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마봉(騎馬峰=말탄봉, 383m)-외솔봉(236m)-삿갓봉
산행일 : ‘16. 4. 28(목)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과 옥계면의 경계
산행코스 : 강릉1터널→밤재휴게소→기마봉→외솔봉→삿갓봉→해파랑길(바우길9구간)→심곡마을버스정류장(산행시간 : 약2시간30분)
함께한 사람들 : 산두레
특징 : ‘의외로 괜찮은 산이네요’ 함께 산행을 하고 있던 ‘마음을 다스리는 산행’의 저자 이석암선생께서 넌지시 말을 건네 온다. 그렇다. 그의 말마따나 의외이다. 오늘 산행은 산에 대한 기대보다는 산행 후에 바닷바람이나 쐬어볼까 하고 가벼운 아음으로 따라나섰었다. 그러니 산행은 보너스로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오르고 보니 나름대로 볼거리가 많은 산이었던 것이다. 사실 오늘 오른 산들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거기다 높이가 채 400m도 되지 않는 나지막한 산들이다. 그러니 산세(山勢)가 보잘 게 없을 것임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거기다 특별한 눈요깃거리도 없다고 봐야 한다. 육산의 전형적인 특징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다. 특징대로라면 조망까지도 기대할 수 없어야 하는데, 외솔봉과 삿갓봉에서의 조망이 생각보다 훨씬 더 뛰어났던 것이다. 망망대해로 펼쳐지는 동해바다의 풍경은 물론이고, 산꼭대기에 배를 이고 있는 정동진의 ‘썬크루즈리조트’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다. 거기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편안한 산길은 산행이 아니라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기분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삼아 걸어보기 딱 좋은 산들이다.
▼ 산행들머리는 밤재휴게소(강릉시 강동면 산성우리)
동해고속도로(양양-동해) 옥계 I.C를 빠져나와 7번 국도를 타고 강릉방면으로 달리면 잠시 후 밤재휴게소가 나온다. 옥계면 낙풍리와 금진리, 강동면 산성우2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자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악회들은 접근이 편하다는 이유로 동해고속도로 강릉1터널의 앞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터널 상단에 ‘강릉1터널’이라고 커다랗게 써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고속도로의 가드레일(guard rail)을 넘은 후, 터널공사 때 만들어 놓은 급경사 계단을 밟고 오른다. 계단이 끝나면 길은 왼편으로 향한다. 역시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 이곳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구(舊)도로(국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위로 치고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곳이나 만만한 곳을 하나 골라 치고 오르면 되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 개척 산행이 시작된다. 길이 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우린다면 별 어려움 없이 구도로까지 오를 수 있다.
▼ 7분 후 도로를 만나면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진행방향 저만큼에 밤재 고갯마루가 보인다. 오늘 산행의 실질적인 들머리이다.
▼ 즐거웠던 옛 영화를 뒤로 한 채 휴게소는 문이 굳게 닫혀있다. 고속도로가 개통된 뒤로 지나다니는 차량이 끊기다시피 한 여파일 것이다. 참고로 ‘밤재’는 고개 주변에 밤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방재’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옛날 옥계의 선비가 과거에 급제했는데, 이런 사실을 미리 알리고자 방꾼이 이 고개부터 외치기 시작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 휴게소 입구의 오른편에서 산길이 열린다. 요란스럽게 펄럭이는 ‘산불조심’ 깃발들 아래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살펴본 뒤에 산행을 나설 일이다. 길이 헷갈려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잘 닦인 임도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완만한 것이 영락없는 산책코스이다. 이곳의 높이는 해발 280m, 오늘 오르게 될 기마봉의 높이가 383m이니 100m만 더 오르면 된다. 오늘 산행은 숫제 거저먹기인 셈이다.
▼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동해고속도로와 7번 국도가 평행선을 이루면서 달려가고, 그 뒤에는 높고 낮은 산들이 버티듯이 줄지어 있다. 왼편에 있는 높은 게 피래산(彼來山)이고 맞은편의 나지막한 산은 어쩌면 청학산일 것이다.
