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령산(建靈山, 521.6m)-명봉산(明峰山, 401.7m)

 

여행일 : ‘17. 2. 2()

소재지 : 경북 칠곡군 동명면·지천면과 대구시 북구 읍내동의 경계

산행코스 : 창평리고개건령산여부재420.1m명봉산양지마을 갈림길말산양지마을 입구(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오늘 오른 건령산과 명봉산은 황학지맥(黃鶴枝脈)의 백운산(713m)에서 남쪽으로 곁가지를 쳐서 대구 시가지로 뻗어 내리는 능선 상에 솟아오른 산봉우리들이다. 두 산 모두 제대로 된 바위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육산(肉山)으로 흙산의 일반적인 특징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산세는 비록 보잘 것이 없지만 보드라운데다가 경사까지 없는 흙길 덕분에 힘들지 않는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여느 흙산에서도 볼 수 없는 조망(眺望)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산불 덕분에 한쪽 사면이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도 있다. 두 산이 바로 이웃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확연히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도심(都心)의 체육공원을 연상시키는 명봉산과는 달리 건봉산은 이정표 하나 없이 버려져 있기 때문이다. 건봉산이 산불에 모든 것을 태워버린 탓에 주민들을 위한 모든 노력을 명봉산에 쏟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두 산 모두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인근 주민들이나 산을 오르내리며 건강을 만들어나가기에 딱 어울릴 것 같아서이다.



산행들머리는 창평리고개(칠곡군 지천면 창평리)

경부고속도로 왜관 I.C에서 내려와 4번 국도를 타고 대구방면으로 내려오다 지천면 덕산리에서 내려와 923번 지방도를 타고 다부동(칠곡군 가산면) 방면으로 달리다 신리사거리(지천면 신리 873-1)’에서 우회전하여 군도(郡道, 창평로)를 따라 들어가면 송산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가 된다. 동명면 송산리와 지천면 창평리를 잇는 고갯마루이다.



오늘 산행은 첨부된 지도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양지마을삼거리에서부터는 지도에 표시된 코스를 따르지 않고 164.6m봉을 거쳐 양지마을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164.6m, 즉 말산을 들러보기 위해서이다.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비록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널찍하게 임도(林道)가 나있어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능선은 은빛으로 빛나는 자작나무가 가득하다. 굵기가 가는 것으로 보아 심은 지는 오래지 않은 모양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쉼터를 기점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2~3분 쯤 오르면 원형의 탁자에 의자까지 갖춘 반듯한 쉼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쉼터의 위는 담쟁이넝쿨을 길러 햇볕까지 가릴 수 있도록 해놓았다.



쉼터를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길의 왼편에는 길게 금()줄이 쳐져 있다. 사유지이니 들어올 경우에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는 서슬 시퍼런 경고문까지 붙여 놓았다. 뭔가 약용식물이라도 재배하고 있는가 보다.



능선의 양 사면(斜面)은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왼편이 참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반면 오른편 사면은 텅 비어있다. 2006년엔가 이곳에서 큰 산불이 났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도 반대편 산자락까지는 산불이 번지지 않았었고 말이다.



뒤돌아보면 백운산을 거쳐 황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그곳도 역시 산불의 피해를 보았던지 산은 텅 비어있다. 덕분에 겹으로 뚫린 임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산불 진화를 염두에 두고 개설을 했었는지 빈틈을 두지 않고 산자락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오른편 방향의 시야는 막힘이 없다. 그리고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산불로 인해 산의 사면이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칠곡군청이 있는 왜관 쪽 풍경이 시야(視野)에 들어오는데, 높고 낮은 수많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는 것이 마치 강원도의 산간오지에라도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20분쯤 지나면 산길이 그 사나웠던 기세를 뚝 떨어뜨린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능선산행이 이어진다. 산행이 무척 편해진다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오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갈 따름이다.



왼편으로도 시야가 열린다. 동명면 송산리 방향이다. 저곳은 동제(洞祭), 즉 마을의 수호신인 동신(洞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열리는데, 이때 모시는 신()건령산신(建靈山神)’이라고 한다. 또한 송산리의 무악골(舞樂谷)이라는 마을은 건령산신이 내려오실 때 춤을 추면서 오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건령산이 이곳 주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일 것이다.




