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산(七寶山, 810.2m)-등운산(騰雲山, 767.4m)

 

산행일 : ‘17. 1. 15()

소재지 : 경북 울진군 온정면과 영덕군 청수면·병곡면의 경계

산행코스 : 유금마을 버스정류장유금사주능선헬기장칠보산헬기장유금치산사랑 쉼터등운산임도자연휴양림(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칠보산과 등운산은 전형적이 육산(肉山)이다. 하산 길에 바위 몇 개를 만나게는 되지만 그 정도의 바위도 없는 산이 어디 있겠는가. 때문에 여느 흙산들이 나타내는 일반적인 특징들을 이곳 또한 여과 없이 보여준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대신에 산행이 편하다는 특징 말이다. 아무튼 부드러운 흙길에는 솔가리들까지 수북하게 쌓여 폭신폭신하기까지 하다. 거기다 경사까지 완만해서 노약자들도 부담 없이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이다. 볼거리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육산 치고는 조망(眺望)이 뛰어난 편이기 때문이다. 칠보산과 능운산을 잇는 주능선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조망은 어디다 내놔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부산일보에서는 이곳을 일석삼조의 산이라고 칭찬했다.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산행은 물론, 피곤할 경우에는 산자락에 자리 잡은 자연휴양림에서 머물 수도 있고, 산행 후에는 대게등 영덕의 별미를 맛볼 수 있다면서 말이다. 거기다 요즘은 해돋이 명소로까지 각광을 받고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산행지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한번쯤은 꼭 찾아봐야할 산으로 구분하고 싶다.


 

산행들머리는 유금마을 앞 버스정류장(영덕군 병곡면 금곡리)

당진-영덕고속도로(상주-영덕)의 영덕 I.C에서 내려와 7번 국도를 타고 울진방면으로 27km 정도를 올라온다. 금곡교차로(영덕군 병곡면 금곡리)에서 빠져나오면 좌측으로 칠보산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군도(郡道)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3km 정도 진행하면 우측에 유금사행 도로가 나오고, 이 길을 따라 3km 정도를 들어가면 유금마을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왼편으로 난 도로를 따라 유금사 방향으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유금마을의 대문 역할을 하고 있는 다리에 유금사진행방향이 표기되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행방향에 있는 유금사버스정류장과 지역특산물 간이판매장을 이정표 삼아도 될 일이다.



3분쯤 걸었을까 저만큼에 산골 사찰치고는 제법 큰 규모의 유금사(有金寺)가 나타난다. 유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서 선덕여왕 6(637)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만 해도 대웅전, 종각, 장화부인신령각(莊華夫人神靈閣) 등의 전각들을 갖춘 제법 큰 규모의 절이었으며, 승려도 수십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향로전·서운루(棲雲樓산왕각(山王閣요사채 등이 있다. 석가여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 대웅전은 1973년에 보수하였는데, 이때 천장 속에서 금서(金書)가 발견되어 이 건물이 1627년에 건립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유금사에는 이 절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설화(說話)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어느 날 주지가 불국사에서 법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 절 앞 용소(龍沼)에서 두 마리 용이 교미하는 것을 보고 고약하게 여겼는데, 스님이 절에 도착하기도 전에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로 절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 뒤 다시 중건하였으나 화재로 소실(燒失)되었으며, 1627(인조 5)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다른 설화도 있다. 신라 말 경순왕의 첫째 아들 김일(마의태자)을 사랑했던 장화라는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 여인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자 이곳에서 신령각을 짓고 마의태자를 위해 밤낮으로 축원하다 죽자 보살들이 장사를 지내고 묘폐를 세웠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묘폐를 세운 석축이 남아 있다. 다른 한편으론 신라시대 이 마을의 구장자가 금척을 발견, 왕에게 진상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국가급(國家級) 문화재(文化財)가 있다고 해서 유심히 살펴보지만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석탑(石塔)’으로 알고 있기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절들은 주 법당(法堂)의 앞에다 탑을 배치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 궁금증은 대웅전의 뒤로 돌아가면서 자연스레 해소된다. 보물 제674호로 지정된 유금사 삼층석탑(有金寺 三層石塔)’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탑을 보수(補修)하고 있는 중이라서 그 전모를 눈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원래는 대웅전의 앞에 있었으나 언제부턴가 이곳으로 옮겨 놓았단다. 탑의 생김새는 다른 문헌의 글로 대신해본다. 이 탑은 높이 320‘2중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으로 이루어져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형식을 따르고 있다.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짜인 지대석 위에 낮은 하층기단이 있는데 하대석과 중석은 1개의 돌로 되어 있고, 중석의 각 면에는 우주(隅柱)1개의 탱주(撑柱)가 새겨져 있다. 그 위에 4매로 된 갑석이 있는데 중앙에 호형과 각형으로 된 2단의 굄이 있다. 상층기단의 중석 각 면에도 우주와 1개의 탱주가 있고, 넓고 얇은 갑석의 밑면에는 부연이, 윗면에는 2단의 각형 굄이 있다. 탑신부의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는데, 각 층의 옥신석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다. 옥개석의 윗면에는 옥신석의 받침이 있고,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는 없어진 것을 후대에 보수한 것이다.



