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모봉(582m)

 

산행일 : ‘15. 8. 22()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

산행코스 : 선유동주차장칠형제바위안부삼거리정상남봉비행기바위선유동휴게소선유구곡선유동주차장(산행시간 : 선유동휴게소까지 2시간)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괴산은 구곡(九曲)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구곡을 꼬리에다 붙이고 있는 계곡들이 많다는 얘기이다. 구곡(九曲)이란 중국 남송의 유학자인 주희(朱熹, 1130~1200)가 말년에 푸젠성(福建省) 무이산 계곡에 설정한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빼어난 산천경승을 배경으로 한 아홉 굽이에 이름을 지은 성리문화구현의 공간이다. 전국에 100여 곳이 있는데, 이곳 괴산에 7개나 밀집해 있다. 특히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관련한 유적이 많은 화양구곡(華陽九曲)은 지난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10호로 지정됐을 정도이다. 화양구곡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멋진 구곡이 있다. 퇴계 이황(李滉, 1502~1570)선생께서 이름을 지었다는 선유구곡(仙遊九曲)이다. 이 선유구곡을 품고 있는 산이 바로 갈모봉이다. 때문에 갈모봉 자체보다는 선유구곡으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암괴석과 조망 등 다른 유명산들과 견주어도 뒤질 게 없는 산세를 지녔지만 산행코스가 짧기 때문에 갈모봉 하나만 갖고는 이곳까지 찾아오기가 어정쩡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많은 산악회들이 선유구곡에서의 물놀이를 함께 넣어 산행계획을 짜고 있고, 이로 인해 갈모봉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산행들머리는 선유동주차장(괴산군 청천면 관평리 518-1)

중부내륙고속도 문경새재 I.C에서 내려와 901번 지방도를 타고 가은읍으로 들어온다. 가은읍에서 922번 지방도로 바꿔 타고 청천면(괴산군) 방면으로 들어가면 선유동 계곡이다. 잠시 후에 만나게 되는 상관평 삼거리(가은읍 완장리)’에서 왼편 517번 지방도로 옮겨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괴산 선유구곡의 입구에 위치한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화장실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주차장은 생각했던 것 보다 엄청나게 크다. 그만큼 선유구곡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매표소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을 나서기 전 혹시나 해서 두리번거려 보지만 산행안내도는 보이지 않는다. 고작 괴산군 관광안내도선유구곡 안내도가 전부이다. 이유는 금방 알게 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갈모봉의 탐방을 금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표소에서 100m쯤 들어가면 계곡매점이 나온다. 여름철에 민박(民泊)을 겸한단다. 매점의 바로 앞에 길마봉이라고 쓰인 팻말이 보일 것이다. 비록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든 시설물은 아니지만 이를 따라야 한다. 화살표 방향은 개울이다. 그리고 개울에는 징검다리가 놓여있다. 웬만한 장마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든든하니 망설이지 말고 건너고 볼일이다.

 

 

 

개울을 건너 맞은편 언덕으로 오른다. 그런데 입구에다 경고문을 적은 현수막을 매달아 놓았다. ‘남군자산갈모봉의 출입을 금한단다. 물론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작품이다. 위반하면 과태료가 30만원이나 된다지만 누구 하나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바닥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있는 것을 보면 이런 막무가내 통과는 오늘 하루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뭔가 이유가 있어 입산을 통제하고 있겠지만, 만일 그 이유가 타당하다면 적극적으로 막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차라리 입산을 풀 것이고 말이다. 사실 갈모봉은 서울 인근 산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등산로는 정비가 필요할 정도로 많이 황폐해져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입산을 해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어렵게 얘기해 보는 것이다.

 

 

언덕을 오르면 잘 가꾼 묘역(墓域)이 나온다. 산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해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말이 있다. 풍수지리에서 택지를 정할 때 이상적으로 여기는 요건으로, 뒤에는 산이나 언덕이 있고 앞에는 강이나 개울 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을 떠난 인간들이 쉬어야 할 묘역도 이와 다를 게 없다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이곳이 명당으로 보였다는 얘기이다. 갈모봉을 배경 삼아 화양천의 상류인 삼송천이 흐르고 있는 송면리 들녘을 내려다보고 있는 배산임수의 명당자리 말이다. 그 풍경은 잠시 후에 만나게 될 전망바위에서의 조망사진을 보고 미루어 짐작하면 된다.

