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1코스

 

여행일 : ‘20. 5. 16()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과 양양군 현남면 일원

여행코스 : 주문진해변(3.8)지경해변(2.9)남애항(3.9)광진해변(1.6)죽도정입구(소요시간 : 12.2, 실제는 14.5/ 3시간 50)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강릉의 주문진해변에서 시작해 향호해변과 기경해변, 원포해변, 남애해변, 인구해변을 거친 다음 양양의 죽도해변에서 끝을 맺는 12.2의 구간으로 서핑의 명소로 소문난 여러 해수욕장들과 기암괴석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바닷가 그리고 두 개의 석호(潟湖)를 감상하며 걷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단조롭게 걷기만 하는 길이 아니라 푸른 바다와 함께 기기묘묘한 바위, 미항(美港)과 해변, 암자(庵子)와 해송(海松) 등이 함께한다는 얘기이다. 특히 기암괴석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남애항의 스카이전망대휴휴암‘, ’죽도산은 꼭 들러봐야 할 명소이다. 거기다 마침 거리까지 짧으니 느릿느릿 걸으며 사색을 즐길 수 있다는 또 다른 장점도 갖고 있다.

 

들머리는 주문진 해변(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 8-43)

동해고속도로(속초-삼척) 남양양 IC에서 내려와 강릉방면 7번 국도를 탄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주문진삼거리(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에서 빠져나와 바닷가로 향하면 곧이어 주문진해변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해파랑길의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주차장과 해변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다. 해파랑길 40코스와 41코스의 경계지점인 주문진해변은 소돌 마을에서 향호리까지 약 1km의 백사장을 따라 형성된 해수욕장이다. 해변은 경사가 완만한데다 수심도 1m 내외일 정도로 얕다. 거기다 바닷물이 맑아 물속으로 보이는 조개까지 잡을 수 있다니 가족단위의 피서지로는 이만한 곳도 없을 듯 싶다.

 

 

 

해변에는 사진 찍기 딱 좋은 조형물들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하트 모양의 흔들의자는 그 가운데서도 단연 인기다. 쌍쌍의 연인들이 흔들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셀카를 찍는 모습이 여간 사랑스럽지 않은데 이를 놓칠 집사람이 아니다. 냉큼 흔들의자에 앉더니 포즈부터 취하고 본다.

 

 

주문진해수욕장을 오른편에 끼고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2~3분쯤 걸었을까 강릉양양서핑스팟이 나오는데, 건물 전면에 ‘2019 주문진 서핑 페스티벌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곳 주문진해변도 역시 서핑의 명소라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작년 여름엔가 이곳에서 서핑 페스티벌이 열렸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기사는 서핑 동호인들을 위한 대회와 입문자와 아마추어를 위한 롱보드 경연 대회, 초보자 서핑 강습, 보드를 팔로 저어 반환점을 돌아오는 패들 경기등의 경기와 함께, 미니콘서트 형식의 무대공연, 지역 특산물인 오징어와 함께하는 오맥’, ‘치맥등의 참여형 맥주 무료 시음행사도 진행됐다고 전했었다.

 

 

주문진 바다와의 이별은 방탄소년단(BTS)’이 대신 해준다. 주문진해변의 가장 북쪽, 그러니까 향호해변과 맞닿은 2차선 도로에 바다를 등진 버스정류장이 하나 서있다. 버스는 다니지 않는다. BTS2017년 발표한 ‘You never walk alone’ 앨범 재킷을 찍기 위해 세운 시설이라고 한다. 촬영이 끝난 후 철거했다가 BTS의 인기에 편승해 강릉시에서 다시 세웠단다. 방탄소년단의 체취를 찾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음은 물론이다. 강릉시에는 이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인생샷 하나쯤 담아가라고 정류장의 정면에 대를 세웠는가 하면, 핸드폰의 렌즈를 맞출 수 있도록 작은 구멍까지 뚫어 놓았다.

 

 

해변이 끝나갈 즈음 탐방로는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향호에서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동해바다와 만나는 곳에 놓인 향호교를 만난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0분 만이다. ‘동해안자전거길은 이곳에서 다리를 건넌다. 하지만 탐방로는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향호로 향한다. 다리 앞에 세워놓은 강릉바우길 이정표을 참조하면 되겠다. 13구간인 향호 바람의 길을 따르면 된다는 얘기이다. '강릉바우길의 하나인 '향호 바람의 길'‘12구간(주문진 가는 길)’‘13구간의 경계지점인 이곳에서 향호와 향호저수지를 거쳐 주문진 해변으로 돌아오는 15km 구간이다.

