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 10코스
여행일 : ‘18. 11. 17(토)
소재지 : 울산시 북구와 경주시 양남면 일원
산행코스 : 정자항(2.8km)→강동 화암주상절리(3.9km)→관성해변(6.3km)→음천항(1.1km)→나아해변(소요시간 : 13.9㎞, 3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울산의 정자항을 출발하여 강동해변과 신명해변, 경주 관성해수욕장 그리고 수렴리해변을 거쳐 나아해변까지 이르는 10코스는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몽돌해변과 강동화암, 읍천해안 주상절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해안 경관이 절정을 이루는 코스이다. 특히 양남면 하서항부터 읍천항 벽화마을까지 1.7km가량 조성된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일반 주상절리와는 확연히 다른 누워있는 주상절리, 부채꼴 주상절리 등 독특한 자연자원을 만날 수 있어 그 가치가 뚜렷하며 자연이 수놓은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여정으로 손색이 없다. 또한 ’파도소리길‘을 벗어나자마자 등장하는 ’읍천항‘은 값싸고 싱싱한 생선회를 먹기에 딱 좋다. 활어직판장에서 ’참가자미‘ 회를 떠 바닷가에서 먹는 맛은 일품이라 하겠다.
▼ 트레킹 들머리는 정자항(울산시 북구 정자동)
동해고속도로(포항-부산) 동경주 IC에서 내려와 929번 지방도를 이용해 문무대왕릉 방향으로 달리다가 대본삼거리(경주시 감포읍 대본리)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울산방면으로 내려오면 산하교차로(울산 북구 산하동)가 나온다. 이곳에서 동해안 방향으로 빠져나와 바닷가까지 온 다음 우회전하여 내려오면 ’정자교(橋)‘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기 바로 직전에 ’정자항‘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왼편으로 열린다. 대문을 겸한 조형물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조형물 바로 뒤에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 보관함‘이 설치되어 있다.
▼ 정자항과의 첫 만남은 ’고래‘로부터 시작된다. 방파제의 양 끝에 세워진 흰색과 빨강색의 두 등대가 모두 ’귀신고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 정자항이 고래와 인연이 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포석이 아닐까 싶다. 참! 그러고 보니 이곳 정자항에서 동쪽으로 10∼20㎞ 떨어진 바다가 고래 구경의 포인트라고 했다. 날씨가 궂은 날에는 1000∼3000마리의 참돌고래 떼가 수면 위로 튀어 올라 군무를 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억세게 운이 좋은 날에는 동해안을 따라 회유하는 향고래, 흑범고래, 밍크고래, 큰머리돌고래, 큰돌고래, 범고래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가끔가다 그물에 걸려 죽은 돌고래가 항구로 실려 오는 경우도 있단다. 이왕에 거론했으니 한걸음 더 나가 보자.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2년. 미국의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1884∼1960)’는 ‘악마 물고기(Devil's Fish)’를 찾아 일본의 포경선을 타고 ‘물 반 고래 반’의 고장인 울산 장생포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귀신고래라고 부르던 회색의 거대한 고래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장생포에서 1년 동안 머물며 귀신고래를 연구한 앤드루스는 귀신이 곡할 정도로 신출귀몰한 이 악마 물고기에게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라는 학명을 부여했다. 훗날 미국 뉴욕박물관장을 역임한 이 ‘고래박사’는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이기도 했다.
