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악산(楓嶽山, 600m)-노적봉(露積峯, 551m)

 

산행일 : ‘14. 2. 15()

소재지 : 전북 남원시 대산면, 사매면과 순창군 동계면의 경계

산행코스 : ()흙농마애여래좌상풍악산노적봉동능선닭벼슬봉(565m)노적봉마애불혼불문학관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청산수산악회

 

특징 : 풍악산은 가을풍광(風光)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풍악산은 금강산의 가을 이름이다. 그만큼 암벽(巖壁)을 병풍처럼 두른 암릉이 수려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풍악산에서 노적봉으로 가는 능선과 닭벼슬봉(鷄冠峯) 근처의 암봉에서 절정(絶頂)을 이룬다. 또 하나의 특성은 암릉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의 포근함이다. 단일 수종(樹種)으로 이루어진 소나무 숲길은 솔가리(소나무 落葉)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것처럼 한없이 폭신폭신하다. 거기다 산행 중에 만나게 되는 마애불(磨崖佛)들과 날머리에 있는 혼불문학관이라는 문화유적까지 두루 갖추었으니 명산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흙농 주차장(남원시 대산면 신계리)

완주-순천고속도로 북남원 I.C에서 내려와 T.G를 빠져나오자마자 대산면소재지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대산초등학교 끝자락에서 다시 우회전, 천변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4번째 다리인 대산교(: 운교리)를 건너면 금방 신촌마을이다. 보통 이곳 신촌마을에서 산행들을 시작하지만, 오늘 우리가 산행을 시작하려는 흑농의 주차장은 이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신천마을을 지나 순천-완주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자마자 오른편으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산자락 아래에 들어앉은 흙농의 공장건물이 보인다. 공장의 정문 조금 못미처에 있는 주차장이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참고로 흙농은 친환경 농자재(農資材)를 만드는 회사라고 한다. 

 

 

 

풍농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 산자락을 향해 난 시멘트포장 임도(林道)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비록 이정표는 없으나 흙농 뒤에 보이는 산을 방향삼아 진행하면 된다. 임도를 따라 5분 조금 못되게 올라가면 임도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이정표(신계리마애여래좌상 800m)가 가리키고 있는 오른쪽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 후, 비포장 임도를 따라 5분 정도를 걸으면 마애여래좌상 이정표(마애여래좌상 450m)가 보이면서 왼편 산자락으로 들어가는 돌계단이 나타난다. 이정표에 적혀있는 거리표시(450m)를 누군가가 긁어놓은 것을 보면 아마 거리표시가 틀렸다는 얘기일 것이다.

 

 

돌계단을 올라서자마자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로 들어서자마자 짙은 소나무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역시 듣던 대로 주위가 온통 소나무 천지이다.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들이 제멋대로 구불구불 몸을 비틀면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소나무 숲길을 6~7분 정도 오르면 소나무들 사이로 커다란 바위 하나가 내다보인다. 신계리 마애여래좌상이다. 자연석(自然石)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부처님이 신계리마애여래좌상(南原新溪里磨崖如來坐像 : 보물 제423)이다. 도선국사가 하룻밤 만에 만들었다고 하는 높이 3.4m의 이 마애불(磨崖佛)은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큼직하고 원만한 얼굴에 부풀어 오른 뺨, 꽉 다문 입에서 자비로운 미소가 넘쳐 보이며, 귀는 짧고 둥글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이 한마디로 잘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마애불 앞에는 반듯한 제단(祭壇)이 마련되어 있고, 주변 또한 정갈하게 청소가 되어 있다. 평소에도 관리를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마애여래좌상에서 산길은 왼편으로 꺾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느 산들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이어지던 산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윗길로 변한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윗길이라고 해도 암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위로 오르는 산길 주변에 바위가 많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덕분에 산길은 고인돌을 닮은 바위 등 꽤 많은 볼거리를 선물해준다.

 

 

 

마치 발악이라도 하려는 듯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산비탈을 마지막으로 치고 오르면 드디어 능선 위에 올라서게 된다. 마애불에서 25분쯤 걸렸다. 능선에서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10분 조금 못되게 진행하면 왼편에 길이 하나 나타나면서 산악회 시그널(signal)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비홍재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이어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운교리 갈림길(이정표 : 운교리임도 1.0Km)을 분가시키고 정상으로 향한다. 비홍재갈림길에서 8분 정도 되는 지점이다.

