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0코스

 

여행일 : ‘20. 5. 2()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과 연곡면, 주문진읍 일원

여행코스 : 사천진해변(3.3km)하평해변솔향기캠핑장영진리 고분군연곡해변(5.7km)주문진항(3.4km)주문진등대소돌항주문진해변(소요시간 : 12.4, 실제는 14.34/ 3시간 50)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사천면 사천진리에서 시작되는 해파랑길 40코스바위길 12코스와 정확히 일치한다. 코스가 끝나는 곳이 주문진이라 해서 주문진 가는 길이란 별도의 이름이 붙었다. 이 구간은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동해안 바닷가 마을을 지나며 강릉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을 만나게 된다. 구체적으로 사천해변에서 영진교를 지나 주문진항, 주문진 등대, 소돌항을 지나면 종착지인 주문진 해변 주차장이 나타난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한국의 커피 성지라 불리는 영진 보헤미안을 지나 주문진 등대와 동해가 살아 펄떡이는 주문진시장을 지나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기에 딱 좋은 구간으로 꼽힌다.


 

들머리는 사천진 해변(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266-5)

동해고속도로(속초-삼척) 북강릉 IC에서 내려와 강릉방면 7번 국도를 탄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사천육교(강릉시 사천면 석교리 19-9)에서 빠져나온 다음 중앙동로를 따라 바닷가로 들어가면 사천항을 거쳐 사천진(뒷불) 해변에 이르게 된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해변 입구 소공원에 세워져 있다. 참고로 사천진항은 겨울철 양미리 잡이로 이름난 포구다. 해마다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잡는데, 잡힌 양미리를 그물째 포구로 가져와 선창에 펼쳐놓고 일일이 손으로 양미리 떼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니 사천진항의 파시(波市)는 겨울철이 된다. 때맞춰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다는 얘기이다.




사천진 해변의 자랑은 푸른 바다와 고운 모래뿐만이 아니다. 바닷가에 놓인 커다란 바위들이 다른 여느 해변보다도 빼어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교문암(蛟門岩)이라는 바위 무리로 옛날 바위 밑에 엎드려 있던 교룡(蛟龍, 이무기)이 떠나면서 바위가 깨져 문처럼 벌어졌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바위는 또 허균바위로도 불린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許筠)이 태어난 곳이 바로 사천의 교산(蛟山) 자락이다. 그래선지 자신의 호()교산(蛟山)’이라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교산이란 호는 그의 인생이 되어버렸다. 과거에 급제했으나 늘 꿈꿨던 이상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자신의 호처럼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되어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참고로 허균이 태어난 곳은 강릉 사천진리의 애일당(愛日堂)으로 허균 모친의 친정인 예조판서 김광철의 집이다. 동인의 우두머리이던 아버지 초당 허엽이 조강지처와 사별 후 김광철의 딸을 두 번째 부인으로 맞으면서 허균은 강릉과 인연을 맺었다. 누이인 허난설헌 역시 김씨 부인이 낳은 딸이다.



해변에는 조형물들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사천해변을 아라비아 숫자(4000해변)로 표현한 조형물과 초서체로 사랑이라고 쓴 조형물이 가장 눈길을 끈다. 하지만 사랑꾼인 집사람에겐 사랑만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 앞에 냉큼 앉아버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튼 이 조형물은 2017 해변 디자인 페스티벌 설치미술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으로 국어사랑에 대한 작가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걷자 또 다른 갯바위가 나온다. 이번에는 갯바위까지 아치형 시멘트 다리가 놓여 있다. 건너가면 바위 자락에 부딪치는 거센 파도와 물보라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뗏장바위(또는 물개바위)’이다. 지금은 비록 갯바위에 불과하지만 옛날엔 지금보다 훨씬 큰 바위섬이었다고 한다. 안에 소나무도 자라고 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방파제 건설에 이 섬의 바위를 캐다 썼고, 광복 뒤에도 채석이 이뤄지며 저렇게 규모가 작아졌다고 한다.