▼ 10분 남짓 후 돌탑이 있는 삼거리를 만난다. 길가에 세워진 이정표(기마봉정상↖ 1.4km, 정동진 5.9km/ 금진초교↗ 2.7km/ 밤재정상↓ 0.4km)가 눈길을 끈다. 거리와 방향 외에 현재 위치의 경도와 위도까지 표기해 놓은 것이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에게야 무슨 도움이 될까마는 신선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 임도를 벗어나 능선으로 들어선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금진초교 방향, 그러니까 오른편 산자락으로 난 오솔길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임도를 따르는 것이 정상적인 등산코스이니 일부러 따라서 할 필요까지는 없다. 누군가의 산행 후기에서 이 부근에 돌탑봉이 있다고 해서 올라가 볼 따름이니까 말이다.
▼ 그다지 또렷하지 않은 산길을 따라 오른다. 그리고 8분 후 봉우리(이정표 : 기마봉 정상↖ 1.1Km, 정동진 5.6Km/ 금진초교↗ 2.3Km/ 밤재 정상↓ 0.9Km) 위에 올라선다. 하지만 정상은 10분이나 더 투자해서 올라온 보람이 없을 정도로 보잘 것 없는 풍경이다. 선답자가 이름 붙였던 ‘돌탑봉’을 떠올리며 ‘돌탑’이라도 보일까 해서 두리번거려 보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들머리였던 갈림길에 돌탑이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지 않나 싶다.
▼ 기마봉 방향으로 산을 내려오면 6분 후 임도(이정표 : 기마봉↑ 0.9km, 정동진5.4km/ 밤재정상↙ 0.9km/ 금진초교↓ 2.4km)를 만난다. 아까 산자락으로 올라서지 않았더라면 이 길을 따라 이곳으로 오게 된다.
▼ 5분 정도를 더 걸으면 임도는 끝이 난다. 그리고 왼편으로 오솔길이 열린다. 길가의 소나무들이 제법 굵어졌다. 보드라운 황토 땅에 저 정도 굵기의 소나무들이라면 송이버섯이 자라기에 딱 좋은 환경이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길가를 따라 비닐 끈들이 길게 메어져 있다. 일종의 금(禁)줄인 셈이다.
▼ 길가에 ‘울트라 바우길’이라는 팻말이 걸려있는 게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총 350Km에 이른다는 강릉판 둘레길인 ‘바우길’일지도 모르겠다. 그중의 한 구간이 ‘울트라 바우길’인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우’는 바위를 가리키는 강원도 사투리이다. 강원도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는 ‘감자바우’라고 하는데 ‘바우길’은 이 명칭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바우’는 바빌로니아(Babylonia)의 신화(神話)에서는 건강의 여신(女神)으로 나타난다. 손으로 한번 만져 주는 것만으로도 모든 병을 다 낫게 해준다는 여신이다. 이 같은 두 가지의 이미지를(image) 담을 경우 이 길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친한 이웃에 마실 나온 기분으로 걸으며 건강을 챙겨가라는 의미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길을 일러 ‘치유의 길’이라 했다. 걷는 이의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란다.
▼ 크고 작은 바위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구간을 지난다. 비록 옹색하다 싶을 정도로 왜소하지만 오늘 산행에서 유일하게 만난 바위구간이다. 그래선지 서툴게 쌓아올린 길가 돌탑까지도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래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 잠시 후 기마봉에 오른다. 아까 오솔길로 접어든지 15분 만이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말뚝모양으로 생긴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재설21/건설부77.6)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글씨가 지워져 버린 안내판과 이정표가 하나씩 있다. 기마봉의 내력이라도 적어 놓지 않았었을까 싶다. 이런 내용을 말이다. ‘말탄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기마봉’에는 신라시대의 옥랑(玉娘)낭자와 윤복(尹福)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우곡현(羽谿縣)이라 불리던 당시의 옥계면에 건강하고 잘생긴 윤복이란 청년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30세가 넘도록 배필을 정하지 못하던 윤복이 드디어 옥랑이란 낭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당시는 고구려와 신라가 서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윤복도 편안히 생업에만 전념할 수 없게 되어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 옥랑이 뒷산에 제단(祭壇)을 만들고 윤복의 무사 귀환을 빌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 하얀 산신령이 나타나 말 한 필을 주면서 빨리 밤재로 달려가 윤복이를 구하라고 했단다. 꿈속에서 깨어난 그녀는 단숨에 밤재로 달려갔고, 전쟁터에서 다친 채 돌아오다 쓰러져 신음하고 있던 윤복을 구할 수 있었단다. 하지만 그들의 감격스러운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윤복이가 하루 만에 죽었기 때문이다. 슬픔에 잠긴 옥랑이도 3일 후 윤복이 쓰러져 있던 산에 올라가 죽고 만다. 이후 마을 사람들이 두 남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녀가 기도하던 산을 기마봉(騎馬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오래 머물지 않고 산행을 이어간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조망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글씨가 지워져버린 이정표는 일단 제켜놓고 올라온 곳과 반대방향으로 내려선다. 오른편으로 진행할 경우 금진항으로 내려가게 되니 주의한다. 하여튼 가파르지 않아 부담 없는 내리막길이다. 그리고 완만한 능선길이 계속된다.
