다는 것이다.
▼ 1㎞쯤 더 걸었을까 ’쏠비치 리조트‘ 입구가 나온다. 맞은편에 보이는 너른 공터는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의 주차장이다. 더 이상의 기록은 무의미할 것 같아 핸드폰의 앱은 이쯤에서 끄기로 했다. 그러니 리조트 안을 둘러보면서 누렸던 호사는 덤이라 할 수 있겠다.
▼ 2007년에 문을 연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은 돌톱, 흑요석, 토기류 등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인근 지역에서 출토된 토기와 석기, 그물추(어망추) 등이 전시되어 있는 실내전시관은 물론이고, 야외전시실에는 움집을 복원해 놓았다. 참고로 ’오산리선사유적(사적394호)‘는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BC. 6000년)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 가운데 한 곳이다. ’쌍호‘라고 불리는 호숫가 모래언덕 위에 위치하는데 1977년 농경지로 사용하기 위해 모래언덕을 파서 이 호수를 매립하던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1981년 이후 6차례의 발굴 작업을 거쳐 14기의 원형집터와 소활석 및 돌무지 유구, 다량의 석기와 토기를 발굴했다. 특히 흙으로 만든 인면상은 신석기 시대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상징한 예술품으로 희귀한 예로 일컬어진다.
▼ ’양양 쏠비치 리조트‘는 스페인풍의 고급 리조트다. 붉은 지붕을 활용한 화려한 색감을 통해 마치 스페인에 온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콘도 219실과 호텔 224실 등 총 443개의 객실은 크게 동해가 발아래에 펼쳐지는 ‘오션 뷰’와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마운틴 뷰’로 나눠진다고 한다. 부대시설로는 온천수를 활용한 스파 테라피와 아쿠아 월드·테마 레스토랑·로비 라운지·맥주 바·휘트니스 센터 등이 있다. 로비에서 무료 음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가 하면, 호텔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프라이빗 해변도 보유하고 있단다. 올 봄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머물렀던 후르가다(Hurghada)의 ‘Desert rose’라는 리조트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설이라 하겠다. 홍해의 바닷가에 들어선 5성급의 리조트였는데 고품격의 시설들은 차지하고라도, 10불이 채 되지 않은 추가요금으로 1박2일 동안 무제한으로 술과 안주를 제공받았던 게 기억에 새롭다.
▼ 바닷가 방향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고 돛단배를 띄워놓았다. 인생샷을 건져보겠다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는 조형물로 쏠비치 양양의 시그니처(signature)라 할 수 있겠다.
▼ 바닷가 쪽으로 나가니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닷가를 향해 담장형의 벤치를 만들었는데 깨진 사기그릇의 파편들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것이다. 맞다. 5년 전에 들렀던 바르셀로나(스페인)의 ’구엘공원(Park Güell)‘에서도 저와 똑 같은 벤치를 만났었다. 바르셀로나는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와 그의 후원자였던 에우세비 구엘(Eusebi Güell Bacigalupi)이 연상되는 도시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구엘의 부탁으로 만든 주택단지가 현재 ’구엘공원‘으로 변해있는데 공원의 가장 뛰어난 볼거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광장의 테라스를 둘러싸고 있는 타일과 유리장식의 벤치이다. ‘까탈루나 스타일’이기도 한 트랜카디스기법(Trencadis : 타일과 유리, 거울 등을 깨서 모자이크화)으로 분류된다지만 예술에 문외한인 내 눈에는 그저 동화적이며 환상적이라는 느낌만 가득했었다.
▼ 바닷가로 나가는데 난데없는 영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주, 그러니까 지난 6월10일에 개봉된 ‘결백’이란 영화의 포스터가 곳곳에 걸려 있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배종옥)가 살인범으로 몰리자 변호사인 딸(신혜선)이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줄거리로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몇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내 짐작은 허망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조금 더 내려가니 바닷가에 ‘선셋 시네마(Sunset Cinema)`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참! 리조트에서 객실과 선셋 시네마(2인), 스낵박스로 구성된 `로맨틱 시네마 패키지`를 12만4000원에 판매한다니 한번쯤 이용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파도소리와 함께 수평선 너머로 물드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어디 그리 흔한 일이겠는가.
▼ 리조트 앞의 바닷가는 전용 카바나(cabana, 주 건물에서 분리되어 수영장, 해수욕장, 야영장 따위에 있는 객실)를 이용하는 고객들만 즐길 수 있는 공간인 ’프라이빗 비치‘라고 한다. 저곳은 카바나와 선베드, 비치바 등의 시설로 꾸며지는데 해외 휴양지의 비치클럽과 같은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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