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18코스(목포지방해양수산청-용해동주민센터)

 

여행일 : ‘22. 11. 26()

소재지 : 전남 목포시 옥암동·용해동·산정동·만호동·죽교동·연산동·용해동 일원

여행코스 : 목포지방해양수산청갓바위삼학도유원지노적봉낙조대(유달산)해상케이블카(주차장)용해동주민센터(거리 및 시간 : 18km, 실제는 해상케이블카 주차장까지 14.02km 4시간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18코스를 걷는다. 6로 이루어진 목포·무안남부구간의 첫 번째 코스이기도 하다. 목포의 도심을 횡단하는 이 구간은 서해랑길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의 하나로 알려진다. 바닷가와 유달산(둘레길)을 걸으며 목포를 대변하는 기암괴석(갓바위·노적봉 등)과 함께 크고 작은 섬들이 떠다니는 다도해 풍광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들머리는 목포지방해양수산청(목포시 옥암동 1101)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IC에서 내려와 영산로’, 석현삼거리에서 녹색로로 바꿔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목포지방해양수산청에 이르게 된다.

 목포시의 외곽을 반 바퀴쯤 도는 코스다. 바닷가와 유달산의 허리를 에도는 둘레길을 걸으며 다도해의 풍광은 물론이고, 기암괴석(달바위·노적봉·일등바위·삼등바위)과 근대역사문화거리 같은 수많은 명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삭막할 수밖에 없는 도심구간을 지나기도 한다. 우리 부부가 케이블카승강장에서 트레킹을 끝마친 이유이다.

 서해랑길(목포 18코스) 안내판은 해양수산청의 정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지도에 미개통구간이라는 17코스가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산악회에서는 현재 임시노선인 15·16코스와 미개통인 17코스를 코스가 확정된 다음 이어가겠다고 했는데...

 영산강 하구둑 쪽으로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오른편은 삼향읍에서 흘러온 하천, 왼편에는 목포지방해양수산청(미항초등학교와 풍경채아파트가 뒤를 잇는다)을 끼고 걷는 모양새이다.

 관광입국(觀光立國)’이 나랏일만은 아니다. 산업기반이 취약한 목포로서는 관광에서 대안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줄을 이어 서있는 저 홍보용 조형물은 그 노력의 일환일 것이고 말이다. 목포9경 등 내노라는 명소 사진을 게시해 외지인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있었다.

 하천이 끝나는 바닷가에는 출렁다리가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자전거 및 보행자 전용의 현수교인 이 평화의 구름다리를 건너면 하당 평화광장으로 연결된다.

 다리를 건너다보면 물결 하나 일지 않는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아니 영산강의 하구역(河口域)이다. 전라남도를 횡단해 온 영산강이 바다처럼 등치를 부풀리며 기수역(汽水域)을 펼치는 곳이다.

 이후부터는 영산강 하구역을 왼쪽 옆구리에 차고 걷는다. ‘갓바위 달맞이공원에서 평화의 구름다리까지 1.2km 구간으로, ‘연인의 거리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전국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인다. 널찍한 공원 주변은 멋진 카페와 식당, 숙박시설로 가득하다. 여기에 유람선과 분수, 평화광장 무대 등을 한데 엮여 시너지효과를 높이고 있다나?

 이름에 걸맞게 거리는 온통 하트형 조형물로 꾸며져 있었다. 특히 바다를 향한 사랑의 문,  러브게이트는 인생 샷 하나쯤은 너끈히 건질 수 있는 최고의 포토죤이다. 바다분수를 배경으로 촬영한 인증샷을 온라인과 SNS에 올려 목포 홍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작품이란다.

 길거리에 나선 노점상도 하나같이 연인들을 위한 콘셉트이다. 가장 큰 관심일 인연은 타로나 사주에서 찾는다. 인연이 맺어졌다면 다음은 즐길 차례. ‘달고나 뽑기 풍선 터뜨리기 등 쌍쌍이 놀기에 부족함이 없는 꺼리들이 길가에 줄을 잇는다.

 젊은이들을 유혹하려는데 해양레저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카약과 SUP패들보드, 래프팅보트, 제트보트, 제트스키 등을 무료로 체험해 볼 수도 있도록 했다. 하지만 겨울의 초입이어선지 체험장은 텅 비어있었다.

