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산(七寶山, 469m)-용추봉(龍湫峰, 473.9m)-연수봉(延壽峰, 489m)
여행일 : ‘16. 9. 1(목)
소재지 : 전북 정읍시 금붕동과 칠보면, 북면의 경계
산행코스 : 피오고개→약수암→칠보산→용추봉→연수봉→헬기장→싸리재→49번 지방도→수청저수지(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정읍의 칠보산은 괴산, 영덕, 화성에 있는 칠보산과 더불어 전국 4대 칠보산에 속한다. 하지만 다른 칠보산들에 비해 그 격이 많이 떨어진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일곱 개의 보석을 품은 산’에서 그 어원(語原)을 찾는 다른 칠보산들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많은 눈요깃거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곳 정읍의 칠보산에는 그런 눈요깃거리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보석 같은 일곱 개의 봉우리’라는 어원이 무색할 지경이다. 바위다운 바위가 하나도 없는 육산(肉山)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눈에 담아둘만한 구경거리가 없음은 물론, 조망(眺望)까지도 별로인 육산의 특징들 말이다. 대신에 좋은 점도 있다. 찾는 사람들이 극히 드문 덕분에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곳 칠보산은 웬만큼 이력이 붙은 산꾼들에게조차 낯선 이름이다. 전국 제일의 단풍을 자랑하는 내장산과 머리에 갓을 쓴 영산기맥의 관문인 입암산, 그리고 호남의 삼신산으로 일컬어지는 동학혁명의 진원지인 두승산 등 주변 명산들의 유명세에 철저히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산은 텅 비어있다. 아무튼 난 이 산을 가족 산행지로 추천하고 싶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보드라운 흙길에 경사(傾斜)까지 없는데다 지자체인 정읍시에서 등산로 정비를 하도 잘 해놓아 어린이나 노약자들도 부담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산행들머리는 피오고개(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호남고속도로 정읍 I.C에서 내려와 29번 국도를 타고 정읍시가지로 들어온다. 이어서 ‘내장산 문화광장’ 앞에 있는 부전사거리(정읍시 부전동)에서 좌회전하면 잠시 후 부전제삼거리(부전동)가 나온다. 이곳에서 왼편 49번 지방도로 바꿔 타고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칠보면 수청리와 정읍시 부전동의 경계인 피오고개에 올라서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고갯마루에 ‘정읍시 내장상동’과 ‘약수암’ 입간판이 세워져 있으니 참조한다.
▼ 고갯마루에서 약수암 방향으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이곳 피오고개의 높이는 대략 310m, 칠보산의 높이가 469m이니 160m만 더 오르면 된다. 오늘은 칠보산이라는 산 하나를 거저먹는 셈이 된다.
▼ 들머리에는 ‘칠보산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오늘 우리가 걷게 될 코스를 미리 알아들 겸 해서 한번쯤 살펴보고 출발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지 말아야 할 것도 하나 있다. 수청리 임도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자 할 경우, 지도에는 칠보산 정상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꺾게끔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는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못 이해한 우리 역시 20분 동안을 엉뚱한 길에서 헤맬 수밖에 없었다.
▼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를 따라 5분쯤 걸었을까 왼편으로 길이 하나 나뉘는 곳(이정표 : 칠보산↗ 1.22Km/ 행정마을↙ 2.31Km/ 부전·칠보방면↓ 0.22Km)에 대웅전과 요사채로 이루어진 단출한 암자(庵子) 하나가 웅크리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약수암이라는데 누가 언제 무슨 사연을 갖고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조계종 홈페이지에서도 검색이 안 되는 것을 보면 그다지 의미 있게 살펴봐야 할 절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아까 들머리에서 본 입간판에는 ‘천년동굴 기도 도량’이라고 적혀있었는데, 동굴 또한 확인할 수가 없었다.
▼ 칠보산 방향으로 들어선다. 산길은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임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폭이 넓은데다 경사까지도 거의 평지 수준인 것이다. 거기다 정비까지도 잘 되어 있다. 누군가가 추석맞이 단장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말끔하게 벌초(伐草)를 해놓았다.
