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15코스(당포버스정류장-달도교차로)

 

여행일 : ‘23. 4. 29()

소재지 : 전남 해남군 화원면 및 산이면 일원

여행코스 : 당포버스정류장월하마을마천마을마산제별암마을금호갑문금호마을달도교차로(거리/시간 : 13.6km/ 14.13km 3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15코스를 걷는다. 10로 이루어진 해남·영암 구간의 여덟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그동안 임시 구간(2개 코스)으로 운영해오다 2022 12 솔라시도 대교가 개통되면서 3개 코스로 새롭게 포장해 개통했다. 아무튼 이 코스는 금호방조제와 화원반도의 구릉지를 걷는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눈요깃거리가 없다. 그저 들길과 마을길을 걸으며 지역 주민들의 삶을 기웃거려보는 게 다라고나 할까?

 

 들머리는 당포버스정류장(해남군 화원면 월호리)

남해고속도로(영암-순천) 서영암 IC에서 내려와 49번 지방도를 타고 화원반도로 들어온다. 구지교차로(해남군 화원면 영호리)에서 국도 77호선(매월리 방면)으로 옮기면 오래지 않아 당포마을에 이르게 된다. 77번 국도변에 있는 버스정류장이 15코스 들머리이다.

 새롭게 단장된 15코스는 인도가 따로 없는 도로를 자주 걸어야한다는 편치 않은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선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위험표시 교통표지판을 지도에 그려 넣었다. ‘느낌표가 들어간 지점이 도로와 만나는 지점이니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자.

 서해랑길(해남 15코스) 안내도는 당포 버스정류장 옆에 세워져 있다. 시작점 표지판은 그 옆의 전봇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월호정미소의 맞은편으로 난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도로를 따를 경우 양화마을로 가버리니 주의한다. 화원반도와 인근의 섬 주민들이 땅끝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송지면의 땅끝이 위도 상으로 한반도(육지)의 최남단이라면 화원반도의 땅끝은 인간이 걸어갈 수 있는 육지의 가장 끝이란다. 실제 금호방조제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해남읍에서 버스로 1시간이나 소요되는 외진 곳이었다.

 바다를 향해 일직선의 수로가 나있다. 꽤 너른 것이 방조제가 만들어놓은 간척지 또한 그만큼 넓다는 얘기일 것이다.

 좌우로 펼쳐지는 들녘이 그 증거다. 푸름으로 덧씌워진 농경지가 바다를 향해 끝 간 데 없이 뻗어나간다. 넓다는 들판도 저 멀리 산이 막아서는 이 땅에서는 흔치 않는 풍경이라 하겠다. 저런 풍경, 즉 소실점으로 모아드는 아득한 직선로가 우리에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현실에서 그런 광경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해랑길은 월하마을을 빙 돌아 관광로(국도 77호선)’로 연결된다. 이때 양배추로 한가득인 들녘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 해남은 월동배추로 유명하다. 전국의 대도시로 비싼 값에 팔려나간다. 주민들에게 고소득을 안겨주는 고소득 작물의 대열에 요즘은 양배추가 낀 모양이다.

 그 옆에서는 보리가 익어간다. 호사가들은 사시사철 푸르른 들녘을 화원반도의 특징으로 꼽는다. 월동배추가 끝나면 보리가 초록빛 바다를 연출하고, 연이어 감자와 고구마 순이 돋아나며 화원반도는 일 년 내내 녹색의 꿈이 익어간다는 것이다. 그 같은 초록빛깔의 향연을 감상하는 게 화원반도 여행의 매력이란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0. ‘월하(月下)’마을로 들어선다. 3개의 자연부락(당포·월하·수동)으로 이루어진 월호리(月湖里)의 으뜸가는 마을로 다라리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는데, 쌀농사보다는 배추와 양파를 더 많이 재배한단다.

 마을을 지나서도 주변 풍광은 변하지 않는다. 배추밭과 보리밭이 탐방로 좌우로 펼쳐지는 들녘을 꽉 채운다.

 들녘의 트랙터는 빗줄기가 반가운가 보다. 시름없이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천연덕스럽게 쉬고 있다. 하긴 비가 내려야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운명이니 어쩌겠는가.

 그렇게 5분쯤 걸어 국도 77호선(관광로)’에 올라선다. 서해랑길 이정표(종점 12/ 시점 1.5)와 마을 표지석이 이곳이 월하마을의 입구임을 알려준다.

 이후부터는 인도가 따로 없는 도로를 따른다. 스치듯 지나가는 차량을 피해 걸어야하는 위험스런 구간이다. 이 구간에서 우린 우측통행이라는 정부의 지침을 비웃으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지침에 따르면 달려오는 차량을 뒤에 두고 걸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교통사고가 잦은데 달려드는 차량이 보여야 피해볼 시도라도 해볼 게 아닌가.

 주변 풍광까지 삭막한 건 아니다. 스위스의 산간지방에서나 볼 법한 목가적인 풍경이 좌우로 펼쳐진다.

 월하마을에서 15. 월호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수동(水洞)’마을 입구에 이른다. 그렇다고 마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저 멀리서 눈인사만 하고 슬그머니 지나친다.

 위험천만인 도로를 꽤 오래 걸어야 했다. 조바심 때문에 하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서해랑은 도로를 따라 1,7km나 이어지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진한 향기가 코끝을 스쳐가는 게 아닌가. 도로 개설 때 생긴 절개지가 온통 등나무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그게 연자줏빛 꽃을 피워내면서 진하면서도 향긋한 향기를 보내온다. 덕분에 비로 인해 찌뿌둥해진 심신이 한결 나아질 수 있었다.

 그렇게 20분쯤 걸었을까 고갯마루(이정표 : 종점 10.4/ 시점 3.2)에 올라선 탐방로가 도로를 벗어난다.

 저 이정표는 대체 뭘 알리고 싶었을까? 하단의 서해랑길 안내도(종점 10.4/ 시점 3.2)가 무색하게도, 상부는 서해랑길과는 무관한 방향표지판을 매달고 있다.

 서해랑길은 이제 마산리로 들어선다. 그리고 임도를 따라 마천마을로 간다. 법정 동리인 마산리(馬山里)를 구성하는 2개 자연부락(마천·마산) 중 하나로, 마천(馬川)이란 지명은 마을 지형이 말의 형국이고, 마을 앞으로 하천이 흐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엄청난 크기의 노거수 한 그루가 시선을 꽉 채워버린다. 마천마을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같은 화원반도라고 해서 보여주는 풍경이 다 같지는 않았다. 그동안 걸어왔던 황산면이나 문내면은 산다운 산이 없는 구릉지 일색이었다. 그런데 반도의 끝자락인 화원면은 곳곳에서 산봉우리가 솟아올랐다. 그중에서도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추락했던 운거산은 318m에 이를 정도로 높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45분 만에 마천(馬川)’마을에 들어섰다. 탐방로는 월호마을처럼 마을을 관통해버린다. 이처럼 15코스는 만나는 마을마다 관통하고 있었다. 여기서 주의사항 하나, 서해랑길은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다. 주민들이 들일 나가던, 옆 마을에 일보러 가던, 장보러 가던 길들을 모아 연결했을 뿐이다. 그러니 마을을 지날 때는 주민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주의해가며 걷도록 하자.

 ! 마천마을을 그냥 벗어나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18년 전, 그러니까 1993년 발생했던 아시아나항공 추락사고 현장이 이 마을 부근(운거산)이기 때문이다. 당시 주민들은 진입로가 없는 가파른 산중턱까지 올라 부상자를 구했다. 항공유 유출로 2차 폭발이 예상됐지만 주민들은 부상자를 구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의 기억은 마천숭의관(馬川崇議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항공기 사고 이후 세간의 이목은 마천마을로 집중되었고, 주민들은 청와대로부터 초청을 받기도 했다. 에이스침대 창업자 고 안유수 회장이 지어준 저 건물도 그 헌신에 대한 보답이다. 에이스침대는 이후에도 건물의 유지(보수관리(운영비)를 지원해오고 있단다.

 당시 사고는 탑승객 116(승객 110명과 승무원 6)  68명이 사망하고, 44명이 중상을 입었다. 저 위령비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탑승객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다.

 신한국의 표상, 사랑의 마천마을이란 대형 빗돌도 보인다. 사고 때 헌신적인 인명구조 활동을 벌였던 주민들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여기서 신한국은 김영삼 대통령의 캐치 프레이즈 신한국 창조에 나오던 신조어, 항공기 사고가 김영삼 대통령 재직 때 일어났다는 얘기일 게고 말이다.

 박경완 기자 산화불망비는 기자단체에서 세운 빗돌이다. 사고 당시 광주(무등일보)에서 근무하던 그는 자원해서 사고현장으로 달려왔고, 다음 날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던 도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광주전남사진기자회는 매년 추모제를 갖고 박경완보도사진상을 제정 기자정신이 돋보이는 후배기자들을 표창해 오고 있다.

 마천마을이 낳은 서정시인 박성룡(1934-2002)을 소개하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다. 대표 시 풀잎을 그의 약력과 함께 적어놓았다. 참고로 1930년 이곳 마천마을에서 태어난 박성룡 시인은 이한직·조지훈 시인의 추천을 통해 문학예술지에 등단하였으며, 풀잎·화병정경·과목 등 유려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자연을 제재로 깊이 있는 통찰의 시를 추구하며 자신만의 조어를 동원해 시의 깊이와 상상력을 더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그네들의 헌신을 살펴본 다음 다시 길을 나선다. 15구간의 특징 중 하나는 관광로(국도 77호선)를 반복해서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곧장 가지를 않고 조선소길까지 에둘러서 가고 있었다.

 농로를 따라 6분쯤 걸어 조선소길(이정표 : 종점 8.9/ 시점 4.7)’에 올라선다. 화원반도의 끝자락을 따라 내놓은 도로로 화원 조선산업단지를 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탐방로는 이제 조선소길을 따라 관광로로 간다. 2차선이지만 지나다니는 차량이 드물어서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 이곳에서 집사람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3km쯤 전방에서 출발했음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따라잡았다. 나물을 뜯느라 더뎌진 집사람의 발걸음 덕분일 게다.

 마산저수지는 구경만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쓰레기 투척이나 시설의 무단사용은 물론이고, 물놀이나 고기잡이도 금지한다는 해남군수의 날선 경고판이 세워져 있었다.

 10분쯤 더 걸어 또 다시 관광로로 올라선다. 탐방로는 왼쪽, 그러니까 목포 방향으로 간다. 하나 더, 이곳은 그동안 걸어오던 마산리가 끝나고 영호리가 시작되는 지점(이정표 : 종점 8.4/ 시점 5.2)이기도 하다.

▼ 여섯 달 만에 돌아온 해남, 이 지역 특유의 이정목이 반가워 카메라에 담아봤다. 시점과 종점, 그리고 근처 주요 포인트를 가리키는 방향표시가 한 면을 장식한다. 다른 한 면은 시점과 종점의 거리를 적었다.

 이번은 도로를 따르지 않는다. 50m쯤 걷다가 농협창고 옆에서 농로로 들어선다.

 길가에는 무화과 농원이 꽤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옆 고을인 영암의 특산물이지만, 이곳 해남에서도 재배지를 늘려가는 추세라고 한다. 하긴 여왕의 과일(클레오파트라가 즐겨 먹었단다)’로 까지 불리는 과일이니 어디 지역을 가려가며 재배하겠는가.

 오랜만에 보는 담배 밭이 옛 추억을 소환시킨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가득가득 논과 밭을 채웠던 담배다. 우리 집은 물론이고 옆집 순이네도, 뒷집 철수네도 모두 담배농사로 먹고 살았다.

 농로(저상길) 저상마을(양짓몰)’을 스치듯 지나간다. 법정 동리인 영호리(靈湖里)를 구성하는 4개 자연부락(구지·장재·저상·별암) 중 하나로. ‘저상이란 지명은 예전에 마을에서 모시를 많이 심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천가를 걸으며 올려다본 저상마을.

 농협창고에서 저상마을 쪽으로 들어선지 15. ‘저상길 농로를 벗어나 2차선 도로인 영호길로 올라섰다. 마을 표지석과 버스정류장이 저상마을의 입구임을 알려준다.

 영호길은 별암마을(영호리의 자연부락 중 하나) 앞에서 오른편으로 간다. 하지만 탐방로는 마을을 거쳐 가도록 나있다.

 마을을 빠져나오면 또 다시 영호로이다. 이와는 별도로 4차선인 관광레저로가 별암선착장을 향해 시원스럽게 달려간다.

 군인들이 사용하던 콘센트막사를 닮은 저 건물은 자연과 사람들이라는 카페다. 차와 식사를 파는데, 함께 운영하고 있는 펜션(뒤로 보이는 건물)은 뛰어난 뷰로 입소문을 타는 중이란다.

 이곳은 바닷가. 자동차 보다 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가 보다.

 화원 조선산업단지로 가는 산단로의 아래를 지나자 별암선착장’, 화원반도의 끝자락이자 금호방조제의 남쪽 끝에 위치한 선착장(이정표 : 종점 5.3/ 시점 8.3)이다. 저 선착장은 목포에 근접해있던 이곳 사람들에게는 더 큰 세상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당시는 사람과 농수산물을 실은 배가 하루에도 수십 척씩 드나들었다고 한다.

 목포행 여객선이 드나들던 선착장은 금호방조제가 생기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다. 방조제를 따라 4차선 도로가 뻥 뚫렸으니 여객선이 다닐 이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고깃배는 여전히 드나들고 있으며, 그 덕분에 횟집과 낚시가게들이 포구의 명맥을 근근이 이어간다.

 금호방조제(錦湖防潮堤)를 걷는다. 해남군의 화원면과 산이면을 연결하는 방조제로 이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금호도는 육지로 다시 태어났다. 방조제는 2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서해랑길은 1방조제(별암마을산두마을)부터 먼저 걷는다.

 영산강 하구로 나아가는 바다에는 수많은 배들이 떠있다. 금호방조제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저 바다는 우리나라 최대의 낙지 산지였다. 주민들은 아침마다 양동이에 가득 담아 공판장에 내다 팔았고, 그 돈으로 쌀을 사고 자식들의 학비를 댔다.

 방조제의 끝은 금호갑문이다. 바다를 막아 생긴 호수, 금호호의 인공 물길인 갑문이다.

 금호갑문을 지나면 금호1교차로’. 탐방로는 이곳에서 4차선 도로(관광레저로)를 건넌다. 이런 곳에서의 안전은 나그네 몫이다.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는 인간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란 신호를 보고 건너던 우리 앞을 속도도 떨어뜨리지 않은 채로 지나가는 못된 놈이 있었다.

 도로 건너에는 작은 공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방조제공사가 마무리 된 것을 기념이라도 하려는 듯 금호호라고 적힌 빗돌을 세워놓았다. 참고로 금호호는 따뜻한 기온과 넓은 갯벌로 인해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가는 공간이다. 이러한 요건은 다양한 새들을 모여들게 한다. 겨울이면 수많은 철새들이 따듯한 남쪽나라로 가기 위해 기착지 삼아 이곳에 들른단다.

 서해랑길은 산두버스정류장(‘산두마을 표지석도 눈에 띈다)에서 도로(관광레저로)와 헤어진다. 그리고는 산두마을 방향으로 50m쯤 들어가다 왼쪽으로 갈려나가는 농로를 따른다.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밋밋한 구간이다. 단지 고속도로처럼 씽씽 달려대는 자동차들이 부담스러워 에둘러가며 길을 내놓았지 않나 싶다.

 반원(半圓)을 그리던 탐방로가 다시 도로변(관광레저로)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풍림농산이라는 특산물판매점 앞에 데려다 놓는다. 당도가 높기로 소문난 해남의 꿀 고구마라도 사가라는 모양이다. 최근 수확량을 늘려가고 있는 무화과까지 끼워서...

 천년초 송편도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토종 선인장인 천년초는 면역력 향상과 세포 활성화 작용을 하는 페놀성분과 항산화항염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풍부해 관절염 등 염증성질환 개선에 큰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나처럼 관절이 시원찮은 노인들에게 안성맞춤이니 어찌 관심이 쏠리지 않겠는가.

 가게를 기웃거리게 만든 탐방로는 또 다시 도로와 헤어진다. 그리고는 섬의 중앙에 들어앉은 금호마을로 향한다.

 도로와 헤어지고 10. 고개 하나를 넘자 금호마을이다. 법정 동리인 금호리(錦湖里) 2개 자연부락(금호·산두) 중 하나로 원래 이름은 속금(束金)’이었다. 목화를 생산하여 돈을 묶는다는 뜻이란다. 그러나 100년쯤 전 마을의 부흥을 예언한 어느 학자의 말에 따라 바다경치가 비단자락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답고, 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의미의 금호(錦湖)’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탐방로는 마을을 관통하며 지나간다. 이때 이 마을의 터줏대감이었을 정미소가 고즈넉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수십 년 동안 마을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을 정미소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옛 추억을 소환해주기에 충분했다.

 2018년에 폐교되었다는 금호분교(산이 서초등학교)는 뭔가(체험 또는 복지시설)를 위해 새롭게 태어났다고 한다. 덕분에 책 읽는 소녀 반공소년 이승복의 동상은 옛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이 마을은 여성 전용 경로당을 따로 운영하고 있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의 옛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성추행의 여파가 이곳 섬마을까지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다.

 보건진료소도 들어서 있었다. 제법 큰 규모의 마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저 들녘 너머, 호수 반대편에는 공룡들의 땅이 있을 것이다. 방조제 축조로 물높이가 낮아지면서 새롭게 드러난 공룡·익룡·새 발자국 화석산지다. 우항리(황산면)에 위치한 그 화석산지에는 세계 최초·최고·최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세계 최초로 동일 지층에서 여러 종의 화석이 발견되었고, 20~35에 이르는 익룡의 발자국 크기도 세계 최대다. 83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생성년도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로 꼽힌다.

 금호마을에서 나오면 또 다시 관광레저로, ‘금호2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금호2방조제로 올라간다.

 오늘은 사슴과 구름이라는 아호를 쓰는 저 둘레길 도반과 함께 걸었다.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열정을 갖고 있는 분, 그녀는 15구간에 이어 16·17구간을 내일까지 마치겠다며 트레킹을 이어가고 있었다.

▼ 금호2방조제는 동금달도(naver map에 적힌 지명이다)’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둑을 펼쳐놓은 모양새이다이 방조제에 금호1방조제와 영암방조제를 더하면 영암·금호방조제가 된다영암군 삼호읍과 해남군 화원면을 연결하는 4.3km 길이 방조제로 농경지와 수자원 확보를 위해 1985년에 착공하여 1996년에 완성되었다.

 저만치 앞 바다에 흐릿한 섬(신도)의 흔적이 가물가물 가라앉은 듯 보인다. 마치 수반 위에 놓인 운치 있는 자연석 수석(壽石)처럼 고요한 바다 속에 잠겨 있다.

 동금달도를 지나갈 때 인도가 따로 없는 도로변을 걷기도 한다. ‘코리아 둘레길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상황이랄까? 고속도로처럼 속도를 내며 스칠 듯 지나가는 차량들이 너무 무서웠기에 하는 말이다.

 방조제는 산이반도로 연결된다. 영암호와 금호호 사이에 끼어 있는 지역이다. 그나저나 이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여름철이면 방조제 앞이 강태공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것이다. 떼를 지어 올라오는 갈치를 잡기 위해서다. 호수에서 자란 회류성 어류들은 8월이면 바다로 나간다. 이때 배수 관문에서 빠져나오는 치어를 먹이삼아 갈치가 떼를 지어 올라온다고 한다. 먼 바다로 나가야 만날 수 있는 갈치를 제방에 앉아 낚는 장면은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란다.

 바다 건너 거대한 시설단지는 현대삼호중공업이 아닐까 싶다.

 방조제의 끄트머리는 달도갑문이 장식한다. 금호호의 또 다른 물길이다.

 날머리는 달도교차로(해남군 산이면 구성리)

달도갑문을 지나면 곧이어 달도교차로’, 트레킹은 교차로 건너 광장에서 종료된다. 오늘은 3시간 10분을 걸었다. 앱에 찍힌 거리가 14.13km이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임시노선이었을 때의 15코스는 달도교차로에서 곧장 영암방조제로 가도록 되어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선보인 15코스는 횡단보도를 건너 산이반도로 들어온다.

 산이반도는 솔라시도(Solarseado)’라는 기업도시로 새롭게 태어나는 중이라고 했다. 보성그룹이 전라남도·전남개발공사와 함께 친환경 미래형 도시로 개발하고 있다나? 데이터센터 유치가 계획대로 이뤄지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데이터센터 파크로 자리매김 될 전망이란다.

 서해랑길(해남·영암 16코스) 안내도는 교차로에서 솔라시도CC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서해랑길 28코스(증도면사무소-증도관광안내소)

 

여행일 : ‘23. 4. 22()

소재지 : 전남 무안군 증도면 일원

여행코스 : 증도면사무소상정봉오산마을검산마을해저유물발굴기념비방축마을구분포저수지증도관광안내소(거리/시간 : 16km/ 16.43km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7코스를 걷는다. 10로 이루어진 무안북부·신안 구간의 다섯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증도의 절반 정도를 느리게 둘러보는 코스다. 문준경 전도사 순례길을 따라보는가 하면, 해저유물인양지에서는 700년 전의 못 이룬 항해를 아쉬워해본다. 거기에 드넓은 갯벌과의 한판 씨름은 덤이다. 물 빠진 갯벌도립공원은 짱뚱어·농게·칠게 등의 향연이 펼쳐지고, 반대편 간척지에서는 왕새우가 팔짝팔짝 하늘을 향해 뛰어오른다. 단 슬로시티라는 슬로건에 맞게 천천히 걷는 것은 필수. 그래야 숨겨진 보물들을 챙겨갈 수 있으니까.

 

 들머리는 증도면사무소(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에서 내려와 24번 국도를 따라 지도로 들어온다. 지도사거리(지도읍 읍내리)에서 805번 지방도로 옮기면 송도 사옥도를 거쳐 증도로 들어간다. 곧이어 만나는 소금특산물판매소 앞 삼거리에서 문준경길로 직진하면 잠시 후 증도면사무소에 이른다. 서해랑길(신안 28코스) 안내도와 시작점 표지판은 면사무소의 왼편에 설치되어 있다.

 증도는 느리게 둘러보는 섬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섬답게 모든 것이 더디게 흘러간다. 초반의 상정봉 구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전부가 평지길이니 그처럼 걷기에 딱 좋은 코스라 하겠다. 드넓은 갯벌과 다도해의 섬들을 눈에 담으며 느릿느릿 걸어볼 일이다.

 서해랑길 안내도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면사무소의 뒷산인 상정봉으로 오른다고 보면 되겠다. 해발이 127m 밖에 되지 않는 야산이지만 증도의 주산이라니 무시하지는 말자. 참고로 증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돈대봉(墩臺峰, 137m)이라고 한다.

 60m쯤 들어갔을까 느티나무 아래로 오솔길이 나있다. 초입에 상정봉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초입의 산죽지대를 벗어나자 시야가 확 트인다. 이곳 증도는 슬로시티, 걷기 편하다고 무작정 걸어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왼편에 펼쳐지는 풍경이 사뭇 빼어나기 때문이다. 너른 들녘의 안쪽 귀퉁이에 증동마을이 자리 잡고 있고, 들녘 너머에는 우전해수욕장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조금 더 올라 임도를 만났다싶으면 곧이어 상수원 물탱크가 나오고, 이곳에서 염산(또는 광암)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나뉜다.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 산길은 급경사로 변한다. 그러나 버거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통나무계단을 놓고 길가에다 밧줄로 난간을 만들어 힘이 들 경우 붙잡고 오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2. 나무계단이 끝나면 쉼터를 겸하고 있는 널따란 헬기장이 나온다. 남쪽 방향에 전망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뛰어난 조망을 보여주는 장소라는 증거일 것이다. 상정봉에서, 아니 증도에서 가장 뛰어난 전망대이니 서둘지 말고 조망을 즐겨볼 일이다.

 전망대에 서면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갯벌에 놓인 짱뚱어다리. 그 너머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태평염전과 한반도 모양의 숲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허리가 잘리지 않은 통일된 한반도다. 우전해변의 배후 숲이 한반도를 빼다 닮은 것이다. 그 고즈넉한 풍경이 언젠가 사진전에서 눈길을 끌던 작품을 빼닮았다. 아름답다는 얘기다.

 조망을 즐기다가 메모지를 꺼내든다. 구간별 소요시간을 적기 위해서다. 그러다 문득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배낭 속에 넣어 버린다. 이곳은 슬로시티, 모처럼 느림보의 미학을 이행해 볼 기회였던 것이다. 대신 문준경 전도사가 순교 직전 드렸다는 기도문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본다. 다행이도 그 기도문엔 내가 할 수 없는 행동,  원수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난 역사인식도 제대로 못하는 대통령이 아니니까.

 느긋하게 조망을 즐기다가 정상으로 향한다. ‘기도바위 가는 길의 방향표시를 따르면 된다. ! 문준경 전도사의 제자인 이판일 장로(한국전쟁 때 순교했다)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읽어보는 게 좋겠다.

 평평한 능선길을 잠시 걸으면 문준경 전도사(1891~1950)’의 기도터가 나온다. 암태도에서 태어난 그녀는 17세에 지도읍 정씨가문으로 시집갔다. 이때 목포 북교동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1931년에는 서울의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해 사역자의 길에 들어섰으며 1933년 임자도의 진리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신안군 21개 섬들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좌익세력에 의해 순교했다.

 기도터에는 보혈이라는 시() 한 수가 적혀있었다. 덧붙인 문구로 보아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바위에서 문준경 전도사가 기도를 드렸던 모양이다. 참고로 보혈(寶血)이란 인류의 죄를 구속(救贖)하기 위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피를 말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그녀의 순교를 그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나 더, 증도는 주민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토테미즘이 강한 일반적인 해안지방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특징이다. 이게 다 한국 최초의 여성 기독교 순교자라는 문준경 전도사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문준경 전도사의 제자이자 이판일 장로의 아들이라는 이인재 목사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다.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헬기장과 대동소이하다)을 즐기다보면 어느덧 상정봉(上正峯, 127.7m) 정상이다. 정상은 의외로 허접했다. 봉우리의 한가운데에 박혀있는 삼각점과 이정표(짱뚱어다리 1.9Km/ 염산 3.0Km/ 면사무소 1.1Km)만 보일뿐 정상표지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산세(山勢)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하긴 구릉지 비슷한 산에서 특별한 볼거리를 찾는 것 자체가 잘못일 것이다.

 낮다고 해서 옛이야기 하나 갖고 있지 않을 리가 없다. 옛날 세상이 홍수로 뒤덮였을 때 이곳 증도도 물속에 잠겼는데 오로지 상정봉 정상만이 덜 잠겼다고 한다. 그때 물위에 드러난 정상의 모습이 상여(喪輿)를 닮았다고 해서 상정봉(喪頂夆)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정봉(上正峯)으로 불리고 있다. 상여의 뜻을 내포한 산의 이름이 주민들의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괜찮은 편이다. 아까 헬기장에서 보던 조망이 다시 한 번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니 서쪽 방향의 조망은 헬기장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증도에 들어오기 전, 지인으로부터 꼭 둘러보라고 추천받은 명소가 서너 곳 있다. 이곳 상정봉도 그중 하나다. 증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한반도 모양으로 생긴 우전해변의 해송 숲은 절대 놓치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다.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검산마을, 서해랑길은 보물섬길로 연결되는 왼쪽이다. 하산 길 또한 곳곳에서 조망이 트인다. 우전해변의 해송 숲이 심심찮게 나타나지만 그보다는 점점이 흩어져 있는 다도해의 풍광이 더 눈길을 끈다. 다만 가파른 내리막길이 무릎이 시원찮은 이들을 괴롭히는 구간이기도 하다.

 가파른 계단길만 지나면 길은 고와진다. 잔디로 뒤덮인 산길이 폭신폭신하기만 한데 거기다 경사까지 거의 없다.

 그렇게 10분쯤 진행하면 보물섬길에 내려서게 되고, 탐방로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포장도로를 따른다. ‘모실길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구간이라 하겠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런 길은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도로를 따라 7분쯤 걷다가(중간에 방축리로 가는 도로가 나뉘기도 하지만 무시한다) ‘희망민박을 끼고 차도를 벗어나 해안으로 간다. 왼쪽 방향이다.

 잠시 후 이른 바닷가에는 오산(吾山)’마을이 들어앉았다. 법정 동리인 방축리를 구성하는 4개 자연부락(방축·검산·오산·염산) 중 하나로, 예전에는 수문개로 불리었다. 마을 앞에 배가 드나드는 수문개가 있었다고 해서다. 그러다 집이 다섯 채인데다 길까지 다섯 갈래로 나뉜다고 해서 오산으로 바꾸었다.

 바다는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증도의 갯벌은 물이 완전히 빠져도 표면이 촉촉하게 젖어 있다고 한다. 때문에 찰기로 윤이 나는 갯벌에 주변의 산과 마을, 하늘빛까지 고스란히 투영된단다.

 마을을 지나 썬 코스트 리조트로 간다. 이어서 리조트 후문으로 들어선 다음 숙소 지역을 관통해버린다. 리조트로 봐서는 고개를 내두르기 딱 좋은 구간이라 하겠다. 주인이나 투숙객들 모두 시도 때도 없이 지나다니는 트레커들을 좋아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리조트를 벗어나자 정자까지 갖춘 멋진 해변이 얼굴을 내민다.

 해변의 규모는 작았다. 하지만 잔잔한 파도나 모래의 질만큼은 여느 유명 해수욕장에 뒤질 게 없었다. ‘썬 코스트 리조트가 유명세를 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저런 멋진 해변을 자기 것처럼 품고 있는 리조트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해변에는 리조트에서 만들어놓은 그네가 차오르는 바닷물에 아랫도리를 적시고 있었다. 가히 환상적인 풍경이라 하겠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그네, 거기에 어여쁜 여인이라도 걸터앉는다면 인생샷 한 장쯤은 너끈하지 않겠는가.

