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8코스
여행일 : ‘18. 9. 15(토)
소재지 : 울산시 동구 및 북구 일원
산행코스 : 염포삼거리(4.0km)→울산대교전망대(3.5km)→방어진항(2.9km)→대왕암공원(2.1km)→일산해변(거리 및 소요시간 : 12.5㎞(실제는 15.5㎞)에 4시간 10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1962년 울산이 ’특정 공업지구‘로 지정이 되자 이 일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로 변한다. 군(郡)에서 시(市)로 승격이 되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OIL, LG화학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들어서면서 조그만 마을이 국내 대표 중화학 도시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울산에 들어서면 그런 공업도시의 풍광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산업단지가 동해바다 쪽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오늘 걷게 되는 해파랑길 8코스는 이런 산업도시 울산의 진면목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솔마루길과 더불어 울산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염포산 숲길을 지나 일산해변까지 이어지는데, 염포산 숲길을 걷는 도중에 위에서 말한 울산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가 하면, 예로부터 피난항구 역할을 했던 방어진항과 해식 절벽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한 대왕암공원 등 뛰어난 경관들도 여럿 만나게 된다. 특히 걷기가 마무리되는 일산해변은 다양한 먹거리와 숙소가 있다. 8코스의 종점을 일산해변으로 잡은 이유일 것이다.
▼ 들머리는 염포삼거리 근처 SK주유소(울산시 북구 염포동 990-5)
울산고속도로 울산 IC에서 내려와 북부순환도로를 타고 ’삼호교‘를 건넌 다음, 다운사거리(중구 다운동)에서 우회전 ’태화로‘를 따른다. 이 길은 태화강변을 따라 내려가면서 ’강북로‘와 ’아산로‘로 연이어 이름이 바뀐다. 현대자동차 선적장(船積場)을 지나자마자 성내삼거리(북구 염포동)에서 좌회전하여 방어진순환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잠시 후 염포삼거리(북구 염포동)가 나온다. 해파랑길 8코스의 들머리인 SK주유소는 이곳 염포삼거리에서 100m쯤 더 들어가야 나온다.
▼ 주유소 옆 골목길로 들어서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들머리부터 1km 정도는 염포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옛날 신작로가 뚫리기 전 방어진에 살던 주민들이 고단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읍내를 오가던 고갯길이라고 보면 되겠다. 15분쯤 걸었을까 약수터(이정표 : 염포산 정상 0.3㎞/ 거북이주유소 0,7㎞)가 나온다. 삼거리라서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정상은 왼편으로 나있으나 해파랑길은 오른편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서슴없이 정상으로 향한다. 모처럼 나선 길이니 염포산 정상을 빼먹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거기다 염포산을 지나자마자 두 길은 또 다시 합쳐진다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 조금 더 가팔라진 오르막길을 따라 8분쯤 더 걷자 염포산 정상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3분만이다. 정상은 아예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운동기구와 벤치를 놓았는가 하면 조망 좋은 곳에는 오승정(五勝亭)이라는 정자도 지어놓았다. 산과 바다, 강, 고을, 산업단지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조망과 동구의 발전과 번영을 기원한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라고 한다. 아무튼 정상은 운동과 조망, 그리고 휴식까지 겸할 수 있는 복합공간이라 하겠다. 염포산은 신작로가 뚫리면서 방어진 사람들의 삶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90년대 이후 사람들이 다시 찾게 되면서 각종 시설물들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 그렇게 염포산은 삶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한 휴식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 계속해서 트레킹을 이어간다. 이정표(화정삼거리↗ 2.8㎞/ 한마음 체육공원↑ 1.1㎞/ 남목↖ 3.1㎞)가 가리키고 있는 화정삼거리 방향이다. 정상을 지나면서 탐방로는 넓어진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번갈아 나오는데 차량 두 대가 서슴없이 비켜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이런 이점을 지자체에서 놓쳤을 리가 없다. ’산악자전거 코스‘로 조성했음은 물론이고 매년 ’전국 산악자전거대회‘까지 열고 있단다.