 

 

묘역을 지나면 평범한 산길이 이어진다. 물론 흙길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 산길은 서서히 바위의 빈도를 높여간다. 그러다가 10분쯤 후, 그러니까 산행을 시작한지 15분쯤 후에는 전망 좋은 바위 위에 올라서게 된다. 아까 묘역에서 보았던 풍광이 다시 한 번 펼쳐지는데, 그 넓이는 훨씬 더 광활해졌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자신의 한계를 깨길 원했던 갈매기 조나단의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발아래에 내려다보이는 송면리 인근의 들녘은 물론이고, 그 뒤에 있는 낙영산과 가령산, 그리고 도명산과 백악산까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다가온다.

 

 

 

 

조망을 즐기다 다시 길을 나서면 2~3분 후 거대한 바위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것이 보인다. 바로 갈모봉의 명물 중 하나인 칠형제바위이다. 산길은 그 바위들의 사이로 나있다. 다시 말해 석문을 통과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저 바위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잠시 짬을 내서라도 바위 위로 올라가 볼 것을 강력 추천한다. 올라가는 게 약간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지 모르나 그만한 보람은 있다. 좌우로 시야(視野)가 열리는데 그 풍광이 자못 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좌우를 다 보고 싶다면 두 번을 올라야 하겠지만 말이다. 왼편은 조금 전에 보았던 낙영산 쪽 풍경이 펼쳐지고, 오른편으로는 대야산을 비롯한 수많은 산군(山群)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칠형제바위를 지나면서 산길은 다시 평범하게 변한다. 그리고 완만(緩慢)하면서도 긴 오름과 짧은 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경사가 힘들 정도는 아니고 그 거리 또한 오래지 않아 끝을 맺기 때문에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얘기일 따름이다.

 

 

평범하던 산길은 오래가지는 않는다. 15분쯤 지나면 길가에 다시 커다란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어서 5~6m 정도의 바위벼랑이 앞을 가로막는다. 바위에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으나 구태여 로프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오를 수는 있다. 그보다는 로프가 매달린 곳까지 오르는 구간이 더 힘들다. 바위가 수직(垂直)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마땅히 잡고 오를만한 크랙(crack)도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달픈 삶은 갈모봉에도 있었다. 척박(瘠薄)한 바위틈에서 자라는 것만으로도 힘겨운데, 거기다 사람들이 빈번하게 다니는 등산로에 자리 잡았다. 그것만 해도 다행일 것이다. 그나마 그곳이 뭔가에 의지하지 않고는 도무지 오를 수 없는 난코스라는 게 문제다. 크랙이 발달하지 않은 암벽이다 보니 사람들은 뭔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 덕분에 소나무의 줄기는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나무는 굳세게 잘 자라고 있다. 그 모습에서 난 또 하나의 삶을 배웠고 말이다.

 

 

바위 위에 오르면 다시 한 번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이번에는 한두 곳이 아니고 거의 사방으로 열린다. 우선 진행 방향으로는 갈모봉 정상이 올려다 보이고, 오른편에는 희양산에서 대야산을 거쳐 조항산과 청화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마룻금, 그리고 왼편에는 가령산과 낙영산, 백악산이 시원스럽다.

 

 

전망바위, 아니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이니 전망봉이라고 부르는 게 옳겠다. 전망봉을 내려서면 또 다시 평범한 산길이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걸으면 안부에 내려서게 되고, 산길은 이내 가파른 오르막길로 바뀐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산들에 비하면 그 가파름이란 게 우습게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만만하기 때문이다.

 

 

오름길의 가파름이 약해서일까 주변의 풍물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긴다. 가끔 나타나는 기묘한 바위들은 물론이요. 어쩌다 짧은 바윗길이라도 만날라치면 어김없이 시야가 열리면서 그동안 이곳까지 올라오면서 보았던 풍경들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아니 하나 더 있다. 조금 전에 올랐던 전망바위봉이 멋진 풍경으로 변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산행지도를 보면 바위의 이름들이 꽤나 많이 적혀있다. 그런데 그 이름들 중에 뼈져있는 흔한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거북이바위이다. 그 생김새가 하도 흔하기에 어디를 가나 하나쯤은 갖고 있는 이름인데 갈모봉에서는 안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 골라보았다. 갈모봉 정상 근처의 안부 조금 못미처에서 발견한 것인데 위로 올라가는 거북이의 형상을 닮았지 않는가.

 

 

볼거리들에 눈길을 맞추면서 20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갈모봉 정상과 남봉의 사이에 있는 안부 삼거리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은 이곳에서 왼편이다. 그러나 하산지점인 선유동휴게소가 오른쪽 방향이기 때문에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나와야만 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많이 파이고 훼손이 심하다. 넘치도록 많은 사람들이 찾는데도 불구하고 산을 그대로 방치해 온 탓일 것이다.

