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위산(免危山, 780m)
산행일 : ‘13. 12. 21(토)
소재지 : 충북 충주시 동량면
산행코스 : 하곡마을(탑비마을)→작은절골→제1옥녀봉(668m)→제2옥녀봉(709m)→면위산(부산:婦山)→412봉→325봉→532번 지방도(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기분좋은 산행
특징 : 면위산이나 부산(婦山 : 며느리산), 어느 이름을 들더라도 귀에 익지 않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는 오지(奧地)의 산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만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찾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나는지 최근에는 등산로까지 정비해 놓았다. 그러나 이정표는 아직까지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정상표지석도 엉뚱한 봉우리 위에다 세워놓았다. 크게 눈길을 끌만한 풍경은 갖고 있지 못하지만 한번쯤은 올라볼만한 산이다.
▼ 산행들머리는 하곡마을(탑비마을 : 법경대사자등탑비)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 I.C에서 내려와 38번 국도 태백방면으로 달리다가 산척사거리(산척면 송강리)에서 우회전하여 531번 지방도를 타고 충주호 방면으로 달리면 동량면소재지인 조동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 조동리에 있는 탑평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532번 지방도를 따라 들어가면 충주호의 상류인 제천천이 나온다. 제천천을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충주호리조트에서 제천시 금성, 청풍 방면으로 500여m 쯤 더 들어가면 하곡마을에 이르게 된다. 하곡마을 앞에는 제법 규모를 갖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 하곡마을 주차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많은 솟대들이다. 솟대는 옛날 삼한시대(三韓時代) 때부터 마을의 안녕이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세워졌다. 185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솟대를 볼 수 있었으나 개화기(開化期) 때 사라졌던 것을 최근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정토사 흥법국사실상탑 (淨土寺 弘法國師實相塔)’도 보이는데 아쉽게도 모형이라고 한다. 원래의 탑(塔 : 국보 제102호)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흥법국사실상탑’ 뒤편 모퉁이에 커다란 빗돌 하나가 보인다. 지붕까지 씌워진 것을 보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한 비(碑)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바로 하곡마을이 탑비(塔碑)마을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만든 장본인인 ‘법경대사 자등탑비(法鏡大師慈燈塔碑)’이다. 법경대사자등탑비는 고려 태조 26년(943년)에 법경대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물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천안마을 일대에는 통일신라 말(末)에 창건된 정토사(淨土寺)라는 큰 사찰이 있었다. 정토사는 개천사(開天寺)라고도 불리며 조선전기까지 사적(史籍)들을 보관하던 충주사고(史庫)가 있었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보관하고 있던 서적들은 소실됨에 따라 사찰(寺刹)도 폐사(廢寺)되었다고 한다. 현 자등탑비가 있는 곳은 원래 정토사지(淨土寺址) 터가 아니다. 정토사지의 원래 위치는 보다 아래 쪽, 지금은 충주호에 수몰(水沒)된 곳이다.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사지(寺址) 위쪽 가까운 언덕으로 옮겨진 것이다. 참고로 정토사지에 있던 문화재(文化財)는 ‘법경대사 자등탑비’ 외에도 1918년 일제에 의해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홍법국사 실상탑(국보 102호)’과 ‘홍법국사 탑비(보물359호)’가 있다. 그리고 자등탑비와 관련된 ‘법경대사 자등탑’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하는데 그 정확한 소재는 아직 알려지지 않는다고 한다. 탑비의 주인인 법경대사는 통일신라 시대의 승려로서 906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도건대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924년에 귀국하였다. 경애왕은 그를 국사(國師)로 대우하여 정토사의 주지로 임명하였고, 고려 태조 24년(941)에 63세로 입적(入寂)하자 태조는 '법경(法鏡)'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고, 탑 이름을 '자등(慈燈)'이라 명명(命名)하였다. 태조 26년(943)에 그의 공덕을 기려 이 비(碑)를 세웠는데, 비문(碑文)은 당시의 문장가 최언위(崔彦撝)가 지었으며, 유명한 서예가였던 구족달(仇足達)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 실상탑이 있는 공원에서 도로 건너 맞은편에 보이는 농로(農路)를 따라 하곡마을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졌으니 참조하면 된다. 그러나 산행코스는 안내도보다는 가지고 간 지도(地圖)를 참조하는 것이 좋다. 안내도를 실제 산행에 활용하기에는 어설프기 때문이다. 등산안내도 왼쪽으로 나 있는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면 하천가든이 나오고, 왼편 길가에는 사과과수원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 과수원이 끝나면 왼편 산자락을 들어서는 오솔길 하나가 또렷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본래의 길을 따라야 한다. 오솔길은 금방 끊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억지로 산비탈을 치고 올라 봐도 마주치게 되는 것은 과수원(果樹園), 사과가 매달려 있을 가을철에는 ‘사과 서리’로 오해받기 딱 좋겠다. 과수원 주인집으로 보이는 농가를 지나고, 이어서 양봉(養蜂) 농가를 통과하면 원래의 등산로와 다시 만나게 된다. 본래의 길을 따르면 편하게 왔을 길을 엉뚱하게 돌아오느라 고생한 것이다.