뗏장바위 부근에 남자친구의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2018년 말 tvN에서 방영했던 드라마로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여자(송혜교)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평범한 남자(박보검)를 대비시켜, 부와 명예를 버리는 게 어려운지 아니면 평범한 일상을 내놓는 게 어려운 일인지를 그린 드라마이다. 최고 시청률은 10.329%, 케이블 TV에서 방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기가 엄청나게 높았다고 하겠다.



해변의 갯바위들을 구경했으면 이젠 본격적인 트레킹을 나설 차례이다. 이 구간은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보행자 도로가 따로 없어 오가는 차량에 유의해가며 걸어야만 한다. 탐방로의 오른편은 길이 200m하평해변(荷坪海邊)’이다. 초당 허엽과 김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하곡(荷谷) 허봉(許篈, 허균의 형)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해서 그의 호에서 해변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0분 남짓, 하평해변을 빠져나오자 우레탄으로 바닥을 깐 보행로가 나온다. 해송 숲 사이로 난 기분 좋은 구간이지만 대신 동해안자전거길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오가는 자전거를 살펴가며 걸어야 한다. 안전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우리 일행을 피해가던 자전거가 넘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 구간을 걷다보면 특수전학교의 '해척조 훈련장(해상척후조의 줄임말)‘과 해양과학 교육원의 강릉 귀어학교', 그리고 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를 연이어 만나게 된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진행하자 소나무 숲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숲에는 백 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굵은 소나무들이 햇빛 한 점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그 숲속에는 강릉관광개발공사에서 운영하는 연곡 솔향기 캠핑장'이 들어서 있었다. 송림과 해양자원을 특화한 사계절 캠핑장으로, 깨끗한 백사장을 가진 연곡해수욕장과 시원한 솔숲을 자랑거리로 내세운다. 이른 아침 맞게 되는 동해의 멋진 일출은 덤으로 보면 되겠다.




캠핑장 관리사무소 앞으로 빠져나와 '동덕 2리 청년회' 컨테이너 박스 옆 공중전화박스에 붙어있는 '바우길' 표지를 따라 진행한다. 이어서 연곡천(連谷川)을 가로지르는 영진교를 건넌다. ’솔향기 캠핑장으로 들어선지 15분 만이다. 참고로 연곡천은 강릉시 연곡면과 평창군 진부면의 경계가 되는 진고개에서 발원하여 솔내(松川), 긴내(長川)를 지나 퇴곡리 용소골 앞에 이르러, 노인봉에서 발원하여 청학동 소금강에서 본류로 모여드는 물과 만나 동해로 흘러드는 총 길이 20.4km의 지방하천이다.



갈매기 떼들의 놀이터로 변한 모래톱을 구경하며 영진다리를 건너자 길이 둘로 나뉜다. 오른편은 영진항으로 가는 메인도로, 탐방로는 잠시 연곡천의 우안을 거슬러 올라간다. 100m쯤 걸었을까 이정표(마산 정상 833m)가 세워진 마산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하지만 사유지였던지 철망으로 입구를 막아놓았다. 그렇다고 돌아갈 선두대장은 아니다. 딴말 말고 따라오라는 듯 바닥에 방향표시지를 깔아놓았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해파랑길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진행하면 영진리 고분군(領津里 古墳群)’이라는 역사적 유적까지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다른 분의 것을 빌려왔다)과 같은 무덤들인데 해파랑길을 따르느라 들러보지 못했기에 다른 문헌을 참조해서 옮겨본다. 고분은 동해안을 바라보고 길게 뻗은 구릉지의 평탄한 능선부에 형성된 소나무 숲속에 분포되어 있다. 대형의 봉토 돌방무덤(封土石室墳) 여러 기()가 일렬로 분포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이미 도굴된 2기는 1981년에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입구로 보이는 남쪽 단벽을 제외한 3면의 벽체는 35×40크기의 납작하게 다듬은 화강암석을 사용하여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안쪽으로 기울게 쌓아 좁은 천장(天障)을 만들었으며, 2매의 큰 판돌(130×170)을 그 상부에 덮은 구조이다. 1990년대 이후 도로확장과 신축건물공사에 따른 구제 발굴조사가 방내리에서 13, 영진리에서 38기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 독무덤 등 다양한 형식의 무덤이 조사되었을 뿐 아니라, 능선을 따라 곳곳에 돌방무덤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조사되었다. 또한 긴목 항아리, 굽다리 접시 등 토기와 금동 귀걸이 등 유물 수백여 점이 출토되었다.