절의 입구로 되돌아와 왼편 임도(林道)를 따른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임도로 들어서자마자 짙은 솔향이 코끝을 건드린다. 울창한 소나무 숲 아래로 길이 나있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 후 임도가 둘로 나뉜다. 그런데 갈림길에 산삼 체험장 가는 길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칠보산에서 발견된 일곱 가지의 보물 중에 산삼(山蔘)‘이 포함되어 있다는 전설(傳說)이 옳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인근 주민들이 산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산양삼(山養蔘)‘이라도 재배하고 있던지 말이다. 아무튼 칠보산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진행방향의 계곡 사이로 뾰쪽한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칠보산의 정상이 아닐까 싶다. 제법 높아 보이는 게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솔솔 든다.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길이 둘로 나뉜다. 임도를 떠난 산길이 왼편 산자락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왼편 산자락을 살피며 걷다가 선답한 산악회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들이 덕지덕지 매달려 있는 곳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오솔길로 들어서자 주변 풍광이 바뀐다. 소나무들의 허리통이 많이 굵어진 것이다. 오래 묵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개체(個體)의 수는 많이 줄었다. 잠시 후 유금치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왼편 방향으로 오솔길 하나가 나뉜다. 그렇다고 어디로 갈지를 놓고 고민할 일은 아니다. 어디로 연결되는지가 정확치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른편 방향이 훨씬 더 또렷한데다가 리본들까지 너절하게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냥 오른편으로 가면 된다는 얘기이다.



갈림길을 지나면서 산자락은 급사면(急斜面)을 이룬다. 들머리와 정상의 표고차가 500m를 훌쩍 넘기다보니 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웬만한 1,000m급 고봉(高峰)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다. 왔다갔다 갈지()자로 길을 내놓아 경사(傾斜)의 각도를 확 죽여 놓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둘이 나란히 서서 걸어도 충분할 정도로 길의 폭도 넓혔다. 굳이 속도만 내지 않는다면 큰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동해바다가 내다보인다. 겨울 산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일 것이다. 나뭇잎이 지지 않았더라면 그쪽에 바다가 있다는 것조차 생각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겨울철 산행이라는 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가 보다.



산자락으로 들어선지 45분 만에 능선에 올라선다. 칠보산에서 등운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이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정표(칠보산600m/ 휴양림3Km/ 유금사1.2Km)를 만난다. 한가운데에다 현재의 위치를 표시해 길 찾기를 한결 편하게 했다. 하지만 현재 위치에 지명까지 표기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었다싶으면 곧이어 헬기장이 나온다. 일망무제(一望無題)의 조망이 터지는 것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가 아닐까 싶다.



조망(眺望)은 막힘이 없다. 왼편으로는 백암산과 백수산, 독경산 등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높고 낮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그 너머의 산은 아마 일월산일 것이다. 동해 쪽 조망도 시원스럽다. 눈앞에 고래불 해수욕장이 있고, 쪽빛 바다의 수평선은 하늘과 맞닿아 어디까지가 바다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구분이 없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는 금방이라도 산기슭까지 밀려올 만큼 바다가 가까워 보인다.




능선에 올라섰다 싶으면 이후부터는 수월한 산행이 이어진다. 큰 오르내림이 없는 능선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저 바닥에 얼어붙은 잔설(殘雪)을 조심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진행하면 드디어 칠보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영해 산사랑산악회가 설치한 오석(烏石)으로 된 정상표지석과 케언(cairn, 돌탑)이 있고, 소나무 한 그루가 싱싱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상에서는 동해 쪽으로 조망이 열린다. 눈앞에 고래불해수욕장과 그 너머의 쪽빛 동해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수평선은 하늘과 맞닿은 풍경이 그림 같지만 조금 전에 헬기장에서 보았던 풍경과 거의 같기에 사진은 생략한다.



