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紺岳山, 952m)
산행일 : ‘15. 3. 17(화)
소재지 : 경남 거창군 남상면과 신원면의 경계
산행코스 : 가재골주차장→선녀폭포→명산 갈림길→감악산→해맞이공원 갈림길→연수사→물맞는 약수탕→사거리→가재골주차장(산행시간 : 2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산을 찾아다니다 보면 가끔 이름과 동떨어진 산들을 볼 수 있다. 감악산도 역시 그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감악산은 ‘야청빛 감(紺)’자에 ‘큰 산 악(岳)’을 쓰는 산일지니 ‘야청빛(감색)으로 빛나는 큰 산’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막상 찾아온 감악산(紺岳山)은 산행시간이 2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이름에 걸맞지 않게 왜소한 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의외인 것은 이름에 악(岳)자가 들어있기에 어련히 바위산일 것으로 여겼는데 실제로는 전형적인 육산(肉山)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특별히 보여줄 만한 산세(山勢)를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상에서의 조망(眺望)과 헌강왕(헌안왕이라는 얘기도 있다)이 마시고 병(病)을 나았다는 영험한 물을 지닌 연수사가 전부일 정도이다. 거기다 하나를 덧붙인다면 선녀폭포일 것이고 말이다. 감악산 하나만 오르는 것보다는 주변의 다른 산들과 연계산행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 산행들머리는 가재골주차장(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88고속도로 거창 I.C에서 내려와 우회전, 곧이어 ‘국농소 삼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1089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거창농공단지를 지난 후, 월평사거리에서 월평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2Km정도를 들어간다. 이어서 1084번 지방도를 만나면 이번에는 좌회전해서 들어가다가 무촌리(남상면)을 지나자마자 신원방면 이정표를 보고 또 다시 좌회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가재골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화장실과 팔각정까지 갖춘 반듯한 주차장이다.
▼ 주차장에 내리면 ‘감악산 물맞이길 안내도(사진은 정상의 것을 사용)’가 등산객들을 반긴다. 이 안내도는 이곳 외에도 정상이나 ‘해맞이 데크’ 등 여러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감악산 물맞이길’은 행정안전부 주관의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사업’이 만들어낸 거창 판의 둘레길이다. 남상면 매산 마을을 시작으로 매산저수지를 지나 연수사로 가는 옛길을 복원했고, 해맞이 행사장을 연결시키면서 역사와 전설,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녹색길로 조성했다. 참고로 ‘물맞이길’은 연수사 옆에 있는, 그 유명한 '물맞는 약수탕'을 모티브(motive)로 했으며 연수사를 중심으로 ‘물 맞으러 가는 길’ ‘고행의 둘레길’ ‘전망대 가는길’ ‘삼신도량 하는 길’ 등의 구간으로 나누었다.
▼ 산행들머리는 팔각정(이정표 : 등산로 300m, 선녀폭포 350m/ 연수사 1.3Km) 뒤에서 열린다. ‘어! 오래 살다보니 내려가면서 산행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네?’ 어느 일행의 말마따나 희귀하게도 산행은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2~3분쯤 내려가면 임도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구름다리가 나타난다.
▼ 길가에 만들어진 쉼터, 산행을 하다보면 정자(亭子) 등의 쉼터를 자주 만나게 된다. ‘물맞이 길’을 조성하면서 만든 것일 것이다.
▼ 두 번째 다리(이정표 : 물맞는 약수탕 1.6Km, 감악산 2.3Km/ 매산 방문자센터 3.5Km)를 건너 70~80m쯤 더 들어가면 높이가 10m쯤 되는 멋진 폭포를 만나게 된다. 감악산의 명물인 선녀폭포(仙女瀑布)이다. 감악산 북쪽의 연수사 약수바위에서 발원된 물이 모여 이뤄진 폭포로서, 전설(傳說)에 의하면 매년 칠석날이면 선녀가 내려와 선녀탕과 계곡에서 놀다가 폭포수로 몸단장을 한 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여 승천(昇天)하였다 한다. 참고로 거창의 안산(案山 : 풍수지리에서,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인 감악산에는 2개의 폭포(瀑布)가 있다. 선녀폭포와 신선폭포인데 두 폭포는 나름대로 특징을 갖고 있다. 3단으로 이루어진 선녀폭포는 여성스럽고, 그에 반해 수직형인 신선폭포는 남성형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폭포는 그중 ‘선녀폭포’, 가슴 설레는 이름에 비해 그 자태는 평범하기 짝이 없다.