▼ 탐방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갈림길을 만든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 곳도 빠짐없이 이정표를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해파랑길의 방향표시를 그려 넣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이 표시를 따라 진행한다면 길을 잃는 등의 불상사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염포산 일대의 지도를 그려 넣은 안내판도 보인다. 탐방로는 주황색의 길을 따라 ’문현삼거리‘까지 이어진다. 가는 길에 ’천내봉수‘를 보고 싶다면 잠시 해파랑길을 벗어나면 된다.
▼ 염포산 정상에서 15분쯤 내려왔을까 오른편으로 제법 또렷하게 나있는 오솔길 하나가 보인다. 이정표(염포산 정상 1㎞)에는 방향표시가 보이지 않지만 일단은 들어서고 본다. 눈에 담을만한 뭔가가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 결과는 훌륭했다. 50m 남짓 들어가는 곳에 전망데크가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울산공단과 울산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이다. 잠시 후 그런 갈림길이 또 다시 나타나니 이 또한 놓치지 말 일이다. 거의 같은 풍경이 나타나지만 아까보다 훨씬 더 시야가 넓어진다.
▼ 잠시 후 탐방객들은 '울산대교 전망대'를 마주한다. 2015년 5월, 울산대교의 개통에 맞추어 문을 연 울산대교 전망대는 울산대교와 울산 산업단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다. 특히 여기서 바라보는 울산대교와 산업 단지 야경은 백미(白眉)로 세간의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전망대 개장 후 무려 1년 동안을 야간 개장 없이 오후 6시까지만 운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16년 6월부터 야간 개장을 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 지금은 울산을 찾은 사람라면 한 번쯤은 꼭 들르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 해발 140m의 언덕에 지어진 4층(63m) 높이의 타워(tower)로, 옥외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야경(夜景)은 ’울산 12경‘ 가운데서도 으뜸이라고 한다. 이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벽에다 ’울산 12경‘의 사진들을 그려 넣었다. 전망대에서 오르면 '골리앗 크레인'으로 상징되는 조선소 풍경과 함께 2015년에 개통된 ’울산대교(蔚山大橋)‘가 한눈에 들어온다. 염포산을 울산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준 계기가 된 시설물이다. 울산대교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바로 염포산에 있기 때문이다. 전망대에 올라온 시민들은 모두 '염포산'에 오른 셈이 되니, 염포산 안 가본 울산 시민이 어디 있겠는가. 참고로 울산 남구와 동구를 잇는 울산대교는 물류 수송비용 경감이라는 경제적 측면이 강하다. 다른 한편으론 울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국내의 단경간 현수교 가운데 가장 긴 다리이기 때문이다.
▼ 계단을 이용해 3층으로 내려오니 이곳도 역시 전망대로 꾸며놓았다. 4층은 옥외인데 반해 이곳은 옥내인 것만 다를 뿐이다. 벽에는 사진으로 담은 울산시와 동구의 발전사를 그려 넣었다. 창가에는 조망도까지 세워두었다. 실경과 비교해가면서 그 경관이 품고 있는 역사까지 되새겨 보라는 모양이다.
▼ 전망대에서 내려와 또 다시 트레킹을 이어간다. 여기서부터 방어진까지는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하긴 염포산 정상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도 오르막길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17~8분 정도를 걷자 ’방어진체육공원‘이 보이고, 곧이어 ’천내봉수대(川內烽燧臺)‘의 들머리임을 알리는 대문이 탐방로의 오른편에 만들어져 있다. 울산만의 관문을 지키던 여러 봉수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니 잠시 짬을 내어 들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하지만 봉수대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기존의 탐방로를 따라가면 된다. 참고로 봉수는 성격에 따라 경봉수(京烽燧)와 내지봉수(內地烽燧) 그리고 연변봉수(沿邊烽燧)로 구분되는데 이곳 천내봉수는 연변봉수에 속한다. 경봉수는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던 중앙봉수로서 서울 목멱산(木覓山)에 위치하여 목멱산봉수 또는 남산봉수라고 불렀다. 연변봉수는 해륙 변경(海陸邊境)의 제1선에 설치하여 연대라 하였으며, 내지봉수는 연변봉수와 경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로서 수적으로 다수(多數)였다.
