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도(下笞島) 여행 둘째 날 : 상태도와 중태도
여행일 : ‘19. 3. 4(월)-6(수)
소재지 : 전남 신안군 흑산면 태도리
트레킹 코스 : 상태도→중태도→하태도 해안선 투어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흑산군도‘에 속해있는 태도군도(苔島群島)는 ’대흑산도‘로부터 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섬들이다. 상태도와 중태도, 하태도 등 3개의 유인도와 여러 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은 민박집의 낚싯배를 빌려 상태도와 중태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거기다 하태도는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일정이다. 목포로 나가는 배편이 취소된 덕분에 생긴 일정이었으니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본보기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흑산군도(黑山群島)’는 대흑산도와 영산도, 대장도, 다물도, 대둔도, 홍도, 상태도, 중태도, 하태도, 만재도, 가거도 등 유인도 11개와 무인도 89개, 숨은 여(礖) 187개 등 총 287개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섬의 무리이다.
▼ 점심을 먹고 있는데 뱃길이 끊겼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미세먼지와 안개가 섞이면서 뱃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시야를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흑산도만 하더라도 하루 수차례 쾌속선이 오간다. 하지만 이곳 하태도를 포함한 그 이후의 섬들은 하루에 한번 밖에 없는 쾌속선에 의지해야 한다. 끄래서 성질 고약한 먼 바다가 심술이라도 부릴라치면 제풀에 지쳐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어버렸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낚싯배를 빌려 태도군도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마침맞게 민박집 주인장이 낚싯배를 갖고 있단다.
▼ 배가 하태도항을 벗어나자마자 ‘강섬’이 손짓을 한다. ‘흰여’라고도 불리는데 하태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속 여(礖)’이다. 나무는 물론이고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바위섬이니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의 흔적까지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란다. 낚시꾼들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강성돔’의 입질이 워낙 좋다고 소문이 났을 뿐만 아니라 섬의 규모가 제법 커서 웬만큼 날씨가 나빠도 낚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 15분쯤 달렸을까 제법 큰 규모의 섬이 길손을 맞는다. 중태도·하태도와 함께 태도군도(苔島群島)를 이루는 ‘상태도(上苔島)’로 대흑산도에서 남쪽으로 약 29.5㎞ 지점, 흑산도 본섬과 가거도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면적 1.42㎢에 해안선 길이가 10.2㎞인 작은 섬이다. 섬의 최고(最高) 지점은 157m이며, 섬 전체가 하나의 산지를 이루고 있다. 취락은 섬의 남쪽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으며 70명쯤 되는 주민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한단다.
▼ 선착장은 섬의 남쪽에 위치해있다. 배에서 내리니 흉상(胸像) 하나가 세워져 있다. 이곳 상태도 출신으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한 ‘이용석’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원이던 그는 지난 2003년 10월 26일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며 분신했다. 이 씨의 분신은 그동안 가려져왔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고, 이후 비정규직 철폐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노동계에서는 그를 ‘열사’로 부른다. 그는 분신한 지 37일 만에 광주 망월동 5.18시립묘역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 흉상에서 오른편으로 돌자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이 나타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한 아름다운 해안이다.
▼ 안쪽에 선착장(船着場) 하나가 더 들어서 있다. 어선 두어 척이 정박되어 있는 걸로 보아 주민들의 전용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우릴 태운 배는 두 개의 방파제 가운데 바깥쪽에다 댔었다.
▼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니 ‘상태도 노인회관’이 얼굴을 내민다. 상태도에 왔다는 것을 인증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니 놓치지 말 일이다. ‘상태도’라는 지명이 적힌 표식은 노인정에 걸린 현판(懸板)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 마을 안길로 들어서자 만(灣)처럼 바다가 안쪽으로 움푹 들어와 있다. 깊이도 작은 배는 너끈히 들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깊어 보인다. 조금 전에 배를 대었던 방파제가 없었을 때에는 천연의 항구노릇을 톡톡히 수행했을 것 같다.
▼ 마을 정수장을 지나 건너편 능선으로 향한다. 이 길로 계속 가면 섬의 동북쪽 끝자락인 내연발전소까지 이어진다. 길 오른쪽은 시멘트 옹벽으로 낭떠러지다. 철제난간을 둘렀다. 이 부분은 땅이 아니라 철제로 바닥을 만들어 그 위에 시멘트를 깔아 길을 만들었다. 왼쪽 집 담벼락이 끝인데 이 옆으로 길을 새로 낸 것이다.
