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7구간(부소담악 길)
여행일 : ‘22. 10. 15(토)
소재지 :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일원
여행코스 : 와정삼거리→꽃봉→방아실→대정삼거리→거먹골→항골삼거리→공곡재→이평리→갈벌(보현사)→황룡사→부소담악(거리/시간 : 14㎞/ 실제는 13.32km를 4시간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대청호(大淸湖)는 ‘전국 3대 호수’ 중 하나로 2개 광역(대전·충북)과 5개 기초(대전 대덕구·동구, 청주시·보은군·옥천군) 자치단체에 걸쳐 있으며, 둘레만도 무려 ‘500리’나 된다. 이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지는데, 그 야산과 호숫가·자연부락·소하천·옛길 등을 둘레길로 이은 다음 ‘대청호 오백리길(220km을 21개 구간으로 나누었다)’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은 일곱 번째 구간인 ‘부소담악 길(14km)’을 걷는다. 이 구간도 호숫가를 걸으며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는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초반 3.5km(꽃봉 구간)을 뺀 나머지는 오롯이 포장도로를 걸어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 구간의 도로도 역시 인도가 따로 없었다.
▼ 들머리는 ‘와정삼거리(방아실 입구)’(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경부고속도로 대전 TG를 빠져나오자마자 좌회전, 비래서로와 신상로를 잇따라 타고 대청호까지 온다. 신상교차로(대전시 동구 신상동)에서 571번 지방도를 타고 대청호반을 따라 북진하면 오래지 않아 ‘와정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지난 6구간(대추나무길)에 이어 이번 7구간(부소담악길)도 이곳에서 출발하게 된다.
▼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는 구간이다. 특히 후반부의 추소리에서 만나는 ‘부소담악’은 대청호 제일의 절경으로 꼽힌다. 거기다 번외지만 ‘돌팡깨’라는 신비스런 풍광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구간도 산길과 도로(인도가 따로 없다)를 걸어야만 하는 단점이 더 크다. 오백리길 표식(이정표·팻말·리본 등)이 거의 없다는 점도 6구간과 같았다. 걷는 내내 지자체의 무관심에 대해 불평할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 오른쪽(동쪽), 그러니까 방아실(군북면 대정리) 방향으로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이 길은 군북면소재지를 거쳐 옥천읍으로 연결된다. 곧장 직진하면 6구간(대추나무 길)의 종점인 보은군 회남면이 나온다.
▼ 100m 조금 못되게 걷자, ‘Hill Hotel’ 앞에서 왼편 산자락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뉜다. ‘꽃봉’으로 올라가는 길임을 알리는 이정표(꽃봉까지 1.7㎞)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우리 부부는 반대편에 세워놓은 또 다른 이정표(대정삼거리 0.7㎞/ 청주절골 4.2㎞)를 따르기로 했다. 산길인 ‘꽃봉 구간’을 생략하고, 도로(비야대정로)를 따라 대정삼거리로 곧장 간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는데다 4.8km 가량의 거리까지 단축할 수 있으니 무릎이 불편한 집사람에게는 최상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 낚시터 팻말이 낯설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상수원인 대청호는 ‘수질보전 특별대책 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수질보호를 위해 심혈을 쏟고 있다. 반면에 낚시는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찍혀 규제를 받는다. 그런데도 지자체는 어떻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었을까?
▼ 10분쯤 걸었을까 ‘대정삼거리’에서 아까 헤어졌던 7구간과 다시 만났다. 들머리에서 0.7km를 걸어왔지만, 탐방로를 제대로 걸었을 경우에는 5.5km를 걸어야만 이곳에 이를 수 있으니 4.8km를 거저먹은 셈이다. 참고로 방아실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대정리(大亭里)는 대전 쪽에서는 횟집·낚시터 등으로 유명하지만 옥천에서는 섬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증약리에서 항곡리로 넘는 고갯길이 포장되기 전에는 마달령을 넘어 세천으로 돌아오는 불편을 겪어야만 했단다.
▼ 길 건너 ‘방아실’은 대청호반에 위치한 청정마을이다. 꽃처럼 예쁜 언덕 위의 마을이란 뜻으로 ‘꽃다울 방(芳)’에 ‘언덕 아(阿)’를 쓴다. 수채화 한 폭을 보는 듯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마을이라고나 할까? 주변에 수상스키를 즐길 수 있는 수상레저시설과 낚시터 그와 더불어 다양한 먹거리촌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 방아실 앞에서 대청호와 첫 대면이 이루어진다. 내륙을 향해 대청호가 쑥 들어왔다. 산을 넘지 못하는 물길이 산이 끝나는 모서리를 돌아 제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찾아든 것이다.