칠보산(七寶)이란 지명은 이 산에 일곱 개의 보물이 있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900년 전, 그러니까 고려 중기 때이다. 이곳을 지나던 중국 지리학자 사두충이 칠보산을 지나는 길에 샘물을 마셔보고는 샘물 맛이 여느 물과 다르니 이 산에는 일곱 가지 귀한 물건이 있다는 말을 남기도 떠났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이 찾아본 결과 과연 돌옷과 더덕, 산삼, 황기, 멧돼지, 구리, 철 등 동식물과 지하자원 일곱 가지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금곡리 뒷산 아래에는 지금도 그 샘이 있다고 한다. 공식적인 전설과 달리 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구전(口傳)도 있다. 신라시대 성덕왕의 일곱 공주가 이곳에서 출가해 수도하다 모두 신선(神仙)이 된 데서 산 이름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헬기장으로 되돌아와 남쪽 방향에 있는 등운산으로 진행한다. 큰 오르내림이 없는 밋밋한 능선이다.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금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유금치(有金峙)가 나온다고 했는데 갈림길은커녕 고갯마루 비슷한 것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아니 아까의 유금사삼거리유금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아무튼 '유금(有金)'이란 지명은 금()이 손으로 주울 정도로 많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도 폐쇄된 금광굴이 있단다. 또한 신라시대에 요 아래 마을의 구장자가 금척을 발견하고 왕에게 진상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후 이정표(분기점 1.0Km/ 칠보산 1.2Km)119의 구조지점표시목(No 3)이 세워진 펑퍼짐한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다른 이들의 후기를 보면 이 근처에 유금치가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갈림길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이곳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검푸른 물빛의 동해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래 저래서 망망대해(茫茫大海)라는 낱말이 생겨났나 보다.




또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그리고 17분 후에는 팔각의 정자(亭子)가 지어진 사거리(이정표 : 등운산 1.2Km/ 휴양림 1.8Km/ 해돋이전망대 2.0Km/ 칠보산 2.3Km)에 이른다. ‘산사랑 쉼터라 불리는 곳이다. 산사랑 쉼터는 전망대지만 숲에 가려 조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쉼터는 오늘 산행 코스 중 가장 중요한 갈림길이다. 능선을 타고 곧장 직진하면 헬기장을 지나 등운산 정상으로 가게 된다. 이곳 칠보산의 또 다른 명물인 해돋이전망대로 가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왼쪽 길을 잡아 내리막을 내려가면 칠보산자연휴양림으로 가게 된다.




이정표의 하단에 국립칠보산자연휴양림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휴양림은 분명 등운산(騰雲山) 자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등운산과 칠보산이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다, 칠보산이 더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의 풍속도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강한 놈이 하나라도 더 가진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요즘의 현실을 말이다.



쉼터에 세워진 등산안내도를 살펴보다가 등운산 정상으로 향한다. 떡갈나무와 신갈나무 같은 활엽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평범한 산길이다.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앙상한 모양새들이다. 하지만 겨울을 지난 다음에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다시 잎을 키워 풍만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4분 후에 휴양림삼거리‘(이정표 : 등운산400m/ 휴양림1.8Km/ 칠보산3.3Km)에 이른다.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 이곳에서 또 다시 나뉘는 모양이다.



자연휴양림에서 세워놓은 이정표 외에 또 다른 이정표도 보인다. 나무판자를 세로로 세워놓았는데 기존의 이정표들보다 훨씬 더 보기가 좋다.



또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아까와 다름없는 풍경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특별히 눈에 담을 만한 풍경이 없다는 얘기이다. 물론 조망도 트이지 않는다.



그렇게 6분쯤 걸으면 헬기장이 나타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 웃자란 잡초들이 그다지 넓지 않은 공터를 온통 차지하고 있다. 그 탓에 조망까지도 꽉 막혀있다.




헬기장을 지났다 싶으면 곧이어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오르면 실망부터 하게 된다. 시원스럽게 펼쳐져야할 동해바다가 숲으로 가려있는 것이다. 나뭇잎이 떨어진 빈 가지가 아니었더라면 그마저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이왕에 만들었다면 시야를 가로막는 나무 정도는 정리하는 게 옳겠기에 하는 말이다.  





