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운산(望雲山, 786m)
산행일 : ‘14. 9. 27(토)
소재지 : 경남 남해군 남해읍과 고현면, 서면의 경계
산행코스 : 평고개→체육공원→전망대→관대봉→삼거리봉↔망운산→송신탑(연대봉)→수리봉→학성봉→물야산→서산마을(산행시간: 4시간30분)
같이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색 : 남해군에는 망운산 외에도 금산과 설흘산, 호구산 등이 있다. 그러나 망운산은 남해의 진산(鎭山)임에도 불구하고 외지(外地) 사람들에게는 덜 알려진 편이다. 어쩌면 암릉으로 이루어진 다른 산들에 비해 전형적인 흙산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흙산은 바위산에 비해 눈요깃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산에 들고 보면 볼거리가 없다는 말은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화방사 위쪽의 철쭉군락지와 연대봉 근처의 억새능선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장관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능선을 타며 즐기는 눈터지는 조망(眺望)은 결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남해 사람들은 외지인들에게는 금산을 권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망운산을 오른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망운산이 한번쯤은 꼭 들러봐야 할 괜찮은 산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 산행들머리는 평고개(남해군 남해읍 서변리)
남해고속도로 진교 I.C에서 내려와 1009번 지방도를 이용 남해읍까지 들어온다. 남해읍 시가지를 벗어나기 바로 직전의 남변사거리에서 직진, 이어서 남해축협 앞에서 우회전하면 남해실내체육관이다. 체육관과 공설운동장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 들어가다 남해여중 담벼락의 끝자락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잠시 후에 산행들머리인 평고개에 올라서게 된다.
▼ 평고개 고갯마루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임도(林道)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망운산 산행’, ‘산림욕장(森林浴場)’, 그리고 ‘애국지사 이예모(李禮模)선생 묘(墓)’의 안내도(案內圖)가 한꺼번에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들머리에서 100m쯤 오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반듯하게 닦인 오른편의 임도는 ‘이예모선생 묘’로 가는 길, 등산로는 왼편으로 열린다. 초입에 망운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4.4Km라는 이정표 외에도 산림욕장에서 만든 또 다른 이정표(전망대 1.40Km, 삼림욕지구 1.48Km)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경사(傾斜)도 완만(緩慢)할뿐더러 폭이 넓은 흙길은 아예 폭신폭신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거기다 길가에는 나무에 대한 안내판까지 심심찮게 세워놓는 등 ‘산림욕장’의 진입로로 가꾸느라 쏟아 부은 정성의 흔적들이 역력하다.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며 걸을라치면 15분 후에는 약수터가 나온다. 비록 깔끔한 맛은 없지만 물맛은 괜찮은 편이니 잠깐 쉬어가도 좋을 일이다.
▼ 약수터를 지나면 바로 위가 체육공원(體育公園)이다. 수많은 운동기구와 쉼터, 그리고 숲속 공연장까지 갖춘 공원에서 길은 두 갈래(이정표 : 망운산 정상/ 신기마을/ 서변)로 나뉜다. 이정표에 나와 있는 오른편의 신기마을은 남해여중 근처에서 올라오는 길, 그리고 서변은 우리가 올라왔던 평고개 근처의 마을 이름이다. 이곳에는 산행을 도와주는 이정표 외에도 산림욕장에서 세운 이정표가 하나 더 보인다. 그러나 둘 모두 산행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방향표지만 되어 있을 뿐 가장 중요한 거리표시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을 하는 내내 만났던 이정표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들이었다. 이왕에 돈을 들여 만들었다면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그게 바로 요즘의 화두(話頭)인 ‘고객만족(CS : Customer Satisfaction)’일 테니까 말이다.
▼ 체육공원을 지나서도 산길은 변함없이 곱다. 평지나 다름없는 오름길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때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하나. ‘오늘 산행은 그냥 공먹는 것이나 아닐까?’ 그러나 이런 헛된 망상(妄想)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잠깐 스치고 지나간다싶을 정도로 짧게 끝나버리는 편백나무 숲을 통과하고 나면 전망대(展望臺)이다. 시멘트로 지어진 이층의 정자(亭子)에 올라가볼까 하다가 그냥 발걸음을 옮기고 만다. 주변의 숲 때문에 조망(眺望)이 별로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0분 남짓 지났다.
