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4구간(호반낭만길)

 

여행일 : ‘22. 9. 3(토)

소재지 :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추동·주산동·신상동 일원

여행코스 : 윗말뫼→명상정원(슬픈연가 찰영지)→가래울→자연수변공원→황새바위→연꽃마을→금성마을 입구→엉고개→신상교(거리/시간 : 12.5km/ 실제는 13.17km를 3시간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대청호(大淸湖)는 ‘전국 3대 호수’ 중 하나로 2개 광역(대전·충북)과 5개 기초(대전 대덕구·동구, 청주시·보은군·옥천군) 자치단체에 걸쳐 있으며, 둘레만도 무려 ‘500리’나 된다. 이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지는데, 그 야산과 호숫가·자연부락·소하천·옛길 등을 둘레길로 이은 다음 ‘대청호 오백리길(220km을 21개 구간으로 나누었다)’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은 네 번째 구간인 ‘호반낭만길(12.5km)’을 걷는다. 이 구간은 호수와 습지·억새밭·숲·오솔길을 함께 즐길 수 있다.‘호반 낭만’이란 이름대로 대청호의 리아스식 호안을 따라 걷다보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풍광들을 숱하게 만난다.

 

▼ 들머리는 ‘윗말뫼 주차장’(대전시 동구 직동)

경부고속도로 대전 TG를 빠져나오자마자 좌회전, 비래서로와 신상로를 잇따라 타고 대청호까지 온다. 이어서 대청호수로를 타고 댐 쪽으로 2km남짓 올라가면 ‘마산동 마을’이다. 마을 앞 버스정류장(원마산)에서 냉천로(오른쪽)로 옮겨 들어가면 잠시 후 ‘위말뫼 주차장(주차장 입구의 은진서씨 동파공 제실인 ’동파제‘를 참조하면 되겠다)’에 이른다. 참고로 네이버지도‘는 4구간’의 출발지를 ‘마산동 마을’로 적고 있었다. 최근 호숫가를 따라 길을 새로 내면서 들·날머리가 바뀐 모양이다.

▼ 대청호오백리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알려진다. 동구(대전시)에서 정한 ‘다섯 백미(五白眉)’, 즉 5곳의 빼어난 경관 중 3곳이 이 구간에 있다면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 특히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간 아름다운 곶(串)들은 이 구간의 자랑거리. ‘슬픈 연가’와 ‘창궐’ 등 수많은 영화·드라마의 촬영지가 되었을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다.

▼ 호숫가로 내려서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탐방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난간을 세웠는가 하면 바닥에는 야자매트를 깔아 질퍽거릴 염려까지 없애버렸다. ‘윗말뫼 주차장’을 만들면서 도로를 따르던 옛길 대신 새로 낸 모양이다.

▼ 대청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호숫가가 ‘리아스식’이라는 점이다. 후기 간빙기(間氷期)의 해수면 상승으로 산봉우리와 산등성이가 섬이나 곶으로 변한 현상인데, 인공이긴 하지만 이곳 대청호도 물에 잠기면서 그런 모양새로 변한 것이다. 그런 호기를 지자체가 놓칠 리가 있겠는가. 바다를 향해 나간 곶(串)에 벤치를 놓아 탐방로의 품격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호반+낭만이란 구간 브랜드에 걸맞도록 꾸몄다고나 할까?

▼ 탐방로는 한마디로 잘 다듬어져 있다. 호숫가를 따라 널찍하게 길은 내었는가하면 물이 차있는 곳에는 다리처럼 ‘데크 로드’를 놓았다.

▼ 4구간(호반낭만길)은 대청호의 서안(西岸)을 따라 이어진다. 때문에 걷는 내내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다.

▼ 야자매트를 깐 고속도로 수준의 길을 걷는다. ‘무장애 탐방로’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게다.

▼ 길을 나선지 17분, 주차장에 화장실까지 갖춘 ‘마산동 쉼터’에 이른다. 호반낭만길의 하이라이트랄 수 있는 ‘명상정원’과 ‘슬픈 연가 촬영지’의 실질적인 들머리이다. 카페는 물론이고 식당도 셋이나 들어서있어. 쉬어가기에도 딱 좋은 지점이다.

▼ 쉼터에는 액자처럼 생긴 ‘포토죤’이 만들어져 있었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액자 프레임을 소품삼아 냉큼 포즈부터 취하고 본다. 호반낭만길은 곳곳에 이런 포토죤을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우린 걷기를 떠나 풍경에 흠뻑 빠져보는 기회가 되었고...

▼ 이후부터는 다시 데크로드를 따른다. 흙길을 낼 수 없는 호숫가를 따라 다리 모양으로 길을 냈는데, 나무 등 기존의 지형지물을 손대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중간 두어 곳에 쉼터를 만들어 두는 센스도 발휘했다.

▼ 5분쯤 걸었을까 길이 둘로 나뉘면서 탐방객의 선택을 강요한다. 이정표(명상정원↖ 600m/ 명상정원↗ 300m)가 양쪽 모두에 ‘명상정원’을 적고 있는 것이다. 내 선택은 왼쪽이었다. 340m 지점에 전망대가 있다는데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아까도 얘기했듯이 대청호는 리아스식 호반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간 저 곶(串)도 그중 하나. 지자체는 맨 끄트머리(명상정원에서 300m 지점)에 전망데크를 만들어 대청호의 풍광을 맘껏 눈에 담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경관을 소품과 함께 담아갈 수 있도록 액자형 포토죤을 만들어두었음은 물론이다.

▼ 난간에 서면 대청호가 발아래로 깔린다. 국내에서 3번째로 큰 대청호는 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생겨났다. 이때 대덕과 옥천의 많은 마을이 수몰되는 아픔도 있었지만 댐 건설로 인해 경제 산업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고, 대청호가 만들어낸 풍경은 또 다른 관광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 또 다른 곶에는 정자를 지어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참! 데크 전망대부터는 흙길을 걷게 된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 정자에 이르면 잠시 후 들르게 될 또 다른 곶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 곡선의 물가 모래밭이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대청호의 수위가 만들어놓은 예술작품이다. 물이 조금씩 빠져나갈 때마다 호수의 파장이 층층의 예쁜 무늬를 만들어놓았다

▼ 탐방객의 눈을 현혹시키던 장소에 이르자 구불구불한 호수선이 한 폭의 그림이다. 경사가 완만한 주변은 황토색 띠를 허리에 찬 풍경을 선사한다. 이곳도 포토죤으로 손색이 없었다. ‘대청호오백리길’ 조형물과 대청호반을 한꺼번에 넣는다면 인생샷 하나쯤 너끈히 건질 수도 있겠다.

▼ 다음은 명상정원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이때는 호숫가를 직접 걸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대청호의 물이 찼다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만들어놓은 층층의 곡선 위에 오솔길이 나있다. 이 길은 올 가을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하는 ‘가을 비대면 관광지 100선’에 꼽히기도 했다. 그러니 천천히 음미하며 걸어볼 일이다.

▼ 잠시 후 도착한 ‘명상정원’은 쉼터로 꾸며져 있었다. 벤치는 지붕을 씌웠고, 식탁형의 의자는 아예 돌로 만들었다. 차분히 앉아 명상에 잠겨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대청호 물속에 잠겨버린 옛 마을 주민들의 심정이 되어...

▼ 명상정원의 끝자락, 휑한 공간은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무대가 된다. 이국적이라고도 평가받는 공간에는 ‘창궐’의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얼굴을 넣으면 극중 출연자로 변하는 기교까지 부렸다.

▼ 수몰민이 떠난 자리는 이제 오리 떼의 놀이터가 됐다. 실향민은 통일되면 고향땅을 밟는다는 희망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수몰민은 그런 희망조차 품을 수 없단다. 물 뺄 일이 없는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야 없는 노릇. 주민들은 하나둘 떠나갔고, 그 빈자리를 저 오리들이 채워나갔을 것이다.

▼ 호수와 맞닿은 언덕의 끝, 그 건너편에는 하얀 모래로 둘러싸인 섬 하나가 외롭게 떠 있다. 갈수기에만 길이 생긴다는 뜬섬, ‘홀로섬’이다. 물이 빠져나가면 해변을 연상시키는 모래사장과 섬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고 한다.

▼ 이곳은 일망무제의 조망으로도 유명하다. 코앞으로 다가온 ‘홀로섬’은 물론이고, 멀리 보이는 첩첩이 쌓인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 위를 뭉실뭉실 떠가는 구름, 어느 유명화가가 저런 풍광을 화폭에 담아낼 수 있을까.

▼ 몇 걸음 더 걸으면 ‘슬픈 연가(권상우·김희선 주연)’ 촬영지다. 엇갈린 운명 속에 서로를 사랑하게 된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MBC에서 ‘공전의 히트’라는 사고를 쳤었다. 그밖에도 <나의 절친 악당들> <7년의 밤> 같은 현대물과 <창궐> <역린> 같은 시대물 등 수많은 작품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던 모양이다. 길 양옆으로 줄지어 늘어선 안내판들이 그 증거다.

▼ 세트(두 주인공이 어린 시절 추억을 쌓던 오두막집)는 철거된 지 이미 오래, 서너 곳에 세워놓은 푯말만이 이곳이 드라마 촬영지였음을 알려준다. 지자체는 그 빈자리를 액자형의 포토죤으로 채워 넣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으로도 모자라, 권상우와 김희선의 잔영까지 넣어보라는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 촬영지 부근, 대나무에 둘러싸인 담장과 장독대가 눈에 띈다. 대청호에 수몰된 옛 풍경을 복원해 놓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터를 잘못 잡았다는 생각은 나만의 편견일까? 잠시 후에 만나게 되는 ‘물속마을 정원’이 제 자리일 것 같기에 넋두리를 늘어놔봤다.

