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37코스

 

여행일 : ‘20. 2. 1()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과 구정면 일원

여행코스 : 학산 오독떼기전수관당간지주학산3리 마을회관금광초교정감이산책로정감이수변공원풍호마을하시동 해안사구염전해변안인진항(소요시간 : 19.14/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염전해안에서 안인항까지의 3에도 못 미치는 구간을 제외하고는 탐방로가 모두 내륙으로 나있다. 바닷가에 위치한 강릉비행장과 군부대를 피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트래킹 내내 지루함의 연속이다. 거기다 길까지 빙빙 돌려놓았다. 볼거리가 하도 드물다보니 작은 소나무 숲이라도 나올라치면 어김없이 산속으로 파고들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금방 다다를 수 있는 거리를 에돌아가며 걸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해파랑길 전체 구간 중 가장 무료한 코스라는 불명예를 벗어날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해파랑길 완주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올 필요가 없는 구간이다. 그것도 ‘N-E-V-E-R-!’. ! 요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도 눈에 띄지 않았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그래서 우린 들머리와 날머리를 바꿔서 걸었다. 37코스에서 유일하게 식당이 있는 곳이 안인항이기 때문이다.


 

들머리는 학산마을 오독떼기 전수관(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628)’

동해고속도로(속초-삼척) 남강릉 TG를 빠져나오자마자 우회전하여 백두대간 쪽으로 들어오다 고속도로 바로 앞 사거리(강릉시 구정면 어단리 880-28)에서 우회전하여 어단천(於丹川)’을 따라 내려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학산(鶴山) 마을에 이르게 된다. 이 마을에 있는 오독떼기 전수관은 원래 해파랑길 37코스의 종점(終點)이다. 하지만 우린 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참고로 오독떼기 전수관은 강릉 일대의 민초들이 김을 매면서 불러오던 오독떼기라는 농요(農謠)를 전승(傳承)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수관(傳受館)이다. 강릉지방에서는 마을 두레패들이 한 조에 두 명 이상씩 조를 나누어 번갈아가며 오독떼기를 부르면서 즐겁게 김을 맨다고 한다. 아이김·두벌김·세벌김을 매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부르는 속도나 가사에 따라서 냇골(內谷수남(水南하평(下坪) 등으로 달리 부른단다. 이곳 학산리는 냇골조 오독떼기(강원도 무형문화재 제5)‘를 가장 잘 전승해오는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왕조실록에 세조가 동해안일대를 돌아보다가 이 오독떼기를 잘하는 사람을 뽑아 소리를 시켜보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단다. ’오독떼기 전수관을 이곳 학산리에 지어놓은 이유일 것이다.




전수관 앞의 소나무 숲속에는 식탁까지 갖춘 캠핑 데크가 여럿 들어서 있었다. 돌탑을 쌓았는가 하면 벤치를 놓아 쉼터의 기능까지 더했다. ‘학마을 가족 야영캠프란다. 돌담을 두른 형태의 서낭당(성황당)도 복원되어 있었다. 매년 4월 보름에 열리는 국사성황행차때는 대관령국사 여성황사(大關嶺國師 女城隍祠)‘로 가는 길에 이곳에 잠시 들러 굿과 제례를 올리기도 한단다,



어단천(於丹川)’에 놓은 굴산교(崛山橋)’를 건너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길이 9.63의 어단천(於丹川)은 구정면 구정리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 장현동에서 섬석천과 합쳐진데 이어 남항진에서는 남대천에 합류되는 섬석천의 제1지류이자 남대천의 제2지류이다.



다리를 건너자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벼 그루터기만 남은 논들 사이로 길이 나있는데, 이곳 학산의 명물 굴산사 당간지주가 진행방향 저만큼에 실루엣으로 나타난다.