▼ 12분 후 금진항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정동진↑ / 금진항→ 1.7Km/ 기마봉↓ 800m)는 아까 것과는 또 다른 모양새이다. 위도와 경도의 표기가 없이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모습을 하고 있다.
▼ 정동진 방향으로 향한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평범한 능선길이 계속된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이 깊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 길가를 따라 매어진 비닐끈 또한 계속된다. 언제부턴가 서슬 시퍼런 ‘출입금지’ 경고판까지 붙었다. 주인 있는 임산물을 무단으로 채취할 경우에는 고발조치 하겠단다. 적힌 내용으로 보아 송이버섯과 능이버섯이 자라는 곳인 모양이다.
▼ 8분 후 이정표(정동진↑ 3.2km/ 기마봉 정상↓ 1.3km. 밤재 정상 3.1km)가 세워진 무명봉 위에 올라선다. 벤치까지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한 곳이다. 다른 이는 후기에서 삼각점(묵호401/2005복구)을 보았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띄지 않았다.
▼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이번에도 역시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더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간다. 기마봉과 외솔봉 사이의 골이 제법 깊다는 의미일 것이다.
▼ 얼마쯤 걸었을까 왼편으로 시야가 트인다. 산허리를 가르고 지나가는 동해고속도로가 또렷하다. 그 뒤로 우뚝 솟아오른 산은 피래산(彼來山)이 분명하다.
▼ 잠시 후, 그러니까 무명봉을 내려선지 23분이면 외솔봉에 올라선다. 서툴게 쌓아올린 돌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서울마운틴에서 매달아놓은 정상표지 아크릴판이 보일 따름이다. 그마저도 깨져 있는 게 안타깝지만 말이다. 참고로 ‘외솔봉’이란 아래 마을에서 바라볼 때 마치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산 아래에서 보일 정도로 큰 노송(老松)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 외솔봉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정동진 해돋이 관광지가 한눈에 잘 들어오고, 그 뒤에 펼쳐지는 넓고 시원한 동해바다는 보너스라고 해도 될 일이다. 하여간 한없이 넓게 트이는 전경을 바라보면 어느새 내 마음까지도 평화로워진다. 마침 정상에는 벤치까지 놓아두었다. 마음 놓고 쉬면서 눈의 호사를 즐겨보자. 이런 게 바로 신선놀음이 아니겠는가.
▼ 외솔봉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그런데 이정표(정동진↗ 1.9km/ 정동진↖ 1.9km/ 기마봉2.6km, 밤재정상4.4km)에 문제가 있다. 두 방향 모두 정동진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정동진까지의 거리 또한 같다. 어디로 가든지 정동진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만일 심곡항으로 내려가고 싶을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왼편으로 진행할 경우에는 심곡항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옳은 선택은 오른편 방향이니 주의할 일이다.
▼ 오른편 방향, 그러니까 삿갓봉으로 향한다, 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에는 안전로프까지 매어놓았다. 하지만 로프를 매어야할 정도로 가파르지는 않다. 하지만 등산로를 개설했다는 ‘정동진지역번영회’와 ‘정동2리 청년회’에 대해서는 감사를 드리고 싶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누군가 대관령 넘어가는 길이 강원도 ‘굽이 길’의 진수라고 했다. 어찌나 지대가 험한지 대굴대굴 굴러간다 해서 ‘대굴령’이라 불리기도 했다는 대관령 말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또한 그에 못지않다는 생각이다. 이 길에서 맞는 풍경이 장쾌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정동진의 시가지가 봄바람을 타고 아련한데, 그 너머로 동해가 넓고 시원하게 펼쳐진다. 어디 이게 흔한 풍광이겠는가.
