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23코스(운남정류장-봉오제마을)

 

여행일 : ‘23. 2. 11()

소재지 : 전남 무안군 운남면·망운면·현경면 일원

여행코스 : 운남(삼거리) 버스정류장저동마을두곡마을성동마을송현마을조금나루낙지공원송정마을봉오제마을(거리/시간 : 19.5km/ 실제는 송현교차로부터 13.77km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23코스를 걷는다. 6로 이루어진 목포·무안남부구간의 마지막 구간이기도 하다. 무안군의 서쪽 들녘과 해안을 이어 걷는데 중간에 조금나루라는 명소를 지나게 된다. 운남면(왼편)과 현경면(오른편) 사이에 놓인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이때 끝 간 데 없이 너른 바다를 양옆에 끼고 걷는다. 낙지와 조개류가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황금어장이라니 운 좋으면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도 있겠다.

 

 들머리는 운남(삼거리) 버스정류장(무안군 운남면 연리)

무안-광주고속도로 북무안 IC를 빠져나와 77번 국도를 따라 신안(압해도) 방면으로 내려오다 팔학교차로(운남면 동암리)에서 내려오면 곧이어 운남면사무소에 이르게 된다. 면사무소 다음의 버스정류장(삼거리) 23코스의 출발지점이 된다.

 운남면사무소에서 시작해 망운면을 거쳐 현경면(봉오제)에 이르는 19.5km짜리 둘레길로 초반부는 주로 들길, 후반부는 해안길을 걷게 된다. 이중 후반부(조금나루부터)는 무안의 명품 둘레길인 노을길로 포장되어 있다. 집사람의 체력을 핑계 삼아 초반부를 생략해버린 이유이다. 거리가 너무 짧은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송현교차로(조금나루에서 3km쯤 전방)에서 시작하는 지혜로 대신했다.

 23코스의 안내도와 이정표(종점까지 19.7km)는 버스정류장(삼거리) 뒤편 공터에 세워져 있다.

 실제 출발지는 송현교차로(무안군 망운면 송현리), 오늘도 집사람에 대한 배려가 먼저이다. 불편한 무릎을 핑계 삼아 초반부를 생략하고 출발지(운남면사무소)에서 6km쯤 떨어진 송현교차로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77번 국도를 타고 무안방면으로 나가다 조금나루 방향으로 빠져나오면 된다.

 이곳은 송현마을. 집채보다도 더 큰 빗돌이 남도낙지1번지라며 너스레를 떤다. 맞다. 이곳 송현마을 주변 갯벌은 남도 최대의 낙지어장으로 꼽힌다. 특히 타 지역의 낙지와는 달리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게 일품이라나?

 조금나루길을 따라 200m쯤 걸으면 송현보건진료소’, 송현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챙겨주는 곳이겠지만, 나에게는 서해랑길과의 첫 만남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계속해서 조금나루길을 따른다. 송현4리의 자연부락인 유종동(儒宗洞, 오른쪽)과 성동(왼쪽)을 양옆에 끼고 걷는 모양새이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성동(星洞)’ 마을회관 앞을 지난다. 원래 이름은 서은동(鼠隱洞), 마을 지형이 쥐가 숨어있는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송현교회 앞마당의 물렛(문랫)도 눈여겨볼만 하다. 한때는 마을에서 제사까지 지내오던 신석(神石)이었다니 말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3. 탐방로는 도로(조금나루길)’를 벗어나 농로로 들어선다. 초입에 신창맹씨 세장비(新昌孟氏 世葬碑)’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맹씨의 유래와 이 마을 입향조 맹윤창의 사적을 기술했는데, 맹씨는 김해김씨(마을에는 통훈대부김진관유허비도 있다)와 함께 송현마을의 양대 성씨이다.

 송현마을로 가는 길, 해남의 화원반도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 전체가 구릉지인 것이다. 하지만 배추 일색이던 해남과는 달리 이곳은 사방이 온통 마늘과 양파 밭 일색이었다.

 마늘과 양파는 무안의 양대 특산물이다. 황토의 게르마늄과 바닷가 해풍, 온난한 겨울철 등 삼박자가 어우러지면서 명품 구를 만들어내는데, 이게 크고 튼실한 것은 물론 고유성분도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단다.

 현대인의 삶은 경제를 바탕에 둔다. 농민이라고 해서 남의 집 불구경이겠는가. 농작물의 전유물이던 땅을 서서히 잠식해가고 있는 저 잔디밭이 그 증거라 하겠다.

