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89코스(전곡항 - 남동보건진료소)
여 행 일 : ‘26. 3. 14(토)
소 재 지 : 경기 화성시 만세구(서신면) 및 안산시 단원구(선감동·대부도동) 일원
여행코스 : 전곡항→탄도항→불도방조제→상상전망대→대선방조제→동주염전→남동보건진료소→고랫부리 입구(거리/시간 : 19.1km, 실제는 13.23km를 3시간 5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 08 : 40. 전곡항(화성시 만세구 서신면 전곡리)
평택시흥고속도로 송산마도 IC에서 내려와 322번·318번·301번 지방도를 연이어 타고 전곡항 쪽으로 11km쯤 들어오면 ‘전곡항교차로’에 이른다.

▼ 탄도·불도·선감도·대부도 등 안산시의 옛 섬(連陸島)들을 연이어 걷는 여정. 농어촌 마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논밭길, 염전길을 많이 걷는다. 펜션·전원주택 단지에서의 눈요기는 덤이라 하겠다.

▼ 서해랑길(89코스) 안내도는 탄도방조제 초입에 세워져 있다. 89코스는 탄도방조제를 따라가면서 시작된다.

▼ 08 : 45 - 09 : 00. 실제 출발지로 이동하는 도중 ‘탄도항(炭島港)’에 잠시 들렀다. 아름다운 일몰로 유명한 포구로 누에섬으로 들어가는 바닷길이 열릴 때 독특한 갯벌 생태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다.

▼ ‘탄도’에서 1.2km쯤 떨어진 ‘누에섬’은 ‘탄도 바닷길’을 통해 연결된다. 하루 두 번 바다가 갈라지며 잠시 생기는 길이 ‘탄도 바닷길’이다. ‘누에섬이야기 전시실’을 갖춘 멋진 전망대가 있어 너나없이 드나드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썰물(4시간) 때만 열리므로 때를 잘못 맞추면 섬에 고립될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 ‘안산어촌민속박물관’. 안산의 역사와 생태 환경, 어업문화, 어촌의 민속을 주제로 한 3개의 상설전시실과 서해어종·열대어종·민물고기 수족관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문이 열리기 전이라 구경할 수는 없었다.

▼ 09 : 10. 실제 출발지는 바다향기수목원. 정문으로 가는 길을 경찰이 막고 있어 하는 수 없이 후문에서 시작했다. 때문에 바다너울원, 암석원, 장미원 등 정문 부근에 집중되어 있는 알짜배기 정원들은 둘러보지 못했다.

▼ 수목원안내소. 선감도에 있는 생태관광의 명소로 다양한 수목과 정원이 어우러져 도심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힐링을 선사한다. 면적은 총 30만평(101만㎡). 우리나라 중부 도서 해안 식물을 중심으로 1천여 종류 30여만 그루의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자연학습 공간과 산림치유, 목공 체험, 숲 해설, 유아 숲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 ‘바다향기’지만 ‘수목원’이 아닌 ‘수목진화원’이란다. 지도에도 정문 지역의 메인 정원들은 모두 빠져 있었다. 후문 지역만 따로 떼어 관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 정원에는 상록교목(곰솔·백송 등 5종)과 낙엽교목(대추나무·산수유·신갈나무 등 23종)을 나무별로 심어 놓았다. 그 사이사이에 관목(회양목·낙상홍미·진달래 등 11종)과 지피/초화(구절초·양지꽃 등 5종)를 배치했다.

▼ 널찍한 탐방로가 정문까지 연결된다. 그 초입에 ‘무궁화원’을 배치했다. 단기고사는 지금으로부터 4100년 전, 제5대 구을왕 16년에 임금께서 고력산에 행차하여 제단을 쌓고 주변에 무궁화를 많이 심었다고 적고 있다. 신라·고려 때는 근화향으로 불리었으며, 조선시대 장원급제한 인재에게 하사하던 어사화도 무궁화였다고 한다.