▼ 본래의 길과 다시 만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그러니까 산행을 시작해서 15~16분쯤이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으로 난 길이 깔끔하게 정비가 되어있는데 비해, 왼편 길은 오솔길 수준이다. 비록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오른편 길은 제1옥녀봉으로 곧장 오르는 길이 아닐까 싶다. 왼편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물기 하나 없는 마른 계곡으로 들어서면, 하늘 찌를 듯이 위로 솟구친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숲이 길손을 맞는다. 그러나 낙엽송 숲은 오래지 않아 끝을 맺고 이어지는 산길은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평년보다 훨씬 춥다는 일기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거의 여름 수준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힘들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그보다는 날씨가 풀린 탓이었다. 장갑을 끼지 않아도 손이 시리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온화했던 것이다.
▼ 오르막길은 가파르기만 한 게 아니다. 길은 흔적도 희미할뿐더러 바닥에는 참나무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여간 미끄럽기까지 하다. 하나 다행인 것은 이러한 오르막이 그다지 오래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15분 정도이면 능선 안부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올라선 능선에서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지도(地圖)와 실제상황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지도를 보면 이곳은 ‘충주호리조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따라서 옥녀봉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산악회에서 깔아 놓은 방향표시지는 왼편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올라온 길이 지도와는 다르게 올라왔단 말인가? 그 의문은 후기(後記)를 쓰고 있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다. 면위산의 지도를 있는 데로 다 검색해 봐도 이런 상황을 만들어냈을 만한 코스를 결코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능선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길가에 로프를 매어 놓았다는 것이다. 등산로가 잘 정비(整備)되어 있는 것을 보니 문득 아까 계곡입구에서 오른편으로 나있던 등산로가 생각난다. 어쩌면 그쪽 길이 옳은 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능선의 끝자락으로 올라선 후 능선을 탄다면 이곳으로 올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다보면 갑자기 커다란 암벽(巖壁) 하나가 나타나면서 길을 가로막는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난감한 상황이다. 옥녀봉으로 가려면 바위 위로 올라서야만 하는데, 그 바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오르기가 만만찮은 것이다. 다행이도 바위에는 밧줄 두 줄이 매여져 있다. 그러나 밧줄도 크게 도움은 주지 못한다. 밧줄이 느슨하게 매여져 있는 탓에 까딱 잘못하면 몸이 중심을 잃고 뒤집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어 번 위험한 상황에 처했던 집사람은 아래에서 받혀주고 위에서 당겨주고 나서야 올라설 수 있었다.
▼ 위험구간을 지나서도 산길은 가파르게 이어진다. 그러나 아까에 비하면 그 난이도는 훨씬 양호해진 편이다. 서두르지 않고 로프에 의지해서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어느덧 제1옥녀봉이다. 능선안부에서 30분 정도 걸렸다. 정상에 올라서기 바로 직전 왼편에 요상하게 생긴 바위하나가 보인다. 이 바위가 혹시 짜게바위라고 불린다는 전망바위가 아닌지 모르겠다. 짜게바위는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선생과 인연이 있는 바위라고 한다. 토정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경치가 좋다고 탄복했던 바위라는 것이다. 토정선생은 요 아래에 있는 하천리에 은거했다. 풍수학적(風水學的)으로 화(禍)를 피할 수 있는 피난지(避難地)로 알려진 곳이다. 그의 이름에 걸맞는 곳을 선택한 샘이다. 참고로 이곳에는 `하천팔경 또는 개천팔경(開天八景)' 이라는 8개의 명소(名所)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제1경이 옥녀봉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을 일컫는 옥녀만하(玉女晩霞)이다.