 

 

 

 

운교리 갈림길을 지나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을 마지막으로 치고 오르면 풍악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10분이 지났다. 정상에는 뫼산()자의 형상을 하고 있는 커다란 삼각형의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풍악산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이다. 정상표지석은 이 바위의 앞에 놓여 있고, 그 옆에 이정표(혼불문학관 6.2Km/ 차일봉 3.0Km/ 비홍재 7.5Km)가 세워져 있다. 정상은 사방이 탁 트여 조망(眺望)이 좋은 편이다. 남쪽은 암봉으로 이루어진 문덕봉, 고리봉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무등산이 아스라하다. 동쪽은 교룡산(蛟龍山)이 지척이다. 북쪽에 보이는 산은 아마 팔공산일 것이다.

 

 

 

 

하산은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혼불문학관 방향의 능선을 타기로 한다. 능선은 시작부터 조망(眺望)이 터진다. 바로 풍악산의 특징 중 하나이다. 아마도 섬진강 옆의 평지에 우뚝 솟아올라 시야(視野)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정상에서 안부(이정표 : 노적봉 2.5Km/ 풍악산 0.3Km)로 잠깐 내려섰다가 다시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안부부터가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이다. 아기자기한 바윗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바윗길의 특성인 시원스런 조망은 차지하고라도 길가에 널린 기암괴석(奇巖怪石)은 눈을 호사(豪奢)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제멋대로 자란 노송들이 구색을 갖추니 그야말로 잘 그린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가 아니라할 수 없다.

 

 

 

 

 

 

 

경관이 빼어난 바윗길에서 눈의 호사를 누리다보면 산길의 형세가 변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바윗길이 갑자기 흙길로 변해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안부에서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비록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신재사거리이다. 이 고개는 예전에 동계면 사람들이 남원장터를 오가던 제법 큰 고개다. 풍악산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30분 정도가 걸렸다. 신재를 지나서도 산길은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된다. 산길은 작은 봉우리들을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이어지는데, 길가는 온통 소나무 천지이다. 풍악산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소나무 외의 다른 수종(樹種)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길 위에 솔가리(소나무 落葉)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마치 양탄자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이 폭신폭신하기 이를 데가 없다. ‘재수만 좋으면 산길을 벗어나지 않고도 송이버섯을 캘 수가 있어요.’ 같이 산행을 하고 있는 일행의 말마따나 송이버섯이 많이 자라는 산인 모양이다. 길의 양쪽으로 길게 매어져 있는 금()줄이 그 증거일 것이다.

 

 

처녀의 가슴과 비슷하죠?’ 길가의 바위를 보고 집사람에게 물어본다. 돌아오는 대꾸는 저렇게 위로 솟구친 가슴은 없단다. 오늘 산행은 이런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들어 준다. 곳곳에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닮았네요.’ 산길을 가다가 기묘(奇妙)하게 생긴 바위를 보며 집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여자의 사타구니로 보이니 문제다. 대꾸가 없다는 집사람의 지청구에 시달리다 못해 내 느낌을 그대로 얘기 했더니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문득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라고 말한 무학대사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부드러운 흙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또 다시 나무데크로 무장한 바윗길이 나타난다. 신재에서 18분 정도 걸리는 지점이다. 데크계단을 올라서면 또 다시 기암괴석들과 송림(松林)이 어우러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까 지나왔던 암릉만은 못하지만 자못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눈터지는 조망(眺望)은 보너스다.

 

 

 

바윗길이 끝나고 다시 10분 정도 더 걸으면 노적봉에 올라서게 된다. 널따란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노적봉은 군자(君子)다움과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정상표지석과 이정표(혼불문학관 3.4Km/ 계동마을 교룡산성 5.4Km/ 풍악산 2.8Km)는 북쪽 끄트머리에 세워져 있다. 노적봉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한마디로 뛰어나다. 동쪽으로 용골산, 회문산, 무량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남쪽 지척에는 교룡산이 있고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만행산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노적봉에서부터는 전형적인 흙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끔은 소나무 외에 참나무들도 하나 둘 그 모습을 보이는 구간이다. 노적봉에서 5분쯤 걸으면 수동마을 갈림길(이정표 : 혼불문학관 3.2Km/ 수동마을 2.5Km/ 노적봉 0.2Km)이 나오고, 이어서 다시 5분쯤 더 걸으면 혼불임도 갈림길(이정표 : 혼불문학관 2.9Km/ 혼불임도 0.5Km/ 노적봉 0.5Km)이다.

 

 

 

소나무 혹도 전염이 되는 모양이지요?‘ 집사람의 말을 듣고 보니 근처의 소나무들마다 큼직한 혹들을 하나 이상 매달고 있다. 아마도 전염성이 강한 병인 모양이다.