▼ 다시 입구로 되돌아와 임도를 따라 30m쯤 더 걸으면 왼편 산자락으로 놓인 높다란 계단이 보인다. 선녀폭포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展望臺)로 오르는 계단이니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선녀폭포의 전체적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하나의 폭포로 보이던 아까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폭포가 3개로 나뉘어서 나타난다. 선녀를 만난 듯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높이 14~15m 정도로 그다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자태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한마디로 아담하면서도 신비스럽다. 그렇다 이 정도는 되어야 감악산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까 아래 전망대에서 폭포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던 소리가 떠올라 실소(失笑)를 짓게 만든다. ‘이 정도의 폭포에서 노닐었을 정도라면 못난이 선녀였던 모양이다’라는 생각 말이다.
▼ 다시 임도로 내려와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산자락 아래로 난 길을 따르면 ‘가재골주차장 갈림길’(이정표 : 감악산 2.6Km/ 가재골주차장 500m/ 매산 방문자센터 3.8Km)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감악산 2.6Km’ 방향으로 8분 정도 더 걸으면 산길은 임도를 벗어나 오른편 산자락(이정표 : 감악산 2.1Km/ 선녀폭포 800m, 가재골주차장 1.0Km)으로 들어선다.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 산자락으로 들어서도 산길은 경사(傾斜)가 거의 없이 이어진다. 마치 급할 것이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는 것이다. 주변은 참나무들 세상, 간혹 소나무도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참나무들이다. 어쩌면 지질(地質)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길가가 온통 습지(濕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로 난 길은 질퍽거림을 배겨내지 못하고, 끝내는 통나무를 엮어서 바닥에 깔아 놓았다. 어떻게 보면 흙 위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는 꼴이다. 소나무들이 뒷전으로 밀려난 이유일 것이다.
▼ 습지가 끝날 즈음이면 정자(亭子)가 나타나고, 이 정자를 왼편에 끼고 능선으로 올라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경사(傾斜)가 심하지 않은 능선도 역시 질퍽이기는 매한가지이다. 다만 습지였던 아까와는 달리 땅이 얼었다가 풀리는 과정에서 질퍽이는 것이 다를 뿐이다. 감악산이 원래부터 물과 인연이 깊다고 했는데, 그 물기가 온 산을 뒤덮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요즘 같은 가뭄철에 이렇게 질퍽일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45분, 그러니까 산자락으로 들어서서 20분 정도가 지나면 ‘연수사 갈림길’(이정표 : 감악산 1.0Km, 청연삼거리 4.4Km/ 물맞는 약수탕 1.0Km, 연수사 1.3Km/ 가재골주차장 2.1Km)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연수사, 물론 연수사를 경유해서 정상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다. 그 코스는 이따가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지나게 될 테니까 말이다.
▼ 연수사갈림길을 지나면서 산길은 제법 가팔라진다. 그러나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오르는 길가에 별로 필요할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로프를 길게 매어놓았다. 하지만 로프는 의외의 용도로 그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질퍽이는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로프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그냥 올라설 수가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7분 후에는 왼편으로 갈림길(이정표 : 감악산 0.6Km/ 명산 4.7Km/ 가재골주차장 2.5Km) 하나를 만들어 낸다. 명산으로 가는 능선 길이다. 감악산 하나만으로는 산행거리가 너무 짧은데 명산까지 한꺼번에 묶는다면 괜찮은 산행코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 명산갈림길에서 10분 남짓 더 오르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감악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꼭대기에 올라앉은 정자와 방송사 송신탑이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명산갈림길에서 15분 남짓, 산행을 시작한지는 1시간20분 정도가 걸렸다.
▼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에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방의 경치를 조망(眺望)할 수 있는 곳에 지어진 팔각정이다. ‘감악산 해맞이 전망대’라는 의젓한 이름까지 갖고 있다. 정자 옆에는 널따란 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난간에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해맞이 행사를 이곳에서 개최했던 모양이다.