 

 

‘7번 국도아래로 난 굴다리를 통과하면 향호(香湖)가 나온다. 향호도 역시 파도가 물길을 막아 생긴 석호(潟湖)이다. 동해의 거친 파도가 모래를 밀어 올려 둑을 막아 자연스레 호수로 변했다. 이곳 향호에는 매향(埋香)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에 향골의 1000년 묵은 향나무 10주를 호수에 묻었는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향나무가 묻힌 곳에서 빛이 비쳐졌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시인 안숭검이 지은 산수비기(山水秘記)’에 전해오는 유래다. 하지만 매향의 풍속은 고을 수령들이 향도 집단과 함께 태백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계류와 동해안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향나무를 묻고 미륵보살이 다시 태어날 때 이 침향으로 공양을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일종의 토속 신앙임을 기억해 두자. 그나저나 향호는 강릉 도심에서 멀리 벗어난 탓에 경포호처럼 관광객들을 끌어들일만한 볼거리는 갖고 있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실망부터 하지는 말자. 호수 주변에 형성된 수만 평의 갈대숲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데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을이면 황금빛 물결에 빠져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해파랑길의 탐방로는 호수를 한 바퀴 돌도록 나있다. ‘데크 로드(deck road)’를 놓아 호수의 명물인 갈대숲 사이를 오가게 했는가 하면, 또 어떤 곳에서는 물길을 건너기도 한다. 하지만 강릉 바우길은 호수를 벗어나 저수지 안쪽으로 들어간다. 마을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이 시골길 또한 일품이라는데 시간이 부족해 실지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평화롭고 아늑한 별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5, 호수를 건너 향호삼거리에 이르자 소나무 숲속에 들어앉은 취적정(取適亭)’이 손짓한다. 옛날에는 강정(江亭)과 향호정(香湖亭) 등의 정자가 있었다지만 지금은 취적정만 남아있다는데 조선 숙종 때 인물인 이영부(李永敷)가 낙향한 다음 음풍농월(吟風弄月)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취적정이란 이름은 지은이의 호에서 따왔다. 지금의 정자는 2007년 향호를 정비하면서 다시 지은 것이란다. 정자 옆에는 향기체험관이 첨언된 향호리 마을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무슨 향기를 말하는 것일까? 매향(埋香)의 전설이 잠겨 있다는 향호를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후로도 탐방로는 향호의 호숫가를 따른다. 강태공들의 뜰망을 기웃거리며 걷다보면 아스팔트도로가 나오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7번 국도가 길손을 맞는다. 향호삼거리에서 10분쯤 되는 지점인데 강릉을 왕복하는 시내버스의 차고지(車庫地)이니 참조한다.

 

 

탐방로는 이곳에서 국도의 갓길을 따른다. 하지만 해파랑길의 표식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래도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국도를 따라야 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스치듯 지나가는 차량들에 몸 사리며 걷다보니 도로변에 돌탑 몇 기와 장승이 세워져 있다. 도로 건너편에는 양양에 오심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빗돌도 보인다. 이제 양양군에 들어섰다는 얘기일 것이다.

 

 

국도 갓길을 따라 200m쯤 걸었을까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가 나온다. 이를 건너면 지경리 노인회관, 이어서 지경해변이 나온다. 하지만 지경해변은 군()의 경계지역이라며 철망으로 울타리를 쳐놓았다. 그렇다고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중간에 샛문을 만들어두었는가 하면 시간을 정해 문을 개방하고 있다. 해수욕장 개장시간도 따로 정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 이 울타리가 제거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해안도로 건너편에 길게 가림막을 쳐놓고 지경 관광지를 조성하고 있는데, 157699의 부지에 관광호텔과 프리미엄 아웃렛, 향토음식점, 수변공간 등이 들어설 예정이란다. 휴양과 쇼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 해양관광지로 조성하려는 모양이다.