 그렇게 10분쯤 걷자 송현(松峴, 송현4)’마을에 이른다. 송현(솔고개 또는 솔재)이란 지명은 소나무가 많은 고개 아래의 동네라는 데서 유래했다. 경작지 확장을 위해 나무를 베어버린 탓에 지금 민둥이 되어버린 마을 뒤 고개에 소나무가 울창했다는 것이다. 그림자만 해도 200평이 넘었다는 마을 앞 소나무는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고 한다.

 마을을 빠져나온 다음 이번에는 마을 앞 해안을 따라 조금나루로 간다. 시와 그림으로 도배된 방파제를 끼고 걷는 멋진 구간이다. 이때 송현마을을 대변하는 문장 하나 항상 맑으면 사막이 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야만 비옥한 땅이 된다.

 마을 앞 선착장에는 낙지잡이 삼매경인 어부를 그렸다. 송현마을은 앞뒤가 바다라는 게 특징이다. 이 바다에 물이 빠지면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드러난다. 배를 몰지 못하는 때다. 그렇다고 어부들이 놀 리가 있겠는가. 어부들은 이때도 바다에 나가 촉촉한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는다.

 조개잡이는 동네 아낙들 몫인가 보다. 조개잡이에 한창인 그녀의 뒤로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마을의 특산물인 낙지는 시()로도 얼굴을 내민다. 황성신 시인의 작품이라는데, 그는 노을’, ‘바다 등 갯마을 풍경에 어울리는 작품들을 여럿 적어놓았다. 불경에 나오는 명심보감용 문구들도 심심찮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마을 앞은 넓디너른 갯벌이다. 그러나 예전엔 모래사장이었다고 한다. 물이 빠지면 거대한 모래 운동장으로 변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주었고 주민들은 모래밭에서 공을 차고 씨름도 했단다. 그게 건축자재로 모래를 퍼가면서 이제는 코앞까지 펄이 됐다. 지형은 변했어도 갯벌은 여전히 풍성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갯벌 곳곳에 흩어진 어선들은 물이 차오르기만 기다린다. ! 평평하게만 보이는 갯벌에도 높낮이는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게 갯고랑(전남 지역에서는 개웅이라 한다)이다. 어부들은 그 고랑을 용케도 찾아내고, 이제는 길이 된 고랑을 따라 바다로 나간다.

 조금나루는 방파제(주민들이 해모가지라 부른다는 제방일지도 모르겠다)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맞다. 예전의 조금나루는 조금 때는 육지와 연결되지만 평시에는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작은 섬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방파제가 놓이면서 이제는 의젓한 육지가 되었다.

 바다는 이제 양옆으로 펼쳐진다. 운남면 앞바다 일색이던 조금 전과는 달리 오른편에서 탄도만이 새로운 풍경으로 추가된다.

 초입의 표지석이 조금나루에 들어왔음을 알린다. 조금나루는 현재 유원지로 개발되어 외지인들을 유혹한다. 여름철에는 피서객들로 붐비기도 한단다. 아니 옛날에도 여긴 사람들로 붐볐다고 했다. 조선시대는 징수한 세곡을 영광목관으로 보내던 주요 항구였고, 조금 때면 칠산바다의 고기잡이배들이 들어와 쉬어가던 곳이었단다.

 서해랑길은 이제 조금나루의 해안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돈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왼쪽의 갯벌 너머는 운남면(같은 무안군 소속)이다. 이 구간에서 우린 운남반도의 북쪽, 내리에서 동쪽으로 휘도는 해안 풍경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45. 조금나루의 중간쯤에 들어선 송현항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2020 어촌뉴딜 300사업에 선정되어 현재 정주여건 개선공사(선착장·선양장 정비, 부장교 설치)가 진행 중이란다. 참고로 어촌뉴딜 사업은 가기 쉬운 어촌’, ‘찾고 싶은 어촌이라는 주제로 낙후된 어촌과 어항 300개를 현대화해 어촌의 경쟁력을 새롭게 키우는 정책이다.

 현대인들은 조그만 낭비도 허용하지 않는다.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까지 한 점도 놓치지 않겠다며 만들어놓은 저 풍력발전기(운남면 내리)가 그 증거다.

 모퉁이(근처 이정표 : 시점 9.5/ 종점 10)를 돌자 이번에는 조금나루 선착장이 나온다. 너른 선착장에는 대합실까지 들어서있었다. 탄도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루에 한 차례 왕복하지만 물때에 따라 유동적이란다)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공사가 한창이어선지 문은 열고 있지 않았다.