▼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외에도 많은 시설들이 보인다. 팔각정과 이정표(연수사 1.4Km/ 명산 5.3Km) 외에도 무인산불감시망루와 장승들, 그리고 ‘물맞이길 안내도’와 ‘감악산전망대 안내판’ 등 번잡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이 세워져있다. 거기다 ‘KBS중계소’의 송신탑까지 머리를 내밀고 있어 어지럽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참고로 감악산의 본디 이름은 대덕산(大德山)이다. 우리나라 산들 중에 덕(德)이라는 한자가 들어가는 산들은 대부분 포근한 느낌의 육산(肉山)들이다. 그렇다면 험한 산들에 어울리는 감악산(紺岳山)보다는 옛 이름인 대덕산으로 불리는 게 옳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정상에는 각종 시설물들 외에도 ‘아림장군’과 ‘아름미인’이라는 한 쌍의 장승을 세워 놓았다. 거창의 캐릭터(character)인 모양인데, 아무튼 잘 생겼다. ‘아림’이나 ‘아름’이라는 이름은 어쩌면 ‘아름답다’에서 따온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 정상에서 ‘KBS중계소’ 방향으로 보면 널따란 반석(盤石)들이 여러 개 보인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간식을 먹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주변의 조망까지 함께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의 명당자리이다.
▼ 정상에서는 시야(視野)가 사통팔달로 열린다. 이는 조망(眺望)이 일품이라는 얘기이다. 북쪽으로 거창읍 시가지가 아스라이 보이고, 반대편에는 거대한 산군들이 조망된다. 비록 연무(煙霧)로 인해 흐릿하게 형태만 나타날 따름이지만 제왕 같은 지리산과 덕유산 등일 것이다. 조금 더 시야를 옮기면 가야산 일대 겹겹이 쌓여 있는 산군(山群)들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누군가 그랬다. 감악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백화점식으로 펼쳐지노라고. 시원함과 뻥 뚫림, 명산으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 정상에서 통신기지 방향으로 몇 걸음만 더 옮기면 활공장(滑空場)이 나온다. 그러나 말이 활공장이지 그저 바닥에다 플라스틱 망(網)을 깔아 놓고, 한쪽 귀퉁이에다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기 위한 기구를 매달을 수 있도록 쇠막대기를 세워놓은 것이 전부이다. 요즘 산에 다니다보면 시설 좋은 활공장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구태여 누가 이런 곳까지 찾아올지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조망(眺望) 하나는 끝내준다. 지리산과 덕유산 방향으로 시야(視野)가 뻥 뚫리는 것이다. 아쉽게도 오늘은 연무(煙霧)로 인해 어디가 어디인지 도통 분간이 안 되지만 말이다.
▼ 활공장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KBS중계소’의 담장인 철조망 근처에서 오른편으로 갈림길(이정표 : 감악재 800m/ 연수사 1.1Km, 선녀폭포 2.0Km/ 전망대 0.3Km) 하나가 나뉜다. 연수사나 선녀폭포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나 개의치 말고 진행하면 된다. 조금 후에 연수사로 내려가는 또 다른 갈림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연수사갈림길’을 지나면 ‘KBS중계소’의 앞마당이다. 이곳도 역시 마당 한켠에다 널따란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데크 앞에 ‘감악산 해맞이’ 빗돌이 세워져 있고, 중계소의 건물 외벽에 ‘해맞이축제’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새해 첫날 ‘해맞이 축제’ 행사가 열리는 모양이다. 참고로 전망대 근처에서 또 하나의 갈림길(이정표 : 신선폭포 2.4Km, 감악사지부도 1.1Km/ 감악재 770m, 청연마을 삼거리 3.1Km/ 감악산 330m)이 나뉜다. 왼편으로 가면 감악산 2대 폭포 중의 하나인 신선폭포를 구경할 수 있으나 그쪽을 하산코스로 잡지 않았다면 고민하지 말고 그냥 감악재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 ‘KBS중계소’ 앞에서 임도를 따라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오솔길 하나가 오른편으로 가지(이정표 : 연수사 1.1Km/ 감악재 680m/ 전망대 0.4Km)를 친다. 연수사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야만 한다. 연수사로 내려가는 길, 아직까지도 하얀 눈이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오늘 기온이 ‘23℃’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날씨는 한여름에 가까울 만치 더운데도 땅바닥은 한겨울이라니 참으로 이색적인 풍경이다.