▼ ‘정자항’으로 들어서니 ‘활어직판장’이 길손을 맞는다. 시작부터 횟집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이라서 그냥 지나치는데 건어물을 파는 노점(露店)들이 길게 늘어서있다. 좌판에는 인근에서 많이 잡힌다는 가자미와 오징어가 따스한 가을 햇볕과 바람에 꾸덕꾸덕 마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아무튼 정자항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큰 규모이다. 하긴 1971년에 이미 '국가 어항'으로 지정되었다니 그럴 만도 하겠다. 이곳 정자항은 원래 참가자미와 문어로 유명했다. 하지만 최근 동해의 수온 변화로 울진과 영덕에서 주로 잡히던 대게가 정자 인근의 바다에서도 대량으로 잡히기 시작했단다. 그래선지 바닷가에 대게 조형물을 커다랗게 만들어 놓았다. 참고로 ‘정자’라는 마을 이름은 우리가 흔히 보는 ‘정자(亭子)’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옛날 옛적 이곳에 수십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 정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 탐방로는 해안도로의 가장자리에다 내놓은 ‘자전거길’을 따른다.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이라고 적힌 노면 표시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수많은 갈매기가 쉬고 있는 정자해변에 이른다. 정자해변은 바둑알 크기의 자갈돌이 널려 있어 몽돌해변이라 부르는데 일반 백사장과는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거기다 갯바위까지 함께 어우러지며 사시사철 맑은 바다풍경을 선사해준다. 참! 깜빡 잊을 뻔했다. 정자항을 빠져나오면 시야가 툭 터지면서 10코스의 대부분 구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는 것을 말이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한번쯤 눈에 담고 길을 나서는 게 어떨까 싶다.
▼ 산하천(川)을 건넌 탐방로는 이제 산하동의 해안을 따른다. 오른편은 여전히 몽돌해변이지만 왼편은 신시가지로 개발해가는 도중이어선지 조금은 어수선한 모습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아름다운 풍광이 어디로 가겠는가. 해양수산부에서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아무 이유도 없이 이곳 정자마을을 뽑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다 2011년에는 한국관광공사에서 ‘3월의 가볼만한 곳’에 이곳을 선정했으니 이들이 증인인 셈이다.
▼ 길을 나선지 25분쯤 지나는 곳에서 ‘화암마을’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이정표 하나를 만난다. 3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강동화암 주상절리’로 가고 싶으면 오른편 길로 들어서란다. 참고로 이정표에 나와 있는 ‘화암(花岩)’이란 마을 이름은 주상절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주상체의 횡단면이 꽃무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 탐방로는 아직도 몽돌해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바둑알 크기에서 손가락 굵기 만한 다양한 자갈들로 뒤덮인 해안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얘기이다. 몽돌은 자갈이 오랜 세월 파도에 휩쓸려 깎이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저런 몽돌들은 모래와 달리 몸에 달라붙지 않아 쾌적함을 준다고 한다. 피서객이 많이 찾는 이유일 것이다. 참고로 정자해변은 깊은 수심과 높은 파도 때문에 해수욕은 금지된다고 한다. 하지만 몽돌을 밟으며 해변을 거닐거나 물에 발을 담그는 것까지 막지는 않는단다. 아무튼 파도가 치면 밀려왔다가 다시 가라앉는 돌들이 내는 소리로 귀가 즐겁다. 그리고 청량함이 심신으로 전해지면서 새로운 활력이 되살아난다.
▼ 그렇게 5분쯤 더 걷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자그만 동산 하나가 나타난다. 그 앞에 정자(亭子)를 세우고 ‘강동화암 주상절리(江東花岩 柱狀節理 :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2호)’에 대해 적어놓은 안내판을 설치했다. 동해안에 나타난 주상절리 가운데 용암 주상절리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각도로 형성되어 있어 눈요깃감으로도 훌륭하다는 내용을 적어 놓았다.
▼ 정자의 뒤로 넘어가자 주상절리(柱狀節理)가 눈앞에 펼쳐진다. 주상절리는 단면이 육각형 내지 삼각형으로 된 긴 기둥 모양의 바위가 겹쳐져 있는 특이 지질 가운데 하나이다. 이 곳 화암마을 해변 일대에 있는 주상절리는 신생대 제3기(약2,000만 년 전)에 분출한 현무암 용암(Lava)이 냉각하면서 열수축 작용으로 생성된 냉각절리라고 한다. 그 생김새는 수평 또는 수직 방향으로 세워진 다량의 목재더미 모양을 하고 있다.