▼ 정자를 지나면 다시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서게 된다. 안내도에 ‘산림욕지구’로 표기되어 있는 지점(이정표 : 망운산 정상 2.6Km/ 망운산 입구 1.8Km)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편백나무 숲에는 각종 안내판과 벤치(bench) 등 주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편백나무라는 기존의 산림자원(山林資源)을 활용해서 주민들이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아이디어가 참신하게 느껴진다. 편백나무는 치유(healing)의 효능의 뛰어나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공간은 마음먹는다고 해서 나타는 것이 아니니 무의미하게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잠시 쉬었다 가면 어떨까.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삶의 여유를 찾아보고, 또 재충전의 시간으로 활용해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삼림욕장을 지나면서 산길은 서서히 가팔라져간다. 그리고 가끔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남해바다가 나타나나 개의치 말고 진행하는 것이 좋다. 조금 후에 마음 놓고 조망(眺望)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무튼 정자에서 2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평현고개 갈림길(이정표 : 망운산/ 평현고개), 그리고 곧이어 ’아산마을 갈림길(이정표 : 망운산 정상 2.3Km/ 아산마을/ 약수터 0.3Km/ 남산입구 2.2Km)을 만나게 된다.
▼ 아산마을 갈림길에서 10분 남짓 올랐을까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니 오른쪽으로 60도(度) 정도 기울은 널따란 반석(盤石)이 나타난다. 전망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시야가 활짝 열린다. 고도(高度)가 제법 높아진 탓일 것이다. 사실 이곳이 있었기에 아까 올라오면서 열렸던 조망처를 그냥 지나치라고 권했던 것이다. 전망바위에 서면 발아래에는 남해읍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건너편에는 창선도가 남해도와 손을 맞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 전망바위에서 다시 한 번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10분 후에는 거대한 바위(이정표 : 망운산 정상 1.7Km)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다. 왼쪽으로 반 바퀴를 에돌아 철계단을 오르면 관대봉 정상이다. 옛날 벼슬아치들의 관대(벼슬아치들의 공식복장)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만, 가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마봉'으로 부르기도 하고, 또한 이 봉우리 위가 시루 하나를 앉힐 만한 넓이라고 해서 '시루봉'이라고도 한단다.
▼ 관모봉에 올라서면 시야(視野)가 한층 더 넓어진다. 남해시가지 뒤로 펼쳐지는 남해바다가 훨씬 더 넓어졌고, 그 바다 위에는 창선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여수만과 오동도, 돌산도 등 전라도 땅이 새로이 나타난다.
▼ 관대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르게 떨어진다. 그러다가 10분 조금 못되면 안부에 이르게 되고, 이어서 짬짬이 나오는 바위를 오르내리다가 맞은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 30분 후에는 삼거리봉(이정표 : 망운산 정상/ KBS중계소/ 관대봉)에 올라서게 된다. 물론 삼거리봉으로 올라오는 길에도 심심찮게 시야가 열리니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하지 말고 조망을 즐기면서 걸어볼 일이다.
▼ 정상으로 오르다 고개를 돌려보니, 문득 관대봉이 그 모습을 나타낸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참으로 이채롭다. 영락없는 봉긋한 가슴 모양인 것이다.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초기의 명승(名僧)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했다는 말로 ‘돼지 눈으로 보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오직 돼지로만 보이고 부처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오직 부처로만 보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 정신세계는 오로지 수컷의 본능으로 가득 차 있나 보다.