▼ 시원한 호수바람을 맞으며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몰민의 옛 추억을 어루만지는 ‘물속마을 정원’을 만난다. 지난 1980년 대청호 건설로 수몰된 86개 지역 중 한 곳으로, 물에 잠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고 한다. 저녁이면 밥 짓는 냄새 가득하던 마을도, 친구들과 뛰어놀던 앞산과 뒷산도, 모두 물속에 잠겨 이제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단다.

▼ 이곳에 살던 사람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래선지 정원은 단조롭기 짝이 없었다. 미로를 연상시키는 정원은 자그마했고, 그 주변에 이층의 정자와 물속마을 정원에 대한 안내판, 그리고 벤치 몇 개가 놓여있을 따름이다. 수몰의 기억보다는 그저 ‘관광 상품’으로 존재한다고나 할까? 참고로 1981년에 완공된 대청댐은 4075가구 2만6178명의 이주민을 만들어냈다.

▼ 몇 걸음 더 걸어 만나게 되는 삼거리는 헷갈리기 딱 좋은 곳이다. 오백리길 이정표(전망대 0.1㎞/ 물속마을정원 0.1㎞)는 100m 전방에 있는 전망대를 가리키는데, 또 다른 이정표(추동소한터 900m/ 명상정원 400m)가 이를 무시하고 곧장 ‘추동 소한터’로 가라는 것이다.

▼ 우리 부부는 오백리길 이정표를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100m쯤 떨어진 곳에서 데크 전망대를 만날 수 있었다.

▼ 전망대에 서면 반도처럼 호수 가운데로 길쭉이 나아간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방금 전까지 내 눈을 즐겁게 해주던 ‘명상정원’과 ‘슬픈연가 촬영지’다. 사람들은 대청호를 ‘내륙의 바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바다는 도시의 시끌벅적한 해수욕장보다는 외딴 섬의 고요한 해변 같다.

▼ 전망대를 빠져나와 반대편 호안을 따른다. 100m쯤 더 걸으면 아까 갈려나갔던 지름길이 다시 합류되는 삼거리. 이후부터 탐방로는 습지를 헤집으며 나아간다. 다리모양 데크로드를 놓아 사람이 다닐 수 있게 했음은 물론이다.

▼ 습지는 초봄과 가을이 제격으로 알려진다. 초봄이면 연두색 갈대와 야생초가 지표면을 뒤덮고, 가을에는 하얀 억새와 갈대들이 하늘거리며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게 그림처럼 아름답기에,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인기가 높다. 낭만 여행지라고나 할까?

▼ 호반낭만길은 꽤나 멋을 부렸다. 탐방로 바닥에 판석(板石)을 깔아놓았을 정도로...

▼ 어느덧 4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 중 하나라는 ‘갈대밭’으로 들어선다. 키 큰 갈대들이 한들거리며 군무를 추고,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은 S자로 굽이굽이 흐른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10분(명상정원에서는 25분), 탐방로는 대청호수로의 도로변에 있는 ‘추동 소한터’에 이른다. ‘한터’가 넓은 빈자리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니 작은 공터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듯 ‘호수낭만길’을 걷다보면 ‘한터’란 지명을 여러 번 만나게 된다.

▼ 탐방로는 도로(이정표 : 자연생태관 3.5㎞/ 마산동 삼거리 3.5㎞)로 올라서자마자 이별부터 고한다. 그리고 오솔길을 이용해 산속으로 파고든다. 큼지막한 무덤, 아니 강화도에 있는 고려 왕릉보다도 더 커다란 무덤이 눈길을 끄는 구간이다.

▼ 산속으로 들어선지 8분, 자그마한 고개를 넘자 이정표(슬픈연가 촬영지 2.6㎞/ 대청호 자연생태관 1.4㎞)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아니 쌍으로 나타나면서 보는 이를 고민에 빠뜨려버린다. 왼편으로 가면 ‘전망 좋은 곳’이 나온다며 꼬드기는 것이다.

▼ ‘가지 않았으면’하는 집사람의 눈초리를 무시한 채 전망 좋다는 곳으로 향했다. 덕분에 두어 번의 오르내림은 달리다시피 걸을 수밖에 없었다. 집사람이 눈꼬리를 치켜뜬 채로 기다리는데, 어찌 한가하게 걸어갈 수 있겠는가.

▼ 그렇게 5분쯤 진행했을까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벤치 하나가 놓여있는데, 이곳이 ‘전망좋은 곳’이란다. 벤치에 앉자 물가로 길게 뻗어내려 간 아름다운 능선이 쫙 펼쳐진다. 그 끄트머리 툭 튀어나온 부분은 사진작가들이 ‘바람의 언덕’이라 부르는 사진촬영의 명소다. 하지만 가보지는 못했다.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집사람이 머릿속을 맴도는데 ‘언감생심’ 아니겠는가.

▼ 오른편에는 미나리 꽃창포 등이 식재된 ‘인공 섬(수초재배 섬)’이 아름답게 떠 있다.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정화시키기 위한 ‘부유습지’다. 그건 그렇고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대청호의 풍광은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대청호와 그 너머의 산들, 그 위로 떠가는 구름, 이게 한데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대청호자연생태관’쪽으로 향한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추동습지’에 이른다. 습지란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기능도 있지만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지를 제공한다. 철새도래지로 알져진 저 습지에는 수달·원앙·말똥가리·맹꽁이 등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살아간단다. ‘대전시 아름다운 자연생태 7선’에 포함된 이유일 것이다.

▼ 습지에는 활처럼 휜 데크길과 2곳의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억새·갈대 군락과 버드나무·야생초 등이 서로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을 조금 더 편하게 살펴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하지만 시판(詩板)과 안내판 등의 시설이 낡아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는 흠도 보였다.

▼ 습지를 지나면 ‘가래울마을(추동)’이다. 가래나무가 많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는데, 원래의 오백리길은 저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대청호자연생태관을 거쳐 ‘자연수변공원’으로 나온다. 하지만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방향표시지는 마을로 들어가지 말란다. 코스가 변경되었으니 그냥 ‘대청호수로’를 따라 수변공원으로 가라는 것이다.

▼ 덕분에 우린 1.3km 정도를 단축할 수 있었다. 걷다가 만난 전망대에서는 또 다른 멋의 대청호를 내다보는 기회도 가졌다. 대청호오백리길이 ‘아시아 도시경관상’을 받았다는 안내판과 함께. 대신 대청호자연생태관에서의 보다 많은 앎은 물론이고, 풍차와 미로공원 등 수변공원 안쪽에서 만날 수 있다는 예쁜 풍경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그렇게 200m쯤 걷자 ‘대청호 자연수변공원’이 얼굴을 내민다. 추동마을을 에둘러 돌아온 원래의 탐방로와 다시 만나는 지점으로, 1만 3360㎡의 부지에 생태습지와 연못, 화원 등을 조성하고, 수변산책로와 풍차 그리고 4만여 본의 수목과 잔디를 식재해 시민휴식공간으로 개장했다. 특히 동구팔경을 미니어처로 배치한 미로공원이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에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와 가족 나들이 장소로 각광을 받는단다.

▼ 공원은 생태습지와 연못, 화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습지를 중심으로 정자를 짓고 벤치를 놓았는가 하면, 연못에서는 황금 잉어와 각종 민물고기가 유영을 한다. 하지만 새로운 볼거리로 뜨고 있다는 ‘동구팔경 미로정원’은 가보지를 못했다. 동구의 팔경을 미니어처로 감상할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런 명소가 있는지조차 몰랐으니 어쩌겠는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 대전시 상수원 취수시설인 ‘추동취수탑’을 스치듯 지난다. 105만 톤/일의 취수량을 자랑하는 취수구 주변에는 조류차단막과 수초섬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염물질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시설일 것이다. 대전 시민의 건강을 위해서...

▼ 대청호가 유명세를 탄 데는 ‘대청호수로’의 역할도 컸다. 동구팔경에 포함될 정도로 유명한 ‘벚꽃길’은 물론이고, 은행나무로 가로수 삼은 이 구간의 경관도 결코 그에 뒤지지 않을 것 같다. 저 나무들이 진노랑으로 옷을 갈아입었다고 상상해보라.

▼ 초콜릿 만들기 체험을 해볼 수 있다는 ‘초콜릿정원’ 입구에서 50m쯤 더 걸으면, 모퉁이를 돌아가기 직전 왼편으로 샛길이 하나 나뉜다. 탐방로는 도로를 벗어나 이 길로 들어선다. 이정표(신상교 5㎞/ 대청호자연수변공원 0.5㎞)를 포함한 오백리길의 푯말들이 방향을 알려주고 있으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이 구간은 들길과 산길로도 모자라 호숫가까지 번갈아가며 지난다. 갈림길도 심심찮게 만난다. 하지만 이정표와 푯말, 리본 등 오백리길의 표식들이 빼곡히 매달려있어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가 없다.

▼ 호수에는 인공섬(식물재배 섬)이 떠있었다. 물을 정화시키는 기능뿐만 아니라 어류·조류·곤충류들이 쉴 수 있는 공간까지 되어주는 곳이다. 호수 위에 떠있는 조그만 식물원이라 여기면 되겠다.

▼ ‘가사낭골’을 지나 작은 언덕으로 올라서니, 길섶의 작은 돌비석에 ‘호미고개’라 적혀있다. 대청호에 물이 차기 전 강촌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였던 모양이다. 참! 이 구간에서 만나게 된다는 ‘공룡 알’처럼 생긴 바위는 눈에 띄지 않았다. 만수위에 가까운 대청호의 물이 어미라도 되는 양 알을 품어버린 모양이다. 오백리길의 풍광은 이렇듯 대청호의 수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이쯤에서 팁 하나! 대청호의 풍광은 물이 8부쯤 차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게 정설이다.