 

 

 

지경해변에 이른지 15, ‘화장1를 건너자 왼편에 화상정이라는 정자가 지어져 있다. 정자 앞에는 기묘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우뚝 서있다. 그럴 듯한 옛 이야기 하나를 품은 화상암(和尙岩)'이다. 먼 옛날, 어느 노() 스님이 이곳을 지나가는데 동자 셋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명의 동자는 조그마한 웅덩이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다 잡은 물고기를 넣는데 반해, 나머지 한 동자는 고기를 잡아서는 계속 방생을 하더란다. 동자의 불심(佛心)에 감탄한 스님이 다가가 합장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니 그 동자는 사라지고 그 앞에 화상(和尙)을 쏙 빼다 닮은 큰 바위가 솟아올랐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요모조모 뜯어봐도 화상이 그려지지 않으니 문제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무학대사의 말대로 아직도 내 수양은 짧기만 한 모양이다.

 

 

화상암을 지나면 원포해변이 시작된다. 파도에 시달리고 있는 큼직한 갯바위 하나를 빼면 눈에 담을 것이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해변이다. 아니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해수욕장의 입지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다고 봐야겠다. 탁 트인 바다와 깨끗하고 맑은 물도 장점이라 하겠다. 하긴 원포리 앞바다에서 끌어올린 해양심층수를 좋은 물이라는 브랜드로 시판까지 하고 있다니 이를 말이겠는가.

 

 

원포해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Marine resort’였다. 건물 앞에 전시해놓은 해양스포츠 의상을 입힌 마네킹과 물놀이 기구들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간판을 보면 아쿠아 갤러리스쿠버다이빙교습도 함께하고 있는 모양이다.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홍보문구 옆에는 ‘harley-davidson station’이라는 글귀도 적혀있다. 오토바이 동호인들을 위한 시설일까?

 

 

원포해변을 지나면 길은 갈고리처럼 호를 그리며 휘어져 남애리로 접어든다. 이어서 두어 개의 포토죤을 기웃거리다보면 탐방로는 어느새 기암괴석들이 널린 갯바위 지대에 이른다. 기기묘묘한 형상에 이끌려 갯바위에 올라보니 북쪽으로는 강원도의 베네치아라고 불릴 만큼 주변 경관이 빼어난 남애항이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남애1, 원포리와 지경리의 긴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남애항을 바라보며 걷는다. 오른편 바다는 기암괴석의 전시장이다. 갯바위들이 널리 흩어져 장관을 이루는데 그 하나하나의 형태가 자못 기이하고 웅장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참고로 이곳의 지명인 남애는 원래 낙매였다고 한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려서 마을로 떨어진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현재 지명인 남애남쪽바다라는 뜻이란다.

 

 

남애마을로 들어서 회관을 지나면 해파랑길은 90도로 꺾이며 양양군에서 가장 큰 항구인 남애항(南涯港)’으로 들어선다. 남애항은 삼척의 초곡항, 강릉의 심곡항과 더불어 강원도의 3대 미항으로 손꼽힌다. 남애리 항구를 중심으로 4개 포구 마을이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고, 방파제로 연결된 두 개의 섬에 각각 빨간색과 하얀색 등대가 쌍둥이처럼 서 있다. 화상암에서 이곳까지는 23, 트레킹을 시작한지는 1시간 25분이 지났다.

 

 

일렬로 길게 늘어선 활어회센터를 지나면 남애항 방파제와 마주한다. 방파제 초입의 '남애 스킨스쿠버 교육센터'에는 1980년대 영화 고래사냥의 촬영지였음을 기념이라도 하려는 듯 고래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남애항의 명물인 바다전망대는 카페 뒤편에 있는 바위 언덕에 지어져 있다. 이 전망대는 해파랑길 탐방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한다. 군부대 초소가 있던 자리에 지어 1층은 옛 기능대로 군부대 초소로 사용하고, 2층에 전망대를 만들어 탐방객들에게 주변 경관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전망대의 하이라이트인 스카이워크는 2층에 배치되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3층에 오르면 남애항과 망망대해, 그리고 푸른 하늘이 품속으로 안겨온다. 전망대는 일출의 명소로도 소문나있다. 동해시의 추암(湫岩)과 함께 동해안 최고의 일출명소로 꼽힌다. 특히 그림 같은 해변과 아담한 항구를 붉게 물들이며 타오르는 해돋이는 가히 장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시 후 또 작은 바위섬을 만난다.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도록 예쁘장한 다리까지 놓았다. 하지만 금줄을 쳐놓아 섬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방파제 벽면에 양양팔경을 모자이크 사진으로 게시해 놓았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참고로 양양팔경은 양양 남대천과 대청봉, 오색령(한계령), 오색주전골, 하조대, 죽도정, 남애항, ‘낙산사 의상대를 말한다. 해파랑길은 이 가운데 설악산에 있는 세 곳의 경승을 빼놓고는 다 들르게 된다.