▼ 봉수대로 들어가는 길은 판석(板石)을 깔아놓는 등 정비가 잘 되어있다. 길가에 벤치를 놓아두었는가 하면 봉수대에서 사용하던 신호전달 비품과 거화(炬火:횃불) 재료, 거주시설과 비품, 주전(남목)봉수대 관련 고문서 등을 설명해놓은 안내판을 줄줄이 세워놓았다. 작년엔가 이곳에 ’역사로드‘를 조성한다는 기사를 보았던 것 같은데 당시에 설치한 시설들인가 보다. 이왕에 거론했으니 봉수제도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아보자. 봉수(烽燧)는 과거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의 군사통신제도이다. 조망이 양호한 산정에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중앙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봉수제가 성립된 것은 1149년(고려 의종 3)으로, 1급에서 4급의 봉수 거화수(炬火數)를 규정하고, 봉수군의 생활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그 체제가 정비되었다. 5거 거화수 등 관계 규식 마련, 각 도 연변의 연대(烟臺) 축조, 봉수선로 획정 등을 통해 그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각 봉수에는 오장(伍長)과 봉수군(烽燧軍)이 교대로 근무하면서, 평상시에는 한 홰(烽),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홰,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네 홰, 적과 접전하면 다섯 홰의 봉수를 올리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1894년(고종 31)에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가 결정되었고, 다음해에는 각처 봉대와 봉수군을 폐지함으로써 모든 봉수제가 완전 폐지되었다.
▼ 잠시 후 해발 120m의 봉화산 정상에 위치한 ’화정 천내봉수대(華亭 川內烽燧臺 : 울산광역시기념물 제14호)‘에 이른다. 하지만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본래의 모습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공사현장의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서 천내봉수대의 노선을 확인해 볼 수 있었을 따름이다. 천내봉수는 부산해운대에 위치한 간비오봉수에서 출발하는 직봉노선의 7번째 봉수로, 남서쪽에 위치한 가리산(加里山)에서 신호를 받아 동북쪽의 남목(南木 : 현재 주전봉수)으로 전해주는 연변봉수(沿邊烽燧)였다.
▼ 봉수대로 들어왔던 반대방향으로 빠져나오면 기존의 탐방로(염포산 정상에서 5㎞ 지점)와 또 다시 만난다. 이후는 포장도로의 연속이다. 눈에 담을만한 풍경이 없어진다는 얘기이다. 아니 틀렸다. 가로수 역할을 하고 있는 나무들이 모두 무궁화나무라는 것만큼은 누가 뭐래도 신선한 충격이라 하겠다. 지난번 태화강변(7코스)의 무궁화동산에 이어 이곳에서도 무궁화 꽃무리를 만난 것이다. 울산시민들의 지극한 무궁화사랑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본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맨날 벚꽃잔치만 보아오며 식상해진 내 가슴에까지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 염포산 정상에서 내려선지 1시간 20분쯤이면 ’방어진체육공원 입구 교차로(동구 화정동)‘가 나오면서 시내를 통과하는 구간이 시작된다. 근처의 버스정류장에는 이곳의 지명을 ’송정타워‘라고 적고 있으니 참조한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100m쯤 걷다가 ’문현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잠시 후 ’문재삼거리(동구 방어동)에서 오른편 ‘문재로’로 들어서면 방어진항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우린 이를 놓치고 말았다. 해파랑길 표식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 길을 놓쳤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잘못 들어섰다 싶으면 하시라도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꽃나루 공원’을 지날 즈음에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알아차렸고, 공원이 끝나는 곳에 있는 사거리(꽃나루공원 앞 교차로)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북진5길‘을 따랐다. 가는 길에 ’방어진우체국‘과 ’방어진제일교회‘라는 엄청나게 큰 교회를 만나게 되니 참조한다.
▼ 그렇게 잠시 걸으니 ’방어진항(方魚津港)‘이 나온다. 항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활어회센터‘이다. 회를 좋아하는 벗이 이를 지나칠 리가 없다. 이왕에 바닷가에 왔으니 열 일을 제쳐두더라도 생선회 한 접시쯤은 먹어야겠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난 도착지인 일산해안에서 먹자고 꼬드겨서 길을 재촉하고야 만다. 이 약속은 결국 공수표로 변해버렸지만 말이다.