▼ 길을 나선지 2시간(초콜릿정원 근처 샛길로 들어서서는 21분), 작은 마을(이정표 : 신상교 3.5㎞/ 추동취수탑 1.5㎞)을 만났다. 하지만 지명은 알 수 없었다. 양봉협동조합은 머리말로 ‘가마봉’을 붙였는데, 근처 식당의 간판은 ‘샘골’을 고집한다. 아무튼 탐방로는 마을 앞에서 차단봉(차량출입 방지용)으로 가로막힌 샛길로 들어선다.

▼ 몇 걸음 더 걷자 ‘황새바위 전망대’다.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간 지점에 전망데크를 만들어놓았다. 정자를 짓고 벤치를 놓아 쉼터의 기능을 겸하도록 했음은 물론이다. 참! 대전지역의 박석신 화가는 황새바위의 전설을 거북바위가 알을 낳기 위해 강 아래 모래톱을 오르는데 산불이 나서 아우성치는 황새바위를 발견했고 온 힘을 다해 불을 끄지만 끝내 목숨을 잃는다는 조금은 슬픈 동화로 풀어내고 있었다.

▼ 정자 근처의 던져지듯 놓여있는 바위가 이곳의 지명을 낳게 한 ‘황새바위’다. 바위의 생김새가 새의 날개를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아무리 뜯어봐도 새의 근처에도 못 갔다. 집에 돌아와 알아보니, 황새가 날개로 알을 품은 모양새라며 사진에 나오는 둥그런 바위가 알에 해당된다고 한다. 황새의 날개를 닮았다는 바위는 숲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 바위 자체야 크게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청호 풍경은 시원함 그 자체였다. 시선을 조금만 들면 대청호를 아담하게 둘러싼 백골산도 볼 수 있다.

▼ 10분쯤 더 걸으면 ‘연꽃마을’이다. 호수에 안겨 있는 한적한 마을로 들어서니 솟을대문의 ‘한국사진예술원’이 반긴다. 최고경영자(CEO 및 다양한 전문직종사자)들을 위한 사진예술 교육기관인데 이곳에 분원을 두었나보다. 연꽃마을 주변의 대청호반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긴 서양화가 송영호의 화실과 정덕천 시인의 집 ‘글사랑 놋다리집’까지 들어선 마을이니 어련하겠는가.

▼ 하지만 지명까지 만들어낸 ‘연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마을의 자랑거리라는 어라연·가시연·홍련·백련·빅토리아연은 다 어디가고, 엉뚱한 ‘오백미 황새코스’ 홍보판이 얼굴을 내민단 말인가. 아무튼 이곳은 동구(대전시)에서 정한 오백미(오白眉) 중 하나인 황새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 분명하다. ‘대청호오백리길’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을 백미(白眉)로 지칭, 총 5개 코스(벚꽃길 코스·촬영지코스·추동 생태코스·냉천골 사진코스·황새코스)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황새바위’ 일대인 것이다.

▼ 마을 근처 길섶에는 시판(詩板)들이 늘어서 있었다. 연꽃마을에 살고 있다는 정덕천 시인의 작품(손수건, 수련)이 주를 이루는데, 그밖에도 정인득(매화꽃 연정), 서정주(국화 옆에서), 조병화(인생은) 등 귀에 익숙한 시인들의 작품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 이정표(신상교 3.0㎞/ 황새바위 0.7㎞)가 가리키는 신상교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선다. 탐방로는 숫제 고속도로 수준. 야자매트로 바닥을 깔았는가 하면, 습지에는 큼직한 돌다리를 놓았다. 그것도 오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2차선으로 만들었다.

▼ 지자체의 부지런함도 엿볼 수 있었다. 4구간 전체를 한가위 벌초하듯 깔끔하게 풀을 깎아놓았다.

▼ 그렇게 10분 남짓 걸었을까 또 하나의 곶을 만났다. 호수를 향해 뻗어나가다 폭이 조금 좁아지는 짤록한 곳. 이 언덕 부분에 말갈기처럼 생긴 갈대가 숲을 이룬다. 이곳 역시 사진촬영의 명소로 꼽힌다.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참나무와 하늘거리는 갈대를 올려다보며 찍어도 좋고, 줄을 서서 언덕을 걸어가는 사람들 모습을 풍경과 함께 담아도 좋은 그림이 나온다고 한다.

▼ 이후부터는 녹음 짙은 여름빛으로 찰랑거리는 호숫가를 쉬엄쉬엄 걷는다. 데크가 아닌 흙을 밟으며 만나는 대청호는 자연을 닮았고 평화로웠다.

▼ 만수기인 지금이야 물이 가득 차있지만, 물이 빠지기라도 할라치면 저곳은 모래톱이 백사장처럼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옛 마을 빨래터와 우물터도 그대로 드러날 게 분명하다.

▼ 산자락에는 다양한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엊그제까지 내린 비가 자양분이 되었나보다. ‘우후죽순’이 아니라 ‘우후버섯’이 되었다고나 할까?

▼ 15분쯤 더 걸으면 ‘주산동 전망대’다. 주산동(상촌마을) 앞 도로(대청호수호)변에 전망데크를 만들어놓았다. 정자와 벤치는 물론이고 주차장까지 갖추었다. 참고로 대전은 송시열과 송준길의 발자취가 많은 곳이다. 이곳 주산동쉼터는 그들의 후손인 은진송씨 종중에서 동구에 희사한 부지에 조성했다고 한다.

▼ 난간으로 나가면 ‘전망대’라는 명칭에 걸맞는 풍광이 펼쳐진다. 아무렇게나 말라서 고사목이 되어버린 굵은 나무들이 물속에 잠겨있는 것이다. 이 길이 호수가 아니었을 때 정정하던 나무는 댐을 막아 물을 가두면서 수장되었고 또 숨을 다했다. 그게 고사목으로 변해 이제 탐방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 2.2km전방에 있다는 ‘신상교’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선다. 탐방로는 습지를 헤집으며 나아간다.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곳으로, 물에 잠긴 버드나무 사이로 물안개라도 피어오를라치면 몽환적 풍경을 연출한다고 알려진다. 참! 주산동에선 조선 중기 문신인 송기수의 사당을 둘러보고, 대전시 기념물 32호인 비룡동 신선봉 유적도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에 쫒기는 나로서는 언감생심이었다.

▼ 보행매트와 데크로드를 번갈아 지난다. 그러다가 제법 높은 고개 하나를 넘기도 한다. 아니 코스 안내도에 나오는 ‘원주산’은 이곳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연꽃마을에서 0.6km쯤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적고 있으니 말이다.

▼ 고개를 넘으면 ‘금성마을’로 연결(오른쪽 방향)되는 도로다. 탐방로는 3분쯤 이 길을 따른다. 벚꽃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것이 봄철에는 또 하나의 멋진 경관이 될 수도 있겠다.

▼ 이정표(신상교 1.4㎞/ 연꽃마을 1.7㎞)가 가리키는 신상교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7분쯤 되는 지점에서 ‘안내판’ 하나를 만났다. 만수위로 인해 통행이 불가하니 우회하라는 당부를 적었다. 제방길이 물에 잠겼다는 얘기일 것이다.

▼ 우회로는 오솔길 수준이었다. 다듬지 않은 원시의 숲길이라고나 할까? 비상시에 임시로 사용하는 길이라서 일 것이다.

▼ 이때 신상교와 인근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저 물속 어디쯤에 원래의 탐방로인 ‘제방길’이 있을 것이다. 호반을 가로질러 신상교 아래로 쭉 뻗어나간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불어난 물이 이를 삼켜버렸고, 우리는 이렇게 호숫가를 에둘러 간다. 걸어보지 못한 제방길의 풍경은 다른 이의 글로 대신해본다. <길게 펼쳐진 제방을 따라 걸으면 가장 낭만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제방은 대청호가 머금고 있는 푸른 물을 따라 일직선으로 이어지고, 제방이 끝나면 반짝이는 모랫길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그 길은 곧장 갈대숲으로 연결된다.>

▼ 그렇게 10분쯤 진행하자 ‘신상동 인공습지’가 나온다. 대청호의 수질개선을 위한 시설의 하나로, 비룡마을 및 廢고속도로 등 광범위한 배출경로에서 빗물에 섞여 유입되는 비점오염원을 5개의 인공습지에서 여과 후 대청호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노랑꽃창포 등 9종의 수생식물을 재배해 환경보전 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생태학습장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한단다.

▼ ‘신상로’로 올라서니 지역특산물을 파는 간이상점이 눈에 띈다. 음료까지 판다기에 캔맥주 서너 개와 아이스크림까지 챙겨들었으니 오늘도 공정여행을 한 셈이다. 공정여행이란 게 여행자들이 쓰는 돈이 지역과 공동체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착한 여행을 의미한다니 말이다. 참고로 공정무역(fair trade)과 일맥상통하는 공정여행은 ‘여행하는 이와 여행자를 맞는 현지 주민들이 서로 문화를 존중하고 경험하며 성장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 길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린다. 그 끄트머리에 ‘신상교’라는 악마의 구간이 있었다. 4차선에 중앙분리대까지 갖춘 걸로 보아 ‘자동차 전용도로’가 분명한데도 다리를 건너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차량이 무서운데, ‘왜 이런 곳을 걷느냐’는 듯 스치듯 지나가는 차량도 심심찮게 보였다. 대부분은 속도를 떨어뜨린 채로 지나갔지만 말이다. 아무튼 두 번 다시 걷고 싶지 않은 구간이었다.

