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加山, 690.7m)-북두산(北斗山, 687.9m)-삼암봉(三岩峰, 425.7m)

 

산행일 : ‘16. 10. 27()

소재지 : 경북 성주군 수륜면·고령군 덕곡면과 경남 합천군 가야면·야로면의 경계

산행코스 : 북두림마을(59번 도로)능선가산정견대솔티재북두산모로현 갈림길삼암봉하림리 새터마을 경로당(산행시간 : 3시간 20)

 

함께한 산악회 : 강송산악회

 

특징 : 오늘 오른 산들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그러다보니 바위다운 바위 하나 찾아볼 수가 없다. 아니 딱 하나 보기는 했다. 그다지 크지도 않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다보니 특별한 산세(山勢)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조망(眺望) 또한 정견대(正見臺)를 제외하고는 보잘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산은 방치되어 있다. 솔치에서 북두산까지 임도가 개설되어 있지만 정상에 만들어 놓은 헬기장과 연결하는 용도일 따름이지 등산용은 아니다. 정상석과 이정표 또한 일절 없다. 때문에 임도를 제외하고는 산길이 거친데다 희미하기까지 하다. 비록 산이 높지는 않지만 산행을 이어가기다 만만찮다는 얘기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전국의 모든 산들을 모두 다 올라보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산행들머리는 북두림마을(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 I.C에서 내려와 33번 국도를 타고 고령방면으로 달리다가 수륜삼거리(성주군 수륜면 신파리)에서 우회전하여 59번 국도로 옮겨 들어가면 가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의 가천분소가 있는 백운리(수륜면)가 나온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산행들머리인 북두림마을이다. 마을 앞 도로변에 북두림이라는 마을 이름이 적힌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니 참조한다. 참고로 이곳 북두림은 해발이 500m나 된다. 이따가 오르게 될 가산의 높이가 690.7m이니 정상까지는 190m만 더 오르면 된다. 오늘 산행은 공짜나 다름없는 셈이다.




마을표지석에서 50m쯤 떨어진 북두림 버스정류장의 맞은편에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참고로 북두림(北斗林)’은 백운리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부락 중의 하나이다. 조선조 영조 때 처음으로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북두림(北斗林)’이란 마을 이름은 북쪽에 울창한 숲이 있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50m쯤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민가(民家)를 왼편에 끼고 돈다. 그리고 얼마동안은 임도를 따른다. 최근에 정비를 했는지 깔끔하게 벌초가 되어 있다.




하지만 5분이 채 안되어 임도는 끝나버린다. 그리고 오솔길로 변하면서 길 찾기가 어려워진다. 전문가가 아니면 찾아가기 힘들 정도로 길의 흔적이 희미해져 버린 것이다. 오늘따라 선답자(先踏者)들의 흔적인 리본(ribbon)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나침반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데도 말이다.



돌로 쌓아올린 축대(築臺)들이 자주 보인다. 조림을 위한 사방(砂防) 공사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계단식으로 만들어놓은 논이나 밭일 것이고 말이다. 아니 산림복구(山林復舊)가 끝난 채광지역(採鑛地域)일지도 모르겠다. 옛날 이 부근에 꽤나 많은 고령토(高嶺土) 광산들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은 잡목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좌우로 오가기를 반복하던 산길이 이번에는 오롯이 오른편으로 향한다. 길의 흔적도 생각보다는 또렷한 편이다. 이제야 가령으로 향하는 산길을 찾아낸 모양이다.



하지만 앞서가던 일행들은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왼편으로 방향을 튼 후, 막무가내로 산비탈을 치고 올라버린다. 구태여 가령까지 에둘러서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가령이란 고갯마루가 주는 의미가 적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길을 만들어가는 산행이 잠시 동안 이어진다. 잡목(雜木)들이 많지 않아 생각보다는 험난하지 않다.



산비탈을 치고 오르기를 7분쯤이면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령에서 올라오는 산길을 만난다. 가산은 왼편으로 가야함은 물론이다. 일단 능선에 오르면 길이 고와진다. 길이 또렷할 뿐만 아니라 경사(傾斜)까지도 완만해지기 때문이다. 가령 고갯마루의 높이가 640m나 되니 서둘러서 고도(高度)를 높여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가산의 정상과는 고작해야 50m의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13분 정도를 걸으면 가산(加山)의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이 조금 못 걸렸다.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정상은 텅 비어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세워져 있지 않다. 그저 한쪽 귀퉁이를 지키고 있는 삼각점(가야 315) 하나가 외롭고, 누군가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그 뒤를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아카시아를 위시한 잡목들이 주인노릇을 대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곳 지자체에서 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먼저 올라온 서래야 박건석선생께서 정상표시 코팅(coating)’지를 매달고 계신다. 오늘부터 이 산은 이름표 하나를 더 달게 될 모양이다. 정상을 올랐다는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일일 것이다.



