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두바이,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일 : ‘16. 3. 12() - 20()

일 정 :

3.13() : 두바이

3.14() : 스위스(루체른)

3.15()-19() : 이탈리아(밀라노, 피렌체, 로마, 소렌토, 폼페이, 나폴리, 베네치아, 볼로냐)

 

여행 일곱째 날 : 현자들의 도시, 볼로냐(Bologna)

 

특징 : 이탈리아 북부 포(Po)평원과 아펜니노(Appennino)산맥 사이에 위치, 에밀리아 로마나(Emilia Romagna)주의 주도(州都), 인구기준으로 이탈리아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이며 로마시대부터 있는 에밀리아 가도에 위치하고 있다. 2000년에는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된바 있다. 도시의 기원은 로마시대 이전이며, 6세기에 비잔틴의 지배를 받았으나 12세기에는 강력한 자치도시가 되었다. 1249년에 프리드리히 2세를 격파하여 더욱 강대해졌다. 그후 장기간의 내란 끝에 1506년부터는 교황령()이 되었으며, 나폴레옹전쟁 때를 제외하고는 이탈리아 통일 때까지 교황령으로서 평화를 누렸다. 중세 이래로 유럽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서 유명하였으며, 11세기에 창설된 볼로냐대학은 법학의 볼로냐파와 함께 널리 알려졌다. 17세기에는 회화(繪畵)에서 볼로냐파가 크게 활약하였다. 아케이드가 있는 거리·시청사·궁전 등이 남아 있어 중세를 회상케 한다. 풍요한 농업지대에 위치하여 상공업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공업으로는 기계·자동차 제조·식료품가공 등이 활발하다.

 

 

 

버스는 우릴 대로변에다 내려놓는다. 구시가지로의 차량진입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탈리아는 ZTL(Zona Traffico Limitato)이라고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차량 출입 제한지역인데, 유적들을 보호하기 위해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는 제도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볼거리들은 모두 ZTL 안에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옛 건물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선다. 볼로냐의 중심인 마죠레 광장(Piazza Maggiore)’으로 가는 길이다. 누군가 그랬다 이탈리아의 참 멋과 맛을 보기 위해서는 볼로냐에 가야한다라고. 이는 사람들의 성향은 물론이고, 음식 또한 이탈리아를 나타내기에 충분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볼로냐는 처음부터 내 마음에 쏙 든다. 우선 높은 건물들이 없어서 좋다. 거기다 눈에 보이는 건물마다 하나 같이 고색창연(古色蒼然)하다. 옛 냄새가 물신 풍기는 것이다. 그리고 때지어 몰려다는 관광객들도 보이지 않는다. 동양인들도 우리가 전부임은 물론이다. 조금은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아직 구시가지는 아닌 모양이다. 볼로냐의 특징 중 하나라는 회랑(回廊)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볼로냐의 모든 건물들은 회랑을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된다고 한다. 중세에는 건물을 지을 때 의무적으로 회랑을 만들도록 규정함으로써, 사유지의 일부 공간을 공적인 장소로 제공하여 모든 시민들이 공유하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각 건물마다 다양한 양식으로 만들어진 회랑의 효용성은 많다. 사람들이 길을 가면서 눈이나 비를 피하는 데도 안성맞춤이며,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고,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 주기도 한다. 또한 커피나 포도주를 한 잔 마시면서 담소하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볼로냐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름 모를 성당도 보인다. 붉은 색상의 외관이 지어진지 꽤나 오래되었나 보다. 볼로냐는 세 가지 별명을 갖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빨간 도시 볼로냐 (Bologna la rossa)’이다. 르네상스나 바로크 등 건축양식은 다양하지만 도시가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어떤 이는 이 도시가 좌파성향이 강한 이유로 도시의 색상을 들기도 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현자들의 도시 볼로냐(Bologna la dotta)’이다. 프랑스의 파리에 있는 소르본(Sorbonne)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대학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맨 마지막은 뚱보들의 도시 볼로냐(Bologna la grassa)’이다. 비옥한 포(Po)평원의 농산물(고기, 치즈, 와인)로 만들어 온 풍부한 음식문화가 미식(美食)의 나라 이탈리아 내에서도 독특하기로 정평이 나있기 때문이란다.