▼ 도로로 되돌아와 50m쯤 더 걷자 또 다른 안내판이 나타난다. 아까와 같은 내용이 적혀있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만은 아까와 사뭇 다르다. 기둥 모양의 절리(節理: 암석의 물리적 연속성을 단절하는 분할선이나 균열)가 아까와는 달리 또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육각형 또는 삼각형 돌기둥이 수평으로 쌓여 있는데, 그 형상이 나무를 쌓은 듯 가지런히 누워있는 모습과 흡사해서 신기함마저 든다. 대부분의 주상절리가 수직 주상절리인데, 이곳의 주상절리는 누워 있는 형태인 와상 주상절리라고 보면 되겠다. 저 돌기둥의 지름은 대개 50cm, 길이는 7m에서 수십m에 이른다고 한다.
▼ 또 다시 길을 나선다. 신명교(橋)를 건너자 이번에는 신명해안이다. 이곳도 역시 모래 대신에 조그마한 몽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조금 전에 지나온 정자해안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얘기이다. 아니 확실하게 달라진 점도 있다. 동해안 특유의 코발트빛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거기다 그런 멋진 풍광에 매력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엄청나게 많은 갈매기떼가 해변을 온통 뒤덮어버렸다. 겨울 한낮의 따사로운 햇볕을 쬐는 갈매기들로 인해 휑한 겨울 해변이 조금은 덜 쓸쓸해 보인다. 갈매기 떼의 비상에 파도가 몽돌을 휩쓸고 내려갈 때 들려주는 ‘짜르륵 짜르륵’ 소리가 더해지면 겨울 바다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 따뜻해진다.
▼ 몽돌해안이 끝나자 한적하기 짝이 없는 작은 포구가 나온다. 어촌정주어항인 ’신명항‘일 것이다. 포구의 옆에는 이 마을의 일주문격인 선돌(立石)이 우뚝 솟아올랐다. 아니 그냥 바위가 아니라 왜소하긴 하지만 바위봉이라고 하는 게 옳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기묘하게 생긴 바위꼭대기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린 해송(海松)의 끈질긴 생명력이 참으로 경이롭다. 주상절리에서 25분, 트레킹을 시작한지는 55분이 지났다.
▼ 신명항을 지나자 바다에 들어앉은 바위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난다. 그 생김새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게 하나도 없는 바위들이다. 덕분에 바다는 한 굽이를 돌 때마다 품고 있는 또 다른 속살들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땅이 경계를 이룬다는 ’지경마을(地境里)‘을 만난다. 행정구역이 울산시(북구)와 경상북도(경주시)가 경계를 이룬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마을 앞에는 작은 배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항구가 만들어져 있다. 아무튼 경주 지역에 들어서자 길 찾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종합안내판과 이정표는 물론이고 간이안내체계(나무패널, 고리형패널, 리본, 바닥페인팅)까지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들도 심심찮게 만난다.
▼ 바위가 널린 천혜의 바닷가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다. 바닷가에 ’전복양식‘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가 싶더니 물질을 준비하고 있는 해녀들도 보인다.
▼ 한참을 앞서가던 집사람이 되돌아오는 게 보인다. 항구의 끄트머리에서 길이 막혀있다는 것이다. 맞다. 해파랑길은 항구가 끝나기 전에 왼편으로 열린다. 갑자기 길이 나뉘어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들머리에 이정표(관성해수욕장← 1.4㎞/ 강동화암 주상절리↓ 2.6㎞)를 세워놓았을 뿐만 아니라 전신주 등에 ’해파랑길‘의 진행방향 표식이 너절하다 싶을 정도로 잘 붙여져 있으니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계속해서 함께하고 있는 ’자전거길‘을 따른다고 생각하면 더 쉬울 수도 있겠다. 길바닥에 자전거표시가 확실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 골목으로 들어서자 계단이 나온다. 오른편에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수 있도록 좁은 통로도 만들어 두었다. 조금 전에 보았던 이정표의 상단에 적혀있던 매우 급한 오르막이니 걸어가라는 안내문구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20%의 경사로가 60m 정도 이어진단다.
