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골산(591m)-토곡산(土谷山, 855.5m)

 

산행일 : ‘15. 1. 17()

소재지 : 경남 양산시 원동면

산행코스 : 수청마을전망대용골산석이바위토곡산너럭바위596물맞이폭포함포마을(산행시간: 5시간)

같이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색 : 용골산이나 토곡산은 웬만큼 이력이 붙었다는 산꾼들조차도 익숙하지 않은 산들이다. 부산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어쩌면 가지산이나 신불산, 영축산 등 영남알프스의 유명세에 가린 탓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이루어진 산의 기세(氣勢)만은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유명산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토곡산을 기장에 있는 달음산 및 이웃해 있는 천태산과 더불어 부산근교의 3대 악산(惡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산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가 바윗길로 이어진다. 때문에 바위를 부여잡고 오르내리는 재미가 쏠쏠하고, 시야(視野)는 시도 때도 없이 사통팔달로 열린다. 한마디로 결코 숨어있어서는 안될 산이라는 얘기이다.

 

산행들머리는 수청마을 버스정류장(양산시 원동면 서룡리)

남해고속도로 물금 I.C에서 내려와 좌회전 양산신도시의 시가지(市街地)를 통과하면 1022번 지방도와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삼랑진방면으로 들어가면 산행들머리인 수청마을(원동면 서룡리)에 닿는다. 도로변에 홍선정이라는 음식점이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수청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법랑사의 커다란 입간판이 보인다. ‘산신공명 기도도량이라고 적혀 있는 걸로 보아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寺刹)이라기보다는 무속신앙(巫俗信仰)을 본업(本業)으로 삼고 있지 않나 싶다. 법랑사로 들어가는 길과 기존의 1022번 지방도 사이에 시멘트포장 임도(林道)가 나있다. 산행들머리는 임도로 들어서자마자 열린다. 들머리에 토곡산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길은 등산안내도의 뒤로 열린다. 산길은 시작부터 가파르게 시작된다. 안내도 바로 뒤에 있는 무덤을 지나자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용골산의 높이는 600m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들머리의 해발고도(海拔高度)20m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상까지는 상당한 높이를 치고 올라가야만 한다. 거기다 정상까지의 거리까지도 짧다보니 별 수 없었을 것이다. 힘이 들지만 산길의 주변이 온통 소나무들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네들이 보내오는 향긋한 솔향 덕분에 거친 숨을 몰아쉬기가 한결 수월한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0분쯤 지나면 송전탑(送電塔)을 만나게 되면서 산길은 잠시나마 사나운 기세(氣勢)를 누그러뜨린다.

 

 

 

송전탑 근처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산길은 잠시라도 못 참겠다는 듯이 또 다시 가파르게 변한다. 거기다 이번에는 거친 암릉까지 덤으로 끼어 있다. 초반부터 골산(骨山)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힘들고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상은 제법 알차다. 암릉의 특징대로 시야(視野)가 뻥 뚫리면서 시원스런 조망(眺望)이 펼쳐지는 것이다. 산행을 시작했던 수청마을 너머로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일단 바윗길을 선보인 능선은 그 여세(餘勢)를 몰기라도 하려는 듯이 계속해서 바윗길로 연결된다. 아니 그 험상한 기세는 더욱 거세졌다고 봐야 한다. 가끔가다 흙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잠깐일 따름이고, 대부분은 거친 바윗길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바윗길로 들어선 지 40분쯤 후에 그 기세가 극에 달한다. 높이가 20m 정도 되는 수직(垂直)에 가까운 바위벼랑이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다. 집사람이 우회로(迂廻路)로 가려는 것을 꼬드겨 벼랑으로 향한다. 안전로프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정은 금방 후회로 변해버렸다. 벼랑에 매달려 끙끙거리고 있는 집사람의 모습이 너무 애처로웠던 것이다. 아무래도 집사람의 암벽등반 수준으로는 벅찼던 모양이다. 벼랑은 너무 가파른데다가 바위 면()까지 고르지 못해서 발을 내디딜 공간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나도 허둥댔을 정도이니 하물며 집사람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어렵게 바위벼랑을 올라서자 문득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가 떠오른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멋진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왼편에는 화제리 들판 너머로 오봉산이 우뚝하다. 그리고 그 오른편에는 낙동강이 시야(視野)를 가득 채우고 있다. 강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산들은 어쩌면 금동산과 동신어산 그리고 무척산일 것이다. 바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바라보는 산줄기 치고는 너무나도 광활하다.