 홍보용 입간판이 배웅하는 리조트의 초입에서 아까 헤어졌던 보물섬길 차도를 다시 만난다. 이어서 세목섬이 들어앉은 다도해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검산마을로 향한다. 가로수 삼아 심어놓은 야자수가 이국적인 멋을 선사하는 멋진 구간이다.

 텅 빈 선착장 너머로 보이는 섬은 세목섬’. 특별한 볼거리나 이야깃거리가 없는 밋밋한 섬이다. 그저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바닷길이 매일 열린다는 것 말고는...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모퉁이를 돌아 검산(劍山)’마을로 들어선다. 아까 지나왔던 오산마을처럼 방축리에 속하는 마을로, 원래 이름은 만들이었다. 마을 앞바다에 고기떼가 가득하다는 뜻이란다. 그러다 해적과 도둑으로 인해 마을이 피폐해지자 시주 나온 중의 의견에 따라 검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단다.

 탐방로는 마을을 스치듯 지나간다.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동구 밖(‘프롬 휴 펜션 방향)에 세워진 비석 하나가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임신방액석(壬申防厄石)’, 돌에 새겨진 대로 액을 막기 위해 임신년에 세운 빗돌이다. 마을에 도둑떼의 출몰이 잦자 노승의 제안으로 마을 이름을 바꾸면서 저 빗돌을 세웠다는 것이다.

 탐방로로 되돌아와 노인 회관으로 간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해저유물을 최초로 발견·신고한 최형근씨 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집 앞에는 검생이의 달이란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검생이의 달 1990 KBS-2TV에서 방영된 드라마로 1976년 당시 해저 유물 발굴이 이루어진 검산(일명 검생이) 마을에서 보물과 관련된 마을 사람들 사이의 소동을 다룬 작품이다. 보물 소동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탐욕과 애증을 그려냈다.

 검산마을에서의 마지막 투어는 검산항이다. 증도에서 가장 큰 포구인데다 보여주는 풍경까지도 빼어나다니 어찌 거를 수 있겠는가. 해넘이가 무척 고운 곳으로도 입소문을 탔다고 한다. 밀물 때는 바다가 붉게 물들고 썰물 때는 갯벌이 깨진 거울 파편처럼 황홀하게 반짝인단다. 때문에 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진작가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나?

 항구는 자그만 돌섬까지 방파제를 쌓고 그 안쪽에 선착장을 만들었다. 파도가 거친 날 어선의 피항지로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도 파시가 열리지 않았을까? 유홍준 작가가 소개한 목넹기가 이 부근이라고 했었는데... ‘목넹기 갈보야 뛰지 마라. 우네기(조기잡이 배) 떠나면 너나나나..’로 시작되는 그 목넹기 말이다.

 저 사진작가는 뭘 기다리고 있을까? 일몰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니, 서해바다로 떨어지는 해가 오메가라도 그려주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신안군 소속의 문화관광해설가 이종화씨는 바다로 떨어지는 해가 오메가 글자처럼 반사되어 보이는 현상을 오메가 일몰로 표현하면서 선택받은 자만이 볼 수 있다고 적고 있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20. ‘신안 해저유물 발굴해역에 이른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 ‘방축반도로 불러야할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해저유물발굴기념비 낙조전망대’, ‘700년 전의 약속(소단도의 카페·해저유물전시관)’ 등이 들어서 있다.

 그 초입은 주차장 차지다. 하지만 ‘700년 전의 약속이 공사 중이어선지 널디 너른 주차장은 자동차 대신 어망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

 4km쯤 앞서 출발한 집사람을 이곳에서 따라 잡았다. 아니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해풍과 햇볕에 말라가고 있는 생선이 욕심이라도 났던 모양이다. 그녀의 관심이 온통 건정에 쏠려있는 걸 보면 말이다. 참고로 우럭··참조기 등을 손질하고 염장한 다음 해풍과 햇볕에 말리면 건정이 된다.

 대단도와 증도 사이 해협에 꽂혀있는 저 지주들은 독살이 아닐까 싶다. 명덕섬과 대단도 사이로 들어온 바닷물이 독살을 지나 소·대단도 사이로 빠져나가는데, 함께 들어온 물고기가 저 독살에 갇히게 된다고 한다. 주민들은 그 물고기를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나? 참고로 독살이란 바닷가에 돌을 쌓거나 대나무 등을 엮어 만든 발을 설치하고, 밀물 때 물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여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방식이다. 증도에서는 갯벌에 대나무로 만든 독살을 일자로 길게 설치하는 방식을 사용한단다.

 건너편 소단도에는 특이한 외모를 지닌 이층 건물이 들어섰다. 유물과 함께 발견된 송·원대의 무역선, 즉 보물을 실었던 선박을 본 떠 지었다고 한다. 건물은 보물섬(Treasure Island)’이란 명찰을 내민다. 아니 서두에 적힌 ‘700년 전의 약속이 본명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특이한 외모의 건물을 머리에 인 섬이 그림처럼 고운데, 거기에 작은 섬들까지 합쳐지면서 그 자태는 한층 더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승화한다.

 건물은 일층은 카페, 이층에는 자그마한 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다. 당시 보물선 안에는 도자기 2661, 동전 28018kg, 금속제품 729, 석제품 43점 등이 실려 있었는데, 이중 170여 점이 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단다. 박물관에는 유물들 외에도 보물선 인양 당시의 사진들도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 옆에는 배의 갑판(甲板, deck) 모양으로 생긴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돛대(mast)까지 갖춘 의젓한 갑판이다. 갑판에 서면 유물을 건져 올렸다는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고, 그 왼편에는 대단도와 내갈도, 외갈도 등 비슷비슷하게 생긴 작은 바위섬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진입로 보수공사가 한창인 ‘700년 전의 약속은 들어가 볼 수 없었다. 8년 전 모실길을 답사하면서 찍었던 사진을 게시한 이유다. 그 아쉬움은 공사현장의 가림막을 살펴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림으로 소개하고 있는 ‘1004섬 신안 보물섬(Treasure Island) 증도의 풍경들이 잠깐의 눈요깃감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소단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700年 前의 약속이라는 거대한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소단도에 들어선 보물선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원나라 상인이 일본에 전해주기로 한 약속. 지켜지지 못한 그 약속이 우리에게는 어부지리가 되었지만...

 조금 더 걸어 만난 갈림길에서는 바다를 향해 간다. 서쪽 끝의 바닷가 벼랑 위에 해저유물 발굴기념비가 세워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작정 빗돌 앞에 서는 우()는 범하지 말자.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나서 역사의 현장에 이르러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마침 초입에 어디서 어떤 유물들이 발견되었는지, 또 그 유물을 실은 배는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초입에 신안 섬 자전거길(증도 구간은 2코스이다)’의 안내도와 스탬프 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해 원점으로 돌아오는 회귀형 코스(48km, 4개 인증센터)로 증도의 얼굴마담인 갯벌과 소금꽃 핀 염전, 보물선을 건져 올린 해저유물발굴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청정의 공기를 마시며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해서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에 선정되기도 했다.

▼ 해저유물발굴비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바닷가 풍경, 해식애로 이루어진 바위벼랑이 제법 볼만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발굴된 유물의 중요성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빗돌의 크기도 대단했다. 참고로 신안해저유물은 1975년 도덕도 앞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중국도자기가 걸려 올라오면서 최초로 발견됐다. 이후 청자·백자·동전·생활용품 등 23천여 점에 달하는 해저유물이 1984년까지 발굴됐다. 이 신안해저유물 발굴은 동양문화사 연구에 길이 빛날 업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발굴된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발굴해역도 국가사적 제274호로 지정됐다.

 해저유물 매장해역 안내판 옆에는 슬로시티 보물찾기 호핑투어에 대한 안내판이 스탬프통과 함께 설치되어 있었다. 증도에서 발견된 700년 전 보물들을 찾아 8개 숨은 명소를 관광한다는 컨셉으로 진행되는 스탬프 투어다. 느리게 보고, 천천히 걷고, 즐거운 체험을 하면서 보물을 찾아보라는 모양이다.

 빗돌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먼저 와있던 서해랑길 도반들이 바닷가로 더 나가보란다. 천애의 바위절벽 위에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는데, 그곳에서 빗돌이 명시하고 있는 유물 발굴지가 어디쯤인지를 직접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망대에 서자 서해바다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그 바다에는 청자 모양의 부표 하나가 떠있었다. 청자화병 등 23,0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된 지점임을 알리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란다.

 눈길을 살짝 돌리면 이 지역 해안선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다. 침식을 마친 리아스(Rias)식 해안절벽이 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그 아래 갯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자신도 보아달라며 울부짖는다.

 소단도·대단도·내갈도·외갈도 등 꼬맹이 섬들이 일렬로 늘어선 반대편 풍경도 만만찮다. 바위투성이 섬에서 자라는 생명체는 차라리 경이. 작달막한 해송이 갖은 풍파를 다 이겨내며 꿋꿋이 자라고 있는 모습에서 생명의 강인함을 느끼게 된다.

 도로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나선다. 이후부터는 해안일주도로를 따른다. 증도의 자랑거리인 모실길’ 1코스인 노을이 아름다운 사색의 길이기도 한데, 이름 그대로 고즈넉한 해안 길을 걸으며 사색하기 딱 좋은 코스로 알려져 있다.

 몇 걸음 더 걷자 또 하나의 전망대가 나온다.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바닷가 벼랑에 기대듯 매달려있다. kakaomap에서 낙조전망대로 적고 있는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주워 담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어 보이니 말이다.

 지금은 대낮. 해 떨어지는 시간에 맞추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대신 먼 바다로부터 몰려온 거친 파도가 빚어놓은 절경을 눈에 담으면 되니 말이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곶()이 온통 깎아지른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잠깐의 눈요깃감으로 손색이 없다.

 이 구간은 두어 곳에서 산길이 갈려나가고 있었다. 이정표(글자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았지만)는 물론이고 초입에 쉼터용 벤치까지 놓아두었다. 맞다. 증도펜션민박 홈페이지는 이종화 문화관광해설가의 말을 빌려 바다 위에 흩뿌려져 있는 수많은 섬들, 산 위에서 보이는 수려한 풍광, 황금빛 노을과 서해낙조 등 아름다운 경관을 보유한 멋진 등산로라고 적고 있었다.

 두어 개의 작은 해수욕장도 눈에 띈다. 증도 주민들이 하트해변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목넘어·가운데·옥송구지 등 3개의 장불(‘장불은 썰물 때 드러나는 모래밭(또는 갯벌)’의 전라도 방언이다)이 그려내는 선이 영락없는 하트()’라는 것이다. 모래사장 위쪽에 민물이 있는가하면, 썰물 때는 갯벌에서 낙지나 소라·고동 등을 잡을 수 있어 가족 단위 피서지로도 그만이라고 한다.

 김 양식용 지주 너머로 도덕도(‘도둑섬으로도 불리며 오른편은 호감섬’)가 떠 있다. 지금은 빈집 한 채만이 외로운 무인도지만, 한때는 14가구가 거주하면서, 초등학교 분교와 경찰서 초소까지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목포로 연결되는 여객선이 기항했을 정도라나?

 진행방향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채석장도 내다보인다. 지금은 산림복구까지 끝났지만, 저런 채석장이 있었기에 증도의 수많은 간척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처럼 생긴 모퉁이를 돌아서자 이번에는 만()처럼 움푹 들어간 해안선이 길손을 맞는다. 그곳에 푸른솔이라는 펜션이 들어서 있었다. 별장으로 지어진 것을 독채로 빌려준다는데, 여행 마니아들 사이에서 프라이빗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있단다.

 이즈음 방축마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옛 이름은 방죽끼미’, 마을에 큰 방죽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그러다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 섬이 많다 하여 방축으로 개명했단다. 방축·오산·염산·검산 등으로 구성된 방축리의 중심마을이기도하다.

 마을 앞 해변은 웬만한 유명 해수욕장이 부럽지 않았다. 300m 남짓의 백사장은 흡사 밀가루라도 되는 양 보드랍기 짝이 없고, 그게 울창한 송림까지 끼고 있다. 방축(防築)이라는 마을 이름에 어울리는 풍경이라고 하겠다.

 해변의 끝은 시가 있는 공원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놓았다. 하지만 풍선처럼 생긴 기구(漁具가 아닐까 싶다)만 매달려 있을 뿐, 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시를 지어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방축마을을 지나 임도로 들어선다. 걷는 내내 다도해의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적당히 굽이치는 찻길을 따라 고도를 높이니 아기자기한 바다 풍광이 발아래 깔렸다. 도덕도·호감섬·대섬·부남섬 등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사이좋게 늘어선 모습이 무척 곱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30. ‘나룻구지라는 작은 선착장에 이른다. 이종화 문화관광해설가는 이 부근을 목넹기(모실길안내도는 향월포로 표기)’로 적고 있었다. 크고 작은 섬들로 막힌 바다가 호수를 연상시킨다면서 말이다. 맞다. 자은도와 증도를 아우르는 이 일대의 바다에는 철마다 조기·민어를 쫓는 수백 척의 배들이 오갔다고 한다. 뱃사람의 돈을 쫓아 술과 색시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서해에 비바람이 들이치는 날이면 임자도의 타리파시와 더불어 가장 소란스럽던 항구였다고 한다. 잡아온 고기는 부산이나 시모노세키로 보내질 때까지 얼기설기 지은 생선창고로 옮겨졌고, 그물을 손질하는 사이 바다에서 먹을 쌀··땔감을 실었고, 짬이라도 나면 색시를 품었다.

 모퉁이를 돌아 임도를 빠져나오면 기다란 방조제가 반긴다. ‘장성저수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니 장성방조제 쯤으로 기억해두자. 아니면 방축마을 곁이라는 핑계를 대며 방축방조제라 우겨도 될 일이다.

 방조제 안쪽은 대하양식장이 들어서 있었다. 탐방로는 양식장의 안쪽을 에두르며 나있다. 하지만 난 방조제 둑을 따라간다. 양식시설이 한눈에 쏙 들어오니 일부러 에둘러 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방조제를 선택한 덕분에 500m 정도를 단축할 수 있었다.

 왼쪽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아니 시선의 끄트머리에 희미하게 임자도가 들어앉았다. 그 왼편에는 대섬과 부남섬. 저런 섬들이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기에 방축이라는 지명을 낳았고, 사람들은 저 바다를 바다호수라 부르기도 한다.

 방조제를 지나면 또 다시 임도로 올라선다.

 6분쯤 더 걸어 염산 방조제로 내려선다. 간척지의 안쪽에 들어앉은 염산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나저나 이 구간은 방조제로의 통행이 불가능했다. 방축마을 방조제에서의 경험을 살려 주변을 살펴봤지만 잡초만 무성할 뿐 길은 나있지 않았다. 방조제 안쪽으로 난 농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방조제가 만들어놓은 인공 습지는 웃자란 갈대로 가득했다. 가을에 찾으면 염산마을이 자랑하는 볼거리로 등장할 수도 있겠다. 참고로 염산(廉山)’ 마을의 옛 이름은 산너머이다. 산너머에 마을이 있다 해서인데, 언제부턴가 산 좋고 밭이 기름지다 하여 염산으로 개칭했다.

 바닷가 방조제와 그 안쪽의 농로. 그 농로의 좌우로는 간척사업이 만들어놓은 둠벙과 논이 펼쳐진다. 신안에 속한 섬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염산방조제를 지나면 돈대봉 임도가 시작된다. 그 초입에 작은 모래해변이 형성됐는데, 주민들이 선착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듯 어선 두어 척이 모래사장에 올라앉아 있었다.

 돈대봉(墩臺峰)의 허리께를 에둘러가는 임도는 길이가 2km쯤 된다. 하지만 가슴에 담을만한 특별한 볼거리는 갖고 있질 못하다. 그저 울창한 숲속을 헤집으며 임도가 나있다고 보면 되겠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3시간 20. 임도를 벗어나자 구분포 방조제가 반긴다. 방조제 아래에 들어선 엄청난 규모의 대하양식장이 눈길을 끄는 지역이다. 하지만 kakaomap에서 포인트로 삼고 있는 구분포저수지는 눈에 띄지 않았다.

 대하양식장을 지나 또 다른 임도로 들어선다. 서해랑길 28코스의 대부분은 증도자전거길과 겹친다.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에 꼽혔을 정도로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을 탄 코스이다. 덕분에 라이딩을 즐기는 젊은이들과 살가운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이 구간은 신안군이 자랑하는 명품 둘레길인 모실길  노을이 아름다운 사색의 길(1코스)’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길가에 돌탑을 쌓는 등 탐방로 조성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했다.

 그렇게 10분 남짓 걷다보면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증도대교가 얼굴을 내민다. 사옥도(沙玉島)와 증도(曾島)를 잇는 1,964m 길이의 아치형 연도교이다.

 3~4분쯤 더 걸어 광암 들녘에 내려선다. 이어서 수로 곁으로 난 농로를 따라 805번 지방도로 간다. 화사하게 피어난 유채꽃 향기가 고갈된 체력까지 보충해주는 기분 좋은 구간이다.

 농로 왼편, 그러니까 광암 방조제가 있는 쪽으로도 꽤 너른 농경지가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오른편으로 펼쳐지는 드넓은 평야지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이곳 증도가 풍요로 넘친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눈앞에 펼쳐지는 저런 풍경은 보고 그 누가 섬이라 무시할 수 있겠는가.

 날머리는 증도 관광안내소(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10분 조금 못되게 들녘을 걷자 805번 지방도(지도·증도로)에 올라서고 곧이어 관광안내소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서해랑길(신안29코스) 안내도는 슬로시티보물찾기 호팅투어 스탬프 함과 함께 관광안내소 곁에 세워져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4시간을 걸었다. 앱에 찍힌 거리가 16.43km이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오늘도 집사람이 함께 해 주었다. ‘너와 나가 아닌, ‘우리이길 원하기에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현상이다. 다시 태어나도 내 아내의 남편이 되고 싶다던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처럼 그 세상이 어떠하더라도 아내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난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난 천만 번 윤회를 거듭하면서도 내 아내와 함께하고 싶다. 세상사 힘들기만 한데, 고집스런 꿈을 찾아가는 날 믿고 따라주며 그 꿈이 이루어지길 빌어주는 여자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서해랑길 27코스(태평염전-증도면사무소)

 

여행일 : ‘23. 4. 8()

소재지 : 전남 무안군 증도면 일원

여행코스 : 태평염전소금밭전망대갯벌도립공원대초마을우전해수욕장한반도 해송숲짱뚱어다리증도면사무소(거리/시간 : 14.3km/ 15.79km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7코스를 걷는다. 10로 이루어진 무안북부·신안 구간의 네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증도의 2/3정도를 느리게 둘러보는 코스다. 소금 창고가 가지런히 늘어선 태평염전에서는 작은 금덩어리들을 만나고, 광활하게 펼쳐지는 갯벌도립공원에서는 물이 빠지면 짱뚱어·농게·칠게 등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반도를 닮았다는 해송 숲(10만여 그루가 자란다)과 드넓은 갯벌 위로 내놓은 짱뚱어다리를 걷기기도 한다. 단 슬로시티라는 슬로건에 맞게 천천히 걷는 것은 필수. 그래야 숨겨진 보물들을 챙겨갈 수 있으니까.

 

 들머리는 태평염전(신안군 증도면 대초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에서 내려와 24번 국도를 따라 지도로 들어온다. 지도사거리(지도읍 읍내리)에서 805번 지방도로 옮기면 송도 사옥도를 거쳐 증도로 들어간다. 잠시 후 유명관광지가 부럽지 않은 태평염전(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360)에 닿는다. 시작점 표지판은 염전의 입구, 슬로시티를 홍보하는 안내판 기둥에 매달려 있다.

 증도는 느리게 둘러보는 섬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섬답게 모든 것이 더디게 흘러간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멀다. 태평염전은 국내 최대 규모(여의도 면적의 2배란다),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갯벌도립공원은 바다를 향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한반도를 닮은 숲도 해송이 10만 그루가 넘고, 짱뚱어를 형상한 목교도 472m나 바다를 가로지른다. 주어진 시간은 빠듯한데 어떻게 느릿느릿 걷느냐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얻어갈 수 있는 것을...

 길을 나서기 전 염전부터 둘러보기로 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 그럼 초입에 세워놓은 태평염전 100배 즐기기 안내판부터 살펴보자. 박물관에서 시작해 염생식물원·천일염결정지·소금가게 등을 거친 다음 소금동굴체험에서 끝나는 총 10개 코스로 이를 모두 둘러볼 경우 행복이 백배로 불어나게 된다나?

 입구 왼편에는 초창기의 창고(석조)를 전시관으로 단장해놓은 소금박물관이 있다. 소금의 역사·문화는 물론이고, 미네랄과 천일염 등 소금에 대한 유익한 정보와 소금 장인들의 일상과 천일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지만 시간이 없어 들어가지는 못했다. 박물관 옆에 있다는 체험장은 아예 둘러보지도 못했다. 장화를 신고 고무래로 대파질을 하는 과정이야 TV에서 자주 봐왔으니 그 정도면 되지 않겠는가.

 맞은편에는 소금향을 간직한 솔트카페(Salt Cafe)’가 있다. 예전 소금을 배로 실어 나르던 항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카페로, 중도의 소금을 외지로 실어 나르던 항구의 기억을 간직한 추억의 장소이자 기억의 공간이라 하겠다. 카페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솔티미네랄라떼, 소금아이스크림, 함초쿠기 등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커피의 향은 살리고 쓴맛은 줄인 커피와 소금의 달콤한 어울림, 커피의 향긋함과 천일염이 품은 미네랄의 조화가 솔티미네랄라떼 한잔에 가득히 녹아있단다.

 소금가게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갯벌은 세계 5대 갯벌중의 하나다. 특히 증도 지역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모래가 적은 진펄로 최고 수준의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태평염전에서 나오는 천일염은 바닷물, 양수와 유사한 미네랄 성분비로 자연의 밸런스와도 가깝다. 또 대표적 염생식물인 함초를 인위적으로 제거하지 않고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생산한 소금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소금전망대로 가는 길목에서는 소금아이스크림 함초차도 판다. 꼭 맛봐야 하는 신안의 대표 먹거리이자, 딴데 가면 안 판다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6년쯤 전 로마에 갔을 때도 저런 상술에 홀려 젤라또를 사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 염생식물원에 들어가 볼 차례다. 참고로 태평염전은 1953 6·25전쟁 후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고 소금생산을 늘리기 위해 조성된 염전이다. 전증도와 후증도를 둑으로 연결하고 그 사이 갯벌에 조성됐다. 동서 방향으로 긴 장방형의 1공구가 북쪽에, 2공구가 남쪽에, 남북 방향으로 3공구가 있다. 이후 정부가 민간사업자에게 영업권을 넘기면서 몇 차례 염전의 주인이 바뀌었다.

 염생식물원(鹽生植物)은 갯벌 미네랄을 먹고 자라는 건강한 염생 식물들이 군집을 이루는 곳에 조성했다. 바다의 홍삼으로 알려진 함초(퉁퉁마디)를 비롯해서 겟메꽃·해당화·칠면초 등 100여 종의 식물들이 이곳에서 생장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안내판을 읽으며 220미터의 목조 관찰데크를 걸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새로운 앎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신안 문인들의 작품을 읊조려보면 될 일이고...

 때는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었다. 5일만 지나면 천지가 상쾌하고 맑은 공기로 가득해진다는 청명(淸明). 그래선지 함초(퉁퉁마디)와 칠면초로 붉게 물들어있어야 할 갯벌은 거무티티한 자색으로 퇴색해버렸다. 함초와 칠면초는 염분이 있는 갯벌과 습지에서 생육하는 한해살이풀로 생장 초기에 녹색이었던 함초는 가을이 되면 붉은색으로 바뀌고 칠면초의 꽃은 8~9월에 펴 차차 자주색으로 변한다.

 소금밭낙조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초입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전망대로 연결되는 나무계단 옆에 서해랑길 신안 27코스의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나무계단에 이어서 나타나는 통나무계단. 지자체는 계단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나 보다. 중간 중간에 올라온 계단의 숫자와 소모한 칼로리를 적은 안내판을 세웠다. 감소된 스트레스의 양과 연장된 수명을 숫자로 적었다. 전망대까지 오르면 10분을 더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초입에서 6.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이면 전망대에 올라선다. 증도가 세계슬로시티로 지정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는 태평염전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버지봉의 능선, 해발 50m 높이의 구릉지에 세워져 있다. 2007년 국제슬로시티연맹은 증도를 아시아에서 처음 슬로시티로 지정하며, 인류의 생명을 위해 갯벌 염전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그 가치를 인정했단다.

 전망대에 서자 태평염전과 염생식물원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바둑판처럼 연결된 소금밭에 세모난 지붕 창고들이 쭉 늘어섰고, 그 뒤로 바다가 이어지는 아득한 풍경이다. 그러자 슬로시티의 한 템포 더딘 심호흡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온다. ! 오른편 저 어디쯤에는 증도대교가 놓여있을 것이다. 느림의 미학을 나몰라하며 빠르게 오가는 차들로 넘쳐나는...

 다시 길을 나설 차례, 하산은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이번에는 침목계단이 ‘805번 지방도(지도·증도로)’로 연결해준다.

 도로로 내려서자 샛노란 유채 꽃밭이 길손을 반긴다. 유채꽃은 봄을 알리는 얼굴마담. 2월 무렵 꽃망울을 열기 시작해 4월이면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노란빛 꽃구름에 안긴 인생 사진을 찍기에 딱 좋은 시기이라 할 수 있겠다. ! 꽃밭의 둑을 따라 모네의 연인길도 나있었다. 안내판은 앞서가는 연인(까미유)을 불러 뒤돌아보는 그녀와 아들 장의 모습을 그린 모네(프랑스의 인상파 창시자)’처럼 함께 간 이를 부른 다음 이 장면을 인생사진으로 남겨보라고 권한다.

 탐방로는 이제 ‘805번 지방도(지도·증도로)’를 따른다. 3공구(염전)의 소금창고(목조)를 옆구리에 끼고 걷다보면 생각 없이 스쳐 지나던 염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세월에 빛바랜 나무 창고와 소금을 싣고 오가던 수레(플라스틱 수레로 바뀐 게 조금 아쉽지만)가 낯설게 다가선다. 하나 더, 저 창고 가득 쌓인 천일염은 한때 천시 받던 염부들의 땀방울로 얻어낸 귀한 결과물이다. 국내 생산 천일염 가운데 6%가 이곳에서 나온다.

 창고 뒤로는 3공구의 증발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저곳에서 생산되는 갯벌천일염은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소금의 0.1%에 불과한 희소한 보물이라고 한다. 미네랄이 풍부해서 쓴맛이 없고 단맛을 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보다도 우수성을 인정받는단다. 게랑드 소금보다 칼륨은 3, 마그네슘은 2배 이상 많다는 것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40. 탐방로는 ‘805번 지방도(지도·증도로)’와 헤어져 왼편 돌마지길로 들어선다. 이어서 돌마지 마을을 경유해 바닷가로 간다.

 예로부터 전남지방 해안가에는 건정이라 불리는 생선이 있었다. 우럭··참조기 등을 손질하고 염장한 다음 해풍과 햇볕에 말리면 건정이 된단다. 내 어릴 적, 심심산골의 양반가 종갓집이던 우리 제사상에 올라가던 생선이다. 아니면 귀한 손님이 올 때나 꺼내 양념을 해서 구워먹거나 탕으로 해서 먹었을 정도로 귀하디귀한 생선이었다. 그걸 신안지역에서 재현하여 신안 건정 하늘물고기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단다. ‘시간이 말린 생선의 맛이란 너스레를 떨면서... 직판에 체험까지 더한다기에 잠깐 들러보고도 싶었지만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니 어찌할꼬?

 그렇게 몇 14분쯤 걷다보면 기다란 방조제로 올라선다. 왼쪽 답사도(kakaomap의 지명)와 오른쪽 대술웅도를 잇는 긴 방조제이다. 이때 대술웅도(지금은 육지)와 화도·석섬 등이 조망된다.

 왼편으로는 신안의 자랑거리인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유네스코(UNESCO)는 저처럼 아름다운 섬과 갯벌 그리고 염전으로 이뤄진 신안군의 해양환경을 신안 다도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오른편은 간척사업이 만들어놓은 들녘, 그곳에는 대하양식장이 들어섰다. 1997년 우루과이라운드 발효를 계기로 산업자원부는 폐 염전정책을 시행한다. 수입소금이 들어오면서 서해안에 산재하던 천일염 생산지도 급격히 줄게 돼 신안·영광 등 일부 서남해안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당시 염전을 그만둔 사업자들이 새롭게 시작한 것이 대하양식장이다. 정부는 그런 이들에게 시설자금을 지원했었고...

 800m쯤 되는 방조제의 끝(‘대술웅도 해변길 입구)에서 길이 둘로 나뉜다. 그런데 서해랑길의 주황색 방향표시가 양 방향 모두를 가리키니 문제다. 코너에 세워놓은 수릉섬 길 이정표(덕정마을/ 돌마지마을/ 화도마을)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 해답은 방조제에 붙여놓은 안내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왼쪽 해안으로 가는 방향이 정규 코스인데, 만조 등 기상악화 때는 오른쪽 산 아래 길로 우회하라는 것이다. 하나 더, 어디로 가다라도 대술웅도를 반 바퀴 돌아 다시 만나게 된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썰물 때이니 망설일 일도 없다. 냉큼 바닷가로 내려서 물 빠진 갯벌을 걷는다. 그리고 대술웅도의 해안을 돌아 화도 노두길로 간다.

 잠시 후 화도로 들어가는 노두길로 올라선다. 노두는 개펄 위에 돌을 놓아 건너다니던 징검다리다. 바다와 바다 사이에 어민들이 다닐 수 있게 만든 통로로 물이 차면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화도 노두길은 의젓한 도로(그것도 2차선). 두 차례 확장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단다. 밀물 때면 지금도 바닷물 속에 잠긴다고 해서 아직까지 노두길로 불린다나?