능선의 한쪽 귀퉁이에 쌓아놓은 나무들마다 불에 탄 흔적이 역력하다. 잔불을 정리하면서 한쪽에다 모아놓은 모양이다.



17분쯤 지났을까 작은건령산(516.5m)’이라고 적힌 코팅(coating)지가 매달려 있는 산봉우리에 올라선다. 저만큼 앞에서 걷고 있는 서래야 박건석선생이 매달아놓고 가신 모양이다. 이름이 없던 산봉우리로 알고 있는데 그가 새로운 이름을 붙였나보다. 그가 지은 이름이 그대로 사용될지는 아직 모른다. 아마 그러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뜬금없는 이름이라면 코팅지를 떼어버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작은건령산에서 잠시 아래로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건령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50분 만이다. 건령산의 정상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 두루뭉술하게 생긴 것이 산봉우리 같지도 않다. 그래선지 정상표지석도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이정표도 없다. 그저 두세 평도 안 되는 비좁은 공터에 돌 몇 개를 쌓아놓고 정상표지판을 그 돌에 빗대어 세워놓았을 따름이다. 대구의 산악인인 김문암씨의 작품일 것이다.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이곳이 건령산의 정상인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건령산에 대한 기록은 조선 영조 때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成冊)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건령산은 관아의 서쪽 30리에 있으며, 북쪽으로 인동 경계에 닿아있다. 소학산에서 남쪽으로 구불구불 뻗어 나와 녹봉(鹿峯)을 이룬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또한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북쪽으로 소야현을 거쳐 가산으로, 남쪽으로는 여화재로 산줄기가 연결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한자 표기는 건령산(乾灵山)’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건령산(建靈山)’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산신령이 서있는 형상이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정상에서의 조망도 뛰어나다. 산을 오르는 동안 보았던 풍경들이 다시 한 번 나타나는데 고도(高度)가 높아진 만큼 시야(視野) 또한 더 넓어졌다.



명봉산으로 향한다. 버거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명봉산과의 사이에 있는 여부재까지 내려가려면 꽤나 많이 고도를 낮추어야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게 15분 조금 넘게 내려왔을까 작은 봉우리 하나가 진행방향에 나타난다. 산길은 그 앞의 안부에서 능선을 벗어난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하지만 맞은편 봉우리를 오르는 길도 또렷한 편이니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안부 오른편에 망주석(望柱石)까지 갖춘 묘역(墓域)이 보이니 참조한다. 안부에서 여부재까지는 임도로 연결된다. 안부에 있는 묘역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놓았지 않았나 싶다.



길가에 한티가는 길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작년 가을 한티가는 길을 조성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 사업이 벌써 마무리되었나 보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순례자로 유명해진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누구나 한 번쯤 걷기를 소망하는 길이다. 최초 순교자 야고보 성인의 전도 행로를 따라 펼쳐지는 길은 프랑스 남부 생장 피데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이어진다. ‘산티아고 길을 모티브로 한 순례길이 바로 한티가는 길이다. 한국판 산티아고 가는 길로 보면 되겠다. 이 길은 한말(韓末)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요, 순교의 길이었다. 당연히 신자들에겐 더없이 좋은 연단(鍊鍛)의 길이 될 것이다. 다시 산티아고 가는 길로 되돌아가 보자.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희망한다고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35일 여정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데다 하루 20를 걸어야 하는 강한 체력이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600만 명 이상의 순례객들을 불러들이며 문화, 관광 비즈니스는 물론 종교, 문화적으로도 엄청난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니 어느 누가 그 모티브를 탐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이곳 한티가는 길이다.



