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스페인 및 포르투칼
여행일 : ‘15. 11. 12(목) - 19(목)
여행지 : 스페인(바로셀로나, 몬세라토, 발렌시아, 그라나다, 미하스, 론다, 세비아, 톨레도, 마드리드), 포르투칼(리스본, 까보다로까, 파티마)
여행 일곱째 날 :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Toledo)
특징 : 마드리드는 스페인 땅의 한가운데, 해발 635m의 고지대에 위치한 스페인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이다. 스페인 문화의 발상지이자 스페인의 수도로서 과거의 화려한 유산과 현대적 인프라를 동시에 갖춘 명실상부한 스페인 제1의 도시이다. 1561년 펠리페 2세가 톨레도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천도한 이후 천당과 지옥을 넘나드는 역사적 사건들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이 도시는 장엄한 경관과 풍성한 문화, 여유 넘치는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로 전 세계 수많은 여행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한편 마드리드는 현대적 인프라를 갖춤과 동시에 역사적인 거리와 장소를 간직하고 있다. 마드리드의 거대한 왕궁이 그 중의 하나다. 스페인 국립극장,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명작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 프라도 박물관, 스페인의 왕비인 소피아(Reina Sofía)의 이름을 따서 지은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가 이에 포함된다. 참고로 ‘마드리드’라는 지명은 기원전 2세기에 로마 제국이 강둑을 중심으로 스페인에 식민지 정착마을을 만들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첫 번째 정착촌의 이름은 마트리쎄(스페인어 : Matrice)였다. 기원후 5세기 동안 미개인들의 침략이 계속되면서 로마는 도저히 정착촌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고 침략자들이 마트리쎄를 지배하게 되었다. 7세기에 이베리아 반도 내에 아라비아계의 침략자가 들어오면서 마르야(아랍어 : Marya 한글: 어머니, 대지의 생명)라는 말에 기원한 마이리트(이베리아계-로망스어 방언 : Mayrit)로 이름이 변한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쓰이던 로마어에서 접미사 it은 장소를 뜻했기에 이름이 변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근대에서 쓰이는 마드리드는 따라서 모사라베(스페인어 : Mazarabic)에서 유래하여 ‘Matrit’로 되었다가 지금의 Madrid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 하룻밤을 머물렀던 마드리드의 ‘Holiday Inn Express’호텔(주소 : Calle Argentina S/N Madrid 28922), 마드리드가 왜 스페인의 수도인지를 알게 해주는 호텔이었다. 1주일 이상을 이어온 스페인 여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호텔다운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호텔의 시설이야 거기가 거기일 정도로 거의 모든 호텔들이 깔끔했었다. 하지만 여행 내내 허술한 아침식사 때문에 고생을 했었다. 그러던 것이 세비야에서부터 조금씩 나아지더니 이곳 마드리드에 와서는 유럽의 다른 어느 도시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아침식사가 제공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식사다운 식사를 하자마자 스페인을 떠나게 되는 셈이 되었다. 이 호텔의 또 다른 특징은 가까이에 대형 슈퍼마켓(supermarket)이 있다는 점이다. 귀국 후 가족들과 나누어 먹을 초콜릿을 사기에 안성맞춤이다. 만일 분위기를 잡을 줄 아는 가족이라면 와인이라도 두어 병 주워들면 될 테고 말이다.
▼ 버스를 타고 스페인광장으로 이동한다. 마드리드는 스페인 회사의 절대 다수가 본사를 두고 있는 곳이다. 그중에는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드는 기업도 3개(Telefónica, Repsol-YPF, Endesa)나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수도로서 정부 청사가 있으며 스페인 왕궁이 있을 뿐 아니라 스페인 정계의 중심이기도 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수많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뜸하다. 출근시간이 되기 전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 버스가 멈춘 곳은 스페인광장(Plaza España), 즉 ‘플라자 데 에스빠냐(Plaza de España)’이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근엄하게 앉아있는 곳, 그리고 ‘꽃보다 할배’의 스페인 편에서 이순재 할배가 어루만지던 돈키호테와 산쵸가 지키고 있는 광장이다. 스페인광장은 소설 ‘라만차의 돈 키호테 (Don Quijote de La Mancha)’로 유명한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의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1916년 만들어진 광장이다. 소설 ‘돈 키호테’는 스페인 황금기의 대표적인 작품이자, 세계적으로도 가장 의미 있는 문학작품으로 칭송 받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세르반테스는 세익스피어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농담이지만 그래서 같은 날에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세르반테스가 세익스피어보다 17년 먼저 태어났지만, 둘은 1616년 4월23일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 광장에 들어서면 세르반테스 석상(石像)이 앉아있는 기념탑이 나오고, 바로 앞에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동상이 있다.