▼ 완만하면서도 부드러운 능선길을 걷다가 짧게 치고 오르면 삿갓봉 정상이다. 삿갓봉 정상도 외솔봉과 거의 같은 모양새이다. 정상표지석이 없는 것은 외솔봉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서툴게 쌓아올린 돌탑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 역시 외솔봉과 닮았다. 하지한 자세히 살펴보면 외솔봉보다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을 뿐더러, 외솔봉처럼 개인이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도 없다. 미리 예습을 하고 오지 않았을 경우 이곳이 삿갓봉의 정상인줄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참고로 삿갓봉은 산봉우리가 삿갓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어디서 바라보아도 삿갓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 하지만 조망만은 뛰어나다. 아니 외솔봉보다 한참 더 위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래선지 이곳에도 역시 벤치를 놓아두었다. 정상에 서면 봉화쪽 방향이 눈에 들어온다. 망상해수욕장을 낀 해안선이 둥그렇게 펼쳐지는데 그 오른편에 보이는 산은 망운산이 아닐까 싶다.
▼ 삿갓봉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정상에서 왼편으로 1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망바위다. 바위 위에 서면 넓고 시원스런 동해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망망대해(茫茫大海)란 저런걸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자그마한 정동진 시가지가 웅크리고 앉아있다. 범선 모양으로 생긴 ‘썬크루즈리조트’를 오른쪽 산등성이에 얹어놓고 말이다. 참고로 서울 경복궁(광화문)의 정동(正東)에 있다는 정동진은 겨울이면 유난히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는 곳이다. 사계절 많은 이들이 즐겨 찾지만 한 해가 마무리되는 연말이면 더욱 분주해진다. 정동진의 상징과도 같은 해돋이 풍경과 만나기 위해서다.
▼ 동해의 너른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하산을 시작한다. 경사가 거의 없는 부드러운 내리막길이다. 삿갓봉까지 오면서 이미 고도(高度)를 많이 떨어뜨렸다는 증거일 것이다.
▼ 2분 후 삼거리를 만난다. 이번에는 또 다른 모양으로 생긴 이정표(심곡↑ 1.9km/ 정동진← 2.7km/ 현위치표시)가 세워져 있다. 경도와 위도가 표기된 것은 처음에 만났던 것과 같은데 이번에는 재질이 쇠로 되어 있는 것이 다르다. 날씬하게 생긴 것이 외모도 더 반듯해졌다.
▼ 언제부턴가 ‘강릉바우길’이라는 리본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해파랑길’이라는 팻말까지 보인다. ‘해파랑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둘레길이다. 동해안의 상징인 ‘태양과 걷는 사색의 길’로,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출발해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강원도의 북쪽 끝 통일안보공원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총 길이는 770km나 된다. 그 해파랑길이 이곳을 지나는 모양이다.
▼ 이어지는 산길은 평지나 다름없다. 보드라운 황톳길은 걷기에 딱 좋을 만큼 곱다.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나무들이 작아 그늘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름철에 찾았을 경우 고역을 치룰 수도 있겠다. 삿갓봉을 나선지 23분쯤 지나면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 잠시 후 '심곡리마을 표지석' 앞(이정표 : 심곡항↖ 0.6Km/ 정동진↓ 4Km/ 현위치)에서서 아스팔트 도로를 버리고 왼편 콘크리트 포장길로 들어선다. 입구에 세워진 장승들이 반가운 눈길을 보내주는 따뜻한 길이다.
