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유산(南德裕山, 1507.4m)
산행일 : ‘14. 7. 5(토)
소재지 : 전북 장수군 계북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 거창군 북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영각사→영각재→남덕유산→서봉갈림길→월성치→월성계곡→황점마을(산행시간 : 4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사람들은 덕유산을 일컬어 '크고 넉넉하며 사람의 기운을 돋우는 명산(名山)'이라고 추켜세운다. 커다라면서도 두루뭉술한 산세(山勢)를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조선 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이 산을 대표적인 육산(肉山)으로 꼽았다. 하지만 덕유산 전체가 다 두루뭉술한 육산은 아니다. 북덕유산이라고도 불리는 향적봉(1,614m) 일대와는 달리 남쪽으로 20Km쯤 내려오는 곳에서는 또 다른 산세, 즉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남성적(男性的) 매력이 넘치는 골산(骨山)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특한 산세를 존중이라도 해주려는 듯 사람들은 이곳을 남덕유산(1,507.4m)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남덕유산도 북덕유산과 마찬가지로 첩첩이 쌓인 주변의 산그리메가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바윗길에 놓인 긴 계단을 오르내릴 때 시야(視野)에 잡히는 조망(眺望)은 거칠 것이 없다. 마침 골도 깊으니 오늘 같이 무더운 여름철에는 정상까지 짧게 올랐다가 계곡으로 하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 산행들머리는 영각사 앞 버스정류장(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산 9-28)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서상 I.C에서 내려와 곧바로 서상면소재지 쪽으로 좌회전한다. 서상버스터미널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시내를 빠져나가기 전에 마주치는 ‘T’자형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26번 국도를 타고 장계 방면으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중남삼거리(함양군 서상면 중남리)에 닿는다. 이곳 중남삼거리에서 오른쪽 37번 지방도를 타고 10분 남짓 들어가면 산행들머리인 영각사 앞 버스정류장에 이르게 된다.
▼ 산길은 버스정류장 바로 아래에서 열린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들머리 근처에 있는 천년고찰인 영각사(靈覺寺)를 들러보지 않을 경우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 만큼 한번쯤은 둘러볼만한 가치가 충분한데다가 특히 영각사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10분이면 충분하니까 하는 말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영각사까지는 2~3분 정도 걸으면 충분한 거리이다. 영각사는 남덕유산이라는 큰 산 자락에 있으면서도 절 자체의 명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한 때는 이름에 걸맞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신라 헌강왕 2년(876년)에 심광대사(深光大師)가 창건했는데, 초기에는 규모 면에서 해인사에 못지않은 큰 수행도량이었다는 것이다. 창건 뒤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1770년(영조 46)에 상언(尙彦)이 ‘화엄경(華嚴經)’ 판목(板木)을 새겨서 이 절에 장경각(藏經閣)을 짓고 봉안하였다. 또한, 상언은 이 절에 머물면서 절을 옮기지 않으면 수재(水災)에 의하여 무너지게 되리라고 예언하였는데, 얼마 뒤 홍수가 나서 절이 무너졌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堂宇)인 극락전과 화엄전, 삼성각, 요사채 등은 1959년에 국고보조를 얻어 새로 지은 것이다. 6·25 때 모두 소실(燒失)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참고로 심광대사는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성주산문(聖住山門)의 개산조인 무염(無染, 801∼888)의 제자로 신라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에는 ‘心光(심과)’이라고 되어 있다.
▼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 나와 남덕유산으로 향한다. 길이 널따란 탓에 산길이라는 느낌이 덜하지만 다행이도 포장길이 아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입구에서 탐방지원센터(영각공원지킴터)까지는 400m, 탐방지원센터는 전에 매표소가 있었던 곳이다. 센터 앞을 통과해 산으로 들면 각종 경고판과 안내판이 마치 무당집 처마에서 흩날리는 리본(ribbon)들 만큼이나 번잡하다.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금연(禁煙)’은 눈에 익지만, ‘우측통행’은 생뚱맞기 짝이 없다. 서로 비켜나기조차 힘든 좁다란 등산로에서 서로 편하게 비켜나면 되지, 구태여 우측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뱀, 벌 주의’가 눈에 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뱀이 많은 산인 모양이다.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간이 잔뜩 움츠러들어버렸다.