▼ 앞서가던 집사람의 손에 언제부턴가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있다. 주변에 잣나무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그녀의 살림꾼 기질이 또 다시 발동했나 보다. 언제 어디서나 먹거리를 찾는 그녀의 눈에 맛있는 간식거리를 놓쳤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꽤나 많은 양의 잣을 주을 수 있었다.
▼ 잣나무 숲을 빠져나오면 비탈진 산자락에 비집고 들어앉은 절간이 나타난다. 물과 인연이 깊다는 연수사(演水寺)이다. 연수사(演水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신라 애장왕(哀莊王) 3년(802년)에 감악조사(紺岳祖師)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연수사 이전의 절 이름이 감악사였다고 하니. 산(山)과 절(寺), 그리고 절을 지은 스님의 이름이 모두 감악(紺岳)이란 이름으로 같다. 그건 그렇고 원래의 절은 지금 보다 남쪽에 지으려고 했으나, 서까래용으로 다듬어 놓은 재목(材木)이 없어졌기에 다음 날 찾아보니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 놓여있더란다. 그래서 서까래가 발견된 장소에다 옮겨 지은 것이 오늘의 연수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증명할만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연수사의 창건과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이름 모를 병에 시달렸던 헌안왕이 이 절 부근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고친 뒤에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는 것이다(naver지식 참조). 한편 사찰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병을 고친 이가 헌강왕이라고 적고 있어 다소 헷갈린다. 다만 신라의 제47대 왕인 헌안왕(재위 : 857~861)은 재위 5년이 되던 해에 병으로 죽었다. 그리고 49대 헌강왕(재위 : 875년~886)도 말년에 병으로 쓰러졌다는 기록이 있다. 허나 헌강왕 때 신라의 최전성기(最全盛期)를 구가했고, 또한 불력(佛力)에 의해 국가의 재건과 왕실의 안녕을 추구하던 시기였던 것으로 보아 헌안왕보다는 헌강왕에 더 무게가 실어야 하지 않나 싶다.
▼ 현존 건물로는 대웅전과 세석산방, 종각, 칠성각, 요사채 등이 있으나,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아서, 염두에 두어야할 문화재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참고로 신라 때 지은 감악사는 빈대 때문에 망하고 고려 공민왕 때 벽암선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그 이름을 연수사로 고쳤다고 한다. 물론 현재 눈앞에 보이는 건물들은 당시의 건물들이 아니다.
▼ 대웅전 앞마당 한켠에 조롱박 하나가 놓여있다. 물론 진짜는 아니고 돌로 만든 조형물(造形物)이다. 바가지의 주둥이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 물이 혹시 헌강왕이 마셨다는 약수(藥水)가 아닐까? 이곳 연수사를 짓게 해준 빌미를 제공했다는 그 약수 말이다. 연수사의 약수는 푸른빛이 감도는 바위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물은 맛이 좋고, 극심한 가뭄에도 결코 마르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단 한 모금 마시고 볼 일이다. 물은 달고 시원했다. 내가 알기론 헌강왕이 마셨던 약수는 물의 온도가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약수는 여름철에 제격이겠다. 그만큼 시원하단 의미이다.