 

 

널따란 주차장이 보인다. 이곳 볼로냐는 ZTL(Zona Traffico Limitato), 우리나라 말로는 차량 출입 제한지역을 운영하기 있다고 했는데, 이후부터는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나 보다.

 

 

 

 

길을 가다보면 식당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이곳 블로냐는 먹거리로 유명한 고장이다. ‘살찐도시 볼로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말이다. 예로부터 볼로냐 사람들은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는 식도락가들이었다고 한다. 살찐 미식가들이 많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왕에 볼로냐에 왔다면 라구(Tagliatelle al lage. 볼로냐 스파게티)나 모르타델리(mortadella, 볼로냐 소시지) 정도는 꼭 먹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10여분 쯤 걸었을까 널따란 광장이 나타난다. 볼로냐의 중심인 마죠레 광장(Piazza Maggiore)이다. 13세기 중엽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현재 시청 건물로 쓰이고 있는 꼬뮤날레성이 1287년에 지어졌으니 광장이 만들어진 때부터 볼로냐의 중심이었던 셈이다. 예전에는 시민들을 위한 시장이 열리던 곳이었으며, 특히 여름에는 이 곳에 야외무대가 개설되어 음악회 등이 열린다. 또한 광장에는 볼로냐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모두 모여 있다. 산 페트로니오 성당(Basilica di San Petronio)과 아쿠르시오 궁전(Palazzo d’Accursio), 포데스타 궁전(Palazzo del Podesta), 엔조 황제의 건물(Palazzo Re Enzo), 반치 성(Palazzo dei Banchi) 등이다.

 

 

광장에 들어서면 독특한 형상의 분수(噴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잠블로냐(Giambologna)가 완성시킨 넵튠분수(Fontana del Nettuno)’이다. 분수의 중앙에는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이 창을 들고 서 있고, 그 아래로 네 귀퉁이마다 인어가 젖을 짜고 있는 형태이다. 아쉽게도 분수는 물을 내뿜지 못하고 있다. 이 지방에 가뭄이라도 들었나보다. 그 덕분에 난 구경거리 하나를 놓쳐버렸다. 분수가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었더라면 인어가 가슴으로 물을 내뿜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오래전 브뤼셀(Brussels)오줌싸개 소녀(Jeanneke Pis)’ 동상 앞에서 웃다가 그만두었던 나머지를 마저 웃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광장의 정면에 성 페트로니오(Petronio) 성당이 있다. 그런데 그 외관(外觀)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아랫부분은 웅장한 규모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위는 붉은 색 벽돌들을 대충 쌓아놓은 형상이다.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단다. 14세기 말에 공사가 시작된 이 성당은 자유 도시 볼로냐를 상징하고자 하였고, 이후 공사가 진행되면서 그 규모는 더욱 확장될 계획이었단다. 1514년의 설계도에 의하면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보다 더 커다란 규모로, 그야말로 세계 최대의 성당으로 건축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교황 피우스 6가 더 이상의 확장을 금지시켰고, 결국 어중간한 형태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길이 132m, 57m의 이 성당은 영원한 미완성 작품으로 남게 되었단다. 참고로 성당은 죠반니 다 모데나, 아미코 아스펠티니, 로렌쵸 코스타, 프란체스코 화란챠의 회화를 수장하고 있으며, 2대의 오르간역시 1475년의 것으로 이탈리아의 오래된 귀중품 중의 하나이다. 성당의 오른편 건물은 1381년에 지어진 노타이 궁전(Palazzo dei Notai)이다. 작고 우아한 모습이다.