 초입에는 신안 섬 자전거길 안내판(스탬프보관함과 함께)이 세워져 있었다. 장혁과 공효진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안내판도 보인다. 수혈 실수로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와 그의 엄마인 미혼모 연신의 이야기가 마음 아프게 또는 따스하게 그려진 드라마였었다.

 2013년 증도 일원은 신안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면적은 144.0(육지 0.737, 해면 143,263).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대한민국 서남해안 갯벌의 생태적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체계적인 보존과 지속가능한 이용 도모한다는 목적에서다. 그나저나 마음을 다스리는 산행의 저자 이석암선생의 말처럼 저 조형물의 색깔이 조금 밝은 색이면 어땠을까?

 길이가 1200에 이른다는 노두길 너머로 화도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섬의 모양이 바다 위의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마을에 해당화가 가득하다는 섬으로, 국립해양조사원에서 2021 바다 갈라짐의 명소로 추천했던 섬이기도 하다. 하나 더, ‘고맙습니다의 영신과 봄이가 살던 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시간을 쪼개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화도 전체가 일몰의 명소로 알려져 있으니 해넘이 시간에 맞추면 더 좋겠고...

 갯벌은 온통 구멍투성이다. 짱뚱어, 칠게, 농게 등 갯벌 생물들이 들락거리면 뚫어놓은 삶의 현장이자 생명의 길이다.

 조금 더 돌면 공중화장실이 있는 갈림길(아까 헤어졌던 우회로와 만난다). 탐방로는 이곳에서 바닷가와 헤어진다. 그리고 오른쪽의 들녘을 돌아 덕정마을로 간다.

 들녘을 지난 다음 나지막한 언덕을 넘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덕정(德鼎)’ 마을이 놓여있다. 법정 동리인 대초리를 구성하고 있는 5개 자연부락(대초·덕정·화도·등선·장고) 중 하나로 전증(일명 앞시루)과 후증(일명 뒷시루)이 있어도 솥이 없으면 물을 담을 수 없다 하여 솥 정()’자를 붙여 덕정이라 하였단다.

 이 마을은 순흥 안씨의 집성촌인 모양이다. 문중 세장산(世葬山)을 마을 앞에 놓고, 반듯하게 지어진 찬성공파 사당과 추모관을 배경으로 삼았다.

 경로당 외벽에서 마을 주민들의 행복한 표정을 읽는다. ‘행복이 내린다니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 잘 왔어요라는 문구도 보인다. 자신들의 행복을 길손들에게도 나누어주겠다는 얘기겠지?

 덕정마을을 빠져나오면 805번 지방도, 탐방로는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 다음 150m쯤 도로를 따른다. 대초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대초(大棗)’ 마을을 앞에 두고 걷는 모양새이다.

 탐방로는 대초마을을 스치듯 지나간다. 이때 마을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대초리교회가 눈길을 끈다. TV의 해외여행 코너에서나 볼 법한 기괴한 생김새다. 인도네시아 편에서 본 건물을 쏙 빼닮았는데, 한국전쟁 때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가 3번째로 개척한 교회라고 한다. 한국철도의 국내기독교 유적지를 둘러보는 기독교 성지순례 탐방 열차 코스에도 포함된 교회라고 한다.

 마을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 언덕을 넘어간다. 이어서 805번 지방도를 가로지르면서 바닷가로 나아간다.

 이 구간에서 난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을 만났다. 사진 전문가들 사이에서 떠돌던 얘기. 즉 개개로는 보잘 것 없지만 무리지어 피어날 때는 그 어느 꽃보다도 아름답다는 한국 야생화 꽃밭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곳이다. 먹는 나물로만 알았던 냉이가 저렇게도 예쁜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50. 우전방조제(신산경표에서 옮긴 지명)로 올라선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태양광발전소’. 그런데 패널이 씌워져 있지 않은 건 무슨 이유일까? 정권이 바뀌면서 신·재생에너지가 뒷전으로 밀려났는지도 모르겠다.

 왼쪽은 드넓은 갯벌. 물 빠진 바다지만 다도해의 풍광을 여실히 보여준다. 화도를 위시해 석섬·가운데섬·끝섬·비겨섬·갈매섬 등 수많은 섬들이 바닷물이 아닌 갯벌에 둥둥 떠다니는 풍경이 극히 이질적이다.

 증도의 봄은 노란색일 수도 있겠다. 유채꽃이 저 드넓은 들녘을 온통 샛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증도의 유채꽃은 최근에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게 올해는 더 늘어났나보다.

 방조제를 빠져나오다 잠깐 헤매기도 했다. 서해랑길의 특징은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도 갈림길이 많다보니 가끔은 헷갈릴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놓친 표식을 다시 확인해보는 편이 낫다. 리본 등의 표식이 하도 촘촘히 세워져 있어 금방 옳은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제방을 빠져나온 탐방로는 농로에서 방향을 꺾어 우전마을 방향의 숲속으로 들어선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우전(羽田)’ 마을(사진은 우전해수욕장 주차장)로 들어선다. 예전에는 기러기 떼가 한 겨울을 지내고 간다 하여 깃밭(일명 길밭)’이라 부르다가 언제부턴가 우전으로 변했다.

 우전해안에는 갯벌박물관이 들어서 있었다. 지상3(지하1)의 규모로 국내 최대이자 최초의 갯벌생태 교육공간이라는데 어찌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06년 개관한 박물관에서 우린 갯벌의 탄생과정과 우리나라 갯벌의 모습, 갯벌에 사는 여러 생물들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영상실에서는 신안군의 아름다운 섬과 갯벌에 대한 홍보영상물을 수시로 상영한다.

 박물관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호남 수석전시관도 들어가 보자. 증도 출신인 전호남씨가 한 평생 모아온 수석 671점을 기증함으로써 만들어진 소중한 공간이다.

 전시관에는 그가 기증한 수석 300여 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었다.

 박물관을 빠져나오면 우전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푸른 해송 숲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4km나 되는 드넓은 은빛 백사장이 자랑거리인 해수욕장이다. 파란 바다와 숲의 정취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우전해수욕장은 증도의 대표적 해변이다. 백사장 길이가 무려 4km가 넘는다. 백사장의 모래는 아주 하얗고 가늘다. 결이 고운 밀가루가 이렇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천연규사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바닷물의 깊이도 적당하단다. 특히 짚풀로 만든 비치파라솔은 동남아 휴양지 같은 이국적 풍경을 선사한다. 여름 시즌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일 것이다.

 왼쪽을 바라보면 유럽의 근사한 리조트를 쏙 빼닮은 건물들이 보인다. ‘엘도라도라는 전망이 좋은 리조트이다. 엘도라도는 보물섬·황금도시를 뜻한다. 낙조와 일출을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꽤나 유명세를 탄다는데, 모든 객실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오션 뷰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인간의 이기주의가 빚어낸 아픈 상처도 엿볼 수 있었다. 피서객을 위한 시설물들이 물의 흐름을 바꿨고, 그 물길은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파먹어간다.

 이젠 해수욕장의 배후 숲을 걸어볼 차례다. 한반도 속 또 하나의 작은 한반도를 이룬, 해송 숲속에 내놓은 천년의 숲길은 증도여행의 필수 코스다. 이 구간은 증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모실길의 제3코스인 천년의 숲길이기도 하다. ‘갯벌박물관에서 짱뚱어다리까지로 그 거리가 총 4.6km에 이른다.

 숲길 초입에 철학의 길이라는 문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슬로시티이니 느릿느릿 느림의 미학은 기본. 거기에 사색을 즐기며 걸어보라는 모양이다. ‘천년의 숲길은 백사장의 뒤편으로 나있다. 때문에 발이 푹푹 빠지기도 하지만 낭만이 넘치는 길이다. 이런 길은 짱뚱어다리까지 4Km나 이어진다. 그렇다고 이 모든 길을 완주할 다 필요는 없다. ‘모실은 마을을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마실과도 같은 뜻이다. 그러니 모실길은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가듯 걸어야 한다. 마음 내키는 곳에서부터 원하는 곳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며 경치를 즐기면 그만이다.

 잠시 후 이번에는 망각의 길이란 문이 길손을 맞는다. 뭘 잊으라는 얘기일까? 그나저나 사목사목 걷다 보면 어느새 한껏 여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도시의 삶에서 오염됐던 시간이 비로소 본래대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이곳 증도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이런 곳에서까지 발걸음을 제촉할 이유는 없다. 모처럼 느림보의 미학을 쫒아보자. 그러다 포토죤이라도 만나면 인생샷 하나 건지면 될 일이고...

 느리게 걷기의 방점은 우전해변에서 만나는 일몰이라고 했다. 저 플라스틱 의자가 그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서해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해를 주워 담기 딱 좋은 곳에 누군가가 가져다놓은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우전해변 중간쯤에서 만난 백사장. 모래가 유독 고운 저 백사장은 썰물 때면 개펄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개펄은 마사지를 즐기기에 적합한 성분들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해서 매년 게르마늄갯벌축제까지 열린단다.

 별자리 보기 체험장은 등받이벤치까지 갖추었다. 지극히 편한 자세로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라는 배려일 것이다. 그 많은 별자리들을 무슨 수로 아느냐고? 벤치 옆에 계절별 별자리를 그린 안내판을 세워두었으니 그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길가 곳곳에는 시비(詩碑) 등 읽을거리까지 챙겨놓았다. 나무 사이로 내다보이는 바다를 감상하며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비(사진은 이해인 수녀의 바다일기’)에 적힌 시들을 읽어보기도 한다. 이런 재미가 있어 사람들은 트레킹에 열광하는가 보다.

 지자체는 걷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라며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모래의 입자가 밀가루처럼 고우니 맨발로 걸어보란다. 저런 숲길은 걷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다. 바람결에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그득하다. 건강한 기운으로 충만한 초록색 숲길에 기분 좋은 솔향까지 보태진다. 이런 게 바로 힐링(healing)이 아니겠는가.

 우전해안이 끝나갈 즈음 바닷가로 내려가 봤다. 그리고 바닷가를 따라난 길을 따라 짱뚱어다리로 간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으나 모래의 유실을 막기 위해 설치한 방사제(말뚝을 일렬로 박았다)가 눈길을 끌고 있었다.

 우전해안의 끝은 짱뚱어해수욕장이 장식한다. 널따란 주차장은 물론이고 해수풀장·샤워장·몽골텐트촌·야영장 등 편의시설을 두루두루 갖춘 명품 해수욕장이다. 하지만 5년 전 들렀을 때 눈여겨봤던 와싱톤야자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당시에도 대부분이 죽어가고 있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3시간 20. ‘짱뚱어다리는 광활한 갯벌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든다. 나무와 철재로 만든 이 예쁜 다리는 다리 아래에서 짱뚱어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바닷물이라도 빠져나가면 갯벌 위로 새겨진 굽이굽이 흐르는 물곬을 눈으로 쫓으며 어슬렁어슬렁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나?

 다리 아래로 물이 넘실거리는 걸 보면 물때를 잘 맞춘 모양이다. 바닷물이 가득한 만조(滿潮) 때 찾아와야 짱뚱어다리의 진면모(眞面貌)를 제대로 볼 수 있다니 말이다. 마치 바다 위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말이다. 바닷물이 빠졌다고 해서 억울해 할 필요는 없단다. 배를 드러낸 갯벌에서 이곳 증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갯벌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입에 커다란 조형물(造形物)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먼저 ‘2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만들고, 그 아래에 ‘1004’라는 글자모양을 배치했다. 이곳 증도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지 100에서 두 번째로 꼽힌바 있다. 또한 증도는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천사의 섬 신안군에 소속된 하나의 섬이다. 고로 저 조형물은 천사의 섬 증도가 한국인들이 두 번째로 가보고 싶어 하는 섬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증도는 CNN에서 선정한 외국인들이 꼭 가봐야 할 50에도 뽑힌바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다리로 오르기 전, 읽어볼 게 하나 더 있다. 입구에 세워놓은 빗돌들인데, 이곳 증도에 살고 있는 각종 생물들을 빠짐없이 비석에다 새겨놓았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과 같이 알고 나서 해변을 걷는다면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시사철 관광객이 몰려드니 푸드 트럭 하나쯤 어찌 없겠는가. 아니 냉장고에 비치파라솔까지 갖춘 의젓한 간이식당이다.

 짱뚱어다리는 철제구조에 나무널판을 댄 모양새다. 만조 때 이 다리에 서면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들고, 썰물 때는 갯벌 생명체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갯벌에서 2m쯤 위로 놓인 다리를 걷다가 중간에 갯벌로 내려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중간지점 두 곳에는 섬 모양의 갯벌 관찰대도 만들었다.

 오늘처럼 물이 차오르지 않는다면 갯벌체험은 다리에 올라서자마자 시작된다. 짱뚱어다리 주변, 즉 우전해변 북쪽 끝에 약 429(128만평)의 갯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갯벌을 탐방할 수 있도록 갯벌 위에 놓은 다리가 증도의 명물로 자리 잡은 짱뚱어다리인 것이다. 다리를 따라 걸으며(조망대도 따로 만들어두었다) 칠게·농게·짱뚱어 등 다양한 갯벌 생명들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툭 튀어나온 저 부분이 짱뚱어의 머리쯤 되겠다. 짱뚱어는 눈이 툭 튀어나온 철목어(凸目魚)로 머리는 크고 그 아래는 납작하다. 옛날 어린 시절 눈이 왕방울 만하게 튀어나온 친구 녀석들을 짱뚱어라고 놀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짱뚱어의 머리 부분을 지금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다리에서면 증도의 자랑거리인 갯벌(지금은 물이 넘실거리지만)을 실컷 볼 수 있다.  472m의 짱뚱어다리는 128만 평이나 되는 저 갯벌을 가로지른다.

 뒤돌아보면 한반도를 닮았다는 해송 숲의 절반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으로부터 약 50여 년 전 증도 사람들은 북서풍(모래날림)을 막기 위해 우전리 해변에다 소나무(곰솔 또는 해송이라고도 부른다)를 심었다고 한다. 방풍림(防風林) 및 방사림(防沙林)의 용도다. 이 숲이 울창해지면서 그 모습이 한반도의 지형을 빼다 닮아 증도의 명물이 되었다. 그리고 저 숲은 한반도 해송공원이란 예쁜 이름까지 얻었다. 또한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인 공존상을 받기도 했다.

 다리 건너에도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다리를 암시하는 짱뚱어 조형물. 그 옆에는 증도에 명품 자전거길이 나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자전거 조형물을 커다랗게 만들어 놓았다. 이름도 생소한 순비기 전시관도 눈길을 끈다. 순비기(herb)는 바닷가 모래땅에서 넝쿨을 뻗으면서 자라는 허브라고 한다. 증도면에서는 순비기로 천연염색을 해서 스카프나 베개 등을 만들어 팔고 있단다.

 ! 우리 동네가 왜 이곳에? 함께 걷던 일행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가수인 강남이 이곳 증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단다.

 철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특산품판매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뭐라도 하나 살까 기웃거리다가 그만 둔다. 5년 전 형제들과 함께 진도를 찾았을 때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산품이라는 (건조)톳을 사서 형제들에게 나눠줬는데, 집에 와서 먹어보니 톳이 아니라 미역 자른 것이었으니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그게 우리 집 하나였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특산품 판매장을 지나면 섬이 아닌 듯 섬인 증도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섬답지 않게 너른 들녘이 펼쳐지는 것이다. 탐방로는 이 들녘을 지나 증도면사무소로 간다.

 종점이 코앞. 주어긴 시간까지 30분 정도가 남았으니 먹거리를 찾아볼 자투리시간이 생겼다. 마침 이곳 증도는 짱뚱어탕으로 유명하지 않겠는가. 맛집으로 소문난 안성식당에서는 반주로 낚지볶음까지 추가할 수 있단다. 그런데도 독감과 헤어지지 못하고 빌빌대는 형우군은 술도 없는(독감 때문에 술은 엄두도 못 낸단다) 안줏거리가 웬 말이냐며 손사래를 치는 게 아닌가. 술 없이 짱퉁어탕이라도 먹으면 될 일을 고집이라니...

 날머리는 증도면사무소(신안군 지도면 중동리)

마을을 지나면 상정봉(127m) 앞 비탈진 언덕에 걸터앉은 증도면사무소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4시간을 걸었다. 핸드폰의 앱은 15.79km를 찍는다. 구간 전체가 평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서해랑길 25코스(매당마을-신안젓갈타운)

 

여행일 : ‘23. 3. 11()

소재지 : 전남 무안군 해제면과 신안군 지도읍 일원

여행코스 : 매당노인회관매안마을큰부수막들방조제황토펜션명양마을해제·지도연륙교봉황산임도신안젓갈타운(거리/시간 : 17.8km/ 17.99km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5코스를 걷는다. 10로 이루어진 무안북부·신안 구간의 두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해제반도의 구릉지와 해안을 이어 걷는다. 덕분에 무안을 상징하는 드넓은 갯벌과 특산물(양파·마늘·양배추)로 덧씌워진 들녘, 그리고 신안의 다도해 풍광을 실컷 눈에 담게 된다. 주요 볼거리로는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 ‘배암 혓바닥과 신안의 새로운 볼거리로 등장한 거북섬을 꼽을 수 있다.

 

 들머리는 매당마을(무안군 해제면 창매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에서 내려와 24번 국도를 따라 신안(지도·임자도) 방면으로 내려오다 천장교차로(해제면 천장리)에서 왼편 창매로로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당 마을에 이르게 된다. 초입에 있는 노인회관이 25코스의 시작점이다. 참고로 법정 동리인 창매리 3개 취락(聚落 : 창산·매당·매안) 중 하나인 매당마을은 풍수지리상 명당에 해당된다고 했다. 명당이 와전되어 맹당(孟堂)으로, 이후 맨댕이로 불리다가 한자화하면서 매당(梅堂)으로 고쳐졌단다.

 해제면 매당마을(창매리)에서 시작해 지도읍 신안젓갈타운(읍내리)에서 끝나는 17.8km짜리 코스로 해제반도(海際半島)의 구릉지와 해안, 그리고 지도(신안군)의 해안과 임도를 따라 걷는다. 오늘은 우리 부부의 출발지를 따로 잡아봤다. 시점에서 4km쯤 전방에 위치한 황토골휴게소에서 집사람을 출발시키고, 시점에서 출발한 내가 뒤를 쫓는 형식을 취했다.

 마을회관을 빠져나오자마자 길이 나뉜다. 서해랑길은 도로(창매로)를 놓아두고 바닷가를 향해 내려간다. 25코스가 시작됨을 알리는 시작점 표지판은 이정표(황토골휴게소 4.4, 종점 16.7) 옆의 전신주 기둥에 매달려있다.

 서해랑길을 제켜놓고 도로를 따라본다. 동네 수문장을 자처하고 있는 노거수를 만나보기 위해서다. 매화정이란 정자까지 품은 저 팽나무(군의 보호수이다)는 수령이 29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나무 앞에 선돌까지 모셔놓은 걸 보면 마을에서 당산나무로 모신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당산나무로 모시던 버드나무가 태풍에 쓰러지자 나무 옆에서 수호신처럼 서있던 바위를 이곳으로 옮겨놓았단다.

 50m쯤 더 걸으면 광산김씨삼강려라는 제각도 만나볼 수 있다. 광산김씨 문중에서 배출한 ··의 삼강행실(三綱行實)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원래는 각각 다른 시기에 정려로 포상 되었으나 1946년에 하나로 합쳤다고 한다. ‘호은처사광산김공경모비, ‘회산처사김공강학비’, ‘효자김공치선실적비’, ‘창와김선생유적비도 눈에 띈다. 이 마을에서 학문이 뛰어난 이들을 배출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정면 3(측면 1)의 맞배지붕 제각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럼 병자호란 때 전사한 김득남(金得男, 1828년에 정려) 충의(忠義) 1891년에 정려를 받은 김성경 및 김철현의 효행(孝行), 김득남 의처 밀양김씨(1870년에 정려) 열행(烈行)은 어디서 엿볼 수 있다는 말인가. 혹시나 해서 제각 곁에 세워놓은 빗돌을 살펴봤으나 관련 내용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제각까지 살펴본 다음 서해랑길로 합류한다. 이때 매당마을 앞바다에 떠있는 머우섬이 눈에 들어온다. ‘개구리섬(蛙島)’으로도 불리는데, 동백나무가 무성해서 한때는 마을 사람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유지로 변해버렸다나?

 탐방로는 이제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 ‘배암 혓바닥(또는 뱀머리)’을 바라보며 간다. 매당마을 앞바다에 떠있는 와도(蛙島)’ 쪽으로 뻗어나간 지형이 마치 뱀이 개구리()를 잡으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란다.

 갯벌은 온통 푸른 해초로 뒤덮여 있다. 매당마을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고마운 색깔이라 하겠다. 저 갯벌(‘정챙이이란 지명을 지녔다)에서 채취되는 감태가 무안에서 가장 질이 좋다니 말이다. 한때는 한 사람이 하루에 20동 이상씩 따오기도 했단다. 그밖에도 무안에서 가장 질 좋은 석화와 낙지를 잡아 높은 수익을 올린다고 했다.

 방조제를 따라 100m쯤 걷다가 매안마을로 향한다. 이때 허천들이란 들녘을 걷게 되는데 물이 하도 귀해서 비가 내려도 물을 쑥 빨아들였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마을이라고 해서 하등 다를 게 없었단다. 공동우물의 수량이 적어 늘 줄을 서서 사용해야 했고, 가뭄이라도 들면 십리나 떨어진 창산 마을 뒤까지 가서 양동이로 물을 길러 와야 했단다.

 허천들에서도 무안의 특산품인 마늘과 양파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한겨울 맹추위를 굳건히 버텨낸 양배추는 수확이 한창이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2. ‘매안 마을회관 뒤 도로(이정표 : 종점 15.4/ 시점 1.3)에서 특이한 표석을 만났다. 매안마을과 매당마을을 함께 담음으로써 경계석을 겸하게 했다.

 매안마을을 빠져나와 구릉지 위를 걷는다. 이때 하늘이 반, 나머지 반은 바다나 땅이 채워준다는 해제반도의 독특한 풍경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20분 정도 걸어 매안마을 구간을 빠져나오면, 탐방로는 또 다시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리고 방조제 위를 걷는다. 그런데 어디서 난데없는 경고방송이 들려오지 않겠는가. CCTV가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 쓰레기 버릴 생각을 일찌감치 버리란다. 하긴 바닷가라고 해서 무단투기를 하는 못난 놈들이 없겠는가.

 길고 긴 방조제를 걷다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만큼은 얘외다. ‘배암 혓바닥이라는 신비로운 풍광을 계속해서 옆구리에 끼고 가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는 간척사업이 만들어낸 널따란 들녘(‘큰부수막 들 노갱이 들이 잇따라 나온다)이 펼쳐진다. 그 끄트머리에는 창매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창산(蒼山)’마을이 철마산(지형이 말 형상으로 생겼단다)을 배경삼아 들어섰다. 어촌이었을 마을은 이 방조제가 쌓이면서 이젠 산촌으로 변해버렸다.

 서해랑길은 둘레길 나그네만의 것은 아닌가 보다. 라이더 한 명이 지도로 들어가는 연륙교에 이를 때까지 나타났다 사라기지를 반복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방조제를 1km쯤 걸었을까 무안한옥리조트라는 커다란 펜션단지가 나타난다. 서해랑길은 바닷가에 접해있는 이 숙박시설의 앞마당을 횡단한다.

 참새골황토펜션으로도 불리는 이 숙박시설은 전통 한옥의 고풍스러운 멋을 지닌 데다, 바닷가에 접해있다는 특이성으로 인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는 중이라고 했다. 노래방, 찜질방 바비큐장은 물론이고 널따란 수영장까지 갖췄다.

 펜션 앞 바다에 물이 빠져나가면 드넓은 갯벌은 체험장으로 변한다고 했다. 갯벌을 향해 길게 뻗어나간 저 길은 체험 참여자들을 위해 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잡아온 해산물은 바비큐 장에서 구우면 되고, 반주 삼아 마신 술에 얼큰해졌다면 부대시설인 노래방이라도 찾아볼 일이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배암 혓바닥이 얼굴을 내민다. 사두(蛇頭)라고도 부르는데, 예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지만 최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집을 지어 거주하고 있단다.

 참새골펜션에서 8. 탐방로는 24번 국도로 올라선다. 그리고 잠시지만 이 도로(해제·지도로)를 따른다.

 국도에서 만나게 되는 휴게소의 이름도 역시 황토골이다. 해제반도를 걷다보면 심심찮게 눈에 띄는 낱말인데, ‘황토가 무안의 자랑거리로 굳어졌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힐링이 세간의 화두로 굳어지면서 황토의 건강 효용성 또한 부각됐고...

 휴게소에서 우린 무안의 내로라는 자랑거리를 엿볼 수 있었다. 초의선사 탄생지와 노을길 등 서해랑길을 걸어오면서 만난 명소들은 물론이고, 밀리터리테마파크와 전통생활문화테마파크, 도리포, 식영정 등에 대한 자랑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탐방로는 휴게소를 왼편에 끼고 돈다. 그리고는 임도를 따라 또 다른 해안으로 나아간다. 이 구간에서도 우린 해뜰목황토펜션이란 꽤 그럴 듯한 숙박시설을 만날 수 있었다. 지역 브랜드(황토)로도 모자라 해뜰목이라는 의미(해돋이)를 추가시켰다.

 임도를 지나서 다시 만난 바다도 역시 탄도만이다. 보여주는 풍광 또한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배암 혓바닥이 노리고 있는 게 개구리섬이 아니라 탄도인 것이다. 뱀이 삼키기에는 너무나 큰 섬일 텐데도...

 이번에도 방조제를 따른다. 이렇듯 무안의 해안은 해남과 함께 간척사업의 명소로 꼽힌다. 덕분에 들쭉날쭉해야만 할 리아스식 해안이 직선으로 변해버렸다. 혹자는 자연스러운 멋이 사라져버렸다며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그 또한 삶의 한 방편이었으니 어쩌겠는가.

 양월리로 들어선 탐방로가 아까와는 또 다른 풍경을 선보인다. 창매리 해안을 장식해오던 와도(개구리섬)가 사라진 대신, ‘밤섬(栗島)’이 새로운 풍경화의 화룡점정으로 들어앉았다. 물이 들면 밤송이처럼 보인다는 꼬맹이 섬인데, 풍수적으로는 자물쇠의 형국을 하고 있단다.

 율도를 향해 쭉 뻗어나간 저 길도 노두(路頭)라 부를 수 있으려나? 갯벌에 놓은 어민들의 작업도로 말이다.

 방조제를 10분쯤 걷다가 명양마을(이정표 : 종점 10.6/ 시점 6.1)’로 들어간다. 해제반도의 끝에 위치한 마을로 명양이란 지명은 마을 옆을 흐르는 해협(지도와의 사이)의 물살이 거센데서 유래됐다. 물살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울돌목처럼 커서 울두 또는 울띠라 불리다가 한자화하면서 명양(鳴洋)이 되었다.

 마을을 관통해 해제·지도로로 올라섰다. 이 구간에서 우린 산들밥상이라는 소고기 샤브샤브전문점을 만날 수 있었다. 무안지역에서는 맛집으로 소문났다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꽤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이곳 해제반도는 전형적인 구릉지. 농사를 지을 물이 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 방편으로 만들어진 게 둠벙’, 얼마나 물이 절실했으면 한 방울의 물도 아까워 바닥에 비닐까지 깔았을까 싶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25. 모퉁이를 돌아서자 해제반도와 지도를 잇는 연륙교(내 눈에는 방조제로 보였다)가 얼굴을 내민다. 1975년 저 다리가 놓이면서 무안군과 신안군이 서로의 어깨를 맞대게 됐다. 300m 길이의 다리 2개가 놓였는데, 해안 쪽 다리(제방)는 농·어민의 생활도로로 쓰이며 안쪽은 국도가 지나간다.

 우리가 건너고 있는 이 해협은 2의 울돌목이라 불리었을 정도로 물살이 거셌다고 한다. 좁은 해협으로 칠산바다와 목포앞바다의 물이 서로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난파사고가 자주 일어났고, 물살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는 해제면소재지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나? 그게 이 연륙교가 놓이면서 이젠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건너편의 또 다른 연륙교로는 국도 24호선이 지나간다. ! 반대편 연륙교도 이곳처럼 둑으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이름만 다리이지 실제는 방조제인 것이다. 그런데도 둘 사이의 공간을 객토를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 평의 땅이라도 더 만들고 싶었을 텐데...

 물살이 거세다는 것은 물길이 깊다는 증거다. 그래선지 썰물 때인데도 불구하고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자동선착장(진변마을 쪽에 하나가 더 있다)의 배들도 하시라도 떠날 채비를 마쳤다. !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자동선착장에는 임자-지도-목포항을 운항하는 여객선이 들렀다고 했다. 300m 거리의 무안 해제를 연결하는 나룻배도 수시로 다녔단다. 하지만 세월의 뒤안길에 선 지금은 어민선착장으로 겨우 항구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도로 들어서니 팔각정이 잠시 쉬어가란다. 진변마을 주민들을 위한 쉼터겠지만, 둘레길 순례자들에게도 최고의 쉼터가 되겠다.

 다리 건너 진변마을에 이르면 길이 둘로 나뉜다. 직진은 지도읍시가지로 가는 길, 서해랑길은 태천마을 방향(왼쪽) 동천길을 따른다. 하나 더, 삼거리 오른편에는 지도체육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300m쯤 걷다가 다시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리고 효지방조제를 따라 누동마을 쪽으로 간다.

 둑길을 걷다가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밤섬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매령산과 바다를 향해 쭉 뻗어나간 배암 혓바닥을 배경삼은 풍경이 아까보다 훨씬 고와졌다. 섬의 주위를 푸른 바닷물로 덧칠해놓은 덕분이지 싶다.