▼ 대정교회를 지나자 ‘금오골(마을 안내판은 금옥골로 적고 있었다)’이 얼굴을 내민다. 동구 밖 거대한 느티나무가 마을의 오래된 역사를 알려주는데, 마을을 지켜주었을 신목은 이제 그 임무를 바꿨나보다. 나무 그늘에 정자까지 품고 주민들에게 쉼터가 되어준다.
▼ 대청호를 마주보는 언덕에는 ‘향수뜰마을 복지회관’이 들어섰다. 안내판은 이곳 와정리와 방아실·항곡리·이평리·추소리·환평리 일원을 ‘향수뜰 권역’으로 묶고 있었다. 어쩌면 옛 추억을 물씬 풍기게 만들자는 의미의 ‘권역 브랜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권역에서 나온 안전한 농산물로 제빵 체험, 찐빵 만들기, 수제맥주 만들기, 두부 만들기, 묘목접목, 나무열쇠고리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니 한번쯤 도전해 볼 일이다.
▼ 향수뜰마을 복지회관(권역 센터)을 지나다 또 다른 모습의 대청호를 만났다. 명경처럼 잔잔하다는 대청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호로병의 좁은 주둥이 안에 들어선 호수는 물결 하나 일지 않는다.
▼ 지난번 6구간 때 얘기했듯이, 오백리길은 대전 권역을 지나자마자 엉망으로 변해버린다. 지자체의 무관심으로 인해 오백리길 표식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앱(선답자의 트랙)의 도움 없이는 길 찾기가 불가능한 이유다. 하지만 그 앱이 악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우리 부부처럼 선답자의 개척 구간에서 헤맬 수도 있으니 말이다. 트랙의 지시대로 보건진료소(향수뜰마을 복지회관과 나란히 붙어있다) 앞에서 갈림길로 들어섰다가, 20분이나 헤매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 대청호가 만들어놓은 자투리 같은 들녘, 부지런한 농부는 수확이 한창이다.
▼ 다운받은 트랙은 ‘생태복원지’로 탈바꿈된 옛 낚시터 뒤 산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산으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임자가 있는 산이라며 고함을 질러내는 데야 어쩌겠는가. 밤 주우러 온 게 아니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내려가라는 것이다. 능선까지 거의 올라갔다가 되돌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 보건진료소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도로(비아대정로)를 따른다. 도중에 ‘향수뜰 권역’의 공동생활관도 기웃거려 볼 수도 있다.
▼ 잠시 후, 오백리길은 ‘새거리’를 스치듯 지나간다. 와정리에 속한 자연부락 가운데 하나다.
▼ 오백리길은 새거리를 지나면서 오르막으로 변한다. 그리고 고개(아래 사진에서 능선 안부) 하나를 넘어 향곡리로 간다.
▼ 가을의 전령이라는 새하얀 구절초 꽃들이 바람의 흐름에 따라 하늘하늘 몸을 흔들고 있었다. 멋들어진 춤사위에 반해 갈 길도 잊고 한참을 서서 꽃들의 군무를 바라보았다. 어느 맑은 가을날, 찬란한 햇살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구절초 무리를...
▼ 감나무를 눈에 담는 재미도 있었다. 붉디붉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니 가을 사진 하나쯤으로 아주 괜찮은 그림이 된다.
▼ 고갯마루로 올라서자 임도가 하나가 왼편으로 갈려나간다. 아까 보건진료소 앞산에서 쫓겨나오지만 않았더라면, 길 아닌 길에서 길을 찾다가 저 임도를 따라 이곳으로 빠져나왔을 것이다. 현수막은 그 길을 ‘이시울골’로 들어가는 농로라고 적었다. 대청댐 수몰과 함께 사라졌다가 최근 재건을 시작했다는 오지의 숨겨진 마을이다.
▼ 새거리에서 20분. 고개를 넘자 ‘황골삼거리’다. 옛 이름이 한자로 고쳐지면서 ‘황골’은 현재 ‘항곡리(恒谷里, 발음대로 썼단다)’로 불린다. ‘골이 크다’는 뜻까지 품은 그럴듯한 마을이지만, 증약리에서 넘어오는 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오지마을이었다. 때문에 대정리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대전 생활권을 영위한다. 중학교의 학구도 대전 동신중학교라고 한다.