정상은 길이 두 갈래로 나뉘기 때문에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내려서야만 솔티재에 이를 수가 있다. 하지만 올라온 반대방향, 즉 상각사로 연결되는 듯한 길이 훨씬 더 또렷하게 나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아무튼 알바를 하고 되돌아온 선두그룹이 무작정 왼편방향의 산비탈을 치고 내려간다. 길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내려가다가 길을 찾아보려는 의도인 모양이다.



얼마간 내려갔을까 이번에는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산비탈을 따라가며 제대로 된 산길을 찾아나간다.



잠시 후 제대로 된 산길을 만난다. 그리고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얼마동안 걷게 된다.



잠시 후 난데없는 삼각점(三角點, triangulation point) 하나가 눈에 띈다. 삼각점이라면 산봉우리 등의 기준이 될 만한 곳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의아해 하는데 누군가가 도근점(圖根點, supplementary control point)이라고 알려준다. 지형을 측정하기 위한 기준점이 부족할 때 보조용으로 설치하는 기준점이란다. 아무튼 오늘 또 하나의 앎을 배웠다.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不亦說乎(북역열호)’,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상에서 내려선지 10분쯤이면 잘 지어진 2층짜리 정자를 만난다. 정견대(正見臺)라는데, 가야국의 창건신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상아덤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란다. 그 상아덤에서 살았다는 가야산 여신(女神) 정견모주(正見母主)에서 이름을 땄다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와 감응해 대가야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왕 뇌질청예를 낳았다.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뇌질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곳이 가야 땅이다 보니 가야국의 창건신화에 이름을 따왔나 보다.



정견대는 가야산을 바라보는 뛰어난 전망대이다. 정자(亭子)에 오르면 가야산의 헌걸찬 암릉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오늘은 비록 구름이 윗부분을 가려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가야산의 빼어난 자태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아니 구름이 가야산의 경관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든다고 볼 수도 있겠다. 기암괴석들이 구름과 어우러지며 자못 현묘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런 걸 보고 자연의 신비로움이라고 일컫는 게 아닐까 싶다.



조망을 즐기다가 또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깔끔하게 정비된 돌계단을 내려서면 59번 국도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솔치재로 향한다.



길가에 예쁘게 지어진 집이 보여 그 위에다 가야산을 얹어본다. 나름대로 그림이 그려지나 썩 뛰어나지는 못하다. 아직도 내 솜씨는 카메라의 구도조차 잡지를 못하나 보다. 괜히 가야산의 절경까지 숨을 죽여 버리는 걸 보면 말이다.



잠시 후 솔치재에 이른다. 합천의 가야면에서 성주의 수륜면으로 넘어가는 59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이다. 백운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되는데, 백운리에 송현마을이 있어 송현 또는 솔티재라고도 부른다. 아무튼 경상 남·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선지 수많은 시설물들이 늘어서 있다. 깔끔하게 지어진 정자나 잘 손질된 소공원은 보기에도 좋지만 그 외의 시설물들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정비를 하는 게 어떨까 싶다. 하도 많아 어지럽다는 느낌이 들기에 하는 말이다.




이곳도 역시 감이 많이 생산되는 모양이다.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홍시를 쌓아놓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외에도 손수 수확한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농산물들을 진열해 놓았다.



산행을 이어간다. 들머리는 경상 남·북도의 경계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지점에서 왼편으로 열린다. 자동차가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잘 닦인 임도(林道)이다. 아니 차도(車道)라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 차량통행이 심심치 않는 지 자동차의 바퀴자국이 선명하다.



