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길 17코스(남대천교 – 와수리 세월교)
여행일 : ‘25. 6. 21(토)
소재지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김화읍·서면 일원
여행코스 : 남대천교→청양초등학교→김화생활체육공원→와수리(거리/시간 : 7.9km, 실제는 14.97km를 4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드디어 ‘코리아둘레길’의 4,500km 전 구간이 완성됐다. 2009년부터 시작된 ‘코리아둘레길’은 2016년 해파랑길(동해), 2020년 남파랑길(남해), 2022년 서해랑길(서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24년 9월, 마지막 구간인 DMZ 평화의길(이하 평화의길) 개통으로 ‘코리아둘레길’이 완성됐다. DMZ 일대를 따라 구축한 코스로, 자유롭게 방문하는 횡단노선과 민간인 통제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인 테마노선으로 구성된다.
▼ 11 : 00. 들머리는 남대천교 남단(철원군 갈말읍 토성리)
세종포천고속도로 신북 IC에서 내려와 국도 43호선을 타고 김화 방면으로 40km쯤 올라온다. 지경교차로에서 464번 지방도로 옮겨 도창리방면으로 2km쯤 들어오면 ‘남대천교’에 이른다. 평화의길 QR코드는 다리 남단의 이정표에 붙어있다.

▼ ‘남대천교 남단’에서 시작 ‘와수리(세월교)’로 이어지는 7.9km의 여정. ‘화강’ 및 ‘와수천’의 아름다운 강변을 시종일관 따라가는 기분 좋은 코스이다. ‘쉬리공원’이 주요 볼거리로 꼽힌다.

▼ 11 : 00. ‘화강’ 둑길을 따라 동진(東進)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와수리 세월교’ 방향이다. 나머지 두 방향, 즉 고석정 방향은 16-2코스로 조금 전 걸어왔었고, DMZ두루미평화타운(남대천교 방향)은 16코스의 출발점이다.

▼ 함께 가고 있는 ‘평화누리자전거길’은 광역지자체마다 별도로 운영하고 있나보다. 경기도 권역에서 7코스 안내판까지 본 것 같은데, 다시 앞 번호로 되돌아가 ‘3코스(화강길)’가 되어있는 걸 보면 말이다.

▼ 초입의 청양배수장. 2주 전에 걸었던 ‘한탄강’과는 명칭(당시는 ‘양수장’)부터가 달라졌다. ‘대야잔평(大也盞坪)’을 파고 들어가듯 흐르던 ‘한탄강’과는 달리 이곳 ‘화강’은 청양 들녘보다 수위가 높거나 같다는 얘기일 것이다.

▼ 강둑에는 굵직굵직한 느티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게 폭넓은 그늘을 만들어내며 뜨거운 뙤약볕을 막아준다. 그뿐 아니다. 화강과 느티나무가 어우러지면서 시각적으로도 무척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 ‘화강 느티나무 삼십리길’이란다. ‘화강’의 강둑을 따라 심어진 느티나무 숲이 삼십리(11.2km)나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는 철원군이 쏟아 부은 노력의 결실이다. 군은 2009년부터 느티나무 숲길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매년 비료 주기와 가지치기 등을 통해 아름다운 강변길을 만들어냈다.

▼ 아름다운 풍경은 이를 본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주나 보다. 활짝 웃는 집사람의 얼굴에서 꽃띠 소녀의 방심(芳心)을 읽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 또 다른 배수장. 청양 들녘(‘淸陽盆地’라고 했다)이 넓어서인지 이런 배수장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 화강은 습지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 정수식물(挺水植物)이 군락을 이뤄 흡사 밀림을 보는 듯 그 자체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저 속에서는 천연기념물인 어름치와 희귀어종인 쉬리, 가는돌고기, 돌상어, 배가사리, 종개를 비롯한 다양한 어종들이 살아간다고 했다. 철새들로서는 좋은 먹잇감이라 할 수 있겠다.

▼ 우리 같은 평화의길 도보여행자들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띈다. 그런데 알려주는 정보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됐다. 17코스의 출발지가 ‘남대천교’가 아닌 ‘도창리검문소’라니 말이다. 때문에 거리도 원래(7.9km)보다 5km 이상 늘어나 버렸다.