▼ 산으로 들어서도 산길의 풍경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길의 폭이 좁아졌을 따름이지 경사(傾斜)는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완만(緩慢)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릎 아래에는 산죽(山竹) 숲이 깔려있고, 길 양편에는 쪽동백과 당단풍나무, 층층나무 등이 촘촘하다. 나무마다 줄줄이 이름표를 달고 있으니 가는 길을 서둘 것 없이 나무의 생김새와 이름표를 맞추어 가며 걷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 비록 경사는 약하지만 걷는 게 쉽지만은 않다. 언제부턴가 바닥이 돌길로 변해있기 때문이다. 아마 첫 번째 이정표(남덕유산 3.0Km/ 영각공원지킴터 0.4Km)를 지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바닥의 돌들이 크기와 생김새가 제각각이어서 발을 내려딛기가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 지원센터에서 첫 번째 나무다리(木橋)까지는 30분,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형우군(君)의 속도에 맞춘 것이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옛 직장동료인 그의 체력이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60대 중반을 향해 치닫고 있으니 어찌 예전 같을 수 있겠는가. 첫 번째 다리에서 6분쯤 더 걸으면 나무다리가 하나 더 나타난다. 두 개의 다리 모두 얕은 계곡을 가로지르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다리 아래의 계곡에 물기가 한 점도 없는 걸로 보아 비상용(非常用) 다리가 아닌가 싶다. 폭우(暴雨)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비상용 말이다.
▼ 두 번째 다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그리고 그 가파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진다. 그것도 거리가 1Km 정도나 되니 제법 먼 거리이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짙은 숲속 길을 한바탕 땀을 쏟으면서 오르면 45분 쯤 후에는 능선에 이르고 산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영각재에 올라선 것이다. 형우군의 속도에 맞추다보니 이 구간도 역시 생각보다 더 걸렸다.
▼ 이정표(남덕유산 0.9Km/ 영각공원지킴터 2.5Km)가 있는 능선 안부지만 어느새 해발고도(海拔高度)는 1200고지를 훌쩍 넘고 있다. 영각재에서는 오른쪽으로 난 길이 하나 보인다. 남령과 월봉산, 황석산, 기백산으로 연결되는 **)진양기맥의 일부지만 자연휴식년제(自然休息年制)에 따른 입산통제 구간이니 참조할 일이다. 물론 들머리에 이를 알리는 경고판(警告板)을 큼지막하게 세워두었다.
(**) 진양기맥(晉陽岐脈),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남덕유산에서 갈래를 쳐서 남강유역인 진양호의 남강댐(dam)에서 그 숨을 다하는 도상거리 159.1Km의 산줄기로 남강과 황강을 가르는 분수령(分水嶺)이 된다. 월봉산, 금원산, 기백산, 항매산, 한우산, 자굴산 등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산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영각재를 나서면서 길은 더욱 가팔라진다. 그러나 이 정도는 가파르다고 할 수도 없다. 조금 후에는 그 길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철(鐵)계단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길고도 긴 계단은 거의 수직(垂直)에 가까울 정도로 아찔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계단이 바위에 걸쳐진 것이 아니고 숲 사이로 나있다는 것이다. 일부러 뒤로 돌아서지 않은 이상은 무섬증 까지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고개 뒤로 시야(視野)가 열린다고 해서 무섬증까지 각오하고 고개를 돌릴 필요는 없다. 조금 후에 봉우리 위로 올라가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조망(眺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 철계단을 숨이 차게 오르면 거대한 바위벽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바위벽에 그다지 길지 않은 철계단이 놓여있다. 계단 위가 바로 전망이 좋다고 소문이 난 1440봉이다. 1440봉에서의 조망은 소문대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남덕유산의 정상이 위치한 진행방향에는 불끈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봉우리가 우뚝하고. 뒤로 돌아보면 월봉산을 중심으로 왼쪽 저 멀리 거창의 금원산과 기백산이, 오른쪽에는 황석산 거망산이, 남동쪽으로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 주능선이 거대한 성처럼 하늘 높이 솟아있다. 영각재에서 1440봉까지는 20분 남짓 걸렸다.
▼ 전망봉에 올라 남덕유산 정상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 산봉우리를 향해 길게 놓인 계단(階段)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예전에 보던 것 하고는 많이 다르다. 옛날에는 사다리처럼 길면서도 가팔랐는데, 지금은 제법 너른 계단이 좌우로 꿈틀대면서 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알아본 결과 이 계단은 2011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1978년 해발 1천450m에 설치된 길이 55m의 이 철(鐵)계단은 항상 안전사고의 위험이 뒤따랐었다. 계단의 폭이 협소(狹小)하고 경사(傾斜)가 심했던 까닭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철계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폭을 넓히고 경사를 누그러뜨린 나무(木)계단을 새로 설치했다는 것이다. 안전을 위해 행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30여 년 동안 등산객의 발이 되었던 철계단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못내 떨쳐버릴 수 없었다.
▼ 1440봉에서부터 남덕유산의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살짝 내려섰다가 본격적으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끝도 없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계단의 폭이 넓이고, 경사(傾斜)를 죽인 탓에 그다지 힘이 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구태여 위만 보고 오를 필요는 없다. 가끔가다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빼어난 자태의 경관(景觀)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먼 곳에 있는 산들이야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코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는 1440봉 하나만으로도 눈요깃감으로는 충분할 테니까 말이다.