▼ 잠시 후 보수공사로 분주한 부둣가에서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진행방향 표시지‘가 지시하는 대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우린 이곳에서 길을 놓쳐버리는 우(愚)를 또 다시 범하고 말았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만나게 되는 오른편 골목으로 들어서야 하는데도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선두대장의 방향표시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20분 이상이나 도심(都心)을 헤매고 다니는 고생을 치러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결국에는 대왕암공원 입구(버스정류장)에 이르러버렸다. 대왕암공원으로 곧장 가버리느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우린 방어진항으로 되돌아가기로 한다. ’슬도‘ 등 아름답기로 소문난 방어진항 주변의 풍광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향을 튼 곳이 ’세계비전교회‘, 교회 옆에 있는 ’동뫼산공원‘을 통과하고 나서도 한참을 더 걸은 후에야 방어진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참! 세계비전교회에서부터 항구까지는 이 지역 주민의 도움을 받았다. 만일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항구로 되돌아오는 시도조차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글을 빌어서나마 그 부부에게 감사를 드려본다.
▼ 기껏해야 2~3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우린 25분을 소모하고 난 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속상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나마 돌아올 수 있었던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널따랗게 펼쳐지는 방어진 포구를 눈에 담다가 항구의 왼편 끝자락에 위치한 ’슬도‘로 향한다. 수협위판장 앞을 지나는데 생각보다 깨끗하다는 느낌이다. 근처 바닷가도 마찬가지이다. 여느 항구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 즉 어망(魚網) 등 주민들이 사용하는 어구(漁具)들이 널려있지 않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깨끗한 바다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인 ’Clean Zone’으로 지정되어 있단다. 일명 ‘깨끗海Zone’이다.
▼ 슬도(瑟島)는 방어진 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면적이 3,083㎡에 불과한 작은 바위섬이다. 예쁜 그림들로 덧입혀진 방파제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니 이젠 섬이 아니고 육지이라고 보면 되겠다. 슬도는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부쳐진 지명이다. 다른 한편으론 '바다에서 바라볼 때 섬의 생김새가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시루섬’으로 불리기고 한다. 또 다른 사람의 눈에는 거북이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구룡도' 라고 불렀다니 이 또한 참조해 두자. 참고로 이곳 슬도는 MBC-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주말드라마 '욕망의 불꽃'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유승호와 서우의 아역이 어린 시절을 보내던 곳으로 나온다.
▼ 고래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지나자 자그마한 섬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슬도등대(瑟島燈臺)’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지 절로 등대에 가까워진다. 등대의 주변은 음수대와 벤치 등 편의시설을 갖춘 작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이 등대는 근처에 있는 대왕암공원과 송림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빚어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이국적인 풍광을 사진촬영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아무튼 조명시설을 갖추고 있어 저녁이면 그 아름다움이 한층 더 돋보인다니 한가한 시간에 다시 한 번 찾아봤으면 좋겠다.
▼ 주변의 바위들이 하나같이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슬도가 ‘곰보섬’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또한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마다 거문고 소리가 난다는 ‘슬도명파(瑟島鳴波)’를 낳게 한 근원이었을 게고 말이다. 바닷가로 내려가서 바위구멍 가까이에 귀를 기울여본다. 행여 울산 동구의 ‘소리 9경’ 가운데 하나이자 ‘방어진 12경’ 중 하나라는 구슬픈 거문고 소리라도 훔쳐들을 수 있을까 해서이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저 단조로운 파도소리일 따름이다. 무학대사가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는 말했다는데, 아무래도 내 수준으로는 그런 현학적인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다. 참고로 슬도는 섬 전체에 촘촘한 구멍이 난 이색 지질을 갖고 있다. 이는 모래로 굳어진 바위에 조개류 등이 파고 들어가 살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이처럼 구멍이 섬 전체에 분포하는 사례는 국내에 거의 없다고 한다.