철망을 통과한 탐방로는 이내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속으로 파고든다. 하나 같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이 영락없는 금강송이다. 하늘 향해 뻗친 금강송 숲에 한 발 들여 놓자 이내 별처럼 힐링이 쏟아 내린다. 솔향과 함께 코끝을 스쳐가는 피톤치드의 영향일 것이다. 참고로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마디가 길며, 껍질이 유별나게 붉다. 또한 결이 곧고 단단해 굽지도 않고, 잘 썩지도 않아 예로부터 소나무 중 으뜸으로 사랑받았다.



솔향에 취해 걷길 15분 여, 빗돌 하나가 세워져 있다. 축성 연대와 내력을 알 수 없는 옛 토성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토성은 홍길목 우측 해변 쪽으로 동해를 향해 타원형으로 쌓은 듯하며 지금도 토성의 일부가 남아있단다. 신라시대 이후 바다로 들어오는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영진리 일대를 지키기 위한 향토수호성으로 짐작된다는 부언(附言)을 달았다.



마산을 내려와 영진항으로 향한다. 금강송 숲 사이로 난 좁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잠시 걷자 드라마 도깨비촬영지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영진해변과 마주친다. 횟집과 커피집 몇몇이 모여 있던 조용한 바닷가 마을은 드라마 열풍과 함께 강릉의 대표 해안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는 강릉을 커피의 고장으로 만든 일등공신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이 자리 잡았다. 그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아니 꼭 보헤미안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 어느 카페에 들어가더라도 강릉+바다+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와 나란히 걷다가 마음 가는 곳 어디든 쉬어가면 된다.



영진해변(領津海濱)은 주문진읍에서 남쪽으로 3정도 떨어져 있는 해변이다. 백사장의 길이는 600m, 규모는 크지 않지만 조용하고 깨끗해 동호인이나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바다 풍경도 빼어난 편이다. (홍합을 일컫는 강원도 지방의 방언)이 많다는 데서 유래한 섭바위와 검정바위 등 작은 갯바위들이 푸른 바다와 잘 어우러지고 있다.



영진해변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진행방향 저 멀리에 있는 주문진항이 걸음을 옮길수록 조금씩 더 가까워진다. 해안선을 따라 드넓고 완만하게 곡선을 그린 백사장이 주는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해변길 따라 다양한 카페가 들어서 있으니 강릉의 명물인 커피 한잔을 마셔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주문진항을 향해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주차된 차량들로 다소 혼잡한 곳이 나타난다. 소규모 방사제(防砂堤) 4개가 줄지어 있는 해안이다. 해변의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한 시설로, 제방에서 바다로 길쭉하게 설치한 20~30m 길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방사제마다 쌍쌍의 연인들이 걸어 들어가 셀카를 찍고 있다. 특히 오른쪽에서 두 번째 방파제는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사뭇 길다. 저곳은 tvN의 인기 드라마 도깨비(2017년 방영)’가 촬영되었던 곳이다. 드라마 이후 주인공 공유김고은처럼 포즈를 취해보는 연인들의 인증샷장소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신리천(新里川)’을 가로지르는 신리하교를 건너면 번잡하고도 활기 넘치는 대형 포구(浦口) 주문진에 닿는다. 영진항에서 이곳 신리하교까지는 50분이 걸렸다.



주문진항(注文津港)은 강원 해안지역의 해산물들이 대거 몰리는, 동해안에서 가장 큰 규모의 어항이다. 활어시장·건어물시장·대게센터 등 모든 종류의 해산물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다. 참고로 주문진항은 부산-원산 간 항로의 중간 기항지가 되면서 여객선과 화물선이 입항하기 시작하여 1927년 본격적인 개항장이 되었다. 강릉의 외항으로 동해안 유수의 어항이며, 속초항과 함께 한국전쟁 때 수복된 어항이기도 하다.