 

 

 

대성당의 좌측에 보이는 건물은 볼로냐대학(Università di Bologna)의 옛() 건물이다. 지금은 시립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수도원의 대강당에서 시작한 볼로냐 대학은 1088년에 설립된 유럽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아니 세계 최초의 대학이다. 중세 시대, 기독교 진영의 많은 유럽 지식인들을 끌어 모았던 유럽의 지적활동의 중심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13세기부터 15세기 사이의 많은 예술작품과 문서들, 그리고 유명 중세 재판관들의 무덤들이 있다. 이들은 중세 교육기관으로써의 유명세를 더해주는 볼로냐 대학교의 위대한 문화적 자산들이다. 대학은 스투디움(Studium)이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는 선생이 각각의 학생들에게서 교육료를 받아 교육하는 시스템이었다. 이곳에서 수학한 유명한 인물들로는 신곡을 쓴 단테, 페트라르카, 토머스 베켓, 교황 니콜라오 5,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등이 있다. 최근의 역사에서는 생물학적 전기를 발견한 루이지 갈바니, 무선 통신의 선구자 굴리엘모 마르코니 등이 있다. 대학은 현재 23개의 학부와 68개의 학과, 그리고 93개의 도서관들로 편제(編制)되어 있는데, 아직까지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존경받고 다이나믹한 교육관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광장의 오른편에는 코뮤날레 성(Palazzo d'Accursio o Comunale)이 있다. 이 성의 주인이었던 Accursio 가족이 살았던 건물인데, 13세기 이후 계속 개축되었기 때문에 각 시대의 건축 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정문 위에는 볼로냐 출신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동상이 있다.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이전에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을 개량하여 그레고리력을 만든 사람이다. 문 왼쪽에는 테라코타로 만든 성모자상도 보인다. 1200년부터 시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되었는데 현재는 시청과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포데스타 궁전(Palazzo del podesta), 1485년 아리스토텔레 피오라반니의 설계로 착공되었는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임명한 도시의 장관이 머무는 곳이었다고 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오리지널 파사드(Façade)가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로 중앙에 있는 탑이 땅에 세워지지 않고, 둥근 천정의 칼럼 위에 세워진 것이 특징이란다. 현재는 그 용도를 달리해 가게와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1층에는 카페가 있어 마조레 광장을 바라보기에 좋다.

 

 

엔초 궁전(Palazzo Re Enzo)인데 1246년에 완공되었다. 볼로냐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2세 황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의 아들인 엔초왕을 사로잡아 1249년에서 1272년 그가 죽을 때까지 23년간을 유폐했던 곳이란다.

 

 

 

 

 

 

 

광장에는 앙증맞은 관광열차도 보인다. 앉아서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는 재미도 있겠다. 다만 시간의 여유가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볼로냐를 소개하는 책자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두개의 탑(La due Torri)’으로 향한다. ‘리졸리(Rizzoli) 거리를 따라 5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 거리의 끄트머리에 뾰쪽하게 솟아오른 아시넬리 탑(Torre degli Asinelli)이 보이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거리의 양편은 오래된 건물들이 수두룩하다. 하나 같이 화려한 건물들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명품가게들이 수두룩하다. 볼로냐에서 가장 부티 나는 쇼핑가가 아닐까 싶다.

 

 

길가에는 포르티코(Portico), 즉 고깔 모양 또는 아치 형태의 회랑(回廊)들이 늘어서 있다. 어느 것 하나 예술적이지 않는 게 없다. 건축의 관점에서 볼 때 회랑은 독특한 공간이다. 엄밀하게 말해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니다. 그야말로 안과 밖이 공존하는 영역인 것이다. 블로냐의 회랑은 공간의 효용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다. 회랑은 주로 보행자들의 길로 이용되지만, 위쪽은 건물로 대개 사무실이나 주거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포르타 라베냐나 광장(Piazza di Porta Ravegnana)’에 가까워질수록 두개의 탑(La due Torri)’은 점점 커진다. 그리고 끝내는 카메라에 집어넣지 못할 정도로 커져버린다. 볼로냐의 탑들은 우리들이 여행을 하면서 흔히 만나게 되는 여느 탑들과는 많이 다르다. 다른 탑들이 군사적인 기능(유사시 신호를 주거나, 적의 침입을 방어)을 위해 지어진데 반해, 볼로냐의 탑들은 귀족들이 자신들의 막강한 부와 사회적인 위신,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쌓았기 때문이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이 세우다보니 12세기 말에는 그 숫자가 거의 100여 개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동안 전쟁과 화재, 천재지변(벼락) 등으로 대부분이 무너지고 현재는 20여개의 잔해만이 남아 있단다. 그중 두 개가 도시의 중앙에 남아있는데, 그게 바로 저 앞에 보이는 아시넬리 탑(Torre Asinelle)가리센다 탑(Torre Garisenda)’이다.