▼ 슬도는 방어진항(方魚津港)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뛰어난 전망대이다. 조선시대 슬도는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 관할의 동면(東面)에 속해 부근 일대가 국가 경영의 목장(魴魚津牧場)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30여 호에 불과하던 조그만 어촌마을 방어진은 1920년대가 되면서 우리나라 굴지의 항구로 급성장한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방어, 삼치, 고등어가 풍부하고 일본, 부산과 가까워 개항 직후부터 일본인들이 주목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방어진(方魚津)이란 이름은 방어(魴魚)가 많이 잡히는 나루터라는 의미에서 왔다고 한다. 그 방어(魴魚)가 방어(方魚)로 변했다는 견해가 유력하니 참조한다. 하지만 고려 시대에는 방어진(防禦陣)이라 불렸다고 한다.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수로진(水路陣)’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란다.
▼ 슬도로 들어가는 방파제의 들머리에는 '여음(餘音, 소리의 잔향)의 풍경'을 콘셉트(concept)로 삼았다는 ‘소리체험관’이 지어져 있다. 울산 '동구의 소리 9경'을 체험해볼 수 있는 체험전시관이란다. 시간이 없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대신 야외에 설치된 ‘에코튜브’ 등의 조형물들을 통해 34m나 떨어진 곳에서도 마치 옆에서 대화를 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체험을 해볼 수는 있었다. 참고로 ‘동구의 소리 9경’이란 제1경인 동축사 새벽 종소리(축암효종)를 시작으로 ‘마골산 숲사이로 흐르는 바람소리’. ‘옥류천 계곡 물소리(옥동청류)’, ‘현대중공업 엔진소리’, ‘신조선 출항 뱃고동소리’, ‘울기등대 무산소리’, ‘대왕암공원 몽돌 물 흐르는 소리’, ‘슬도 파도소리(슬도명파)’, ‘주전해변 몽돌 파도소리’ 등이다.
▼ 해파랑길은 이제부터 해안길을 따른다. 그리고 대왕암공원을 두루두루 돌아가며 8코스의 종점인 일산해수욕장으로 나아간다. 그 길이가 4㎞쯤 되는데 한마디로 경관이 빼어난 구간이라 하겠다. 아름다운 해식(海蝕) 해안이 연이어 나타나면서 탐방객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여가'라는 개념이 일반화된 울산시민들에게 최고의 나들이 장소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겠다. 아니 울산을 찾는 외지인들에게는 이미 ‘울산여행의 1번지’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 첫 번째 만남은 ‘배미돌’이다. 고동섬이 있는 남쪽 해안에 있는 커다란 바위로, ‘동쪽의 바위’를 뜻하는 ‘샛돌’의 ‘새’가 ‘사(蛇)’로 전이되면서 ‘배미(뱀) 돌’이 된 것이라고 한다. 뱀이라는 바위의 이름처럼 영험까지 갖춘 모양이다. 바위 앞 해안에 기장의 ‘해동용궁사’와 글자 한 자 틀리지 않은 절간이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여염집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의 외관 등으로 보아 절간이라기보다는 무속인(巫俗人)들의 기도장소에 가깝게 느껴진다.
▼ 이어서 ‘가운데 고개’ 또는 ‘경계점’의 한자어로 여겨지는 ‘중점’과 그 아래에 늘어진 ‘노애개안’을 지나자 이번에는 ‘고동섬’이라는 작은 바위섬이 나온다. 전망대에 세워진 안내판에 의하면 원래의 이름은 ‘수리바위’였는데 ‘소라바위’로 음(音)이 전이되었다가 이후 방언화(方言化)되면서 ‘고동섬’으로 변했단다. 그건 그렇고 갯바위에 걸터앉아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이 보이는 걸로 보아 고동섬 부근은 입질이 좋은 낚시 포인트인가 보다.