발걸음이 주문진항에 닿으니 지금껏 걸어온 한적함은 사라지고 북적이는 활기가 거리를 채운다. 거리는 온통 사람들로 넘치고 도로는 숫제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19’,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팬데믹(pandemic)으로까지 선언했건만 우리에겐 어느덧 남의 나라 얘기가 되어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우리 일행이 찾아가야 할 곳은 어시장이다. 횟집에 자리 잡는 대신 생선회를 떠가지고 가다가 갯바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먹을 요량이기 때문이다. 먼저 만난 곳은 주문진 수산시장이다. 결과적으로 우린 이 시장의 활어회센터에서 회를 샀다. 인기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어민 수산시장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소문만 듣고 그냥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온 셈이다.




주문진 수산시장을 그냥 지나치고 들른 곳은 어민 수산시장이다. 기분 좋은 호객소리와 고무 대야에서 튀어 나와 바닥을 활개치며 신선함을 자랑하는 가자미까지, 보이는 모든 것에 활기가 넘쳐흐르는 곳이다. 하지만 우린 이곳에서 회를 구입하지 않았다. 팔고 있는 어종이 다양하지도 않았고, 가격 또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이다. 거기다 노점 느낌이 강해 위생에 대한 신뢰도 할 수가 없었다.



코로나 19’의 팬데믹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나보다. 시장을 오가는 사람이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가 이미 마스크를 벗어버린 걸 보면 말이다. 정부는 다음 주에 생활 방역으로 돌아갈지 여부를 발표한다고 했다. 아직은 강력한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할 때이기에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회를 떴으면 이젠 또 트레킹을 나서야 한다. 해안로를 따라 걷다가 낙원펜션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 다음, 첫 번째 사거리(할매곰치국 앞)에서 우회전하여 50m쯤 걷다가 여물쇠 식당의 왼편 골목으로 들어선다. 전면에 엄청나게 높은 축대가 보인다면 제대로 들어온 셈이다. 참고로 탐방로는 이 축대를 갈 지()’자를 쓰면서 오르도록 나있다.



축대를 올라 성황당경로당을 지나자 탐방로는 예쁜 그림들이 담벼락에 걸려있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등대골목길 갤러리라는데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 및 서예가,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돌아가며 전시한단다. 현재 전시되고 있는 작품은 강릉예술고등학교에 재직하는 주재환 화가가 를 주제로 그린 것들이란다. 골목 입구에 걸려있던 허그 스트리트(Hug street)’라는 간판, 즉 우리 마을 변신 프로젝트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허그 스트리트' 프로젝트는 비영리기관인 사단법인 '스파크'가 주관하고 도시주택보증공사가 후원하는 사업으로, 지역을 기반으로 시민사회와의 협업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다.



골목에는 벤치를 갖춘 작은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쉼터에서의 조망은 물론 빼어나다. 산비탈에 층을 나눠가며 기댄 '새뜰마을' 집들은 하나같이 울긋불긋한 모자를 썼고, 그 너머 푸른 바다는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골목은 사람 둘이 겨우 비켜지나갈 정도로 좁다. 또한 마을 주민이 아니면 목적지를 찾아가기 힘든 미로(迷路)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막혔는가 싶으면 연결되고, 이어질 것 같은 골목이 갑자기 낭떠러지로 변하는 것이다. 한참이나 앞서가던 친구 형우군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겨우겨우 우리와 만났다면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



수산시장을 나선지 20분 만에 주문진등대(등대문화유산 제12)’에 도착했다. 주문진등대는 19183월 강원도에서 첫 번째로 세워졌다. 1917년 부산항과 원산항간 연락선이 운항되면서 중간 기항지인 주문진항에 등대가 설치됐다. 백원형연와조로 건조된 이 등대의 등탑은 최대 직경 3m, 높이 10m로 외벽엔 백색의 석회 모르타르가 칠해져 있다. 이러한 벽돌식 구조의 등대는 우리나라 등대 건축의 초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건축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해방 이전 조선총독부가 세운 탓에 일본식 건축양식을 사용했다. 등대 출입구 상부에는 일제 상징인 벚꽃이 조각되어 있고 6.25 때 총탄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등대의 불빛은 15초에 한 번씩 반짝이며 37거리의 바다까지 비춘다. 폭풍우나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공기 압축기 즉 에어 사이렌을 통해 60초마다 한 번씩 5초 동안 긴 고동소리를 울리는데, 이 소리가 선박에게 가 닿는 거리는 3마을(5.5km) 해상이란다.