▼ 09 : 16. ‘헐떡고개 넘어 정문가는 길’이란 위트에 끌려 숲속 산책길로 들어섰다.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볼거리가 제공될지 누가 알겠는가.

▼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깔딱고개’란 용어가 자주 쓰인다. 숨이 깔딱거릴 정도로 힘들게 오르는 고개를 이르는 말이다. 그것보다 조금 약한 게 ‘헐떡’이 아닐까 싶다. 그래선지 가파르긴 해도 숨이 턱에 걸릴 정도는 아니었다.

▼ 09 : 23. ‘헐떡고개’에 올라섰다. 헐떡이는 숨이라도 달래라는 듯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이곳은 ‘서해랑길’이 지나가는 능선의 안부이기도 하다.

▼ 이후부터는 서해랑길을 따라간다. 능선을 따라 북진한다고 보면 되겠다. 반대편은 대흥산(125m)을 넘은 다음 ‘불도’를 거쳐 ‘탄도’로 간다.

▼ 09 : 29. 잠시 후 올라선 무명봉. 반가운 이들의 띠지가 눈에 띈다. ‘사슴과 구름’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산에서 뵈는 분. ‘故 문정남’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봉우리를 오르신 분이다. 2022년 5월인가? 함께 했던 문선생님의 ‘23,456산 등정(4,500일 산행)’ 때는 ‘1만 산’ 등정을 넘겼거나 가까워진 유명 산꾼들은 물론이고, 산을 주제로 시를 쓰는 ‘김운남’시인(저서인 ‘三千山 詩塔을 위하여’를 선물 받았다)과 취재차 나온 ‘월간 山’지 ‘신준범’기자도 함께했었다.

▼ 09 : 31. ‘상상전망 돼’. 그저 바라만 보는 곳이 아니라며 붙여놓은 이름부터가 재미있다. ‘모든 상상이 전망되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가운데는 1004개의 풍경이 달려있는 ‘소리 나는 꿈나무’가 있다. 모든 상상을 담아 소원을 빌면 소리 나는 꿈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탐방객들의 소원을 하늘로 전달해준다나?

▼ ‘상상전망돼는 서해와 갯벌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감성 포인트이다. 방조제와 염전, 갯벌이 겹쳐 보이는 서해 특유의 풍경이 조망된다. 이름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상상에 잠겨보는 것도 괜찮겠다. 참! 이곳은 노을 명소라고 했으니 때를 맞춰 찾아볼 것을 권한다. 해 질 무렵 바다 위로 번지는 노을이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낸단다.

▼ 탐방객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조망도를 배치해 실물과 대비해가면서 조망을 즐기도록 했다.

▼ 반대편으로는 시화호로 향하는 수로와 간척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시화방조제에 막힌 물길은 대부도, 선감도, 불도, 탄도의 내륙 쪽을 감싸고 돈 뒤 탄도방조제에서 서해바다와 다시 만난다. 아직도 섬 아닌 섬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 입구의 기억상자는 서해안 고깃배 두 척을 맞대어 붙인 알 모양의 철제 조형물이다. 10년 뒤에 열어볼 수 있도록 설계해 재미를 더했다. 품고 있을 기억에 대한 궁금함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상상의 나래는 더 넓어질 것이다.

▼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도자기 파편으로 꾸몄다. 서해안의 파도, 물고기 떼, 구름, 하늘, 태양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다에서 태양까지 걸어 올라가는 느낌을 표현했단다. 길이가 70m나 되는 국내에서 가장 긴 예술 언덕이라나?

▼ 전망대 맞은편에는 ‘돌틈정원’이 있었다. 토양이 기름지지 못하거나 물이 부족해도 잘 자라는 식물인 노간주나무, 솔새, 억새, 철쭉 등을 심어놓았다.