 이곳도 역시 중장비가 바쁘게 움직인다. ‘송현항과 같은 공사가 한창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어울림-송현과 자연을 잇다라는 catchphrase로 추진되고 있는 이 공사는 마을+주민, 주민+방문객의 어울림을 기본으로 한단다. 삶의 근간인 마을과 바다를 주민들의 쉼터 및 쾌적하고 안전한 일터로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안내판은 조금나루에 대해 알려준다. ‘조금나루에서 조금(반대어는 사리이다)’은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때인 음력 초여드레와 스무사흘을 이르는 순 우리말이다. 그런 조금에도 이곳에서는 나룻배를 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주민은 조금 때 물이 빠지면 마을 앞 섬인 탄도와 선도로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는 데서 유래를 찾고 있었다.

 이후부터는 무안의 명품 둘레길인 노을길을 따른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확 달라진다. 탄도만을 북쪽으로 휘돌아가는 해안 풍경이 일목요연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코앞에 있는 탄도는 물론이고 신안의 선도와 지도까지 눈에 들어옴은 물론이다.

 조금나루의 해안사구 해송 숲, 소나무 숲 사이로 여기저기 캠핑을 즐기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들어앉았다. 가족단위 여행지로 이미 입소문을 탔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썩 넓지는 않지만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도 있으며, 갯벌에서는 게 고동 낙지 등을 잡는 갯벌체험도 가능하다니 이를 말이겠는가. 모래 유실로 시달리는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갯고랑 너머로 낮고 길쭉한 섬 하나가 보인다. 무안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인도인 탄도. 조금나루에서 2.5km쯤 떨어진 작은 섬으로 50여 명이 살고 있단다. ‘숯섬이라는 의미로 탄도(炭島)라 표기하지만, 무안문화원은 여울섬을 뜻하는 탄도(灘島)가 더 적합하다고 지적한다. 섬의 크기로 봤을 때 숯을 만들 만큼 나무가 많았다고 보기 어렵고, 서해로 이어지는 물목이어서 예전부터 여울도로 불렸기 때문이란다.

 송현마을 입구 삼거리(이정표 : 유종동 1.5/ 송현/ 조금나루)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왼편(유종동 방향)으로 간다. 참고로 조금나루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30분이 걸렸다.

 낙지와 어패류가 지천이라는 갯벌은 생태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주민에게는 물론 삶의 현장이다. 초입의 안내판은 낙지산란장에 대해 적고 있었다. 하지만 게시된 그림처럼 생긴 시설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안내판이 위치를 잘못 잡은 듯하다.

 관광안내도 앞에는 어르신용 보행기가 세워져 있었다. 갯벌로 내려가는 시멘트길 끄트머리에는 그보다 많은 보행기가 머무른다. 조개잡이 나온 어르신들이 몰고나온 모양인데, 어촌 역시 고령화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도로변 방파제에는 염생식물인 칠면초를 그려놓았다. 칠면초(해마다 색깔이 7번 변한다는 바다의 단풍)가 널리다시피 한 인근 갯벌을 나타내고 싶었음이리라. 칠면초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예쁜 가을철에 다시 찾아오라며...

 어장 근처에서 길이 나뉘고 있었다. 왼쪽은 해안길. 하지만 도로공사가 끝나지 않은 탓인지 서해랑길은 구릉지 위를 걷는다. 무안 북쪽에서 탄도만을 향해 바늘처럼 솟은 작은 반도의 등허리를 밟는다고 보면 되겠다. 하나 더. 노을길 도로변은 해당화 꽃밭으로 가꾸고 있었다. ‘국화인 무안군 군화를 해당화로 바꾸기라도 하려는 걸까?

 낮은 구릉지를 넘다가 팽나무 숲을 만났다. 매년 정월 대보름 당산제를 모시는 숲으로, 이때 송현마을의 입향조가 정착할 때 심은 팽나무가 신목(神木)이 된단다.

 다시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 갯벌과 하늘이 반반이다. 땅도 바다만큼 낮아 어디를 둘러봐도 하늘이 절반이다. 노을길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저런 풍광이 펼쳐진다.

 어촌뉴딜 300사업과는 다른 공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무안 유일의 유인도인 탄도의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사로, 해저 암반층을 굴착한 다음 3,090m나 되는 상수도관을 묻는다고 한다.