▼ 날머리는 신상교(대전시 동구 신상동)

다리를 건너자 도로 양편에 주차가 가능한 갓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에 주차되어 있는 산악회 버스를 만나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3시간40분을 걸었다. 산길샘(앱)이 13.17km를 찍고 있으니 꽤나 더디게 걸은 셈이다. 눈이 아니라 가슴에까지 담아둘만한 볼거리가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대청호 오백리길 2구간(찬샘마을길)

 

여행일 : ‘22. 8. 6(토)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이현동·황호동·부수동·직동 일원

여행코스 : 이현동 억새밭→찬샘마을(아랫피골)→황호동 느티나무→부수동→전망대(왕복)→성치산성→윗피골(성황당고개)→찬샘정→냉천 버스종점(거리/시간 : 10km/ 실제는 찬샘정에서 두메마을까지 역방향으로, 9.9km를 3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대청호(大淸湖)는 ‘전국 3대 호수’ 중 하나로 2개 광역(대전·충북)과 5개 기초(대전 대덕구·동구, 청주시·보은군·옥천군) 자치단체에 걸쳐 있으며, 둘레만도 무려 ‘500리’나 된다. 이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지는데, 그 야산과 호숫가·자연부락·소하천·옛길 등을 둘레길로 이은 다음 ‘대청호 오백리길(220km을 21개 구간으로 나누었다)’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은 두 번째 구간인 ‘찬샘마을길(10㎞)’을 걷는다. 이현동억새밭에서 시작해 냉천버스종점에서 끝나는데, 해발 210m의 ‘성치산’을 오롯이 넘어야하는 만만찮은 코스다. 거기다 성치산성과 전망대를 제외하면 보여주는 경관도 별로다. ‘대청호오백리길’의 완주를 목표로 하지 않은 트레커라면 일부러 찾아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들머리는 ‘찬샘정’(대전시 동구 직동)

당진·영덕고속도로(청주-상주) 문의·청남대 IC에서 내려와 32번 지방도와 대청호반로 등 여러 도로를 번갈아 타게 되는데, 너무 복잡하니 내비게이션에 ‘찬샘정’을 치고 찾아오는 게 편하겠다. 참! 호평동에서 시작되는 냉천로가 1차선이라는 것도 기억해두자. 애먹어가며 들어가던 산악회의 (대형)버스도 냉천정에서 차를 돌려야만 했다.

▼ 거리는 10km밖에 되지 않으나 해발 210m의 ‘성치산’을 오롯이 넘어야만 한다. 거기다 산길(3km)이 가파르고 오르내림까지 잦아 오늘처럼 푹푹 찌는 삼복더위에는 지옥의 구간이 된다. ‘부수동 호안’에서 바라본 대청호 풍경이 그나마 위안이었다고나 할까? 참! 트레킹은 주차 여건을 감안 역방향으로 진행했다. 그마저도 대형버스의 진입이 불가능한 탓에 원래의 출발지에서 1km쯤 못 미친 ‘찬샘정’에서 시작했다.

▼ ‘찬샘정(현위치)’은 대청호 조성으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지은 정자다. 그러니 오랜 세월동안 실향민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게 우리 같은 둘레길 나그네들에게 쉼터가 되어준다. 대청호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새로운 활력을 충전할 수 있는...

▼ 역방향(찬샘마을 방향)으로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1차선이지만 시내버스까지 오가는 의젓한 도로란다. 하지만 소형버스일 게 뻔하다. 대형버스를 몰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과 마주칠 경우 우리처럼 난감한 상황에 봉착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 오늘은 ‘통통투어’ 팻말이 먼저 반긴다. 서울시의 ‘통통’은 ‘통할 통(通)’을 겹쳐서 쓰던데, 이곳 대전의 통통은 뭘 의미하고 있을까? 아서라. 까짓 낱말풀이가 무슨 실익이 있겠는가. 그저 팻말 속 QR 코드를 스캔해 해당 구간의 ‘통통 튀는’ 정보나 받아보면 그만 아니겠는가.

▼ 2구간의 길안내는 ‘119’의 구조지점표시목이 맡았다. 기본 임무인 ‘현위치 번호’는 물론이고, 시점(이현동 억새밭)과 종점(냉천 버스종점)까지의 거리를 적어 이정표의 기능을 더했다.

▼ 1km쯤 걸었을까 ‘윗피골’이란 이름표를 단 이정표가 얼굴을 내민다.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이 근처에 ‘윗피골’이라는 마을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핏골’이란 지명은 후삼국시대 견훤의 후백제 군사와 신라가 노고산성에서 크게 싸워 피가 내를 이루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후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해서 냉천수가 많이 나오는 특성을 감안 ‘찬샘마을’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게 또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피 직(稷)’자가 들어간 직동(稷洞)이 되었다.

▼ 몇 걸음 더 걷자 ‘성황당고개’다. 출발지에서 25분쯤 되는 지점(이정표 : 성치산 1.6㎞/ 찬샘마을 0.5㎞)인데, 고갯마루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로부터 유래된 지명이지 싶다. 윗피골 주민들이 이 나무를 신목으로 모신 흔적이 아니겠는가.

▼ 통나무계단이 놓인 산비탈을 치고 오른다. 3km짜리 산길구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 산길은 가파르게 시작된다. 그것도 버겁다 싶을 정도로 가파르다. 시작부터 겁을 주려는 모양이다.

▼ 5분쯤 지나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섰다. 그런데 더 높은 봉우리 하나가 어서 오라는 게 아닌가. ‘산너머 저쪽에 행복이 있다기에 사람들과 함께 찾아갔다가 울면서 돌아왔다’는 ‘칼 부세’의 경고가 떠오르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 이후부터 산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를 높여간다. 짧고 완만한 내림과 길고 가파른 오름이 반복된다.

▼ 6분 후에 올라선 두 번째 봉우리, 하지만 이곳에도 행복은 없었다. 아무래도 또 다시 나타난 저 산 너머에 숨어있는 모양이다.

▼ 산길로 들어선지 16분, 가파른 오르막길을 다시 한 번 치고 오르니 무인산불감시탑이 반긴다. 네이버지도는 이곳을 226m봉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 이후부터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이때 상큼한 솔향기가 코끝을 스쳐간다. 그러고 보니 능선이 온통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 아무리 작다고 해도 쉬운 산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오르내리기가 버거운 사람 또한 있지 않았겠는가. 그들이 던져놓고 간 돌멩이가 하나 둘 쌓여 저런 돌무더기를 만들었다.

▼ 산길로 들어선지 33분, 특별한 게 하나도 없는 ‘삼각점봉’에 올라섰다. 삼각점(대전 423)과 이를 설명해놓은 안내판만 달랑 설치되어 있다. 해발고도도 202m에 불과한데 더 높은 곳을 놓아두고 하필이면 이곳에 설치했을까?

▼ 삼각점봉을 지나자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오르막이 나오기도 하지만 가파른 내리막이 대부분이다.

▼ 그렇게 7분쯤 내려서자 안부삼거리다. 오백리길 이정표(성치산성 0.11㎞/ 찬샘마을 1.96㎞)는 빠뜨렸지만 성치산상으로 오르는 게 버거운 사람들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탈출하면 된다.

▼ 왼편으로 몇 걸음 내려가 보니 임도가 얼굴을 내민다. 정방향에서 2구간을 시작했을 경우 저 길은 따라 부수동까지 간 다음, 산길을 타고 성치산성을 거쳐 이곳으로 오게 된다.

▼ 삼거리를 지나자 ‘성치산성’ 안내판이 길손을 맞는다. 요 위에 성치산성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제 위치도 아닌 곳에 안내판을 세운 이유는 뭘까? 저 무거운 철판을 짊어지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게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 성치산 봉우리를 빙 둘러 쌓은 성치산성(城峙山城, 대전시 기념물 29호)은 둘레가 160m에 불과하다. 퇴뫼식 석축산성이나 거의 허물어져 원래의 모습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역사가 묻어있다.

▼ 다시 시작되는 가파른 오르막길, 오늘은 중복과 말복의 사이. 말 그대로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복날 산행이라니’라며 혀를 차던 윤대장의 말마따나 복중 산행은 죽음의 행진이 될 수밖에 없다. 땀수건을 짜기라도 할라치면 장맛비 낙숫물처럼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러니 어찌 죽을 맛이 아니겠는가.

▼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산꼭대기에 올라섰다. ‘네이버 지도’는 이곳을 ‘성치산(219.4m)’으로 적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석이나 이정표는 물론이고 그 흔한 표지기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잡목에 포위된 탓에 조망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 둘레길을 만든 지자체도 그게 어색했던 모양이다. 주변 생태계를 소개하는 안내판에다 ‘성치산성’이란 지명을 살짝 끼워 넣었다. 참! 표지기를 매달고 있던 대전관광공사 직원이 친절하게도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성치산성이 나온다고 알려준다. 이왕에 왔으니 멋진 사진으로 콘테스트에 참여해볼 것을 권유하면서...

▼ 그의 말대로 성치산성은 금방 나왔다. 그런데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터가 좁아도 너무 좁다. 거짓말 좀 보태서 손바닥만 하다고나 할까? 이런 곳에 어떻게 성을 쌓고 또 어떻게 상주할 수 있었을까? 맞다. 이곳은 장대(將臺) 터에 불과했을 것이다. 산성을 성치산의 8부쯤 되는 산비탈을 따라 쌓았었다니 말이다.

▼ 이곳도 정상석은 없었다. 그렇다고 산성 안내판을 세워놓지도 않았다. 그저 이정표(서낭당고개 1.6㎞/ 황호동 전망좋은곳 1.2㎞) 하나가 이 모든 걸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이곳이 어디임을 알려주는 못하지만.