 

 

혼불임도 갈림길에서 10분 조금 넘게 걷다보면 오른쪽이 깎아지른 바위절벽(絶壁)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닭벼슬봉 즉 계관봉(鷄冠峯)이다. 늙은 소나무들이 점령하고 있는 정상은 흙으로 이루어진 것이 의외이다. 옆면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진 탓에 바위봉우리이려니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정상에는 조금 전에 우리를 추월했던 이상엽선생이 붙여 놓은 정상표시 코팅지가 나무기둥에 매달려 있다. 그런데 만든 이의 이름을 다른 때와 다르다. 보통은 기분좋은 산행 사나이라고 적는데 반해 오늘은 그냥 사나이로만 적어 놓았다. 오늘 산행은 청산수산악회를 따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닭머리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다시 순해진다. 별로 높지 않은 산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산불로 인해 황폐화가 된 능선이 나오고, 이어서 15분 후에는 심계석문 갈림길(이정표 : 혼불문학관 2.1Km/ 심계석문 3.7Km/ 노적봉 1.3Km)에 이르게 된다. 이곳 갈림길에서는 혼불문학관 방향으로 내려선다.

 

 

 

 

심계석문 갈림길에서 내려서며 바라보는 사매면의 너른 들녘은 눈요깃감으로 충분하다. ‘! 남성의 심벌(symbol)을 닮았네요.’ 길가에 서있는 선돌 모양의 바위를 보고 부르짖는 데도 집사람의 표정은 시큰둥하다. 조금도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같은 사물일지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나와 집사람의 눈에는 같은 형상으로 비쳐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중간에 만나게 되는 이정표(혼불문학관 1.7Km/ 노적봉 1.7Km)에서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산길은 마애불로 향한다.

 

 

 

울창한 산죽 숲을 지나면 노적봉마애여래좌상(露積峰磨崖如來坐像 :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46)이 나온다. 거대한 바위 면에 4.5m 높이의 미륵불(彌勒佛)이 새겨져 있는데, 양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연꽃을 받쳐 든 채 명상에 잠겨 있는 형상이다. 고려 때 작품으로서 국내의 마애불(磨崖佛) 중에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작품이라고 한다. 마애불의 앞은 넓은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옛날 호성암이라는 암자(庵子)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호성암은 어느 도승이 호랑이에게 물려 간 아이를 구해주고 그 아이의 부모로부터 시주받은 돈으로 세운 암자였으나 지금은 터만 자리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할 때 만났던 신계리마애불은 불상 앞에 제단(祭壇)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반해 이곳에는 제단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국보(國寶)급 문화재와 지방문화재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마애불이정표 : 혼불문학관 1.5Km/ 노적봉 1.9Km)

 

 

 

마애불을 지나서도 내리막길은 꽤 길게 계속된다. 그러나 완만(緩慢)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내려서는데 조금도 힘이 들지 않는다. 중간에 별 의미 없는 이정표(혼불문학관 1.0Km/ 노적봉 2.4Km)를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쉼터로 조성된 임도(이정표 : 혼불문학관 0.8Km/ 수동 2.0Km/ 노적봉 2.6Km)에 내려서게 된다. 아까 능선을 걷다가 수동마을이나 혼불임도로 탈출했을 경우에는 오른편에 보이는 임도를 통해 이곳으로 오게 된다. 마애불에서 15분 정도 되는 지점이다.

 

 

 

산행날머리는 혼불문학관 주차장

시멘트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길가에 거대한 느티나무들이 보인다. 보호수(保護樹)로 지정한다 해도 충분할 정도로 굵은 것을 보면 오래전 이곳에 마을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저런 나무들은 마을의 어귀에 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임도는 순천-완주고속도로를 만나면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고, 이어서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혼불문학관 주차장에 이르게 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임도에서 15분이 걸렸다.

 

 

 

 

날머리에는 혼불문학관이 있다. 이미 남원의 유명한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혼불문학관은 1990년대 최고의 대하소설(大河小說)혼불의 작가인 고 최명희 선생의 작품들과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관(展示館)이다. 마침 관람료까지도 무료이니 잠시 들렀다가 가는 것이 좋다. 평소 국어사전을 시집처럼 읽었다는 작가는 혼불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운율을 살려 국어의 감미로움과 미려함, 풍성함을 돋보이게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귀때기가 시려서 문을 잠갔으니 아까 들어왔던 문으로 돌아나가 주시오관리인이 써 놓은 듯한 메모지를 보고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전시관을 빠져 나온다. 참고로 혼불은 최명희 작가가 19804월부터 199612월까지 17년 동안 혼신을 바친 대화소설로, 20세기 말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혼불은 일제 강점기 때 사매면 매인 마을의 양반가를 지키려는 3대의 며느리들과 거멍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숨결과 손길, 염원과 애증을 우리말의 아름다운 가락으로 생생하게 복원하여 형상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