▼ 계단을 올라서면 국도 31호선을 만난다. 도로변에 5㎞ 전방에 주상절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우리가 길을 제대로 들어왔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참! 국도로 올라왔으니 해파랑길 찾기에 대해 거론해 보자. 길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전신주 등 주변의 시설물들에 ’해파랑길‘의 방향표시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이것 하나만 기억해 두면 될 일이다. 국도를 따라 걷다가도 해변으로 길이 연결될 경우에는 서슴없이 내려가라는 얘기이다. 틀림없이 해파랑길 표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잠시 후 탐방로는 다시 국도와 헤어져 오른편 수렴리로 들어가는 이차선 도로를 따른다. 이곳에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이라고 적힌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 조성된 작은 공원에는 배짱이 조형물을 배치했다. 암수 한 쌍인 모양인데 한 마리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다른 한 마리는 피리를 불고 있다.
▼ 도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내놓은 자전거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바닷가 풍경이 참 아름답다.
▼ 그렇게 조금 더 걷자 이정표(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4.7㎞/ 정자항↓ 6.4㎞) 하나가 나타난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트니 바닷가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잠시 해파랑길 표식을 놓치고 허둥대다가 바닷가를 따라 잠시 걸으니 ’관성해변‘이다. 솔숲과 모래밭, 자갈이 함께 공존하는 해변으로 갯바위가 어우러진 바다 풍경이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곳이란다. 지경리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는 20분이 걸렸다.
▼ 카메라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관리센터 옆에는 첨성대(瞻星臺) 모양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관성(觀星)이라는 마을 이름에 얽힌 사연을 전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신라 시대에 별을 관측해 시간을 측정하는 첨성대 같은 시설이 있었던 마을이라는 것이다. 거기다 해변에 솔밭이 있다고 해서 ’솔밭‘이라는 낱말을 하나 더 붙여 ’관성솔밭해변‘이 되었다.
▼ 관성솔밭해변은 경주시 관내 해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거기다 울창한 솔밭까지 끼고 있으니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 법도 하지만 위치가 울산과 경주 경계에 놓여있는 탓에 접근성과 주목도가 모두 떨어진단다. 휴가철에도 사람이 덜 찾는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그 반대인 모양이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들이 그 넓은 모래사장을 꽉 매워버렸다. 텐트까지 쳐져 있는 걸로 보아 몇몇은 날까지 새웠던 모양이다.
▼ 원래의 해파랑길은 다시 31번 국도로 올라서야 했지만 우린 그냥 해안가를 거닐어 보기로 했다. 강태공들의 낚시 솜씨도 엿볼 겸해서다. 그러다가 다시 해안가로 오르니 솔밭 사이로 난 탐방로가 나타난다. 하나같이 오래 묵어 보이지 않는 소나무들이다. 그러고 보니 금년 초(5월)엔가 이곳에 산책로를 조성한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당시 기사는 이 해송(海松)들이 10년 전에 심은 것이라고 했다.
▼ 솔밭길이 끝나자 수렴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수호천사 ‘수렴할매바우’로 유명하다. 할매바우에 소원을 빌면 다 이루어진다는 전설까지 있는데 우리 부부는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소문난 맛(회)집을 찾느라 정신이 없는 친구와 보조를 맞추려다보니 할매바우가 있다는 것조차 깜빡해버린 것이다.
▼ 수렴리를 지났다싶으면 ‘전적비(戰蹟碑)’가 길손을 맞는다. 1983년 이곳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5명을 사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란다.
▼ 또 다시 해안도로를 따른다. 이곳도 역시 모래 대신 크고 작은 몽돌이 해변을 이루고 있다. 아기 손처럼 작은 몽돌부터 어른 몸보다 큰 바위에 이르기까지 크기가 다양한데, 특히 겨울철 파도가 밀려왔다 내려갈 때 몽돌들을 스치며 내는 소리가 매력인 해변이다.
▼ 그렇게 잠시 걷자 하서해안에 이른다. 몽돌해변으로 여름에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일 뿐만 아니라, 해수욕장 뒤쪽으로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바닷바람을 만끽할 수도 있다. 과연 ‘아는 사람만 아는 숨겨진 고즈넉한 바닷가’라는 입소문에 어울리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2005년에 조성되었다는 해안공원에는 ‘6·25참전 유공자 명예 선양비’가 세워져 있다. 이 지역 출신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유공자를 기리기 위해 2005년에 세웠는데, 가운데 자연석으로 된 비석을 세우고 양쪽에 설치한 까만 비석에는 500여명의 참전용사와 월남전에 참가한 파월장병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그밖에도 전망대와 파고라. 캠핑장, 평상, 식수대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는 이만한 곳도 드물겠다.