 거리의 백미는 단연 춤추는 바다분수’, 최대 분사높이가 70m에 달하는 이 분수는 세계 최초의 초대형 부유식 음악분수라고 한다. 밤이면 감미로운 선율과 화려한 빛, 거대한 물줄기 춤에 맞춰 레이저쇼와 공연이 펼쳐진단다. 관람객의 신청곡을 받고, 사연을 소개하거나 프로포즈 이벤트도 진행된다니 초호화판 물놀이인 셈이다.

 30분 정도 걸어 갓바위 지구에 이를 수 있었다. ()처럼 내륙을 향해 파고들어온 바다에는 꽤 많은 어선이 정박하고 있다. 선착장까지 만들어져 있는 걸 보면 인근 주민들의 포구로 이용되는 모양이다.

 갓바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달맞이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저 조형물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입구에는 갓바위(천연기념물 제500)’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유헌 시인의 시비(詩碑)도 눈에 띈다. ‘갓바위 전설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았다. <남자가 흐느낀다/ 바다에 빠져 휘청거리고 있다/ 달빛의 무게에 출렁다리 흔들리고/ 가로등 속삭임에 불빛 안은 불면의 밤/ 불효를 후회하며 슬픔에 젖어 있다> 참고로 갓바위에는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한 한 젊은이의 정성이 깃든 전설이 전해진다. 영산강을 지나가던 부처님과 아라한이 놓고 간 갓이 돌로 변하였다는 또 다른 전설도 있다.

 갓바위는 바닷가에 터를 잡았다. 때문에 배를 타지 않고서는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9년 해상보행교가 만들어지면서 걸어서도 그 잘생긴 외모를 보게 됐다. 하나 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다리가 흔들거려 스릴까지 더해진단다. 하지만 그로 인해 통행이 금지될 수도 있다니 바람을 마냥 좋아할 일만도 아닐 것 같다.

 조망대에 서자 갓바위가 그 전모를 드러낸다. 기괴하게 생긴 암벽이 바닷가에 늘어서있는 것이다. 저 놀라운 정경은 수천 년에 걸친 침식의 결과물이란다. 화산활동에 의해 솟아나온 분출물들이 쌓여 깊은 층의 응회암(화산재가 암축되어 형성된 부드러운 암석)이 되었는데, 이 응회암이 풍화되면서 현무암 등 좀 더 단단한 암석덩어리보다 침식 속도가 빨라지면서 저런 모양새로 변했다는 것이다.

 갓바위라는 지명을 만들어낸 바위는 왼쪽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버섯으로 보이니 문제다. 카파도키아(터키) 파샤바 계곡에서 만났던 강렬한 풍경이 떠오른 게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꼭대기에 뚜껑이 달린 원뿔형의 바위기둥들을 보고 나는 당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 느낌이었다. 하긴 벨기에의 작가 피에르(Pierre Culliford)’ 개구쟁이 스머프(The Smurfs)’ 속 버섯 집을 그려냈을 정도니 어련하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난 개구쟁이 스머프의 모델하우스를 보고 있는 셈인가?

 서해랑길은 이제 입암산(笠岩山)을 바라보며 간다. ‘갓바위를 한자로 바꿔놓은 산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산의 생김새가 삿갓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해안선을 따라 데크 탐방로가 놓여있으니 이를 따르면 될 일이다. 하나 더, 목포팔경 중 하나인 입암반조(笠岩返照)’는 저 산에 반사되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목포 문인들의 시를 음미하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목포가 자랑하는 풍경이나 역사를 시로 읊었다.

 이후의 구간은 문화의 거리로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사진 속 건물목포문예역사관·목포자연사박물관·목포생활도자박물관·남농기념관·목포문화예술회관·목포문학관·목포옥공예전시관 등 내노라는 문화예술관들이 길(남농로) 양옆에 도열해 있다. 그런데도 둘레길 나그네인 나는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니 어쩌겠는가.

 목포자연사박물관은 공룡화석·동식물·광물 등의 자료와 서남권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목포생활도자박물관 생활 속 공예문화를 알려준다는 취지로 지난 2006년 개관했다.

 남농기념관은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8-1987)이 건립한 미술관이다. 안에는 추사 김정희가 해동 제일인자라고 까지 극찬한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2)의 작품을 비롯해 미산 허영, 남농 허건, 임전 허문, 오당 허진 등 운림산방 5대에 걸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단다.

 목포문화예술회관은 예향 목포의 대표적 문화공간이다. 6개 전시실과 698석의 공연장이 최신설비를 갖추고 있단다.