▼ 이제부터는 ‘헌화로 산책길’이자 ‘강릉바우길’의 제9코스를 따른다. 이 코스는 정동진역을 출발해 모래시계공원과 기마봉 초입의 소방파출소, 그리고 곰두리연수원 입구와 심곡항, 금진항을 거쳐 옥계시장에 이르는 총 14㎞의 둘레길이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길이니 염두에 두고 걸어볼 일이다. 참고로 ‘헌화로 산책길’이라는 이름의 모티브(motive)는 신라 성덕왕 때 지어진 향가 ‘헌화가’(獻花歌)다. 내용이야 익히 알려져 있다. 신라시대, 경국지색의 용모를 가진 수로 부인이 강릉 태수를 제수 받은 남편 순정공과 함께 ‘7번 국도’를 따라 부임지로 향하던 길이었다. 수로 부인이 해안가 천길단애에 핀 철쭉꽃을 보며 누군가 저 꽃을 꺾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마침 암소를 몰고 지나던 한 노인이 선뜻 나섰고 그가 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노래가 헌화가다. 길 이름은 바로 이 옛이야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인접한 삼척시 해안 절벽에도 같은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오래전부터 수로 부인 공원을 조성하는 등 공을 들였던 삼척시로서는 당혹스러울 법도 하다.
▼ 산행날머리는 심곡항
잠시 후 ‘지진해일 긴급대피소’를 지나면 산길은 오솔길로 변하면서 지그재그로 길을 만든다. 그리고 10분 남짓 후에는 심곡마을에 내려서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2시간 5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2시간 40분이 걸린 셈이다.
▼ 도로에 내려서면 심곡리마을의 유래를 적어놓은 안내판이 보이고, 그 맞은편에는 서낭당이 지어져 있다. 이 마을에 복을 가져다준다는 영험한 화상(畫像)을 모시고 있는 서낭당이다. 옛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이곳에 살던 이씨 노인의 꿈에 어여쁜 여인이 나타나 함경도 길주에서 왔다고 하면서 ‘내가 심곡과 정동진 사이에 있는 부처바위 근방에 떠내려가고 있으니 구해 달라’고 하더란다. 이튿날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나가보니 부처바위 끝에 나무궤짝이 하나 걸려 있었다. 이를 열어보니 여자의 화상이 들어있어 이를 바위에 안치해 두었다. 그런 뒤로 노인이 하는 일들은 모두 만사형통이었단다. 얼마 후 여인이 다시 나타나 외롭다고 하기에 마을에다 서낭당을 짓고 그 안에다 화상을 모셨다는 것이다. 그때 떠내려 온 그림은 아직까지도 색깔이 변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도 마을에서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서낭당에 이를 고한다고 한다.
▼ 심곡항은 조용하고 작은 포구다. 고개 너머 번잡한 정동진에 견줘 믿기지 않을 만큼 소박하다. 마을 끝자락에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으니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노송(老松)이 사방을 감싼 틈새로 동해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고 한다. 특히 초겨울에라도 찾을 경우에는 만지면 묻어날 것 같은 파란색에서 차다 못해 시린 결기마저 느껴진단다.
♧ 에필로그(epilogue). 짧은 산행을 끝내고 주문진항으로 이동을 한다. 두 시간의 자유를 주겠단다. 모처럼 바닷가로 산행을 나왔으니 회라도 한 접시 시켜놓고 신선놀음이라도 즐겨보라는 산악회의 배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배려가 나에겐 고민의 시작이 된다. 날것, 그중에서도 특히 비린내가 나는 날것을 좋아하지 않는 유별난 내 식성(食性) 탓이다. 집사람이라도 사줄까 해보지만 그녀까지도 시큰둥한 표정이니 문제다. 이때 진퇴양난에 빠진 나를 구해준건 총무님이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김치찌개’를 손수 만들어 왔다며 같이 가자는 것이다. 그녀를 따라 들어선 식당에서 우린 진수성찬을 맞이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몸에 좋다는 잡곡들이 듬뿍 들어간 약밥에다 인공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는 찌개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거기다 싱싱한 야채 쌈에다 손수 장만했다는 여러 가지 밑반찬들은 어느 유명식당에서도 구경해본 적이 없는 호사스런 상차림이었다. 그 덕분에 난 대취(大醉) 해버렸지만 말이다. 매주 목요일에 산행을 하고 있는 산두레는 버스에 빈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 이유가 바로 오늘과 같은 인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배려가 있는 산악회이니 어찌 회원들로 넘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시 한 번 총무님의 배려에 감사를 드리며 오늘 산행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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