등대 입구 골목에서 이번엔 우측 골목길을 따라 내려선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잘 생긴 갯바위들이 수없이 널려있는 영진해안에 닿는다. 이어서 탐방로는 바다 쪽에 바짝 붙은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도로변에 오리 나루간판이 세워져 있다. 옛 나루터 이름인데, 행정구역상으로는 주문5에 속한다. 이곳은 최루성 영화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촬영지가 되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그런데 안내판이 조금 이상하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김영란윤일봉을 그려 넣은 것이다. 공전의 히트를 쳤던 당시의 영화는 문희신영균이 주연을 맡았었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1980년에 리메이크한 두 번째 작품의 촬영지였던가 보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루터는 현재 도로에 묻혔고, 바다에 널린 바위 자락에 그 흔적만 약간 남아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근의 기기묘묘한 갯바위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니까 말이다. 우리 일행이 주문진시장에서 떠온 생선회를 먹을 장소로 이곳을 선택한 이유이다.



오리나루를 지나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소돌항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인근 바다에 소처럼 생긴 바위(牛岩)’가 있다고 해서 소돌이라는 지명을 얻었는데, 투명카누 타기와 오징어빵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끄는 어촌체험마을이다. 어촌체험이 아니더라도, 사철 푸르고 투명한 바닷물과 바닷가 기암괴석 무리가 소돌마을을 찾는 여행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갯바위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지 15분 만에 소돌항에 닿았다. 작은 고깃배들 몇 척, 방파제와 그 끄트머리의 빨간 등대만이 시야에 들어오는 한적한 포구다. 이곳도 역시 어민들이 직접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대표 해산물은 문어. 길가에 늘어선 식당마다 간판에 직접 잡은 문어 팝니다라는 글귀를 적어 넣었다. 해물라면도 판단다. 하지만 문어 한 마리를 통째로 넣은 탓에 가격이 생각보다는 훨씬 비싸다. 그 외에 홍게라면과 조개라면도 파는데 이들 또한 가격이 만만치 않다.



소돌항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있다. ‘공중화장실인데도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예술적으로 꾸며놓았다. 소돌해안의 자랑거리인 구멍이 송송 뚫린 기암괴석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덕분에 포구를 찾은 관광객들은 너나없이 항구가 아닌 화장실을 배경으로 삼아 사진을 찍고 있다.



잠시 후 아들바위 공원이 나온다. 옛날 노부부가 이곳의 바위에서 100일 기도를 드린 후 아들을 얻었다는 전설이 스며있는 곳이다. 그런 전설은 옛 얘기로만 그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후로도 아들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아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어졌는데 그들 또한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어쩌면 동해의 푸른 파도를 헤치고 서 있는 바위의 굳센 심지와 강인함이 자식을 얻고 싶은 간절한 바람을 투영할 수 있는 상대였을지도 모르겠다.



공원 안에는 배호(裵湖)노래비가 서 있었다. 1960년대 최고의 가수로 인기를 누렸던 배호의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파도(이인선 작사, 김영종 작곡, 1968년 아세아레코드 제작)’의 노랫말을 적어 넣은 빗돌이다. 부근에 동전(500)을 넣으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장치까지 만들어놓았다는데 사람들이 많아 시험해 보지는 못했다.