▼ 둑 아래 오른쪽에는 청양리(淸陽里)의 단위 부락들이 따라온다.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청양3리’이다.

▼ 철원은 수도권에서 당일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주상절리 잔도에 더해 겨울의 진객 두루미까지 만날 수 있어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핫플레이스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철원은 총소리가 나지 않을 뿐 언제나 긴장감이 흐르는 접경지역이기도 하다. 지뢰 등의 폭발물이 유실되어 흘러올 수도 있다는 저 현수막이 그 증거이다.

▼ 11 : 44. 청양리의 3리와 6리를 잇는 ‘장수대교’는 교각 아래를 지나간다.

▼ 이 뭣꼬? 교각 아래의 쉼터가 문화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흔하디흔한 그릇들이건만 장소와 배열이 어우러지면서 멋진 설치미술로 변했다.

▼ ‘화강 느티나무 삽십리길’은 명품 걷기길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쉼터 등 편의시설들이 곳곳에 들어서있는가 하면 잘 단장된 산책로에는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 ‘장수대교’를 지나자 ‘청양3리 수변공원’이 맞는다. 정자를 짓고 데크 산책로를 내었는가 하면, 둑의 경사지에는 작은 공연장까지 만들어놓았다. 자그마하지만 정성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했다.

▼ 그 옆에는 ‘청양초등학교’가 있었다. 1955년에 문을 열었다니 나이가 70살이나 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학생 수가 100명도 채 되지 않는 학교치고는 건물이 무척 컸다.

▼ ‘청양 보(洑)’라고 불러야하나? 아무튼 화강에는 저런 보가 여럿 있었다. 청양 들녘이 그만큼 넓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평화누리자전거길’을 겸해서일까? 쉼터에 자전거 거치대를 만들어 놓았다. 아니 자전거를 타고 나온 주민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걸 보면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로 보아야겠다.

▼ ‘다슬이’와 함께 화강을 한 바퀴 걸어보란다. 그것도 무작정 걷지만 말고 건강까지 챙겨가며 걸으라는 모양이다. 맞다. 작년에는 이곳 ‘느티나무 삼십리길’에서 주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한 걷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어느 화사한 봄날 ‘함께해봄! 걷기해봄!’을 주제로 다슬기축제장에서 청양수변공원까지 왕복 3.8km구간을 걸었다고 한다.

▼ 걷기는 건강 증진을 도와준다. 건강위험 지표인 비만율을 감소시키는데 이만한 것도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걷지는 말자. 안전한 운동을 위해 스트레칭은 필수다.

▼ 어느 강태공의 고정 낚시터인 모양이다. 좌대가 펼쳐져 있지만 물이 불어난 탓인지 낚시꾼은 보이지 않는다.

▼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주민들이 대부분이지만 외지에서 찾아온 듯한 사람들도 눈에 띈다. ‘느티나무 삼십리길’이 소리 소문 없이 입소문을 탔던 모양이다.

▼ 11 : 55. 소하천을 건넌다. 화강으로 합수되는 지점 바로 위에 나무다리가 놓여있다.

▼ 다리를 건너다보면 청양1리 ‘청하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 느티나무 길동무는 계속된다. 느티나무가 펼쳐주는 그늘과 바람이 선물인양 고맙다.

▼ 이즈음 ‘청양농원’을 만난다. 주인장이 고미술 취향을 갖고 있는지 오래된 석물들이 뜨락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아니 저 석물들을 조경수와 함께 파는 모양이다.

▼ 조깅을 즐기고 있는 주민들도 눈에 띈다.

▼ ‘느티나무 삼십리길’은 시가 있는 산책로이기도 하다. ‘나두야 간다’로 시작되는 박용철 시인의 ‘떠나가는 배’가 적힌 시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 청양1리 뒤는 2리가 아닌 4리인 ‘망경마을’이 잇고 있었다. 3리와 4리 사이에 1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 강 건너는 ‘청양6리’이다. 청양아파트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마을은 안암산(鞍岩山, 588m)이 뒤를 받쳐준다.

▼ 공중화장실도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변을 보겠다면 들어간 이석암 작가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오신다. 사용을 하지 못할 정도로 지저분하더란다. 때문에 100점 만점을 받아오던 길이 80점으로 내려앉았다.