▼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는 스페인은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고 했다. 몽상적인 돈키호테와 실용적인 산초의 모습이다. 그 둘이 지금 활기찬 모습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 옛날의 영광을 다 내주고 이제는 고독한 은퇴자의 모습으로 남은 스페인의 현재를 부정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어딘가를 향해 활기차게 출발하고 있다.
▼ 기념비의 꼭대기에는 5명이 여신(女神)이 올라 앉아있다. 다섯 개의 대륙(大陸)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책을 읽고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무슨 이유일까? 어쩌면 더 많이 알아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니까 말이다.
▼ 스페인광장 주변은 상업지역으로 호텔과 카페, 황공사, 백화점들이 밀집해 있다. 광장 후면에는 1950년대에 Otamendi 형제에 의해 설계된 EdificioEspana(위 사진의 건물) 와 Torre de Madrid가 있다. 두 건물은 현재 아파트 및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 스페인광장의 옆에 있는 마드리드왕궁(Palacio Real de Madrid)으로 걸음을 옮긴다. ‘스페인 건축물의 절정’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왕궁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그 기세에 압도당해버린다. 왕궁은 ‘부르봉 왕가’의 시조이며 베르사이유궁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펠리페 5’세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삼아 지었는데, 화재 예방을 위해 돌과 화강암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궁전으로 사용해오다 불타버린 무슬림의 요새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았지 않나 싶다. 아무튼 이탈리아 건축가 필리포 유바라(Filippo Juvara)와 그의 제자 ‘사게티’, 그리고 사바티니, 로드리게스에 의해 지어진 이 왕궁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또한 대부분 프랑스와 이태리의 궁전을 흉내 낸 것들이지만 그 화려함과 호화스러움은 모델이 되었던 궁전들을 능가한다고 한다.
▼ 1764년 완공했고 펠리페 5세의 아들인 카를로스 3세부터 입주해 1931년까지 역대 스페인 국왕들의 공식 거처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공식 행사에만 사용되고 실제로 거주하지는 않는다. 사방 150m의 왕궁 안에는 2,800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 50개의 방만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거울의 방을 모방해서 만든 ‘옥좌의 방’, 건축가 유바라가 설계한 로코코 양식의 걸작으로 정교함과 화려함이 더해져 호화스러움의 극치를 보여 주는 ‘가스파리니 방’, 벽 전체가 황금 비단으로 꾸며져 있는 ‘황금의 방’, 145명이 한꺼번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대형 식탁이 자리한 ‘연회장’에서 스페인의 화려했던 궁중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왕궁 안의 아르메리아 광장에 있는 약물 박물관도 왕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코스이다.
▼ 왕궁은 겉모습만 눈에 넣는 것으로 만족한다. 잠시 후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협박 수준 재촉 때문이다. 하지만 왕궁은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입장료(10유로)를 내야 하겠지만 말이다. 왕궁 전망대에서 유럽의 수도(首都) 중에서 가장 녹지가 많다는 마드리드의 전경을 조망할 수도 있고, 규모와 하려함에서 극치를 이룬다는 왕궁 내부를 둘러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 19세기 대영제국 등장 이전까지 세계 최강이었던 스페인 제국 초전성기 영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거기다 시간이라도 조금 남는다면 왕궁 한 켠 무기고(무기박물관)에 들러 역대 왕실이 사용했던 철제 무기와 갑옷들까지 감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 마드리드왕궁 앞에는 ‘오리엔테 광장(스페인어: Plaza de Oriente)’이 있다. 왕궁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오리엔테(동쪽)’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광장 중심에는 펠리페 4세(재위 1621~1665)의 기마상(騎馬像)이 있다. 이 기마상(위 사진에는 뒷면만 나와 있다)은 이탈리아 조각가 ‘피에트로 타카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초상화를 참고로 머리를 만들었으며, 가슴은 ‘후안 마르티네스 몬타네스’가 만들었다. 펠리페 4세는 ‘마요르광장’에 있는 아버지 펠리페 3세의 기마상 보다 더 뛰어난 자신의 동상을 갖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의 사후(死後) 1843년 이사벨 2세의 명령으로 오리엔테 광장에 설치됐다. 참고로 광장 동쪽에는 오페라극장인 왕립극장(사진의 동상 뒤에 보이는 건물), 북쪽에는 ‘라 엔카르시온 수도원’이 있다.