 

 

바위벼랑을 지나서도 바윗길이 계속된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나타나는 날이 선 바윗길을 치고 오르면 멋진 소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는 또 다른 전망대(展望臺). 조망이 한결 더 시원해졌다. 진행방향에 용골산 정상 직전의 전위봉인 바위봉우리가 예쁜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직(垂直)의 바위기둥들이 둘러서 있는 모양이다. 그 오른편에는 산의 사면(斜面)을 이루고 있는 바위벼랑들이 멋진 모습으로 선을 보인다. 그리고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700리길을 달려온 낙동강이 마지막 용트림이라도 하려는 듯이 구불대고, 강 건너 무척산과 동신어산, 신어산 등 올망졸망한 산들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전위봉까지는 잠시 소나무가 울창한 흙길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서서히 가팔라지면서 또 다시 바윗길로 변한다. 아까 전망대에서 바라볼 때 서슬이 시퍼렇던 바위벼랑이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는 쉽다. 아까 전망대에서 바라보던 것과는 달리 위로 올라가는 길이 바위 사이를 헤집으며 또렷하게 잘 나있기 때문이다. 벼랑 위로 오르면 또 다시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만났던 전망대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곳이 아닐까 싶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눈에 들어오던 낙동강은 더 길어졌고, 주변의 산군(山群)들 또한 한 겹 더 쌓여져서 나타난다.

 

 

전위봉에서 정상은 금방이다. 거기다 경사(傾斜)까지도 느긋한 흙길이다. 그동안 지나온 바윗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분위기를 싹 바꾸어버린 것이다. 참나무 숲속에 자리 잡은 용골산 정상은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정상표지석도 없는데다가 이곳이 정상이라 할 만한 별다른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망(眺望)까지도 트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다만 길가에 세워진 이정표(토곡산 정상 2.6Km/ 서릉리 1.7Km)가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다. 이정표의 기둥에 누군가가 매직펜(magic pen)로 용굴산이라고 적어 놓은 것이다. 고마운 일이나 이름을 제대로 적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참고로 용골산은 원래 토곡산의 줄기에 속한 이름 없는 봉우리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을 부산의 유력 일간지(日刊紙)인 국제신문의 근교산행 팀이 수청마을을 출발해서 토곡산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개척하고 '인근 사찰(寺刹)에서 부르는 이름을 따서 용골산이라 명명(命名)했는데, 지금은 그 이름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다. 참고로 용골산은 함박산이나 굴밧산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산행들머리에서 용골산 정상까지는 1시간10분이 걸렸다.

 

 

용골산에서 토곡산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 내리막은 금방이면 끝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작은 바위봉우리가 나타나다. 짧은 바위구간이 지나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능선길이 시작된다. 그다지 높지 않은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는 산행이 이어지는 것이다. 가끔 빈 나뭇가지 사이로 토곡산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망(眺望)까지도 트이지 않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능선길이다.

 

 

 

용골산을 출발한지 25분쯤 지나면 사용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된 듯한 헬기장이 나온다. 그런데 그 위치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헬기장들은 대부분 봉우리 위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비해, 이 헬기장은 능선의 안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헬기장을 만든 목적이 물건을 싣거나 내리는 것임을 감안할 때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이 아닐까 싶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르게 변한다. 그것도 여간 가파른 게 아니다. 거기다 길기까지 하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두텁게 쌓인 참나무 낙엽에 시달리면서 10분 정도를 힘겹게 오르면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일단 봉우리 위에 올라서면 산길은 그 기세를 일단 누그러뜨린다. 좀 수월해졌다 싶었던 산길은 10분을 채 못 버티고 또 다시 바윗길로 변해버린다. 거대한 바위벼랑이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다. 왼편으로 우회하여 오르면 낙동강이 눈에 들어오는 전망바위 위이다. 그러나 그 모양은 아까 용골산에 비하면 그 격이 한참이나 떨어진다. 그에 비해 용골산에서 물결치듯 이어져오는 능선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전망바위를 지나면 산길은 흙길로 변한다. 그러나 그 흙길은 짧게 끝나고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윗길이 뒤를 잇는다. 바윗길은 폭이 좁은 대다 양쪽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음을 졸이게 만든다. 당연히 바위를 붙잡을 수밖에 없는 구간이 많은 게 특징인 구간이다. 이 부근에 석이바위가 있다고 한다. 옛날에 이 부근에서 석이버섯이 많이 났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어떤 게 석이바위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바위를 붙잡고 넘거나 아니면 좌우로 피해가면서 바윗길을 통과하고 나면 길은 다시 완만해지면서 흙길로 변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원동초등학교 갈림길’(이정표 : 토곡산 정상 0.4Km, 옥천정사 1.4Km/ 원동초등학교 2.9Km/ 서룡리 4Km)이 있는 삼거리에 서게 된다. 이곳에서 조금 더 걸으면 만나게 되는 또 다른 봉우리는 복천암 갈림길이다. 그러나 이 봉우리는 우회로를 따른 덕분에 이정표를 만나지는 못했다. 참고로 아까 원동초등학교 갈림길에서 왼편, 그러니까 원동초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갈 경우에는 대부산을 거치는 능선을 타게 된다. 오늘 산행을 같이한 일행의 절반 이상이 토곡산 정상을 다녀온 후, 이곳에서 대부산 코스를 탔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토곡산에서 596m봉 방향으로 진행할 것을 권하고 싶다. 중간에 지나게 되는 너럭바위 구간이 토곡산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景觀)을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복천암갈림길에서 조금만 더 진행하면 토곡산 정상이다. 용골산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20, 산행을 시작한지는 2시간30분이 지났다. 그다지 넓지 않은 바위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은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정상표지과 이정표(함포마을 3.8Km/ 서룡리 4.3Km, 원동역 3.5Km), 그리고 삼각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고로 이정표에 나와 있는 원동(院洞)은 낙동강으로부터 생겨난 지명이다. 낙동강은 옛날 가야와 신라의 국경(國境)이었다. 이곳에 수로(水路)를 감시하는 관원문이 있었는데 그 관원문의 원() 자를 따서 원동이란 지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바위분지로 이루어진 정상은 그 특징대로 툭 터진 조망(眺望)을 자랑한다.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김해, 양산, 밀양의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영남 알프스의 남쪽 줄기들이 확연하게 조망된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천태산, 금오산이 또한 남쪽의 낙동강 건너편에는 낙남정맥이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거기다 삼랑진읍내와 양산시내까지 한눈에 들어오니 가히 환상적인 조망이라 할만하다.