▼ 청동 인어상도 보인다. 월성원자력발전소의 후원으로 양남초등학교 김진석 선생 외 2명이 제작했단다.
▼ 해수욕장이 끝나는 곳에 ‘하서(下西) 마을’이 있다. 탐방로는 마을 앞 도로의 가장자리에 만들어놓은 ’자전거도로‘를 따른다. 자전거와 사람이 함께 쓰니 주의가 필요한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동차라 하겠다. 자전거도로를 온통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피해 차도로 들어설 수밖에 없는데 꽤나 많은 차량들이 왕복 2차선 도로를 씽씽 달리고 있어서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참고로 ‘하서마을’은 서촌(瑞村) 가운데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해서 원래는 하서(下瑞)로 불렸다고 한다. 신라6부시대 금산가리촌에 속했던 양남일대를 서촌(瑞村)으로 불렀는데, 지금도 ‘서동리(瑞洞里)’로 불리는 마을이 있고 이 일대(상계, 수렴 등)를 상서(上瑞)라고도 한다. 그리고 지금의 ‘환서리(環西里)’ 일대(석읍, 석촌)를 중서(中瑞)라고 하며, 하서는 그 아래에 위치했으므로 ‘하서(下瑞)’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서(西)’를 쓰고 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마을 이름을 새로 지으면서 변한 것이란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설도 있으니 하루빨리 바로잡아야할 일이다.
▼ 하서마을을 관통하는 ‘하서천(川)’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하서교(橋)’이다. 해파랑길 지도에는 이 다리를 건너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물빛사랑교'라는 보행자 전용의 다리를 새로 놓았기 때문이다. 생김새만 놓고 보아도 예쁜데 거리까지 400m를 단축시켰으니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다리의 중간에 만들어 놓은 돔 모양의 쉼터에는 ‘물빛 사랑교’라는 이름이 붙게 된 연유가 적혀있다. 예로부터 인근 마을 처녀 총각들이 달빛 어린 하서천 물빛을 바라보며 물속에 잠겨 있는 수많은 별을 헤아리며 사랑을 속삭였다는 데서 착안했다고 한다.
▼ 탐방로는 다리를 건너서도 해안가를 따른다. 아직까지도 지주목(支柱木)에 의지해서 서있을 정도로 이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소나들이 가로수 삼아 길게 늘어서있어 조금은 삭막한 풍경이다. 아무튼 아직도 우린 ‘하서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1리’에서 ‘4리’로 단위부락만 바뀌었을 따름이다. 오른편에 펼쳐지는 해안의 이름 또한 ‘하서’일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 하서4리에는 ‘주상절리’란 이름의 대형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파도소리 주상절리길’ 안내도까지 세워놓을 걸 보면 이곳에 차를 세워놓고 주상절리를 구경하라는 모양이다. 그러나 탐방로는 ‘하서리’를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 보다. 하서항(율로진리항)의 오른편으로 길게 늘어선 방파제 끝에 만들어놓은 ‘사랑의 열쇠’가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말이다. 방파제에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바다’라는 뜻의 ‘사랑海’를 테마(Thema)로 젊은 연인들의 프로포즈 장소와 포토존까지 만들어 놓았다. 참고로 이곳 하서항(율포항)은 신라시대 때의 재상인 박재상이 내물왕의 왕자인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왜국으로 출발했던 장소이다. 사랑의 자물쇠는 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재회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세웠다고 한다. 억겁의 세월이 지나서도 변하지 않고 있는 박재상과 그의 아내를 모티브로 삼은 모양이다. 하서해안공원에서 이곳 하서항까지는 15분이 걸렸다.