 옥색 바다에 떠있는 가두리양식장도 잠깐의 눈요깃거리가 된다. 행여나 바람이라도 거세질세라 주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근심의 근원이기도 한 시설이다. 섬사람들에게 바람은 곧 풍파다. 어떤 삶에 풍파가 없으랴.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바람에 맞서 싸우기보단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풍요를 가져오게 되었고 말이다.

 오른쪽으로는 간척사업이 빚어놓은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이즈음 우린 중산동과 효지마을 등 자동리에 속한 자연부락과 함께, 봉황산과 선봉산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서해랑길은 두 산의 사이로 난 임도를 따른다.

 눈이 호사를 누리며 600m쯤 걷다가 효지2저수지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바다와 헤어져 내륙으로 파고든다.

 마을(‘쩍골마을이 아닐까 싶다)을 가로지르다 지극히 예스런 풍경을 만났다. 돌과 흙으로 벽을 쌓아올린 다음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다. 장식이라곤 틀도 없는 문이 전부, 그 소박함이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해줬나 보다.

 마을을 빠져나와 또 다시 동천길로 올라선다. 이어서 누동마을 방향(왼쪽)으로 70m쯤 걷다가 임도로 들어선다. 이후부터 서해랑길은 3km쯤 되는 임도를 따른다.

 봉황산(165.5m)과 선봉산(121.5m) 사이로 난 임도는 순하기 짝이 없었다. 정비가 잘 되어 있는데다 경사까지 완만했기 때문이다. 하긴 임도의 길이가 3.1km나 되는데 반해, 가장 높은 지점의 높이가 101m에 불과하니 서둘러 고도를 높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는 양탄자 위를 걷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솔가리가 수북하게 쌓여 여간 폭신폭신한 게 아니다.

 또 다른 즐거움도 있다. 곳곳에서 트이는 조망 덕분에 다각적으로 펼쳐지는 지도의 풍경을 두루두루 눈에 담을 수 있다. 아래 사진은 농업회사 법인인 하늘애‘. 그 뒤로 보이는 게 선봉산인데 121m 높이의 산답지 않게 우뚝 솟아올랐다.

 태천리 해안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하다. 그 뒤로는 다도해가 펼쳐진다. 비파섬과 선도, 병풍도일 것이다. 봉황산 임도는 이렇듯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내륙에는 오룡마을이 있다. 법정 동리인 자동리를 구성하는 5개 자연부락(자동·자서·효지·오룡·중산동) 중 하나로, ‘오룡(五龍)’이란 지명은 마을 지형이 용 다섯 마리의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깨어 꿈틀거린다는 경칩(驚蟄)이 지난지도 벌써 5일이나 됐다. 남녘땅으로부터 꽃소식이 전해진지도 이미 오래, 산수유축제와 매화축제는 이미 시작됐고, 다 다음 주쯤이면 벚꽃축제도 열릴 것이다. 그러니 길가에 들꽃 하나쯤 눈에 띄지 않을 수 있겠는가.

 40분이나 걸어서야 봉황산 임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내려선 도로변 텃밭에는 양배추가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수확이 한창인 농부 앞에서 우린 부부싸움까지 할 뻔했다. 트레킹을 마치려면 아직도 5km 이상 걸어야하는데 양배추 한 포기 얻어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귀경해서 가장 질 좋은 양배추를 사드리겠노라며 달랬지만 자칫 무거워진 배낭을 짊어지고 쩔쩔 맬 뻔했다.

 이 뭣꼬?’ 갈대처럼 생겼는데 꽃은 영 딴판이다.

 400m쯤 도로(동천길)를 따르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해안으로 내려선다. 이어서 길고 긴 오룡방조제의 둑길을 걷는다.

 이때 천사섬 신안의 진면목을 살짝 엿볼 수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들이 바다에 늘어섰다. 소도·연도·마산도·고이도·매화도 등등 그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숨이 차오른다.

 오른편에는 오룡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생겨난 간척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들녘의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오룡마을의 앞에 펼쳐져 있으니 오룡 들판쯤으로 해두자.

 농자천하지대본도 이젠 옛말이 되어버렸나 보다. 들녘의 많은 부분을 태양광발전소가 차지하고 있었다. ‘식량 안보가 남의 나라 얘기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지만 멀쩡한 농경지에 저런 시설이라니...

 하지만 옛 사람들은 한 평의 땅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었다. 그러다보니 일직선으로 뻗어나갔어야 할 방조제가 저렇듯 바다를 향해 배불뚝이처럼 밀고 나갔다.

 방조제와 들녘 사이에는 수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들녘 곳곳에는 저수지도 들어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가 보다. 길고 긴 가뭄은 논바닥을 저렇듯 거북이 등껍질로 만들어버렸다.

 반대편의 갯벌에는 또 다른 문양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도 주변의 갯벌은 농게가 주인이라고 했다. 그러니 저 갯벌은 농게 가족의 삶의 현장이자 삶의 흔적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3시간 10, 배불뚝이처럼 튀어나온 광정리 백양들을 지나자 종점인 지도시가지가 더 또렷해졌다. 이제 종점이 가까워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갯길이 또렷해졌다. ‘생명의 땅 갯벌을 보듬은 실핏줄로, 바닷가 사람들은 갯벌과 마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저 실핏줄을 통해 자연과 소통해왔다.

 신안의 갯벌은 생명의 땅으로 알려진다. 그만큼 많은 식생을 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저 갈매기들도 그중 일부분을 담당할 게고 말이다.

 잠시 후, 이번에는 지도읍의 또 다른 명물로 자리를 굳힌 거북섬이 눈에 들어온다. 본도와의 간극을 없애버린 긴 목교가 눈길을 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3시간 35. 신안젓갈타운에 도착했다. 이제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25코스의 종점이다. 하지만 그 전에 거북섬부터 둘러보자. 신안군의 새로운 명소로 등장했다는데 거를 수야 없지 않겠는가.

 거북섬은 해상탐방로가 놓임으로써 관광지로 변했다. 썰물 때, 그것도 갯벌에 무릎까지 빠질 각오를 해야 들어가 볼 수 있었던 섬이, 마법 같은 나무다리를 놓아 밀물 때도 섬을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500m쯤 되는 거리를 부담스러워 할 필요도 없다. 중간 중간에 만들어놓은 쉼터에서 쉬어가면 될 일이다.

 인생샷을 원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갯벌의 한가운데, 그것도 바닷물에 최대한 다가간 곳에 그네를 설치해 푸른 바다를 배경삼아 그네를 타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갯벌 차지가 됐다. 밀물 때가 가까워졌는지 움푹 팬 갯고랑 사이로 조금씩 물이 차오르면서 농게와 짱뚱어가 부산하다. 또 다른 풍경도 보인다. 무리를 지어 말라비틀어진 저 식생들은 대체 뭘까? 무안·신안의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칠면초는 분명 아닌데...

 6분 남짓 걸어 거북섬에 이른다. 눈에 들어오는 섬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거짓말 좀 보태면 주먹만 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품은 내력만큼은 심상치가 않았다. 탐방로 전체에 식생매트를 깔았음은 물론이고, 해양생물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편안한 쉼터도 만들어두었다.

 길 끝에서 만난 섬은 귀여운 거북이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실제로 거북이가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지 거북이 조형물에다 섬의 지도를 그려 넣었다. 거북섬에도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기본은 277m 길이의 순환코스(해안을 따를 수도 있다)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 정상에 올라앉은 정자에 들러 피톤치드를 들이키며 힐링을 만끽할 수도 있다.

 거북섬에서의 조망도 거침이 없다.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지며 한 폭의 수묵화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 부근은 특히 해넘이가 곱다고 소문났다. 밀물 썰물을 가리지 않고 아름다운 풍광이 연출된단다. ‘놀멍 때리기 딱 좋다나? 그래선지 해변에 저런 의자를 꽤 여럿 놓아두었다.

 관광지로 육성했으니 어찌 포토죤이 빠지겠는가. ‘천사섬이란 신안군의 브랜드처럼 수많은 섬들을 액자 속에 담을 수 있도록 했다.

 거북섬을 빠져나오자 신안젓갈타운이 잠시 들렀다 가란다. 전국 최대의 젓새우 생산지이자, 국내 최초의 천일염 생산지인 신안군에서 만들어놓은 젓갈 전문시장이다. 젓갈 등 수산물 판매장 20개소와 젓갈의 저장·숙성을 위한 저온저장시설, 전시·홍보관 등이 갖춰져 있다.

 젓갈타운 앞에는 신안 갯벌의 상징인 농게를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붉은 발 농게는 한쪽 집게발이 자신의 몸집만큼 커다란 게 특징으로 농발이, 황발이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암컷은 양쪽 집게의 크기가 똑같지만 매우 왜소하다. 수컷은 한 쪽 집게는 암컷과 같지만 다른 쪽은 거대하여 갑각 길이보다도 더 길다.

 지도갯벌 글자조형물과 신안갯벌의 표석도 보인다. 신안 하면 역시 갯벌이다. 다도해형 갯벌로 불리는 신안갯벌은 1,100.86 면적의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198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지정을 시작으로 국내외를 비롯한 수많은 보호지역 지정을 통해 갯벌을 보호·관리해 왔다. 1호 도립공원·습지보호지역·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람사르습지 등등. 이를 알리고 싶었음이리라.

 날머리는 송도교(신안군 지도읍 읍내리)

몇 걸음 더 걸으면 지도와 송도를 잇는 연도교인 송도교가 나오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4시간을 걸었다. 앱에 찍힌 거리가 17.99km이니 꽤 빨리 걸은 셈이다. 4km이상 앞에서 출발시킨 집사람을 따라잡으려 서둘렀던 게 원인이지 싶다.

서해랑길 24코스(봉오제마을-매당마을)

 

여행일 : ‘23. 2. 25()

소재지 : 전남 무안군 현경면·해제면 일원

여행코스 : 봉오제마을곡지마을홀통해변가입마을물암마을금산방조제백동마을창산마을매당마을(거리/시간 : 20.5km/ 실제는 홀통해변부터 15.42km 3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4코스를 걷는다. 10로 이루어진 무안북부·신안 구간의 첫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해제반도의 구릉지와 해안을 이어 걷는다. 덕분에 무안을 상징하는 드넓은 갯벌과 특산물(양파·마늘·양배추)로 덧씌워진 들녘을 실컷 눈에 담게 된다. 주요 볼거리로는 윈드서핑지로 소문난 홀통유원지를 꼽을 수 있다.

 

 들머리는 봉오제마을(무안군 현경면 용정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를 빠져나와 77번 국도를 따라 신안(압해도) 방면으로 내려오다 용정교차로(현경면 용정리)에서 내려오면 곧이어 봉오제 마을에 이르게 된다. 마을 앞 버스정류장이 24코스의 시작점이다. 참고로 봉오제란 지명은 마을 뒤 봉대산에 있었다는 옹산봉수대(甕山烽燧臺)에서 유래했다.

 현경면 봉오제마을(용정리)에서 시작해 해제면 매당마을(창매리)에 이르는 20.5km짜리 코스로 해제반도(海際半島)의 구릉지와 해안을 따라 걷는다. 오늘도 집사람의 체력을 감안 초반 6km를 생략하고, 주요 볼거리인 홀통유원지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혼자서 완주하는 것보다 부족하더라도 함께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버스에서 내려 탄도만부터 카메라에 담고 본다. 물 빠져나간 바다는 시커먼 갯벌이 배를 드러내놓고 있다. 물고기가 숨어든다는 어은도(漁隱島)’는 졸지에 육지가 되어버렸다. 그럼 그 많은 고기는 어디로 가서 숨어있을까?

 실제 출발지는 홀통선착장’, 현경면의 서쪽 끄트머리에서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 홀통’, 그중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축구장 크기만 한 선착장이 만들어져 있다.

 선착장에는 무안군해양스포츠센터와 초당대학교의 해양스포츠연구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윈드서핑대회가 열린다는 현수막도 눈에 띈다. 탄도만의 잔잔한 물결에다 맑은 물빛, 거기에 바람까지 쉬지 않고 불어준다니 무동력 윈드서핑을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바다는 서해안에서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물빛이다. 저리도 물빛이 고우니 원드서핑 마니아들이 어찌 찾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선을 조금 옮기자 탄도가 눈에 들어온다. 무안에서 하나뿐이 유인도로, 그게 의미가 컸던지 만()의 이름으로까지 굳어졌다.

 바람이 무척 거세다. 오늘따라 인지는 몰라도 집사람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하긴 이곳은 윈드서핑의 명소, 그렇다면 저 정도의 바람은 항시 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캠핑장 쪽으로 걸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바닷가 모래사장에는 어선 몇 척이 물이 차오를 때만 기다린다. 하릴없는 어부는 지금쯤 아내가 운영하는 횟집에서 허드렛일을 돕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홀통은 유원지로 개발되어 있다. 때문에 겨울철 비수기에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단다. 주변 해송 숲은 캠핑마니아들로 늘 붐비고, 둘레길 나그네들도 심심찮게 지나간다. 그러니 음식점은 필수가 아니겠는가.

 입소문을 탄 카페도 있었다. ‘cafe water front’가 그 주인공으로 무안이나 목포지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view’가 좋은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했다.

 작은 고개를 넘자 카페에 노래연습장까지 딸린 홀통캠핑장이 반긴다. 호리병 목처럼 잘록한 땅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갯벌, 반대편에는 모래사장이 형성돼 있다. 해변과 닿아있는 저 솔숲은 캠핑장으로 이용된다. 코로나에 시달리는 요즘은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간에서 프라이빗한 여가를 즐기는 ‘()캠핑이 주목받는다고 했다. 그래선지 유원지 숲속은 가족단위 캠핑마니아들로 붐비고 있었다.

 캠핑장 앞은 또 다른 선착장. 그 너머로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가족단위 캠핑마니아들의 조개잡이 체험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캠핑장의 샤워시설이 잘 되어 있으니 갯벌에 뒹굴면서 조개를 잡아도 된다나?

 이때 오류리로 뻗어나가는 기다란 해안선이 눈에 들어온다. 봉오제마을에서 출발한 24코스는 곡지마을을 거친 다음 저 해안을 따라 이곳으로 온다.

 이후부터는 홀통길을 따른다. 홀통해안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다 2차선 도로를 냈다. 때문에 하얀 백사장이 발아래 깔려있는데도 내려가 볼 수는 없었다.

 백사장 너머로는 탄도만의 갯벌이 드넓게 펼쳐진다. 반대편에는 해송 숲이 가로수처럼 도열해 있다. 누군가는 이런 풍경을 남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적고 있었다.

 길가 안내판은 홀통이 호리병처럼 삐죽하게 튀어 나온 땅이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적었다. 긴 백사장과 울창한 해송 숲은 휴양지로 딱 좋고. 물이 맑고 수심이 낮은데다 파도까지 잔잔해 윈드서핑 같은 해양스포츠를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없단다.

 홀통해변도 해넘이의 명소로 알려진다. 지난 번 23코스처럼 밀물 때는 바다가 붉게 물들고 썰물 때는 갯벌이 깨진 거울 파편처럼 황홀하게 반짝인다고 했다. ‘놀멍 때리기 딱 좋다나? 해변에 전망대까지 만들어놓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구간은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3구간이기도 하다. 삽다리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해 홀통해수욕장·가입마을·물암마을을 거쳐 무안생태갯벌센터에서 끝을 맺는 9km 길이의 둘레길인데, 그중 일부(오류동 앞 해안물암마을)가 서해랑길 24코스와 겹치는 것이다.

 해변으로 내려서니 곱디고운 백사장이 양옆으로 끝 간 데 없이 뻗어나간다(사진은 해수욕장 방향). 이왕에 내려왔으니 모래사장을 꼭 걸어보길 권한다. 고운 모래를 밟는 느낌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직접 와서 느껴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극히 서해다웠다고나 할까?

 바람이 얼마나 거셌으면 펜션의 이름까지 ‘wind’로 시작되겠는가. 하긴 윈드서핑 대회까지 열린다니 어련하겠는가. 그것도 윈드서핑·패들링·카이트보딩 등 종목별 참여 선수가 300여명이나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홀통길은 우릴 마산리 선착장으로 데려다준다. 현경면 오류리에서 마산리로 넘어온 것이다. ‘마산(馬山)’은 조선시대에 말목장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단다. 하지만 네이버의 지식백과는 마을형국이 동으로 초장(草場), 서로 방마형(芳馬形)이라는 데서 찾고 있었다.

 선착장 위는 홀통교차로이다. 이정표(종점 12.2/ 시점 8.3)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24번 국도를 따르란다.

 다행히도 가드레일 밖으로 길이 나 있었다. 하지만 300m를 채 못가 길이 없어져버린다. 그리고 서해랑길 표식(리본)을 통해 국도를 건너도록 인도한다.

 덕분에 길을 잘못 드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지레짐작으로 도로를 벗어나 오른편 구릉지로 올라가버렸기 때문이다. 흡사 고속도로라도 되는 양 오가는 차량은 씽씽 잘도 달리는데 보행로가 따로 만들어져 있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억울할 것은 없었다. 구릉지에서 무안을 압축해 놓은 풍경, 즉 끝도 없이 펼쳐지는 채소밭을 만났기 때문이다.

 무안은 한국에서 양파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이다. 전국 양파생산량의 20% 이상이 무안에서 나다보니 여기서는 소도 양파를 먹는단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양파로 만든 특수사료를 소에게 먹인다는 것이다. 덕분에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과 필수지방산이 일반 한우고기보다 많다고 한다.

 또 하나의 특산물로 뿌리를 내린 양배추 밭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겨울철 강추위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했을 저 양배추는 출하가 가능할까? 그러고 보니 언론에 가격폭락으로 인해 밭뙈기로 계약을 했던 중간상인이 연락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었다.

 해남(화원반도)처럼 이곳 무안(해제반도)에서도 심심찮게 둠벙을 만날 수 있었다. 밭농사에도 물은 항시 필요했을 게고, 조상들은 밭의 한가운데나 근처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 웅덩이가 바로 둠벙이다.

 구릉지 너머에선 함해만(또는 함평만)이 드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입구가 좁고 안쪽이 넓은 전형적인 내만(길이 17km, 최대 폭 1.8km)이다. 아무튼 바닷가에 이른 우린 서해랑길(33코스) 특유의 방향표시를 발견했고, 이 표식을 보고나서야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24코스는 북서쪽(가입마을 방향)이 분명한데도, 서해랑길 표식은 자꾸 남동쪽(마산마을 방향)으로 가라했기 때문이다.

 바닷가 안내판은 무안갯벌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안내판 아래 방파제에 붙어있는 방향표시가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함해만은 탄도만과 함께 무안갯벌의 양대 축을 이룬다. 이곳도 갯벌습지보호지역(1) 및 갯벌도립공원(1)로 지정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2008년에는 람사르습지로도 지정됐다. 생물 다양성을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은 덕분이다. 실제로 무안갯벌에는 칠면초·갯잔디 등 47종의 염생식물과 250종의 저서생물이 서식한다. 또한 혹부리오리·알락꼬리마도요 등 52종의 철새가 찾는 곳이기도 하다.

 되돌아 온 국도. 이번에는 해제·지도 방면의 도로변을 걷는다. 둘레길 나그네들을 위한 보행로는 따로 없다. 그런데도 오가는 차량들은 고속도로처럼 씽씽 잘도 달려댄다. 목숨이 위협받는 구간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걸을 일이다.

 조심조심 15분쯤 걸으면 가입리 버스정류장’. 이정표(종점 10.7/ 시점 9.8)는 이곳에서 가입마을로 들어가란다. 계속해서 국도를 따르더라도 물암마을로 갈 수는 있다. 거리도 1km정도 단축된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도로를 피해 가입마을까지 에둘러가도록 해놓은 모양이다.

 나지막한 구릉지를 넘으면 가입마을’. 가입(加入)이란 지명은 조금 더 들어가야 마을을 볼 수 있다는 뜻의 더드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금 전 고개를 넘어올 때의 상황을 이른다고나 할까? 아무튼 상주주씨 집성촌인 저 마을은 팽나무(천연기념물 제310)로 유명하다. 입향 시조인 주근봉이 심었다는데, 수령이 400년도 넘었단다. 하지만 살펴보는 것까지는 사양하기로 했다. 가장 아름다운 팽나무라는 별호로도 모자라 삼년에 한 번씩 볏집 옷까지 해 입혀왔다지만, 2001년 수형이 크게 훼손된 데다 목질부의 부패까지 심하다는 이유로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서해랑길은 가입마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마을 앞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들어 폐교된 수암초등학교 옆 구릉지로 오른다. 참고로 저 학교는 1969년 주씨 문중에서 기부한 땅에다 현경초등학교 수암분교로 문을 열었고, 1974년에는 수암국민학교로 승격까지 했으나 주민 감소라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1996년 문을 닫았다. 현재 대안학교로 변신하기 위해 리모델링 중이란다.

 갈림길 초입에는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에서 세운 이정표가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문화부가 자연경관이나 역사·문화 자원이 뛰어난 도보여행길 중 가볼 만한 곳을 지정해 지원하던 사업으로. 해남 땅끝길,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의 토지길, 안동 유교문화길 등 명성이 자자한 둘레길들이 이 탐방로에 포함되어 있었다.

 구릉지를 넘으면 이번에는 물암마을이다. 법정 동리인 유월리(柳月里)에 속한 자연부락(오류·용산·물암·언창·월암·유투) 중 하나로, 현경면을 달려온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해제면에 바톤(baton)을 넘겨준다. 참고로 물암(勿岩)’이란 지명은 마을 앞 바닷가에 있는 물바위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함해만 건너에는 영광의 랜드 마크인 칠산타워가 우뚝하다. 그 앞은 2019년에 개통한 칠산대교’. 영광군(염산면 옥실리)과 무안군(해제면 송석리)을 잇는 바다 위 다리다. 길이 1.82km의 저 다리는 공사 중 무너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었다.

 물암마을은 당난구지 한뿌리로 나뉘는데, 서해랑길은 마땅히 어려움을 구할 수 있다는 당난구지(當難求地)’부터 들른다. 당나라 사람이 이곳으로 피난을 와 구함을 받았다는 길지이기도 하다. 마을 안길을 지나다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하늘님을 모신 나는 스스로 조화를 정하여 평생 잊지 아니하고 하늘의 도에 맞도록 행한다는 민족종교의 본주문(本呪文)이 벽에 적혀 있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25. 당난구지를 지나면 물암마을회관(이정표 : 종점 9.0/ 시점 11.5), 물암마을(유월3)을 구성하는 당난구지 한뿌리는 회관 앞을 지나는 24번 국도를 가운데 두고 둘로 나뉜다.

 도로를 건너면 한뿌리 마을이다(사진은 마을을 빠져나오다 촬영했다). ‘한뿌리(一根)’란 지명은 마을 뒤 잿등(소나무가 울창했다는 언덕)의 맥이 바다를 향해 하나로 쭉 뻗었다는 데서 유래되었고 한다. 일부 주민들은 마을 지형이 한발로 찌는 방아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를 찾기도 했다.

 마을을 빠져나오니 다시 만난 탄도만이 반갑다며 손짓한다. 24코스의 대부분은 이처럼 탄도만의 해안을 걷는다. 그러니 함해만과의 짧은 외도를 즐긴 후 본가로 되돌아온 셈이다.

 바다에 떠있는 저 섬이 물바위(水巖)’가 아닐까 싶다. 고기잡이 떠난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다 지친 부인이 애기를 업은 채 돌이 되었다는 전설의 바위다. 아내의 혼이 바위가 되었다며 넋바위(魂巖)’로도 불리는데, 부부간의 정이 시원찮은 아낙내들이 저 바위를 찾아가 넋두리를 하거나 쓰다듬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서해랑길은 이제 해안선을 따른다. 탄도만을 옆구리에 끼고 걷다가 방해물이 가로막으면 내륙으로 에돌아간다. 저 앞에 보이는 마갑산(또는 마실산)이 첫 번째 장애물이라 하겠다. 해변에는 용유어촌계장이 내건 경고문도 눈에 띈다. 어업면허를 받은 어촌계 어장으로 고동··꼬막·바지락 등을 양식하고 있으니 사전승인 없이 채취를 금한다는 내용이다.

 500m남짓 걷다가 해안을 버리고 내륙으로 들어선다. 마갑산 해안에 길을 낼 수가 없기에 국도(24)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온다. 바다를 그리워하며...

 구릉지로 오르자 생소한 모양새의 한옥 한 채가 얼굴을 내민다. ‘물바우 황토펜션이라는데 한옥은 단층이라는 고정관념을 확 깨버렸다.

 펜션을 지나자마자 24번 국도로 내려선다. 이어서 도로변을 200m쯤 걷게 되는데, 이때 무화과 가판대가 눈에 띈다. 제철이 아니어서 진열대만이 외롭지만 이곳에서도 무화과를 재배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것도 내다 팔아야 할 정도로 많이. 하긴 이곳 무안은 무화과의 본고장인 영암의 옆 고을이 아니겠는가.

 잠시 후 횡단보도를 이용해 국도(해제·지도로)를 건너니 해제 8명당 중 하나라는 기룡마을(용학4)’ 입구다. 그렇다고 기룡마을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서해랑길은 국도의 우측 아래로 나있는 농로를 따른다.

 이 구간에서 우린 멋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를 만난다. ‘꿈의 드라이브 코스로 소문난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 만큼은 아니어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다. 금산방조제가 만들어놓은 드넓은 들녘도 눈에 담을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600m쯤 농로를 걷다가 그 끄트머리에서 국도를 건넌다. 기룡마을의 터줏대감 함평모씨의 선산인 마갑산(馬甲山)을 왼편에 끼고 에둘러가는 모양새인데, 무안만민교회의 입간판을 기점으로 삼으면 되겠다.

 도로 건너 들녘에는 드론실기장이 들어서 있었다. 이론 수업을 마친 마니아들이 이곳에서 실습을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초당대학교(무안 소재 대학으로 백제약품 계열) 항공드론과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실습장이 될 수도 있겠다.

 몇 걸음 더 걸어 금산방조제로 올라선다. 해제면 용학리에서 시작해 죽도를 거쳐 천장리에 이르는 길고 긴 국가관리 방조제이다. 참고로 무안은 해남 못지않게 간석지(干潟地)가 발달돼 있다. 농지를 만들기 위한 간척사업도 해남에 뒤지지 않는다. 인근 지도(신안군)가 간척을 통해 육지로 연결되었을 정도인데, 이곳 금산방조제도 그중 하나로 보면 되겠다.

 둑으로 올라서니 가락회관(마실횟집)이 잠시 쉬었다가란다. 마침 요기할만한 곳을 찾던 지라 냉큼 다가가 봤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무안에서만 볼 수 있다는 귀하신 몸, ‘나무젓가락을 만나볼까 했는데 아쉬운 일이다. 일회용품 사용 금지와 함께 나무젓가락도 식당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산낙지를 파는 식당에서만은 예외란다. 미끌미끌 살아 꿈틀대는 세발낙지를 쇠젓가락으로 먹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 어쩌겠는가. ! 살아 꿈틀대는 세발낙지가 징그럽다면 기절낙지 낙지 오롱구이를 추천한다.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대섬강은 흐름을 멈추고 호수로 변했다. 거기에 습지까지 품게 되면서 드넓은 농경지의 젓줄이자 철새들에게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우리가 찾은 날에도 오리를 비롯한 철새가 떼를 지어 노닐고 있었다.

 눈이라도 돌릴라치면 갯벌낙지의 보고라는 탄도만이 아스라하다. 오른쪽 홀통(현경면 오류리)에서 시작된 해안이 마산마을과 가입마을을 거쳐 물암마을로 이어진다. 참고로 탄도만은 무안군 운남면·망운면·현경면·해제면과 신안군의 지도읍에 둘러싸인 넓은 만()으로 2008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으며, 전국 최초의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생명의 땅이기도 하다.

 금산방조제의 중간 어림에 들어앉은 대섬(竹島)’에는 선착장이 들어서 있었다. 물길이 튼실해서인지 포구에 정박해있는 어선도 많았고, 그 크기도 다른 선착장들보다 월등히 커졌다.

 물양장에서 낯선 풍경을 만났다. 많은 배들이 뭍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수리 목적은 아닌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하다.

 대나무가 많다는 대섬(竹島)은 풍수상 말의 구시통에 해당된다고 했다. 명당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만민교회(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교회가 아닐까 싶다)에서 울타리를 쳐놓았기 때문이다.

 이정표(종점 5.6/ 시점 14.7)의 지시대로 반대편 방조제를 걷는다. 천장리(泉壯里)의 백동마을 방향이다.

 드넓은 갯벌은 풍경 또한 걸작이다. 검은 갯벌을 옅은 초록이 뒤덮고 있다. 가을철에는 저 위로 붉게 물든 칠면초가 덧씌워진단다. 이때 만들어지는 풍경, 즉 초록과 붉은 풀밭이 무언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나?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23. 800m쯤 더 걷다가 바다와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백동마을을 향해 구릉지로 올라간다. 이때 동구 밖에서 정자나무로 둔갑한 멀구슬나무의 멋진 풍모를 엿볼 수 있다.

 백동(栢洞)’이란 지명은 마을에 잣나무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탐방로는 백동마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저 스치듯 지나갈 따름이다. 때문에 한국전쟁 때 희생된 주민 148명을 기리는 위령비는 둘러볼 수 없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에 묵념이라도 드렸으면 좋았으련만...

 백동마을 역시 구릉지에 걸터앉았다. 그 위를 걸어가는 나그네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길은 또 다른 백동마을로 나있다. 백동마을이 2개의 자연부락(백동 및 가실)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어떤 부락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탐방로가 마을을 살짝 비켜나있어 확인해볼 수도 없었다.