 

 

 

1109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119년에 완공된 아시넬리 탑(Torre Asinelle)’은 네모진 설계로 높이는 97m이다. 48m 높이의 가리젠다 탑(Torre Garisenda)’과 나란히 서 있는데 둘 모두 상당히 기울어져 있단다. 지반침하 때문이라고 하는데, 혹자는 건축기술을 과시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또 하나의 피사의 사탑(Torre di Pisa)’이 아닐까 싶다.

 

 

탑의 앞에는 동상(銅像)이 하나 세워져 있다. 이곳의 수호성인이자 5세기 이곳의 주교였던 페트로니오 성인의 동상(La Statua di San Petronio)’이다. 1872년 교통문제로 다른 곳으로 옮겨졌던 것을 최근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단다.

 

 

탑의 아래에 진열장이 보인다. 자기(瓷器)로 만든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래에 가격표가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기념품이라도 팔고 있는 모양이다.

 

 

 

 

아시넬리 탑(Torre Asinelle)’의 꼭대기는 전망대이다. 486개의 계단을 올라야만 하기 때문에 다소 힘이 들겠지만, 이를 감내할 경우에는 먼진 조망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볼로냐시가지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올라가보는 것은 사양키로 한다. 아니 올라갈 수가 없다. 비행기의 출발시간에 맞추려는 가이드의 채근에 쫓기다보니 올라가보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 아닐 수 없다.

 

 

 

 

(Le Du Torri)의 옆에 성당이 하나 보인다. 누군가 성 바르톨로메오(Saint Bartholomew)성당이라고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귀국 후에 검색을 해봤지만 확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당의 안으로 들어가 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 그리고 엄청나게 오래된 듯한 느낌이다.

 

 

 

 

성당은 온통 성화(聖畵)들로 치장되어 있다. 벽면은 물론이고 천장이나 돔(dome) 등 빈틈 하나 없이 성화들이 들어차 있는 것이다. 그것도 화려하기 짝이 없는 성화들이다. 어느 유명한 대성당에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풍경이다.

 

 

 

 

이곳도 역시 자그만 제단(祭壇)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그리고 사연은 모르겠지만 하나 같이 멋진 그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Le Du Torri)에서 조금 더 가면 볼로냐대학이 나온다. 유럽, 아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대학이다. 꼭 한번 들러보고 싶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볼로냐대학은 11세기경 로마 법학자 이르네리우스가 이 지방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1158년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이 지역의 학생집단을 자치단체로 공인, 학생들은 도시로부터 독립한 독자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것이 볼로냐대학의 핵심이 되었다. 13세기 후반에는 교사(校舍)를 짓고, 법학뿐 아니라 신학·철학·의학도 강의하게 되었는데, 특히 의학부는 세계 최초로 해부학을 교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1802년 국립대학으로 개편되었다.

 

 

마조레 광장으로 되돌아 나오는 길,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있는 게 보인다. 점심 무렵이라서 공식적인 행사라도 있으려니 했는데 천만의 말씀이란다. 공연(公演)을 관람하기 위해 줄지어 서있다는 것이다. 무슨 공연인지는 서로 간의 의사소통 부족으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만 영어가 서투른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줄의 맨 앞이 1384년에 지어진 메르칸치아 궁에 닿아 있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그동안 상공회의소 건물로 사용되어 오다가 요즘엔 갤러리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들은 혹시 그림 전시회를 관람하려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문화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토요일이라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문화행사가 열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룻밤을 머물렀던 ‘city of art hotel’, 이 호텔의 특징은 현관에 예술품들을 진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모조품이겠지만 말이다. ‘art’라는 호텔 이름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의 호텔이었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내부시설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이 호텔에서는 와이파이(wi-fi)’의 사용 요금을 받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불행한 상황이다. 물론 돈이 아까워서는 아니다.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팡팡 터지는 나라에서 살아오다보니 요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