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등산(魚登山, 293m)

 

산행일 : ‘18. 2. 10()

소재지 : 광주시 광산구 박호동과 등임동, 장수동, 산정동, 운수동, 서봉동 일원

산행코스 : 승산저수지활공장황새봉등용정석봉(338m)어등산장수제장수교차로(산행시간 : 2시간)

 

함께한 사람들 : 온라인 산악회


특징 : 높이가 338m에 불과한 나지막한 육산(肉山)이지만 광산구(광주광역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송정(松汀)’의 진산(鎭山)이다. 하지만 주봉인 석봉 인근에서는 왜소하나마 암릉도 만날 수 있다. 흙산임에도 불구하고 조망까지 좋은 이유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산은 한말(韓末) 때 의병(義兵)과 왜병(倭兵)이 자주 싸웠던 전쟁터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래선지 산은 잘 가꾸어져 있다. 숫제 산상공원(山上公園)으로 꾸며 놓았다. 널찍하게 길을 내놓은 것은 물론이고 조금만 가파르다 싶으면 어김없이 계단을 놓았다. 갈림길마다 이정표를 세워놓았음은 물론이다. 거기다 주요 포인트마다 안내판을 세워 처음 찾는 이들에게 어등산이 품은 사연들을 전해주고 있다. 편안한 산행에다 역사적 사실까지 배울 수 있으니 가족동반 산행지로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겠다.

 

산행들머리는 송산공원 주차장(광주시 광산구 송산동)

무안-광주고속도로 운수 IC에서 내려와 오른편 동곡로를 잠깐 따르다가 선운지하차도에서 지하도로 들어가지 말고 우회전하여 어등대로를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송산공원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에는 '황룡강누리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송산유원지에서 출발해 용진교와 임곡마을을 거쳐 다시 송산유원지로 되돌아오는 코스인데, 30Km의 거리를 바람길선비 마실길그리고 마을안길3개 코스로 나누어놓았다. 이 길을 걷다보면 입석마을의 입석과 용진 마애여래좌상, 월봉서원, 윤상원 생가, 양씨 삼강문, 황룡강 산막습지 등의 명소를 만날 수 있단다.



오늘 산행은 아래의 지도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광주여대로 내려가려 했던 원래의 하산코스가 볼 것도 별로 없으면서 지루하기만 하다는 평이 있어, 장수제로 변경을 했기 때문이다. 이 코스도 역시 볼거리는 일절 없다. 대신 거리가 짧다는 장점이 있으니, 우리 같이 산을 하나 더 타려는 사람들에게는 유익하게 활용될 수도 있겠다.



주차장 뒤편에 송산공원이라고 적힌 커다란 조형물이 보인다. 지도에는 송산유원지라고 나와 있는데 이곳에서는 공원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강둑으로 올라가 보니 강 건너편에 작은 놀잇배들이 매어져 있는 게 전형적인 유원지(遊園地)의 풍경이다. 그래 송산공원은 황룡강(黃龍江) 한가운데에 떠있는 섬에 조성되어 있다고 했다. 면적이 39,277인 섬 전체가 공원이라는 것이다. 12천여 평에 이르는 잔디광장과 그 광장을 둘러싼 산책로, 그리고 우거진 나무숲 아래에는 캠프장이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특히 청등보 바로 아래의 강 한가운데에 만들어진 2개의 물놀이장은 수십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수영을 해도 넉넉할 정도란다.




주차장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면 어등산의 들머리가 나온다.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길이 워낙 또렷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자락으로 들어서자마자 안내판 하나가 나타난다. ’어등산광산팔경의 하나임을 들면서 그 아래에다 어등산에 대한 설명을 적어 놓았다. 호남 의병활동의 본거지였으며, 어등산 주변 마을과 사찰들 또한 의병들의 주요 활동무대였으며 은신처였다고 한다. 때로는 부식을 조달받는 공급처이기도 했고, 아군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였다. 일제가 호남 의병을 말살하기 위해 폭도라는 누명을 씌우며 토벌할 때 이 지역에 감옥소를 지어 의병들을 가두고 고통을 주기도 했단다.