▼ 09 : 40. 후문에서 올라오는 길. 서해랑길은 이곳 삼거리(이정표 : 정문→ 1km/ 후문← 0.8km/ 상상전망대↓ 0.2km)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 서해랑길 89코스는 경기둘레길 49코스를 얻어 쓴다. 거기에 ‘대부해솔길’까지 기댔나보다. 참고로 대부해솔길은 해안선을 따라 대부도를 둘러볼 수 있도록 조성된 걷기 여행길이다. 7개의 코스로 나눠 소나무숲길, 염전길, 석양길 등 다양한 테마로 꾸며놓았다.

▼ 09 : 41. 60m쯤 더 걸으면 공중화장실이 나타난다.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산속으로 들어간다.

▼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산길을 이어간다. 아니 하산의 내리막으로 보는 것이 더 옳겠다.

▼ 춘분(春分)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虬)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하지만 날씨는 확 풀렸고 산자락의 진달래는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

▼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만들어놓은 크고도 멋진 쉼터.

▼ 09 : 56. 임도(이정표 : 대부도펜션타운← 2km/ 바다향기수목원↓ 0.6km)로 내려서니 ‘노랑부리백로’가 반긴다. 해솔길에서 심심찮게 얼굴을 내미는 새인데 부리로 진행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 09 : 57. 80m쯤 걸었을까 다시 산속으로 들어간다. 곧장 가면 ‘경기창작캠퍼스’가 나온다. 1942년 조선총독부가 소년병 양성을 위해 만든 ‘강제수용소(선감학원)’가 있던 곳이다. 1982년까지 선감도에 고립된 소년들은 불법 수용과 혹독한 강제노동, 심한 폭력과 열악한 생활환경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소년들이 목숨을 잃고 적합한 절차 없이 암매장 당했다고 알려진다.

▼ 10 : 03. 전형적인 산길을 오르내린다. 그러다 임도에 가깝게 변하면서 걷기가 수월해진다. 그 초입에 ‘성황당 가는 길’이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마다 있던 성황당 이야기가 아니다. 선감학원에 수용되어 있던 소년들이 산꼭대기에 있던 ‘성황당’에 올라 가족을 그리워하며 탈출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30분이나 갯벌을 기어간 후에도 500m를 더 헤엄쳐야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 10 : 06. 잠시 후, 이번에는 ‘선감약수터’가 맞는다. 이곳에는 ‘층층대’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원생들이 빨래한 옷을 말리는 동안 목욕을 하던 곳인데, 저 약수터 뒤쪽 산속에 있단다.

▼ 10 : 11. 2차선인 ‘선감로’로 내려섰다. 이정표(종점까지 10.6km) 옆 안내판은 이곳을 ‘눈물고개’로 적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소년들이 오리걸음으로 올라가던 첫 기합장소였다고 한다.

▼ 도로변에는 ‘보은용사촌 펜션타운’이 들어서있었다. 수영장, 스파, 복층 등 다양한 구조의 펜션 250여 채가 입주해 있는 국내 최대의 펜션단지라고 한다.

▼ 10 : 14. 선감로를 가로지른 탐방로는 펜션타운을 왼쪽에 끼고 간다. 그렇게 250m쯤 진행했을까 각종 ‘LOVE’ 조형물로 치장된 ‘타운산책로’가 잠시 쉬었다 가란다. 조형물들 사이사이에 벤치를 놓아두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 그래 ‘Kiss’ 다음에는 ‘Marry’로 가야겠지?

▼ 의자도 살펴가면서 앉아야겠다. 자칫 ‘꽝’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 사랑꾼인 집사람이 그냥 지나칠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상대가 내가 아닌 ‘대부도’라니. ‘넌 내꼬’로 옮겼으면 하는 내 바람이 이루어졌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 10 : 20. 대선방조제. ‘선감도’의 산길을 오르내리며 달려온 서해랑길은 이제 ‘대부도’로 들어간다.