등운산의 정상은 전망대의 바로 옆에 있다. 정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 흔한 정상표지석도 하나 없고 봉우리조차 솟지를 못 했다. '등운산, 해발 767m'라고 적힌 안내판마저 없었더라면 이곳이 정상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게 뻔하다. 거기다 조망(眺望)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이래서 요 아래에 있는 휴양림의 앞에다 등운산 대신에 칠보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나 보다.




하산을 시작한다. 밋밋한 능선길이 잠시 이어지더니 잠시 길이 왼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튼다. 능선을 따라 길이 나있을 법도 하지만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휴양림1.72Km/ 등운산0.29Km)에도 나타나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산길이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본적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하지만 경사가 심한 편은 아니다. 가끔 바위들 사이를 돌아 내려가기도 하지만 내려서는 데는 조금도 부담이 없다. 또 다른 변화도 있다. 산길이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나있다는 것이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솔향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가끔가다 바위틈을 막아놓기도 했다. 등산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추락주의라고 쓰인 경고판도 보인다. 경사가 심한 지역이니 통행에 주의를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까지는 없다. 새로운 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옛날에 길이 있었던 곳으로 들어서보지만 솔가리 등이 어찌나 많이 쌓여있던지 지금은 발을 들여 놓을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소나무 숲이라선지 고사목(枯死木)도 보인다. 썩 뛰어난 자태는 아니지만 잠시의 눈요깃감으론 충분하다.



산길은 임도를 가로질러 건너편 능선으로 연결된다. 길가에 세워진 이정표(휴양림 0.5Km/ 등운산 1.51Km) 말고도 멋지게 생긴 바위 몇 개가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왼편으로 진행할 경우에는 해돋이 전망대로 연결된다. 쪽빛의 동해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것은 물론 고래불해수욕장의 하얀 모래사장까지 한눈에 잘 들어온다는 곳이다. 하지만 진행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생각보다 멀기 때문이다. 정 가보고 싶을 경우에는 일단 주차장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서 들머리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휴양림에 가까워질수록 소나무의 크기가 굵어진다. 숲 또한 갈수록 깊어지는데, 그에 따라 솔향의 농도(濃度)도 짙어진다. 그 향기 속에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가 많이 섞여있을 것이다.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가 소나무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 산행은 웰빙(Well-being)산행이라 분류할 수도 있겠다. 아니 요즘의 대세인 힐링(healing)이라 하는 게 더 옳겠다. 그렇게 10분 조금 못되게 내려오면 삼거리(이정표 : 휴양림 0.1Km/ 정자 0.2Km/ 등운산 1.81Km)를 만난다. 어디로 가든지 주차장으로 연결되지만 이쯤에서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잠시 후 1994년에 문을 열었다는 칠보산휴양림을 만난다. 산림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설로서 천연소나무가 일품인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해수욕과 산림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휴양림에는 산림문화휴양관, 숲속의 집, 야영장, 숲속수련장, 체력단련시설, 물놀이장, 등산로, 산책로, 어린이놀이터 등이 마련되어 있다. 주변에는 몸에 좋은 피톤치드(Phytoncide)를 맘껏 뿜어내는 소나무가 주 수종을 이루고 있고 숲속엔 작지만 시원한 계곡이 어우러져 있다. 이 계곡물을 막아 물놀이장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여름엔 이용객들의 놀이공간으로 인기가 좋다.




산행날머리는 칠보산자연휴양림 주차장

숲 자락 여기저기에 숙박시설이 세워져 있다. 양 갈래로 하늘을 향해 뻗은 거대한 소나무가 숲 속의 집들을 호위하는 모양새이다. 하루 최대 1천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이 휴양림은 겨울 비수기라 그런지 한적하기 짝이 없다. 휴양림의 시설들 사이를 지나면 곧이어 주차장이다. 주차장의 끄트머리에는 솟대 몇 개를 꽂은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데크에 오르면 고래불해수욕장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이른 아침에는 동해의 해돋이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긴 객실에서도 해돋이를 즐길 수 있다니 두말하면 뭐하겠는가. 아무튼 그런 점이 칠보산 자연휴양림이 내세우는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한다. 그래서 매년 11일이면 휴양림에서 새해 해맞이 행사를 실시하고 있단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쉬지 않았으니 오롯이 걷는데 걸린 시간으로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