잠시 후 굴산사지 당간지주(掘山寺址 幢竿支柱)’ 앞에 선다. 당간지주란 절집의 깃발()을 세우는 깃대(竿)의 버팀돌(支柱)이다. 요즘 국기게양대를 연상하면 되는데 세월의 흐름 속에 무쇠로 만들어졌을 당간은 사라지고 이젠 지주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크기가 자못 놀랍다. 5.4m나 되는 한 쌍의 돌기둥이 지표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이다. 만약 저기에 당간이 있었다면 높이가 족히 20m는 되었을 것 같다.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라 하겠다. 은퇴 후 유적지 중심으로 각국을 돌아다니길 6, 스케일에서 시작된 콤플렉스를 이젠 떨쳐버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텅 빈 들녘 너머로는 백두대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000m를 넘기는 고봉(高峰)마다 하얀 눈을 한 짐씩 짊어지고서 말이다. 엊그제 내린 눈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나저나 저 들녘 어디쯤에는 굴산사지(掘山寺址)‘가 있을 것이다. 신라 하대에 형성된 9개의 선종산문 가운데 하나인 사굴사문(闍堀山門)의 본거지로, 851(문성왕 13) 범일선사(梵日禪師, 810~889)가 명주도독(溟州都督) 김공(金公)의 요청으로 산문을 열었던 곳이다. 한때는 영동지역 최대 사찰이었으나 여말선초(麗末鮮初) 무렵 폐사되어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옛 영화를 전해주고 있단다.



조금 더 걷자 삼거리(이정표 : 학산3리 마을회관1.2, 안인해변 17.2/ 당간지주0.15)가 나온다. 버스정류장(미륵금)이 설치되어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100m쯤 들어가자 자그마한 전각(殿閣)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안에는 신라 사굴산문(闍崛山門 : 九山禪門 중 하나)의 본산이었던 굴산사(掘山寺) 옛터에서 찾아냈다는 네 개의 불상 가운데 하나인 굴산사지 석불좌상(掘山寺址 石佛坐像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8)‘이 모셔져 있었다. 불상은 투박하기 짝이 없다. 특히 얼굴은 윤곽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안내판은 그 이유를 마모(磨耗)에서 찾고 있었으나 내 눈에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게 혹시 크고 투박하며 서민적이라는 고려 불상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트레킹을 이어간다. 그리고 첫 번째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곧장 직진하면 엉뚱하게 옥봉마을로 가버리니 이정표(학산3리 마을회관0.9/ 학산마을0.8)를 꼭 살펴볼 일이다. 이어서 15분쯤 더 걷자 4차선 도로가에 위치한 학산3마을회관이 나온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30분쯤 되는 지점이다. 마을회관은 학산마루라는 카페를 끼고 있었다. 안인항에서 트레킹을 시작했을 경우 잠시 쉬어가기 딱 좋겠다.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50m쯤 가다가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이곳에서는 이정표 대신 어단리의 송이버섯과 마늘 광고판을 참조하면 되겠다. 이 구간의 특징은 좌우로 과수원을 끼고 걷게 된다는 점이다. 가지만 앙상해서 품종은 알 수 없었으나 꽤나 너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또 다른 특징은 자투리땅만 보였다싶으면 어김없이 엄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 역사까지 깊은지 눈에 띄는 하나하나가 모두 엄청나게 굵은 고목들 일색이었다.



탐방로는 들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너르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니 산이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선지 들녘 곳곳에 소나무 숲이 들어서있다. 덕분에 삭막하기만 했을 풍경이 많이 누그러졌다.



해파랑길 37코스도 역시 수많은 갈림길을 만난다. 이 구간은 특히 방향 삼을만한 지형지물이 마땅찮은 들녘에서 자주 길이 나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길 찾기가 애매할 수도 있는데, 이때는 해파랑길 이정표나 아래 사진의 강릉바우길이정표를 참고하면 된다. 강릉바우길의 7코스인 풍호연가길이 해파랑길 37코스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강원도 사투리인 '바우'에서 따온 바우길은 자연친화적인 트레킹 코스이다. 백두대간에서 경포와 정동진을 잇는 바다까지 총 연장이 350에 달하는 이 둘레길은 강릉 바우길’ 14개 코스와 대관령 바우길’ 2개 코스를 비롯해 울트라 바우길’, ‘계곡 바우길등 다양한 코스로 구성돼 있다. 오늘은 강릉 바우길’, 그중에서도 7코스인 풍호연가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너른 들녘을 15분쯤 더 걷자 금광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는 깔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었다. 삼원색(三原色)을 기본으로 녹색과 하양을 더한 색상이 눈길을 끈다. 요즘은 학생이 줄어들면서 폐교되는 초등학교가 날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면소재지도 아닌 곳에 이렇게 멀쩡한 학교가 존재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저렇게 고운 시설에다 뛰어난 교육프로그램을 더해 학생들을 유치했을 지도 모르겠다. 골프나 승마, 컴퓨터. 바이올린 등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시골학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지 않았던가. 최근에는 부모의 일자리까지 주선해준다는 학교가 화재가 되기도 했었다.