▼ 눈요기를 즐기며 계단을 오르다보면 10분 후에는 또 다른 암봉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은 일명 ‘남덕유산의 전망대’로 일컬어지는 곳. 왼쪽 멀리 남덕유산 정상이 보이고 오른쪽 저 멀리 덕유산 주능선 상의 월성치 삿갓봉 무룡산 향적봉 등이 끝없이 이어진다. 마치 잘 그린 한 폭의 수묵담채화(水墨淡彩畵)를 눈앞에 펼쳐 놓은 듯하다. 그리고 눈을 아래로 깔기라도 할라치면 암릉을 걷거나 긴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다. 물론 그 뒤로는 월봉산과 거망산, 황석산은 물론이고 저 멀리 지리산까지 눈에 잡힌다.
▼ 두 번째 암봉에서 바라본 남덕유산은 의외로 육산(肉山)으로 나타난다. 조금 전의 풍경과는 전혀 딴판인 것이다. 그러나 막상 숲속으로 들어서면 바위로 이루어진 산임을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대부분의 산길이 바위나 너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암봉에서 25분 남짓 걸으면 드디어 남덕유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커다란 정상표지석 하나가 외롭게 지키고 있는 남덕유산의 정상은 커다란 돌덩어리이다. 그러나 정상어림을 제외하고는 의외로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 남덕유산 정상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이 지나가는 분수령(分水嶺). 이 산줄기는 금강과 낙동강의 수계(水界)를 이루며 서남쪽으로는 육십령, 덕유주능선쪽으로는 백암봉으로 이어진다. 이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정상에 서면 다시 한 번 사위로 조망(眺望)이 탁 터진다. 우선 용틀임하는 듯한 덕유산의 연봉들이 장쾌하게 이어지고, 반대편에는 육십령으로 넘어가는 백두대간의 내리막 능선이 선명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동쪽 멀리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아련하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을 풍광(風光)이다.
▼ 정상에서 하산을 서두른다. 정상에서 잠깐 내려가다 갈림길(이정표 : 삿갓재 대피소 4.2Km/ 남덕유산 0.1Km)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꺾는다. 이어서 오른쪽 삿갓재대피소 방향으로 5분 조금 못되게 더 내려가면 또 하나의 갈림길(이정표 : 삿갓재대피소 4.0Km/ 육십령 8.5Km/ 남덕유산 0.3Km)이 나온다. 이곳에서 왼편은 서봉으로 가는 길, 하산길인 월성치로 가려면 당연히 오른편 삿갓재대피소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 서봉갈림길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30분 정도 내려서면 월성치(이정표 : 삿갓골재대피소 2.9Km/ 황점마을 3.8Km/ 남덕유산 1.4Km)에 이르게 된다. 월성치는 사거리로서 오늘 우리가 하산코스로 삼으려는 황점방향 외에도 왼편으로 길이 하나 더 있다. 전북 장수 계북면 양악리로 이어지는 토옥동 계곡길이다. 토옥동 계곡은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도 다닐 정도로 유순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지만 아쉽게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비법정 탐방로'로 출입을 금하고 있다.
▼ 월성치에서 월성계곡으로 내려서면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가파른 경사(傾斜)의 산길을 10분 조금 못되게 내려서면 샘(이정표 : 황점마을 3.5Km/ 월성재 0.3Km, 남덕유산 1.7Km)이 하나 나온다. 연마(鍊磨)된 석판(石板)으로 깔끔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역시 국립공원답다. 그러나 물맛은 별로, 생각보다는 달지도, 그렇다고 시원하지도 않았다.
▼ 샘터를 지나서도 산길은 가파르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 길은 길게 이어진다. 내려서는 게 쉽지 않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30분, 무릎에 통증이 시작될 즈음이면 저만큼 아래에 나무계단이 보이고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드리어 월성계곡(이정표 : 황점마을 2.2Km/ 월성재 1.6Km, 남덕유산 3.0Km)에 내려서게 된 것이다.
▼ 월성계곡에 내려서면 일단 수월해진다. 길은 넓어지고 반반하다. 거기에다 바닥까지 흙이다 보니 걷는데 여간 편하지 않다. 이제까지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느라 고생했던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싶다. 하늘을 찌를 듯이 위를 치솟고 있는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숲에서는 코끝을 찡긋거려보기도 하고, 수시로 변화를 주고 있는 길가의 계곡풍경을 눈요기 삼으면서 걷다보면 20여분 후에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나게 된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이 맑으니 이쯤에서 산행에서 흘린 땀을 씻으면 제격일 것이다.
▼ 산행날머리는 황점마을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뛰어들고 본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건만 월성계곡의 물은 차갑기 짝이 없다. 산이 크고 깊은 덕분일 것이다. 목욕을 끝내고 길을 나서면 8~9분이면 37번 지방도에 이르게 된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던 영각사에서 들어오는 도로이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다시 5~6분쯤 더 걸으면 산행이 종료되는 황점마을이다. 황점마을은 옛 이름이 삼천동(三川洞)이다. 조선조 때 쇠가 난 곳이며 지금은 청소년 여름 휴양지와 민박촌으로 개발되어 있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이 걸렸다. 몸을 씻는 등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20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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