 아무튼 탐방로는 해안으로 곧장 내려가는 지름길을 버리고, 마을을 에둘러서 간다. 땅이 바다만큼 낮아 어디를 둘러봐도 하늘이 절반이라는, 풍경으로만 따진다면 하늘이 열 일을 한다는 무안의 이국적인 멋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답다고 해서 가슴 아픈 현장이 없겠는가. 지난 해 양배추(배추 포함) 농사는 작황이 무척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생산과잉이 되면서 가격하락이 뒤따랐고, 많은 농가들은 밭을 갈아엎는 아픔을 겪었다. 저 농부는 끝까지 버텨보다 이제야 갈아엎고 있나 보다.

 잠시 후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리고 내륙을 향해 동그랗게 파고들어 온 창매리(蒼梅里)의 해안선을 따라 탐방을 이어간다. 아니 방조제 아래로 난 농로를 한참 걷고 난 뒤에야 해안으로 올라선다. 이 구간에서 우린 탄도만의 풍경을 새롭게 담는다. 배를 드러낸 갯벌에 누워있는 어선들, 시선을 조금 옮기면 바다 건너 홀통해변의 전체적인 풍광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다가온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저 길도 노두(路頭)라 부를 수 있으려나? 갯벌에 놓은 어민들의 작업도로 말이다. 아무튼 바닷물에 잠겼던 길이 드러나 있기에 갯벌로 내려서봤다. 이곳이 칠면초의 군락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해살이 풀이어선지 칠면초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짭조름한 맛을 느껴보려고 했는데 아쉽다.

 해안선을 따르던 탐방로가 또 다시 내륙으로 파고든다. 백동마을 앞 해안에서 1km쯤 떨어진 지점인데, 중매산으로 가는 바닷가에 길이 나있지 않은 모양이다. 이어서 200m쯤 더 걸어 창산마을 앞 도로(이정표 : 종점 2.6/ 시점 17.9)로 올라선다.

 창선마을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지나친다. ‘창산(蒼山)’이란 지명처럼 푸름으로 가득한 철마산(지형이 말 형상으로 생겼단다)을 배경삼아 마을이 들어섰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58. 서해랑길은 이제 창매로를 따라간다. 24코스의 종점인 매당마을까지 이어지는 2차선 도로이다. 이 구간을 걸으며 우린 문드러져가는 배추밭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작황이 좋아도 걱정, 나빠도 걱정이라던 어느 농부의 넋두리가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600m쯤 더 걸으면 창매교회’, 이정표(종점 1.9/ 시점 18.6)는 버스정류장(창매리) 앞에서 도로를 벗어나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24코스 종점까지 도로가 뻥 뚫렸는데도 중매산을 에둘러가는 임도를 따르라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밭두렁을 따라 굽이굽이 휘도는 오솔길이 저리도 고운데, 삭막한 도로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탄도만을 위에서 바라보는 호사까지 누리지 않겠는가.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동그랗게 휘돌아나가는 탄도만의 끝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바닷물이 빠지고 민낯을 드러내는 저 갯벌은 어부에게는 생명의 땅이다. 대바구니를 짊어진 남정네들은 삽으로 갯벌을 파헤쳐 낙지를 잡고, 아낙들은 밭을 매듯 갯벌에 쪼그려 앉아 호미로 조개를 캔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바닷물이 밀려온다.

 임도로 들어선지 20분 남짓. 중매산(또는 매령산)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양지바른 산자락에 걸터앉은 매당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맹당으로 시작해, ‘맨댕이를 거쳐 현재는 매당(梅堂)’으로 불리는 마을이다.

 탄도(炭島)까지 물러났던 바닷물이 회색빛 갯벌을 야금야금 점령해오고 있다. 그러자 물이 빠지면 걸어서도 들어갈 수 있다는 꼬맹이 개구리섬(蛙島)’이 바다 위로 떠오른다. 운이라도 좋으면 모세의 기적을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조금 늦었나보다.

 마을로 들어서니 잘 생긴 팽나무 두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팽나무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나무다. 그래선지 서해랑길을 걷다보면 저런 팽나무를 심심찮게 만난다. 한편 팽나무는 포구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 매당마을도 의젓한 포구다. 그러니 정자나무 역할을 하는 팽나무 한두 그루 어찌 없겠는가.

 날머리는 매당노인회관’(무안군 해제면 창매리)

탐방로는 마을을 관통한다. 그리고 끄트머리쯤에 위치한 매당노인회관 앞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참고로 매당이란 지명은 마을 뒷산이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이 마을뿐만 아니라 인근마을에서도 매령산으로 기우제를 지내러 왔다는 것이다. 하늘이 감응이 빠를 정도로 산의 기운이 좋았기 때문이란다. 그런 이유로 명당으로 불리다가, ‘맹당을 거쳐 현재의 이름인 매당으로 굳어졌다고 전해진다.

 서해랑길 안내도(무안25코스)는 노인회관 옆 민가의 담벼락에 기대듯 세워놓았다. 오늘은 3시간 40분을 걸었다. 앱에 찍 거리가 15.42km이니 빠른 속도로 걸은 셈이다. 강풍으로 인해 떨어진 체감기온을 끌어올리려고 속도를 냈던 모양이다.

서해랑길 23코스(운남정류장-봉오제마을)

 

여행일 : ‘23. 2. 11()

소재지 : 전남 무안군 운남면·망운면·현경면 일원

여행코스 : 운남(삼거리) 버스정류장저동마을두곡마을성동마을송현마을조금나루낙지공원송정마을봉오제마을(거리/시간 : 19.5km/ 실제는 송현교차로부터 13.77km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3코스를 걷는다. 6로 이루어진 목포·무안남부구간의 마지막 구간이기도 하다. 무안군의 서쪽 들녘과 해안을 이어 걷는데 중간에 조금나루라는 명소를 지나게 된다. 운남면(왼편)과 현경면(오른편) 사이에 놓인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이때 끝 간 데 없이 너른 바다를 양옆에 끼고 걷는다. 낙지와 조개류가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황금어장이라니 운 좋으면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도 있겠다.

 

 들머리는 운남(삼거리) 버스정류장(무안군 운남면 연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를 빠져나와 77번 국도를 따라 신안(압해도) 방면으로 내려오다 팔학교차로(운남면 동암리)에서 내려오면 곧이어 운남면사무소에 이르게 된다. 면사무소 다음의 버스정류장(삼거리) 23코스의 출발지점이 된다.

 운남면사무소에서 시작해 망운면을 거쳐 현경면(봉오제)에 이르는 19.5km짜리 둘레길로 초반부는 주로 들길, 후반부는 해안길을 걷게 된다. 이중 후반부(조금나루부터)는 무안의 명품 둘레길인 노을길로 포장되어 있다. 집사람의 체력을 핑계 삼아 초반부를 생략해버린 이유이다. 거리가 너무 짧은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송현교차로(조금나루에서 3km쯤 전방)에서 시작하는 지혜로 대신했다.

 23코스의 안내도와 이정표(종점까지 19.7km)는 버스정류장(삼거리) 뒤편 공터에 세워져 있다.

 실제 출발지는 송현교차로(무안군 망운면 송현리), 오늘도 집사람에 대한 배려가 먼저이다. 불편한 무릎을 핑계 삼아 초반부를 생략하고 출발지(운남면사무소)에서 6km쯤 떨어진 송현교차로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77번 국도를 타고 무안방면으로 나가다 조금나루 방향으로 빠져나오면 된다.

 이곳은 송현마을. 집채보다도 더 큰 빗돌이 남도낙지1번지라며 너스레를 떤다. 맞다. 이곳 송현마을 주변 갯벌은 남도 최대의 낙지어장으로 꼽힌다. 특히 타 지역의 낙지와는 달리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게 일품이라나?

 조금나루길을 따라 200m쯤 걸으면 송현보건진료소’, 송현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챙겨주는 곳이겠지만, 나에게는 서해랑길과의 첫 만남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계속해서 조금나루길을 따른다. 송현4리의 자연부락인 유종동(儒宗洞, 오른쪽)과 성동(왼쪽)을 양옆에 끼고 걷는 모양새이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성동(星洞)’ 마을회관 앞을 지난다. 원래 이름은 서은동(鼠隱洞), 마을 지형이 쥐가 숨어있는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송현교회 앞마당의 물렛(문랫)도 눈여겨볼만 하다. 한때는 마을에서 제사까지 지내오던 신석(神石)이었다니 말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3. 탐방로는 도로(조금나루길)’를 벗어나 농로로 들어선다. 초입에 신창맹씨 세장비(新昌孟氏 世葬碑)’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맹씨의 유래와 이 마을 입향조 맹윤창의 사적을 기술했는데, 맹씨는 김해김씨(마을에는 통훈대부김진관유허비도 있다)와 함께 송현마을의 양대 성씨이다.

 송현마을로 가는 길, 해남의 화원반도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 전체가 구릉지인 것이다. 하지만 배추 일색이던 해남과는 달리 이곳은 사방이 온통 마늘과 양파 밭 일색이었다.

 마늘과 양파는 무안의 양대 특산물이다. 황토의 게르마늄과 바닷가 해풍, 온난한 겨울철 등 삼박자가 어우러지면서 명품 구를 만들어내는데, 이게 크고 튼실한 것은 물론 고유성분도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단다.

 현대인의 삶은 경제를 바탕에 둔다. 농민이라고 해서 남의 집 불구경이겠는가. 농작물의 전유물이던 땅을 서서히 잠식해가고 있는 저 잔디밭이 그 증거라 하겠다.

 그렇게 10분쯤 걷자 송현(松峴, 송현4)’마을에 이른다. 송현(솔고개 또는 솔재)이란 지명은 소나무가 많은 고개 아래의 동네라는 데서 유래했다. 경작지 확장을 위해 나무를 베어버린 탓에 지금 민둥이 되어버린 마을 뒤 고개에 소나무가 울창했다는 것이다. 그림자만 해도 200평이 넘었다는 마을 앞 소나무는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고 한다.

 마을을 빠져나온 다음 이번에는 마을 앞 해안을 따라 조금나루로 간다. 시와 그림으로 도배된 방파제를 끼고 걷는 멋진 구간이다. 이때 송현마을을 대변하는 문장 하나 항상 맑으면 사막이 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야만 비옥한 땅이 된다.

 마을 앞 선착장에는 낙지잡이 삼매경인 어부를 그렸다. 송현마을은 앞뒤가 바다라는 게 특징이다. 이 바다에 물이 빠지면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드러난다. 배를 몰지 못하는 때다. 그렇다고 어부들이 놀 리가 있겠는가. 어부들은 이때도 바다에 나가 촉촉한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는다.

 조개잡이는 동네 아낙들 몫인가 보다. 조개잡이에 한창인 그녀의 뒤로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마을의 특산물인 낙지는 시()로도 얼굴을 내민다. 황성신 시인의 작품이라는데, 그는 노을’, ‘바다 등 갯마을 풍경에 어울리는 작품들을 여럿 적어놓았다. 불경에 나오는 명심보감용 문구들도 심심찮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마을 앞은 넓디너른 갯벌이다. 그러나 예전엔 모래사장이었다고 한다. 물이 빠지면 거대한 모래 운동장으로 변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주었고 주민들은 모래밭에서 공을 차고 씨름도 했단다. 그게 건축자재로 모래를 퍼가면서 이제는 코앞까지 펄이 됐다. 지형은 변했어도 갯벌은 여전히 풍성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갯벌 곳곳에 흩어진 어선들은 물이 차오르기만 기다린다. ! 평평하게만 보이는 갯벌에도 높낮이는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게 갯고랑(전남 지역에서는 개웅이라 한다)이다. 어부들은 그 고랑을 용케도 찾아내고, 이제는 길이 된 고랑을 따라 바다로 나간다.

 조금나루는 방파제(주민들이 해모가지라 부른다는 제방일지도 모르겠다)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맞다. 예전의 조금나루는 조금 때는 육지와 연결되지만 평시에는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작은 섬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방파제가 놓이면서 이제는 의젓한 육지가 되었다.

 바다는 이제 양옆으로 펼쳐진다. 운남면 앞바다 일색이던 조금 전과는 달리 오른편에서 탄도만이 새로운 풍경으로 추가된다.

 초입의 표지석이 조금나루에 들어왔음을 알린다. 조금나루는 현재 유원지로 개발되어 외지인들을 유혹한다. 여름철에는 피서객들로 붐비기도 한단다. 아니 옛날에도 여긴 사람들로 붐볐다고 했다. 조선시대는 징수한 세곡을 영광목관으로 보내던 주요 항구였고, 조금 때면 칠산바다의 고기잡이배들이 들어와 쉬어가던 곳이었단다.

 서해랑길은 이제 조금나루의 해안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돈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왼쪽의 갯벌 너머는 운남면(같은 무안군 소속)이다. 이 구간에서 우린 운남반도의 북쪽, 내리에서 동쪽으로 휘도는 해안 풍경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45. 조금나루의 중간쯤에 들어선 송현항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2020 어촌뉴딜 300사업에 선정되어 현재 정주여건 개선공사(선착장·선양장 정비, 부장교 설치)가 진행 중이란다. 참고로 어촌뉴딜 사업은 가기 쉬운 어촌’, ‘찾고 싶은 어촌이라는 주제로 낙후된 어촌과 어항 300개를 현대화해 어촌의 경쟁력을 새롭게 키우는 정책이다.

 현대인들은 조그만 낭비도 허용하지 않는다.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까지 한 점도 놓치지 않겠다며 만들어놓은 저 풍력발전기(운남면 내리)가 그 증거다.

 모퉁이(근처 이정표 : 시점 9.5/ 종점 10)를 돌자 이번에는 조금나루 선착장이 나온다. 너른 선착장에는 대합실까지 들어서있었다. 탄도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루에 한 차례 왕복하지만 물때에 따라 유동적이란다)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공사가 한창이어선지 문은 열고 있지 않았다.

 이곳도 역시 중장비가 바쁘게 움직인다. ‘송현항과 같은 공사가 한창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어울림-송현과 자연을 잇다라는 catchphrase로 추진되고 있는 이 공사는 마을+주민, 주민+방문객의 어울림을 기본으로 한단다. 삶의 근간인 마을과 바다를 주민들의 쉼터 및 쾌적하고 안전한 일터로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안내판은 조금나루에 대해 알려준다. ‘조금나루에서 조금(반대어는 사리이다)’은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때인 음력 초여드레와 스무사흘을 이르는 순 우리말이다. 그런 조금에도 이곳에서는 나룻배를 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주민은 조금 때 물이 빠지면 마을 앞 섬인 탄도와 선도로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는 데서 유래를 찾고 있었다.

 이후부터는 무안의 명품 둘레길인 노을길을 따른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확 달라진다. 탄도만을 북쪽으로 휘돌아가는 해안 풍경이 일목요연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코앞에 있는 탄도는 물론이고 신안의 선도와 지도까지 눈에 들어옴은 물론이다.

 조금나루의 해안사구 해송 숲, 소나무 숲 사이로 여기저기 캠핑을 즐기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들어앉았다. 가족단위 여행지로 이미 입소문을 탔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썩 넓지는 않지만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도 있으며, 갯벌에서는 게 고동 낙지 등을 잡는 갯벌체험도 가능하다니 이를 말이겠는가. 모래 유실로 시달리는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갯고랑 너머로 낮고 길쭉한 섬 하나가 보인다. 무안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인도인 탄도. 조금나루에서 2.5km쯤 떨어진 작은 섬으로 50여 명이 살고 있단다. ‘숯섬이라는 의미로 탄도(炭島)라 표기하지만, 무안문화원은 여울섬을 뜻하는 탄도(灘島)가 더 적합하다고 지적한다. 섬의 크기로 봤을 때 숯을 만들 만큼 나무가 많았다고 보기 어렵고, 서해로 이어지는 물목이어서 예전부터 여울도로 불렸기 때문이란다.

 송현마을 입구 삼거리(이정표 : 유종동 1.5/ 송현/ 조금나루)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왼편(유종동 방향)으로 간다. 참고로 조금나루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30분이 걸렸다.

 낙지와 어패류가 지천이라는 갯벌은 생태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주민에게는 물론 삶의 현장이다. 초입의 안내판은 낙지산란장에 대해 적고 있었다. 하지만 게시된 그림처럼 생긴 시설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안내판이 위치를 잘못 잡은 듯하다.

 관광안내도 앞에는 어르신용 보행기가 세워져 있었다. 갯벌로 내려가는 시멘트길 끄트머리에는 그보다 많은 보행기가 머무른다. 조개잡이 나온 어르신들이 몰고나온 모양인데, 어촌 역시 고령화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도로변 방파제에는 염생식물인 칠면초를 그려놓았다. 칠면초(해마다 색깔이 7번 변한다는 바다의 단풍)가 널리다시피 한 인근 갯벌을 나타내고 싶었음이리라. 칠면초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예쁜 가을철에 다시 찾아오라며...

 어장 근처에서 길이 나뉘고 있었다. 왼쪽은 해안길. 하지만 도로공사가 끝나지 않은 탓인지 서해랑길은 구릉지 위를 걷는다. 무안 북쪽에서 탄도만을 향해 바늘처럼 솟은 작은 반도의 등허리를 밟는다고 보면 되겠다. 하나 더. 노을길 도로변은 해당화 꽃밭으로 가꾸고 있었다. ‘국화인 무안군 군화를 해당화로 바꾸기라도 하려는 걸까?

 낮은 구릉지를 넘다가 팽나무 숲을 만났다. 매년 정월 대보름 당산제를 모시는 숲으로, 이때 송현마을의 입향조가 정착할 때 심은 팽나무가 신목(神木)이 된단다.

 다시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 갯벌과 하늘이 반반이다. 땅도 바다만큼 낮아 어디를 둘러봐도 하늘이 절반이다. 노을길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저런 풍광이 펼쳐진다.

 어촌뉴딜 300사업과는 다른 공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무안 유일의 유인도인 탄도의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사로, 해저 암반층을 굴착한 다음 3,090m나 되는 상수도관을 묻는다고 한다.

 잠시 후 낙지공원(이정표 : 시점 12.3/ 종점 7.2)’에 이른다. 무안의 특산물인 낙지를 알리고자 조성된 캠핑 공원으로 전망대와 무인카페, 카라반, 야영데크 등으로 이뤄진 일종의 유원지이다. 밤에는 공원 전체가 은은한 경관조명으로 물들기도 한단다. 참고로 송현교차로(트레킹 출발지)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공원 한가운데는 14m 높이의 낙지 모양 전망대가 자리한다. 낙지 머리를 흐느적거리는 여섯 개의 다리가 받치는 형상이다. 그나저나 계단을 타고 올라 잔잔한 서해를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니 한번쯤 올라볼 일이다.

 바다생물 모양의 창밖으로 탄도만의 광활한 풍경이 펼쳐진다. 유리창의 얼룩이 시야를 방해하는 건 약간의 흠, 하지만 해안선과 나란히 늘어선 모래사장과 그 안쪽으로 펼쳐지는 갯벌은 자랑거리다.

 여섯 개의 다리 가운데 두 개는 미끄럼틀로 만들었다. 조망을 즐긴 다음 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며 동심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것이다.

 낙지전망대를 오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듯, 데크 전망대를 따로 만들어놓았다. 물위를 걷는 듯한 스릴까지 덧대놓은 전망대에 서자 탄도만의 광활한 풍경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그네 비슷한 놀이기구는 물론이고, 바닷가를 암시하는 듯한 조형물도 여럿 세워두었다. 그런데 저 조형물은 대체 뭘 나타내고 있을까? 갯벌로 소문난 무안의 바닷가이니 조개나 낙지를 잡는 어부들을 형상화했을지도 모르겠다.

 쉼터도 낙지모양으로 만들었다. 내부는 무인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다.

 야영장에는 선인장(백년초) 꽃밭도 조성되어 있었다. 조금나루의 모래사장에 지천으로 널려있었다는 선인장 군락을 재현해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낙지공원 양쪽으로는 해송 숲과 백사장이 길게 이어진다. 일몰 시간에 맞추면 숲속에 앉아 낭만적인 일몰도 감상할 수 있단다. 그 노을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둘레길 브랜드(노을길)로 굳어졌다는 설도 있으나 믿거나 말거나이다.

 노을길에 대한 안내도도 보인다. 조금나루 해변에서 출발해 현경면의 봉오제에 이르는 8.9km짜리 해안길이란다. 이 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한적한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덕분에 무안의 어촌과 갯벌의 전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노을길로 나가 다시 길을 나선다. 이때 유종동(송현4)’의 마을 뒤 능선인 중구등이 오른편으로 펼쳐진다. 나지막한 구릉지이지만 망운면에서는 가장 높은 지대라고 한다.

 77번 국도에 다가간 다음 목서리로 넘어간다. 이때 대섬(竹島)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이름은 자라섬이었는데 섬에 시누대가 무성해지면서 대섬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참고로 목서리는 목관(목장을 관리하는 감목관이 주재하던 관청으로 현 망운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해랑길은 목서리의 6개 자연부락 중 장재·내덕·외덕 마을의 해안을 지난다.

 움푹 파인 해안선은 들어갈수록 육지는 멀어지고 갯벌은 그만큼 더 넓어진다. 바다가 땅에 갇히고 땅이 바다에 포위된 형국이다.

 갯벌을 빠져나오는 저 어부들의 어구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누군가의 입을 빌려본다. 바다는 부족하지만 궁핍의 자국은 없다고. 가지지 못해 안달하기보다는 모자라는 대로 만족하는 여유가 어부에게 배어 있다는 것이다.

 줌으로 당겨보니 섬이 둘로 나뉘었다. 기존의 대섬에다 오강섬이 추가된 것이다. 오강처럼 작은 섬이지만, 주민들이 노두(路頭)로 연결시킨 덕분에 외지에서 온 가족단위 소풍객들이 자주 찾는단다. 아무튼 두 섬의 사이로 낙지산란장이 들어서면서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안지역의 농토는 거의가 붉은 황톳빛이다. 노을길 가꾸기 사업의 일환인지는 몰라도 그곳에 유채가 심어져 있었다. 봄이면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맞다. 이곳은 볼거리가 많기로 소문난 둘레길이다. 해질 무렵 서정이 사무치게 아름다워 노을길로 부른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12. 장재마을 갈림길(이정표 : 시점 14.3/ 종점 5.2)에 닿았다. 77번 국도의 아래를 통과하면 장재마을(목서리), 서해랑길은 국헌횟집을 향해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국헌횟집 근처 바닷가에는 장재선착장이 들어서 있었다. 꼬맹이 어선 두엇이 정박되어 있을 뿐인 작은 포구다. 그래선지 어민들의 쉼터도 컨테이너박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후부터는 해안에 잇대어 내놓은 도로를 따른다. 오가는 차량이 없어 탄도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두루두루 살피며 걷기에 딱 좋은 구간이다. 하지만 그늘이 없어 여름철에는 지옥의 행군이 될 수도 있겠다.

 대섬과 요강섬(‘오강섬이라고도 한단다)이 부쩍 가까워졌다. 그러자 대섬이 등치를 한껏 부풀린다. 맞다. 대섬은 한때 사람이 살았었고, 당시 사용하던 옹달샘도 남아있다고 했다.

 잠시 후, 또 다른 선착장을 만났다. 최근에 새로 만든 모양인데, 내덕마을 해안이니 내덕선착장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내덕마을 해안의 방파제도 벽화를 그려놓았다. 그나저나 노을길은 만남의 길, 자연행복 길, 노을 머뭄 길, 느리게 걷는 길 등 4개의 산책로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송림숲 공원, 낙지공원, 전망대 쌈지공원 등도 끼워 넣었단다. 그렇다면 이 구간은 어느 산책로에 포함됐을까? 이를 알리는 안내판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32. 바닷가에 조성된 쉼터를 만났다. 노을길은 이렇듯 중간 중간에 쉼터를 만들어놓았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풍광은 일품이다. 서해바다와 갯벌이 어우러지면서 더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런 쉼터에서 감상하는 노을과 석양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란다.

 작은 공원(이정표 : 시점 16.3/ 종점 3.2)도 조성되어 있었다. 잘 지어진 정자는 물론이고, 데크 산책로까지 보탰다. 노을길 안내도에 그려져 있던 외덕 해안공원이 아닐까 싶다.

 이 즈음 물고기가 숨어든다는 어은도(漁隱島)’가 눈에 들어온다. 이를 줄여 요즘은 엄섬으로 부른단다. 갯고랑에 그림자를 드리운 어은도를 끼고 이어지는 해안의 바위는 유암포(기름바위). 썰물 때 물이 흘러내리면 모양이 기름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덕마을 해안을 지나 송정리로 들어간다. 망운면에서 현경면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바닥이 보도블럭으로 바뀌어 있다.

 엄섬과 대섬, 그리고 요강섬이 한꺼번에 어우러지며 한 폭의 수묵화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다. 참고로 이 부근은 해넘이가 곱다고 소문났다. 밀물 때는 바다가 붉게 물들고 썰물 때는 갯벌이 깨진 거울 파편처럼 황홀하게 반짝인단다.

 서해랑길은 하수장마을(송정1)을 스치듯 지나간다. 원래 이름은 수장(水長), 마을 앞 우물의 수질이 좋고 양이 풍부하다는 데서 유래됐는데, 1970년대 24번 국도가 마을을 가르고 지나가면서 상수장과 하수장으로 분리되었다고 한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53. 고급어종인 바리류(다금바리, 농성어 등)의 종묘양식장을 지나면 송정마을 어장이다. 바다는 한창 물이 차오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바다로 나가고 싶은 어부는 이미 배에 올라 출어를 준비한다.

 갈대밭도 눈에 띈다. 순천만이나 강진만의 갈대밭처럼 광활하지는 않지만 풍경화 한 폭을 그려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맞다. 노을길은 탄도만이 갖고 있는 저런 풍광, 즉 천혜의 갯벌과 모래해안, 송림숲 거기에 노을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조성됐다.

 탐방로는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린다. 그리고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23코스의 종점인 봉오제 마을이 불쑥 떠오른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해제반도가 눈에 들어온다. 봉오제 마을을 지난 탄도만 해안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가 오류리 검무산 아래 해안으로 쑥 물러난다. 무안의 또 다른 명소인 홀통해변은 그 해안이 다시 한 번 튀어나온 지점에 놓여있다.

 날머리는 봉오제 삼거리(무안군 현경면 용정리)

문 닫힌 낙지 전문식당 회랑낙지랑을 지나면 현해로로 올라서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봉오제 삼거리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봉오제 봉대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봉화를 올리던 봉대산(옹산이나 봉오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래에 위치한다는 데서 유래했다.

 서해랑길(무안 24코스) 안내도는 삼거리 조금 못미처에 세워져 있었다. 오늘은 3시간 30분을 걸었다. 앱에 찍힌 거리가 13.77km이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그만큼 코스가 쉬웠다는 증거일 것이다.

서해랑길 20코스(청계면사무소-용동마을)

 

여행일 : ‘23. 1. 14()

소재지 : 전남 무안군 청계면 및 망운면 일원

여행코스 : 청계면사무소복룡마을강정마을톱머리해변무안공항두모마을용동마을(거리/시간 : 18.7km/ 실제는 복룡마을에서 무안공항까지 8.18km 2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0코스를 걷는다. 6로 이루어진 목포·무안남부구간의 세 번째 구간이기도 하다. 무안군의 서쪽해안을 걷는 이 구간은 복룡마을 벽화나 톱머리해안의 다도해 풍광을 빼면 볼만한 게 없다. 걷는 도중 무안의 별미인 낙지를 맛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랄까?

 

 들머리는 청계면 복합센터’(무안군 청계면 도림리)

서해안고속도로 일로 IC를 빠져나와 815번 지방도, 구암삼거리(청계면 청계리)에서 국도 1호선(무안·나주방면)으로 옮기면 잠시 후 도림리에 이르게 된다. 청계면사무소의 소재지이다. 서해랑길(무안 20코스) 안내도는 청계면 복합센터 앞에 세워져 있다.

 청계면 복합센터를 출발해 톱머리해변과 무안공항을 거쳐 망운면 용동마을(송현리)에 이르는 18.7km짜리 둘레길. 그러나 우리부부는 앞뒤를 빼버리고 복룡마을에서 무안공항까지 8.18km만 걸었다. 하지만 20코스를 대표하는 볼거리 톱머리해변과 복룡마을 벽화를 눈에 담았으니 볼만한 것은 모두 본 셈이다.

 20코스의 시작 지점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복합센터 앞 전신주에 매달려 있다.

 실제 출발지는 청운로(청계교차로망운면 목서리) 상에 있는 복룡마을(청계면)’ 버스정류장으로 삼았다. 연골주사까지 맞아가며 따라나선 집사람에게 18.7km는 다소 무리였기 때문이다. 완주가 일상화 된 나로서는 다소 서운한 일이지만 눈요깃거리 없는 내륙구간을 생략했으니 억울하지는 않다. 더구나 단축으로 인해 생긴 자투리 시간을 무안의 별미 낙지를 먹는데 썼으니 오히려 더 잘 되었다고나 할까?

 핸드폰에 깔아놓은 ‘GPX 트랙 복룡교차로로 가란다. 하지만 난 복룡마을(교회 앞을 지난다)부터 들러보기로 했다.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담장을 온통 벽화로 채워 넣었다는데 한번쯤 둘러봐야 하지 않겠는가.

 복룡마을(‘용수동 또는 장자산으로도 불린다)로 들어서자 잘생긴 용() 한 마리가 길손을 맞는다. 용이 엎드려 쉬는 형상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표현한 모양이다.

 마을회관의 담벼락은 듬직한 한우가 차지했다. 그나저나 저 벽화는 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단다. 빛의 반사를 통해 어두운 밤에도 환하게 빛나 야간 운행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볼거리에 안전사고 예방까지 더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인 셈이다.

 나머지 담벼락은 어린이들 차지다. 말뚝박기(말타기)와 딱지치기, 널뛰기 등 옛 추억을 소환시키는 놀이들을 그려놓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아이는 동무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창문을 기어오른다. 행여 어른들이 눈치라도 챌세라 조심조심.