▼ 또 다른 취수보(取水洑)

▼ 쉼터에는 평화의길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지금 걷고 있는 17코스의 안내는 물론이고, 4개의 상시 횡단노선과 1개의 테마노선으로 이루어진 철원구간에서 만날 수 있는 주요 볼거리들을 알려준다.

▼ 오른쪽에는 ‘김화농공단지’가 들어섰다. 수질오염 및 중금속 등 환경오염 물질 배출 업소를 제외한 모든 제조업의 입주가 가능하단다. 2021년 기준 25개 기업에서 340여 명의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 12 : 26. 또 다른 소하천을 건넌다.

▼ 이곳도 화강과 만나는 지점의 바로 위에 나무다리가 놓여있다.

▼ 다리 오른쪽은 김화농공단지다. 철원군의 일개 읍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김화는 1935년 9만7,000여명의 인구와 1개읍 11개면을 거느린 군이었다. 인근 철원과 화천은 말할 것도 없고 춘천보다 인구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화려했던 김화의 모습은 자료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생창리와 읍내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김화읍은 한국전쟁으로 흔적도 없이 파괴되고, 분단 이후에는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지역으로 묶였다.

▼ 다리를 건너자 느티나무가 사라졌다. 대신 제철 맞은 금계국이 꽃망울을 활짝 열며 길손을 맞는다.

▼ 이곳에도 시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번에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와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둘이 되어’를 적어 넣었다.

▼ 12 : 34. 둔치에는 ‘쉬리캠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화강은 산세와 물이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거기다 수려한 경관까지 갖췄으니 지자체에서 그냥 놓아두었을 리가 없다. 천변에 거대한 캠핑장을 구축하고 외지 캠핑족들을 불러들인다. 서울에서 와수리까지 다니는 시외버스의 주 고객이 군인들보다도 캠핑족이 더 많다는 소리가 우스개로 들리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 사이트가 72면이나 된다는 캠핑장은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하긴 둔치에 조성된 캠핑장을 장마철에 찾아올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천 불구하고 찾아온 이들은 지대가 조금 높은 곳에 있는 다슬기·쉬리·두루미 캠핑장에서 머물 것이고 말이다.

▼ 둑 위에는 ‘김화생활체육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1만1천여 평의 부지에 축구장·풋살장·족구장·배구장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특히 축구장은 조명시설까지 갖춘 것이 웬만큼 큰 도시의 축구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 공원에서는 연중 다양한 주민행사가 펼쳐진다고 했다. 오늘도 ‘재경철원군민회 고향사랑 한마음체육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경기가 끝났는지 모두들 테이블에 둘러앉아 술과 음식을 나눠먹고 있다. 그게 내 구미를 동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음식 냄새에 이끌려 무대 근처까지 다가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구하나 음식이나 술을 권하는 이는 없었다. 우리 모두 각박해진 세상에 살고 있으니 뭐라 하겠는가마는 김삿갓의 ‘네 절 인심 고약타!’라는 싯구가 무심코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 ‘S’자 모양의 곡선을 그리고 있는 징검다리가 눈길을 끈다. 징검돌을 폴짝거리던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딱 좋기 때문이다. 저런 모양의 다리는 다양한 배경을 담을 수 있어 포토 존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해준다. 하지만 불어난 강물에 잠겨있어 그 추억에 빠져보지는 못했다.

▼ 수변수영장의 글자조형물. 화강(花江)은 ‘꽃강’이라는 뜻이다. 예부터 강변 경치가 꽃처럼 아름다워 그리 부른다. ‘꽃보다 화강’이란 브랜드로 포장해놓은 이유일 것이다.

▼ 길가 나무 울타리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는 너가 철원에서 놀 때 제일 예뻐’, ‘여기서 사진 찍는 니가 제일 예뻐’, ‘철원 너와 함께 하고 싶은 날’ 같은 다양한 홍보문구로 치장했다.