▼ 이정표(부소담악 6.5㎞/ 수생식물학습원 4.5㎞)는 왼쪽(환산로·이평2길)으로 가란다. 하지만 난 항곡마을을 먼저 둘러본 다음 트레킹을 이어갈 것을 권한다. 흔하지 않은 이색적인 풍광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 50m쯤 들어가면 또 다른 삼거리. 오른쪽에 있는 마을을 무시하고 곧장 직진한다. 참! 이왕에 왔으니 ‘마을자랑 빗돌’에 적힌 내용도 한번쯤 읽어보면 어떨까? 항곡리를 ‘황골’로도 부르는데, 이는 금을 채굴하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나?
▼ 몇 걸음 더 걷자 거대한 바위지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제주도의 화산암을 연상시키는 검은색 바위(흑색 금강석회암)가 산을 이루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돌무더기가 있는 언저리라는 뜻으로 ‘돌팡깨’라고 부른다고 한다.
▼ 데크계단을 오르면 바위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바위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것이다. 바위의 생김새도 볼거리다. 선돌처럼 뽈록하니 솟아나온 게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바위는 나무 그루터기를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
▼ 돌팡깨도 입소문을 좀 탔던 모양이다. 특산물판매장에 식당(문이 닫혀있었다)까지 들어섰다는 건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일 테니 말이다.
▼ ‘황골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에는 부소담악 방향이다. 대청호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걷는 이 구간은 전형적인 두메산골의 풍경이 이어진다.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길이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길이 정겹다.
▼ 잠시 후 길은 임도로 바뀐다. 오르막으로 변하는데다 좌우 휘어진 각도도 만만찮다. 눈비라도 내릴라치면 초보운전자는 살 떨리는 운전을 해야 할 듯. 맞다. 겨울철에는 차량통행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임도의 초입에 세워져 있었다.
▼ 대신 좋은 점도 있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심심찮게 시야가 열리기 때문이다. 대청호반이 훤히 내다보이며, 탁 트인 풍경이 꽉 막힌 가슴을 뻥 뚫어준다. 그런 호반에는 전원주택이 들어앉으며 그림처럼 예쁜 풍경화가 완성된다.
▼ 공곡재에 가까워지자 길은 허리를 곧추세운다. 이 구간의 특징은 뱀이 많다는 점이다. 공곡재로 오르는 도중 뱀을 세 마리나 봤다. 또 하나. 주차된 차량도 꽤 많이 만났다. 밤을 주우러 온 모양인데 그들이 버린 쓰레기들로 인해 간식을 먹을 만한 자리조차 찾을 수 없었다.
▼ 이때 다시 한 번 시야가 열리며 리아스식 호안이 펼쳐진다. 반도처럼 툭 튀어나온 저 곳은 7구간의 번외 명소로 꼽히는 ‘수생식물학습원’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모든 수생식물과 열대지방의 수생식물들을 재배·번식·보급시킴으로써 자연 생태보전의 파수꾼 노릇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단다.
▼ 황골삼거리에서 55분. ‘공곡재’에 올라섰다. 고갯마루는 어디가 됐든 사람들이 쉬어가는 장소다. 지자체도 이를 알았던 모양이다. ‘공곡정’이란 정자를 지어 오백리길 나그네들에게 쉼터로 제공했다.
▼ 고갯마루는 장승이 지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서낭당으로 여겨지는 돌탑도 보인다. 아니 막걸리가 뿌려져 있는 걸로 보아 서낭당이 분명하다. 높이가 216m나 되는 고갯마루를 넘는 이들의 안전을 비는 서낭당 말이다.
▼ 오백리길은 이제 길고 긴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이 길은 공존의 길이기도 했다. 임도를 따르고 있느니 자동차는 기본, 지자체는 여기에 도보길(오백리길의 부소담악길)과 자전거길(부소담악 자전거길)을 보탰다.
▼ 귀하디귀한 그 ‘오백리길 리본’을 엉뚱한 곳에서 만났다. 그렇게나 보기 힘들었던 리본을 공곡재 근처, 환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의 초입에다 매달아 놓은 것이다. 내 노년의 롤 모델이신 뚜벅이님의 말씀대로 ‘7-1구간’을 이곳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산악회는 군북면소재지에서 7-1구간을 시작하겠다고 적고 있었지만...