여부재에 내려선다. 북쪽의 건령산에서 남쪽의 명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안부에 위치한 고갯마루로서 칠곡군의 동명면(송산리)과 지천면(심천리)의 경계를 이룬다. 여부재가 처음 기록된 사료는 해동지도(海東地圖)’이다. 하지만 이 지도에는 여부재가 아니라 이칭인 여화현(如火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여화현(餘火峴)이라 쓰기도 하는데, 여부재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을 화()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여부재라는 이름은 옛날에 동명면의 시장에 가면 이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쳐다보는 남편과 같은 고개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날 이 고개는 지천면과 동명면 주민들이 넘나들면서 인적이 끊이지 않던 고갯마루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니면 명봉산이나 건령산을 오르려는 등산객들이나 찾아올 정도로 한적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고갯마루에는 주차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널찍한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사각의 정자(亭子)를 짓고 그 아래에 벤치를 놓아두었다. 이로 보아 순례길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진 시설이지 싶다. 정자 옆에 서있는 스탬프보관소가 그 증거일 것이다. ‘한티가는 길을 탐방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을 지나갔다는 증거를 남기라는 의미일 만들어 놓은 시설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쉼터에는 여부재를 설명해 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그 아래에 그려져 있는 지도(地圖)가 더 관심을 끈다. ‘한티가는 길에 대한 안내도이다. 이곳 여부재는 그 세 번째 구간으로 뉘우치는 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단다. 동명성당에서 창평지까지로 거리가 대략 9Km인데, 전체를 다 걸으려면 4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부연설명까지 적어 놓았다.



고갯마루에는 한티, 신나무골 성지, 도보순례길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조금 전에 보았던 한티가는 길이 조성되기 전에 일부 신자들이 걷던 순례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튼 신나무골은 지천면 연화2리이고 한티는 동명면 득명리에 있는데, 두 군데 모두 천주교도들의 신자촌이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인 1859년 말 경신박해가 일어나 신나무골에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배씨 가정 다섯 식구는 눈이 덮여있던 이 고개와 건령산을 넘어 80여리 떨어진 한티로 피신을 했다. 그러나 추격해온 포졸들은 한티 옹기굴에 숨어있던 일가족을 끌어냈고, 끝까지 천주교를 믿겠다고 한 부인 이선이(엘리사벳)와 장남(배스테파노)186031일 끔찍하게 참수했다고 한다.



건너편 산자락으로 난 임도를 따라 명봉산으로 향한다. 마음 같아서는 한티가는 길을 따라가고 싶지만 사정이 허락하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2년 전 가을에 10일 안팎의 일정으로 스페인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도전해보지 못했던 신티아고 가는 길을 맛이라도 좀 보고 싶었지만 이 또한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겠다. 아무튼 다음에라도 한번쯤 짬을 내어 꼭 찾아보고 싶다. 그리고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그게 잘 안될 경우에는 사색과 음유(吟遊)로라도 한갓지게 걸어보고 싶다.



5분 조금 못되게 올라서면 능선 안부에 이른다. 명봉산은 왼편 능선을 따라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아니 엄청나게라는 수식어(修飾語)를 쓰는 게 더 실감이 나겠다. 그나마 6분이면 그 가파름이 끝난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420.1m봉으로 오르는 길에 뒤돌아본 건령산의 왼쪽 사면(斜面), 민둥산의 허리를 도는 목조 데크길이 끝 간 데 없이 길게 나있다. 저런 길을 내려면 꽤나 많은 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예산을 쏟아 부어야 했을 정도로 필요한 시설이었을 지가 의심스럽다.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이면 420.1m봉에 올라선다. 이곳에도 역시 박건석선생이 코팅지를 매달아 놓으셨다. ‘여부봉이란다. 조금 전에 지나왔던 여부재에서 따다 붙인 모양이다. 의미 없는 표시라 생각되어 그냥 지나치려는데 조삼국선생님께서 자신의 표지기를 매달고 계신다. 이미 1만개 이상의 산봉우리를 오른 분이니 뭔가 의미가 있는 봉우리일 게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산봉우리를 올랐다는 문정남선생님의 표지기도 매달려 있다. 오늘 산행은 그 둘에다 심명보선생님과 김신원선생님 등 만산회 회원들 모두가 함께하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나게 되는 왼편 조망, 동명면 소재지인 금암리일 것이다. 그리고 푸른빛으로 나타나는 동명저수지의 뒷산은 도덕산이 분명하다. 그 뒤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은 팔공산일 것이고 말이다.