▼ 더워 죽겠으면 ‘철원 화강 다슬기축제’에 오란다. 올해는 7월 31일부터 8월 3일까지 열린다니 계절에 딱 맞는 홍보문구라 하겠다. 참고로 ‘화강다슬기축제’는 화강 일대에서 다슬기와 물을 테마로 개최되는 가족 관광 체험형 여름 축제이다. 다슬기 잡기, 워터슬라이드, 수영장, 군장비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 ‘다슬기축제’ 조형물도 눈에 띈다. 지난 2006년부터 열려온 ‘화강 다슬기축제’는 소박한 마을 축제로 시작됐다. 하지만 2016년부터 철원군이 주최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찾는단다.

▼ 공원은 수영장, 워터슬라이드, 수상레저체험장, 물썰매장 등 다양한 물놀이시설도 갖췄다.

▼ 12 : 47. 신·구(新·舊) 두 개의 ‘김화교’ 다리는 교각 아래로 통과한다. 오후 8시부터 다리에 경관 조명이 켜져 밤 산책 코스로도 그만이라는 다리다. 일몰 때 해의 방향을 따라 멋진 인생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 화강은 오랫동안 남대천으로 불리어오기도 했으나, 김화읍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김화읍지’ 등 옛 문헌에서 원래 이름인 ‘화강(花江)’을 발견하고 복원 운동을 진행하면서 2009년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화강이라는 이름은 김화의 별호(別號)로서 조선 세종 조에 김화현에 지어진 객사(客舍) 화강관(花江館)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화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화강백전(花江栢田)’과 ‘여지도(輿地圖)’ 김화현 편에도 화강 명칭이 사용되었다.

▼ 옛(舊) 금화교의 상부는 ‘쉬리’ 조형물이 차지하고 있었다. 참고로 이 일대는 ‘쉬리마을’로 통칭된다. 화강(花江) 주변의 학사리와 청양리 일대를 아우르는데 지난 2007년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사업’ 공모에 당선되면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묘하게 뒤흔드는 ‘쉬리’라는 이름도 그때 지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토종 민물고기 쉬리와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쉬리’를 함께 담았다. 이름에 화강의 맑은 자연뿐만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주민의 마음까지 담았다고나 할까?

▼ 새로운 다리가 놓이면서 뒷전으로 물러난 ‘김화교’는 공공미술프로젝트로 덧씌워지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자동차는 새로운 다리로 넘겨주고 이젠 보행 전용다리로 남았다. 상부에 쉬리와 다슬기 모양의 터널을 만들어 놓았는데, 쉬리 모양 터널이 ‘Forever Fish Project’이고 다슬기 모양 터널은 ‘Forever Festival’이란다.

▼ 쉬리마을을 상징하는 쉬리 조형물. 반대편(다슬기 모양의 터널 뒤)에는 어부가 그물을 던지는 장면을 연출한 조형물 ‘어부의 노래’가 설치되어 있단다.

▼ 쉬리마을 가꾸기는 아직도 진행 중인 모양이다. 다리 아래에 뭔가를 그려 넣으려는 듯, 구도를 잡고 있는 예술가의 손길이 무척 바빠 보인다.

▼ 상가번영회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맛집이나 마트는 물론이고, 공공기관·약국·주유소 등 편의시설에 대한 정보를 여행자들에게 전해준다.

▼ 12 : 55. 다시 길을 이어간다. 데크 산책로를 따라 ‘화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초입에 평화의길 종합안내도와 구상 시인의 ‘초토의 시 8’이 적힌 시판이 세워져 있다.

▼ 수변산책길은 ‘장수길’로 포장됐다. 그늘진 강변 절벽 옆 데크가 매력적인데, 매일매일 산책을 즐기면서 오래오래 살아가자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 암벽이 강을 향해 툭 튀어나오면서 그럴 듯한 풍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를 데크 탐방로가 에돌아가면서 언뜻 ‘잔도’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 뒤돌아본 수변산책로.

▼ 건너편 ‘학사5리’의 둔치는 낚시터로 이용되고 있나보다. 낚시 좌대가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 13 : 05. 김화읍에서 서면으로 넘어온다. 그러자 ‘만경보’가 맞는다. 뒤로 보이는 다리는 김화읍 학사리와 서면 와수리를 잇는 ‘학포교’이다. 만경보 오른쪽에서 흘러온 ‘와수천’이 학포교 아래를 지나온 ‘화강’에 합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참고로 와수천(瓦水川)은 서면 자등현과 상해봉(上海峰) 등에서 발원해 서면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흐르다가 송동(松洞)과 와수리를 지나 김화읍 학사리에서 화강에 합류되는 소하천이다.