▼ 옥녀봉 정상은 약간 경사(傾斜)진 분지(盆地)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에 듬성듬성 바위 몇 개가 널려있는 분지의 한가운데에 예쁘장한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제1옥녀봉 정상은 충주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展望臺)이다. 연무(燃霧) 때문에 비록 시계(視界)가 막혀있지만 흐릿하게나마 충주호(湖)와 충주호리조트(Chungju Lake Resort), 그리고 구비구비 흐르는 남한강 물줄기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조망(眺望)을 즐긴 후에 제2옥녀봉으로 산행을 이어가야 하는데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보고 싶은 무언가를 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정상 근처에 있다는 옥녀샘이다. 수북이 쌓인 눈 때문에 내려가는 길의 흔적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물맛 좋은 것으로 알려진 옥녀샘은 옛날 선녀(仙女)들이 내려와 물맛과 이 곳의 경치를 즐기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傳說)을 갖고 있다. 약수는 중탕과 상탕 하탕, 3곳이 있다. 그중에 선녀들이 마셨다는 상탕(옥녀샘)은 가뭄에도 고갈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정한 사람이 마시려고 할 경우에는 물이 흐려진다고 해서, 내 자신을 한번쯤 되돌아보려고 했는데, 놓쳐버린 것이다.
▼ 제1옥녀봉 정상에서 제2옥녀봉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삼거리(이정표 : 옥녀봉 300m/ 한국코타/ 000) 하나가 나타난다. 한국코타는 한국코타레저타운의 줄임말로 현재의 충주호리조트를 말한다. 그러니까 지도(地圖)에 나와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왔을 경우에는 이곳으로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까 지났던 사과과수원에서 왼편 길로 진행했어야 한다. 이정표 방향표시 중에 아무런 글씨도 적혀있지 않은 방향은 물론 하곡마을이다.
▼ 제1옥녀봉 정상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짧게 내려섰다가 다시 맞은편 능선길을 길게 치고 오르면 제2옥녀봉 정상이다. 걸리는 시간은 10분이 조금 넘는다. 이 구간에서 처음으로 아이젠(Eisen)을 착용한다. 내리막길에 쌓인 눈이 무릎에까지 차오르기 때문이다. 10평 정도 되는 분지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충청북도 특유의 정상표지석(부산 780m)이 놓여있고, 그 뒤편에는 누군가가 매직펜(magic pen)으로 ‘부산 정상’이라고 써놓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물론 방향표시판에도 하곡마을/ 하곡마을 어귀라고 써 놓았다. 그렇지만 이곳이 부산 정상이 아니고 제2옥녀봉 정상이라는 것은 웬만한 등산객들은 다 안다. 실제 부산(면위산) 정상은 이곳에서도 한 시간 가까이 더 가야만 한다. 제2옥녀봉 정상에서는 삼탄유원지 방면의 야산(野山)과 마미산(601m)의 조망(眺望)이 터진다고 하지만 숲에 가려 별로다. 거기다가 연무(燃霧)까지 시야(視野)를 가로막고 있다.
▼ 앞장서서 길을 걷던 집사람이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다. 그런데 그 표정에 난감해하는 빛이 가득하다. 어른의 키로 한 길을 훌쩍 넘기는 높이의 바위에서 내려서는 것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바위 위의 소나무에 가느다란 밧줄이 매달려 있지만 밧줄이 움직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잡았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거기다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바위는 미끄럽기까지 하니 쉽게 내려서지를 못하고 내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집사람만 힘든 것은 아닌 모양이다. 뒤에 따라오는 남성분들도 바위 위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 남감한 길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비록 난이도(難易度)는 조금 떨어지지만 벼랑으로 이루어진 산비탈의 중간을 뚫고 지나가기도 하고, 가끔 나타나는 암벽(巖壁) 앞에서는 망설이기도 해야 한다. 다행이 바윗길은 암벽을 피해 우회(迂廻)를 시키고는 있지만 눈 때문에 길이 잘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통과해야할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길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아름답다. 바윗길 특유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 면위산으로 향하는 길은 작고 큰 오르내림이 계속된다. 거기다가 제법 가파르기까지 하다. 만만찮게 힘든 산길인 것이다. 그러나 그 오르내림에 바위길이 섞여있어서 심심하지는 않다. 그런데 면위산의 전위봉에 가까워졌을 즈음 앞서가던 집사람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있는 것이 보인다.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 정도로 눈부신 상고대(rime , 霧氷)가 그녀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제2옥녀봉을 출발해서 50분 남짓 걸으면 전위봉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 삼각점이 있다고 해서 삼각점봉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이곳을 면위산 정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에서 오른편은 헬기장과 412봉을 거쳐 국실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면산은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하곡마을로 내려가려면 면위산 정상을 올라본 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내려서야 하는 것이다.