▼ 조망은 시원스럽다. 보조여수로댐과 삼정동의 강촌마을(이촌·강존·민촌) 등 지난 번 걸었던 1구간의 풍경들이 북쪽에서 얼굴을 내미는가 하면, 동쪽에서는 오백리길 17구간인 충주시 상당구 권역의 리아스식 호안이 나도 있다며 고개를 들이민다.

▼ 이제 하산 길이 시작된다. 이때 제법 잘 생긴 바위들을 만나기도 한다.

▼ 산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고도를 낮추어간다. 내리막길이라고 해서 편하지만은 않다. 조망을 허락하지 않는 울창한 숲은 바람까지도 막아버렸다. 거기다 장마철의 습기는 사위를 눅눅하게 만든다. 고진감래라고 했는데, 오늘은 고진(苦盡)에 고진만 계속되는 셈이다.

▼ 하산 길이라고 해서 마냥 내리막만 있는 게 아니다. 가끔은 오르막 구간이 나오기도 한다.

▼ 하산을 시작한지 25분. 공터로만 남은 부수동(芙水洞)에 내려섰다. 연꽃이 물에 떠있는 모양의 명당자리가 있는 곳이라는 뜻의 한자 ‘연화부수(蓮花浮水)’에서 유래된 지명이라는데, 대청호에 물이 들면서 지금은 집 한 채 없는 마을이 되어버렸다.

▼ 둘레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꺾는다. 하지만 이정표는 계속해서 능선을 타란다. 200m만 더 가면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면서.

▼ 고지가 코앞인데도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다. 하긴 등산화 바닥이 질척거릴 정도로 땀을 흘려댔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맞다. 많은 이들이 전망이 뛰어나다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호숫가까지 다녀오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 5분쯤 걸었을까 바다처럼 너른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건너에서는 ‘청남대’가 고개를 내민다. 오른편으로는 옥천군과 보은군의 산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다면 대청호 속에 가라앉았다는 옛 부수동이 이 부근일지도 모르겠다. 담수 후 주민들은 타지로 떠났고, 마을은 빛바랜 사진으로만 남았다.

▼ 호숫가로 내려가 오른편으로 걸어봤다. 마치 물결무늬의 예쁜 매트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모래톱이 아니어선지 촉감마저 썩 곱지는 못하다. 그저 눈으로만 즐기라는 팔자인 모양이다.

▼ 100m쯤 이동했을까 기막히게 예쁜 풍경화 하나가 그려진다. 물 빠진 호수의 가장자리 섬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물이 조금씩 빠져나갈 때마다 호수의 파장이 층층의 예쁜 무늬를 만들어놓았다.

▼ 핸드폰 삼매경인 저 젊은이의 관심사는 대체 뭘까?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관까지 제켜놓았을 정도라면, 투자한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했다. 오늘 하루 굶지 않고 먹을 수 있음에, 바람과 비를 피해 쉴 수 있음에 감사하면 되는 것을...

▼ 부수동 공터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임도를 따른다. 대부분 포장길이지만 어쩌다 질퍽거리는 비포장 구간도 나타난다. 가끔은 나무 사이사이에서 고개를 내미는 대청호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 그렇게 10분쯤 걸어 부수동 고갯마루를 지키는 ‘느티나무’에 도착했다. 수령이 340년에 이르는 이 나무는 나이만큼이나 거대한 등치를 자랑한다. 안내판은 강씨 성씨를 가진 선비와 그의 딸 부용의 슬픈 얘기를 적고 있었다. 하나 더, 이곳은 사진촬영지로 꽤 각광을 받는다. 길과 나무의 구도를 잘 활용하여 사진을 찍으면 나름 괜찮은 사진이 나온단다.

▼ 나무도 나이를 먹다보면 신령스러워지는 걸까?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답게 정월대보름이면 이 나무 아래서 ‘부수골목신제’가 열린단다. 나무를 신성시 여기는 건 주민들만이 아닌 모양이다. 나무 아래서 장구와 꽹과리를 쳐가며 굿을 하고 있는 무속인도 만날 수 있었다.

▼ 호숫가에 쳐놓은 저 텐트의 주인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일까? 이곳은 깔따구 세상. 콧구멍으로 빨려 들어오는 깔따구 때문에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인데...

▼ 17분쯤 더 걷자 이번에는 삼거리다. 아까 성치산성 못미처에서 내려다보던 지점인데, 이정표(찬샘마을 2㎞/ 성치산성 0.23㎞/ 황호동 전망좋은곳 1.8㎞)가 성치산성의 들머리임을 알려준다.

▼ 따가운 햇볕이 내려쪼이는데도 깔따구의 행패는 여전하다. 숨결에 빨려 들어올 정도로 세상이 온통 깔따구 떼인 것이다. 깔따구는 환경부가 4급수 지표종으로 제시한 벌레이며, 애벌레는 오니 속에서 산다. 그렇다면 이곳 대청호의 수질이 4급? 아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게 사람이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라는 효(孝)의 본질이 마음에 들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강이식 장군과 강민첨 장군을 시조와 파시조로 둔 진주강씨 은열공파의 후손들이 세운 빗돌이다.

▼ 길가 비닐망을 감아 올라가며 유홍초(留紅草)가 꽃을 피웠다. 붉고 앙증스러운 꼬마 꽃을... 유홍초의 꽃말은 ‘영원히 사랑스러워’라고 한다. 요즘 너나없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주변에 사랑스러운 사람이 많이 있어 이 힘든 시간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 30분을 더 걸어 도착한 임도의 끝은 ‘찬샘마을(아랫핏골)’이다. 하지만 둘레길은 마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동구나무집(찜닭·민물매운탕 전문)’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초입에 이름표(찬샘마을)를 단 이정표(이현동 1㎞)가 세워져 있으니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그렇다고 ‘찬샘마을’을 빼먹을 수 있겠는가. 잠깐 들러본 마을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이들의 한 옥타브 높은 소리도 요란하다. 맞다. 이곳 찬샘마을은 최근의 아이콘인 농촌체험관광으로 뜨는 중이라고 했다.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을 수확하고 다양한 먹거리를 함께 만들어보는 식문화체험이 인기인데, 두부 만들기·매실액 만들기·장아찌 만들기 등의 체험도 해볼 수 있단다.

▼ 많은 도시민들이 자녀와 함께 찾는 곳이니 그들을 위한 시설이 어찌 없겠는가. 마을에서 운영하는 체험·숙박 시설 말고도 두어 개의 식당까지 들어서 있었다. 참! 이 마을은 매화로도 유명하다고 했다. 봄이면 산등성이에 매화꽃이 만발해 마을을 온통 꽃 바다로 만들어준단다.

▼ 도로를 벗어나자 효평천이 갈 길을 막는다. 그 물길 위로 길게 데크로드가 놓였는데, 이게 또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하다. 호수 한가운데를 지나는 건 아니지만 은근히 높은 데크길에서 대청호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기 때문이다.

▼ 데크로드 아래는 효평천이다. 하지만 물에 잠기면 이곳은 대청호의 일부분이 된다. 지금은 비록 배를 드러내놓고 있지만...

▼ 데크로드가 끝나자 이번엔 산비탈이다. 하지만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걸어가는 데 지장이 없다. 바닥에 야자매트까지 깔아 질척거릴 염려도 없다.

▼ 오백리길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아름다운 경관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길, 그중에서도 호반을 낀 이런 곳에 어찌 전망대 하나 만들어놓지 않았겠는가.

▼ 탐방로는 황새봉을 에돌아가는 모양새다. 그런데 황새봉 인근이 모두 생태공원은 아닌 모양이다. 황새봉 산자락에 민가가 들어서 있는 걸 보면... 자연생태계와 인간의 공존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나 할까?

▼ 모퉁이를 돌아서자 습지가 시작된다. 그 규모가 3600평에 이른다니 거대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저 습지에는 억새와 노랑꽃창포, 삼백초, 수련 등 수생식물 군락이 조성돼 있단다. 하지만 대청호와 접해있다는 버드나무 군락은 눈에 담을 수 없었다.

▼ 이현동 습지는 생태학습지로 꾸며졌다. 사람의 손길을 타고 새롭게 태어났다는 얘기다. 초입에서 길손을 맞는 저 돌탑도 사람이 만들었고, 만든 이의 마음을 담아 또 다른 사람을 맞는다.

▼ 잠시 후 호박터널로 들어섰다. 파이프로 긴 터널을 만들고 호박넝쿨을 올렸는데, 넝쿨마다 큼지막한 호박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매달린 호박은 못생겼다는 속설을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귀엽고 예뻤다. 그래선지 이를 소품삼아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여럿 보인다.

▼ 오색 빛으로 영근 호박 터널을 지난다. 각양각색으로도 모자라 기기묘묘하게 생긴 색 호박들이 탐방객의 발길을 붙들어 맨다.

▼ 호박터널 주변은 웃자란 억새와 갈대들로 뒤덮였다. 억새나 갈대는 가을이 제격이다. 낮에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은빛으로, 해가 질 무렵 석양에 빛나는 황금빛으로, 그리고 달밤에는 가을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솜털 억새 물결이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꼭 가을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푸름을 자랑하는 여름철 억새에서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

▼ 호박터널은 널따란 광장으로 연결된다. 마을협동조합에서 개최하는 호박축제장이 열리는 곳이다. 그래선지 정자와 식수대 등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호박마을을 홍보하려는 듯 호박을 주제로 한 조형물을 여럿 설치했다.

▼ 그중에서도 대전의 깃대종인 ‘감돌고기’가 눈길을 끌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대청호에서 서식하는 여러 물고기들과 함께 벚꽃 사이에서 노니는 것을 형상화했단다. 깃대종이란 어느 지역의 생태나 지리적 특성을 대표하는 동식물의 종으로, 대전의 깃대종으로는 감돌고기와 함께 하늘다람쥐, 이끼도롱뇽이 있다.