▼ 연수사 일주문 곁에는 수령(樹齡)이 600년이나 되는 은행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124호)가 있다. 높이 38m에 둘레 7m, 나뭇가지만 20m에 이르는 나무로 성인 4∼5명이 팔을 벌려 감싸 안아야 될 정도로 거대하다. 이 은행나무에는 어느 모자(母子)의 애틋한 그리움과 정이 담긴 설화(說話)가 전해져 내려온다. 고려 때 한 여인이 왕손(王孫)에게 시집을 갔으나 그 남편은 유복자(遺腹子) 하나만 남기고는 일찍이 저세상으로 가버렸던 모양이다. 그 여인이 연수사에서 출가하여 승려의 몸으로 남편의 명복을 빌고 있었는데, 10년이 지난 어느 날 한 노승이 아들을 데려가 공부를 시키겠다고 하였단다. 이에 아들이 절 뒤뜰에 젓(전)나무를 심고 ‘이 나무가 사철 푸르게 자랄 것이니 저를 보듯 길러 주세요.’라고 말하니, 어미도 ‘나는 앞뜰에 은행나무를 심고 기다릴 테니 만약 훗날 내가 없더라도 어미를 보듯 대하라’고 화답(和答)을 하였더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젓나무는 강풍에 부러졌고 은행나무만 홀로 남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 일주문 앞(이정표 : 물맞는 곳 180m, 감악산 1.4Km)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 후, 시멘트포장 임도를 따라 잠시 걸으면 마치 성벽(城壁)처럼 반듯하게 쌓아올린 돌담이 나타난다. ‘물 맞는 약수탕’이란다. 중풍에 걸린 헌강왕이 이 물을 마시고 목욕한 후에 병을 나았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이름난 약수란다. 그러나 아쉽게도 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안내판을 보면 대웅전 뒤에 있는 약수바위에서 솟아나는 물을 원수(原水)로 쓴다는데, 겨울철이라서 연결파이프가 얼어붙기라도 한 모양이다. 덕분에 올여름 땀띠도 예방할 겸해서 노천목욕을 해보려던 내 바램은 한낱 꿈으로 사라져버렸다.
▼ 약수탕은 남탕과 여탕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그 구분에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아림욕장’이라는 이름표를 단 장승들을 이용해 남녀를 구분해 놓았는데, 우리네야 금방 알아챌 수 있겠지만 낯선 이방인들에게는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을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오래 전에 해외출장을 나갔다가 이와 비슷한 경우로 봉변을 당한 일이 있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일이다. 호텔에서 여장을 풀자마자 같이 간 모 일간지 기자와 함께 지하에 있는 사우나로 내려갔다. ‘북유럽’의 명물인 사우나를 꼭 들러보아야 할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막상 내려간 사우나에서 우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녀구분의 표기가 스웨덴어로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글자 부근에 그려진 문양으로 대충 감을 잡고 들어간 사우나, 결과적으로 우린 여탕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다행이 낮이었기에 약간의 소동만 피우고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 약수탕(이정표 : 참나무평원 삼거리 1.1Km, 감악산 1.1Km/ 선년폭포 1.6Km, 매산 방문자센터 5.1Km)에서는 참나무평원 방향으로 향한다. 산길은 다시 온전한 오르막길로 변한다. 감악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과 겹치니 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6~7분 후에는 사거리(이정표 : 가재골주차장 1.0Km, 선녀폭포 1.4Km/ 참나무평원삼거리 0.8Km/ 감악산 0.9Km/ 물맞는 약수탕 280m, 연수사 0.5Km)를 만나게 된다.
▼ 사거리에서 왼편 가재골주차장 방향으로 내려선다. 곧바로 직진해도 가재골주차장으로 갈 수는 있으나 그럴 경우에는 ‘참나무평원삼거리’에서부터 올라올 때 지나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가재골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가파르다. 오늘 걸었던 코스 중에서 가장 심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능선이 온통 소나무들 천지라는 것이다. 소나무가 귀한 산에서 만난 귀하신 몸들이다. 코끝을 스치는 진한 솔향기에 취하다보면 가파른 산길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 산행날머리는 가재골 주차장(원점회귀)
솔향기에 취해 걷다보면 17분 후에는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내려서는 지점이 마침 개울가, 산행을 하면서 흘렸던 땀을 씻고 가기에 충분할 만큼의 물이 흐르고 있다, 특히 오늘 같이 질퍽거리는 산길을 걸은 날에는 스틱이나 신발을 닦기에 딱 좋다. 이어서 임도를 따라 3~4분 정도를 더 걸으면 도로(이정표 : 가재골주차장 200m/ 물맞는 약수탕 1.0Km/ 감악산 2.9Km)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몇 걸음 걷지 않아 가재골 주차장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2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정상에서 쉰 시간을 감안할 경우 2시간30분이 걸린 셈이다. 그것도 서서히 걸은 시간이니 이곳 거창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에 비할 경우 산행코스가 너무 짧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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