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터키 여행
여행일 : ‘18. 8. 16(목) - 8.24(수)
일 정 : 이스탄불(16~17)→아야스(17)→투즈괼(18)→카파도키아(18~19)→이고니아 콘야(19)→안탈리아(20)→파묵칼레(20)→에페소(21)→트로이(22)→이스탄불(23),
여행 둘째 날 : 성 소피아성당(Hagia Sophia)
특징 : 중앙의 큰 돔과 주변의 4개 미나레트(첨탑)만 보면 이슬람사원일 것 같지만 원래는 정교회의 대성당으로 출발했다. AD 360년, 이스탄불이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릴 때,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서 처음으로 건립되었다. 이 정교회 대성당이 이때부터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로 불리게 되었는지, 아니면 훗날의 재건 이후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저 당시의 위치와 목조 지붕을 가진 바실리카(basilica)였을 것으로 추정될 따름이다. 이후 404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추방과 관련된 난동과 532년에 일어난 ‘니카의 반란’ 등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537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재건했다. 성당은 중앙 돔(dome)의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해 주변에 작은 돔을 만들었는데, 균형 감각과 예술미의 극치를 이룬다. 이런 건축 양식을 비잔틴 양식이라 한다. 내부는 대리석 기둥과 모자이크, 금박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고, 중앙을 차지하는 돔은 지름이 31m나 된다. 네 개의 첨탑(미나레트)과 내부의 아랍어 장식은 오스만 제국의 점령 이후에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면서 세워진 것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어떠한 종교 행위도 금지되고 있단다. 인구의 절대다수가 무슬림이지만 국교를 정하지 않고 유연한 세족주의를 택한 가장 터키다운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 토프카프궁전의 관람이 끝나면 이번에는 ‘성 소피아성당’이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이스탄불의 상징이라는 1500년 역사의 대성당이 나타난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성 소피아성당’이다. 눈에 들어오는 대성당은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졌다. 중앙 돔에 수많은 보조 돔을 사용함으로써 비잔틴 건축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양식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비롯한 이슬람 건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쯤에서 꿀팁 하나, 아야소피아와 블루 모스크의 중간에는 ‘술탄 아흐메트 광장’이 있다. 이 광장의 가운데에 커다란 분수대가 있는데, 분수대에서 바라보는 아야소피아와 블루 모스크의 모습이 특히 아름답다.
▼ ‘아야 소피아(터키어, Aya Sofia)’ 또는 ‘하기아 소피아(그리스어, Hagia Sofia)’로 불리는 이 동방정교회의 대성당은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물로 여겨진다. 로마제국의 건물이라고 하여, 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500년 가까이 이슬람교 신자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으니 이슬람교와도 관련이 매우 크다고 봐야 한다. 성당 옆에 있는 4개의 탑(미나레트)이 그 증거이다. 아무튼 현재는 박물관의 임무를 수행중이다. 약간의 돈을 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 안으로 들어서면 회랑(回廊, gallery)이 나온다. 본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두 개의 회랑(복도)을 만나게 되는데, 첫 번째 회랑은 세례를 받지 못한 이가 머무는 장소라고 한다. 벽과 천정에 별 다른 장식이 없는데다가 천정의 십자가 아케이드(arcade) 또한 습기로 얼룩져 있어 보존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모자이크 패널(panel) 등이 벽에 걸려 있는 걸로 보아 가이드들의 설명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 회랑에는 ‘존 2세(John Ⅱ)’ 왕비의 관(棺)과 내력을 알 수 없는 종(鐘)이 전시되어 있다. ‘11세기의 대리석 비문(marble inscription 11th century)’이라고 쓰인 안내판도 보인다. 옆에 있는 비문이 새겨진 대리석을 얘기하는 모양인데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 ‘두 번째 회랑’은 넓고 높고 화려한 것이 조금 전의 외랑(外廊)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벽면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나뭇결 같은 무늬가 대칭을 이루는가 하면 색깔도 각각 달라 신비감을 연출한다. 아치형으로 만든 천정은 화려한 금색 ‘프레스코(Fresco)’ 그림들로 채워 넣었다.