▼ 탐방로는 동그란 자갈이 깔려있는 해안가로 내려서기도 한다. 과개안(너븐개)이라 부르는 몽돌해변인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동해의 포경선들이 고래를 이곳으로 몰아 포획했다고 전해진다. 그건 그렇고 자갈 위를 걸으려면 발걸음이 피곤해진다. 발이 빠지는 모래사장처럼 발을 붙잡는 곳이 있는가하면 삐끗해지지 않으려고 발목에 힘을 주는 통에 발에 피로를 주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탐방로가 자갈길을 버리고 해안으로 올라서있는 이유일 것이다. 길은 잠시 후 소나무 숲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송림사이로 바다와 해변을 내다보며 걷는다. 여전히 매력적인 해변이다.
▼ 잠시 후 탐방로는 ‘대왕암공원(大王巖公園)’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해맞이광장에 이른다. 슬도에서 길을 나선지 30분만이다. 울산 시민들은 물론이고 울산을 찾는 외지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왕암공원(옛 울기공원)이다. 그 대왕암공원에서도 백미(白眉)는 단연 대왕암이라 하겠다. 대왕암은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의 릉(陵)은 아니다.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호국대룡(護國大龍)이 되어 나라를 수호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왕이 죽자 그의 유언에 따라 동해에 장사를 지내니 용이 되어 동해를 지켰다. 이것이 대왕바위 또는 댕바위이며, 현재 경주군 양북면에 있다. 그렇다면 이곳 대왕암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설화는 문무왕의 왕비가 묻혔다고 전해준다. 문무왕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 왕비가 남편처럼 동해의 호국룡이 되고자 울산 앞바다에 있는 이 바위 아래에 잠겼다는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이곳 또한 대왕바위 또는 대왕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 현대중공업에서 기증했다는 다리를 건너 대왕암에 발을 딛고 서 본다.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 해서 용추암(龍墜岩)으로도 불리는 바위다. 불그스레한 바위색이 짙푸른 동해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그 모습이 한눈에 봐도 상서로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아니 문무대왕에 얽힌 옛 얘기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귓가만 스쳐도 가슴이 훈훈해지는 나라사랑이 아니겠는가.
▼ 대왕암을 세차게 흔드는 파도가 일렁이며 하얀 포말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또 다시 옛 얘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물속에서 포효하고 있는 용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 바다건너에 있는 일산해안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해파랑길 8코스도 이젠 끝나가나 보다. 그건 그렇고 물이 차서인지 ‘동구의 소리 9경’ 가운데 제7경을 만들어냈다는 몽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몽돌 사이로 물이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파도소리가 흡사 천상의 소리 인 듯 더없이 감미롭고 몽환적이라는데 말이다. 아니 어쩌면 해맞이광장의 좌우 아래 비치파라솔로 뒤덮인 해안을 이르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 대왕암을 둘러봤으면 이젠 일산해안으로 갈 차례이다. 이 또한 해안산책로를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게 하나 있다. 대왕암공원의 또 다른 명물인 ‘울기등대(蔚埼燈臺)’를 보고 싶다면 내륙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간과해버린 우린 결국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106호’로까지 지정되어 있는 ‘구 등탑(舊 燈塔)’을 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해버렸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사전 준비가 부족했던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울기등대에 대한 자료를 뒤적여보며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본다. 울기등대는 1906년 동해와 대한해협의 해상을 장악하기 위한 일제(日帝)에 의해 처음 지어졌다. 처음 지었을 당시에는 6m 높이의 등탑(燈塔)이었으나 주위 소나무의 성장으로 등대의 기능이 제한을 받게 되자 1987년 구 등탑을 증축하는 대신촛대모양의 아름다운 등대를 새로 세우고 옛 등탑은 현재 기능이 정지된 상태로 남아 있다.
▼ 탐방로 주변에는 유난히도 많은 벤치가 놓여있다. 하나같이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관 좋은 곳들이다. 그런데 앉은 이들마다 모두 먼 바다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뭔가 가슴 저리는 추억 한 토막이라도 찾아내려는 것일까? 아니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을 노래했던 '시인'처럼 가슴이 촉촉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 해식애 위로 난 탐방로는 수많은 갈래 길을 만든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어김없이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탁 트인 해안절벽으로 나아가면 흡사 선사시대의 공룡화석들이 푸른 바닷물에 엎드려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불그스레한 바위색이 짙푸른 동해 바다색과 대비되어 아주 선명하다. 그러니 어찌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들락거린 거리가 무려 1㎞나 되었다면 믿을런지 모르겠다.