 문화의 거리에서는 육교(문화예술회관과 문학관을 잇는다) 하나까지도 예술적이다. 화살 시위가 당겨진 형상이라는데, 경관조명이 가미돼 저녁이면 문화타운에 또 하나의 볼거리로 변신한다나?

 목포는 대한민국 대표 맛의 도시를 자부한다. 그리고 세발낙지·홍어삼합·민어회·꽃게무침·갈치조림·병어회(준치무침·아구탕(우럭간국 등을 목포9()’로 내놓았다. 모처럼 찾아온 목포이니 이 가운데 하나라도 맛을 봐야겠는데,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니 어찌할꼬.

 문화의 거리를 벗어나 이번에는 안장산(68.1m)을 바라보며 간다. 이번에도 왼편에 영산강 하구역을 끼고 가는 형세다.

 덕분에 갈대로 가득한 습지도 만날 수 있었다. 순천만처럼 드넓지는 않지만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10. 제일중학교 앞 사거리에서는 왼쪽 삼학로를 따른다. 왼편에 남항(南港)을 끼고 걷는 모양새지만 항구가 눈에 들오지는 않는다.

 오른편은 목포 시가지, 중앙 타운으로 연결되는 지역답게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적으로 지어졌다. 특히 저 장례식장은 유럽의 여느 궁전보다도 더 멋진 외모를 지녔다.

 15분쯤 더 걸어 도착한 대삼학교 앞에는 삼학도(三鶴島)가 시작됨을 알리는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한 청년을 사모한 세 여인이 죽어 학이 되었고, 그 학이 떨어져 죽은 자리가 섬이 되었다는 삼학도 세 개의 섬은 다리로 이어져 있다.

 하천처럼 보이지만 저건 인공 수로(탐방로는 수로의 왼쪽으로 나있다)이다. 삼학도는 1968-1973년 섬 외곽에 둑을 쌓고 안쪽 바다를 메워 육지로 변했다. 하지만 공장과 주택이 난립하면서 자연환경이 크게 훼손되고 섬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섬 복원과 대대적인 정비에 나섰고, 뭍으로 변한 섬 사이에 저런 수로를 파 분리하는 등 2,242m의 수로를 만들었다. 수로 위에는 10개의 다리를 설치해 시민이 섬에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수로를 따라 삼학도로 들어간다. 첫 만남은 이난영공원(‘이난영 나무로 명명된 배롱나무로 다시 태어나 유달산과 목포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대삼학도 중턱에 잠들었다)이 조성되어 있는 대삼학도이다. 삼학도 지구에는 대삼학도말고도 소삼학도·중삼학도 등 2개의 섬이 더 있는데, 이들은 아담한 다리로 연결된다.

 삼학도는 현재 공원으로 꾸며졌다. 덕분에 그럴듯한 조형물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봄이면 튤립, 여름철 해바라기, 가을의 코스모스, 겨울 동백까지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이 탐방객들을 맞아 준다고 한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도 들어서 있었다.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기념관은 전시동과 컨벤션 동으로 구분된다. 전시동은 대통령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영상실, 1-4전시실, 대통령집무실 등으로 구성됐다.

 절개되고 매립돼 흔적만 남아있던 소·중 삼학도는 복원된 섬이다. 흙을 쌓아 산 형태를 만들고 곰솔 등의 나무들을 심었다. 소삼학도 옆 바닷가는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이 차지했다. ‘바다를 테마로 바다상상홀·깊은바다·중간바다·얕은바다·바다아이돔 등 5개의 전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바닷가에는 파크골프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파크골프(park golf)란 나무로 된 채를 이용해 역시 나무로 만든 공을 쳐 잔디 위 홀에 넣는, 말 그대로 공원에서 치는 골프놀이이다. 장비나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세게 휘둘러도 멀리 안 나가는 까닭에 최근 부쩍 인기가 높아진 레포츠이다.

 탐방로는 수로를 따라 이어진다. 섬이되 섬이 아닌지도 이미 오래인 삼학도지만, 공원으로 복원하면서 수로를 만들었고, 다리를 놓아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연결시켰다. 덕분에 개성이 강한 다리의 모양새를 구경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예술의 도시답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어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원은 쓰레기 하나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부유물을 수거하고 있는 저런 젊은이들이 존재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고맙다는 말이 오히려 소음공해일 것 같아 그냥 지나쳤지만, 늦게나마 해양소년단원들에게 찬사를 보내본다.