 벽화의 대미는 90년대 교과서에 나오는 영희 캐릭터. ‘K-드라마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던 오징어 게임에서는 술래 로봇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이는 극한 게임, 참가자들은 영희(로봇)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동안 움직이고 고개를 돌리면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는 방식으로 5분 안에 결승선을 통과해야만 했다.

 영희 캐릭터 앞에서 만난 이정표(톱머리해수욕장 6.6km)는 종점까지 13.2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5.5km를 단축한 셈이다. 아니 이미 0.5km쯤 걸어왔으니 오늘 걷게 될 거리는 13.7km쯤으로 보면 되겠다.

 탐방로는 실개천을 따라간다. 개천가를 따라 농로가 나있는데, 아까 복룡마을로 들어오면서 살펴봤던 벽화들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을 수 있는 구간이다.

 15분 만에 출발지점(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방향인 복룡교차로로 간다.

 교차로에서는 두이아스콘의 거대한 시설물을 바라보며 직진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5. 강정마을 앞 오거리에 이른다. 길이 네 갈래로 나뉘어 다소 헷갈릴 수도 있으나 이정표(종점까지 12.1km)가 설치되어 있으니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참고로 직진 방향의 두 길은 모두 해안로(825번 지방도)’로 연결된다.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자 진행방향 저만큼에 태천(台川)’ 마을이 놓여있다. 법정 동리인 강정리에 속한 2(강정·태천) 자연부락 중 하나다. 마을 뒷산인 고림봉 봉대산으로도 불리는데, 조선시대 주요 통신수단이었던 봉화대가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무안에는 봉대산 4개나 있단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마을 앞 들녘은 끝 간 데 없이 드넓었다. 맞다. 예전에 이 마을은 풍요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김이 무럭무럭 날 정도로 부자마을 이었다는 것이다. 주변 마을에서 쌀을 빌리러 오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마을들이 더 잘 사는 곳이 되어버렸다나?

 양파 밭이랍니다.’ 마늘과 양파를 헷갈려하는데 집사람이 잎의 생김새부터 다르다면서 꼼꼼히도 알려준다. 첫째 무안은 양파의 전국 최대 생산지라서 양파를 빼놓고는 무안을 말할 수 없단다. 둘째는 품질. 비옥한 황토 들녘에서 자란데다, 풍부한 일조량과 해풍으로 다져져 육질이 단단할 뿐만 아니라 먹으면 단맛까지 난다는 것이다.

 탐방로는 마을을 관통한다. 마을회관 옆으로 난 고샅으로 들어서는데, 가슴에 담아둘만한 볼거리는 없었다.

 마을 뒤 고개(‘국수댕이 잔등이라 부르고 있었다)를 넘어가면 ‘815번 지방도를 마주한다.

 폭넓은 도로(4차선) 아래로 난 굴다리는 다용도인가 보다. 우리 같은 나그네들에게는 보행로이지만, 인근 농민들에게는 훌륭한 농자재 창고가 되어주고 있었다.

 굴다리를 빠져나오면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직진은 폐교된 청계서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농산물종합가공지원센터(농산물 가공제품을 생산판매 하고자 하는 농업인의 창업 인큐베이팅 역할)를 거쳐 도대리로 연결된다. 서해랑길은 왼편,  815번 지방도의 옆으로 난 농로를 따른다. ! 오른편은 자연스럽게 소멸되어버리는 길이니 염두에 두지도 말자.

 탐방로는 도대(道垈)’마을을 스치듯 지나간다. 교회의 첨탑이 흡사 랜드마크라도 되는 양 우뚝 솟아오른 마을이다. 이 마을의 옛 이름은 절골’, 마을에 절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해당화가 많다며 해당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마을 중앙으로 길이 나면서 도대(刀垈)’라 했는데, 언제부턴가 도대(道垈)’로 변했다.

 이번엔 양파와 함께 무안 농산물의 양대 축을 이루는 마늘밭이란다. 저 마늘은 한때 내 지우를 힘들게 만들기도 했었다.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 뒤이은 중국의 보복조치(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 중단)로 인해 고뇌를 거듭하던 지우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55. 탐방로는 도대교차로를 지난다. 또 다시 만난 ‘815번 지방도의 아래를 지나간다.

 이정표(종점 9.4/ 시점 9.3)는 이곳 도대교차로 20코스의 중간 지점임을 알려준다.

 250m쯤 더 걸어 방조제로 올라선다. 방금 지나온 도대리 앞 들녘, 즉 오래 전 염전이 있었을 법한 염밭들(염전이 있는 들녘)은 저 방조제가 놓이면서 이제 광활한 농경지로 변했다.

 탐방로는 이제 방조제(둑 아래로는 도로가 나있다)를 따라간다. 바다와 들판 모두 넓고 산줄기는 멀찍이 물러나 앉아서 지평선길 못지않게 광대한 느낌을 준다.

 오른편은 무안컨트리클럽이 들어섰다. 안개가 거의 없고 일조량이 풍부해 사계절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곳이다. 거기다 광주-무안 간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접근성까지 자랑한다. 특히 바다와 어우러지게 조성된 SEASIDE 54홀 코스는 저마다의 독특한 특성과 묘미로 골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단다.

 바다 건너는 운남면(이곳 망운면에 속해 있다가 1983년 독립했다). 다음 구간(21코스)은 저 해안선을 따라 나있다.

 무안의 자랑거리는 단연 갯벌이다. 국내 1호 갯벌습지보호지역(2001)이고, 연안습지로는 국내 두 번째 람사르(Ramsar) 습지(2008)’. 기운 세기로 정평이 난 세발낙지와 운저리’(문절망둑의 사투리) 등의 계절 별미가 저 풍요로운 갯벌에서 나온다.

 작은 배수갑문을 지나 망운면(피서리)으로 들어선다. ‘톱머리란 지명을 만들어낸 곳이다. 방파제로 육지와 가까스로 연결되는 땅끝이 토끼를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나? ‘() 머리로 불리다가 언제부턴가 톱머리로 변했단다.

 오른쪽에는 창포호(저 안쪽에 무안에서 가장 큰 호수가 있다)’가 있다. 망운면에서 흘러온 물줄기(이름은 알 수 없었다)와 청계면에서 흘러나온 물줄기(태봉천)가 피서리(망운면)와 도대리(청계면) 사이에서 합쳐져 톱머리 앞바다로 흘러드는데, 이 하천을 방조제로 막아 만든 인공호수가 창포호이다. 천연기념물인 황새와 독수리가 발견돼 세간의 이목을 끌었는가 하면, 수달과 삵 등 멸종위기 동물이 다수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배수갑문을 지나면 도로(청운로)와 헤어진다. 그리고는 서해랑길이란 이름값이라도 하려는 양 바닷가를 따른다. 그 초입(이정표 : 종점 8.6/ 시점 10.1) 멀구슬나무 그늘 아래에 간식 먹기 딱 좋은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후부터는 바닷가를 따라 난 오솔길을 걷는다.

 이때 자연미를 퐁퐁 풍기는 포구를 만났다. 그 흔한 방파제 하나 없다보니 배도 바닷가 나뭇가지에 매어놓았다.

 오솔길을 빠져나오자 기다란 방조제가 어서 오란다. ‘톱머리라는 지명을 낳게 한 방조제로, 낚시꾼들에게는 소문난 놀이터가 되어준다. 입질이 좋을 때면 들어앉을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낚시꾼들로 붐빈다고 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낚시용 무동력선까지 띄워 놓았다. 참고로 이 부근은 망둥어(전라도에서는 운저리 문저리로 불린다) 낚시 포인트이나, 숭어의 입질도 심심치 않단다.

 방조제의 끝에는 톱머리항이 들어섰다. 무안군수가 관리하는 지방어항으로, 십여 척의 어선이 전부인 작은 포구이다.

 하지만 물양장만큼은 여느 국가어항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무안의 대표 볼거리를 그려 넣은 관광안내도도 눈에 띈다. 서해랑길 20코스는 그중 톱머리해변을 포함하고 있다.

 선착장 끝에는 비행기를 쏙 빼다 닮은 조형물이 서 있었다. 무안국제공항 인근이라는 지역적 특색을 투영시켰다는 등대. 하지만 비행기는 대각선이 아닌 수직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방조제를 걸어오는 내내 우주선으로 오해했던 이유일 것이다.

 안내판은 오색 관광조명을 가미했다는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덕분에 야간에 해안도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밤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단다.

 포구를 지나 톱머리 해안으로 간다. ‘피서리(皮西里)’, 즉 피란지에서 유래되었다는 지명만큼이나 안온한 느낌을 주는 해안이다. 국정이 혼란하고 민심이 소란했던 조선 중엽 안정적인 삶을 찾아 떠돌던 이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세(避世)가 피서(皮西)로 변한 이유나 시기는 알려지지 않는다.

 이때 거무스름한 갯벌이 드넓게 펼쳐진다. 갯벌 풍경은 무안의 자랑거리다. 갯벌을 뒤덮은 염생식물 칠면초(해마다 색깔이 7번 변한다는 바다의 단풍)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으면 무안 전역도 가을 풍경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가을철 무안은 그래서 더 예뻐진다고 한다.

 바닷가를 따라 호텔과 리조트, 펜션 등 다양한 숙박업소들이 들어서 있다. 음식점과 카페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찾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톱머리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한데다 물까지 맑아 가족단위 여행지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백사장 뒤로는 200년 이상 된 곰솔이 숲을 이루고 있어 피서객들의 쉼터가 되어준다.

 해수욕장의 하이라이트는 곰솔이 아닐까 싶다. 줄지어 늘어선 굵직한 소나무가 백사장과 어우러지며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향토사학자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개발로 인해 규모가 확 줄어들어버렸다면서 말이다. 예전에는 인근 학교에서 소풍 장소로 즐겨 찾았을 정도로 곰솔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피서객들을 위한 정자도 심심찮게 보인다. 바닷가에 잇대어 지어놓은 것이 소나무 그늘만으로는 피서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곳은 원래 반도모양의 곶()이었다고 한다. 간척사업으로 인해 반도의 특성을 잃어버렸지만 원래는 마을 앞뒤로 모래톱이 쌓여 있었단다. 당시만 해도 왕모래로 덮여있던 뒤편이 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다나?

 백사장의 품격은 리조트 앞에서 완성된다. 아까 호텔 앞에서 시작된 넓이 100m의 백사장이 1km를 달려와 이곳에서 대미를 장식한다.(전체 길이는 2km쯤 된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운남면의 구릉지 위로 해가 떨어질 때면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게 타오른다고 한다.

 톱머리해변을 빠져나오면 ‘815번 지방도를 만난다. 하지만 탐방로는 바닷가를 조금 더 고집한다.

 그렇다고 바닷가에 잇대어 나있지는 않으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말자.

 대신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을 만날 수 있었다. 김유정의 동명 소설에 반해 좋아하게 된 꽃이다. 나를 쏙 빼다 닮은 덜 떨어진 주인공 와 점순이가 부둥켜안고 쓰러지는 ending scene이 되어 준 꽃밭이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 더, 김유정이 적은 노랑 동백꽃의 실제 정체가 생강나무꽃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렇다고 좋아했던 걸 무를 수야 없지 않겠는가.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또 다시 ‘815번 지방도(청운로)’로 올라섰다. 이로보아 서해랑길 20코스는 청운로를 수시로 오르내리며 이어진다고 보면 되겠다. ! 이 일대는 단감 생산지로 유명하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당도와 빛깔에서 단연 으뜸이며 옛날엔 임금님께 진상까지 되었단다.

 이때 선두대장이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보다 5km를 더 걸었으니 6km/h의 속도로 걸어온 셈이다. 한 갑자를 훌쩍 넘긴 나이에 뛰다시피 걸을 수 있는 그의 체력에 경의를 표해본다. 느림의 미학을 추구해오는 나로서는 강 건너 불구경이지만.

 오른편은 무안국제공항. 호남권 유일의 국제공항이나 2021년 기준 국내 공항 중 운항편수가 가장 적은 공항이라고 한다. 하나 더, 무안공항은 순수 민간공항이라고 했다. 그래선지 차단막이 쳐져있지 않아 사진촬영이 가능했다.

 6분쯤 더 걸으니 무안 갯벌낙지직판장이 잠깐 들렀다 가란다. 기운 세기로 유명한 세발낙지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낙지는 무안의 5 중 하나, 그러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일단은 들어가고 본다. 소주를 반주 삼을 안주는 물론 낙지볶음(난 날것을 회피하는 편이다)’, 서울보다 조금 비쌌지만 갓 잡아 올린 낙지를 쓴다니 어쩌겠는가. 그나저나 안주발을 받아선지 은 그 이름처럼 술술 잘도 넘어갔다.

 날머리는 용동마을(무안군 망운면 송현리)

나머지 구간(5km)은 음식점 사장님의 트럭을 이용해서 왔다. 시나브로 마시다보니 얼큰하게 취해버렸고, 주변 풍광을 가슴에 담을 수조차 없게 몽롱해져버렸으니 어쩌겠는가. 아무튼 오늘은 8.17km를 걸었다. 20코스가 18.7km이니 절반도 못 걸은 셈이다. 낮술에 취해버린 탓이지만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구간을 빼먹었으니 손해 볼 게 없는 장사였다.

 오늘도 집사람과 함께 했다. 아니 오늘뿐만 아니라 우리부부는 항상 붙어 다닌다. ‘Dirty is out of the place’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는 진리를 자기 자리를 벗어난 더러움을 빌어 얘기한다. 즉 논밭에서는 꼭 필요한 흙이 집안에서는 깨끗하게 닦아내야 하는 골칫덩어리로 변한다고나 할까? 맞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자리가 있고,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그 자리를 지킬 때 아름다운 본질을 지켜나갈 수 있다. 우리 부부에게는 그 자리가 서로의 곁이 아닐까 싶다.

서해랑길 19코스(용해동사무소-청계면사무소)

 

여행일 : ‘22. 12. 10()

소재지 : 전남 목포시 용해동·석현동·대양동과 무안군 삼향읍·청계면 일원

여행코스 : 용해동사무소삼향동사무소마동마을마갈마을복룡마을월호마을도림천청계면사무소(거리/시간 : 16km/ 실제는 초의선사유적지부터 13.52km 3시간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19코스를 걷는다. 6로 이루어진 목포·무안남부구간의 두 번째 코스이기도 하다. 목포의 도심에서 출발하는 이 구간은 무안의 바닷가와 드넓은 들녘을 지난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하지만 다리품을 조금만 더 팔면 초의선사라는 걸출한 선승의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 은은하게 우러나는 다향을 바닥에 깔고서...

 

 들머리는 용해동 행정복지센터(목포시 용해동 981)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TG를 빠져나와 국도 1(2)호선을 타고 고하도 방향으로 10km쯤 내려오다 산정교차로(목포시 연산동)에서 용당로로 옮겨 2.2km정도 들어오면 용해동 행정복지센터에 이른다. 서해랑길(무안 19코스)의 안내도는 주차장 가장자리에 세워놓았다.

 목포시의 북서쪽 외곽과 무안군의 남부 해안을 걷는 코스이다. 이 코스의 특징은 다도해의 멋진 풍광과 간척사업이 만들어낸 드넓은 들녘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 다리품을 조금 더 팔면 초의선사유적지와 오승우미술관이라는 보너스까지 받아들 수 있다. 우리 부부는 도심구간을 생략하는 대신 초의선사유적지를 꼼꼼히 둘러보는 방법을 선택했다.

 실제 출발지는 초의선사유적지(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에 위치하며 입장료는 없다)

식상한 도심구간을 생략하고, 탐방로를 살짝 비켜난 초의선사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초의선사의 출생지인 왕산리 봉수산 자락에 생가를 비롯해 그와 관련된 유적(일지암·용호정)과 전시시설(박물관·기념관), 다성사(사당) 등을 세워 다인들의 순례성지로 자리매김 시켰다. 그나저나 주차장에서 바라본 봉수산(烽燧山 204.4m)이 여간 범상한 게 아니다. 옛날에는 저 암봉 위에 봉수대, 그 아래에는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암자의 스님이 물에 빠진 초의선사를 구해줬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투어는 대각문(大覺門)’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으로 헌종이 내린 사호(賜號) ‘대각등계보제존자 초의선사에서 따왔다. 이곳에 온 사람들 모두가 깨달음을 얻으라는 격려도 담았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탐방로를 가운데 두고 소박한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분을 기리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차밭을 지나면 초의선사의 동상, 그냥 지나치지 말고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게송(偈頌)으로 전한바 있는 선사의 기풍을 살짝 엿보고 가자. <두륜산 마루턱에서 주먹을 불끈 세우고/ 푸른 바다 비탈에서 코를 비비네/ 홀로 무외(無畏)의 광명을 크게 베풀며/ 달을 가리켜 모든 어둠을 깨뜨리누나/ ()의 땅이건 고통(苦痛)의 바다이건 가리지 않고/ 한 부처님의 마음을 죄다 가졌네/ 정명(正明) 보살의 말없는 게송이여!/ 허공을 때리는 법계(法界)의 소리여!/ 부처에 들고 또 다시 마군(魔軍)에 드니/ 다만 자기만 아는 웃음소리/ 살 고양이, 쥐잡는 지혜처럼/ () ()이 서로 어우러져/ 봄바람 한 소식에 온갖 꽃이 피어/ 밝고 밝음이 오늘에 이르렀구려>

 일지암(一枝庵)은 해남 대흥사의 것을 본떴다고 한다. ‘풀 옷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검소함과 간결함, 선사의 깊은 삶의 자세까지 배어 있는 암자다. 그런데 현판에 암자 암()’이 아닌 뚜껑 암()’자를 쓴 이유는 뭘까? 하나 더, 암자 옆에는 어린 초의선사가 또래 아이들과 놀았다는 초의암(草衣岩)’도 있었다. 해변에서 잡을 물고기를 말리거나 조개를 구워먹던 놀이터였단다.

 초의선사기념관은 차의 성인(茶聖)’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 근처 숲속에는 세심헌(洗心軒)’이란 초가도 있었다. 안내판은 초의선사가 말년에 온갖 번뇌를 다 놓아버리려고 지은 쾌년각(快年閣)’을 본떴다고 적었다.

 안에는 선사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업적과 활동상황을 살펴 볼 수 있도록 선사의 생애와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해놓았다.

 다성사로 오르려면 빗돌에 인사부터 드려야 한다. 왼편의 ‘13대 초의대종사(十三代 艸衣大宗師)’는 대흥사의 13대 대종사였다는 뜻, 오른편의 대각등계보제존자 초의대종사(大角登階普濟尊者 草衣大宗師)’ 55(1840) 때 헌종으로부터 받은 사호(賜號)라고 한다.

 돌계단을 오르면 다성사(茶聖祠)’. 초의선사의 상()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선사가 탄생한 음력 45일을 기해 헌다제(獻茶祭)’를 모신다. 열반한 8월 초2일에도 헌다제를 봉행한단다. 사당은 개방되어 있었다. 일반 추모객들에게도 헌다의 예를 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안에는 선사의 상()과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초의선사는 1786(정조10)에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출가한 후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40여 년간 수행하면서 선()사상과 차에 관한 저술에 몰두하여 큰 족적을 남겼다. 그로 인해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선풍을 일으킨 대선사이자 명맥만 유지해 오던 한국 다도를 중흥시킨 다성(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다.

 사당 오른편에는 동다송 비(東茶頌 碑)’를 세웠다. 초의선사가 지은 31( : 한시의 여섯 형식 중 하나) 동다송은 차의 역사·유래·전설, 차를 만들고 마시는 법, 차를 마신 사람들 이야기, 차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하나 더, 사당 왼편에는 초의선사 추원비(草衣禪師 追遠碑)를 세웠다. 이밖에도 유적지 경내에는 어지럽다 싶을 정도로 많은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조선 차 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 차에 대한 문화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차 전문 박물관이다. 참고로 초의선사는 우리 차를 새로운 경지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중국 다경요채를 초록, 차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다신전(茶神傳)’을 썼고, 이어서 이 책의 일부 오류를 바로잡고, 우리 풍토와 기후에 맞게 쓴 글()을 추가해 동다송(東茶頌)’을 지었다.

 안에는 조선시대 사용하던 차 도구를 시대별(조선 이전, 조선 전기, 조선 중기, 조선 후기)로 전시하고 있다. 중국의 차 도구와 조선시대 차 문화를 기록한 도서도 전시했다.

 용호백로정(蓉湖白鷺亭)은 용산(서울)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는 추사의 정자로 용호(蓉湖)란 용산의 옛 지명이다. 백로가 오락가락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백로정이란 이름을 붙였다. 정자의 터도 사라지고, 그저 기록으로만 전하던 것을 이곳에 복원해 놓았다. 초의선사는 용호정에서 두 해나 머물렀다고 한다.

 교육관인 초의선원(草衣禪院)은 밖에서 보면 1층이지만 내부는 2층으로 되어있다. 1층은 인간세상을 나타내고, 2층의 다실공간은 하늘나라를 의미한다. 1층에서 2층의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은 구름계단으로 33천의 하늘나라를 의미해서 구름무늬를 조각했다. 그밖에도 선사의 생애를 나타내는 문양들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 초의선원 마당의 차 따르는 조형물은 한번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일여(一如)의 미()’ 禪茶一如(선다일여)’로 귀결된다. 선과 차가 하나로 귀결되니 참선을 모르면 은은한 다향(茶香)의 맛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차로 마음을 씻어내듯 고요히 생각에 잠겨보자. ()의 경지는 몰라도 살짝 엿볼 수는 있지 않겠는가.

 마당에는 투호놀이, 지게지기, 절구치기, 고리던지기 등 전통놀이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놓았다.

 선사의 생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지었단다. 당사자가 살아생전에 이미 폐허가 되어버렸다니 어쩌겠는가. 아무튼 선사는 저 집에서 열다섯 살 때까지 살다가 나주 운흥사로 출가했단다.

 보제루(普濟樓)는 초의선사의 차 문화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의 보제는 헌종이 선사에게 내려준 호인 대각등계 보제존자에서 따왔다고 한다. 초의선사 탄생 22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2층을 합한 면적을 222평으로 지었다나?

 다음 방문지인 오승우 미술관으로 이동하는데, 방금 전 둘러봤던 전각들에 뒤지지 않는 전통 한옥이 눈에 띈다. 간판을 내걸지 않아 용도는 모르겠지만 하룻밤 묵어가기 딱 좋겠다.

 유적지 입구에는 오승우 미술관이라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서양화단의 원로이자 한국판 르느와르(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로 불리는 오승우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십장생 시리즈’, ‘한국의 100산 시리즈’, ‘동양의 원형 시리즈 등 오 화백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단다.

 미술관 앞 공터에는 그의 아들인 오상욱이 조각한 천축 가는 길이 세워져 있었다. 미래를 향하여 먼 길을 떠나는 구도자의 걸음에는 미래의 희망이 있다나? 참고로 오 화백의 부친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상주의 화가로 알려진 오지호(고향인 화순에 미술관이 있다) 화백이다. 거기에 아들인 오상욱까지 조각가의 길을 걸으면서 3대가 한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있다.

 또 다른 작품은 사진 찍기 딱 좋게 만들어 놓았다. 다만 얼굴 큰 남자들은 사양. 조그만 구멍에 꽉 차버릴 테니 말이다.

 미술관에서 나오면 도로가 둘로 나뉜다. 정답은 오른편, 1km쯤 떨어진 바닷가에서 서해랑길과 만난다. 하지만 난 반대방향을 선택했다. 19코스의 유일한 항구인 마동항을 눈에 담아보기 위해서이다.

 내륙의 국도(1호선) 방향으로 200m쯤 걷자 그린빌리지로 이어지는 삼거리. 방향만 보고 들어섰다가 금방 되돌아 나왔다. 숯불구이 촌닭으로 소문난 조선시대라는 식당이 서해바다 뷰가 좋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는 정보만 부여안고서...

 200m남짓 더 걸으면 또 다른 삼거리. ‘삼연기업의 건물을 기점 삼아 오른편 마동길로 들어선다. 진행방향의 산마루에 마을(‘그린빌리지라는 전원주택단지) 하나가 걸터앉아 있다면 길을 제대로 찾은 셈이다.

 ! 한적한 바닷가에서 히든싱어를 보게 되다니. ‘히든싱어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와 그 가수의 목소리부터 창법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창능력자가 노래 대결을 펼치는 신개념 음악 프로그램이다. 각 편에서 주인공을 이겼던 모창가수들이 이젠 콘서트까지 열고 있는 모양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5. 마동마을에 이른다. 법정 동리인 왕산리(旺山里) 7개 자연부락(평산·왕산·금동·마동·마갈·동뫼·덕산) 중 하나로 바다를 끼고 있어 어촌으로 분류된다. 거기다 방조제 축조로 들녘까지 드넓어지면서 요즘에는 풍요의 상징으로 변했다. 참고로 마동(馬洞)’이란 지명은 삼향읍의 주산인 봉수산에서 내려다봤을 때 마을의 지세가 말의 형국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바닷가로 나오니 기다란 둑이 건너편 목포시(대양동)를 연결시킨다. 혹자는 중등포방조제라 불렀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전국의 마룻금을 손바닥 읽듯 하는 그는 또 월산동마을과 중반마을(표석은 분명 마동마을이었다)을 잇는다면서 그 안쪽도 중등포 들녘(들녘 안쪽에 중등포마을이 실제 존재한다)’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후로는 마동길을 따른다.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이 두둥실 떠다니는 다도해의 멋진 풍광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는 명품 해안길이다.

 이때 코스모스악기 연수원이 눈에 띈다. 세계적 브랜드의 악기와 부품 등을 독점 수입·판매하는 회사인데, 자체브랜드(Kingstone, Harrison )로 제작도 한다더니 그 생산 공장이 목포지역에 있는가 보다.

 마동항은 곁눈질, 즉 지나는 길에 살짝 엿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촌정주어항(어촌의 생활 근거지가 되는 소규모 어항)치고는 엄청나게 많은 어선이 정박되어 있었다. 인근에 항구다운 항구가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또 다른 방조제. 서해랑길 나그네들은 저 방조제에 복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복구마을 앞 바다를 막았다는 의사표시일 것이다.

 방조제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오른편, 방조제가 만들어낸 들녘 너머로 삼각뿔을 쏙 빼다 닮은 봉수산이 솟아올랐다. 이름처럼 저 산에는 1898(고종 35)까지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반대편에서는 조형미 뛰어난 압해대교가 바다를 가른다. 목포와 압해도(신안군청이 새로 들어섰다)를 연결하는 닐센아치(다리 상판을 케이블로 매달아 하중을 아치에 전달) 형식의 연륙교이다.

 복구(福口)’ 마을은 스치듯 지나친다. 그러다 다 쓰러져가는 폐가 두어 채를 만났다. 서해바다 뷰가 뛰어난 왕산리는 전원주택지로 입소문을 타는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편함이 싫어 도시로 떠나가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꽃까지 떠났겠는가. 서리 맞은 산국이 떠나버린 가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복구마을을 빠져나오면 크고 작은 섬들로 가득한 다도해 풍광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그 오른편 산자락은 최근 들어선 듯한 전원마을 차지다.

 마동마을에서 15, ‘825번 지방도(왕산로)’로 올라섰다. 아까 오승우미술관 앞에서 헤어졌던 도로인데, 복구마을의 진입로 역할을 하는 듯, 삼거리에 버스정류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50m쯤 걸었을까 이정표(종점 9.3/ 시점 7.5)가 도로를 벗어나란다. GPX트랙은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도 된다는데, 굳이 돌아가라는 이유는 뭘까? 그것도 짧다고는 하지만 오르막길일진데...

 100m쯤 올라갔을까 새로 들어선 듯한 전원주택단지가 얼굴을 내민다. 허투루 지어진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하나하나가 독특한 개성을 지녔다. 무안군에서 저 마을(도로변 버스정류장은 마길이란 이름표를 달았다)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을 구경을 마친 서해랑길은 다시 도로(왕산로)로 내려선다. 하지만 100m도 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도로를 벗어나버린다.

 그렇다고 눈요깃거리까지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이 지점은 서해바다의 뷰가 가장 아름다운 곳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발아래로 꼬맹이 닭섬이 새벽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목을 세우고, 그 뒤의 갓섬(사유지라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단다)’은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압해도가 나타난다. 이게 오른편의 가란도 그리고 왼편의 압해대교를 품으면서 아름다운 풍경화로 승화된다.

 825번 지방도와 헤어진 탐방로는 이제 왕산로(1차선 도로)’를 따라 마갈마을로 간다.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평범한 시골길이다.

 그렇다고 다도해의 멋진 풍광까지 사라질 리가 있겠는가. 아까 도로가에서 보았던 경관이 다시 한 번 펼쳐지는데, 지대가 높아진 탓인지 닭섬과 갓섬이 훨씬 더 또렷해졌다.

 이곳 무안은 영암과 어깨를 맞댄 형세다. 그래선지 영암의 주요 특산물인 무화과가 눈에 띄기도 했다. 하긴 초록동색(草綠同色)’이란 사자성어도 있지 않겠는가.

 12분쯤 걸어 왕산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마갈마을로 들어섰다. 마갈(馬葛)이란 지명은 좀 엉뚱한 데가 있다. 지형이 갈마음수(渴馬飮水)’, 즉 목마른 말이 물을 찾는 형국인데서 유래됐다. 그러다 말이 목이 말라 죽었다는 속설로 인해 한때 목마를 갈()’ 대신 칡 갈()’ 자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목마를 갈()’을 사용한다나?

 마을을 관통한 탐방로는 나지막한 고개(kakaomap 검동재라 적고 있었다)를 향해 오름짓을 시작한다. ! ‘마갈마을에서 19코스의 후반부가 시작된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마을회관 앞 이정표(종점 8.5/ 시점 8.3)가 딱 중간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검동재(‘마갈 잔등이라 부르기도 한단다)’에 올라서자 오른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 봉수산으로 연결됨을 알리는 이정표가 초입에 세워져 있었다. 아까 초의선사유적지에서도 봉수산 등산로가 보였었는데...