 잠시 후 낙지공원(이정표 : 시점 12.3/ 종점 7.2)’에 이른다. 무안의 특산물인 낙지를 알리고자 조성된 캠핑 공원으로 전망대와 무인카페, 카라반, 야영데크 등으로 이뤄진 일종의 유원지이다. 밤에는 공원 전체가 은은한 경관조명으로 물들기도 한단다. 참고로 송현교차로(트레킹 출발지)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공원 한가운데는 14m 높이의 낙지 모양 전망대가 자리한다. 낙지 머리를 흐느적거리는 여섯 개의 다리가 받치는 형상이다. 그나저나 계단을 타고 올라 잔잔한 서해를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니 한번쯤 올라볼 일이다.

 바다생물 모양의 창밖으로 탄도만의 광활한 풍경이 펼쳐진다. 유리창의 얼룩이 시야를 방해하는 건 약간의 흠, 하지만 해안선과 나란히 늘어선 모래사장과 그 안쪽으로 펼쳐지는 갯벌은 자랑거리다.

 여섯 개의 다리 가운데 두 개는 미끄럼틀로 만들었다. 조망을 즐긴 다음 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며 동심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것이다.

 낙지전망대를 오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듯, 데크 전망대를 따로 만들어놓았다. 물위를 걷는 듯한 스릴까지 덧대놓은 전망대에 서자 탄도만의 광활한 풍경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그네 비슷한 놀이기구는 물론이고, 바닷가를 암시하는 듯한 조형물도 여럿 세워두었다. 그런데 저 조형물은 대체 뭘 나타내고 있을까? 갯벌로 소문난 무안의 바닷가이니 조개나 낙지를 잡는 어부들을 형상화했을지도 모르겠다.

 쉼터도 낙지모양으로 만들었다. 내부는 무인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다.

 야영장에는 선인장(백년초) 꽃밭도 조성되어 있었다. 조금나루의 모래사장에 지천으로 널려있었다는 선인장 군락을 재현해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낙지공원 양쪽으로는 해송 숲과 백사장이 길게 이어진다. 일몰 시간에 맞추면 숲속에 앉아 낭만적인 일몰도 감상할 수 있단다. 그 노을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둘레길 브랜드(노을길)로 굳어졌다는 설도 있으나 믿거나 말거나이다.

 노을길에 대한 안내도도 보인다. 조금나루 해변에서 출발해 현경면의 봉오제에 이르는 8.9km짜리 해안길이란다. 이 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한적한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덕분에 무안의 어촌과 갯벌의 전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노을길로 나가 다시 길을 나선다. 이때 유종동(송현4)’의 마을 뒤 능선인 중구등이 오른편으로 펼쳐진다. 나지막한 구릉지이지만 망운면에서는 가장 높은 지대라고 한다.

 77번 국도에 다가간 다음 목서리로 넘어간다. 이때 대섬(竹島)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이름은 자라섬이었는데 섬에 시누대가 무성해지면서 대섬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참고로 목서리는 목관(목장을 관리하는 감목관이 주재하던 관청으로 현 망운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해랑길은 목서리의 6개 자연부락 중 장재·내덕·외덕 마을의 해안을 지난다.

 움푹 파인 해안선은 들어갈수록 육지는 멀어지고 갯벌은 그만큼 더 넓어진다. 바다가 땅에 갇히고 땅이 바다에 포위된 형국이다.

 갯벌을 빠져나오는 저 어부들의 어구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누군가의 입을 빌려본다. 바다는 부족하지만 궁핍의 자국은 없다고. 가지지 못해 안달하기보다는 모자라는 대로 만족하는 여유가 어부에게 배어 있다는 것이다.

 줌으로 당겨보니 섬이 둘로 나뉘었다. 기존의 대섬에다 오강섬이 추가된 것이다. 오강처럼 작은 섬이지만, 주민들이 노두(路頭)로 연결시킨 덕분에 외지에서 온 가족단위 소풍객들이 자주 찾는단다. 아무튼 두 섬의 사이로 낙지산란장이 들어서면서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안지역의 농토는 거의가 붉은 황톳빛이다. 노을길 가꾸기 사업의 일환인지는 몰라도 그곳에 유채가 심어져 있었다. 봄이면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맞다. 이곳은 볼거리가 많기로 소문난 둘레길이다. 해질 무렵 서정이 사무치게 아름다워 노을길로 부른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12. 장재마을 갈림길(이정표 : 시점 14.3/ 종점 5.2)에 닿았다. 77번 국도의 아래를 통과하면 장재마을(목서리), 서해랑길은 국헌횟집을 향해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국헌횟집 근처 바닷가에는 장재선착장이 들어서 있었다. 꼬맹이 어선 두엇이 정박되어 있을 뿐인 작은 포구다. 그래선지 어민들의 쉼터도 컨테이너박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후부터는 해안에 잇대어 내놓은 도로를 따른다. 오가는 차량이 없어 탄도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두루두루 살피며 걷기에 딱 좋은 구간이다. 하지만 그늘이 없어 여름철에는 지옥의 행군이 될 수도 있겠다.