 

 

섬에 들어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다 기암 하나를 발견했다. 갯바위를 타고 오르는 거북이의 형상을 쏙 빼다 닮았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이번엔 남애3리 해변이 길손을 맞는다. 길이 1.3km에 폭이 100m인 모래사장을 끼고 있는데, 서핑 삼매경에 빠진 마니아들이 여럿 보인다.

 

 

해수욕장 옆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처녀횟집 앞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이 길은 곧이어 대형 아치문을 통해 ‘7번 국도로 연결되지만 탐방로는 국도 조금 못미처에서 오른편으로 경로를 바꾼다.

 

 

잠시 후 남애초등학교가 나온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바닷가를 끼고 있는 것이 자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잡았다.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광경원(光京院)’이라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름을 가진 펜션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까지 빛난다는 뜻을 지녔다는데, 하단에는 ‘Art pension’이라는 부제까지 달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독립출판물부터 메이저 출판사의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한 서적을 빌려볼 수 있는 도서관(library)을 부대시설로 둔 멋진 숙박시설로 나와 있었다. 와이너리(winery)에서는 유명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맛볼 수 있는 와인도 판매한단다. 카페 모양으로 치장해놓은 노란색 버스도 눈길을 끌었다.

 

 

탐방로는 바닷가로 되돌아간다. 그리곤 갯마을해변을 스치듯이 지나더니 또 다시 국도로 올라선다. 그리고 이번에는 포매교를 건넌다. 이때 국도 너머로 백두대간의 준령과 함께 또 다른 석호인 매호(梅湖)’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이 길은 호수와 바다를 가르는 경계, 즉 물길의 흐름과 풍랑을 만나며 쌓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쌓아올린 모래언덕 위로 내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국도를 따르다가 현남중학교 조금 못미처에서 바닷가로 내려서면 광남해변이다. 수심이 얕고 바닷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고 알려졌지만 이곳도 철망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시간을 정해 해수욕장을 개방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참고로 이곳은 멍비치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반려견과 함께 자유로운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애견 전용해수욕장이기 때문이다. 300m의 해안 가운데 150m를 애견 전용구역으로 차단하여 일반 관광객과는 분리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단다.

 

 

해변이 끝나는 곳에서 굴다리를 통해 국도 쪽으로 빠져나온다. 이어서 국도를 왼편에 끼고 잠시 걸으면 지중해풍의 펜션인 마이 대니(my danny)’가 나오는데 현판에 덧붙인 'VANG·HA·CHAK'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의미를 몰라 끙끙거리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손을 내려 밑에 둔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방하착(放下着), 불교 선종에서 화두로 삼는 용어라는 것이다. 마음속에 한 생각도 지니지 말고 텅 빈 허공처럼 내려놓으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만큼 완전히 내려놓는 경지에 이르면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단다. 이는 인간의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탐욕을 버림으로써 무소유를 통한 인간의 자기회복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펜션에서 50m쯤 더 걸었을까 해파랑길은 오른편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르다가 휴휴암의 정문을 통해 암자로 들어갈 수 있지만 아스팔트길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어서 야산에 가까운 언덕을 넘자 휴휴암(休休庵)이 나온다. 눈에 들어온 암자는 전국의 여느 유명사찰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그 규모가 크다. 하지만 20년 전만해도 이곳은 '휴휴암(休休巖)'이라 불리던 누워있는 형상의 자연석 '해수관음불'을 보면서 잠시 쉬어가던 곳에 불과했단다. 그러다가 1999년에 절을 지었다는데, 일천한 역사에 비하면 절의 규모가 엄청나다 하겠다. 그만큼 영험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휴휴(休休)’는 미워하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 시기와 질투, 증오와 갈등까지 팔만 사천의 번뇌를 내려놓고 오직 그 마음을 쉬고 또 쉬라는 뜻이라 한다. 남애항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이 걸렸다.