몇 걸음 더 들어가면 대여섯 평쯤 되는 공터에 여러 개의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다. 그중 하나는 어등산과 황룡강에 얽힌 전설이다. 황룡강은 옛날부터 용()이 많이 살던 강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박산마을의 박판관이 황룡강가 연못에서 기르던 잉어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어등산의 유래 전설이나 박산마을 앞 황룡강 깊은 소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용기재(龍起峙) 전설 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송산유원지의 청등보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과 황룡면 황룡리의 용소에서 큰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단다.



다른 하나는 어등산 종합 안내도이다. 어등산의 서남쪽 부분의 지도를 그린 다음, 송산유원지에서 석봉에 이르는 주능선과 운수동 소재 보문고에서 주능선으로 연결되는 코스를 구름길용오름길‘, ’의병길‘, ’노을길4개 구간으로 나누어놓았다. 지도의 왼편에는 어등산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을 너절하게 적어 넣었다. 그나저나 성의가 부족한 안내판이 아닐까 싶다. ’종합안내도란 타이틀을 걸어놓고도 등산로는 기껏 절반도 못 미치게 안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내판의 상단에 누리길이라는 로고(logo)가 붙어있는 걸로 보아 광산구청에서 세운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등산 전체가 오롯이 자기 관내일 텐데도 일부분만 안내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머지 하나는 빛고을 산들길을 안내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총 연장 81.5Km의 거리를 6개 구간으로 나누고, 산들길이 지나가지는 않지만, 이곳 어등산처럼 둘러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은 부노선(20.2Km)’이라는 이름으로 산들길에 포함시켰다.



공터를 지나자마자 산길은 가팔라진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가파르다 싶으면 어김없이 통나무계단이나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도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경우에는 밧줄까지 매어놓았다.




산행을 시작하고 10분 남짓이 지나면 능선에 올라선다. 이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산길이 이어진다. 경사 또한 완만하기 짝이 없다. 산이 나지막하다보니 서둘러 고도(高度)를 높여야 할 이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5분쯤 걷자 활공장이 나타난다. 이륙장의 규모가 협소할 뿐만 아니라 바람의 방향이나 속도를 체크할 수 있는 풍향시설도 보이지 않는다. 활공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조망만은 끝내준다. 발아래에 있는 송산유원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수억 년의 세월과 함께 흘러온 황룡강(黃龍江)은 상류의 모래와 흙을 한줌씩 날라다 쌓고 또 쌓아 제법 너른 섬을 만들어 놓았다. 그동안 원시적으로 남아있던 이 섬은 주변에 마을이 들어서고, 이 마을이 도시로 성장하면서 이젠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수려하면서도 아름다운 휴식처로 변해 시민들의 품에 안긴 것이다. 유원지 주변은 황룡강이 만들어 놓은 너른 평야지대이다. 그 뒤로는 광산구는 물론이고 장성과 함평 땅에 위치한 수많은 산들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활공장 옆에 이정표(석봉 2.0Km/ 송산유원지 0.9Km)와 함께 황새봉에 대한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아무래도 이곳 활공장이 황새봉(151m) 정상이었나 보다. 아무튼 황새봉은 '한새봉' 또는 '병정봉'이라고도 부른다. '한새'는 큰 새라는 뜻으로 황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나란히 있는 두 개의 봉우리 모습이 마치 황새의 날개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참고로 황새봉은 어등산에서 석양의 붉은 노을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한다. ‘광산팔경의 하나인 어등낙조(魚登落照)’가 바로 이곳을 지칭하는 것이란다.



산행을 이어간다. 데크계단을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는 길에 만나게 되는 봉우리는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킨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걸으라는 배려까지 해주는 착한 산길이라 하겠다.