 

 

함포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정상석 뒤에서 열린다. 능선 위로 난 길은 바윗길이지만 그다지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어렵지 않게 내려설 수 있다. 그러나 왼편이 서슬 시퍼런 바윗길이기 때문에 마음을 놓아서는 결코 안 된다. 10분 조금 못되게 내려가면 통나무 벤치(bench) 두 개가 놓여있는 안부삼거리(이정표 : 함포마을 3.4Km/ 토곡산 0.2Km)이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곧바로 함포마을로 내려갈 수가 있다. 길의 흔적 또한 또렷하다. 이는 국제신문에서 소개한 이 코스를 따라 하산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난 이곳에서 탈출하지 말고 계속해서 능선을 탈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만큼 내가 본 너럭바위가 인상에 남았기 때문이다.

 

 

 

함포마을 갈림길을 지나면 당분간은 평범한 산길이 이어진다. 중간에 비록 바윗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아까 지나왔던 구간들에 비해 격이 한참 떨어지고, 또한 심심찮게 열리는 조망까지도 보잘 것이 없다. 그저 뒤를 돌아볼 때 나타나는 토곡산의 전경(全景)을 제외하면 말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작은 바윗길들을 오르내리며 걷다보면 문득 저 멀리에 우람한 바위봉이 하나가 나타난다. 바로 너럭바위인데 얼핏 설악산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그 자태가 빼어나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가 아닐까 싶다. 너럭바위의 빼어난 경관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본격적인 바윗길이 시작된다. 토곡산에서 50분 정도 걸리는 지점이다.

 

 

 

너럭바위 근처에서 토곡산은 마지막 몸부림을 친다. 왜 토곡산을 악산으로 분류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주려는 듯이 말이다. 왜 토곡산을 악산(惡山)으로 분류할까? 악산의 악()자가 악하다는 뜻임을 감안한다면 능선의 암릉이 거친 탓에 산행을 마칠 때까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런 산들을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중의 한 명이 아닐까 싶다. 까칠한 암릉을 탈 때 손끝으로 전해오는 촉감이 마냥 좋고, 아슬아슬한 바위 끝에서 즐기는 환상적인 스릴(thrill) 때문에 난 바위산을 즐겨 찾는다. 거기다 암릉의 특징대로 조망(眺望)까지 툭 터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잠시 너럭바위에 올라본다. 한두 평쯤 되는 펑퍼짐한 바위 위에 서면 낙동강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너럭바위 근처에서는 안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바위를 에돌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안전로프가 매달려 있기는 하지만 중심을 잡기가 여의치 않다. 거기다 발아래에는 수십 길의 낭떠러지이니 간이 오그라들 수밖에 없다. 난 산행의 묘미(妙味)를 바위를 타는 것에서 찾는 편이다. 그러나 아직도 난 암릉에 올라서면 와락 겁부터 난다. 아직도 나 자신의 실력을 믿지 못하고 있음이 그 원인일 것이다. 오늘도 난 가슴을 졸이며 바위에 매달린다. 그러다가 문득 두려움보다는 희열에 들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손끝으로 전해오는 짜릿한 쾌감이 어느새 두려움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거기다 덤이 하나 더 생겼다. 잔뜩 긴장한 채 바위를 오르내리느라 힘이 든다는 것까지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너럭바위에서 내려오는 길에 경고판(警告板)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 구간은 로프를 이용한 급경사와 위험지역이 많으니 가급적 우회노선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위험하기에 저런 경고판까지 세워 놓았을까 궁금해서 바윗길로 들어서려는데 집사람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온다. 안전한 길을 놓아두고 왜 하필이면 위험하다는 구간으로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꾸중이다. 깜짝 놀라 돌아서고 만다. 세월이 갈수록 왜소해지다보니 집사람이 톤(tone)을 조금만 높여도 꼼짝 못하고 따르게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던 것이다.