▼ 쉬엄쉬엄 노송(老松) 숲길을 걷다보면 밋밋한 봉우리 하나를 지나게 된다. 첨부된 지도에 나와 있는 372m봉일 것이다. 별다른 특징이나 표시가 없어 봉우리라는 느낌보다는 차라리 능선 상의 한 지점으로 보일 따름이다. 잠시 후 산길은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그것도 꽤나 길게 내려선다. 어쩌면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피오고개보다도 더 낮은 지점까지 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 약수암을 출발한지 20분을 조금 넘겼을까 안부삼거리(이정표 : 칠보산 0.5Km/ 노인복지관 0.93Km/ 약수암 0.72Km)에 내려선다. 왼편은 ‘정읍시 노인요양시설’이 있는 금붕동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금붕고개’라 부르기도 한다. 금붕마을로 연결되는 고갯마루라서 그리 부르는 모양이다.
▼ 이곳 안부는 벤치를 놓아 작은 휴게소까지 겸하도록 하고 있다. 편백나무 몇 그루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어 분위기까지 끝내주는 멋진 쉼터이다.
▼ 안부를 지나면서 오름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잠시 후 또 다른 쉼터를 만난다. 이번에는 통나무를 나무에 매달아 놓아 의자를 겸하도록 했다. 인위적인 것 보다는 자연스러움을 택한 셈이다.
▼ 이번 쉼터에는 ‘제3 쉼터’라는 이름표까지 달고 있다. ‘마음을 넓히면 우주를 덮고, 마음을 좁히면 바늘도 안 들어간다.’라는 글귀까지 적어 놓았다. 법륜스님의 저서 ‘방황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글귀를 산속에서 만나게 되다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은 사색을 즐기면서 걷는 산행이 될 수도 있겠다.
▼ ‘제3 쉼터’를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주변은 온통 푸르른 소나무들 천지, 가쁘게 들이쉬는 숨결 속에 짙은 솔향이 묻어난다. 오르막길임에도 불구하고 힘들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들 중의 하나가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산행은 웰빙(well-being), 아니 힐링(healing)산행이라 해도 되겠다.
▼ 쉼터 조금 위에서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건너편에서 하늘금을 그리고 있는 능선은 아마 호남정맥의 마룻금일 것이다. 뾰쪽하게 솟아오른 시설물은 553.3m봉의 통신기지일 것이고 말이다. 호남칠보분맥 상의 고당산도 한눈에 잘 들어옴은 물론이다.
▼ 10분쯤 후,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삼거리를 만난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정표(보림사→ 1.75Km/ 상동↑ 1.82Km/ 노인복지관↓ 1.43Km)가 세워져 있으나 제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음에 올라야할 연수봉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가야만 한다. 왼편에 있는 칠보산을 둘러보고 난 다음에는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 무릇 시설물이란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이정표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등산객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이정표는 그러한 기능을 조금도 감안하지 않고 있다. 이정표에 표기되어 있는 지명들만 보고는 도무지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곳의 지리를 알고 있는 현지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칠보산을 찾는 사람들이 어디 현지인들뿐이겠는가. 덕분에 우리 부부는 상동방향으로 진행하는 우(愚)를 범하고야 말았다. 아니 세 무리로 나눠진 우리 일행 모두가 똑 같은 일을 겪었으니 우(愚)라는 표현이 옳지 않을 수도 있겠다.
▼ 잠시 후 칠보산 정상에 올라선다. 산행을 시작한지 50분 만이다. 10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무인산불감시탑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다른 시설물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다만 한쪽 귀퉁이에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 또한 없다. 그저 감시탑의 철망에 매달려 있는 ‘정상표지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대구의 산악인 김문암 선생의 작품일 것이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곳이 칠보산의 정상인줄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겠기에 하는 말이다. 철망에는 ‘제4 쉼터’라는 안내판도 매달려 있다. ‘정상에 오르면 세상이 보이고, 동산에 오르면 마을만 보인다.’라는 글귀를 적어 놓았다. 하지만 그 어휘(語彙)가 조금 어색하다. 높이 오를수록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보다는 차라리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글귀를 적었더라면 더 이해하기가 쉬웠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우화소설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에 나왔던 글귀 말이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꽉 막혀있다고 보면 된다. 주변이 잡목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변 풍광을 보고 싶다면 올라왔던 길목에서 대여섯 걸음쯤 왼편으로 옮겨볼 것을 권한다. 희미하게나마 오솔길이 열릴 것이다. 이어서 20m쯤 더 나아가면 시야가 활짝 열린다. 그리고 내장산 방향으로의 조망이 터진다. 서래봉과 불출봉, 연지봉, 망해봉은 물론이고 입암산과 방장산까지 시원하게 내다보인다. 아까 보았던 553.3m봉의 통신기지는 더욱 또렷해졌다.