 

 

삼거리에서 4~5분쯤 더 오르면 드디어 갈모봉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정확히 1시간10분이 지났다. 정상은 약 10평 정도의 평평한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정상을 몇 개의 너럭바위들이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말뚝 모양으로 생긴 정상표지석은 그 너럭바위들 중 하나의 앞에 세워져 있다. 아니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세 동강이로 부러진 기둥이 조금만 건들어도 무너질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늘 산행에서는 이정표 비슷한 것도 보지 못했다. 하긴 입산을 통제시키고 있는 처지에 이정표를 세운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갈모봉은 산의 모양이 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쓰는 우장(雨裝)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또한 너럭바위들이 정상을 둘러싸고 있어 쉬면서 조망을 즐길 수 있도록 편의성까지 제공해준다. 동쪽에서 남쪽으로 장성봉과 대야산, 조항산, 청화산 등을 품은 백두대간이 아스라이 이어지고 있고, 송면에서 버리미기재로 달리는 포장도로가 평화롭다. 또한 북쪽으로는 군자산과 남군자산이 눈앞에 가까이 와 닿고, 남쪽에는 백악산, 가령산, 도명산 그리고 그 너머로 종유석을 세워 놓은 듯한 문장대가 아스라하다. 하나 아쉬운 것은 연무(煙霧) 때문에 또렷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만일 날씨까지 좋았더라면 가히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싶다.

 

 

 

되돌아온 안부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진행한다. 잘 정돈된 길을 따라 잠깐 걸으면 큰 바위들이 여러 개 있는 남봉 정상에 이른다. 남봉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갑자기 가팔라진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가면 슬랩(slab)이 나오면서 갈모봉의 비경이 펼쳐진다.

 

 

하얀 화강암 반석(盤石)이 넓고 길게 뻗어 내리는데, 반석의 양 옆에는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다. 희디흰 화강암 반석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나무들이다. 슬랩을 걷는다. 폭이 넓은데다 경사까지 약하기 때문에 조망을 즐기는 여유까지 부려본다. 슬랩의 끄트머리에 있는 비행기바위와 찐빵바위의 윗부분이 내려다보이고 그 뒤편에는 대야산과 조항산, 청화산 등이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집사람이 호들갑을 떨면서 나를 부른다. 바위의 생김새를 보라는 것이다. ‘찐빵을 쏙 빼다 닮았단다. 그러나 내 눈에는 우주선을 닮아 보이니 문제다. ‘우리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가 아닌가 보다며 반대방향으로 다가가니 이번에는 내 눈에도 찐빵의 형상이 나타난다. 바위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른 형상으로 나타났던 모양이다.

 

 

찐빵바위 근처에서 다시 한 번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아니 이곳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열린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은 표현이겠다. 그러나 이곳만의 특징은 있다. 갈모봉 제일의 경관이라는 비행기바위가 일목요연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느라 잠깐 앉았는데 일어나기가 싫어질 정도이다. 화강암 슬랩이 만들어내는 기기묘묘한 풍경이 그만큼 빼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암릉을 타고 내려오는 길에는 가끔 늙은 소나무들이 눈에 띈다. 그 생김새들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요 아래 삼송리(三松里)에 있는 소나무, 즉 비비꼬고 올라간 나무줄기가 용과 흡사하다고 해서 용송(龍松)’이라는 다른 이름까지 갖고 있는 왕소나무(천연기념물 제290)’의 영향을 받은 것이나 아닐까 싶다.

 

 

 

바위능선은 20분 정도 계속된다. 그리고 다시 마사토로 된 길로 되돌아간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 방향의 길이 또렷하지만 오른편의 바위 사이로 난 길로 들어선다. 뭔가 색다른 게 있지나 않을까 해서이다.

 

 

 

바위 사이를 통과하자마자 바위가 나타나면서 오른편으로 시야가 열린다. 눈앞에는 맞은편 산자락의 바위벼랑이 그 빼어난 자태를 펼쳐 보이고, 그 왼편에는 가령산과 낙영산, 그리고 백악산이 늘어서 있다. 한마디로 기막힌 조망이다. 그리고 오른편 길을 선택했던 내 결정이 잘 되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전망바위를 내려서면 흙길과 바윗길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난다. 아니 거의가 바윗길인데 가끔 흙길이 섞여 있다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괜찮게 생긴 바위들이 가끔씩 나타나고, 이런 바위들을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구간이다. 이런 길은 약 20분 정도 계속된다.