학교 앞에서 탐방로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함께 걷던 형우군이 마실 나온 할머니들에게 옛날 이 부근에 금을 캐던 광산(鑛山)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광업권(鑛業權) 인허가 업무를 하면서 전국을 누비고 다니던 경험이 만들어낸 질문이라 하겠다. 그의 추론은 정확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 부근에 제법 큰 금광이 들어서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이곳의 지명은 금광(金鑛)이 아니라 금광(金光)’을 쓰고 있었다. 어느 효자가 금덩이를 건져 올린 용금정(湧金井)’이 마을에 있다고 해서 용금정의 자를 따와 금빛이 나는 고을이란 뜻의 금광(金光)’이 되었다는 것이다.



잠시 후 우린 해파랑길을 벗어나 버렸다. 철도공사의 강릉차량사업소 조금 못 미치는 곳인데 원래의 코스를 놓아두고 차량사업소의 오른편 모퉁이에 있는 사거리로 그냥 직진해버린 것이다. ‘와천로라는 2차선 도로가 새로 뚫린 것을 안 선두대장이 이 지름길을 택했던 모양이다. 그 덕분에 우린 이곳에서 꽤 헤매야만 했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을 보고 진행하고 있는데 산길샘의 지도(Google)에는 아직까지도 이 도로가 업데이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도에도 없는 길로 들어선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도로 왼편에는 강릉차량사업소(江陵車輛事業所)’가 들어서 있다. 한국철도공사의 경강선(京江線, 시흥시 월곶역에서 강릉시 강릉역을 잇는 간선철도)을 운영하는 KTX의 주박(駐泊) 및 정비를 위한 고속철도 차량사업소다. 20182단계 공사가 완공되면서부터는 영동선과 태백선 등에서 운행되는 무궁화호 등에 쓰일 객차 및 발전차, 기관차의 정비시설로도 사용되고 있다.



새로 난 길로 7분쯤 걸었을까 다리(이정표 : 상시동리/ 안인항/ 금광리/ 학산마을)가 나오면서 해파랑길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금광리와 상시동리의 방향표시가 이해되지 않지만 일단 해파랑길 진행표시에 따르기로 한다. 일차선의 시멘트길인데 이 길은 잠시 후 정감이등산로로 연결된다. ! 다리를 건너지 않고 곧장 안인항 방향으로 직진할 수도 있다. 거리도 한참이나 단축된다. 하지만 이때는 산책삼아 걷기에 딱 좋은 정감이 등산로는 포기해야만 한다.



걷는 도중 기이한 풍경이 보여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오와 열을 맞추어 소나무를 심었는데 아랫도리에 봉분(封墳)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잠시 후 탐방로는 울창한 솔숲(이정표 : 정감이 수변공원3.2/ 금광초등학교2.5)으로 파고든다. 강릉차량사업소를 통과한지 35분 만에 정감이마을 등산로에 이른 것이다. ‘등산로라는 이름과는 달리 탐방로는 널찍했다. 경사까지도 거의 없다. 거기다 수북하게 쌓인 솔가리 덕분에 폭신폭신하기까지 하다. 산책삼아 걷기에 딱 좋은 구간이라 하겠다.



! 이 들머리에 등산로의 내력을 적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오래 전 정감이마을 김부자집의 머슴인 유총각과 김부자의 예쁜 딸이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어느 봄날 낭자는 봄나물을 캐러, 그리고 유총각은 나무를 하러 뒷산에 올랐다. 소나무 아래서 소낙비를 피하던 둘은 결심했고, 칠성산 깊은 계곡으로 숨어들어갔단다. 그들이 사랑을 확인하며 걸었던 길이 바로 정감이 마을 등산로라는 것이다.