 

 

 

휴휴암의 명물은 지혜관세음보살(智慧觀世音菩薩)’이다. 암자의 동쪽 끝자락에 모셔진 높이 33(좌대까지 포함한 높이 53)의 부처인데, 약병(藥甁)이나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게 보통인 다른 해수관음상과는 달리 이 보살상은 지혜를 상징하는 서책을 들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교화 대상인 중생에 맞게 몸체를 바꾸어가며 나타나는 33관음(三十三應身) 가운데 경전을 들고 있는 지경보살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라는데 이로 인해 많은 불자들이 학업성취를 소원하는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이젠 바닷가로 나가볼 차례이다. 부산의 해동용궁사를 떠오르게 하는 휴휴암의 볼거리는 암자 자체보다는 연화법당으로 사용되는 너럭바위와 부처가 누워 있는 듯한 형상의 와불바위, 거북바위, 발가락바위, 여의주 바위, 주먹바위 등 각양각색 바위들이다. 특히 바닷가에 평상처럼 펼쳐져 있는 너럭바위에 서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바위 주변의 바다 색깔은 떼를 지어 노니는 물고기로 까맣다. 이곳은 방생하는 장소로 관광객이 먹이를 주기 때문에 황어와 숭어, 광어 등 물고기들이 큰 바다로 나가지 않고 바위 주변에 머문다고 한다.

 

 

불이문(不二門)을 나서며 휴휴함과 이별을 고한다. 불이문은 절에 이르는 3문 중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으로, ‘진리(眞理)는 본래 하나라는 뜻으로 불이(不二)를 붙인다고 한다. 이 문을 통해야만 불교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에 이르기 때문에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부른단다.

 

 

휴휴암의 표지석이 세워진 입구로 나와 오른편으로 향한다. 이어서 마을안길을 통과하여 바닷가로 나간 다음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해송천(海松川)에 놓인 해송교다리를 건넌다. 곧이어 탐방로는 인구해변으로 들어선다. 인구해변은 모래가 유실되는 동해안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모래가 계속 누적된다고 한다. 그래선지 모래사장이 인근의 다른 해변들에 비해 유난히 넓었다. 수심도 얕아 아직은 바다가 두려운 초보 서퍼들에게 좋은 서핑 장소가 되어준단다. 특히 북동풍이 불어오더라도 앞에 위치한 죽도암이 바람을 막아주어 서핑하기 딱 좋은 파도가 만들어진단다.

 

 

바다에는 서핑(surfing)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보드 위에 서지를 못하고 엎드린 사람들 일색이다.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자들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서핑의 명소인 죽도해변으로 나가기 전에 기초훈련이라도 받고 있는 모양이다.

 

 

탐방로는 인구해변에서 죽도해변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바다 쪽으로 불쑥 나온 죽도를 한 바퀴 돈다. 이때 해안가 주차장에서 길이 둘로 나뉜다. 탐방로는 이곳에서 바닷가를 따라 내놓은 해안산책로를 따른다. 하지만 죽도전망대로 오르는 지름길이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왼편으로 나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그나저나 우리 일행은 해안산책로를 따르기로 했다. 산책로가 시작되는 주차장의 끄트머리에 이르니 죽도안내도와 함께 양양팔경을 소개하는 관광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해파랑길 41코스는 이 가운데 죽도정과 남애항을 지난다. 휴휴암에서 이곳까지는 30분이 조금 못 걸렸다.

 

 

산책로는 파도를 대비해서인지 철제구조물로 만들어져 있다. 바닥 철망 아래로 바다가 넘실거리는데, 파도라도 세게 몰아치면 물벼락을 맞을 것 같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바닷가에 널린 크고 작은 기암괴석들을 마주한다.

 

 

그 가운데서도 백미(白眉)는 단연 신선바위. 신선들이 놀았다는 널찍한 바위로 주변에는 연사대(煉砂臺), 선녀탕, 부채바위, 거북바위(龜容岩), 장수의 발자국, 장수의 소변자국, 바둑판 모형 등 기묘하게 생긴 많은 바위들이 널려있다. 안내판에는 선녀탕(仙女湯)과 부채바위에 대한 내력도 적어 놓았다. 신선바위 안쪽에 위치한 2개의 오목한 돌이 선녀탕이고, 신선바위를 향해 활짝 펼쳐진 바위가 부채바위란다. 하지만 산책로 정비공사가 한창이어서 선녀탕의 생김새를 눈에 담을 수는 없었다.