▼ 방파제를 지나자마자 바다에 널려있는 먹빛의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하나하나가 주상절리가 아니겠는가. 아까 주차장에서 보았던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에 들어선 것이다. 해파랑길의 공식 구간에 포함된 양남면 하서항에서 읍천항까지의 1.7㎞ 해안길이다. 이 구간은 2009년까지만 해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해안작전경계지역이었다고 한다. 무모한 낚시꾼들이 몰래몰래 숨어들어 낚시를 하다 발각돼 가끔 혼쭐이나던 장소였다는 것이다. 군부대가 철수한 후 눈 밝은 사진가들이 담은 사진과 입소문을 통해 주상절리 실체가 일반인들에게까지도 알려졌고, 2012년에는 경주시에서 '파도소리길'을 정식 개통했단다. 기울어진 주상절리와 누워 있는 주상절리, 위로 솟은 주상절리, 부채꼴 주상절리 등 다양한 주상절리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으니 나라에어서도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 2012년에는 천연기념물(제536호)로 지정해 놓았다.
▼ 주상절리 옆으로 나있는 탐방로는 데크(deck) 길로 조성해 걷기에 좋도록 했다. 흙길과 데크 길을 번갈아 걸으면서 갖가지 형태의 자연 예술 조각품들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벤치가 곳곳에 놓여있어 사색의 공간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아무튼 파도소리가 온몸에 가득 차오를 즈음이면 첫 번째 전망데크를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워있는 주상절리(臥狀 柱狀節理, columnar joint)’와의 첫 대면이 시작된다. 길쭉한 나무들을 차곡차곡 쌓아둔 형상인데, 누워 있는 주상절리의 경우 땅이 벌어진 사이로 용암이 올라오면서 차가운 부분에서 갈라져 식어 들어가 옆으로 누운 것이란다.
▼ 운치 있는 흙길을 따라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위로 솟는 주상절리’가 나타난다. 조그마한 네모난 나무기둥을 전부 세워둔 모양을 하고 있다. 아니 거대한 숯을 한 묶음씩 엮은 모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 위로 솟는 주상절리를 지나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주상절리 전망대’가 나타난다. 타워로 가는 길에는 왜소한 소나무들을 머리 위에 얹고 있는 기암(奇岩)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해안가 커다란 바위와 그 위에 뿌리를 내린 오래 묵은 소나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관계지만 밀어내지 않고 서로의 몸을 잘 안아주고 있다. 이 부근은 KBS 1TV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의 촬영지이기도 하단다. 그만큼 경관이 빼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 경주 해양관광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주상절리 전망대’는 2017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높이 35m의 4층 전망타워를 비롯해 관람객 편의시설을 갖춘 조망공원으로 꾸며졌다. 연중 무휴로 운영하고 있는 타워에 오르면 자연이 연출한 조각품이라 일컬어지는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주상절리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다. 특히 이곳 양남주상절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부채꼴 주상절리’가 발아래에 펼쳐지는데 가히 장관이라 하겠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싶다면 타워를 내려갈 것을 권하고 싶다. 타워는 유리로 막혀있기 때문이다.
▼ 전망대에는 작품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다. 지난 달엔가 경주바다 100리길의 아름다운 해양 자연환경과 해안에 숨어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경주해요!, 전국 사진공모전’이 열렸다고 하더니 입상작들을 전시하고 있나 보다.
▼ ‘부채꼴 주상절리’는 이곳 양남 주상절리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길이 10m가 넘는 주상절리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바다 위에 곱게 핀 해국 같다고 하여 ‘동해의 꽃’이라고도 부른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발견되었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단다. 참고로 경사진 주상절리는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다 굳어진 것이지만 부채꼴 주상절리는 어떻게 형성됐는지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단다.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첫 번째는 마그마가 올라오던 분화구였을 것이라는 설이다. 지하에서 용암이 올라오다 식으면서 방사성 모양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둥근 연못으로 용암이 흘러들어 식으면서 방사성 모양이 됐을 것이라는 설이다.
▼ 부채꼴 주상절리를 지나니 다른 모양의 주상절리가 또 다시 나타난다. 정사각형 나무토막이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의 주상절리도 보인다. 그런 풍광들을 눈에 담으라는 배려인지 전망대를 하나 더 만들어 놓았다.