▼ 오백리길 2구간의 안내도와 이정표는 광장의 뒤쪽에 세워져 있었다. 이 광장이 1구간과 2구간의 경계라는 얘기일 것이다. 참고로 이곳 이현동(梨峴洞)의 또 다른 이름은 ‘배오개’이다. 뒷산의 지형이 배(梨)처럼 생긴데서 유래됐다. 산골짜기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두메마을’, 요즘은 ‘호박마을’이라는 애칭까지 붙었다.

▼ 날머리는 이현동 두메마을(대전시 대덕구 이현동)

호박 구경을 실컷 한 다음 두메마을(계족산 골짜기에 들어선 두메산골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로 향한다. 그리고 7-8분쯤 더 걸어 대전 시티투어 승강장을 겸하는 주차장에 이르면서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3시간 10분을 걸었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은 9.9km를 찍는다. 3km 정도가 산길이었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만큼 힘든 여정이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탐방기를 쓴 기자들이 너나없이 추천하던 노고산(老姑山, 275m)은 다녀오지 못했다. 오뉴월 삼복더위의 가파른 산길(찬샘정에서 노고산까지 왕복 2km)이 나에겐 벅찼기 때문이다. 그 아쉬움을 둘레길 도반인 몽중루님의 사진으로 달래본다. 정상 부근의 ‘할머니바위’에서 이름을 빌렸다는 노고산의 정상에는 ‘소원의 종’이 매달려있다고 한다. 역사문화해설사가 탐방단을 주목시킬 때 쓰이기도 하는데, 가족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고, 백제-신라처럼 싸우지 말자는 바람을 담았단다.

▼ 정상 남쪽에는 백제시대 산성으로 추정되는 노고산성(대전시 기념물 제19호)의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단다. 노고산성은 둘레 300m쯤 되는 타원형 테뫼식 석성으로, 백제 성왕의 아들 창(후에 위덕왕)이 신라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주변 산성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요충지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계족산성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면서 금강의 수로와 옥천·문의간 도로를 감시했단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다른 이의 글을 빌려본다. 수많은 섬과 반도가 빼곡히 깔린 남해바다의 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옥천 쪽에서 흘러온 금강 물줄기가 크게 굽이친 뒤, 수량을 불려 발밑 냉천마을 앞을 지나 청남대·대청댐 방향으로 흘러가는 풍경이 장관이다. 물빛은 잔 물살 하나 없이 짙푸르고, 바람은 잔소리 하나 없이 부드러워, 물길 너머로 첩첩이 펼쳐진 산줄기들이 더더욱 아득해진다.

♧ 에필로그(epilogue), 삼복더위, 그것도 바람 한 점 없는 산행은 고역이다. 부수동 호숫가와 성치산성을 빼고는 특별한 볼거리도 없다. 거기다 호안도로를 걷는 중에는 새까맣게 덤벼드는 깔따구들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찾고 싶지 않은 코스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둘레길 도반인 별주부님의 ‘도토리묵 야채무침’으로 인해 씻은 듯이 치유될 수 있었다. 여름 산행의 일미는 새콤달콤한 음식이라는 그녀의 말마따나 술꾼인 나에게는 최고의 안주가 되어주었다. 그녀처럼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 청마산악회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좋아하는 우리부부는 계속해서 주말산행을 따라나설 것이다.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두메마을길)

 

여행일 : ‘22. 7. 16(토)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삼정동·갈전동·이현동 일원

여행코스 : 대청댐 물문화관→숫고개→지명산→대청정→보조여수로→이촌·강촌·민촌마을→덕골→갈전동삼거리→이현동억새밭(거리/시간 : 12.7km/ 실제는 두메마을까지 14.22km를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대청호(大淸湖)는 ‘전국 3대 호수’ 중 하나로 2개 광역(대전·충북)과 5개 기초(대전 대덕구·동구, 청주시·보은군·옥천군) 자치단체에 걸쳐 있으며, 둘레만도 무려 ‘500리’나 된다. 이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지는데, 그 야산과 호숫가·자연부락·소하천·옛길 등을 둘레길로 이은 다음 ‘대청호 오백리길(220km을 21개 구간으로 나누었다)’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은 첫 번째 구간인 ‘두메마을길(12.4㎞)’을 걷는다. 대청댐물문화관에서 시작해 이현동 두메마을에서 끝나는데, 산길로 이루어진 초반 1/3을 제외하면 대부분 호숫가를 따라 걷게 된다. 걷는 내내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이유이다.

 

▼ 들머리는 ‘대청댐 휴게소’(대전시 대덕구 미호동)

당진·영덕고속도로(청주-상주) 문의·청남대 IC에서 내려와 유성 방면 32번 지방도, 잠시 후 만나게 되는 문의면소재지(미천리)에서는 ‘대청호반로(신탄진 방면)’, 오가삼거리(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하석리)에서 ‘노산·하석로’로 옮겨 ‘대청교’를 건너면 대청댐휴게소 주차장에 이른다. 내비게이션은 ‘대청댐휴게소’를 입력하면 된다.

▼ 대청댐물문화관을 출발해 이촌·강촌·갈밭 마을 등을 거쳐 이현동(두메마을) 생태습지에서 끝나는 길이 12.7km의 둘레길이다. 구간 브랜드(두메마을길)는 ‘생태습지(거대한 억새밭과 버드나무 군락을 자랑한다)’라는 멋진 볼거리를 보유한 ‘두메마을’에서 따왔다. 적당히 섞여있는 산길과 호숫가를 걸으며 대청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게 장점. 하지만 여러 곳에서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는 단점도 갖고 있다.

▼ 긴 계단을 오르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높이가 72m나 되는 대청댐의 상부로 올라가기 때문에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참! 입구에는 ‘대청호반길’의 안내도가 세워져있었다. 대청호오백리길은 ‘2012년’을 경계로 나뉜다. ‘대청호반길’로 불리던 것을 확대·재생산해 대청호오백리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 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광장이 맞는다. 그 끄트머리, 즉 호안에는 ‘대청 다목적댐 준공기념탑’이 우뚝하다.

▼ 그 오른편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대청호’ 비석이 있고, 뒤에서는 ‘DaeCheongDam’ 조형물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난간도 비워두지 않았다. 대청호의 사계를 담은 풍경사진을 패널로 만들어 걸어두었다.

▼ 광장의 주인공은 복합문화공간인 ‘대청댐 물문화관’이다. 기존 ‘대청댐 물홍보관’을 확충시켜 2004년 재개장했다. 대청댐의 역할과 기능 및 물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제1전시관, 대청호와 금강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서식환경을 소개하는 제2전시관, 대청댐 건설로 인해 사라진 마을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기록·재현하는 제3전시관을 운영한다.

▼ 댐 위로 도로가 뻗어있다. ‘공도교’라는 브랜드로 일반인에게 개방했지만 시간을 정해놓았는가 하면, 드론 등 항공촬영이 금지된다. ‘국가중요시설’이어서란다.

▼ 난간에라도 서면 ‘대청호’가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대통령의 별장으로 잘 알려진 ‘청남대'가 자리한 호수. 천리의 비단물결을 막아선 대청댐은 대전과 청원(청주)의 경계에 세워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총 저수용량이 14억 9천만t, 대전과 청주, 천안을 비롯한 충청지역 및 군산 등 전북일부 지역에 생활·공업용수를, 금강하류와 미호천 유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홍수조절에 따른 댐 하류 홍수피해 경감과 수력발전을 통한 청정에너지를 생산한다.

▼ 안내판으로도 모자라 빗돌까지 세워놓은 걸 보면 ’금강 자전거길‘도 꽤 유명한가 보다. 참고로 길이 146km의 금강자전거길은 금강하구둑과 대청댐을 잇는 자전거도로다. 이곳 대청댐에서 시작해 대전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공주시·부여군·논산시·익산시 등을 지나 전라북도 군산시 금강하구둑에서 끝난다.

▼ 아니 한술 더 떴다. 오백리길에는 없는 ’인증센터‘까지 만들어놓았다. 완주를 증명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로 이곳 말고도 세종보·공주보·백제보·익산성당포구·금강하구둑 등에 설치되어 있단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0분. 오백리길은 물문화관에서 왼편으로 50m쯤 떨어진 지점에서 열린다. 나무계단(첫 번째 기둥에 1코스 시작점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걸려있다)이 놓여있는 데다, ‘대청호오백리길·누리길 종합안내도’로도 부족한 듯 이정표까지 세워놓았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런데 ‘1호’ 이정표가 문제다. 1구간의 길이가 10.5km라는 것이다. 11.5km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 나무계단을 올라 산길을 탄다. 산길은 시작부터 가팔랐다. ‘이게 산책로야 등산로야’ 이를 본 둘레길 도반이 비명부터 지르고 본다. 맞다. 대청호오백리길은 등산로, 그것도 고산(高山)의 등산로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가파르게 시작되고 있었다. 오르막의 거리가 8분 정도로 짧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걷다보면 심심찮게 길이 나뉜다. 하지만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헷갈릴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웠고, 탐방로에도 대청호오백리길 특유의 팻말과 리본을 촘촘히 매달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면 국가지점번호판에 적힌 현재위치(숫자로 적혀있다)를 파악한 다음 구조를 요청하면 된다.

▼ 대청호오백리길의 얼굴마담격인 이정표다. 상·하단에 종점 및 시점의 거리(방향 포함)을 적어 넣었다. 그런데 1구간의 거리를 12.7km로 적었다. 탐방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거리가 늘어났다는 얘기일까?