 

 

 

너럭바위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또 다른 갈림길(이정표 : 함포마을 지장암 2.1Km/ 함포마을 회관 2.1Km/ 토곡산 1.5Km)이 나타난다. 이곳에선 어느 방향으로 가던지 산행날머리인 함포마을로 연결된다. 그리고 거리 또한 같다. 다만 왼편으로 갈 경우 계곡을 따르게 되고, 오른편은 능선을 따라 596m까지 갔다가 다시 지능선을 이용해 내려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때문에 마음 내키는 대로 방향을 잡으면 될 일이다. 이곳에서 우리부부는 능선을 따르는 코스를 택했다. 집사람의 불만을 무시하면서까지 이 코스를 고집한 것은 이 코스가 더 안전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나타나는 낙동강과 토곡산을 눈에 담으며 능선을 오르다보면 15분 후에는 596m봉에 이르게 된다. 이곳(이정표 : 함포마을 1.6Km/ 토곡산 2.0Km)에서 산길은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지능선을 따른다.

 

 

 

하산길은 완만하게 시작된다. 그러나 10분 후에는 상황이 크게 바뀌어 버린다. 산길이 지능선을 벗어나(이정표 : 함포마을 1.2Km/ 토곡산 2.4Km)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갑자기 가파르게 변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갈지()자를 만들면서야 겨우 고도(高度)를 떨어뜨리고 있는 내리막길을 따라 20분 가까이 내려서면 계곡(이정표 : 함포마을 1.0Km/ 토곡산 2.6Km)에 이르게 된다. 이정표로 보아 겨우 200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거의 20분이나 걸렸다 함은 그만큼 조심스럽게 내려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계곡에 이르면 왼편으로 난 길이 하나 보인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이곳에서는 무조건 오른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짙은 잿빛의 암벽을 오른편에 끼고 잠시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벼랑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벼랑에는 가는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다. 여름철에 비라도 올라치면 제법 멋진 폭포(瀑布)로 변신하지 않을까 싶다.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에 금()줄이 쳐져있고 부적(符籍) 비슷한 깃발들이 너절하게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뭔가 영험(靈驗)한 기운이 있는 기도터인 모양이다.

 

 

 

폭포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지장암이다. 민간의 여염집, 그것도 허름한 민초(民草)들의 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지장암의 마당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불교(佛敎)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호국신앙(護國信仰)’이라는 문장을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데, 지장암도 혹시 호국신앙을 내세우는 절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본 지장암은 무속신앙(巫俗信仰)을 주업으로 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을 정도로 사찰(寺刹)의 색채가 옅었다.

 

 

산행날머리는 함포마을(원동읍 원리)

지장암을 벗어나면 곧이어 69번 지방도(이정표 : 지장암 0.3Km, 물맞이폭포 0.5Km, 토곡산 3.6Km)에 내려서게 된다. 산행 날머리인 함포마을은 이곳에서도 원동면소재지 방향으로 500m 정도를 더 걸어야만 한다. 도로에 보행자를 위한 공간이 따로 나있지 않으니 오가는 차량들을 주의하면서 걸어야 할 것이다. 왼편에 보이는 토곡산의 위용을 구경하면서 10분 정도를 걷다보면 함포마을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잠깐 쉬기도 했지만 그 시간은 10분이 채 안되었으므로 온전히 4시간이 걸린 셈이다.

 

 

에필로그(epilogue). 지장암에서 내려와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내내 고민했던 것이 하나 있다. 과연 물맞이 폭포가 어디에 있는가 하느냐다. 많은 등산객들이 물맞이폭포라고 올린 사진들을 본 일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폭포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왜소하면서도 거기다 초라하기까지 했다. 다른 한편으론 아까 내가 보았던 금줄이 쳐져있던 폭포를 물맞이 폭포라고 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난 어디를 물맞이폭포로 봐야할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후자(後者)에다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줄까지 쳐져있던 그 폭포에 이름이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폭포라는 이름까지 붙이려면 최소한 그 정도의 위용은 지녀야할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