▼ 길을 가다보면 섬의 동쪽 해안선이 눈에 들어온다. 수직에 가까운 바위절벽이 바다와 맞닿으며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이다.
▼ 1997년에 만들어졌다는 내연발전소를 지나 조금 더 걸으니 길이 끊겨버린다. 바로 위 사진의 맨 끄트머리라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이곳도 하태도와 마찬가지로 온통 붉은색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저 하태도의 바위들보다 훨씬 더 단단해 보인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하겠다.
▼ 명색이 등산 동호회원들이니 길이 끊겼다고 그만둘 리가 있겠는가. 없으면 뚫어서라도 진행하는 게 산꾼들의 습성이니 말이다. 수직에 가까운 바위절벽을 기어오르고 보는 이유이다.
▼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오른데 대한 보상은 쏠쏠한 편이었다. 주변에 널린 기암절벽들이 옥빛 바다와 어우러지며 빼어난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옴을 이르는 말이니 지금의 상황에 딱 맞는 고사성어가 아닐까 싶다.
▼ 상태마을도 한눈에 쏙 들어온다. 산비탈에 기대에 들어선 마을은 1600년경 흑산도에 살던 ‘김해 김씨’가 섬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뒤를 이어 1800년경에는 박씨가 들어와 정착했단다. 지금은 46세대 83명이 살고 있다니 그동안 많이 커진 셈이다. 하긴 한때는 초등학교까지 들어서 있었다니 이를 말이겠는가.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아직도 학교건물이 남아있다고 한다. 1988년에 세워진 교회도 있단다. 하지만 눈으로 식별할 수는 없었다.
▼ 두 번째로 상륙한 곳은 ‘중태도(中苔島)’이다. 상태도(上苔島)·하태도(下台島)와 함께 태도군도(苔島群島)를 이루며 이들 중 가운데에 위치한다. 면적은 1.04㎢이고, 해안선 길이는 4.5㎞, 최고높이는 137m이며 이를 중심으로 섬 전체가 경사가 급한 구릉지를 이룬다. 섬에는 약초를 먹여 키운 흑염소가 사육되고 있으며, 해역에는 김·미역 등의 해조류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 대부분은 해조류 채취기간인 3월에서 10월까지의 기간에만 섬에서 살고 나머지 기간은 다른 곳에서 다른 일에 종사하며 생활한단다.
▼ 선착장에 내리면 중태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선착장이 있는 섬의 동쪽 연안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은 1800년경 ‘한양 조씨’가 하태도에서 거주하다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현재는 11세대 24명이 거주하고 있단다. 하지만 선장님의 말로는 단 세 가구만 살고 있는데 그마저도 지금은 한 집만 머물고 있단다. 북풍이 거세고 파도가 높아 바다일이 어려운 겨울철에는 다들 목포에 나가서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 집이 가난해서 목포로 못 나간 것은 아니라는 선장님의 말씀이다. 기나긴 겨울철에 지루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문화시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육지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충분한 지원 덕분이라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 중태도 역시 해안 전체가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저 마을이 들어서있는 동북쪽 해안만이 열렸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나 마을을 품은 산만은 나머지 두 섬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민둥산에 가까웠던 상·하태도와는 달리 온통 짙고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흑염소를 방목(放牧)하는 게 아니라 사육(飼育)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무들이 염소들이 못 먹는 수종(樹種)이었을 것이고 말이다.
▼ 하태도로 되돌아오는 뱃속에서 느닷없이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선장님께서 섬을 한 바퀴 돌아주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유람선 노릇을 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도착한 하태도의 해안선은 드나듦이 복잡했다. 북서쪽으로는 돌출부가 길게 뻗어있고, 남쪽으로는 깊게 만입되어 있다. 대부분이 암석해안으로 서쪽과 남쪽은 높고 가파른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해 있다.
▼ 바다는 온통 옥빛으로 빛난다. 파도가 갯바위에 부서질 때마다 마치 햇빛에 옥가루가 부서지는 듯하다.