얼마쯤 걸었을까. 15분이 조금 못 되었을 게다. 오솔길 하나가 왼편으로 나뉜다. 이를 무시하고 임도를 따르는 게 옳은데도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진행방향표시지는 오솔길을 가리키고 있다. 명색이 오지(奧地) 산행 전문산악회이니 계속해서 임도를 따르는 게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이름 없는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또 다시 임도를 만난다. 비교적 짧은 구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진행하는 게 편하지 만은 않다. 잡목들 때문에 길을 헤쳐 나가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길은 거칠지만 좋은 점도 있다. 어설프긴 하지만 억새들도 만나고,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괜찮은 단풍과도 조우(遭遇)한다. 이래서 사람들은 새옹지마(塞翁之馬)’란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만들어 냈나보다.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임도를 타면 된다. 하지만 앞서 가던 박건석 선생께서는 임도를 벗어나 또 다른 봉우리 위로 오른다. 그리고 봉우리의 이름이 적혀있는 코팅(coating)지를 매달아 놓는다. ‘학발봉으로 높이는 ‘577.4m’이란다. 하지만 지도에는 이 봉우리를 별도로 표기하고 있지 않으니 참조한다. 왼편 아래에 위치한 백운리(성주군 수륜면)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부락 중의 하나가 학발(鶴足)’ 마을인데, 이를 인용해서 봉우리의 이름을 새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학발이란 마을 이름은 뒷산의 모양새가 학()의 발()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가 지은 이름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겠다.



임도로 되돌아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이번에는 곁길로 새지 않고 계속해서 임도를 따른다. 예상보다 긴 구간이라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구간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사가 거의 없는데다 바닥까지 폭신폭신해서 걷기가 무척 편하다는 점이다. 사색(思索)을 하며 걷기에 딱 좋은 구간이다.



그렇게 30분 가까이를 걸으면 널따란 헬기장이 나타난다. 네모반듯한 착륙장만 만들어져 있을 뿐 다른 어떤 시설도 눈에 띄지 않은 것이 그저 단순한 공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헬기장이라는 그 어떤 표식도 없는 걸로 보아 헬기장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무슨 행사라도 있을 때 주차장 용도로 쓰인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겠기에 하는 말이다. 조금 후에 만나게 되는 또 다른 헬기장과 거리도 너무 가깝고, 그곳에 제단(祭壇)이 설치되어 있기에 그런 추정을 해보았다.



잠시 후에는 두 번째 헬기장에 올라선다. 억새꽃밭 가운데에 자리 잡은 헬기장은 조금 전에 만났던 첫 번째보다는 훨씬 더 격식을 갖추고 있다. 반듯하게 깔아 놓은 보도블럭을 이용해 헬기장의 표식인 ‘H'자까지 반듯하게 써 놓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다. 이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얼마쯤 떨어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그 어떤 시설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만큼 등산객들이 찾지 않는 산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지자체의 무책임이 그 원인일 것이고 말이다. 가산에서 이곳 북두산까지는 1시간 15분이 걸렸다.



뒤따라오던 박선생께서 부르신다. 이곳이 북두산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한쪽 귀퉁이에 설치되어 있는 삼각점(가야 316)을 가리키신다. 나 역시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자 한다. 지도에 정상(687.9m)으로 표기되어 있는 지점보다 이곳의 해발(695,6m)8m나 더 높기 때문이다.




헬기장의 뒤, 그러니까 삼각점이 세워져 있는 반대편으로 가면 커다란 바위가 보이고, 그 앞에 제단(祭壇)이 설치되어 있다. 누가 언제 어떤 사연을 갖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커다란 상석(床石)이 제법 의젓하다.



제단의 옆에는 돌로 원탁(圓卓)을 만들어 놓았다. 식탁의 대용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는 몰라도 외국 영화에서 보았던 기사(騎士)들이 회합을 하던 원탁을 떠올리게 만드는 생김새이다.



원탁의 아래에는 커다란 빗돌이 하나 세워져 있다. ‘희애비(喜哀碑)’란다. 뒷면 가득히 내력을 적어 놓았으나 자세히 읽고 있을 여유가 없어 처삼촌 벌초 하듯이대충 읽고 지나간다. 아니 어려운 한자를 읽어 내리는데 시간을 쏟을 만한 가치를 못 느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것 같다. 아무튼 빗돌에는 이 부근에 있었다는 어전(於田)’이라는 화전민 마을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적어 놓았다. 한 때는 마을이 번창(繁昌)하기도 했었으나 정부의 산중독가촌철거명령(山中獨家村撤去命令)’에 의해 우목장(雨牧場)’이 철거되자, 이를 삶의 방편으로 삼고 있던 주민들 또한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었던 모양이다. 이를 안타까워한 주민들이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했고, 그 계가 만들어진 취지를 빗돌에 적어 놓은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대충대충 읽어본 것이니 내용이 틀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너그러운 이해를 바래본다.