▼ 이즈음 ‘선감선착장’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강제수용소로 끌려온 소년들이 배에서 내리던 곳이다. 그래선지 국가 폭력의 슬픈 현장을 걷는 ‘선감학원 역사순례길’의 출발지를 저곳으로 삼고 있었다.

▼ 10 : 23. 방조제 끝에서 왼쪽(해안길)으로 빠져나간다. ‘제부도’를 마주보며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그 오른쪽에서 ‘큰행섬’이 자신도 있다며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 어촌의 아낙네에게 갯벌은 텃밭이나 마찬가지일 게다. 점심상에라도 올리려는 듯 갓 잡은 조개를 씻는 손길이 분주하다.

▼ 남양만으로 빠져나가는 물길이 영락없는 내만(內灣)의 모양새이다. 맞다. 선감도와 대부도 사이에 ‘대선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섬과 섬 사이는 자연스럽게 만으로 변했다.

▼ 10 : 31. 동리선착장 조금 못미처 삼거리(이정표 : 동주염전→ 1.7km/ 바다향기수목원↓ 6.7km). 탐방로는 오른쪽 구릉지로 올라간다.

▼ 노랑부리백로가 이번에는 시(詩)까지 품었다. ‘바다 위 순백의 신부’로 불리는 노랑부리백로는 안산시의 시조(市鳥)이기도 하다.

▼ 10 : 33. 언덕 위, ‘바람의 언덕’ 앞에서 오른쪽(북쪽)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능선을 넘는다.

▼ 능선 너머에서 길이 확 넓어졌다. 하지만 구릉지 전체가 사유지여서인지 민가는 한 채가 전부다. 사유지임을 알리는 철문을 빠져나온 후에도 잊을만하면 나타날 정도로 민가는 뜸했다.

▼ 10 : 43. 구릉지 사이로 이어지던 길이 신당리(新堂里)로 들어간다. 조선 말기 육지에서 이주한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정자를 크게 짓고 ‘신당’이라 부른 것이 마을 이름으로 굳어졌다. 마을에 있던 안방죽·새방죽 등에서 근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당(塘)’자를 ‘연못’이 아닌 ‘방죽’의 의미로 풀이하면 ‘새 방죽을 쌓은 동네’, 즉 신당리가 된다는 것이다.

▼ 구릉지 마을길을 걷다보면 잘 지어진 전원주택들이 눈요깃거리로 제공된다. 심심찮게 나타나는 ‘포도밭’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대부도가 자랑하는 특산물이기 때문이다. 대부도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배수가 원활하고 일교차가 크며, 미네랄이 풍부한 해풍이 사계절 내내 불어와 포도 재배의 최적지로 알려진다.

▼ 10 : 57 – 11 : 24. ‘벨라 키즈 풀’을 지나자 ‘동주염전 체험장’이 얼굴을 내민다. 2022년 3월 착공한 체험장은 염전체험장, 교육관, 소금창고, 집라인 등의 시설을 갖췄다. 하지만 관광 콘텐츠 부족과 운영 수익성 문제로 준공 2년이 넘도록 개장을 못하고 있단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깔끔한 시설은 쉼터로 제격이었다. 덕분에 우리 일행도 준비해간 간식을 나누며 푹 쉬어갈 수 있었다.