▼ 올라왔던 곳의 반대편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만났던 이정표가 표기하고 있던 상동방향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잘못된 방향이다. 칠보면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데도 정읍시가지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억울해 할 일은 아니다. 잠시 후 멋진 바위전망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일단 바위에 걸터앉고 본다. 먼저 눈이 시원해지면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에 젖은 몸을 청량감이 들 정도로 시원하게 해준다. 이어서 눈이 호사(豪奢)를 누린다. 나지막한 산줄기들 사이에 제법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그 들녘엔 정읍시가지가 조용히 엎드려 있다.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다보니 마치 신선(神仙)이라도 된 느낌이다. 저 아래는 중생(衆生)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 나는 구름 위에 오롯이 앉아 있다. 저 아래에는 아주 하찮은 세상사들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 조망을 즐기다가 발길을 옮긴다. 계속해서 상동 방향이다. 아직까지도 길이 틀리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얘기도 된다. 경사가 가파른 통나무계단을 길게 내려서니 왼편으로 거대한 바위벼랑이 나타난다. 조금 전에 조망을 즐기던 그 바위전망대의 아래인 모양이다. 그리고 이후로도 한참을 더 헤매다가 방향이 틀리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20분여를 더 헤매고 나서야 되돌아온 칠보산 정상, 가야할 방향을 아직도 못 찾고 허둥대고 있는데 앞서갔던 일행이 되돌아온다. 안전산악회의 선두대장을 하고 있는 낯익은 산꾼이다. 그도 역시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이다.
▼ 우여곡절 끝에 삼거리로 되돌아와 산행을 이어간다. 이 구간도 역시 길은 잘 닦여 있다. 잡티 하나 없이 깔끔하게 벌초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작은 쉼터용으로 배치한 벤치 등의 시설물들 또한 새것인양 깔끔하기 짝이 없다. 20여년 이상 산행을 해왔지만 이렇게 정성들여 가꾼 산길은 처음인 것 같다. 국립공원들도 한 수 접어주어야 할 정도이다. 조금 전에 만났던 이정표만 좀 고쳐 놓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정도만 해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관할 지자체(地方自治團體)인 정읍시청 직원들에게 감사를 드려본다.
▼ 잠시 후 부직포(不織布)가 깔려있는 곳에 이른다. 예전에는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 활공장으로 사용했었던 모양이나 지금은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는 모양새이다. 하긴 이런 곳까지 찾아오는 라이더(rider)이 있을까 싶다.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풍향계야 예전에는 있었다고 치자. 하지만 이 정도 크기의 마당에서 이륙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무거운 장비를 둘러매고 이곳까지 올라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여 진다.
▼ 하지만 조망(眺望)만은 뛰어나다. 산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복흥리를 넘어 신태인까지 이르는 너른 들녘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그래 호남평야라 하면 이 부근까지 아우르는 낱말일 것이다. 아무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한마디로 아름답다.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철이면 그 그림은 최상의 작품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는 꽃보다 아름답다’는 얘기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곳에 활공장을 만들어 놓은 이유일 것이다.
▼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능선은 온통 산죽(山竹)들의 세상, 어른의 어깨까지 차올라 조그만 틈새도 허락하지 않는다. 길이 헷갈릴까 고민할 필요 없이 계속해서 능선만 타면 된다는 얘기이다.
▼ 13분 쯤 지났을까 작은 봉우리를 만난다. 생김새로 보아 용추봉(473.9m)인 모양인데, 산죽으로 가득 차 있어 위로 오를 수는 없다. 산길 또한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킨다.