▼ 내랑(內廊)에서 본당(本堂)으로 들어가는 문은 아홉 개가 있다. 이 가운데 황제가 출입하는 문은 가장 크고 높을 뿐만 아니라 조각도 화려하다. 황제의 문 위쪽 벽면에는 ‘레오 6세(866~912)’의 ‘황금 모자이크’상이 그려져 있다. 모자이크는 1933년 소피아 성당이 아직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을 때 발견되어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가운데 인간적인 위엄을 갖춘 예수가 앉아 있는데, 그리스어로 ‘그대에게 평화가 함께할지니, 나는 온 세상의 빛이로다.’라는 구절이 새겨진 성서를 왼손에 들고 있다. 좌측에 성모 마리아와 우측에 가브리엘 천사를 배치했는가 하면 예수님의 발아래에는 ‘레오 6세’가 무릎을 꿇고 예수의 축복을 받는 모습이 모자이크로 묘사되어 있다. 아들을 두지 못한 그는 교회법을 어기고 세 번씩이나 결혼했는데 그것을 용서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 ‘황제의 문’으로 들어서면 본당 중앙 홀과 마주하게 된다. 중앙 홀에 서면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건축 작품 가운데 하나라는 대성당의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첫 느낌은 엄청나게 넓다는 것이다. 고개를 젖히고 위를 올려다보면 더 놀라게 된다. 중앙의 드높은 천정과 거기에 새겨진 정교한 모자이크 성화,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줄기, 수많은 작은 둥근 천정들에 입혀진 고색창연한 프레스코화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긴 성당을 지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왕 솔로몬의 신전을 능가하는 교회를 세웠다고 자부하면서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에게 승리했도다!’라고 외쳤을 정도라니 오죽하겠는가.
▼ 소피아 교회 건축 양식은 ‘다중 돔(Dome)’형의 형태로서 높이 56m에 폭이 33m이다. 요즘으로 치면 대략 20층 높이에 해당된다고 보면 되겠다. 중앙의 거대한 메인 돔과 그것을 받쳐 주는 4개의 소형 돔, 그리고 그것들을 받쳐 주는 많은 보조 돔들로 이루어져 있다. 돔은 정확한 원형이 아니고 약간 타원형인데, 그 무게를 분산해 붕괴를 막기 위해 시공 중에 살짝 틀었단다. 그 아래는 거대한 기둥들이 양옆으로 열병하듯 줄지어 서서 하중을 지탱해준다고 한다. 교회 중앙에 기둥이 없는 널따란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 공간의 넓이는 77mX71.7m이며 메인 천장은 40개의 창문이 있고 그 아래는 수많은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 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 본당의 벽은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n Chrysostom, 초기 기독교의 교부이자 제37대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오스(초기 기독교 저술가이자 안티오키아의 주교)’ 등의 프레스코화로 채워져 있다. 반면에 이슬람계통의 문양(紋樣)도 눈에 띈다. 직경이 7.5m인 거대한 원판 8개에 회교 지도자(알라와 무함마드를 비롯해 아부 바크르, 우마르, 오스만, 알리 등 초대 칼리프들과 알리의 두 아들인 하산, 후세인)들의 이름을 문양으로 써 넣었다. 부자연스러운 광경이나 이 또한 우리가 품어야할 역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저런 부자연속에서 조화를 찾아야만 인류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 성당의 벽과 천정은 온통 모자이크 일색이다. 노란색은 순금이고 흰색은 순은이며, 푸른색을 비롯한 형형색색의 재료는 모두 보석들이란다. 이렇게 치장하는데 황금만 무려 18톤이 들어갔다고 한다. 중앙 돔의 천정은 회칠을 한 위에 이슬람의 아랍어 문양이 새겨져 있고 네 모퉁이는 천사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작은 돔 천정에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의 황금 모자이크가 있으며, 천사 가브리엘, 미카엘이 있단다. 하지만 눈으로 일일이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 왼쪽 복도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있는 게 보인다. ‘땀 흘리는 기둥’이라 불리는 직사각형의 대리석 기둥이다. 기둥에 뚫려있는 구멍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한 바퀴를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단다. 반질반질하게 닳아진 것을 보면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저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돌렸다는 증거일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건축 당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 황제가 두통으로 고생했었는데 이 기둥을 지날 때면 두통이 사라지곤 했단다.