 검동재 너머는 지산리(복룡마을)’이다. 봉수산의 북쪽 자락에 들어앉은 삼향농공단지로 대변되는 곳이다. 무안군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농공단지로, 연간 생산액이 800억 원에 이르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단다.

 길가 제이러브 팜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사랑 catchphrase로 내건 체험농장이다. 강냉이·호박·고추·완두콩 등의 재배나 수확, 가공에 대한 체험은 물론이고 수확된 농작물의 구매도 가능하단다.

 복룡마을은 법정 동리인 지산리(芝山里)’를 구성하는 6(복룡·월호·지산·곽단·노재동·장곡) 자연부락 중 하나다. 복룡(伏龍)이란 지명도 역시 지형에서 유래됐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지맥이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는데 그 형상이 마치 용이 엎드리고 있는 듯 했단다.

 옛 이름은 마장촌(馬場村)’. 옆 마을인 월호 마을과 함께 특수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복룡마을에서 말을 기르고 관리했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마을 표석에도 말이 쉬어가는 곳이라고 적혀있었다.

 복룡마을을 빠져나오니 월호저수지가 반긴다. 월호앞뜰(‘해지안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아니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더 넓은 들녘에 물을 대기 위해 쌓은 저수지이다.

 월호저수지 아래. 잘 가꾸어진 양 갈래의 길이 산뜻한 인상을 준다. ‘행복 홀씨 안내판도 눈에 띈다. 주민들 스스로 마을을 아름답게 가꿔 민들레 홀씨처럼 행복을 퍼트리자는 의미의 행복 홀씨 입양사업에 동참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지산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월호(月湖)’ 마을은 이름부터가 서정적이다. 하지만 원래 이름은 한인촌(漢人村)이었다고 한다. 한나라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단다. 그러다가 하인촌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지형적 특성을 따 월호로 바꾸었단다. 간척사업이 있기 전, 밀물 때가 되면 마을 앞 넓은 들에 물이 차 마치 호수처럼 보였는데, 거기다 동산에 달이라도 떠오를라치면 아름다운 풍경화가 그려졌다는 것이다.

 마을가꾸기 사업의 흔적인 듯 월호마을의 담벼락도 벽화로 채워져 있었다. 농자천하지대본 깃발을 내걸고 사물놀이가 한창이다. 월호리가 신명나는 마을임을 알려주려 했다나? 맞다. 이 마을은 명절날 곱게 차려입은 부녀자들이 뒷산인 매봉산에 올라 강강수월래 놀이를 하는 풍습이 전해진다고 했다.

 마을을 빠져나온 탐방로는 금동마을로 연결되는 도로(지산길)를 따라 나지막한 고개를 넘는다.

 이때 눈에 익은 풍광이 펼쳐진다. 해남구간의 화원반도를 걸으면서 만났던 이색적인 풍경, 즉 구릉지가 이곳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해남은 푸른 배추가 한 가득이었는데, 이곳은 텅 비어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작은 소류지도 만날 수 있었다. ‘둠벙에서 소류지로 크기만 달라졌을 뿐. 이 또한 해남에서 눈여겨봤던 익숙한 풍경이다. 다만 메마른 구릉지에 물을 대던 해남과는 달리 이곳은 요 아래에 있는 논에까지 물을 대느라 몸집을 부풀렸을 것이다. 아무튼 큰 덩치 덕분에 세월을 낚는 강태공까지 덤으로 품었다.

 저수지 아래로 내려서자 꽤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지금이야 옥토로 변했지만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기 전만 해도 이곳은 바닷물이 넘나들었다. 이 일대에서 나던 금동머리 감태는 전국적으로 유명해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뽑히기도 했단다.

 이후 300m는 들녘의 가장자리를 따른다. 농경지와 산자락 사이로 농로(중산길)가 나있다. 그러다 지산천을 만나면 쌍 다리 중 하나를 건너면 된다.

 탐방로는 이제 지산천의 제방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이런 둑길은 19코스의 종점인 도림리까지 계속된다.

 오른편으로는 지산리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요 아래 도림천의 하구둑이 축조되면서 생겨난 저 들녘은 지산리를 넘어 청계리까지 이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큰 지산천이 그보다 더 큰 도림천을 만나면, 물길은 아예 호수처럼 넓어져버린다. 아니 도림천 하구에 쌓아올린 복길방조제가 만들어놓은 인공호수일지도 모르겠다.

 두물머리를 지나면서부터는 도림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승달산에서 발원 ‘S’자로 굽이굽이 흐르며 드넓은 들녘을 적셔온 도림천은 이곳 복길리(청계면)와 왕산리(삼향읍) 사이에서 몸집을 크게 부풀린 다음 서해바다로 흘러든다.

 이 일대는 갈대가 장관이다. 하천 양쪽 둔치를 따라 길고 넓게 분포되어 있다. 금강(신성리)의 갈대숲만은 못해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했다.

 바람에 속도가 붙었던지 갈대밭이 서걱서걱 소리를 낸다. 이리저리 춤추는 갈대 너머로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은 물결이 은은한 빛을 내며 일렁인다. 그저 말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힘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들녘은 호남고속철도 2단계(고막원-목포 구간) 공사가 한창이었다. 건설역군들에게는 휴일조차 없나보다.

 중간에 청계천(도림천으로 합수되는 지점)을 만나 가로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도림천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그저 오른편 제방에서 왼편 제방으로 옮겼다는 것만 다를 뿐.

 지산천에서 둑길로 올라선지 1시간(4.3km). 도림천을 거슬러 올라오던 탐방로는 도남교를 건너 마을로 들어선다. ! 다리를 건너다 해안길로 우회해 온 일행을 만났다. 탐방로를 벗어나 서해안을 따르다가 도림천 하구둑을 건너고, 계속해서 복길리 해안을 올라가다 남성동삼거리에서 도림리로 들어왔단다. 훨씬 유익했다는 그의 자랑을 들으며 우리 국토의 둘레를 따라가는 코리아 둘레길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기껏해야 면소재지인데 도림리(道林里)는 규모가 꽤 컸다. 길거리도 면소재지치고는 꽤 번화한 풍경을 보여준다. 어쩌면 목포대학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풍경이지 싶다.

 도심의 대형교회에 못지않은 크기를 자랑하는 청계중앙교회를 지나면 곧이어 국도 1호선(영산로)을 만난다. 건너편은 목포대학 정문. 하지만 탐방로는 도로를 건너지 않고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날머리는 청계면복합센터(무안군 청계면 도림리 439-2)

방향을 틀자마자 청계면복합센터가 얼굴을 내민다. 19코스가 종료된다는 얘기다. 오늘은 13.52km 3시간 20분에 걸었다. 구간 전체가 평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초의선사유적지를 둘러보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서해랑길(무안 20코스) 안내도는 복합센터 입구에 세워져 있다.

 오늘도 집사람과 함께했다. 활짝 웃는 그녀를 보다 문득 만남의 의미를 고민해본다. 정채봉 작가의 에세이 만남은 만남을 다섯으로 나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원한을 남기는 생선 같은 만남’,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지만 시들게 되면 버려지는 꽃송이 같은 만남’, 힘이 있을 때는 지키고 힘이 다 닳았을 때는 던져 버리는 건전지와 같은 만남 등등. 하지만 나에게 집사람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고 싶다. 상대가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고 그의 기쁨이 내 기쁨인 양 축하하고 힘들 때는 땀도 닦아주는... 반면에 그녀에게 난 만나면 좋고, 함께 있으면 더 좋고, 헤어지면 늘 그리운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실제는 100m남짓 더 걸어 청계면사무소 앞에서 마쳤다.

서해랑길 18코스(목포지방해양수산청-용해동주민센터)

 

여행일 : ‘22. 11. 26()

소재지 : 전남 목포시 옥암동·용해동·산정동·만호동·죽교동·연산동·용해동 일원

여행코스 : 목포지방해양수산청갓바위삼학도유원지노적봉낙조대(유달산)해상케이블카(주차장)용해동주민센터(거리 및 시간 : 18km, 실제는 해상케이블카 주차장까지 14.02km 4시간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18코스를 걷는다. 6로 이루어진 목포·무안남부구간의 첫 번째 코스이기도 하다. 목포의 도심을 횡단하는 이 구간은 서해랑길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의 하나로 알려진다. 바닷가와 유달산(둘레길)을 걸으며 목포를 대변하는 기암괴석(갓바위·노적봉 등)과 함께 크고 작은 섬들이 떠다니는 다도해 풍광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들머리는 목포지방해양수산청(목포시 옥암동 1101)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IC에서 내려와 영산로’, 석현삼거리에서 녹색로로 바꿔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목포지방해양수산청에 이르게 된다.

 목포시의 외곽을 반 바퀴쯤 도는 코스다. 바닷가와 유달산의 허리를 에도는 둘레길을 걸으며 다도해의 풍광은 물론이고, 기암괴석(달바위·노적봉·일등바위·삼등바위)과 근대역사문화거리 같은 수많은 명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삭막할 수밖에 없는 도심구간을 지나기도 한다. 우리 부부가 케이블카승강장에서 트레킹을 끝마친 이유이다.

 서해랑길(목포 18코스) 안내판은 해양수산청의 정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지도에 미개통구간이라는 17코스가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산악회에서는 현재 임시노선인 15·16코스와 미개통인 17코스를 코스가 확정된 다음 이어가겠다고 했는데...

 영산강 하구둑 쪽으로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오른편은 삼향읍에서 흘러온 하천, 왼편에는 목포지방해양수산청(미항초등학교와 풍경채아파트가 뒤를 잇는다)을 끼고 걷는 모양새이다.

 관광입국(觀光立國)’이 나랏일만은 아니다. 산업기반이 취약한 목포로서는 관광에서 대안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줄을 이어 서있는 저 홍보용 조형물은 그 노력의 일환일 것이고 말이다. 목포9경 등 내노라는 명소 사진을 게시해 외지인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있었다.

 하천이 끝나는 바닷가에는 출렁다리가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자전거 및 보행자 전용의 현수교인 이 평화의 구름다리를 건너면 하당 평화광장으로 연결된다.

 다리를 건너다보면 물결 하나 일지 않는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아니 영산강의 하구역(河口域)이다. 전라남도를 횡단해 온 영산강이 바다처럼 등치를 부풀리며 기수역(汽水域)을 펼치는 곳이다.

 이후부터는 영산강 하구역을 왼쪽 옆구리에 차고 걷는다. ‘갓바위 달맞이공원에서 평화의 구름다리까지 1.2km 구간으로, ‘연인의 거리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전국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인다. 널찍한 공원 주변은 멋진 카페와 식당, 숙박시설로 가득하다. 여기에 유람선과 분수, 평화광장 무대 등을 한데 엮여 시너지효과를 높이고 있다나?

 이름에 걸맞게 거리는 온통 하트형 조형물로 꾸며져 있었다. 특히 바다를 향한 사랑의 문,  러브게이트는 인생 샷 하나쯤은 너끈히 건질 수 있는 최고의 포토죤이다. 바다분수를 배경으로 촬영한 인증샷을 온라인과 SNS에 올려 목포 홍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작품이란다.

 길거리에 나선 노점상도 하나같이 연인들을 위한 콘셉트이다. 가장 큰 관심일 인연은 타로나 사주에서 찾는다. 인연이 맺어졌다면 다음은 즐길 차례. ‘달고나 뽑기 풍선 터뜨리기 등 쌍쌍이 놀기에 부족함이 없는 꺼리들이 길가에 줄을 잇는다.

 젊은이들을 유혹하려는데 해양레저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카약과 SUP패들보드, 래프팅보트, 제트보트, 제트스키 등을 무료로 체험해 볼 수도 있도록 했다. 하지만 겨울의 초입이어선지 체험장은 텅 비어있었다.

 거리의 백미는 단연 춤추는 바다분수’, 최대 분사높이가 70m에 달하는 이 분수는 세계 최초의 초대형 부유식 음악분수라고 한다. 밤이면 감미로운 선율과 화려한 빛, 거대한 물줄기 춤에 맞춰 레이저쇼와 공연이 펼쳐진단다. 관람객의 신청곡을 받고, 사연을 소개하거나 프로포즈 이벤트도 진행된다니 초호화판 물놀이인 셈이다.

 30분 정도 걸어 갓바위 지구에 이를 수 있었다. ()처럼 내륙을 향해 파고들어온 바다에는 꽤 많은 어선이 정박하고 있다. 선착장까지 만들어져 있는 걸 보면 인근 주민들의 포구로 이용되는 모양이다.

 갓바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달맞이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저 조형물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입구에는 갓바위(천연기념물 제500)’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유헌 시인의 시비(詩碑)도 눈에 띈다. ‘갓바위 전설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았다. <남자가 흐느낀다/ 바다에 빠져 휘청거리고 있다/ 달빛의 무게에 출렁다리 흔들리고/ 가로등 속삭임에 불빛 안은 불면의 밤/ 불효를 후회하며 슬픔에 젖어 있다> 참고로 갓바위에는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한 한 젊은이의 정성이 깃든 전설이 전해진다. 영산강을 지나가던 부처님과 아라한이 놓고 간 갓이 돌로 변하였다는 또 다른 전설도 있다.

 갓바위는 바닷가에 터를 잡았다. 때문에 배를 타지 않고서는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9년 해상보행교가 만들어지면서 걸어서도 그 잘생긴 외모를 보게 됐다. 하나 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다리가 흔들거려 스릴까지 더해진단다. 하지만 그로 인해 통행이 금지될 수도 있다니 바람을 마냥 좋아할 일만도 아닐 것 같다.

 조망대에 서자 갓바위가 그 전모를 드러낸다. 기괴하게 생긴 암벽이 바닷가에 늘어서있는 것이다. 저 놀라운 정경은 수천 년에 걸친 침식의 결과물이란다. 화산활동에 의해 솟아나온 분출물들이 쌓여 깊은 층의 응회암(화산재가 암축되어 형성된 부드러운 암석)이 되었는데, 이 응회암이 풍화되면서 현무암 등 좀 더 단단한 암석덩어리보다 침식 속도가 빨라지면서 저런 모양새로 변했다는 것이다.

 갓바위라는 지명을 만들어낸 바위는 왼쪽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버섯으로 보이니 문제다. 카파도키아(터키) 파샤바 계곡에서 만났던 강렬한 풍경이 떠오른 게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꼭대기에 뚜껑이 달린 원뿔형의 바위기둥들을 보고 나는 당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 느낌이었다. 하긴 벨기에의 작가 피에르(Pierre Culliford)’ 개구쟁이 스머프(The Smurfs)’ 속 버섯 집을 그려냈을 정도니 어련하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난 개구쟁이 스머프의 모델하우스를 보고 있는 셈인가?

 서해랑길은 이제 입암산(笠岩山)을 바라보며 간다. ‘갓바위를 한자로 바꿔놓은 산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산의 생김새가 삿갓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해안선을 따라 데크 탐방로가 놓여있으니 이를 따르면 될 일이다. 하나 더, 목포팔경 중 하나인 입암반조(笠岩返照)’는 저 산에 반사되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목포 문인들의 시를 음미하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목포가 자랑하는 풍경이나 역사를 시로 읊었다.

 이후의 구간은 문화의 거리로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사진 속 건물목포문예역사관·목포자연사박물관·목포생활도자박물관·남농기념관·목포문화예술회관·목포문학관·목포옥공예전시관 등 내노라는 문화예술관들이 길(남농로) 양옆에 도열해 있다. 그런데도 둘레길 나그네인 나는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니 어쩌겠는가.

 목포자연사박물관은 공룡화석·동식물·광물 등의 자료와 서남권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목포생활도자박물관 생활 속 공예문화를 알려준다는 취지로 지난 2006년 개관했다.

 남농기념관은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8-1987)이 건립한 미술관이다. 안에는 추사 김정희가 해동 제일인자라고 까지 극찬한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2)의 작품을 비롯해 미산 허영, 남농 허건, 임전 허문, 오당 허진 등 운림산방 5대에 걸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단다.

 목포문화예술회관은 예향 목포의 대표적 문화공간이다. 6개 전시실과 698석의 공연장이 최신설비를 갖추고 있단다.

 문화의 거리에서는 육교(문화예술회관과 문학관을 잇는다) 하나까지도 예술적이다. 화살 시위가 당겨진 형상이라는데, 경관조명이 가미돼 저녁이면 문화타운에 또 하나의 볼거리로 변신한다나?

 목포는 대한민국 대표 맛의 도시를 자부한다. 그리고 세발낙지·홍어삼합·민어회·꽃게무침·갈치조림·병어회(준치무침·아구탕(우럭간국 등을 목포9()’로 내놓았다. 모처럼 찾아온 목포이니 이 가운데 하나라도 맛을 봐야겠는데,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니 어찌할꼬.

 문화의 거리를 벗어나 이번에는 안장산(68.1m)을 바라보며 간다. 이번에도 왼편에 영산강 하구역을 끼고 가는 형세다.

 덕분에 갈대로 가득한 습지도 만날 수 있었다. 순천만처럼 드넓지는 않지만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10. 제일중학교 앞 사거리에서는 왼쪽 삼학로를 따른다. 왼편에 남항(南港)을 끼고 걷는 모양새지만 항구가 눈에 들오지는 않는다.

 오른편은 목포 시가지, 중앙 타운으로 연결되는 지역답게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적으로 지어졌다. 특히 저 장례식장은 유럽의 여느 궁전보다도 더 멋진 외모를 지녔다.

 15분쯤 더 걸어 도착한 대삼학교 앞에는 삼학도(三鶴島)가 시작됨을 알리는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한 청년을 사모한 세 여인이 죽어 학이 되었고, 그 학이 떨어져 죽은 자리가 섬이 되었다는 삼학도 세 개의 섬은 다리로 이어져 있다.

 하천처럼 보이지만 저건 인공 수로(탐방로는 수로의 왼쪽으로 나있다)이다. 삼학도는 1968-1973년 섬 외곽에 둑을 쌓고 안쪽 바다를 메워 육지로 변했다. 하지만 공장과 주택이 난립하면서 자연환경이 크게 훼손되고 섬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섬 복원과 대대적인 정비에 나섰고, 뭍으로 변한 섬 사이에 저런 수로를 파 분리하는 등 2,242m의 수로를 만들었다. 수로 위에는 10개의 다리를 설치해 시민이 섬에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수로를 따라 삼학도로 들어간다. 첫 만남은 이난영공원(‘이난영 나무로 명명된 배롱나무로 다시 태어나 유달산과 목포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대삼학도 중턱에 잠들었다)이 조성되어 있는 대삼학도이다. 삼학도 지구에는 대삼학도말고도 소삼학도·중삼학도 등 2개의 섬이 더 있는데, 이들은 아담한 다리로 연결된다.

 삼학도는 현재 공원으로 꾸며졌다. 덕분에 그럴듯한 조형물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봄이면 튤립, 여름철 해바라기, 가을의 코스모스, 겨울 동백까지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이 탐방객들을 맞아 준다고 한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도 들어서 있었다.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기념관은 전시동과 컨벤션 동으로 구분된다. 전시동은 대통령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영상실, 1-4전시실, 대통령집무실 등으로 구성됐다.

 절개되고 매립돼 흔적만 남아있던 소·중 삼학도는 복원된 섬이다. 흙을 쌓아 산 형태를 만들고 곰솔 등의 나무들을 심었다. 소삼학도 옆 바닷가는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이 차지했다. ‘바다를 테마로 바다상상홀·깊은바다·중간바다·얕은바다·바다아이돔 등 5개의 전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바닷가에는 파크골프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파크골프(park golf)란 나무로 된 채를 이용해 역시 나무로 만든 공을 쳐 잔디 위 홀에 넣는, 말 그대로 공원에서 치는 골프놀이이다. 장비나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세게 휘둘러도 멀리 안 나가는 까닭에 최근 부쩍 인기가 높아진 레포츠이다.

 탐방로는 수로를 따라 이어진다. 섬이되 섬이 아닌지도 이미 오래인 삼학도지만, 공원으로 복원하면서 수로를 만들었고, 다리를 놓아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연결시켰다. 덕분에 개성이 강한 다리의 모양새를 구경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예술의 도시답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어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원은 쓰레기 하나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부유물을 수거하고 있는 저런 젊은이들이 존재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고맙다는 말이 오히려 소음공해일 것 같아 그냥 지나쳤지만, 늦게나마 해양소년단원들에게 찬사를 보내본다.

 삼학도를 빠져나와 늦부지런이 한창인 코스모스에 눈맞추다보면 서해랑길은 항구를 감싸듯이 안으며 왼쪽으로 돈다. 여기서 팁 하나, 목포의 찬란했던 영광을 곁눈질해보고 싶다면 그냥 직진해 볼 일이다. 목포의 산 증인이랄 수 있는 목포역 목포오거리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센터에서는 1897년 개항해 교역·물류·교통의 중심지로 전국 3대항’, ‘6대 도시의 영광을 누렸던 목포의 옛 역사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일제강점기, 목포오거리에서는 한국 청년과 일본 청년들의 격렬한 패싸움이 심심찮게 벌어졌다고 한다. 한국인 거주지와 일본인 거주지의 경계라서 일본 청년들이 한국 처녀를 희롱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자로 돌아선 서해랑길은 이제 항구와 상가를 양옆에 끼고 간다.

 목포항은 항구도시 목포의 저력과 풍경을 담는다. 어선이 줄지어 늘어선 부둣가는 그물과 부표 등의 어구와 육중한 닻이 점령하고, 선상에서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선원들이 출어 준비에 한창이다. 저들도 목포의 눈물을 알까? 그게 무든 대수겠는가. ‘사공의 뱃노래 가물가리며~’를 내가 흥얼거리면 될 일을...

 마리나(marina)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소득도 이미 3만 불을 넘겼다. 고소득 국가그룹(세계은행 분류)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바닷가에서의 부의 척도는 요트가 아니겠는가. 마리나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저 요트들이 그 증거일 것이고 말이다.

 잠시 후 나타난 목포종합수산시장 홍어의 거리라는 부제를 달았다. 간판도 아예 홍어로 내걸었다. 언젠가 홍어 먹기에 도전하는 외국인을 볼 기회가 있었다. ‘버킷리스트의 하나라던 그는 삭힌 홍어 한 점을 초고추장에 찍어 입안에 밀어 넣고는, 비강에 이어 기도까지 자극하는 맛에 헛기침을 뱉어내며 보는 이들을 웃겼었다. 하지만 홍어에 불가근(不可近)’의 원칙을 고수하는 난 홍어의 퀴퀴한 향에 놀라 뛰다시피 지나치고 말았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20. 목포항의 또 다른 시장인 항동시장에 이른다. 종합수산시장과 함께 목포항의 양대 축을 이루는 시장이다.

 목포는 항구다?’ 맞다. 목포항은 목포의 산업과 미식의 원천이다. 다양하고 싱싱한 수산물이 항구에 집결돼 일련의 산업을 이끈다. 항동시장도 그중 한 축을 담당한다. 하지만 서해랑길 나그네에게는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으로 더 주목을 받는다. 탐방로가 항동시장에서 50m쯤 떨어진 곳(이정표 : 종점 9.3/ 시점 8.7)에 위치한 보리밥 골목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골목에는 추억의 옛날 보리밥을 브랜드로 내건 식당들이 여럿 들어서 있었다.

 보리밥골목으로 항동시장을 관통하자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살짝 비켜가는 곳(이정표가 알려준다)에는 소년 김대중 공부방도 있다. 김대중의 유년시절 공부방을 복원, 각종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단다.

 집사람이 치켜든 손가락 끝에는 오우가(五友歌)’가 걸쳐있었다. 윤선도는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를 읊었지만, 나는 배추도 아닌 것이 상추도 아닌 것이로 대신한다. 배추가 분명하건만 잎을 하나씩 따 먹는 모양새는 영락없는 상추였다.

 오르막길의 끄트머리서 목포진 역사공원을 만났다. 목포진(木浦鎭) 1439(세종 21) 전라수영의 4개 만호진 중 하나로 설치했다. 이후 수군 주둔의 필요에 따라 1501년 수군진성을 쌓았으나, 1895년 고종 칙령으로 폐지됐다. 그러다가 복원과정을 거쳐 2014 120년 만에 역사공원으로 변신했다.

 내삼문을 지나 객사로 들어선다. 전면 5칸에 측면 3칸인 팔작지붕의 전통 한옥이다. ‘목포지관(木浦之館)’이란 현판은 목포의 객사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객사 뒤 언덕은 석축을 둘러 전망대로 만들었다. 의자를 놓아 시민들에게는 휴식공간으로 제공된다.

 전망대로 오르면 이름에 어울리는 풍광이 펼쳐진다. 시야가 툭 트이면서 목포시가지는 물론이고 저 멀리 남해바다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유달산과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의 조망은 특히 일품이다. 탐방객들을 위한 배려도 돋보인다.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가며 보는 재미를 더했다.

 언덕에서 내려오면 근대역사문화 공간(국가등록문화재 제718)’이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 목포진부터 근대의 관공서·주거·상업시설 등 풍부한 역사문화자산이 밀집해있는 지역으로 노동운동·소작쟁의·항일운동 등 일제강점기 때 민중의 저항이 펼쳐진 공간이다. 3대항 6대도시였던 과거 목포의 역사가 응축돼 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근대역사관 1으로 단장 된 구 일본영사관으로 곧장 갈 수도 있다. 다음 행선지인 노적봉으로 가려면 저 건물을 지나가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해랑길은 목포의 근대 역사·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그 공간을 에둘러 간다.

 첫 만남은 일제 수탈의 상징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다. 지금은 근대역사관 2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수난의 역사와 1920년대 말 목포의 모습을 옛 사진과 각종 자료를 통해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했다.

 옛 건축물들은 만호동 및 유달동 일원에 분포되어 있다. 골목이면 골목, 거리면 거리마다 저마다 의미를 지닌 건물이 즐비하다. 등록된 문화재만도 21개에 이른다고 한다.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하나 더, 목포시는 저 문화유산을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부흥기로의 도약을 꿈꾼단다.

 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그 시절 가장 번창했던 상가, 그리고 다양한 삶이 묻어 있는 적산 가옥들이 즐비하다. 그래선지 카페로 탈바꿈한 적산가옥도 눈에 띈다.

 역사문화공간을 에두른 서해랑길은 아까 바라보던 구 일본영사관(근대역사관 1) 앞으로 온다.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입구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해놓았다. 안에는 알찬 정보가 가득하단다.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억압받은 내용과 일본군에 항거한 목포의 의병 이야기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나?

 근대역사관(1)을 스치듯 지나 노적봉으로 향한다. 오르막 경사가 상당히 심하나 버겁다싶은 곳에는 나무계단을 놓았으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50.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 이용했다는 노적봉 앞에 선다. 저 바위봉우리를 짚과 섶으로 둘러 군량미가 산더미같이 쌓인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하고 적을 공략했다고 전해진다.

 서해랑길은 저 계단을 올라 유달산(정확히는 유달산 둘레길로 연결된다)으로 간다. 하지만 트랙 확인을 방심한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는 유달로를 따라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둘레길 도반들까지 모시고서... ! 반대편으로 가면 물지게를 진 옥단이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옥단이는 물이 귀하던 시절 지게로 집집마다 물을 날랐다는 실존 인물이다. 그녀가 누비고 다녔다는 목포의 심장, 목원동 골목을 따라 100년의 근대 문화·역사를 전하는 옥단이길이 조성됐다.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길을 잘못 들어선 덕분에 유달산의 명물인 대학루를 뜨락의 정자삼은 멋진 주택도 구경할 수 있었다. 건물의 외벽은 조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돈도 돈이겠지만 저걸 쌓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꼬?

 길을 잘못 들어선 걸 알아차렸지만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200m쯤 걷다가 오른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올라간다.

 골목으로 들어선지 5.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학암사 (이정표 : 아리랑고개 0.5/ 유달산휴게소 0.3)에서 서해랑길을 다시 만났다.

 이후부터는 유달산 둘레길을 따른다. 유달산둘레길이란 목포 제1으로 꼽히는 유달산을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유달산주차장을 출발해 목포시사달성사특정자생식물원조각공원어민동산봉후샘낙조대아리랑고개수자원 뚝방길학암사유달산휴게소를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는데 길이는 6km쯤 된다.

 산속인데도 길은 정비가 잘되어 있었다. 주민들이 선호하는 산책코스인지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 누군가는 이 구간을 법정스님의 등굣길이라고 했다. 상업학교(현 전남대 상과대 전신) 시절 스님이 이 길을 따라 학교를 오갔다는 것이다.

 7분쯤 걸으면 옛 2수원지에 닿는다. 1912년에 축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산림 내 조성된 수원지(국가산림문화자산 지정)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류지역의 식수를 공급을 위해 지어져 1985년까지 사용됐다. 이후 장기간 방치되다가 2014년 개설된 둘레 길에 편입돼 친수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암벽 폭포와 생태연못을 곁들였음은 물론이다.

 유달산둘레길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스토리텔링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곳곳에 스토리보드를 세워 옛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그 자신감은 유달산둘레길의 첫머리를 이야기가 있는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스토리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도 엿볼 수 있었다. ‘채석장’, 그것도 소꿉장난이나 했을 법한 작은 작업장까지도 얘깃거리로 등장했다.

 명품 둘레길로 가꾸려는 지자체의 노력도 돋보인다. 이곳은 따뜻한 남쪽 나라. 조그만 빈 터라도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동백나무를 심고 가꾸어가고 있었다.

 산자락으로 들어선지 25. 낙조대(落照臺)에 도착했다. 이름처럼 석양이 아름다워 절경 중의 절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저 멀리 다도해 섬들이 바둑알처럼 알알이 박히는데, 그 사이로 해라도 떨어질라치면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낙조대를 유달산둘레길 8 중 제3경으로 꼽는다.