▼ 잠시 후 출렁다리가 나온다. 지난 2012년에 만든 폭 1.5m, 길이 32m의 현수식 출렁다리인데 이 다리를 빠져나오면 주상절리 관광은 끝난다. 그렇다고 주위 경관까지 끝났다는 얘기는 아니다. 진행방향 저만큼에 읍천항이 나타나면서 새로운 경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 읍천항은 조그마한 어촌마을 포구이다. 동해 근해에서 가장 높은 해수온을 보이는 읍천항은 사시사철 감성돔과 돌돔, 벵에돔 낚시가 가능하다고 한다. 파도소리길이 있기 전부터 이미 낚시꾼에게 인기를 끌던 곳이란다. 2010년부터는 인근 월성원자력본부가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아름다운 지역 만들기' 사업을 벌였다. 회색빛 콘크리트 담장이 갤러리로 바뀌었으니 '읍천항 갤러리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우린 그런 풍광을 눈에 담지 못했다. 방파제에 쭈그리고 앉아 ‘어촌계 활어직판장’에서 구입한 참가자미회를 먹느라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노동을 내려놓고 물결에 잠시 몸을 맡긴 채 햇빛 바라기를 하고 있는 작은 어선 옆에서 생선회를 안주삼아 마시는 술은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였다. 오랜 친구가 있고 술이 있는데 이보다 더한 행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참고로 하서항에서 이곳 읍천항까지는 35분이 걸렸다. 1.7㎞쯤 되는 거리임을 감안할 때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다른 한편으론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는 얘기도 될 것이고 말이다.
▼ 다시 길을 나선다. 바닷가를 끼고 나있는 탐방로는 아예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100m 남짓한 해수트레킹로드가 만들어져 있는가 하면 산책로와 광장, 파고라가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지역농산물 야외 특판장도 보인다. 작년엔가 테마가 있는 특성화거리를 조성한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사업이 마무리 되었나보다. 당시 기사에서는 이 길을 ‘탈해왕 길’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신라의 철기문화를 이끈 석탈해왕을 테마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트레킹 종료지점 근처의 소공원에는 석탈해와 관련된 조형물들을 설치해 놓았다. 참고로 나아리(羅兒里)는 삼국유사에 신라 석탈해왕의 탄생설화가 얽힌 ‘아진포(阿珍浦)’로 기록된 유서 깊은 마을이다. 1975년부터 시작된 월성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대부분 원전부지에 내어주고 지금은 월성원전 남쪽 수아(수남)마을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석탈해왕의 유허비가 이 마을에 서 있고, 석탈해왕의 탄생설화와 관련한 ‘수아(水兒, 아기 석탈해를 거두어들인 곳)’, ‘장아(長兒, 석탈해가 자랐다는 곳)’, ‘내아(乃兒)’, ‘나아(羅兒)’, ‘아진포(阿珍浦)’ 등의 지명들이 남아 옛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신라 6부시대 금산가리촌에 속했던 양남일대를 서촌(瑞村)으로 불렀고 이 마을이 속한 아진포는 ‘아서(阿瑞, 兒瑞)’라고 불렀다는 것도 석탈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 트레킹의 날머리는 나아해변(경주시 양남면 羅兒里)
그렇게 조금 더 걸으면 몽돌과 파도의 합주가 매력이라는 나아해변이 나오면서 ‘해파랑길 10코스’가 끝을 맺는다. 조금씩 가까워지던 월성원자력발전의 건물들이 이젠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저 발전소로 인해 이후의 해파랑길은 뚝 끊겨버린다. 해파랑길이 다시 시작되는 봉길리 해안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니 기억해 두자. 아무튼 10코스를 걷는 데는 4시간이 걸렸다. 지금이 제철이라는 참가지미회를 먹느라 1시간 조금 못되게 쉬었으니 실제로 걸은 시간은 3시간 10분인 셈이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application)에 찍힌 거리가 13.9㎞이니 꽤나 부지런히 걸었다고 봐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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