▼ 광장 옆 길가에는 옛 카스티야 왕국을 지배했던 역대 국왕들의 동상(銅像)이 세워져 있다.
▼ 왕궁의 외관을 보여주고 나면, 다음 코스는 쇼핑이다. 왕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쇼핑센터로 들어서보지만 이내 밖으로 나와 버리고 만다. 중국인 쇼핑객들로 붐비는 가게 안이 너무나 혼잡했기 때문이다. 구경거리가 있긴 했다. 한 사람이 같은 품목을 몽땅 싹쓸이 해버리는 그네들의 쇼핑풍속은 나에게는 분명 낯선 풍경이었다.
▼ 쇼핑센터 앞은 작은 광장(廣場)이다. 유럽에서 만나게 되는 익숙한 풍경이다. 광장에서 일행들이 나오기를 기다려보지만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낯선 이국땅, 그것도 면세(免稅)라고 하니 사고 싶은 게 많았던가 보다.
▼ 광장에는 원주(圓柱) 모양의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저런 기둥 위에는 동상(銅像)들이 올라가 있는 게 보통인데도 텅 비어있다. 저렇게 생긴 분수들도 많기에 다가가보지만 물이 나오는 꼭지는 보이지 않는다. 무슨 용도일가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네모로나 생겼더라면 오벨리스크라고 치부라도 해버릴 텐데 말이다.
▼ 길가에 자전거 몇 대가 세워져 있다. 생김새로 보아 전기 충전용 자전거이지 싶다. 마드리드에서는 ‘전기충전 자전거’를 공공시설로 설치하여 대여해 주고 있는 모양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마드리드에는 이런 자전거 정거장 123개가 시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1,530대의 자전거를 운영하고 있단다. 마드리드 시민들이라면 1년에 15유로만 내면 일 년 내내 사용할 수 있고, 그밖의 사람들은 20유로라니 참조한다.
▼ 기다리다 지쳐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물론 나 혼자서이다. 집사람이 지키고 있다가 일행들이 나오기라도 할 경우엔 나에게 전화해주면 될 일이다. 잠시 후 왕궁을 만난다. 그러나 그냥 지나치는 우(愚)를 범해버리고 만다. 들어가 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시간을 주지 않은 가이드만 탓할 일만도 아니다. 원래부터 일정에 잡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예습을 해왔더라면 왕궁의 내부는 몰라도 왕궁 안에 있는 정원(庭園)과 왕궁 건물의 전체적인 구조 정도는 볼 수가 있었다. 쇼핑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던 시간을 이용해서이다. 하지만 난 그런 정원이 있는 줄도 몰랐고, 궁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는 더더욱 몰랐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미리 알아오지 못한 내 잘못이니 과연 누구를 탓하겠는가.