▼ 체험장으로 이용되는 소금밭 너머에는 대규모 바다낚시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 11 : 29. 다시 길을 나선다. 잠시 후 작은 고개 하나를 넘자 이번에는 ‘동주염전(東洲鹽田)’이 반긴다. 동주(東洲)는 동쪽에 있는 모래섬이란 뜻이다. 대부도 동쪽 해안의 갯벌, 모래섬 지형을 이용해 만든 염전이라는 지리적 특징에서 유래했단다. 대부도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햇볕, 바람이 좋아 예부터 천일염 생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 인천·경기 지역은 국내 최초로 천일염을 생산했던 곳이다. 1908년 일본인이 중국인 기술자를 고용 주안에 1정보 규모의 시험용 염전을 만든 데서 비롯된다. 이후 남동염전(인천), 군자염전(안산), 소래염전(시흥)이 차례로 문을 열어 전통 제염방식으로 양질의 저염도 소금을 생산했었다. 지금은 대규모 생산지로는 1953년에 설립된 ‘동주염전’만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소금창고는 출하를 기다리는 소금자루로 한가득이다. 동주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은 ‘깸파리 소금’으로 불린다. 깸파리(깨진 옹기조각)가 깔린 염전에서 생산돼 간수가 잘 빠지고 쓴맛이 거의 없으며, 풍미가 깊은 고품질 소금으로 인정받는다. 안산시를 대표하는 7대 농·수산 특산물로 꼽혀있을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 11 : 39. 동주염전과 말부흥곶부리 사이의 내만(內灣)에 가로막힌 탐방로는 둑길을 따라 내륙 쪽으로 들어간다. 동주염전을 오른쪽에 끼고 가는 모양새이다.

▼ 염전은 봄맞이 ‘단도리’로 한창이었다. 소금밭을 정비하는 염부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인다. 단도리가 끝나고 소금밭에 물이 고이면 염전은 하늘이 비치면서 포토 스팟으로 변한다. 거기다 해 질 무렵 붉은 노을이라도 비칠라치면, 노을과 바람, 소금판이 어우러지며 한 폭의 풍경화로 승화되어 버린다.

▼ ‘말부흥곶무리’ 앞에서 머물던 바닷물은 밀물 때마다 내만 깊숙이 들어와 ‘분지천’ 물길을 보탠 다음 바다로 되돌아간다.

▼ 11 : 46. 탐방로는 ‘분지천’ 하구역의 배수문(이정표 : 동주염전 2km)까지 올라간다. 그리고는 역 ‘ㄷ’자 모양으로 되돌아 나온다.

▼ 11 : 47. 60m쯤 걷다가 저수지가 있는 작은 곶부리(串)를 횡단해버린다. 봄바람에 맞춰 하늘거리는 억새 무리가 잠깐의 눈요깃감으로 제공되는 멋진 구간이다.

▼ 11 : 53. ‘카르폰 한옥카페’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이어서 잠시지만 바닷가를 따라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변은 온통 펜션 천지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잘 지어진 펜션들이 줄줄이 늘어서있다.

▼ 11 : 59. 해솔길마을 전원주택 단지를 지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부도 펜션 시티’로 진입한다. 13만2천357㎡의 대지에 지중해동, 파리동, 로마동, 런던동, 네델란드동, 스위스동, 알프스동 등 유럽도시의 특색을 담은 36개 동의 독채 펜션이 들어서 있다.

▼ 유럽 7개 도시를 테마로 꾸며졌다는 펜션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또 오고 싶은’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답게 집마다 유럽의 각 도시 이름을 담은 채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 풍차, 에펠탑 등 유럽풍이라는 테마에 걸맞는 조형물들을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 유럽만으로는 2%가 부족했던지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까지 모셔다놓았다. 하긴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맞아 프랑스가 선물한 것이니 유럽과 완전히 남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 12 : 08. 펜션시티가 끝나자 마을안길(공마을)도 둑길로 바뀌었다. 탐방로는 이 둑길을 따라 서진한다.

▼ 내륙 깊숙이 파고든 꼬맹이 만(灣). 바다라기보다는 수로에 가까워보인다. 오른쪽 끄트머리는 ‘말부흥선착장’이다. 가려서 안 보이지만 맞은편에 있는 ‘햄섬(또는 해미섬)’은 해무(海霧)가 많이 끼어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도 사람들은 해무를 ‘해미’라고 발음한단다. 큰햄섬·거북햄섬·가운데햄섬 등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 12 : 13. ‘브라보야구장’을 스치듯 지난 탐방로는 ‘벗말길’까지 간다. 그리고는 ‘⼌’자 모양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우린 지름길을 따르기로 했다. 시야가 막히는 골목길보다는 둑길이 더 낳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리도 300m 남짓 줄어든다.