 삼학도를 빠져나와 늦부지런이 한창인 코스모스에 눈맞추다보면 서해랑길은 항구를 감싸듯이 안으며 왼쪽으로 돈다. 여기서 팁 하나, 목포의 찬란했던 영광을 곁눈질해보고 싶다면 그냥 직진해 볼 일이다. 목포의 산 증인이랄 수 있는 목포역 목포오거리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센터에서는 1897년 개항해 교역·물류·교통의 중심지로 전국 3대항’, ‘6대 도시의 영광을 누렸던 목포의 옛 역사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일제강점기, 목포오거리에서는 한국 청년과 일본 청년들의 격렬한 패싸움이 심심찮게 벌어졌다고 한다. 한국인 거주지와 일본인 거주지의 경계라서 일본 청년들이 한국 처녀를 희롱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자로 돌아선 서해랑길은 이제 항구와 상가를 양옆에 끼고 간다.

 목포항은 항구도시 목포의 저력과 풍경을 담는다. 어선이 줄지어 늘어선 부둣가는 그물과 부표 등의 어구와 육중한 닻이 점령하고, 선상에서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선원들이 출어 준비에 한창이다. 저들도 목포의 눈물을 알까? 그게 무든 대수겠는가. ‘사공의 뱃노래 가물가리며~’를 내가 흥얼거리면 될 일을...

 마리나(marina)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소득도 이미 3만 불을 넘겼다. 고소득 국가그룹(세계은행 분류)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바닷가에서의 부의 척도는 요트가 아니겠는가. 마리나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저 요트들이 그 증거일 것이고 말이다.

 잠시 후 나타난 목포종합수산시장 홍어의 거리라는 부제를 달았다. 간판도 아예 홍어로 내걸었다. 언젠가 홍어 먹기에 도전하는 외국인을 볼 기회가 있었다. ‘버킷리스트의 하나라던 그는 삭힌 홍어 한 점을 초고추장에 찍어 입안에 밀어 넣고는, 비강에 이어 기도까지 자극하는 맛에 헛기침을 뱉어내며 보는 이들을 웃겼었다. 하지만 홍어에 불가근(不可近)’의 원칙을 고수하는 난 홍어의 퀴퀴한 향에 놀라 뛰다시피 지나치고 말았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20. 목포항의 또 다른 시장인 항동시장에 이른다. 종합수산시장과 함께 목포항의 양대 축을 이루는 시장이다.

 목포는 항구다?’ 맞다. 목포항은 목포의 산업과 미식의 원천이다. 다양하고 싱싱한 수산물이 항구에 집결돼 일련의 산업을 이끈다. 항동시장도 그중 한 축을 담당한다. 하지만 서해랑길 나그네에게는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으로 더 주목을 받는다. 탐방로가 항동시장에서 50m쯤 떨어진 곳(이정표 : 종점 9.3/ 시점 8.7)에 위치한 보리밥 골목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골목에는 추억의 옛날 보리밥을 브랜드로 내건 식당들이 여럿 들어서 있었다.

 보리밥골목으로 항동시장을 관통하자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살짝 비켜가는 곳(이정표가 알려준다)에는 소년 김대중 공부방도 있다. 김대중의 유년시절 공부방을 복원, 각종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단다.

 집사람이 치켜든 손가락 끝에는 오우가(五友歌)’가 걸쳐있었다. 윤선도는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를 읊었지만, 나는 배추도 아닌 것이 상추도 아닌 것이로 대신한다. 배추가 분명하건만 잎을 하나씩 따 먹는 모양새는 영락없는 상추였다.

 오르막길의 끄트머리서 목포진 역사공원을 만났다. 목포진(木浦鎭) 1439(세종 21) 전라수영의 4개 만호진 중 하나로 설치했다. 이후 수군 주둔의 필요에 따라 1501년 수군진성을 쌓았으나, 1895년 고종 칙령으로 폐지됐다. 그러다가 복원과정을 거쳐 2014 120년 만에 역사공원으로 변신했다.

 내삼문을 지나 객사로 들어선다. 전면 5칸에 측면 3칸인 팔작지붕의 전통 한옥이다. ‘목포지관(木浦之館)’이란 현판은 목포의 객사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객사 뒤 언덕은 석축을 둘러 전망대로 만들었다. 의자를 놓아 시민들에게는 휴식공간으로 제공된다.