아래로 떨어졌던 산길이 다시 위로 오르기를 멈춘 채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능선을 따라 위로 오르는 게 옳기 때문이다. 벌목(伐木)을 한 나무들을 그대로 바닥에 깔아놓은 탓에 산길이 안 보였을 따름이다.



2~3분쯤 사면을 따랐을까 산악회의 방향표시지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라고 한다. 길이 안 보이는데도 말이다. 늦게나마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눈치 챘나 보다. 그리고 잘못 들어선 지점까지 되돌아가느니 그냥 치고 오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나 보다. 아무튼 비록 잠깐이기 하지만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가는 산행이 이어진다.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나무들을 넘거나 피하면서 오르는 만만찮은 산행이다.



그렇게 12분 정도를 진행하면 무명봉 위에 올라선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봉우리이다. 하지만 조망만은 뛰어나다. 왼편으로 시야가 열리며 동명면(칠곡군)의 너른 들녘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 뒤에 보이는 산들은 도덕산과 가산, 팔공산 등일 것이다.



이후로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산행이 이어진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 느낄 수 없으니 산행은 지극히 편안해진다.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며 걷기에 딱 좋은 구간이다.



작은 바위들이 능선에 늘어서 있다. 마치 누군가가 흩뿌려놓은 것 같은 모양새이다. 비록 왜소하기 짝이 없지만 그냥 지나쳐버리지는 못한다. 그 생김새가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할 뿐만 아니라,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나보는 바위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오늘 산행 중에 유일하게 만난 바위들이라고 하는 게 더 옳겠다. 이후로도 바위를 만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3분쯤 더 걸었을까 이번에는 움막에 가까운 가건물 하나가 나타난다. 하지만 의젓하게 문까지 달고 있는 것이 집의 모양새는 제대로 갖추었다. 그리고 명봉산악회에서 관리하는 시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정돈 되어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은 참나무들로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올랐던 건령산이나 이곳 명봉산 할 것 없이 온통 참나무들 일색이다. 참나무가 자생하는 표본지로 삼아도 되겠다.



움막을 지났다싶으면 곧이어 명봉산 정상에 올라선다. 건령산을 내려선지 정확히 1시간 만이다. 엄청나게 널따란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대구 K2산악회에서 세운 조그맣고 예쁜 정상표지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로 옆에는 삼각점(대구 21 2007재설)도 보인다. 참고로 명봉산이란 이름은 옛날 큰일이 있을 때 봉화를 밝히던 산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난 편이다. 헬기장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화마(火魔)가 휩쓸고 지나간 뒤끝이라는 이유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왼편에는 동명 시가지와 송림지 뒤로 도덕산이 보이고 그 뒤에는 팔공산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오른편 발아래에는 심천리가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어렴풋이 나타나는 것은 아마 칠곡 시가지일 것이다.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능선을 따라 난 길은 한마디로 순하다. 보드라운 흙길에 경사까지도 느긋하기만 하다. 평지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에는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얼마나 정성들여 산을 가꾸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갈 것이다.



길가에 나뭇잎 하나 없이 줄기만 앙상한 고사목(枯死木)들이 늘어서있다. 대부분 굵은 줄기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모두가 하나 같이 검은 색으로 덧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흔적들일 것이다. 그나마 불에 탄 나무들보다 살아남은 나무들이 더 많은 것이 다행이다. 그 덕분에 공원처럼 잘 가꿀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10분이 조금 못되어 운동기구 몇 개와 벤치를 마련해 놓은 쉼터에 이른다. 이런 시설이 있다는 건 이곳 명봉산이 동네 뒷산과 마찬가지라는 얘기일 것이다. 쉬엄쉬엄 올랐다가 몸 좀 풀고 내려가는 그런 산 말이다. 그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것이 바로 이런 체육시설들일 것이다.



산길은 넓고 완만하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 거의 없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도 가끔 보인다. 그래 누군가는 이곳을 MTB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했다.