▼ 망운산 정상과 KBS중계소로 가는 길이 나뉘는 주능선인 삼거리봉은 커다란 바위 몇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이 이 봉우리를 암봉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정상의 풍경은 실망스럽다. KBS중계소로 이어지는 전깃줄과 전봇대, 임도 따위가 어지럽다. 힘들여서 정상에 올랐는데도 이런 도회적(都會的) 풍경이 마중을 나오니 어찌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관대봉 정상에서 또 다시 시야(視野)가 활짝 열린다. 아까 관대봉에서 보았던 풍경과 다름없이 펼쳐지나 그 폭은 한층 더 넓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형상이 아까보다 많이 흐려졌다. 연무(煙霧)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 연무 사이로 흐릿하게 나타나는 곳은 아마 광양항일 것이다.
▼ 삼거리봉에서는 우선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는다. 망운산 정상을 둘러본 뒤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길가에 피어난 들꽃들을 구경하며 4분쯤 걸으면 안부에서 오른편으로 갈림길(이정표 : 망운산 정상/ 망운암/ 관대봉) 하나가 나뉜다. 망운암으로 가는 길이다.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한 산중 암자(庵子)인 망운암(望雲庵)의 현재 이름은 망운사(望雲寺)이다. 고려 때 진각국사가 창건했고, 해방 이후에는 효봉, 경봉, 서암, 월하스님 등이 수행했을 정도로 뛰어난 수행도량이었던 이 암자는 언제부턴가 황량하게 변해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현재의 주지인 성각스님이 다시 일으켜 세웠고, 현재는 부속 암자가 아닌 의젓한 독립된 사찰로 성장했다. 이는 선서화(禪書畵)의 대가(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알려진 성각스님의 능력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선서화(禪書畵)란 깨달음의 정신을 그림과 글씨에 담아내는 불교 수묵화(水墨畵)다.
▼ 삼거리에서 다시 10분 정도 가파르게 올라서면 드디어 망운산 정상이다. 커다란 바위 몇 개가 널려있는 정상에는 코고 작은 두 개의 정상표지석이 길손을 맞는다. 망운산의 원래 정상은 KBS중계소가 있는 연대봉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남해 사람들은 연대봉을 ‘상봉’이라 부르며 망운산의 최고봉으로 대우해 왔었으나 통신시설 때문에 출입을 할 수가 없게 된 이후부터 이곳 꼭두봉을 정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 망운산의 망운이란 이름 그대로 정상에 서서 먼 구름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사방에 막힘이 없으니 탁 트인 조망(眺望)이 압권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망무제(一望無題)로 뚫린다. 산의 기운을 빨아들인 구름 아래로 우람한 내륙의 산봉우리들이 바다를 향해 줄달음치고, 남해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 너머로는 바다에 기댄 도시들의 자태가 두 눈 가득 들어온다. 그렇다고 남해도에 산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마침 정상에 조망도(眺望圖)가 세워져 있으니 금산과 설흘산, 호구산 등 남해의 명산들과 눈이라도 맞춰볼 일이다.
▼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은 두 갈래(이정표 : 화방사/ 중계소)이다. 우리가 하산코스로 잡으려고 하는 KBS중계소로 가려면 아까 지나왔던 ‘삼거리봉’으로 되돌아가야 하고, 반대 방향으로 진행할 경우에는 철쭉광장을 거쳐 화방사에 이르게 된다. 1981년 화재로 소실(燒失)된 ‘이충무공 목판 묘비’가 복원(復原)되어 있는 **)화방사(花芳寺)는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순국(殉國)한 장병들의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호국사찰(護國寺刹)이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元曉)가 연죽사(煙竹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던 것을,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眞覺國師)가 현재의 위치 가까이로 옮겨서 중창하고 영장사(靈藏寺)라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근거지로 쓰이다가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636년(인조 14) 계원(戒元)과 영철(靈哲)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창하고 화방사라 하였다. 그 뒤 영조와 정조 때의 고승인 가직(嘉直)이 머물면서 갖가지 이적(異蹟)을 남겼고, 절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2호로 지정된 채진루(採眞樓)와 응진전, 명부전, 칠성각, 승당(僧堂)·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용문사(龍門寺), 보리암(菩提庵)과 함께 남해군의 3대 사찰(寺刹) 중 하나이며, 절 주위에는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 제152호로 지정된 산닥나무가 자생(自生)하고 있다. 참고로 이 절에는 옥종자(玉宗子)와 금고(金鼓) 그리고 이충무공비문목판(李忠武公碑文木版)라는 특이한 유물로 유명하다. 이 중 옥종자는 절을 짓고 불상을 모실 때 밝혔던 등잔으로 한번 불을 붙이면 꺼트려서도 안 되고, 일단 꺼진 뒤에는 다시 불을 붙일 수 없다고 전한다. 이 등잔은 임진왜란 때 꺼졌기 때문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금고는 조선 중기 때의 유물로 범자(梵字)가 사방에 양각되어 있으며, 이충무공비문목판에는 모두 2천자가 새겨져 있다.