 전망대로 오르면 이름에 어울리는 풍광이 펼쳐진다. 시야가 툭 트이면서 목포시가지는 물론이고 저 멀리 남해바다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유달산과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의 조망은 특히 일품이다. 탐방객들을 위한 배려도 돋보인다.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가며 보는 재미를 더했다.

 언덕에서 내려오면 근대역사문화 공간(국가등록문화재 제718)’이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 목포진부터 근대의 관공서·주거·상업시설 등 풍부한 역사문화자산이 밀집해있는 지역으로 노동운동·소작쟁의·항일운동 등 일제강점기 때 민중의 저항이 펼쳐진 공간이다. 3대항 6대도시였던 과거 목포의 역사가 응축돼 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근대역사관 1으로 단장 된 구 일본영사관으로 곧장 갈 수도 있다. 다음 행선지인 노적봉으로 가려면 저 건물을 지나가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해랑길은 목포의 근대 역사·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그 공간을 에둘러 간다.

 첫 만남은 일제 수탈의 상징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다. 지금은 근대역사관 2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수난의 역사와 1920년대 말 목포의 모습을 옛 사진과 각종 자료를 통해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했다.

 옛 건축물들은 만호동 및 유달동 일원에 분포되어 있다. 골목이면 골목, 거리면 거리마다 저마다 의미를 지닌 건물이 즐비하다. 등록된 문화재만도 21개에 이른다고 한다.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하나 더, 목포시는 저 문화유산을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부흥기로의 도약을 꿈꾼단다.

 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그 시절 가장 번창했던 상가, 그리고 다양한 삶이 묻어 있는 적산 가옥들이 즐비하다. 그래선지 카페로 탈바꿈한 적산가옥도 눈에 띈다.

 역사문화공간을 에두른 서해랑길은 아까 바라보던 구 일본영사관(근대역사관 1) 앞으로 온다.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입구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해놓았다. 안에는 알찬 정보가 가득하단다.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억압받은 내용과 일본군에 항거한 목포의 의병 이야기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나?

 근대역사관(1)을 스치듯 지나 노적봉으로 향한다. 오르막 경사가 상당히 심하나 버겁다싶은 곳에는 나무계단을 놓았으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50.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 이용했다는 노적봉 앞에 선다. 저 바위봉우리를 짚과 섶으로 둘러 군량미가 산더미같이 쌓인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하고 적을 공략했다고 전해진다.

 서해랑길은 저 계단을 올라 유달산(정확히는 유달산 둘레길로 연결된다)으로 간다. 하지만 트랙 확인을 방심한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는 유달로를 따라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둘레길 도반들까지 모시고서... ! 반대편으로 가면 물지게를 진 옥단이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옥단이는 물이 귀하던 시절 지게로 집집마다 물을 날랐다는 실존 인물이다. 그녀가 누비고 다녔다는 목포의 심장, 목원동 골목을 따라 100년의 근대 문화·역사를 전하는 옥단이길이 조성됐다.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길을 잘못 들어선 덕분에 유달산의 명물인 대학루를 뜨락의 정자삼은 멋진 주택도 구경할 수 있었다. 건물의 외벽은 조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돈도 돈이겠지만 저걸 쌓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꼬?

 길을 잘못 들어선 걸 알아차렸지만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200m쯤 걷다가 오른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올라간다.

 골목으로 들어선지 5.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학암사 (이정표 : 아리랑고개 0.5/ 유달산휴게소 0.3)에서 서해랑길을 다시 만났다.

 이후부터는 유달산 둘레길을 따른다. 유달산둘레길이란 목포 제1으로 꼽히는 유달산을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유달산주차장을 출발해 목포시사달성사특정자생식물원조각공원어민동산봉후샘낙조대아리랑고개수자원 뚝방길학암사유달산휴게소를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는데 길이는 6km쯤 된다.

 산속인데도 길은 정비가 잘되어 있었다. 주민들이 선호하는 산책코스인지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 누군가는 이 구간을 법정스님의 등굣길이라고 했다. 상업학교(현 전남대 상과대 전신) 시절 스님이 이 길을 따라 학교를 오갔다는 것이다.

 7분쯤 걸으면 옛 2수원지에 닿는다. 1912년에 축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산림 내 조성된 수원지(국가산림문화자산 지정)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류지역의 식수를 공급을 위해 지어져 1985년까지 사용됐다. 이후 장기간 방치되다가 2014년 개설된 둘레 길에 편입돼 친수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암벽 폭포와 생태연못을 곁들였음은 물론이다.