잠시 후 산길은 조릿대 숲으로 파고든다. 키가 작다는 조릿대의 특징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이 어른의 키를 훌쩍 넘겨버릴 정도로 웃자란 조릿대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이런 조릿대 숲은 산행을 하는 동안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어등산의 특징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조릿대는 산죽, 갓대, 산대, 신우대 등으로도 불리는 작은 대나무로 죽세공, 관상, 식용, 약용 등 다양하게 이용된다.



조릿대 숲이 끝나는 지점에는 이정표(석봉 2.2Km/ 송산유원지 1.0Km)와 함께 시판(詩板)’을 세워놓았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던 송천 양응정(15191581)이 지었다는 화전놀이(煮花)’라는 시()이다. 어등산 아래 박산마을에서 살았던 그는 어등산을 비롯해 자연을 노래한 시를 많이 남겼다고 한다.



잠시 후 가파른 계단길이 나타난다. 침목으로 만들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그 위에는 또 다른 나무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이 또한 짧은 길이는 아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닐까 싶다.




계단 위에도 이정표(석봉 1.9Km/ 송산유원지 1.7Km)를 세워 놓았다. 아까 산행을 시작하면서 얘기했던 어등산 등산로4구간인 노을길에 대한 안내판도 보인다. 황새봉에서 송산유원지까지의 1Km구간을 지도에 표시한 다음, 그 왼편에는 광산팔경의 하나라는 황새봉의 어등낙조(魚登落照)’를 나타내는 듯한 글귀를 적어 두었다. ‘날개를 접고 쉬는 황새처럼 저물녘 황새봉에 앉아 황룡강의 노을을 보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네. 땀 흘려 오르내린 어등산 산책길이 우리네 인생길과 어찌 다르리오. 고요히 나를 돌아보며 명상에 잠기네.’



계단을 올라서고 난 뒤에는 길은 또 다시 순해진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지만 평지나 거의 다름없다.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길이 널따란데다 갈림길이라도 나올라치면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워두었다. 거기다 등산로가 아닌 곳에는 등산로 아님표시를 하면서 아예 길을 막아버렸다.



석봉을 1.2Km쯤 남겨놓은 지점에 이르니 국가지점번호판과 함께 오토바이의 통행을 금한다는 경고판을 세워놓았다. 하도 길이 곱다보니 간혹 오토바이를 몰고 오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럴 경우 등산객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도 있으니 통행을 막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아까부터 개체수를 늘려가던 소나무가 언제부턴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이 곱다. 갑자기 심신(心身)이 맑아져온다. 솔향과 함께 스며드는 피톤치드(phytoncide)의 효능 덕분일 것이다. 피톤치드의 효능 중에는 몸으로 스며드는 각종 병균에 대한 살균기능 외에도 피로회복 기능까지 함유하고 있다니 말이다. 그런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가 바로 소나무가 아니겠는가.



작은 오르내림을 몇 번 더하면 마당바위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석봉0.8Km/ 마당바위0.8Km/ 송산유원지2.1Km)와 국가지점표시판 외에도 벤치 두어 개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잠시 후 또 다른 삼거리를 만난다. 이번에는 의병전적지 갈림길‘(이정표 : 석봉0.6Km/ 의병전적지0.2Km/ 송산유원지2.3Km)이다.



또 다시 이어지는 작은 오르내림, 약간 가파른 곳에서는 통나무계단이 놓여있다. 그 옆에는 보통의 경사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반반이다. 고지식하게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계단보다 편한 옆길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이다. 아니 계단의 옆으로 난 길에 발자국이 더 많다.




계단을 오르면 팔각의 정자가 길손을 맞는다. '등룡정(登龍亭)'이란다. 이곳에도 역시 이정표(석봉0.3Km/ 보문고2.6Km/ 송산유원지2.6Km)와 함께 등용정에 대한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등용정(登龍亭)은 용이 되어 올라간다는 뜻으로 용에 대한 전설이 많은 어등산을 상징하는 정자이다. 잉어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박산마을의 전설 외에도 지금은 골프장으로 변해 버린 용담골에도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담(龍潭)의 전설이 있단다. ! 정자 앞에 우체통 두어 개가 설치되어 있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느림보의 미학을 거론할 때 등장하는 우체통일지도 모르겠다. 황새봉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45분이 걸렸다.