▼ 야외공연장도 만들어져 있다. 보는 즐거움(樂)에 듣는 즐거움(樂)까지 더했으니 가히 울산을 대표하는 공원답다 하겠다.
▼ 이밖에도 옛 얘기 하나 정도는 갖고 있는 수많은 기암괴석들을 만나게 된다. 괴이하게 생겼다 하여 쓰러뜨리려다 변을 당할 뻔 했다는 남근바위, 그리고 탕건바위와 자살바위, 해변 가까이 떠 있는 바위섬들이 시야를 꽉 채운다. 참! ‘용굴’이라는 곳은 놓쳐버렸다. 안내판까지 봐가며 찾아봤지만 발견할 수 없었으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파도가 치면 덩덕궁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여 ‘덩덕구디’로도 불리는 ‘용굴’은 옛날 청룡 한 마리가 여기에 살면서 오가는 뱃길을 어지럽히자 동해 용왕이 노해 청룡이 굴속에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신통력을 부려 큰 돌로 입구를 틀어막아 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천연동굴이다. ‘수루방(수리바위)’이라는 바위절벽도 눈에 담을 수 없었다. 망루를 설치해 놓고 숭어잡이 망을 보았다는 수루방은 철망을 쳐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 이제 ‘대왕암길’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소나무 숲(松林) 사이를 걷는다. 100년을 훌쩍 넘길 정도로 아름드리 자란 1만 5천여 송림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송림만으로도 완성된 풍경이라 하겠다. 나무 사이로 다양한 꽃들이 풍경을 더했는데, 가을이면 송림 아래에서 피어나는 ‘꽃무릇’이 일품이라고 세간에 입소문을 탔다. 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대왕암길’에 대해 알아나 보자. ‘대왕암길’은 커다란 바위들이 해안의 절경을 이루고 있어 제2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울산의 끝자락(蔚崎)에 자리하는 둘레길이다. 이 길은 아름다운 해안의 운치와 각양각색 바위의 이야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왕암공원 입구에서 바깥마구지기를 시작으로 안마구지기, 해맞이전망대, 용추암, 고동섬 그리고 노애개안을 거쳐 슬도 소공원 등대에 이르는 4km의 해안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해안길과 길게 뻗은 해송사이를 누빌 수 있어 힐링이 가능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 공원의 막바지에서 긴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일산해수욕장이다. 1930년대 개장한 일산해수욕장은 반달형의 백사장이 850m 길이로 펼쳐지는 가운데 수질이 깨끗하고 차가와 도심 속의 피서지로서 최적지라 할 수 있다. 여름철에는 축제, 공연, 해양스포츠 등이 다양하게 개최되어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함께 제공한단다. 하지만 요즘은 '시'가 주관하는 행사보다 '구' 행사가 자주 열린다고 한다. 최근 휴가기간이 길어지면서 근거리보단 원거리 휴양지로 시민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란다. 그 덕분에 휴양지의 정취가 많이 사라지고 대신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그 성격이 변했다는 것이다.
▼ 트레킹 날머리는 일산해수욕장 행정봉사실 근처의 광장
백사장으로 내려서면 울산시(동구)에서 세간의 추세에 맞추어 새로운 체험공간으로 조성했다는 ‘드론(drone) 체험장’이 나오고, 이어서 상설무대를 갖춘 행정봉사실과 동구(동구)를 상징한다는 ‘소리나무’ 조형물을 지났다 싶으면 곧이어 너른 광장이 나타나면서 해파랑길 8코스가 종료된다. 오늘 트레킹은 총 4시간 10분이 걸렸다. 12.5㎞ 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뭐 그리 오래 걸렸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app)에는 15.5㎞가 찍혀있었다. 방어진 항에서 길을 잃고 헤맨 거리에다 슬도를 다녀온 거리, 그리고 대왕암공원에 만들어진 전망대마다 들락거리다보니 3㎞나 거리가 늘어나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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