▼ 12 : 17. 이번에는 전원주택 단지이다. 부티나게 잘 지어진 집들이 좌우에 늘어서 있다.

▼ 12 : 21. ‘서해랑길’과 다시 만났다. 이어서 ‘중부흥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금당마을’이 있는 구릉지를 넘는다.

▼ 구릉지를 넘어서자 전형적인 농촌풍경이 펼쳐진다. 걷는 도중 정미소까지 만날 수 있었다. 밥맛이 부드럽고 찰지다는 ‘드림쌀(안산 7대 농·수산 특산물)’이 생산되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 12 : 38. 중부흥(中富興) 마을. 이정표가 종점까지 4.2km쯤 남았다고 알려준다. 여기서 ‘부흥’은 말부흥 끝에 있던 ‘부항포(浮缸浦)’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는 남1리와 남2리 사이에 있는 돌메기 갯골이 목이 긴 항아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항포(扶項浦)로 불리었단다. 그러다 1942년경 일제가 농촌진흥회를 조직하고 식량을 수탈할 때 부엉이라고 발음되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바꾸면서 ‘부흥(富興)’으로 표기했다나?

▼ 12 : 40. ‘부흥로’로 내려선다. 탐방로는 ‘중부흥수퍼’의 오른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간다. ‘느릿부리길’이라는데 인근에 ‘느릿’이라는 곶부리(串)이라도 있나보다.

▼ 하지만 우린 도로(부흥로)를 따라가기로 했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구간이니 거리를 줄여보자는 몽중루 작가님의 강한 어필 때문인데, 덕분에 1km 정도를 단축할 수 있었다.

▼ 12 : 45. 200m쯤 걷다가 왼쪽 샛길(방조제길)로 들어섰다. 이때 ‘대부포도 직거래판매장’이 눈에 띈다. 1954년 재배를 시작한 대부 포도는 자타가 공인한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풍부한 일조량이 빚어낸 독특한 테루아(Terroir)를 바탕으로 맑고 투명한 색감과 섬세한 향, 균형 잡힌 산미를 자랑한다. 재배 면적이 190㏊에 이르며 수도권을 대표하는 포도 산지로 평가받고 있다.

▼ 구릉지 마을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내려가는 길. 진행방향 저만큼에 서해바다를 놓고 걷는다.

▼ 12 : 49. ‘서해랑길’과 다시 만났다. 이어서 둑길을 따라 서쪽으로 간다. 참! 서해랑길과 함께 이어오던 ‘느릿부리안길’이 이곳에서 ‘방조제길’로 바뀌고 있었다.

▼ 고랫부리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면적이 4.53㎢에 이르는 이 일대(상동갯벌 포함) 갯벌은 서울 여의도보다 1.5배 이상 넓다. 2018년 10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13차 람사르협약 총회에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 바닷가를 잠시 떠나기도 한다. 자그만 곶부리를 가로지른다고 보면 되겠다.

▼ 다시 만난 고랫부리 해변. 길은 이제 남동보건소를 향해 간다.

▼ 13: 02. 남동보건소 앞. 89코스의 종점은 원래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뭔가의 이유로 600m쯤 더 가야하는 곳으로 옮겨졌고, 서해랑길(안산 90코스) 안내도도 그곳에 세워져 있다.

▼ 비룰정? 생전 처음 보는 단어가 혼란스럽다. 반면에 빨간 우체통은 신기하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우체통을 본 것이 언제였지? 우체통은 뭔가 사연을 담아두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구간의 종점이었으니 걷기여행자들이 남긴 사연 또한 많았을 터, 단순히 지나만 갈 게 아니라 옛 사람들이 남긴 기억들을 잠시나마 떠올려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흔적도 조금은 남기면서 말이다.