▼ 삼각점봉에서 면위산 정상은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면위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한겨울의 풍경은 점점 더 짙어진다. 그러다가 정상에 도착하면 천지는 온통 설국(雪國)으로 변해버린다. 보이는 것 마다 설화(雪花)와 상고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면위산 정상은 거친 암릉이다. 정상은 정상표지석 대신에 덜 자란 소나무 한그루가 지키고 있다. 정상은 한마디로 좁다. 정상에서 조망(眺望)사진이라도 한 장 찍으려면 차례로 줄을 서야할 정도로 비좁은 것이다. 정상에는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는 아무런 표시도 없다. 만일 선답자(先踏者)들의 산행후기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이곳을 정상으로 알았다면, 차라리 그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면위산은 옥녀봉으로 불리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부산(婦山)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그렇게 불리는 이유가 실소(失笑)를 자아내게 만든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때 지명(地名)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동네사람들이 면위산(免危山)이라고 하는 발음을 며느리산으로 잘못 알아듣고 며느리 부(婦)자를 써서 부산(婦山)으로 잘못 쓰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면위산은 하천팔경(荷川八景)이라는 8개의 명소들을 산자락에 거느리고 있다.
▼ 면위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허나 오늘은 연무(燃霧)로 인해 아쉽게도 멀리 보이지는 않는다. 서쪽 발아래에는 충주호가 내려다보이고,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방금 지나온 옥녀봉이 가깝다. 그러나 충주호 건너에 있을 인등산과 천등산, 그리고 북쪽에 있을 십자봉과 백운산 등은 뿌연 연무에 가려 감도 잡히지 않는다.
▼ 다시 삼각점봉으로 되돌아와 오른편으로 내려서면서 하산이 시작된다. 하산을 시작하자 만나게 되는 바위봉우리를 넘고 나면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이다. 가끔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별다른 어려움 없이 내려설 수 있다. 능선을 따라 난 산길도 비교적 또렷한 편이다.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번갈아 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간다. 산길은 편한 대신에 구경거리는 없다. 짙은 숲에 가려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앞만 보고 걸을 따름이다. 삼각점봉에서 30분 조금 넘게 내려서면 임도가 보이고, 곧이어 헬기장이 나온다.
▼ 헬기장에서 다시 산행을 이어가다보면 아까 와는 사뭇 다른 풍경(風景)이 펼쳐진다. 우선 참나무 일색이던 길가에 소나무의 숫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큰 봉우리 하나 없이 작은 오르내림만 계속되던 능선에는 커다란 봉우리 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면서 피로에 지친 다리에게 겁을 주는 것이다. 바로 412봉과 325봉이다. 헬기장에서 13분 정도 내려가면 412봉이 나오고, 조금 더 내려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에 보이는 길은 국실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편은 325봉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에서는 오른편 길을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왼편의 길은 사람들의 통행이 뜸한 탓에 사람들의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잡목(雜木)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 산행날머리는 532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충주호반
412봉에서 다시 20분 남짓 걸으면 325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표고(標高)에 비해 유별나게 높아 보이는 것은 눈길을 걷느라 많이 지쳐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325봉에서 다시 10분 조금 넘게 걸으면 봉분(封墳)이 거의 사라져버린 묘(墓)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어느 방향으로 내려가더라도 532번 지방도로 내려가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기왕이면 오른편의 능선길을 따르라고 권하고 싶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펼쳐지는 충주호의 풍경이 제법 고즈넉하기 때문이다. 삼거리에서 10분 조금 못되게 내려오면 충추호반(湖畔)을 따라 이어지는 532번 지방도(행정구역 : 동량면 지동리)이다. 물론 민가(民家)는 보이지 않고, 민가가 있는 금잠마을로 가려면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왼편으로 얼마간 더 걸어야 한다.
'산이야기(충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효(忠孝)의 표상인 온달장군의 흔적을 찾아서, 겸암산('14.1.19) (0) | 2014.01.22 |
---|---|
천하의 명당을 품고있다는 인등산('13.12.29) (0) | 2014.01.06 |
충절의 옛이야기를 품고 있는 국사봉-마미산-대덕산('13.12.8) (0) | 2013.12.16 |
스릴과 조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멋진 바위산, 백화산('13.9.15) (0) | 2013.09.23 |
갈은구곡까지 함게 둘러볼 수 있는, 아가봉-옥녀봉('13.9.8) (0) | 2013.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