▼ ‘대청호 둘레산 누리길’에서 내건 이정표도 심심찮게 보였다. 대청호의 둘레에 솟아오른 나지막한 산들을 연결시켜놓은 걷기 길이란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길은 산을 오르내리며 언젠가는 산이었을, 지금은 섬으로 변해버린 산들을 가슴에 담아볼 수도 있겠다.

▼ ‘2백리 로하스길(이곳은 3구간인 ‘누리길’이란다)’에서는 자연학습용의 안내판을 세웠다. 지도도 첨부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 능선에 오르고 나면 길은 고와진다.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숲길은 경사가 거의 없는데다 흙과 낙엽이 폭신하게 깔려있어 남녀노소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거기다 심심찮게 시야가 열리면서 햇살을 가득 머금은 호수 풍광이 시선을 가득 채워준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걷자 ‘숫고개’가 나타난다. 미호동에서 수몰지역으로 넘어가던 고개라는데 지명의 유래는 찾아볼 수 없었다.

▼ 10분쯤 더 걷자 이번에는 데크로 만든 ‘전망대’가 얼굴을 내민다. 누군가가 이름표까지 매달아놓았지만 조망은 일절 없다. 시야를 가로막는 잡목을 제거하던지, 아니면 벤치까지 놓아둔 점을 감안 ‘쉼터’로 개명하면 어떨까?

▼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이어도 조금 힘들어지려 하면 금세 내리막이 나타나 지루함이 없다.

▼ 그렇게 5분쯤 걸었을까 숲이 주는 선물 같은 쉼터(이정표 : 물문화관 2㎞/ 두메마을 8.5㎞)를 만났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서있고 그 아래 벤치가 놓였다. 눈앞에 펼쳐지는 대청호의 풍광을 느긋이 즐기고 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 쉼터를 지나면서 숲은 대청호오백리길의 진수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낮은 나무울타리 너머로 호수가 여유를 부리는데, 반대편에서는 울창한 숲이 힐링을 선사해준다. 유격훈련장에서나 볼 법한 밧줄도 매달려 있었다. 갑장이자 도반인 유사장의 입에선 ‘해먹’이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왔지만...

▼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로하스가족공원 캠핑장’이 길손을 맞는다. 대덕구가 개장한 이 ‘글램핑장(화려한 또는 매력적이라는 뜻을 지닌 glamorous와 camping을 합친 신조어)’은 40면의 캠핑 사이트와 카라반 사이트 10면 등 대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오백리길은 캠핑장의 부대시설인 풋살경기장을 스치듯 지나간다.

▼ 대청호 쪽에는 문을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맞아들이듯 대청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받아들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 함께 걷던 이석암 선생(‘마음을 다스리는 산행’의 저자)이 건너편을 가리키며 청남대(淸南臺)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통령 별장으로 조성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면 개방, 충북 제1의 명소 중 하나로 떠오른 곳이다. 그 오른편은 문의면(청주시 상당구). 뾰쪽하게 솟아오른 건 ‘샘봉산’이 아닐까 싶다.

▼ 풋살경기장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로하스캠핑장’을 거쳐 ‘보조여수로’로 연결된다. 하지만 탐방로는 직진해서 ‘지명산’으로 가란다. 나뭇가지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대청호를 기웃거리다보면 어느덧 ‘지락정’이다. 대청호 너머로 청남대가 바라보인다는 정자이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완전체를 이루지 못했다.

▼ 지명산에 가까워질 무렵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난다. 숲도 더 깊어졌다. 그래선지 다양한 식물들은 물론, 이맘때 한창인 버섯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 풋살경기장에서 20분. ‘지락산’이라고도 불리는 ‘지명산(158m)’의 정상에 올라섰다. 혹자는 이곳을 ‘미호동산성’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둘레가 100m쯤 된다는 산성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올라오는 도중 석축 느낌의 돌무더기가 눈에 띄었는데 그게 성터였을지도 모르겠다.

▼ 정상이 분명하건만 이를 증명해주는 공적 시설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백리길 및 둘레산누리길에서 세운 이정표도 지명이 없기는 매한가지. 그게 안타까웠던지 ‘청주33 금요산오름’에서 정상표지판을 매달아 놓았다.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 어설픈 행정의 한 단면이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위·아래로 나뉘어 적힌 이현동 두메마을(1구간의 종점)까지의 거리가 각각 다르게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3.2km나 차이가 난다.

▼ 하산을 시작한다. 이때 주의할 게 있다. 핸드폰에 다운 받아놓은 트랙을 따를 것이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정표가 가리키는 ‘로하스가족공원’으로 내려가는 게 옳다. 트랙을 따를 경우 고생문이 훤하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가파른데다 미끄럽기까지 한 내리막길만 있을 뿐, 볼거리는 전무하니 가능하면 피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야 호숫가에 내려설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물가에 닿는 것은 아니다. 길은 수면에서 10-20m 정도의 간격을 유지한 채로. 산비탈을 옆으로 째면서 나아간다. 다시 길을 밟아 땅끝의 둘레길을 걷는다고나 할까?

▼ 산비탈을 헤집는 호반길을 8분쯤 걸었을까 호숫가 언덕에 걸터앉은 ‘대청정’을 만났다. 대청정은 아주 절묘한 위치에 자리해서, 전망도 좋지만 정자 자체가 멋을 풍긴다. 그 경관에 반했는지는 몰라도 소설가 박범신이 잠시 걸음을 쉬어갔다는 곳인데, 대청호의 수위가 높아지면 정자로 가는 길목이 살짝 잠겨 ‘섬’이 되기도 한단다.

▼ 정자에 오르자 대청호가 드넓게 펼쳐진다. 이곳은 금강의 물줄기.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곳이다. 대체로 이쪽은 백제 땅이고, 건너 쪽은 신라였다. 당시 신라군의 전방사령부가 있던 곳이 청주의 상당산성(上黨山城), 대청호를 건너면 금방인 곳에 위치한다.

▼ 대청정을 지나면서 길은 무척 고와진다. 초반은 데크길, 후반에 황톳길로 바뀌지만 길은 보드라우면서도 널찍하다. 거기다 대청호까지 바라보며 걸을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을 손가. 바닷가 같은 바람, 일렁이는 물결...

▼ 잠시 후 삼거리를 만났다. 이정표(캠핑장 0.8㎞/ 지락정 0.5㎞/ 대청정 0.2㎞)는 오른편이 지락정과 연결됨을 알려준다. 아니나 다를까 산에서 내려오는 후미 그룹이 눈에 띈다. 지명산에서 내려왔더라면 저렇게 편했을 것을. 어쭙잖게 트랙을 따르다가 고생만 죽도록 한 꼴이 됐다.

▼ 대청호와 눈 맞추며 잠시 걷자 망루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경계용 초소로 여겨지는데,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대청댐 보조여수로’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명품 전망대이니 말이다.

▼ ‘보조여수로’란 예측 이상의 홍수가 발생할 경우 추가적인 방류를 위한 시설로 댐과 그에 따른 물길을 포함한다. 다행인지 2014년 설치 이후 방류가 진행된 적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기상이변이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사용될 날이 올 것이 분명하다.

▼ 또 다른 전망대도 만날 수 있었다. 보조여수가 내려다뵈는 언덕에 팔각정(집사람과 만났다는 반가움 때문에 편액을 살펴보는 걸 잊어버렸다)을 짓고, 보조여수로 준공기념비도 들어앉혔다. 사업 및 시설의 개요와 단면도를 넣은 안내판까지 세워 문외한들의 이해도 돕는다.

▼ 정자 근처에서 지명산의 등산안내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내려온 길은 아예 그려 넣지도 않았다. 없는 듯 있는 산길이어서 일까? 아니라면 험한 길은 아예 가지도 말라는 신호일 것이고.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30분, 오백리길은 ‘로하스가족공원캠핑장(이정표 : 종점 8.5㎞/ 시점 4.2㎞)’에 이른다. 대청호를 찾는 가족들의 오토캠핑, 혹은 글램핑 장으로 유명하다. 오지탐험가 겸 캠핑전문가인 김성선씨가 위탁운영 중이라는데, 대청호 500리길을 개척한 사람이기도 하단다.

▼ 이후부터는 자동찻길(대청호수로)을 따른다. 길은 보조여수로의 수문 위로 나있다. 덕분에 방수로(放水路)를 눈에 담을 수 있는데, 그 커다란 규모에 놀라게 된다. 하긴 초당 7000t을 흘러 보내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겠지?

▼ 도로를 따라 10분쯤 걸었을까 탐방로가 도로를 벗어나잔다. 그리고는 왼편으로 갈려나가는 임도(이정표 : 두메마을 7.5㎞/ 물문화관 5.3㎞)로 들어선다.

▼ 조금 더 걷자 펑퍼짐한 언덕이 눈앞에 차오른다. ‘미호동 청동기유적지’로 기원전 10세기 전후의 주거지인데 방추자(실을 뽑을 때 회전을 돕기 위해 가락, 즉 방추의 막대에 끼우는 부속품)·석촉·석도·갈판(곡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로 만들 때 사용)·어망추 등이 출토되었단다. 농경과 어로생활을 함께 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임도로 들어선지 10분. 대청호오백리길‘은 대청호반을 따라 낮은 산과 숲, 그리고 호숫가를 지나가는 둘레길이다. 그런 길이 시야를 조금씩 열어주더니, 이내 ‘이촌마을(대덕구 삼정동)’로 들어선다. 눈에 들어오는 마을은 숫제 한 폭의 풍경화였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 그래선지 마을에는 ‘쥐코찻집’처럼 입소문을 탄 카페도 여럿 들어서 있었다.

▼ 마을에는 생태습지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대청호의 수질을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정화시설인데, 공원은 너무 거창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소박하지도 않다. 하지만 대청호의 기존 풍광과 어우러지면서 흡사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대청호반에 동화되어 있다.