정감이마을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인 태양광발전소의 울타리를 지나 자그마한 봉우리에 올라서자 ·의 정상표지판(그곳에 오르고 싶은 산, 137.6m)이 반긴다. 국제신문 근교산행 팀의 산행대장을 역임했던 최남준씨도 이곳을 다녀갔던 모양이다. ! 근처에는 삼각점도 설치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이 사둔지봉의 정상일지도 모르겠다. ‘사둔지봉은 이 산과 접해있는 세 마을인 상시동의 자연부락 시동마을과 모전리의 둔지마을, 언벌리의 가둔리마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에 취해 걷는다. 기분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심신까지 맑아져 온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풍경이 나타난 것이다. 운동기구 몇 점이 잡초에 묻혀있는 것이다. 겨울철에 이 정도라면 여름철에는 웃자란 풀에 가려 아예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저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증거일 게고 말이다. 하긴 이런 산중에까지 찾아와 운동기구를 이용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혈세를 낭비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등산로가 끝나갈 즈음 오른편 산자락에 잘 지어진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정과 감이 많은 동네로 알려진 정감이마을일 것이다. ‘정감이마을이란 강동면에 위치한 모전1리와 상시동2, 언별1·2리 등 4개의 마을을 말한다. 감이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 마을은 능이백숙으로도 유명하다. 버섯 중에 으뜸이라는 능이버섯과 쫄깃한 닭이 조화를 이루면서 맛은 물론이고 지난여름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까지 완벽하게 회복시켜 준단다. 책에서나 보아오던 손모내기와 전통 벼 베기, 탈곡 등의 논농사체험과 바다김치 담그기 체험, 천연염색 체험, 등산로 체험 등도 가능하단다.



마을 앞에서 시멘트포장길로 내려선 다음 400m쯤 더 걸으면 정감이 수변공원이 나온다. ‘상시동2에 있던 기존의 쟁골저수지를 정자와 운동기구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말은 그럴 듯하게 늘어놨지만 사실은 어느 시골에나 있는 조그만 저수지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특별히 눈에 담을만한 풍경이 있을 리가 없다. 해파랑길은 이 저수지를 한 바퀴 돌게끔 나있지만 그냥 지나쳐버리는 이유이다. 그나저나 정감이등산로로 들어선지 45분 만에 수변공원에 이를 수 있었다. 등산로라는 이름과는 달리 걷기가 수월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수변공원을 빠져나오면 상시동2. ‘시동이란 마을 이름은 원래 사동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7세기 중반 박수량의 현손 박진해(호 완하당)가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절을 연상시키는 지명(사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그래서 절()에 말씀()을 붙여 시동으로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장관 2명에 지사와 장군까지 배출되었다니 말씀 언()’이 보태진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해파랑길은 마을 앞 농수로(農水路)에서 오른편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곧장 마을을 통과해 버림으로써 거리를 단축시킬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기억해 두자.



첫 번째 다리를 만나면 일단은 건너고 본다. 이어서 망설이지 않고 도로(이정표 : 안인항8.3/ 강동면사무소/ 학산마을9.4)를 횡단해 버린다. 그리고는 마을을 지나 산속으로 파고든다.



산속으로 들어섰지만 길은 아직도 시멘트포장이다. 아니 버스가 다니는 시동서당길을 만날 때까지 시멘트포장길은 계속되었다. 이 구간의 또 다른 특징은 구불구불한데다 갈림길까지 많아 길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해파랑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기는 하지만 완벽한 도움은 주지 못했다. 아무래도 앱의 도움이 필요한 구간이지 싶다.



이 구간에서는 육교(陸橋)도 두 번이나 지난다. ‘7번 국도와 지방도인 율곡로를 연이어 지나는데 국도가 2차선인데 비해 지방도는 그 배인 4차선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걷는 도중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한옥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허물어져가고 있는 한옥도 눈에 띄었다.



동양석재 앞의 도로를 건넌 탐방로는 또 다시 산속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시멘트포장길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때문에 공중으로 지나가는 수로(水路)와 바닥에 쌓인 솔가리들이 그려놓은 문양 외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이곳도 역시 밋밋한 구간이라 하겠다. 하긴 37코스 대부분이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렇게 걷길 40분 드디어 하시동3리인 풍호마을에 이른다. 마을 앞에는 영동선(嶺東線) 철도가 지나간다. 이곳 풍호마을의 축제 이름이 기찻길 옆 풍호마을 연꽃축제'가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영동선은 영주역(경상북도)과 강릉역(강원도) 사이에 부설된 총연장 193.6의 철도이다. 본래 동해북부선·철암선(鐵巖線영암선(榮巖線삼척선(三陟線) 등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1963년 하나로 통합되면서 영동선이 되었다.