 

 

신선바위에서 탐방로는 둘로 나뉜다. 계속해서 해안산책로를 따를 경우 죽도암을 거쳐 죽도해변에 이르게 되고, ’양양팔경의 하나인 죽도정으로 가려면 죽도의 정상까지 올라가야만 한다. 죽도(竹島)는 인구리 해변에 있는 둘레 1km에 높이가 53m인 자그마한 산이다. 과거에는 섬이었으나 현재는 육계사주(육지로부터 돌출 성장하여 가까운 섬에 연결된 사주)에 의해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陸繫島)이다. 그건 그렇고 죽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탐방로 주변에는 장죽이 가득했다. 조선시대에는 조정에 진상했을 정도로 유명한 장죽이란다. 세찬 바닷바람에 시달리며 커온 손가락 굵기의 대나무가 아주 단단해서 싸움터용 화살인 전시(箭矢)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란다.

 

 

정상까지의 거리는 대략 150m, 경사가 있기는 하지만 계단이 놓여있어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바닷바람이 실어오는 솔향기와 서걱거리는 댓잎 소리를 친구삼아 나무계단을 잠시 오르자 쉼터가 마중한다. 탁 트인 푸른 바다와 인구해변, 휴휴암 등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는 쉼터다. 쉼터 벤치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을 눈과 마음속에 담아본다.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양양팔경의 여섯 번째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죽도정(竹島亭)’을 만났다. 19655월에 현남면 내 부호들이 주축이 되어 행정의 지원을 받아 세운 정자로 팔각집우 전면 3, 측면 2, 천정은 정자(井字)형으로 되어 있다. 죽도정의 장점은 시원스런 전망으로 알려져 있다. 양양 팔경에 선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수목에 가려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양양팔경의 여섯 번째 자리는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 같다.

 

 

죽도의 정상은 전망대가 차지했다. 4층 규모(높이 19.73m)의 철골구조물이 오르기도 전부터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죽도를 상징하는 대나무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20174월에 조성했단다.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가히 일품이다. 북쪽 죽도(시변리) 해변과 남쪽 인구 해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고,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모습도 있다. 또한 인구항 하얀등대와 빨간등대가 내려다보이는가 하면, 작은 항구의 아늑한 분위기가 여행자의 가슴을 따스하게 감싸준다.

 

 

신선바위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죽도암 방향의 해안산책로를 따른다. 이 구간도 역시 기암괴석들의 놀이터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 두부모처럼 잘려나간 바위 등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신기함을 자아낸다. 청허대(淸虛臺)와 동구암(弄鷗巖, 갈매기를 희롱하는 바위) 등 탐방로의 좌우에 새겨져 있다는 글씨들은 확인해보지 못했다. 이리도 경관이 아름다운데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기기묘묘한 바위들에 시선을 빼앗겨가며 잠시 걷자 바위벼랑 속을 파고든 죽도암이 길손을 맞는다. 관음전으로 올라가는 자연석 계단이 눈길을 끌지만 딱 거기까지다. 보수공사가 한창이어서 출입을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죽도암 모퉁이를 돌면 죽도해변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이어진 동산해면과 함께 서핑 동호인들이 파토타기를 즐기는 곳이다. 그래선지 바다는 서퍼들로 가득하다. 저 해변은 수심이 얕고 백사장의 모래가 고와서 1970~80년대만 해도 여름 피서지로 전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교통과 관광 인프라가 전국적으로 발달하면서 이곳을 찾던 인파는 다른 해안들로 자연스레 흩어졌다. 그러다가 이곳 양양이 서핑명소로 급부상하던 면서 6~7년 전부터 죽도해변에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단다. 수심이 얕고 파도가 적당해 서핑 입문자뿐만 아니라 중·상급자 모두 만족할만하기 때문이다. 서퍼뿐만 아니라 카페와 맛집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젊은이들도 늘어났단다. 이들을 위해서 양양군에서는 서퍼들을 위해 서핑 스파 라운지도 운영하고 있었다. 돔하우스 78m²와 스파시설 5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퍼들이 서핑을 마친 뒤 휴식을 취하는 휴게 공간으로 활용된단다.

 

 

 

트레킹 날머리는 죽도해변 입구(양양군 현남면 시변리 17-1)

해변을 따르다가 오토캠핑장에서 도로로 빠져나오자 두창시변리라고 적힌 거대한 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인구수가 유난히 적었던 세 마을인 두리창리’, ‘시변리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트레킹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표지석 건너편의 코너에 설치되어 있다. 오늘 트레킹은 총 3시간 50분이 걸렸다. 핸드폰의 앱에 찍힌 거리가 14.5이니 더디게 걸은 셈이다. 아니 휴휴암과 죽도 등 발걸음이 지체될만한 경승지가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