 유달산둘레길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스토리텔링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곳곳에 스토리보드를 세워 옛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그 자신감은 유달산둘레길의 첫머리를 이야기가 있는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스토리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도 엿볼 수 있었다. ‘채석장’, 그것도 소꿉장난이나 했을 법한 작은 작업장까지도 얘깃거리로 등장했다.

 명품 둘레길로 가꾸려는 지자체의 노력도 돋보인다. 이곳은 따뜻한 남쪽 나라. 조그만 빈 터라도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동백나무를 심고 가꾸어가고 있었다.

 산자락으로 들어선지 25. 낙조대(落照臺)에 도착했다. 이름처럼 석양이 아름다워 절경 중의 절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저 멀리 다도해 섬들이 바둑알처럼 알알이 박히는데, 그 사이로 해라도 떨어질라치면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낙조대를 유달산둘레길 8 중 제3경으로 꼽는다.

 정자에 오르면 고하도와 목포대교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웃자란 소나무가 아랫도리를 잘라먹어버려 풍경사진은 조망도로 대신했다). 저 어디쯤으로 떨어지는 다도해 해넘이는 유달산 풍경의 백미로 꼽힌다. 그뿐 아니라 목포8경인 고하도 용머리를 돌아오는 만선의 깃발(龍塘歸帆)과 푸름의 기개가 넘치는 고하도의 곰솔(高島雪松)도 감상할 수 있단다.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유달산이 성큼 다가온다. 유달산에는 유난히 바위가 많다. 거대한 바위의 주름진 표면과 빛깔이 코끼리를 닮은 코끼리 바위, 마치 남녀가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한 장수바위, 모양이 각기 다른 바위들을 바라보며 이름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나?

 조망을 즐기다가 또 다시 길을 나선다. 보드라운 흙길에 경사까지 느껴지지 않아 걷기에 딱 좋다.

 봉후샘은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유달산 봉우리의 뒤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봉후마을’, 이 마을에 식수를 제공해주던 샘이 봉후샘이다. 그러다 1982년 유달산공원화사업으로 주민들은 떠나갔고, 사용자를 잃은 봉후샘은 이제 빈 두레박만 매단 채 둘레길 나그네들에게 쉼터가 되어준다.

 스토리보드는 봉후마을 주민들이 소를 길러 생계를 유지했다고 전한다. 지자체는 이를 더 실감나게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꼴 먹이러가는 아이의 조형물을 세워 옛 추억을 소환하게 만든다.

 시야가 트일라치면 북항(北港)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 뒤로는 다도해 섬들이 바둑알처럼 박혀있다. 유달산 신선들이 섬들을 바둑알 삼아 바둑을 즐겼을 법하다.

 다 내려왔나 싶던 둘레길이 다시 오르막으로 변한다. 이제 그만 내려가고 싶은데도 말이다.

 둘레길이 지겨워질 즈음 어민동산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정표 : 덕산삼거리 0.3/ 어민동산 0.1/ 일등바위 1.3)을 만났다. 유달산을 끝으로 트레킹을 마칠 요량이니 이곳에서 어민동산으로 내려가면 수월해진다. 하지만 대중교통의 이용이 더 편한 덕산삼거리로 간다.

 200m쯤 더 걷게 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넉넉했다. 북항과 그 너머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걷는 내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조금 더 걸어 유달로에 내려섰다. 삼거리(이정표에 적혀있던 덕산삼거리일지도 모르겠다)인 이곳에서 서해랑길은 오른편(북항 방향)으로 간다.

 북항으로 가는 도중 목포의 명물인 해상케이블카 북항 스테이션을 만났다. 저곳을 출발한 캐빈은 유달산 이등바위와 일등바위를 눈앞에 선사하며 유달산스테이션을 지나 고하도스테이션을 향해 바다 위를 빠르게 날아간다. 최고 높이 155m, 총길이 3.23로 국내 최장 해상케이블카라고 한다.

 트레킹은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400m쯤 더 걸은 다음 어반호텔 앞 삼거리에서 마쳤다. 이후 구간은 시가지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맨날 보고 또 걸어야만 하는 시가지를 걷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나저나 오늘은 14.02km 4시간20분에 걸었다. 2.5km정도의 산길을 걸었다고는 하지만 험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