마을회관을 지나자 곧이어 풍호(楓湖)’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강릉의 남쪽에 있어 앞개 또는 남호(南湖)로도 불리었으며, 풍호(楓湖)는 호수 주변에 단풍나무가 많았던 데서 연유된 지명이다. 신라시대에는 경치가 아름다워 심신수련에 나선 화랑들이 호수를 찾아 시를 읊기도 했단다. 요즘은 너른 연꽃단지로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제각각의 색을 뽐낸다는 아름다운 꽃들이 없어서일까? 아니 그보다는 규모가 너무 작아서였을 것이다. 참고로 이곳 풍호마을에서는 매년 여름 연꽃 축제를 연다고 한다. 그네체험과 갯배 체험, 민속놀이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은 물론 다채로운 음식도 맛볼 수 있단다.



호수 주변은 이름에 걸맞게 잘 꾸며져 있었다. 예쁜 물레방아와 함께 부용정(芙蓉亭)이라는 정자를 세웠는가 하면 연꽃 방죽에는 데크 산책로를 만들어 가까이 다가가 연꽃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벤치와 수도,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도 갖췄다.



이 호수는 원래 경포호수와 똑같은 석호(潟湖)였다고 한다. 파도가 바닷모래로 둑을 쌓아 냇물이 호수로 변했는데, 크기도 경포호수의 2/3나 되었단다. 하지만 주변이 개발되면서 지금은 아주 작은 호수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호수를 빠져나와 트레킹을 이어간다. ‘풍호길을 따라 동해바다 쪽으로 가다가 풍호마을표지석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꾼다. 물론 곧장 도로를 따를 수도 있다. 그리고 두 길은 얼마 후 다시 만나게 된다. 우린 해파랑길을 따르기로 했다. 상당한 거리를 돌아가기는 하지만 숲길을 버리고 일부러 삭막한 도로를 따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구간에서 우린 오솔길을 걸을 수 있었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데다 거리까지 짧았지만 삭막하기 짝이 없는 해파랑길 37코스를 걷다보니 나름대로 풍취가 있어 보였다.



숲속을 빠져나오자 또 다시 풍호길을 만난다. 아니 이번에는 염전길이란다. 이 길은 메이플비치 골프장의 앞을 지나 염전해변으로 연결된다. 오늘은 37코스, 해파랑길을 걸어온지도 1년 하고도 7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오늘처럼 포장도로를 많이 걸어본 것은 처음이지 싶다. 일부러 에둘러놓은 숲길을 빼놓고는 탐방로가 대부분 아스팔트 아니면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골프장 정문에서 조금 더 진행하자 안내판 하나가 세워져 있다. ‘하시동·안인 해안사구관찰로의 진입로란다. 서해안에 신두리 사구가 있다면 동해안엔 하시동·안인 해안사구가 있다고 했는데, 이곳을 두고 하던 말인가 보다. 풍호에서 이곳까지는 40분이 걸렸다.



해안사구(海岸砂丘, costal sand dune))’란 사빈(沙濱, 모래해안)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육지 쪽으로 이동하면서 바람의 힘이 약해지는 지점에 집중적으로 쌓이면서 만들어진 언덕을 말한다. 그런데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사구와는 사뭇 다르다. 모래 언덕이 아니라 온통 소나무 숲인 것이다. 표토(表土)를 걷어내지 않은 채로 보존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이 구간에는 해파랑길 이정표가 없었다. 그렇다고 미리 걱정부터 할 필요는 없다. 지자체에서 세운 이정표에 해파랑길 표식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아니 바닥에 깔아놓은 야자매트를 따라 걸어도 별 어려움 없이 해안가에 이를 수 있었다.