▼ ‘고랫부리’와 ‘느릿부리’를 양옆에 낀 해안은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한층 더 뛰어난 아름다움을 원한다면 가을철에 찾아오라고 했다. 갯벌 곳곳에 단풍처럼 붉은 색을 띤 칠면초 군락이 넓게 펼쳐져 숲에서 보는 단풍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단다.

▼ 13 : 06. ‘대남로’로 올라섰다. ‘방조제길’과 ‘흘곶길’이 양옆으로 갈려나가는 사거리다. 표지석이 ‘행낭곡(行廊谷) 마을’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조선시대 말을 돌보는 목부와 감독관들이 잠을 자던 ‘행낭’이 있었다는 곳이다.

▼ ‘이찬 자선비(慈善碑)’도 눈길을 끈다. 대지주인 ‘이찬’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거나 소작료를 탕감해 주는 등 덕을 베풀어 마을 사람들이 그의 덕을 기리고자 세운 빗돌이다.

▼ 이후부터는 ‘대남로’를 따라간다. 이 구간은 ‘대부해솔길’ 4코스이기도 하다. 가수 이미자가 젊은 시절에 불렀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의 무대라서인지 ‘섬마을선생님 해당화길’, ‘그리움길’이란 이름도 붙여놓았다.

▼ 오지 어촌마을의 대남초등학교에 갓 부임한 서울 말씨를 쓰는 미남의 총각선생님은 어촌 아가씨들에게 가슴 두근거리는 짝사랑의 대상이었다. 사랑이 이루어지기 전의 그리움을 담은 길이라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길 말이다.

▼ 13: 11. 대남초등학교, ‘섬마을 선생님’의 무대가 됐던 곳이다.

▼ 갯벌에 둥그렇게 심어놓은 저 말뚝의 정체는 대체 뭘까?

▼ ‘고랫부리 갯벌’은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진다.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된 흰발농게의 주요 서식지이자, 천연기념물 노랑부리백로, 저어새, 황조롱이, 검은머리물떼새와 보호종 등 조류 13종이 찾아온단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5만 마리 이하로 추정되는 알락꼬리마도요 3만7,000여 마리를 포함해 마도요 5만4,000여 마리, 검은머리갈매기 400여 마리 등이 이곳을 찾는단다. 이 밖에도 모두 104종의 대형 저서동물이 서식 중이며, 갯벌 곳곳에 30종에 달하는 염생식물과 사구식물이 퍼져있다.

▼ 13 : 17. ‘고랫부리 입구’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고랫부리(고래부리)’라는 지명은 이곳 지형의 생김새에서 유래됐다. ‘부리’는 뾰족하거나 돌출된 지형을 뜻하는 옛말이다. 따라서 ‘고랫부리’는 바다 쪽으로 돌출된 생김새가 고래의 부리처럼 보인다는 얘기가 된다.

▼ 서해랑길(안산 90코스) 안내도는 바닷가에 세워져 있다. 국가습지보호구역이자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어 있음을 알리는 안내판도 눈에 띈다. 그나저나 오늘은 13.23km를 3시간 50분에 걸었다. 산길 구간이 많아 속도가 조금 떨어졌던 모양이다.

▼ 맞은편에는 ‘섬마을 선생님 노래비’도 세워놓았다. 뒷면에는 노래의 배경이 조금 전에 만났던 ‘대남초등학교’이며, KBS 사극 ‘용의 눈물’ 연출가 김재형 PD가 이를 증언했다는 내용을 적었다.

▼ 오늘도 집사람이 함께 해줬다. 덕분에 행복한 하루가 될 수 있었고, 그런 상황을 만들어준 집사람에게 감사를 보낸다. 행복은 ‘고난’이란 포장지로 굳게 포장되어있다고 했다. 고난이라는 포장을 쉽게 열 수 있는 열쇠는 ‘감사’하는 마음이라고도 했다. 집사람에게 항상 고마워하는 이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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