 대섬과 요강섬(‘오강섬이라고도 한단다)이 부쩍 가까워졌다. 그러자 대섬이 등치를 한껏 부풀린다. 맞다. 대섬은 한때 사람이 살았었고, 당시 사용하던 옹달샘도 남아있다고 했다.

 잠시 후, 또 다른 선착장을 만났다. 최근에 새로 만든 모양인데, 내덕마을 해안이니 내덕선착장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내덕마을 해안의 방파제도 벽화를 그려놓았다. 그나저나 노을길은 만남의 길, 자연행복 길, 노을 머뭄 길, 느리게 걷는 길 등 4개의 산책로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송림숲 공원, 낙지공원, 전망대 쌈지공원 등도 끼워 넣었단다. 그렇다면 이 구간은 어느 산책로에 포함됐을까? 이를 알리는 안내판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32. 바닷가에 조성된 쉼터를 만났다. 노을길은 이렇듯 중간 중간에 쉼터를 만들어놓았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풍광은 일품이다. 서해바다와 갯벌이 어우러지면서 더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런 쉼터에서 감상하는 노을과 석양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란다.

 작은 공원(이정표 : 시점 16.3/ 종점 3.2)도 조성되어 있었다. 잘 지어진 정자는 물론이고, 데크 산책로까지 보탰다. 노을길 안내도에 그려져 있던 외덕 해안공원이 아닐까 싶다.

 이 즈음 물고기가 숨어든다는 어은도(漁隱島)’가 눈에 들어온다. 이를 줄여 요즘은 엄섬으로 부른단다. 갯고랑에 그림자를 드리운 어은도를 끼고 이어지는 해안의 바위는 유암포(기름바위). 썰물 때 물이 흘러내리면 모양이 기름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덕마을 해안을 지나 송정리로 들어간다. 망운면에서 현경면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바닥이 보도블럭으로 바뀌어 있다.

 엄섬과 대섬, 그리고 요강섬이 한꺼번에 어우러지며 한 폭의 수묵화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다. 참고로 이 부근은 해넘이가 곱다고 소문났다. 밀물 때는 바다가 붉게 물들고 썰물 때는 갯벌이 깨진 거울 파편처럼 황홀하게 반짝인단다.

 서해랑길은 하수장마을(송정1)을 스치듯 지나간다. 원래 이름은 수장(水長), 마을 앞 우물의 수질이 좋고 양이 풍부하다는 데서 유래됐는데, 1970년대 24번 국도가 마을을 가르고 지나가면서 상수장과 하수장으로 분리되었다고 한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53. 고급어종인 바리류(다금바리, 농성어 등)의 종묘양식장을 지나면 송정마을 어장이다. 바다는 한창 물이 차오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바다로 나가고 싶은 어부는 이미 배에 올라 출어를 준비한다.

 갈대밭도 눈에 띈다. 순천만이나 강진만의 갈대밭처럼 광활하지는 않지만 풍경화 한 폭을 그려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맞다. 노을길은 탄도만이 갖고 있는 저런 풍광, 즉 천혜의 갯벌과 모래해안, 송림숲 거기에 노을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조성됐다.

 탐방로는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린다. 그리고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23코스의 종점인 봉오제 마을이 불쑥 떠오른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해제반도가 눈에 들어온다. 봉오제 마을을 지난 탄도만 해안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가 오류리 검무산 아래 해안으로 쑥 물러난다. 무안의 또 다른 명소인 홀통해변은 그 해안이 다시 한 번 튀어나온 지점에 놓여있다.

 날머리는 봉오제 삼거리(무안군 현경면 용정리)

문 닫힌 낙지 전문식당 회랑낙지랑을 지나면 현해로로 올라서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봉오제 삼거리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봉오제 봉대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봉화를 올리던 봉대산(옹산이나 봉오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래에 위치한다는 데서 유래했다.

 서해랑길(무안 24코스) 안내도는 삼거리 조금 못미처에 세워져 있었다. 오늘은 3시간 30분을 걸었다. 앱에 찍힌 거리가 13.77km이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그만큼 코스가 쉬웠다는 증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