▼ 눈에 들어오는 하태도의 해안은 온통 해식애(海蝕崖)로 이루어져 있다. 해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해안가의 절벽이다. 절벽의 곳곳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파도가 만들어낸 동굴들로 해식지형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는 중요한 자료가 아닐까 싶다. 해식절벽에서 해식동굴을 거쳐 ‘씨 아치(sea arch, 독립문처럼 암석 기저부가 뚫린 다리모양의 파식지형)’로 변하고, ‘씨 아치’가 세월이 흐르면 ‘시스텍(sea stack, 암석이 파도의 침식을 차별적으로 받아 만들어진 굴뚝 형태의 지형)’이 되기 때문이다.
▼ 바위벼랑에서 노닐고 있는 염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경사가 꽤 가파른 곳인데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내달리기도 한다. 염소들의 암벽등반 솜씨는 인간들보다 훨씬 뛰어난가 보다.
▼ 능선이 움푹 파여 있는 것이 ‘대목’쯤 되지 싶다. 대목이란 ‘물새끝’으로 가는 좁은 목이라는 뜻이란다. 어제 북서릉을 답사하면서 저곳에서 삼거리를 만났었다. 마을사람들의 생활로와 물새끝으로 가는 등산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 잠시 후 기괴하게 생긴 작은 바위섬이 하나 나타난다. 사막의 교통수단이라는 낙타의 등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제천의 둥지봉에서 만났던 ‘새바위’를 쏙 빼닮은 것 같기도 하다. 바닷가 기암괴석들 모두가 다 그렇듯 이 바위도 긴 세월 동안 파도에 깎이고 비바람에 씻긴 끝에 만들어졌다. ‘시스택(sea stack, 암석이 파도의 침식을 차별적으로 받아 만들어진 굴뚝 형태의 지형)’이라고도 하는 이러한 바위섬은 한국의 동해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마치 촛대의 형상을 닮았다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촛대바위’라고 부른다.
▼ 옴팍하게 파인 바다에는 작은 어선 한 척이 떠있다. 이곳 하태도에도 물질을 하는 해녀들이 20여 명이나 된다고 했으니 그녀들을 싣고 온 배가 아닐까 싶다. 그네들을 태워다주는 배가 세 척이나 된다니 말이다.
▼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주변의 바위들이 하나같이 희끗희끗하다. ‘가마우지 닷!’, 누군가의 환호성이 들려오면서 작은 소동이 인다.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새들이 가마우지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꽤 많은 가마우지들이 앉아서 쉬거나 파도 위를 날고 있는 게 보인다.
▼ 조금 더 나아가자 제법 큰 섬이 나타난다. 나무 한 그루 눈에 띄지 않는 바위섬이지만 장축(長軸)이 170m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래선지 ‘다라도’라는 어엿한 이름까지 갖고 있단다. 높이가 30m쯤 되는 섬의 동남쪽 끝자락에는 무인등대가 올라앉아 있다. 이 등대는 가거도와 만재도 사이 수역을 지난 뒤 하태도 동편을 지나는 선박들의 항로표지가 되는 등대로 2015년에 신설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다라도는 ‘특정도서’로 지정되어 있다.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건축물이나 공작물의 신ㆍ증축, 야생 동식물의 포획ㆍ채취 등이 금지되는 국가보호지역이라는 얘기이다.
▼ 섬은 온통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주변의 바다는 크고 작은 암초(暗礁)들 세상이다. 그러니 주변이 온통 비경일 게 당연하다. 이곳 신안, 아니 대한민국 제일의 절경으로 알려진 홍도에 견주어도 하등 뒤질 것 같지가 않다. 한마디로 장관이라는 얘기이다. 그에 따라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는 내 손길도 역시 쉴 사이 없이 바빠진다.
▼ 배에서 바라보는 해안선은 한마디로 아름답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마다 예사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문득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이백(李白)이 쓴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글귀로 ‘별천지가 있는데 인간 세상이 아니다.’, 즉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산중문답’은 이백이 당현종(唐玄宗)을 떠난 후에 지은 시로, 자연에 묻혀 사는 즐거움을 노래한 소박하면서도 도가적인 풍류가 스며있는 시다. 그가 정계에 대한 욕심을 버렸기에 이런 시가 가능했을 것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난 오늘 또 하나의 교훈을 배운다. ‘무릉도원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속된 욕심을 버리고 살면 바로 내가 기거하는 곳이 바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니겠는가.’ 이는 곧 ‘별유천지비인간’이 별 것 아니라는 얘기이다. 아무튼 이왕에 거론했으니 문장 전체를 한번 읊어보고 가자.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별천지에 인간 세상이 아닐세(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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