 

 

 

바윗길이 끝나면 다시 곱디고운 흙길이 나타나고, 이어서 울창한 숲속으로 난 길을 따라 6분쯤 더 내려오면 선유동휴게소바로 아래에 있는 임도이다. 화양천(華陽川)의 상류인 삼송천(三松川)으로 선유구곡(仙遊九曲)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임도에 내려서면서 사실상 산행이 종료된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부터 날머리인 주차장까지는 선유구곡을 따라 길이 나있다. 따라서 얼마만큼 주변의 경관을 둘러보느냐에 따라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은 2시간25분 정도가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정상에서 20분 정도를 쉬었으니 사실상의 산행시간은 2시간 정도가 걸린 셈이다.

 

 

 

선유동휴게소에서 물가로 내려간다. 계곡은 웅장하다기 보다는 아기자기 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싶다. 계곡이 거대한 바위협곡으로 이루진 것도 아니고 주변의 바위들 또한 거창한 것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옛날 옛적 힘센 장사들이 공깃돌로 삼았다고 해도 믿을 만큼 아담 사이즈인 것이다. 거기다 물의 양 또한 넉넉한 편은 아니다. 그러니 장마 때만 아니라면 물에 빠질 위험도 없다. 계곡이 온통 어린이들로 바글바글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냇가를 따라 내려가면 잠시 후 커다란 바위 몇 개가 보인다. 선유구곡(仙遊九曲) 중 제9곡인 신선이 숨어 살았다는 은선암(隱仙巖)과 거북을 닮은 모양이라는 8곡 구암(龜巖), 그리고 7곡인 기국암(碁局巖), 즉 바위 바닥이 바둑판 모양으로 생긴 바위란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 보다는 그 규모가 왜소하다. 그리고 거북을 닮았다는 기암을 제외하고는 그 생김새도 썩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하긴 나 같이 평범한 중생이 어떻게 이황(李滉)선생님의 감성(感性)을 쫓아 가겠는가마는 선유구곡과의 첫 만남은 실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실망감이 너무 컸던 때문인지 어느 나무꾼이 기국암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신선들의 대국을 구경하다가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는 전설이 깃든 제6곡인 난가대(爛柯臺)는 카메라에 담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그리고 5공인 와룡폭(臥龍瀑) 또한 지나가는 길에 마지못해 한 컷 담았을 뿐이다. 와룡폭을 지나면 임도는 개울을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잠시 후에 또 다시 가로지른다. 그 사이에 제4곡인 연단로(鍊丹爐)가 있다. 옛날 도사들이 바위로 금단을 끓였다는 바위이다. 그러나 그 생김새가 썩 마음에 와 닿지 않아 사진을 올리는 것은 생략했다.

 

이어서 층암절벽이 마치 학이 둥지를 틀고 있는 것처럼 생겼다는 제3벽 학소대(鶴巢臺, 일명 학소암)와 하늘로 향한 바위들이 일품인 제2벽 경천벽(擎天壁). 즉 하늘을 떠받치는 형상이라는 바위벼랑은 길을 가는 중에 만나게 된다. 냇가에 있는 바위가 아니라 바위절벽이기 때문이다. 선유계곡은 웅장한 남성미(男性美) 대신 섬세하고 우아한 것이 여성미를 풍기는 계곡이다. 혹시 퇴계(退溪)선생이 추구했던 도학(道學)의 이상세계가 이런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송면리 송정마을의 함양 이씨 댁에 들른 퇴계가 반했던 경관이니 나름대로 그의 이상세계와 뭔가 연결고리가 있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만큼 그는 이곳 선유동의 경관에 반했었고, 9개월이나 이곳에 눌러앉아 지내면서 선유구곡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산행날머리는 선유동주차장(원점회귀)

석굴형으로 생긴 바위라는 제1곡 선유동문(仙遊洞門)은 계곡을 건너는 마지막 다리 근처에서 만나게 된다. ‘선유동문이라는 글씨가 음각(陰刻)되어 있는 바위 등 여러 개의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선유동문을 나서면서 구곡은 끝을 맺는다. 선유동문이 구곡의 입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선유동계곡의 절경에 취하면 누구나 신선(神仙)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난 계곡을 벗어나서도 인간으로 남아있었다. 아마 절정에 취하지 못했었나보다. 그 절경이라는 게 내 마음을 빼앗지 못할 정도로 빼어나지 못했던지, 아니면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할 정도로 내 수양이 부족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