▼ 산길은 또 다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하지만 아까 칠보산과 용추봉 사이의 골보다는 상당히 깊어졌다.
▼ 가는 길 한두 번쯤 오른편으로 시야가 열린다. 하지만 연무(煙霧)로 인해 흐릿할 뿐이다.
▼ 아직까지도 길은 또렷하다. 거기다 정비까지 잘 되어 있다. 들머리에서 만났던 호남칠보분맥(湖南七寶分脈)이 제 값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호남칠보분맥이란 호남정맥(湖南正脈) 상의 고당산(高堂山, 639.7m)에서 천치재 방향으로 약 160m 떨어진 지점(정읍시 부전동과 칠보면. 그리고 순창군 쌍치면의 경계 지점)에서 우측능선으로 분기(分岐)하여 칠보산을 지나 정읍시 북면 농공단지~1번 국도~호남고속도로를 건너 장재산과 정토산을 일군 후 칠보천이 동진강을 만나는 곳(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송정마을)에서 그 숨을 다하는 약 20.4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정읍천과 동진강 본류인 태인천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다.
▼ 13~4분 쯤 지났을까 농짝만한 바위가 하나 나타나는가 싶더니 어설픈 바윗길로 연결된다. 작은 바위들이 바닥에 심어지듯이 널려있는 정도라서 바윗길이라 부르기엔 민망스러운 수준이지만 하도 바위가 귀한 산이기에 그렇게 표현해봤다. 이어서 2~3분 후에는 연수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칠보산의 일곱 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선 것이다. 연수봉의 높이는 489m, 칠보산의 정상판이 매달려 있던 7봉의 높이가 469m이니 정상보다 20m가 더 높다. 사실상의 정상인 셈이다. 그래서 인근의 칠보면 사람들은 이곳 연수봉을 칠보산의 정상으로 부르고 있단다. 칠보산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35분이 걸렸다.
▼ 칠보산 정상은 집채만한 바위 하나가 점령하고 있다. 바위 정면에는 칠보면의 보림산악회에서 제단(祭壇)을 만들어 놓았다. 어설프게나마 축대를 쌓고, 그 위에다 ‘산신제단’이라고 적힌 빗돌을 세웠다. 매년 초에 제사까지 올리고 있단다.
▼ 정상은 오른편으로 시야가 열린다. 내장산과 호남정맥의 마룻금이 조망될 터이지만 아쉽게도 시계가 좋지 않다.
▼ 능선의 왼편은 거의 벼랑 수준이다. 그 벼랑은 가끔 협곡(峽谷)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도 바위로 말이다. 규모는 비록 크지 않지만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 벼랑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시야(視野)도 열린다. 나뭇가지로 인해 시원스럽지는 않지만 복흥리의 너른 들녘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 연수봉을 지나면서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길가에 안전로프까지 매어 놓은 것을 보면 얼마나 가파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꽤나 길게 이어진다. 그만큼 두 봉우리 사이의 골이 깊다는 얘기일 것이다.
▼ 편백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는 안부까지 내려섰다가 살짝 오르면 좌측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 아까 들머리에서 살펴보았던 ‘등산로 안내판’에서 보림사(寶林寺)로 연결되는 길이 이쯤에서 나뉘었었다. 하지만 이정표(헬기장 1.44Km/ 칠보산 1.75Km)에는 그쪽 방향의 표지판이 매달려 있지 않다. 원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 7분 후, 4봉으로 보이는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서 잠시 안부로 내려서면 8분 후에는 커다란 바위 하나를 만나게 된다. 누군가는 두꺼비를 닮았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피라미드를 빼다 닮았다.
▼ 아무튼 오늘 산행에서 만난 바위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쯤 올라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대여섯 명쯤 둘러앉아 간식을 나눠먹기에 충분할 테니까 말이다.
▼ 이후로도 산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하지만 그 오르내림이 아까보다는 많이 깊어졌다. 경사 또한 가파르다. 생각보다는 힘이 많이 든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중간에 3봉과 2봉으로 여겨지는 봉우리들을 만나지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정상임을 알려주는 아무런 표식도 없을뿐더러 마음에 새겨둘만한 볼거리 또한 일절 없기 때문이다.