▼ 공원에서 정화된 물까지도 믿지 못했던 모양이다. 호숫가에 또 하나의 습지를 만들어 물을 다시 한 번 걸러낸다. ‘원앙새 부유습지’, 물 위에 띄워놓은 인공 섬이 한 쌍의 원앙을 닮았다는 뜻일 것이다.

▼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댐 만수시 진입금지’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맞다. 대청호오백리길은 담수량에 따라 코스 상의 길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는 무리해가며 원래코스를 고집하지 말자. 까짓 윗길로 옮겨 걸으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 잠시 후 곶(串)이라도 되는 양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간 지점에서 ‘박효함(朴孝諴, 1387-1454)’의 신도비(神道碑)를 만났다. 청주목사를 거쳐 강릉대도호부사에 이른 인물이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지는 말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서거정이 비문을 지었다니 말이다.

▼ 신도비가 있는 모퉁이를 돌아서자 ‘강촌마을’이 손짓한다. 이촌마을을 벗어난지 13분만이다. 강촌마을은 법정 동리(洞里)인 삼정동에 속한 자연부락 중 하나로 ‘진주강씨’들이 세거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촌이나 민촌, 삼정마을에 비하여 높은 지대에 있다 해서 윗말·웃말·삼정상리라고도 부른다.

▼ 강촌마을에도 ‘생태습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대청호를 더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만든 ‘정화시설’이다. 비가 오면 농경지나 도로면에 있던 오염물질들이 대청호로 유입되기 마련인데, 이 물질들을 침강지로 모았다가 갈대·억새·부들이 심어진 생태여과지를 거쳐 대청호로 흘려보내도록 고안됐다고 한다. 공원 앞 호반에도 습지를 만들었다. 갈대와 꽃창포, 노란꽃창포가 열심히 정화활동을 하고 있는 저 습지의 이름은 ‘산호빛 부유습지’라고 한다. 산호빛깔을 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나?

▼ 탐방로는 강촌마을을 지나면서 다시 도로로 올라선다. 그렇다고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도로변에 인도를 따로 만들어놓았다.

▼ 걷는 도중 강촌마을 앞 대청호반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이곳은 사진촬영 포인트로 알려진다. 인공 섬인 부유습지와 정박 중인 배를 이용해 다양한 구도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청호 속에 반영을 이용하면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단다.

▼ 강촌마을이 끝나갈 즈음 고택 하나가 나온다. 여흥민씨(驪興閔氏) 집의공파 종갓집이다. 조선 중기 문신인 민충원(閔沖源)의 16대 종손으로 고종 때 승지를 지낸 민후식이 경기도 여주에서 이주하면서 지었는데, 대청호 수몰지역인 ‘삼정골’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단다. 참고로 여흥민씨는 조선조 사극의 대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인현왕후(숙종), 명성황후(고종), 순명효황후(순종)를 배출한 명문이다. 충정공 민영환선생과 민복기 대법원장도 이 집안 출신이란다.

▼ ‘민씨 종가’를 지나면 인도가 없어 차가 다니는 도로를 100미터 정도 걸어가야 한다. 눈치도 보지 않고 달려대는 자동차들 때문에 소름끼치는 구간이다.

▼ 데크로 내려서기 직전, 왼편 언덕에 조선 중기 문신 민여검(閔汝儉, 1564-1627)의 신도비가 있었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의 공동 저자인 민제인(閔齊仁, 1493년-1549)의 초장지가 근처에 있다는 안내 빗돌도 보인다.

▼ 신도비를 지나면 ‘소골마을’, 오백리길은 마을 앞 도로를 벗어나 데크로드를 따른다. 참고로 ‘소골’이란 지명은 지형이 소가 누워있는 ‘와우형’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여흥민씨’가 세거한다고 해서 ‘민촌’, 재실이 있다 해서 ‘재실말’로도 불린다.

▼ 소골마을의 명물은 ‘짬뽕마을’이다. 숨겨진 맛집으로 명성이 자자하니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난 눈요기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산악회에서 초복 맞이 백숙을 제공한다는 누군가의 귀띔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헛소문으로 판명되어 두고두고 가슴을 쳐야 했지만...

▼ 소골마을을 지나자 탐방로는 또 다시 테크길로 내려선다.

▼ 소골마을에서 13분. 삼정마을(혹자는 이곳을 ‘덕골’로 부르기도 했다.)에 도착했다. 옛 이름은 ‘삼정골’. 과거에 이 지역 주민들이 산전을 일구어 살아서 ‘산전골’이라 부르다가 이것이 ‘삼정골’로 변했다고 한다. 어느 노승이 이 지역의 지세를 보고 ‘이 땅은 세 명의 정승을 배출할 명당’이라고 예언한데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으니 참고해두자.

▼ 마을 앞에는 ‘비점오염 저감시설’이 널따랗게 조성되어 있었다. 산이나 도로, 농경수로를 통해 유입되는 각종 비점오염원을 갈대·물억새·꽃창포 등 습지에서 자라는 다양한 수생식물의 자정작용을 거치게 하여 오염의 강도를 약화시키고, 대청호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인공습지다. 그뿐 아니다. 쉼터 기능을 가미해 주민들은 물론이고, 우리 같은 둘레길 나그네들도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 삼정동에서 갈전리까지는 길옆으로 난 데크 길을 걷게 된다. 아니 아래 사진처럼 위태위태한 도로변도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위험한 구간이다.

▼ 오백리길에서는 명심보감이 서러워할 만한 뜻깊은 문장이 적힌 푯말을 심심찮게 만난다. <기억하라 등 뒤에서 욕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보다 두 걸음 앞서 있다는 뜻이다> 옳은 말이다. 부러워서 내뱉는 게 욕이 아니겠는가.

▼ 한눈에 쏙 들어오는 이정표가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현재의 위치를 가운데 두고 시점과 종점까지의 거리를 적었다. 구간 길이도 모처럼 제대로 적었다.

▼ 그렇게 30분 정도를 걸으면 ‘갈전동(葛田洞)’에 이른다. ‘갈전’이란 지명은 마을을 뒤덮다시피 한 ‘칡’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칡 갈(葛)’자를 써 칡밭이라는 의미의 ‘갈전(葛田)’이 되었다. 강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갈대’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해두자.

▼ 대청호 주변은 귀촌인구가 부쩍 늘었다는 소문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찾아온 이들이다. 하지만 불편이 싫다며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저리도 고운 대청호반을 마당삼은 집까지도 비어있는걸 보면 말이다.

▼ 송강식당 앞 ‘갈전동삼거리’에 이른 탐방로가 또 다시 도로와의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같은 포장길이지만 폭이 확 줄어든 소로로 접어든다. 이어서 대청호반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길게 이어진다.

▼ 호숫가를 걷다 망초 꽃밭을 만났다. 지난번 지리산둘레길 때도 얘기했듯이 망초는 뽑고 뽑아도 또 다시 자라나는데 질린 농부가 ‘에이 망할 놈의 풀’이라고 외친 게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서글픈 식물이다. 그게 오늘은 귀하신 몸이 되었다. 보라! 저 꽃밭을 보고 어느 누가 괄시할 수 있겠는가.

▼ 망초꽃밭을 지나면서 탐방로는 오솔길로 변한다. 이어서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숲속 산책로가 길게 이어진다.

▼ 갈전동을 출발한지 30분. 탐방로는 ‘이현동 생태습지’에 이른다. 배오개천 하류에 조성한 친환경 생태습지로, 26,186㎡의 부지에 수생식물(수련·창포·부들·미나리·삼백초·어성초 등을 심었다)학습장과 억새습지(거대억새 및 물억새), 산책로 및 광장을 배치했다.

▼ 생태습지의 메인은 널따란 광장이다. 정자와 식수대 등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호박마을을 홍보하려는 듯 호박을 주제로 한 조형물을 여럿 설치했다. 뒤편 조형물은 대전의 깃대종인 ‘감돌고기’가 구름과 비, 벚꽃 사이에서 노니는 것을 형상화했단다. 깃대종이란 어느 지역의 생태나 지리적 특성을 대표하는 동식물의 종으로, 대전의 깃대종으로는 감돌고기와 함께 하늘다람쥐, 이끼도롱뇽이 있다.

▼ 광장의 한쪽 귀퉁이는 홍보의 장으로 활용했다. 생태습지의 안내판을 세웠는가 하면, 이곳 이현동 두메마을의 또 다른 이름이 ‘오색빛 호박마을’임을 알린다. 참고로 ‘이현(梨峴)’이란 지명은 뒷산의 지형이 배(梨)처럼 생긴데서 유래됐다. 동네로 들어오는 고개를 배고개(梨峴)라 부르다가, 이게 동네 이름으로 굳어졌단다.

▼ 광장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호박을 재배하고 있었다. 파이프로 긴 터널을 만들고 호박넝쿨을 올렸는데, 넝쿨마다 큼지막한 호박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매달린 호박은 못생겼다는 속설을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귀엽고 예뻤다. 그래선지 이를 소품삼아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여럿 보인다.

▼ 날머리는 이현동 두메마을(대전시 대덕구 이현동)

호박 구경을 실컷 한 다음 두메마을(계족산 골짜기에 들어선 두메산골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로 향한다. 그리고 7-8분쯤 더 걸어 대전시티투어 승강장을 겸하는 주차장에 이르면서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4시간을 걸었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은 14.22km를 찍는다. 초반 4km 정도가 산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 두메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오색빛 호박마을’이다. 동네 곳곳에 호박 조형물을 배치했는가 하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죤도 만들어놓았다. 이를 본 집사람이 호박을 형상화한 의자에 냉큼 주저앉더니 포즈부터 잡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