▼ 만경보의 위 둑에는 체육공원을 겸한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평화의길 대신 평화누리길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 위에서 내려다본 ‘만경보’

▼ 이후부터는 와수천의 둑길을 따라간다. 와수천이 휘돌아 굽이치면서 몰고 온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충적지’가 제법 넓다. 와수천 물줄기가 그만큼 거세다는 얘기일 것이다.

▼ 13 : 13. ‘와수리’와 서면생활체육공원을 잇는 다리는 ‘와수1로’의 연장이다. 이 길은 다리 남단쯤에서 횡단해버린다. 참고로 와수리(瓦水里)는 초가집보다 기와집이 더 많았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김화군에 부임하던 원님이 산마루에 올라 이곳 지역을 살피니 바다는 없는데 석양에 비치는 기와지붕들이 마치 바다 물결치는 듯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만큼 풍족한 마을이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 도로 건너, 와수천의 남쪽 언덕에는 ‘서면생활체육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널찍한 축구장을 중심으로 농구장, 다목적광장, 대한드론교육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 더. 사과가 서면의 특산물인 듯 체육공원 입구에 사과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 서면의 축구장도 야간 조명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하긴 김화읍의 사실상 중심이 서면의 ‘와수리’라니 어련하겠는가. 김화중학교와 고등학교, 도서관 등 읍사무소를 제외한 김화의 공공시설 대부분이 와수리에 있는가 하면, 동서울·수유리·의정부로 가는 버스도 와수터미널에서 출발한다. 리 단위에선 드물게 오일장(1·6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휴가나 외출 나온 군인이 많아 시골마을답지 않게 활력이 넘친다나?

▼ 13 : 16. 체육공원 부근에서 ‘와수천’이 둘로 나뉘고 있었다. 아니 두 물길이 합쳐지는 ‘두물머리’다. 하지만 두 물길은 원래부터 하나였다. 세월교에서 물길이 둘로 나누어지면서 하나는 ‘내륙의 섬’을 에돌아가고 다른 하나는 곧장 이리로 와 다시 합쳐지는 것이다.

▼ 평화의길은 ‘세월교’에서 남쪽으로 직진해오는 물길을 따라간다. 와수리 시가지 쪽으로 에돌아오는 본류보다 세가 약하니 ‘(小)와수천’이라 할 수도 있겠다.

▼ 13 : 20. 잠시 후 ‘와수천’을 건넌다. 와수천의 물길이 요동치면서 만들어놓은 ‘내륙의 섬’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 조금 더 걸어, ‘세월교’에 가까워지면 조금 전 얘기한 ‘와수천’의 정체가 파악된다. 지금 걷고 있는 섬을 가운데 두고 물길이 둘로 나뉘는 것이다.

▼ 13 : 25. ‘세월교(洗越矯)’를 건너면서 17코스 걷기가 끝난다. ‘세월교(洗越矯)’는 흄관과 시멘트를 이용해 만든 소규모의 다리를 통칭한다. 하천에 흄관을 깔아 그 속으로 하천수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한 뒤, 시멘트로 위를 평평하게 덮어 사람이나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다. 그건 그렇고, 다리 건너는 ‘와수리(瓦水里)’ 시가지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원산으로 가는 경흥대로의 남쪽 마지막 분기점이 여기다. 경흥대로는 여기 김화에서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뚝 하고 길이 잘렸다. 남북 분단의 가슴 아픈 결과이다.

▼ 세월교 위쪽에는 탱크방어용 군사시설인 용치(龍齒)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군수물자를 보급하던 전략적 요충지였으니 응당 있어야할 시설이라 하겠다. 아무튼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은 이제 주변 군부대 장병들이 ‘와수베가스’라고 부르는 마을의 번화가만 덩그러니 남았다고 한다.

▼ 평화의길 QR 코드는 와수천을 따라 100m쯤 더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평화의길 종합안내도의 기둥에 붙여놓았다. 그나저나 17코스는 8.37km를 2시간 10분에 걸었다.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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