▼ 바닥에 관람객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금(禁)줄을 쳐놓은 공간도 보인다. 하지만 그 문양이 기하학적이라는 것 외에는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 이층 회랑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아니라 편편하게 돌을 깔아 놓았다. 가마를 타고 가는 황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완만한 나선형이지만 5층 높이까지 이어지니 힘이 들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이런 점을 감안했는지 가이드가 노약자들은 일부러 올라가볼 필요가 없단다. 그리고는 계단 입구에 만들어 놓은 패널(panel) 앞에서 이층에서 만나게 되는 모자이크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 이층 난간에 서면 본당 전경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우람하면서도 장엄한 모습이다. 위를 올려다보면 모자이크가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참고로 이층은 여자들이 기도를 드리던 공간이다. 주교회의가 열리기도 했단다.
▼ 본당의 앞부분에는 이슬람의 미흐랍(Mihrap, 무슬림들의 기도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스크에 가면 정면에 아치형 모양의 움푹 들어간 부분을 가리킨다)이 있고, 그 옆에 설교단인 민바르(Minbar)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미흐랍’이 중앙에 놓여 있지 않고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게 아닌가. 소피아의 예배당 방향은 원래 정동(正東)인데도 말이다. 모든 동방 교회는 해가 솟는 동쪽으로 예배당의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슬람의 모스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모든 모스크는 메카를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흐랍을 메카가 있는 동남쪽 방향에다 설치하게 된 이유이다.
▼ 이층 회랑의 '천국의 문'을 통과하면 대리석 문이 나온다. 이 문을 지나면 ‘소피아대성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나타난다. ‘데이시스 모자이크(Deesis Mosaic /간청, 탄원)’로 일명 ‘최후의 심판’ 모자이크’이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좌측에 ‘성모 마리아’, 그리고 우측에는 ‘세례자 요한’이 있다. 심판의 날을 맞은 인류를 위해 세례자 요한과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며 간청하는 내용이란다. 그건 그렇고 성화는 절반 이상이 훼손되어 있다. 이슬람이 덧칠해놓은 회반죽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저리 되었다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성화가 파손되었다고 이슬람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지하는 이슬람이지만 인물 성화를 파괴하지 않고 그냥 회반죽으로 덧칠만 해놓았으니 말이다. 소피아대성당을 처음 정복한 ‘메흐메드 2세’는 이곳을 모스크로 바꾸면서도 기독교 성화를 건드리지 않은 채로 하얀 천으로 그냥 덮어 놓기만 했단다. 11세기까지 로마의 가톨릭과 우상숭배 논쟁으로 격돌하면서 무자비한 성상 파괴 운동을 벌였던 비잔틴 제국이 자신의 종교적 요람이 이슬람으로부터 보호받았다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슬람의 정신이 최고조에 달했던 술레이만 시대에 들어 기독교 성화는 회칠로 살짝 가려졌다. 하지만 쪼아 없애지 않은 덕에 오늘날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가 지켜볼 수 있다. ‘제국을 경영해 본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다른 문화에 대한 아량과 포용의 결과물’이라는 누군가의 주장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다.