▼ 조금 더 내려가자(공곡재에서 7분) ‘이평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뉜다. 첩첩 산중의 오지지만 이평리를 구성하는 자연부락 가운데 농토가 가장 넓단다. 수몰민 중 일부가 이곳에 들어와 완만하면서도 너른 산의 경사면을 경작지로 일구었다고 한다. 참! 이평리는 물 건너 용호리로 건너는 ‘물아래여울’이 있던 곳으로, 옛날 동학군 지도부가 건넜던 여울이기도 하다. 동학군들이 이 여울을 건너 고리산을 올랐고, 증약리로 갔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 버스정류장에는 옥천 출신인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적혀 있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이하 생략>. 싯구를 읊조리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향마을을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즘을 대표하는 시이다. 한때는 노래방에서 손꼽히던 애창곡(김희갑 작곡/ 박인수·이동원 노래)이기도 했다.
▼ 길은 꼬불꼬불, 고리산의 산허리를 헤집으며 이어진다. 새로 낸 듯 경사지에는 넝쿨식물은커녕 잡초조차 자라지 않았다. 차선도 난데없이 2차선으로 변했다.
▼ 도로확장 때 함께 조성해 놓은 듯 길가에는 작은 꽃밭도 들어서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가을꽃이 지친 나그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 길은 한없이 ‘꼬부랑’거린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지형에 따라 길을 내다보니 별 수 없었을 게다. 민가도 잊을만하면 하나씩 나타난다. 험준한 지형에서 각자의 형편대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 온 흔적이다.
▼ 갑자기 얼굴을 들이미는 대청호가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푸른빛 절경을 펼쳐 보이면서 말이다. 그러자 9km를 걸어온 여정의 피로가 한 방에 녹아내린다. 머릿속 온갖 잡생각 또한 한눈에 가득 차는 풍경에 씻겨 내린다.
▼ 바위봉우리의 생김새가 심상찮아 카메라에 잡아봤다. ‘마당바우’라는 이름표를 단 것이, 철제난간을 두른 꼭대기 대(臺)가 마당만큼이나 넓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사유지 안에 들어있어 올라가보지는 못했다.
▼ 이 일대의 길가는 온통 ‘복분자’ 넝쿨로 가득했다. 검붉은 열매를 먹으면 정력이 강화되어 소변 줄기에 요강이 뒤집어진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과실이다. 그러니 정력보강이 필요한 남자들이여 어느 봄날 7구간을 꼭 걸어볼 일이다.
▼ 이 지역의 ‘반남 박씨’들은 형편이 넉넉한가 보다. 폐 선박으로 공동 숙소를 만들었는가 하면, 액티비티 스포츠용으로 모터보트까지 비치해두었다.
▼ 트래킹을 시작한지 3시간.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날머리는 아직도 먼데 산악회버스가 세워져 있는 게 아닌가. 더 큰 고민은 밥상까지 차려놓았다는 점이다. 결론은 날머리까지 다녀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주어진 시간까지 1시간30분이나 남아, 구태여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이 결정은 나를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었다. 식사를 마친 후 버스를 이용 날머리로 이동한다는 산악회의 결정이 내가 출발하고 난 뒤에 내려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부소담악 주차장에서 독상을 차려 식사를 하는 귀하신 몸이 되어버렸다.
▼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간 반도(지도에서는 부소담악과 별반 다르지 않게 나타난다)를 횡단하자 또 다른 대청호,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 대청호는 진짜배기 명경이다. 수면에 하늘과 물이 맞물리며 데칼코마니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 수정가든(닭백숙 전문식당)에 이어 ‘갈벌 버스정류장’이 길손을 맞는다. 이평리(梨坪里)에 속한 자연부락 중 하나였지만 대청댐에 물을 가두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이름(주민들은 현재 건너편 구건리골에 이주하여 살고 있단다)이다. 그래선지 ‘kakaomap’은 이곳을 ‘추실’로 적고 있었다.
▼ 버스정류장에는 한 폭의 걸개그림이 매달려 있었다. 대청호로 수몰되기 전 ‘갈벌’ 마을을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냈는데, 금강으로 여겨지는 큰 냇가를 중심으로 물레방아·다리·마을길, 그리고 많은 집들이 들어섰다. 또한 집집마다 이름을 써놨는데 성이 모두 ‘박’씨라는 게 독특하다. 박씨들 집성촌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그림에서는 고향 마을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이 잔뜩 배어있었다.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 오백리길은 이제 대청호에 바짝 기대며 간다. 바다처럼 드넓은 호수와 우람한 산줄기, 그 경계에 자리 잡은 마을까지 한데 어우러져 멋지다는 표현으로 부족할 정도다. 일상에 지친 마음에 호수만큼 넓은 여유를 품는다.