▼ 마드리드왕궁과 알무데나 대성당(Catedral de la Almudena)은 왕궁의 앞마당 격인 ‘아르메리아 광장(Plaza de la Armeria)’을 가운데 두고 연결된다. 참고로 마드리드 왕궁은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왕궁 정면에는 아르메리아 광장이 있고 뒤쪽에는 사바티니 정원, 그리고 양쪽에는 캄포 델 모로(무어족의 캠프)와 오리엔테 광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 왕궁 앞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현대식으로 지어진 성당이 하나 나타난다. 그동안 오래 묵은 성당들만 보아오다가 현대식으로 지어진 성당을 보니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산타 마리아 라 레알 데 라 알무데나 대성당(스페인어: Catedral de Santa María la Real de la Almudena de Madrid)’이란다. 이 성당은 마드리드 대교구의 대성당이자 마드리드의 수호 성모(聖母)인 ‘알무데나’를 기리는 성당이기도 하다. 알무데나는 아랍어로 성벽을 뜻하는 ‘알무다이나’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마드리드를 점령한 무슬림들이 파괴할까 봐 성벽에 숨겨 놓았던 성모상이 300년 후에 발견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성당은 1879년 착공되었지만 정치적인 이유와 내전 등의 이유로 100년 넘게 걸려 1993년에 와서야 완공되었다. 공사가 오랫동안 지속된 탓에 이 성당의 부속 건물과 조각상들은 네오고딕 양식에서부터 팝아트 데코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을 보여준다.
▼ 1561년 스페인의 수도가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이전되었지만, 스페인 교회의 중심지는 여전히 톨레도에 머물러 있었다. 따라서 가톨릭 국가의 새 수도인 마드리드에는 모든 성당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대성당이 없었다. 알무데나의 성모를 위한 대성당을 짓자는 의견이 대두된 이유이다. 건축은 1879년에 시작되었다. 1085년 알폰소 6세가 마드리드를 점령했을 때 파괴되었던 중세시대 이슬람교의 모스크가 있던 자리이다. 이후 스페인 시민전쟁의 발발로 중단되었다가, 1950년에 공사를 다시 시작하여 1993년에 완공되었다. 완공 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축성되었으며, 2004년에는 스페인의 제1왕위 계승자인 아스투리아스 공 펠리페와 레티시아 오르티스의 혼배미사가 거행되기도 했다. 참고로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의 지하실에는 16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알무데나의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 우리의 명동 같은, 마드리드의 가장 번화가라는 ‘그란비아(Gran Via) 거리’는 차를 타고 지나간다. ‘마요르 광장(Plaza Mayor)’도 역시다. 물론 ‘스페인 국도들의 기점’이자 ‘소귀나무와 곰 조각상’으로 유명한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도 버스를 탄 채이다. 관광지를 제대로 보려면 걷는 게 우선일 것이다.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던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지 또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를 머릿속에 정리하면서 걸어봐야 한다. 그래야만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을 속속들이 알게 될 것이고, 더불어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린 그러지를 못했다. 조금 전에 들렀던 쇼핑센터에서 계획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보고 싶었던 풍물들 또한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었음은 물론이다.
▼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이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라고 불리는 프라도 미술관은 1819년 개관했다. 프라도미술관은 스페인 회화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미술의 걸작 등 유럽의 다양한 회화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다.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 등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유명 화가들의 작품 6천여 점을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미술관이다.
▼ 미술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고야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그의 동상만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작품들이 이곳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고 있나 보다.
▼ 워낙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미술관 앞은 사람들로 넘친다. 프라도 앞에서 그려야 '그림빨'이 서는지 열심히 스케치에 몰두하고 있는 예비 화가들도 보인다. 한가한 모습들도 눈에 들어온다. 느긋하게 잔디에 누워 늦가을 햇볕을 쬐고 있는 커플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귀에 익은 한국어가 곳곳에서 들려온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세계는 지금 한국 여행객들 차지라고, 그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 건물로 들어서면서 사진촬영은 끝난다.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명화들의 보존을 위한 조치일 것이다. 참고로 미술관은 1785년 ‘카를로스 3세’가 ‘후안 데 비야누에바’에게 자연과학박물관의 설계용으로 의뢰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이 건물의 건축은 나폴레옹 전쟁 중에 중단되었다가 1819년 완성되어 왕립화관으로 공개되었다. 왕궁 및 에스코리알에 있는 그림들을 모아 이 소장품을 확장시킨 이사벨 2세가 추방된 뒤 1868년 프라도 국립미술관이 되었다. 소장품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가와 부르봉가의 군주들이 수집한 미술품으로 이루어졌다. 20세기에 다른 부속 건물들이 지어지고 수집품도 더욱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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