20분쯤 지났을까 또 다른 쉼터를 만난다. 이번에는 아예 오붓이 둘러앉아 쉴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들어 놓았다. 붉은 칠을 한 난간을 두르고 그 안에다 달력은 물론이고, 시계와 간단한 집기들까지 갖추어 놓았다. ‘명사모’. ‘명봉산을 사랑하는 사람모임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걸로 보아 그네들이 관리하는 시설인 모양이다. 그런데 청폐장수(淸肺長壽)’라고 적힌 편액(扁額)이 눈길을 끈다. ‘폐가 맑으면 오래 산다.’ 이 얼마나 좋은 얘기인가. 산에 내걸기에는 이보다 더 나은 게 없을 것 같다.



숲속에는 정자(亭子)도 들어 앉혔다. 아까 하산을 시작하면서 떠올렸던 내 느낌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흡사 도심공원(都心公園)’에라도 온 것 같다는 그 느낌말이다.



또 다시 체육시설이 나타난다. 첨부된 지도에 '양지마을삼거리'로 표기된 지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몸 풀기 정도가 아니다. 철봉까지 갖춘 걸로 보아 아예 몸을 만들어보라는 얘기인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 명봉산을 건강지킴이산이라는 애칭을 붙이는가 보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이정표(양지마을 1.9Km, 명봉산산불초소 2.2Km, 해원사 2.6Km/ 명봉산 1.9Km)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오른편은 한틔재를 거쳐 돌고개로 이어지는 길이다. 우리가 내려가려는 양지마을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10분 후 또 다른 삼거리를 만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양쪽 다 또렷하게 길이 나있는데 이정표(양지마을 1.2Km, 해원사 1.8Km/ 명봉산 2.6Km)에는 오로지 오른편 양지마을 방향만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그저 이정표를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진행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자체에서 대한 신뢰도 한번쯤은 가져보자.



5분쯤 내려갔을까 산악회의 진행방향 표시지가가 오른편을 가리키고 있다. 말산의 들머리가 되는 기점(基點)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길 찾기에 주의를 필요하다. 산길의 흔적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기 때문이다. 이정표도 세워져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요상하게 생긴 텃밭도 보인다. 나무기둥을 엮어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오케이 목장의 결투였던가? 총잡이들이 드나들던 미국 서부의 그 목장(牧場) 말이다. 아무튼 도심(都心)의 공원 같이 잘 가꾸어진 산속에서 만나는 텃밭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러한 풍경은 말산의 정상 근처에서 다시 한 번 만나게 된다.



잠시 후 말산의 정상에 오른다. 하지만 이곳을 정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산봉우리라고 여기기보다는 그저 둔덕 정도로 보는 게 정상일 것 같아서이다. 그러니 정상석이 있을 리가 없다. 이정표 또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삼각점(대구 406, 1982년 재설)과 이곳을 먼저 지나간 선답자들이 매달아 놓고 간 표지기들을 보고 이곳이 말산의 정상이려니 추정해볼 따름이다. 참 깜빡 잊을 뻔 했다. 방금 전에 지나간 박건석선생께서도 코팅지를 매달아 놓고 가셨다. 그런데 말산 1이란다. 내가 알고 있기론 말산인데도 말이다.



하산을 시작한다. 또 다시 만나게 되는 요상한 텃밭을 오른편에 끼고 아래로 향한다. 길이 의외로 또렷하니 별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아까 헤어졌던 정규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시계를 본다. 이곳 명봉산을 돌아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재보라는 것일까?



산행날머리는 양지마을 입구(대구시 북구 읍내동)

그렇게 잠시 내려오면 양지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이정표 : 해원사 0.5Km/ 명봉산 3.8Km)에 내려서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하지만 산악회의 버스는 이곳에서 조금 더 걸어야만 만날 수 있다. 중앙고속도로의 아래를 통과하자마자 나오는 널찍한 도로(관음로) 가에 버스가 주차되어 있기 때문이다. ‘칠곡 우방타운의 건너편인데 이 부근이 시내버스들의 종점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라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주차가 가능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오늘은 총 3시간이 걸렸다. 엉덩이 한 번 대보지 않고 걸었으니 오롯이 걷는데 소요된 시간으로 보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