▼ 뒤라도 돌아볼라치면 또 다른 모습의 대청호가 나그네를 유혹한다. 호숫가 나룻배는 한껏 여유를 부리고, 데칼코마니를 연출하는 호수는 흰 구름까지 담았다. 어느 유명 화가가 저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 진행방향 저 멀리에서는 ‘부소담악’이 살짝 드러난다. 사람들은 이 부근의 대청호를 일러 ‘꽃 넝쿨을 호수 위에 드리워 놓은 모양(浮沼:부소)’이라고 한다. 첩첩산중에 대청댐 건설로 물이 차오르면서 낮은 봉우리는 섬이 되고 긴 능선은 호수 위 띠가 되었단다. 덕분에 저 띠를 걷는 탐방객들은 청정옥수의 호위를 좌우로 받게 된다.
▼ 갈벌에서 10분, 모퉁이를 돌아서자 ‘고리산 황룡사(古利山 黃龍寺)’라고 적힌 거대한 빗돌이 길손을 맞는다. 경주의 황룡사가 이사라도 왔나? 아니 경주의 절간은 ‘임금 황(皇)’자를 쓴다. 대신 이곳은 ‘누를 황(黃)’자를 쓰면서 ‘세계불교 세심종’의 총본산을 자처한다. 인류의 모든 종교를 포용하여 인류 구제와 세계평화를 서원으로 한다는 한국불교의 한 종파이다. 그래선지 ‘세계인류세심운동본부’라는 큰 글자 아래에 ‘남북통일’과 ‘인류평화’를 써 놓았다.
▼ 이색적인 일주문과 개생문(開生門)을 연이어 지나면 대웅보전이 얼굴을 내민다. 미륵불을 위시한 불상들과 수많은 윤회탑(정체는 모르겠다)도 눈에 들어왔지만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기록으로 남길만한 역사나 외형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전쟁이나 재해 등으로 숨진 국내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절간쯤으로 기억했다고나 할까?
▼ 황룡사 앞은 유원지가 들어섰다. 우거진 갈대밭과 칡덩쿨이 헝클어진 호숫가에 수상레저를 중심으로 카페와 음식점들이 모여들면서, 웬만한 유원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빈다. 어쩌면 이 부근에 있던 마을들은 호수에 잠겼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물에 잠기지 않은 변두리가 저런 유원지로 변했을 것이다.
▼ 부소담악은 유원지를 통과하도록 길이 나있다. 입구를 지키는 장승 옆에는 이를 알리는 종합안내도까지 세워놓았다. 하지만 이를 보지 못한 난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무질서하게 뒤엉킨 자동차들에 시선을 피하다가 그만 안내판까지 놓쳐버렸다.
▼ 2분쯤 더 걸어 나지막한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7구간이 종료되는 ‘추소리 둥그나무’다. 추소리의 신목인 둥그나무는 어른 서넛은 모여야 빙 둘러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로 우람하다. 그런 몸채로부터 뻗어나간 가지 또한 풍성하기 그지없는데, 그 아래에 서낭당(돌탑)을 모셨다. 참고로 추소리는 이 둥그나무를 중심으로 위·아래 마을로 나뉜다. 둥그나무 부근의 길가 언덕위에 자리한 마을이 ‘윗마을’이고 둥그나무에서 동남쪽 300m 아래 대청호변에 위치한 마을이 ‘아랫마을’이다.
▼ ‘부소담악 둘레길안내도’가 지시하는 대로 산길(부소담악으로 들어가는 3개의 탐방로 중 하나)로 들어섰다. 덕분에 산봉우리 하나를 오롯이 넘어야만 했다.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높이지만, 이미 지쳐버린 발걸음은 한없이 더뎌진다. 특별한 눈요깃거리도 없다. 그저 중간에 만나게 되는 문화류씨 묘역이 전부라고나 할까? 참! 이곳 추소리는 문화류씨의 집성촌이라고 했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가족과 다름없단다.