석봉으로 향한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면 헬기장이 나타난다. 산불이나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이용하는 비상착륙장인 모양이다.



헬기장을 내려섰다싶으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석봉이 나타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이 조금 더 지난 시점이다. 그런데 정상의 바로 아래에서 광주여대로 가는 길(이정표 : 광주여대 4.7Km/ 등용정 0.3Km)이 나뉜다. 석봉 정상을 둘러본 후에는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이곳 석봉에서 등용정을 거쳐 황새봉에 이르는 1.9Km의 구간은 의병의 길이다. 한말(韓末) 김태원 의병장이 이 능선에서 쌍안경으로 일본군경의 동태를 살피며 작전을 지휘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한두 평도 채 되지 않는 비좁은 정상은 커다란 바위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정상표지석은 그 바위의 위에 걸터앉아 있다. ! 정상에 대한 특징을 놓칠 뻔 했다. 어등산이 전형적인 육산(肉山)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석봉만은 골산(骨山)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는 점이다. 능선을 따라 바위지대가 길게 펼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바위가 험상궂지도 않고 바닥에 낮게 깔려있어서 위험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 암릉이다. 아무튼 이런 특징 때문에 석봉(石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 않나 싶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빼어난 편이다. 안내판의 멘트(announcement)처럼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유유히 흐르는 황룡강과 광활하게 펼쳐진 광산 들녘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오른편 산자락에 들어앉은 '어등산 C.C'는 필드 위를 오가는 골퍼(golfer)들의 움직임이 보일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다. 골프장의 뒤 연무(煙霧)로 인해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는 곳은 광산구의 시가지일 것이다.



석봉(石峰, 338m)에 대한 안내판은 정상으로 오르기 전에 만나게 되는 이정표의 옆에다 세워 놓았다. 산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주위에 큰 산이 없기 때문에 장성과 나주, 함평, 광주를 조망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는 안내와 함께, ()의 물줄기를 연상시키는 석봉은 옛날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빼어난 봉우리였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또한 한말에는 김태원 의병장이 쌍안경으로 일본군경의 동태를 살피며 작전을 지휘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하산을 시작한다. 아까 올라왔던 방향으로 10m쯤 되돌아나간 후, 삼거리에서 이정표(광주여대 4.7Km/ 등용정 0.3Km)가 가리키고 있는 광주여대 방향으로 진행해도 되고, 정상에서 바윗길을 타고 왼편으로 내려가도 된다. 다만 2~3분쯤 걷다가 능선을 벗어나 오른편 바위지대로 내려서야한다는 점만 주의하면 된다. 실수로 능선을 탄 사람이라면 잠시 후 무덤이 나타날 테니 이때라도 발길을 돌리면 된다.



울퉁불퉁한 암반지대를 얼마간 지나자 울창한 조릿대 숲이 나타난다. 숲을 통과하자마자 조그만 공터에 세워진 이정표(산정약수터 삼거리 2.5Km/ 석봉 0.4Km, 송산유원지 3.6Km)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이정표 외에도 어등산 안내판과 벤치를 만들어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잉어가 하늘로 올라간 산이라는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적어 놓았다. 옛날 어등산 서쪽 박산마을에 박중윤이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 황룡강변에 양공정이란 정자를 짓고 큰 잉어 한 마리를 길렀단다. 어느 날 박중윤이 정자에서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자신이 기르는 잉어가 나타나 자기가 용이 되어 승천할 때가 되었는데도 연못이 좁아 승천하기 어려우니 양공정을 헐어 연못을 넓혀 달라는 부탁을 하더란다. 이에 박중윤이 양공정을 헐고 연못을 넓혔음은 물론이다. 며칠 후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지면서 잉어가 자취를 감추었기에, 후세 사람들이 박산마을 뒷산을 잉어가 하늘로 올라간 산이라 하여 '어등산(魚登山)'이라 했다는 것이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완만한 오르막 계단길이 나타나는가 하면, 길가에 만들어 놓은 벤치 쉼터는 느림보의 미학도 괜찮을 거라며 갈 길 바쁜 나그네들의 발길을 자꾸만 붙잡는다.