 정자에 오르면 고하도와 목포대교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웃자란 소나무가 아랫도리를 잘라먹어버려 풍경사진은 조망도로 대신했다). 저 어디쯤으로 떨어지는 다도해 해넘이는 유달산 풍경의 백미로 꼽힌다. 그뿐 아니라 목포8경인 고하도 용머리를 돌아오는 만선의 깃발(龍塘歸帆)과 푸름의 기개가 넘치는 고하도의 곰솔(高島雪松)도 감상할 수 있단다.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유달산이 성큼 다가온다. 유달산에는 유난히 바위가 많다. 거대한 바위의 주름진 표면과 빛깔이 코끼리를 닮은 코끼리 바위, 마치 남녀가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한 장수바위, 모양이 각기 다른 바위들을 바라보며 이름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나?

 조망을 즐기다가 또 다시 길을 나선다. 보드라운 흙길에 경사까지 느껴지지 않아 걷기에 딱 좋다.

 봉후샘은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유달산 봉우리의 뒤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봉후마을’, 이 마을에 식수를 제공해주던 샘이 봉후샘이다. 그러다 1982년 유달산공원화사업으로 주민들은 떠나갔고, 사용자를 잃은 봉후샘은 이제 빈 두레박만 매단 채 둘레길 나그네들에게 쉼터가 되어준다.

 스토리보드는 봉후마을 주민들이 소를 길러 생계를 유지했다고 전한다. 지자체는 이를 더 실감나게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꼴 먹이러가는 아이의 조형물을 세워 옛 추억을 소환하게 만든다.

 시야가 트일라치면 북항(北港)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 뒤로는 다도해 섬들이 바둑알처럼 박혀있다. 유달산 신선들이 섬들을 바둑알 삼아 바둑을 즐겼을 법하다.

 다 내려왔나 싶던 둘레길이 다시 오르막으로 변한다. 이제 그만 내려가고 싶은데도 말이다.

 둘레길이 지겨워질 즈음 어민동산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정표 : 덕산삼거리 0.3/ 어민동산 0.1/ 일등바위 1.3)을 만났다. 유달산을 끝으로 트레킹을 마칠 요량이니 이곳에서 어민동산으로 내려가면 수월해진다. 하지만 대중교통의 이용이 더 편한 덕산삼거리로 간다.

 200m쯤 더 걷게 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넉넉했다. 북항과 그 너머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걷는 내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조금 더 걸어 유달로에 내려섰다. 삼거리(이정표에 적혀있던 덕산삼거리일지도 모르겠다)인 이곳에서 서해랑길은 오른편(북항 방향)으로 간다.

 북항으로 가는 도중 목포의 명물인 해상케이블카 북항 스테이션을 만났다. 저곳을 출발한 캐빈은 유달산 이등바위와 일등바위를 눈앞에 선사하며 유달산스테이션을 지나 고하도스테이션을 향해 바다 위를 빠르게 날아간다. 최고 높이 155m, 총길이 3.23로 국내 최장 해상케이블카라고 한다.

 트레킹은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400m쯤 더 걸은 다음 어반호텔 앞 삼거리에서 마쳤다. 이후 구간은 시가지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맨날 보고 또 걸어야만 하는 시가지를 걷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나저나 오늘은 14.02km 4시간20분에 걸었다. 2.5km정도의 산길을 걸었다고는 하지만 험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서해랑길 13코스(우수영관광지-학상 마을회관)

 

여행일 : ‘22. 10. 22(토)

소재지 : 전남 해남군 문내면 및 화원면 일원

여행코스 : 우수영관광지→청룡산→명량대첩비→양정마을→임하도 갈림길→예락마을→용정교→학상마을회관(거리 및 시간 : 16.5km, 실제는 13.16km를 3시간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13코스를 걷는다. 8개로 이루어진 해남구간의 여섯 번째 코스이기도 하다. 이 구간은 서해랑길의 특징인 바닷길에 더해 산길·들길·마을길 등을 두루두루 걷는다. 덕분에 다도해의 멋진 풍광과 함께 해남의 풍요로운 들녘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임진왜란의 유적지 중 하나인 우수영에서는 이순신장군의 애국충정에 더해, 법정스님의 무소유 사상까지 살짝 엿보게 된다.

 

▼ 들머리는 학상 마을회관(해남군 화원면 산호리)

남해고속도로(영암-순천) 서영암 IC에서 내려와 49번 지방도와 77번 국도를 이용 장춘교차로(해남군 화원면 장춘리)까지 온다. 교차로에서 빠져나와 ‘개초길(장춘교차로↔화원면 화봉리)’로 들어서면 오래지 않아 ‘학상마을’에 이르게 된다. 사실 이곳은 13코스의 들머리가 아니다. 산악회에서 주차 여건을 감안 들·날머리를 바꿨고, 덕분에 들머리였을 우수영관광지가 졸지에 날머리로 변해버렸다.

▼ ‘우수영관광지’에서 출발해 ‘학상마을’에 이르는 16.5km짜리 구간이다. 하지만 산악회 결정으로 시·종점이 뀌었다. 우리 부부는 한술 더 뜨기로 했다. 집사람의 부실한 무릎을 핑계 삼아 3km를 줄여 ‘예락1방조제’를 들머리로 삼았다.

▼ 남쪽 방향의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부부는 ‘예락1 지방관리방조제’까지 산악회 버스로 이동했다. 무릎이 불편한 집사람을 위한 내 배려지만, 이면에는 지루할 수밖에 없는 들녘 구간을 살짝 지나쳐버리겠다는 내 얄팍함이 숨어있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 실제 출발지는 ‘예락1 지방관리방조제’. 문내면 예락리와 무고리 사이 바다를 막은 방조제인데, 현재 개·보수공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 방조제로 막히면서 옛 하천(서심원천)은 자연스레 담수호로 변했다. 그 둑길을 따라 걸으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 이정목은 출발지를 변경한 내 결정이 3km를 거저먹었음을 알려준다.

▼ 반대편 바다에는 멋진 동산 하나가 두둥실 떠올랐다. 산자락에 지중해풍의 마을을 품고서. 기획 당시부터 지중해식으로 디자인을 통일시켰다는 ‘무고마을’일 것이다. 이국적인 정취가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 참! 길을 나서기 전에 길을 찾는 방법부터 알아두자. 서해랑길의 방향표식은 노란색(정방향)과 군청색(역방향)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러니 역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 오늘은 군청색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으면 된다.

▼ 해남의 특징은 유난히도 간척지가 많다는 점이다. 예락1방조제가 만들어낸 예락리 들녘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수확을 끝낸 저 들녘에서 거둬들인 벼는 대체 얼마나 될까?

▼ ‘농업은 과학입니다’. 시사 프로그램 패널(panel)들이나 들먹이던 얘기가 아닌지도 이미 오래다. 요즘은 거기에 ‘경제성’이라는 개념 하나를 더 보탰다. 그러니 벼농사보다 경제성이 뛰어난 작물이 있다면 갈아타는 게 정석일 것이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저 비닐하우스가 그 증거일 테고 말이다.

▼ 안에서는 부추처럼 생긴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소금기가 남아있는 간척지에서 자생하는 ‘세발나물(잎이 가늘다는 뜻으로, 가는 줄기가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이라는데, 지난 2006년 해남에서 최초로 재배에 성공했다나? 덕분에 바닷가 주민들이나 먹어보던 겨울철 별미가 도시인들의 밥상에까지 올라오게 되었고. 요게 각종 비타민·무기질·섬유질이 풍부한데다, 칼슘·칼륨·천연미네랄까지 다량 함유한 게 알려지면서 수요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단다. 하긴 면역력을 높여주는 건강식품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 만추를 걷는 나그네에게는 수확기가 지난 감까지도 그림이 된다.

▼ 주객전도(主客顚倒)의 본보기? 기생으로도 부족해 숙주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 길을 나선지 30분. 지형이 그물질하는 것처럼 생겼다는 ‘예락마을’에 이른다. 법정 동리인 예락리(曳洛里)의 4개 자연부락(예락·동리·양정·임하) 중 하나로, 대외적으로는 해남 천주교의 시발지로 유명하다. 1904년 우수영 관아의 좌집사 김병범·김보현·박내국 등이 목포 산정동 본당에서 세례를 받은 후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해남 가톨릭이 시작되었다. 그 흔적은 1923년에 지은 ‘예락공소’에서 엿볼 수 있다고 한다.

▼ 예락마을은 바닷가에서 멀지 않다. 때문에 간척지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마을을 지나면서 또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구릉지가 바닷가까지 드넓게 이어지는 것이다. 그 밭은 온통 배추로 채워져 있었다. 그것도 속이 차오른 것들로. 김장배추의 35%를 생산하는 해남 배추의 위세가 느껴지는 풍경이라고나 할까?

▼ 전에도 얘기했듯이 해남에서는 심심찮게 ‘둠벙’을 만난다. 밭농사에도 물은 항시 필요했을 게고, 조상들은 밭의 한가운데나 근처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 웅덩이가 바로 ‘둠벙’이다.

▼ ‘침대만 과학’이 아니라 요즘은 ‘영농도 과학’이다. 그러니 농가의 펌프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둠벙’에서 끌어올린 물은 저런 스프링클러를 통해 밭작물에 공급된다.

▼ 강원도의 고랭지를 연상시키는 구릉지는 바닷가까지 계속된다. 해남의 자랑인 배추밭도 끊어질 줄 모른다. 해남배추의 특징은 흰 눈이 쌓인 겨울철에도 얼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한겨울에도 아삭하고 신선한 김치를 담아먹을 수 있단다.

▼ 바닷가를 따라 난 803번 지방도로 내려서자 서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이곳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이름만큼이나 수많은 섬들이 눈앞에 쫙 깔려있다. 상태도·장산도·안좌도 등 큼지막한 섬들이 여러 새끼 섬들을 꼭 껴안고 있는 모양새다.

▼ 왼쪽 방향으로 잠시 걷자 삼거리(우수영과 임하도가 좌우로 나뉜다)가 나타났다. 임하도 쪽으로 몇 걸음 더 걷자 또 다른 삼거리. 탐방로는 임하도로의 초대를 사양하며 왼편 바닷가를 따른다.

▼ 바닷가로 나가자 ‘임하교(林下橋)’가 눈에 들어온다. 임하도는 1986년 방조제 형태의 다리로 놓이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저 다리는 조류의 흐름을 트기 위해 옛 다리를 헐고 2010년 새로 건설했단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해남 복 터진 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복 터진 마을’이란 해남군이 개발을 위해 그 지역의 역사·문화·농업 자원을 활용하면서 내건 ‘브랜드’이다. 그 대상은 ‘예락마을’. 천혜의 개펄과 그 곳에서 생산된 토판염·세발나물 등 다양한 농수특산물, 주민 간 끈끈한 믿음(천주교)이 있는 복 터진 마을이란 속뜻을 담았다.

▼ 건물은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민물장어·닭구이·하모샤브샤브·장어탕 등을 파는데, 이게 입소문을 타면서 성업 중이라고 한다. 참! 예락마을의 특산품인 ‘세발나물’도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 식당을 지나 방조제 제방을 걷는다. 길이가 500m도 넘는 거대한 규모지만 이름은 알 수 없었다. 해남의 드넓은 땅은 대부분 ‘간척사업’에 의해 생겨났다. 간척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던 당시는 작은 갯고랑이나 해변을 막는 정도였다. 물론 대단위의 역사가 있긴 했다. 다만 많은 비용과 인력이 소요됐기 때문에 지방 토호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 해남의 명문가인 ‘해남윤씨’도 간척사업으로 논을 일구어 부를 축적했다고 전해진다.

▼ 오른편으로는 다도해의 풍광이 펼쳐진다. 왼쪽은 진도, 오른쪽은 장산도일 것이다. 그 사이 상·하태도를 배경삼아 마진도·백야도·족도·평사도·고사도 등 자잘한 섬들이 수없이 널려있다.

▼ 왼편은 방조제가 만들어 놓은 ‘담수호’. 가을의 전령인 억새를 배경삼은 호수와 들녘이 한 폭의 풍경화로 다가온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다.

▼ 방조제가 끝나갈 즈음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담수호 대신 나타난 저 붉은 풀밭은 대체 뭘까? 오래 전 증도에서도 저와 비슷한 풀들을 보았는데, 안내판은 무기질과 미네랄이 풍부한 ‘함초’라고 적고 있었다. 함초의 ‘함’은 짠맛을 의미한다. 소금을 흡수하면서 자라나 고혈압과 당뇨에 효능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아닐 것이다. 소금보다도 값이 더 나가는 함초를 저렇게 내버려 두었을 리가 없겠지?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임하교에서는 30분). 양정마을로 들어섰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예락리’로 편입되면서 4개 자연부락 중 하나가 됐다. 취락은 구릉지에 분포하지만 바다를 끼고 있어 농업과 어업을 겸하는 주민들이 많단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임하도(林下島)’가 불쑥 고개를 내민다. ‘임하’라는 지명처럼 울창한 산림(곰솔이 주를 이룬단다)으로 인해 유명해진 섬이다. 섬은 낮고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졌다. 주민들의 생업이 농업과 어업을 동시에 하는 반농반어(半農半漁)인 이유이다.

▼ 양정마을 주변도 배추밭 일색이다. 하지만 ‘세발나물’을 기르는 듯한 비닐하우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세발나물’의 본명은 ‘갯개미자리’. 바닷가 땅이나 염전 주변 등 소금기가 있는 곳에서 자라는데, 푸른 잔디를 연상시키는 외관과 달리 짠맛이 돌면서도 약간 단맛이 난다. 요즘 트렌드인 ‘단짠(달고 짜고)’을 갖추었다고나 할까?

▼ 마을 뒤 ‘양정길(2차선 도로)’을 가로지른다. 바다가 보이는데도 사방은 온통 배추밭뿐이다. 그렇다면 ‘1% 명품소금’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천일염은 대체 어디서 생산된단 말인가. 전통방법(갯벌을 단단히 다지는 토판염)으로 생산되는 귀하신 몸으로 도시의 고급식당에나 납품된다던데...

▼ 해남의 구릉지를 걸을 때는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푸른빛으로 넘실거리는 채소밭 사이로 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그 밭에서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 스프링클러 물줄기가 언제 나에게로 향할지 누가 알겠는가.

▼ 양정마을은 천혜의 자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바다를 끼고 있어 농업과 어업을 겸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선지 구릉지를 지나 만나게 되는 드넓은 들녘에서는 벼 수확이 한창이었다.

▼ 염전이었던 듯한 너른 들녘에는 태양광 패널이 한 가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성을 쫒아가겠다는데 뭐라 하겠는가마는 내 개인적으로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풍경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이 꼭 아니어도 요즘은 식량에까지 ‘안보’라는 개념이 붙는다. 그만큼 자원이 중요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력은 효율이 좋은 원자력 등에서 얻고, 염전이나 평야에서는 그에 맞는 자원을 획득해야 하지 않겠는가.

▼ 양정마을 앞 바다는 숭어·도미·갑오징어가 잡힌다고 했다. 채취되는 낙지·모자반·다시마 등도 가계 소득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 어부는 대체 무엇을 잡고 있는 중일까? 내 눈에는 망중한을 즐기는 강태공쯤으로 보였지만...

▼ 작은 고개를 넘자 규모가 제법 큰 축사가 길을 막아선다. 그리고는 이정표(시점 7㎞/ 종점 12㎞)를 이용해 바닷가로 우회시킨다. 그렇다고 꼭 따를 필요는 없다. 빙 돌아가는 게 싫은 사람이라면 축사 옆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된다.

▼ 이정표의 지시대로 바닷가로 나섰다. 모퉁이를 돌아서 만난 바다는 양식시설로 한 가득이다. 한마디로 바다목장이라고나 할까? 전복으로 여겨지는 양식장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있는가 하면, 뗏목 같은 부대시설과 채취선 등이 뒤엉키면서 어수선한 풍경도 함께 연출한다.

▼ 숫제 바다목장의 전시장이라고나 할까? 특산물인 전복은 기본, 전복의 먹이사슬인 다시마양식장이 함께 들어섰는가하면, 김발을 매달기 위해 세운 지지대까지 눈에 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시설물은 우수영 인근 해역에서 성행한다는 광어양식장?

▼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전복의 달인, 오션’ 간판을 내건 양식장(성패가 될 때까지의 양식 및 수확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단다)이 얼굴을 내민다. 흔하디흔한 전복양식장이 뭐가 새롭겠는가마는 열대성식물로 치장된 주택이 이색적이어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 주택 옆에는 전복 종자를 키운다는 비닐하우스가 여러 동 들어서 있었다. 전복 양식장은 어린 전복을 키우는 ‘육상수조 치패장(아래 사진)’과 바다의 가두리양식 성패장으로 이루어진단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양정마을에서는 50분), ‘서외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뒷산은 전라우수영 수군진성의 성지였다는 ‘망해산(73.7m)’이다. 전라우수영은 최근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535호)로 승격·지정됐다.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으니 이젠 성역화작업만 남았다. 발굴조사를 위해 파헤쳐진 저 산자락은 그 현장이다.

▼ 서외마을은 ‘우수영문화마을’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서해랑길 특유의 이정목(시점 5.6㎞/ 종점 13㎞) 말고도 ‘Soul project’지도와 벽화, 시비(초등학생이 지은 시를 적었다)가 세워져 있었다.

▼ 마을길은 직진이다. 하지만 서해랑길의 표식은 왼편 산자락을 가리킨다. 또 다른 이정표(망해루← 363m/ 방죽샘↑ 186m)는 아예 다음에 만나게 될 유적지의 이름까지 적어놓았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산자락으로 파고들기로 했다. 무릎이 부실한 집사람에겐 곧장 직진해 충무사로 오도록 이르고 말이다.

▼ 하지만 망해루로 오르는 탐방로가 막혀있었다. 전라우수영(사적 535호)의 정밀발굴조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란다. 그렇다고 고지가 눈앞인데 되돌아갈 수야 없는 노릇. 길의 형편도 살펴볼 겸 산속으로 들어선다.

▼ 그런 내 판단은 옳았다. 발굴조사 현장은 탐방로에서 약간 비켜나 있었기 때문이다. 조사로 인해 훼손된 구간도 모래주머니를 쌓거나 야자매트로 덮어 위험요소를 없앴다.

▼ 그렇게 8분쯤 진행하자 드디어 ‘망해루(望海樓)’. 망해산의 정상에 있는 전라우수영의 망루로 성(城)과 함께 성루로 건설되었다. 1665년 무렵 지어졌으나 그간 소실되었다가 발굴조사로 그 면모가 밝혀졌고, 이어서 2006년에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참고로 전라우수영에는 망해루 외에도 구 충무사의 남장대인 정해루(靜梅樓)와 북장대가 더 있었다고 한다.

▼ 이름과는 달리 망해루는 조망이 꽉 막혀 있었다. 하지만 우수영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던 모양이다. 운동기구를 배치했는가 하면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섬을 의인화 한 초등학생의 시도 눈길을 끌었다.

▼ 이정표가 가리키는 우수영 오일장(805m 전방)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이어서 길고 긴 통나무계단을 내려서자 ‘북문길(이정표 : 오일장 525m/ 망해루 280m)’. 길가 정자가 잠시 쉬어가란다.

▼ 803번 지방도(우수영로)를 건넌다. 이어서 궁전아파트 옆 나지막한 고개를 넘자 ‘오일장’이 나타난다. 서외마을로 들어선지 25분 만이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어디든 시장이 있다. 시장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팔며 또한 정을 나누는 곳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때(4일과 9일)만 잘 맞추면 해남의 특산물을 제 값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장날이 아니면 장터는 텅 빈 공터로 남는다. 그러니 장날을 미리 확인해보고, 아니라면 트레킹 코스를 살짝 바꿔보면 어떨까? 망해루에서 내려와 803번 지방도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면 탐방로를 다시 만날 수 있다.

▼ ‘오일장’부터는 마을길을 따른다. 상점과 음식점, 금융기관 등이 몰려있는 우수영의 번화가이다. 간판을 기웃거리며 5분쯤 걷자 나지막한 동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 꼭대기에는 ‘명량대첩비’를 모신 ‘비각’이 올라앉았다. 명랑대첩비는 숙종 14년(1688년) 동외리(문내면)에 세워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강제로 뜯겨져 서울 근정전에 묻혀 있던 것을 1950년 주민들의 노력으로 되찾아왔다. 그러나 원래 자리가 아닌 청룡산(학동리)에 옮겨놓았다가, 2011년에야 원래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나라 빼앗긴 설움을 온몸으로 버텨낸 불굴의 상징이라고나 할까?

▼ 비각 안에는 명량대첩비(보물 503호)가 들어있다. 이 빗돌은 이순신장군의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승전비이다. 이순신이 원균의 무고로 통제사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기용되어 진도 벽파진으로 우수영을 옮기고, 몰려오는 133척의 왜적 함대를 불과 12척의 전선으로 명량에 유인하여 무찌른 무용담을 담았다. 당시 대제학이었던 이민서가 비문을 지었고, 본문은 명필로 이름난 판돈녕부사 이정영의 글씨로 새겨졌다. 상부는 소설 ‘구운몽’의 저자인 김만중의 글씨라고 한다.

▼ 건너편에는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가 들어앉았다. 둘 사이의 광장에는 옛 충무사에서 함께 옮겨 온 비석이 늘어섰다.

▼ 충무사(忠武祠)는 임진왜란이 낳은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장군을 모시는 사당이다. 충무공 헌창(軒敞) 사업이 활발하던 1964년 명량대첩비가 있던 학동리에 세웠던 것을 2017년 이곳으로 옮겼다. 영정을 모시는 제각 등에 제한됐던 옛 충무사와는 달리 사당, 동·서무, 외삼문과 강강술래마당 등으로 확대되었음은 물론이다.

▼ 사당에는 충무공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하지만 누가 어떠한 느낌으로 그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옛 충무사에 걸려있던 것(김은호 화백이 그렸다)을 옮겨왔을지도 모르겠다.

▼ 유적지에서 빠져나와 다시 탐방로를 따른다. 그리고 100m쯤 더 걸어 우수영의 동문을 상징화 했다는 조형물을 만났다. 이정표(법정스님 생가↑ 488m/ 동헌터→ 133m/ 명랑대첩비↓ 118m)는 사거리인 이곳에서 곧장 직진하란다. 하지만 난 오른편을 선택했다. 100m 남짓만 걸으면 ‘동헌터’를 만날 수 있다는데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하지만 내 선택은 후회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동헌터’로 여길만한 공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볼 수밖에...

▼ 그러다가 문내면생활문화센터를 만났고, 직원으로 여겨지는 분으로부터 문화센터 부근 전체가 ‘동헌터’였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사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직진한다. 이어서 건물의 외벽과 담장을 벽화로 빼곡히 채워 넣은 아름다운 골목을 걷는다.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마을길로, 벽화·아트카페·생활사박물관·강강술래 아트로드·시(詩) 조형물 등 다양한 볼거리로 꾸며졌다니 천천히 걸으며 마음껏 음미해 볼 일이다.

▼ 이순신장군의 시도 눈에 띈다.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 바다에다 맹세하니 바다 속의 용도 감동하여 하늘 높이 솟구쳐 날아오르고, 산에다 맹세하니 초목도 놀라 소스라치네)로 시작되어 수이여진멸 수사불위사(讐夷如盡滅 雖死不爲辭 : 원수들을 모조리 쓸어 없애 버릴 수만 있다면, 내가 죽어도 무슨 여한이 더 있겠는가?)로 끝을 맺는다. 전장에 나서야 하는 마음가짐을 담은 ‘천보서문원 군저북지위(天步西門遠 君儲北地危)와 고신우국일 장사수훈시(孤臣憂國日 壯士樹勳時)’가 생략되었지만 이순신장군의 우국충정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 주민이 떠나버린 낡은 흙집은 문내면의 특산물인 목화로 만든 포목을 판매하던 ‘면립상회(面立商會)’로 탈바꿈했다. 안에 생활유품이 전시되어 있다니 일종의 생활사박물관인 셈이다. 영업이 중단된 현대부동산도 ‘복덕방’이라는 강강술래를 체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 쌈지공원이 들어섰는가 하면,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낮게 이어진 지붕 밑 담벼락에는 명량의 역사에서부터 이어져온 우수영 사람들의 사연이 벽화로 담겼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 사람들이 ‘부산에 감천이 있다면 해남에는 우수영이 있다’고 외치는 이유일 것이다.

▼ ‘정재 카페’도 눈여겨 볼만하다. ‘정재’는 부엌을 부르는 전라도 사투리. 우수영을 왕래하던 뱃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주던 ‘제일여관’의 부엌이 커피 향 가득한 카페로 바뀌었다. 작고 허름한 옛 부엌처럼 보이지만 부뚜막과 식초병·소쿠리·부엌살림 같은 옛 생활용품으로 꾸며놓아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짬을 내서라도 한번쯤 찾아볼만한 이유이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법정스님 마을도서관’이 나온다. 스님이 태어난 터를 새롭게 꾸미면서 만든 공공도서관이다. 마을도서관 외에도 법정스님의 어록이 담긴 포토존, 생가터 기단 등이 함께 조성됐다. 법정 스님은 1932년 이곳(문내면 선두리 우수영마을)에서 태어났다. 2010년 길상사에서 세수 79세(법랍 56세)로 입적하기까지 맑고 향기로운 삶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고 떠난 우리 시대의 청빈한 스승이었다.

▼ 생가 터는 빈 공간으로 남겨두었다. 스님이 부르짖던 ‘무소유’를 실천이라도 하려는 듯, 무체(無體)가 유체(집)를 대신하고 있었다. 스님의 저서 ‘물소리 바람소리’에 나오는 글귀를 싣고서.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 생가 터 위로 오르면 걸어가는 스님의 뒷모습이 우리를 맞이한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라는 스님의 말씀과 함께. 그 앞에는 불일암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던 나무의자를 본뜬 의자를 배치했다.

▼ 스님의 자필 비문도 눈길을 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법정스님이 ‘숫타니파타’를 해설하여 만든 책, 법정스님의 뜻대로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어진 책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 언제부턴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그래 코뿔소의 뿔이 하나이듯, 우리네 삶의 수행도 홀로 해볼 일이다.

▼ 우수영항, 우수영 마을은 서남해의 지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전라우수영이 설치되었다. 현재도 수륙을 잇는 교통의 편리성 때문에 제주를 오가는 정기 항로가 운영되고 있다.

▼ 문화마을은 ‘점빵’도 탄생시켰다. 1960~1980년대 동네 골목길에는 어디나 구멍가게인 ‘점방’이 있었다. 점방은 과자와 사탕,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소주·콩나물·설탕·라면·비누 등 모든 생활용품의 보고였다. 또한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소를 넘어 지역의 사랑방 역할까지 톡톡히 수행했다. 하지만 골목 곳곳에 편의점이 들어오면서 하나둘씩 우리 곁을 떠나갔고, 이제는 도심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사라져버렸다. 그런 점방이 문화마을과 함께 다시 태어나 어릴 적 소중한 기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해준다.

▼ 포구 앞 벽화로 채운 가림막이 문화마을의 끄트머리임을 알려준다. 아니 우수영의 입구이니 문화마을이 시작을 알려준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안내자는 물론 명랑해전의 영웅 이순신장군이다.

▼ 우수영을 빠져나오자 ‘선두리’ 마을표지석이 이별을 고한다. 어떤 이들은 이곳에서 ‘강강술래길’의 산길구간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수영의 꽃이라며 강강술래를 소개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이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자처럼 위장하여 옥매산을 빙빙 돌며 군사가 많은 것처럼 인해전술을 펼친 유래가 있다며.

▼ 데크로드를 200m쯤 걸었을까 이정표(충무사연리지 198m/ 우수영항 464m)가 18번 국도의 아래로 들어가란다. 서해랑길은 옛 충무사와 연리지를 구경시킨 다음, 청룡산을 넘어 우수영관광지로 이어진다.

▼ ‘학동리’ 표지석이 세워진 다리 아래는 두어 개의 표지판이 길손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중 1962년에 지어져 201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갈 때까지 이순신장군의 위패를 모셨던 옛 ‘충무사’는 ‘강강술래길’로부터 소개를 받는다. 참고로 ‘강강술래길’은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돌목과 조선 수군의 본영이었던 전라우수영을 잇는 길이다. 걸음마다 충무공과 조선 수군 그리고 민초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 갯벌의 무늬가 하도 특이해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용(龍)을 쏙 빼다 닮았다는 집사람의 말마따나 잘 생긴 용 한 마리가 하늘이 아닌 육지를 향해 도약하고 있다.

▼ 고개를 돌리자 우수영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전라 우도 수군의 본영이었던 우수영은 일제와 해방·건국을 거치면서도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진도대교가 놓이면서 유동인구가 확 줄어들었고, 아는 사람만 찾는 곳으로 변했었다. 그러다가 영화 ‘명량’의 성공으로 이제는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됐다고 한다.

▼ 강강술래길(서해랑길과 겹친다)이 아닌 ‘명량로(옛 18번 국도인 듯)’를 따르기로 했다. 이미 걸을 만큼 걸어온 집사람이기에 산등성이를 넘어야하는 코스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이다. 그렇다고 나 혼자서 산길을 탈 수야 없지 않겠는가.

▼ 날머리는 우수영관광지(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18번 국도를 따라 걷다 진대대교 앞에서 왼편으로 들어가면 우수영관광지(단지 안 풍경은 지난 번 5코스 때 소개했다)이다. 13코스의 시점이었으나 역으로 걸은 덕분에 졸지에 종점이 되어버린 지점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13.16km를 걷는데 3시간 20분이 걸렸다. 볼거리가 제법 많았는데도 적당한 속도로 걸은 셈이다. 그만큼 난이도가 낮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 ‘서해랑길’은 민관의 협력으로 이루어 낸 윈윈(win-win)의 대표적인 사례다. 지역 주민은 낯선 나그네에게 길을 열어주었고, 지자체는 나그네가 헤매지 않도록 안내판과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니 그에 대한 감사는 여행자들의 몫이다. 우리 부부가 특산물판매점을 찾았던 이유이다. 그리고 김치·젓갈·미역 등 해남의 특산물을 두둑이 챙겼다. 거기다 점심까지 현지 식당에서 때웠으니 인사치례를 한 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