임도는 두 번째 헬기장에서 끝난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오솔길을 따른다. 경사가 거의 없는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 10분 만에 세 번째 헬기장을 만나게 된다. 지도에 북두산으로 표기된 지점이다.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텅 비어 있다. 정상표지석이나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는 삼각점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저 잡초와 잡목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이곳은 두 번째 헬기장보다 높이가 낮다. 그런데도 이곳을 북두산의 정상으로 표기한 이유를 모르겠다.



함께 도착한 박선생이 코팅지를 매달고 계신다. 이번에는 늘밭봉이다. 조금 전에 지나온 두 번째 헬기장을 북두산이라 지명했으니, 이 봉우리를 달리 부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도에는 이곳을 북두산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참조한다. 아무튼 북두산은 오늘부로 늘밭봉이라는 또 다른 이름 하나를 더 얻었다. ‘늘밭(於田)’이란 지명은 이 봉우리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야천리(倻川里:합천군 가야면)를 이루고 있는 네 개의 자연부락 중 하나이다. 1979년경 정부의 독가촌(獨家村) 폐촌 정책에 따라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한때는 정감록(鄭鑑錄)의 비결을 믿고 이주해 온 화전민들이 30여 호나 거주하던 마을이었다. 옛 지명을 되살려 놓은 박선생께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의 경계는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삼암봉은 왼편, 즉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참고로 도의 경계를 따라 1Km남짓 더 걸으면 시루봉이 나온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그곳까지 다녀오면 된다. 하지만 난 포기하기로 한다. 기록해 두어야할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볼거리 또한 없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처럼 낙엽송(일본이깔나무) 숲을 만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른 줄기들이 보기만 해도 시원스럽다.



정상을 지나면서 산길은 사뭇 달라진다. 잡목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길이 희미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쓰러져 있는 나무들에 신경쓰다보면 잡목들에게 싸대기를 맞기 일쑤이다. 그것만 해도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나뭇가지에 눈이 찔리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커다란 바위가 하나 보인다. 오늘 산행에서 두 번째으로 만난 바위이다.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기묘하지도 않지만 하도 어렵게 만난 바위이기에 카메라에 담아 봤다. 아니 조금 후에 오르게 될 삼암봉의 바위()와 연관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음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낮추어간다. 마치 급할 것이 없다는 듯한 모양새다. 하긴 산이 낮은데다 날머리까지의 거리까지 길다보니 서두를 이유가 조금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25분쯤 걸었을까 능선이 둘로 나뉜다. 이곳이 모로현으로 가는 길과 나뉘는 지점이 아닐까 해서 유심히 살피는데 앞서가던 일행이 아니란다. 갈림길은 한참 전에 이미 나뉘었다는 것이다. 하도 길이 희미하다보니 놓쳤었나 보다. 아무튼 우리가 가야할 능선은 오른편이다.



문득 기괴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릇 산행이란 오르는 높이만큼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 산행은 분명 200m정도 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200m만 내려가면 산행이 종료된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산 아래는 저만큼 아래에서 아직까지 가물가물하고 있는 것이다. 끝내는 지도를 꺼내 보고야 고개가 끄떡거려진다. 들머리가 날머리보다 300m나 더 높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산행은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내려가는 산행이 되는 셈이다.



정상에서 내려선지 50분 가까이 되면 삼암봉에 올라서게 된다. 서너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이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도 물론 없다. 그저 감마로드라는 모임에서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과 삼각점(가야 459)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삼암봉(三岩峰)이라면 3개의 바위라는 뜻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바위를 닮은 것조차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산행 후에 검색을 해봐도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삼암봉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엄청나게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거기다 길의 흔적까지 또렷하지 않으니 주의해서 내려서야 한다. 그렇게 10분 남짓 내려가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물론 길은 없다. 조금이라도 더 짧고 편하게 산행을 마치고 싶은 선두대장의 의지일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새터마을 경로당(합천군 야로면 하림리)

산비탈을 내려서면 새로 개간한 듯 보이는 경작지가 나타나고, 미안한 마음으로 울타리를 넘으면 저만큼에 새터마을(하림리)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새터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기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니 참조한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3시간 20분이 걸렸다. 중간에 쉬었던 시간이 거의 없으니 온전히 걷는데 소요된 시간으로 보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