깊게 파인 웅덩이가 보인다. 뒤에는 둥그런 돌들을 모아놓았다. 들머리의 안내판에 나와 있던 하사동 고분군(강원도 기념물 18)’의 발굴현장이 아닐까 싶다. 삼국시대 유적으로 추정된다는 고분군(古墳群) 말이다. 고고학에 문외한인 내 의견보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할 것 같아 다른 이의 글을 옮겨본다. ‘하시동 고분군은 이곳 사구를 따라 100여 기가 분포되어 있다. 무덤의 구조는 구덩식 돌덧널무덤이다. 평면은 긴 네모 모양이며, 돌덧널 안은 주검을 안치한 으뜸 덧널과 껴묻거리만 넣은 딸린널로 구분되어 있다. 무덤은 구조와 유물을 종합해 볼 때 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들어선지 10분 만에 사구를 빠져나오면 가없이 너른 푸른 바다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염전해변으로 길이가 500m인데 옛날 이곳에서 소금이 많이 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지금은 염전 대신에 결이 고운 모래사장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그게 탐스러웠지만 가까이 다가가는 것까지는 사양하기로 했다. 그러기에는 파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의 안인사구 관리소까지는 해안도로를 따랐다. 왼편에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를 끼고 걷는 멋진 구간이다. ! 관리소 뒤편의 도로는 아까 사구로 들어서기 전에 헤어졌던 도로이다. 그 도로 가에 하늘다람쥐와 멧토끼 등 생태·보전지역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한번쯤 살펴보면서 하시동·안인 사구에서 받았던 감흥을 가슴속에 저장해 볼 일이다.



탐방로는 관리소 앞에서 바닷가로 나간다. 그리곤 염전해변의 모래사장을 따라 걷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도로로 올라설 수밖에 없었다. 이 일대가 안인화력발전소의 건설현장으로 변해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도 시설공사가 한창이다. ‘안인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에 필요한 냉각수(冷却水)를 끌어들이기 위한 취수(取水) 시설이란다.



염전해변이 끝나면 해파랑길을 군선천(群仙川)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폭이 좁아지는 곳에 다리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때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아름다운 풍경화가 눈앞에 그려진다. 군선천이 바다와 합쳐지는 저곳은 안인진항일 것이다.



군선천(群仙川)은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에서 발원해 임곡천과 합쳐진 후 안인지항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11의 지방하천이다. 군선천을 유명하게 한 것은 상류에 있는 단경골이다. 단경골(壇京谷)박달나무()와 서울(), 골짜기()의 합성어이다. 고려왕조가 무너진 이후 최문한과 김중한, 이장밀, 김경 등 수십 명의 고려 충신들이 이곳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이들이 종묘를 봉안하기 위해 제단을 만든 곳이라 하여 단경골로 불리게 되었는데, 현재는 매년 1만 명 이상이 찾는 유명 관광지로 변해있다.



안인진항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오르다보면 안인화력발전소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6조원이 투입된 민자 발전소(民資 發電所)’1,040MW급 발전기 2기가 들어설 예정이란다. 그런데 석탄 하역부두와 발전소를 이어주는 컨베이어 벨트(conveyor belt)는 눈에 띄지 않았다. 석탄발전소의 필수시설인데도 말이다. 아직 공사가 마감되지 않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날머리는 안인진항(安仁津港,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314-1)'

고개를 넘자 곧이어 안인진항에 이른다. 염전해변에 내려선지 35분 만이다. 물양장에 들어서자 뱃머리를 닮은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꼭대기에는 은빛 구() 올려놓았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안인진항은 노란 참가자미의 집결지로 유명한 포구이다. ‘노란 참가자미는 배 쪽 지느러미 부분이 노란색을 띄는 가자미로 횟감과 조림 등으로 쓰인다. 그런데 그 맛이 뛰어나서 가자미류 중에서도 유독 노란 참가자미만 찾는 소비자들이 많단다. 매년 여름 안인 노란참가자미 축제까지 열릴 정도라면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 참고로 안인(安仁)'은 조선시대 관청의 일을 하던 강릉시내 칠사당(七事堂)을 중심으로 해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은 편안함을 '()'은 방위상 동쪽을 의미하여 '안인(安仁)''강릉 동쪽의 편안한 곳'이란 뜻이 된다.



안인해변은 바닷물이 맑고 수심이 얕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바닷가에 널린 갯바위도 눈길을 끈다. 바다는 파도가 무척 높았다. 하지만 형우군은 이를 개의치 않고 갯바위로 올라간다. 횟집에 들르지 못하는 서운함을 저 파도에 띄워 보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금주령 중인 내가 최상의 안주거리를 상에 올릴 수야 없지 않겠는가. 친구야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