▼ 하단에는 작은 액자를 하나 걸어두었다. 회칠로 인해 파괴되어버린 본래의 그림을 상상으로나마 복원해 놓은 모양이다.
▼ 이층 남쪽 회랑 끝에는 ‘콤네누스 황제 모자이크 (Comnenus mosaic)’가 있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요하네스 2세 콤네누스(John II Komnenos)’ 황제와 ‘이레네 황후(Empress Eirene)’가 그려져 있다.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아이는 이들 부부의 아들인 ‘알렉시우스(Alexios)’라고 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요하네스 2세는 신앙심이 깊으면서도 유능한 군주였다고 한다. 그로인해 ‘아름다운 요하네스’라는 뜻의 '칼로안니스'라는 별칭까지 얻었을 정도란다. 또한 그는 자신의 누나와 매형이 역모를 꾸며 암살을 기도했었을 때도 관대하게 용서를 베풀었을 정도로 성격이 온순했다고 전해진다.
▼ 그 옆에는 ‘황후 조에 모자이크(Empress Zoe mosaic)’가 있다. 이 모자이크는 예수를 중심으로 우측에 ‘조에 황후(Empress Zoe)‘가 있고 좌측에는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인 ‘콘스탄티누스 9세(Constantine IX Monomachos)’가 그려져 있다. 조예황후가 들고 있는 것은 봉헌명세서이며 황제는 성금주머니를 들고 있단다. 아무튼 조에는 콘스탄티누스 8세의 딸로 비잔티움 역사상 몇 안 되는 정식 황녀였다고 한다. 그 자신이 스스로 여제가 되기도 했단다.
▼ 주어진 시간이 조금 남아 일층 본당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 옆의 갤러리(gallery)에 줄지어 선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 엄청난 무게를 머리에 이고 묵묵히 서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기둥들의 모양과 색깔이 제각기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제국 곳곳의 신전과 궁전 터에서 가져온 기둥들이라서 그렇단다. 비잔틴 제국 전성기의 위용을 뽐내기라도 하듯 제국 전역에서 최고로 좋은 재료만 골라 와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전에서 뽑아 온 것은 물론이고 붉은 대리석 기둥은 이집트에서, 푸른빛의 대리석 기둥은 에페수스에서 가져왔단다. 에페수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는 고대 그리스 도시이다. 포세이돈 신전에 사용되던 기둥도 두 개나 있단다.
▼ 본당 안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공간들도 많이 보인다. 생김새로 보아 이슬람의 흔적 같은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본당 입구에는 있는 두 개의 큰 항아리는 버가모(Pergamon)로 부터 가져왔다고 한다. 등잔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항아리의 밑에는 수도꼭지가 달려있다. 이 항아리를 발견했을 때는 세 개였는데 하나는 발견한 농부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 속에 은화가 가득 담겨 있었다니 농부는 횡재를 한 셈이다.
▼ 성수대도 성당의 나이만큼이나 오래 묵어 보인다. 아니 이것 역시 다른 곳에서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최고의 교회를 짓기를 원했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중요한 건축자재의 대부분을 제국의 휘하 여러 나라에서 운반해왔었다니 말이다.
▼ 투어를 모두 마치고 출구로 나오는데 소피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모자이크가 문틀 위에 그려져 있다.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보좌에 앉아 있고 우측에는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e the Great)’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의 도시모형을, 좌측에는 ‘유스티아누스 1세(Emperor Justinian)’ 황제가 소피아 교회모형을 자랑스럽게 봉헌하고 있는 모습이다.
▼ 투어가 종료되는 출구 쪽에서 바라본 소피아대성당. 외형적인 구조물은 거대하고 웅장한 둥근 돔과 첨탑 그리고 대리석과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장구한 세월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 반들반들 닳아지고 더러는 퇴색된 상처를 안고 있다.
▼ 밖으로 빠져나오면 ‘블루 모스크’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아무튼 저곳은 마지막 날 일정에 들어 있으니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식당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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