그렇게 15분쯤 걸었을까 벤치 두 개가 놓여있는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벤치 뒤에 있는 나무에 마호봉(311.7m)’이라고 적힌 코팅지가 매달려 있다. 종종 산행을 같이 해오고 있는 서래야 박건석선생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산들을 모두 올라보고 싶다는 그가 새로운 산 하나를 또 만들어냈나 보다.



산길은 또 다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거의 경사가 없는 반반한 길이 계속된다.



하산을 시작한지 24분 만에 어등산 정상에 올라선다. 하지만 이곳이 정상이라는 표식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서너 평쯤 되는 공터에 놓아둔 벤치 두 개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는 석봉을 어등산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옳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하긴 산의 주봉(主峰)을 어엿이 놓아두고 다른 봉우리, 그것도 높이가 한참이나 더 낮은 봉우리를 정상이라고 우기는 일을 그다지 흔하다고는 볼 수 없다. 참고로 어등산이란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이름의 생성(生成)을 조선조 초기로 보는 이유이다. 하지만 건너편 복룡산의 이름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어등산의 명칭도 백제시대까지 소급하여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산길은 어등산에서 왼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튼다. 거의 직각에 가깝기 때문에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외길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풍락정(風樂亭)이라는 사각의 정자(亭子)를 만난다. 장수제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절골삼거리’(이정표 : 산정약수터삼거리1.4Km/ 장수제1.3Km/ 석봉1.5Km)이다.



절골삼거리에서 장수제 방향으로 직진한다. 하지만 주 등산로는 오른편 산정약수터 방향임을 참조한다. 아무튼 우린 광주광역시(서구)에 소재하고 있는 금당산이라는 산을 하나 더 타야했기에 조금 더 짧은 하산코스를 이용했다. 원래의 하산지점인 광주여대까지의 코스가 지루하기만 할뿐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장수제 코스도 역시 볼거리는 일절 없다. 하지만 길은 고운편이다. 계단을 새로 놓는 등 정비도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다만 최근에 정비를 한 듯, 여간 질퍽거리는 게 아니다. 그렇게 산길은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간다. 그렇게 20분 조금 못되게 내려오면 삼거리(이정표 : 등산로 없음/ 어등산 1.0Km)가 나온다. 방향표시가 없는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또 다른 삼거리, 이정표는 보이지 않지만 이곳 역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눈앞에 하산지점으로 삼았던 장수제가 나타난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자그마한 저수지에 불과하다.




날머리는 하남진곡산단로의 장수교차로(광산구 장수동 664-4)

장수제에 이르렀다고 해서 산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길은 비록 널따랗지만 그저 ‘SUV’ 차량이나 다닐 정도지 대형버스의 진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느긋이 10분 정도를 더 걸었을까 하남진곡산단로 상에 있는 장수교차로가 나오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2시간이 걸렸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으니 오롯이 걷은 데만 걸린 시간으로 보면 되겠다.




장수교차로는 하남진곡산단로(광주광역시 광산구 동곡로 875 광주광역시 북구 삼소로 1)’고봉로(흑석동 118-11, 흑석사거리 광산동 175-16, 오룡교 인근)’가 만나는 교차점(交叉點)이다. 그런데 이 고봉로가 보여주는 풍모(風貌)가 장난이 아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꼿꼿이 솟아오른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를 가로수 삼아 심어놓은 것이다. 인근에 있는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숲길만큼은 아니어도 잠깐의 눈요깃감으로는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멋진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