▼ 다시 삼거리봉으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KBS중계소가 있는 연대봉으로 향한다. 연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온통 억새들 세상이다. 어른의 어깨 어림까지 차오를 정도로 웃자란 억새들 사이로 난 길은 가히 환상적이다. 특히 지금은 오후, 햇빛을 등지고 있는 억새꽃들은 은빛으로 하얗게 물들어있다. 아름다움에 취해 길을 걷다가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한려수도(閑麗水道)가 그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눈을 깔면 흐드러지게 핀 들꽃들은 가득하다. 행여 발길에 차이기라도 할까봐 걷고 있는 발걸음까지도 조심스러워진다.
▼ 나무들이 없어 조망이 시원스러운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연죽마을 갈림길’, 조금 후에는 커다라면서도 생김새까지 빼어난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안부에 이르게 된다. 이어서 맞은편에 보이는 능선을 짧게 치고 오르면 헬기장(이정표 : 용두봉 1.2Km/ 중리마을 4.3Km/ 망운사 2.7Km)이 나타나면서 전면에 연대봉이 바라보인다. 삼거리봉에서 15분 조금 못되는 거리이다.
▼ 헬기장에서 산길은 능선을 벗어나 왼편으로 난 시멘트포장 임도를 따르게 된다. 거대한 안테나 두 개가 서있는 정상은 철망(鐵網)으로 둘러싸여 있어 출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연대봉 정상에 세워진 원뿔형 돌탑이 하나 보인다. 저 돌탑이 있는 자리가 바로 옛날 봉수대(烽燧臺)가 있던 자리이다. 고려 말의 문신(文臣)이었던 정이오(鄭以吾)가 저곳에 올라 호국의지를 불태우면서 봉화를 들먹인걸 보면 그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초기에 잠시 진주 금양부곡의 양둔에만 봉화를 보냈던 것이 유일하다. 산세(山勢)가 워낙 높아 군사들의 주둔이 힘들다는 이유로 단종 2년(1454)에 폐지(廢止)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봉수대가 있는 정상은 면적이 좁아 돌로 쌓은 연대(煙臺) 하나만 설치하였었다. 망대(望臺)역할도 했던 연대의 둘레는 약 40m이며, 높이는 지형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높은 곳은 1.5m 정도였다고 한다.
▼ 헬기장에서 임도를 따라 5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정자(亭子)가 나온다. 전망대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정자의 옆은 너른 공터로 이루어져 있어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의 활공장으로 이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느 글에선가 망운산이 최근 항공스포츠의 활공장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는데 이곳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곳은 주변이 탁 트여서 조망이 뛰어나다. 바로 아래로는 여수와 남해를 가르는 바다가 흐르고, 건너편 땅 여수가 지척이다. 옛날에는 여수와 남해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육상교통 발달로 남해와 여수는 가깝지만 먼 이웃이 되어버렸다.
