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진

 

한때는 열심히 사는 것만이 삶인 줄 알았다.
남보다 목소리 높이진 않았지만 결코

 

턱없이 손해보며 살려 하지 않던
그런 것이 삶인 줄 알았다.

 

북한산이 막 신록으로 갈아입던 어느 날
지금까지의 삶이 문득
목소리 바꿔 나를 불렀다.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고 있는 건가?

 

반짝이는 풀잎과 구르는 개울
하찮게 여겨왔던 한 마리 무당벌레가 알고 있는
미세한 자연의 이치도 알지 못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다 알고 있는 듯 착각하며
그렇게 부대끼는 것이 삶인 줄만 알았다.

 

북한산의 신록이 단풍으로 바뀌기까지
노적봉의 그 벗겨진 이마가 마침내
적설에 덮이기까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나는 그렇게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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