▼ 언제부턴가 능선의 주인이 참나무들로 바뀌어 있다. 숲이 만들어내는 풍치야 소나무들만 못하지만 그들 또한 그들만의 독특한 멋을 만들어내고 있다. 녹음으로 물든 숲이 싱그럽기 짝이 없다.
▼ 지루한 오르내림을 40분 정도 반복하다보면 잘 관리된 헬기장에 올라선다. 삼각점(정읍473, 1997재설)이 설치되어 있는 걸로 보아 첨부된 지도에 나와 있는 402m봉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길은 둘로 나뉜다. 호남칠보분맥은 왼편 끄트머리에서 열린다. 싸리재로 내려서려는 우린 오른편 능선을 탄다.
▼ 헬기장을 지나면서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길은 상당히 길다. 그나마 대행인 것은 길가에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아 몸을 의지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스런 구간이 있으니 미끄러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 가파른 구간이 끝나자마자 산길이 고와진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평탄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능선은 또 다시 소나무들이 주인이 되었다. 그것도 상당히 오래 묵은 나무들이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에 심신(心身)이 맑아져 온다. 그리고 지친 육신이 활력을 되찾아 간다. 솔향 속에 가득한 피톤치드 덕분일 것이다. 피톤치드에는 치료의 효능 외에도 심신안정과 피로회복의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니 말이다.
▼ 헬기장에서 내려선지 25분 만에 십자안부인 싸리재에 내려선다. 왼편으로 내려가면 축현리, 우리는 오른편 수청리 방향의 시멘트포장 임도를 따른다. 고갯마루에 이정표(벌수↑/ 수청리→/ 축현리←/ 칠보산↓ 4.36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이후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포장과 비포장이 번갈아가며 나오는데 여름철에는 별로 달갑지 않은 구간이다. 그늘이 없어 온몸을 통째로 햇볕에 노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볼거리 또한 일절 없다. 잡초만이 가득한 묵밭이나 무성한 칡넝쿨도 볼거리라면 몰라도 말이다.
▼ 20분 후 2차선 도로인 49번 지방도에 내려선다. 수청저수지가 유턴하듯 쑥 들어온 지점이다. 바로 아래가 수청저수지이지만 물가로 내려갈 수는 없다. 저수지에 물이 적게 차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겠지만, 그보다는 애초부터 길이 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몸을 씻을만한 물을 만날 수 없다는 얘기이다.
▼ 산행날머리는 수청저수지 둑 아래(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몸을 씻을 만한 곳을 찾아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왼편 산외면 방향이다. 늦여름의 땡볕 아래서 10분 정도를 더 걸은 후에야 오른편에 수청저수지의 둑이 보인다. 드디어 물길을 찾은 것이다.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수로(水路)에 덜퍼덕 주저앉고 본다. 물론 옷을 입은 채로이다. 수로에는 땀을 닦아내기에 딱 좋은 만큼의 물이 흐르고 있다. 행복하다. 그제야 이렇게 좋은 곳을 찾아준 산악회 운영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 난 어쩔 수 없는 중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4시간 35분이 걸렸다. 준비해 간 간식을 먹으려고 쉬었던 시간과 길을 잘못 들어 헤맨 시간을 감안 할 경우 순수하게 걸었던 시간은 4시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산이야기(전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수 오악 중의 하나라는 영대산-오봉산-칠봉산(’17.2.21) (0) | 2017.03.06 |
---|---|
뛰어난 조망을 발판삼아 명당이라도 찾아볼까나, 백련산(‘17.1.8) (0) | 2017.01.16 |
작은 산이지만 우람한 암봉에다 조망까지 갖춘 상사봉-도지봉(‘16.7.23) (0) | 2016.08.01 |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도 버려진, 백운산-깃대봉-청량산(‘16.5.15) (0) | 2016.05.25 |
스릴 넘치는 바윗길에서 즐기는 멋진 조망, 만덕산(‘15.9.1) (0) | 2015.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