▼ 전망대에서 재미있는 이정표를 만났다. '싱글길'. 혼자서도 어려움 없이 갈 수 있는 길이란다. 하지만 일부러 혼자서 걸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혼자서 걷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하면 더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 전망대에서 경사(傾斜)가 심하지 않은 내리막길을 타다가 역시 가파르지 않은 맞은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 20분 후에는 바위봉우리인 수리봉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에 있는 표지판에는 ‘용두봉’이라고 적혀있다. 아마 수리봉의 또 다른 이름인 모양이다. 이곳에서의 조망(眺望)도 역시 뛰어나다. 아니 이곳뿐만이 아니다. 이곳으로 오는 길이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곳곳에서 눈터지는 조망이 펼쳐진다. 한마디 봉우리 전체가 전망대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연무(煙霧) 때문에 희미하지만 광양만이 널따랗게 펼쳐지고 고개를 돌리면 망운산 정상이 코앞에 서있다.
▼ 수리봉에서 다음 봉우리인 학성봉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게 시작된다. 산길은 그 가파름이 부담스러웠던지 길가에 목책(木柵)을 세우고 안전로프까지 매달아 놓았다. 붙잡고 내려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부담스러운 내리막길을 15분 정도 내려서면 안부에서 직장마을 갈림길(이정표 : 서상마을 2.5Km/ 직장마을 2Km/ 망운산 정상 3.3Km)을 만나게 되나, 갈림길을 무시하고 맞은편 능선을 향해 직진하면 된다.
▼ 학성봉으로 올라가는 능선에서 또 다시 억새밭을 만나게 된다. 햇빛을 등진 채 은빛으로 빛나는 억새들이 바람에 몸을 누이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가을로 물들어가는 산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 억새밭 끄트머리에 학성봉 정상이 있다. 직장마을 갈림길에서 25분 정도 걸리는 지점이다. 학성봉 정상도 역시 뛰어난 전망대이다. 아까 수리봉에서 보았던 풍경들이 다시 나타나지만 연무가 더 짙어졌는지 그 형상은 아까만 못하다. 참고로 학성봉에는 정상을 알려주는 그 어떤 표식도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학성봉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직장마을 갈림길을 지나 처음으로 올라서게 되는 바위봉우리가 학성봉이려니 했는데 저만큼 앞에 이보다 더 높은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그 봉우리를 학성봉이라고 보고 산행기를 썼다. 그러다보니 해발 610m 안팎의 봉우리인 ‘평치(평고개)’는 어디를 일컫는지도 모르고 산행을 마치는 우(愚)를 범해버리고 말았다.
▼ 학성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계속해서 내리막길로 연결된다. 길가에는 가끔 바위들이 나타나기도하지만 전형적인 흙길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흙길이 온통 웃자란 잡초(雜草)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걷기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능선을 따라 길게 내려섰다가 짧게 다시 오르면 물야산(411m) 정상이다. 바위벼랑을 버팀목 삼고 있는 물야산 정상 또한 천혜의 전망대다. 바위벼랑 위에 서면 푸르고 광활한 다도해(多島海)가 펼쳐지고, 발아래에는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서상마을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 물야산에서 가물랑산까지의 내리막길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산길은 가파른 구간도 나타나지만 대부분은 완만(緩慢)하다. 하나 산길은 그마저도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길이 갈지(之)자를 그리면서 아래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야산에서 내려선지 20분 정도가 지나면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가물랑산(190m)에 올라서게 된다. 가물랑산은 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언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페인트로 산의 이름을 적어놓은 자연석이 없었더라면 정상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 뻔하다.
▼ 산행날머리는 서면보건지소 앞 정자
가물랑산에서 10분 정도 내려오면 ‘김해 김씨 종중 묘원’ 앞에서 임도(이정표 ; 서면사무소 1.1Km, 남해스포츠파크 1.4Km/ 용두봉 정상 2.1Km)에 내려서게 되고,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10분 조금 못되게 더 내려오면 산행안내도와 이정표(서면사무소 0.4Km, 서상스포츠파크 0.7Km/ 용두봉 정상 2.8Km)가 세워진 서상마을에 이르게 된다. 산행이 종료되는 서면보건지소는 이곳에서도 7~8분 정도 더 걸어야 한다. 총 산행시간은 총 4시간40분이 걸렸다. 중간에 간식을 먹느라 쉰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30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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