노래비를 지나 맞이하는 갯바위의 웅장함은 막힌 속을 확 뚫어주는 것 같은 시원함을 선사한다.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사방에 널려있는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만들어낸 갯바위의 완만한 곡선들이 마치 외유내강을 보는 듯하다. 각각의 이름도 갖고 있다고 했다. 용바위, 코끼리바위, 거북바위, 고래바위, 해당화바위 등이라는데 일일이 대조해 볼 수는 없었다.



사방에 널린 기암괴석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바위는 단연 아들바위. 15천만 년 전 쥬라기 시대의 지각변동으로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 바위라는데 파도가 깎아낸 자욱따라 기하학적인 자태를 보여준다. 그 기이한 생김새는 영험으로 변해 득남의 전설까지 만들어냈다. 자식이 없는 부부들이 백일기도를 드리면 아들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도 아들 낳기를 바라는 부부의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래선지 해안 공원 이름도 아들바위 공원이다. ! 이 바위는 소원바위로도 불린단다. 어떤 소원이든 한 가지 소원을 정성껏 빌면 꼭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공원에는 해안일주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공원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끔 전망대도 두 개나 배치했다. 먼저 탑()처럼 생긴 바다 전망대부터 오르고 본다. 하지만 금줄을 쳐놓아 구조물 안으로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대신 구조물 주변에 데크를 깔아 조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는데 공원 전체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조망의 명소이다.



건너편에는 또 다른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두 전망대는 데크 산책로로 연결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굳이 바다로 들어가지 않고도 아들바위 등 공원의 기암괴석들을 한눈에 모두 담을 수 있다.



가는 길에 해골처럼 생긴 바위를 만나기도 한다. 오랜 세월 침식작용으로 파이고 깎이며 구멍 숭숭 뚫린, 기이하게 생긴 바위다.



두 번째 전망대에서의 조망도 뛰어나다. 해안의 바위들과 짙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조금 전에 올랐던 바다전망대보다 시야가 더 넓어졌다. 하지만 주변 바위들의 생김새는 아까에 조금 못 미친다. 전망대의 천정도 일품이다. 유리를 씌웠는데 한가운데에 별자리 모양의 구멍이 뚫린 철판을 덧댔다. 그런데 이게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며 상상의 나래를 펴게끔 만들어준다.




전망대 뒤편에는 성황당(城隍堂)이 있었다. 소돌마을의 무사고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는 곳이라는데 최근에 복원했는지 때 하나 끼지 않은 돌들로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의 반대편으로 내려오면 경포해변과 더불어 강릉을 대표하는 해변 중 하나인 주문진해변에 닿는다. 조금 더 걸어 솔향 가득한 해송 숲을 만나자 탁 트인 백사장이 마지막 걸음을 반겨준다. 고운 모래와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저 멀리 소돌항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참고로 주문진해변은 소돌 마을에서 향호리까지 약 1km의 백사장을 따라 형성된 해수욕장이다. 해안의 경사가 완만하며 수심이 1m 정도로 얕은 데다 바닷물이 맑아 물속으로 보이는 조개를 잡을 수도 있고, 바로 옆에 있는 향호 호수에서는 낚시도 할 수 있다.



해변에는 여러 종류의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하트 모양의 흔들의자는 그 가운데서도 단연 인기다. 쌍쌍의 연인들이 흔들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셀카를 찍는 모습이 여간 사랑스럽지 않다.



트레킹 날머리는 주문진 해변(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 8-43)

해변의 왼편은 온통 푸른빛이다. 푸르른 해송 숲으로도 부족했던지 바닥까지 잔디로 깔았다. 주문진리조트의 부속시설인 골프장일 것이다. ‘나이스 샷’,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골프장을 기웃거리다보면 귤과 입술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 쉼터를 만나게 되고, 곧이어 주문진해변의 주차장이 나오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 보관함은 주차장과 해수욕장이 연결되는 부근에 만들어져 있다. 오늘 트레킹은 총 3시간 20분이 걸렸다. 하지만 회를 뜨느라 소요된 시간과 그 회를 먹느라 갯바위에서 놀았던 시간을 제하면 3시간 50분이 걸린 셈이다. 먹거리와 볼거리를 찾아 그만큼 헤맸다는 얘기일 것이다. 원래보다 2를 더 걸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