▼ 전망대에 오르기 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장승공원은 ‘소원 바리기(‘음식을 담는 그릇’이라는 순우리말)’ 장소로 알려진다. 나무를 깎아 만든 다양하고 익살스러운 장승들을 바라보며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 장승공원 뒤 산봉우리는 ‘추소정(湫沼亭)’이 걸터앉았다. 부소담악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아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 추소정에서 바라본 풍경은 빼어나다. 하긴 ‘대청호 최고의 절경’이라는 수식어가 어디 그냥 생겨났겠는가. 추소정에서 바라볼 때 물 건너 추소리(아랫마을)가 있고, 그 뒷산이 환산이다.
▼ 잠시 후 또 다른 정자를 만났다. 옛(舊) 정자인 ‘부소정’이란다. 특이하게도 정자의 기둥 사이를 창호로 막아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을까? 누군가 부소담악 자랑으로 가득 찬 전단까지 붙여놓았다.
▼ 탐방로는 이제 호로병처럼 생긴 지형의 목 부분을 지난다. 부소담악은 생긴 모양새로 보면 산이라기보다 산맥에 가깝다. 40~90m 높이(폭은 가장 넓은 곳이 20m 정도란다)의 절벽이 강줄기를 따라 병풍처럼 이어지기 때문이다.
▼ 아쉽게도 부소담악의 하이라이트인 병풍바위는 다가갈 수가 없었다. 안전사고를 이유로 밧줄로 난간을 두른 뒤, 출입금지 팻말로 아예 도배를 했다. 덕분에 난 부소담악을 감싸며 돌아드는 물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산자락을 적시는 풍경이 고와 ‘추소 8경’의 하나로까지 꼽혀왔다는데 말이다. 유구한 세월 속에 추소팔경은 빛바랜 지 오래지만, 부소담악은 대청호가 들어서면서 오히려 더 도드라졌다는데...
▼ 밧줄 난간에는 사진 제보를 부탁하는 전단이 매달려 있었다. 올 2월13일에 발생한 실족사건의 수사를 위해, 시간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당일 찍은 사진이 있을 경우 제보해 달라고 한다.
▼ 통행금지 라인을 차마 넘을 수가 없었기에, 맨 끄트머리의 풍경은 옛날 것(환산 등산 때 날머리를 이곳으로 삼았었다)과 총무님의 것으로 대신한다. 부소담악은 부소무니 앞 물위에 떠 있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갈수기와 만수위 때 높이가 달라지는 700여m의 절벽이 물줄기를 따라 병풍처럼 길게 이어지는데, 생김새가 산맥에 가까워서, 갈수기 때는 높은 산을 산행하듯 암벽을 오르내리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 부소담악은 물에 잠기기 전부터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일찍이 우암 송시열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보고 ‘소금강(小金剛)’이라고 이름 지어 노래했을 정도이니 그 빼어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중 ‘가장 아름다운 6대 하천’에 꼽히기도 했으며, KBS-2TV에서 방영된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시즌 3에서 사선녀가 탄성을 지르던 곳이기도 하다.
▼ 되돌아올 때는 호숫가 경사면을 따라 난 비탈길을 타봤다. 사람 하나가 겨우 다니는 오솔길 아래로 시퍼런 물이 넘실거린다.
▼ 부소담악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부소담악 자체에서는 절경을 볼 수 없으니 배를 타고 병풍바위 맞은편에 위치한 미르정원으로 오라는 것이다. 맞다. 부소담악의 ‘담악(潭岳)’이란 말 그대로 물 위로 드러난 산이다. 원래부터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오늘 날의 비경은 대청호에 물을 가두면서 자연스레 생겨났다고 한다. 산줄기가 물에 잠기면서 칼날 같은 능선만 수면 위로 길게 드러났고, 물에 잠긴 부분의 흙이 씻겨나가면서 바위가 드러나 열두 폭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형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반대편에서 바라봐야만 그 전모를 알 수 있다나?
▼ 날머리는 갈벌마을 호숫가(옥천군 군북면 이평리)
장승공원에서도 아까 들어왔던 길이 아닌 오른편 호숫가를 따랐다. 그리고 데크와 보드라운 흙길을 거쳐 황룡사 앞 유원지까지 되돌아오면 여정은 끝난다. 하지만 산악회버스가 ‘갈벌마을’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1km를 더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14.99km를 4시간 10분에 걸었다. 초반의 산길 구간을 생략했던 점을 감안하면 조금 더디게 걸은 셈이다. 와정리에서 길을 찾느라 헤맨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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