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길 16-2코스(우회로 : 고석정국민관광지 – 남대천교 남단)
여행일 : ‘25. 6. 21(토)
소재지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및 갈말읍 일원
여행코스 : 고석정→승일교→문혜교차로→지경교차로→남대천교(거리/시간 : 12.8km, 실제는 7.83km를 1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드디어 ‘코리아둘레길’의 4,500km 전 구간이 완성됐다. 2009년부터 시작된 ‘코리아둘레길’은 2016년 해파랑길(동해), 2020년 남파랑길(남해), 2022년 서해랑길(서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24년 9월, 마지막 구간인 DMZ 평화의길(이하 평화의길) 개통으로 ‘코리아둘레길’이 완성됐다. DMZ 일대를 따라 구축한 코스로, 자유롭게 방문하는 횡단노선과 민간인 통제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인 테마노선으로 구성된다.
▼ 09 : 05. 들머리는 고석정국민관광지(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세종포천고속도로 신북 IC에서 내려와 국도 43호선을 타고 김화 방면으로 35km쯤 올라온다. ‘문혜교차로’에서 좌회전 4km쯤 들어오면 고석정국민관광지다. 평화의길 인증 QR코드는 관광정보센터의 왼쪽 처마 아래 이정표(고석정)에 붙어있다.

▼ ‘고석정국민관광지’에서 시작 ‘남대천교’로 이어지는 12.8km의 여정. 4차선의 국도, 그것도 흰색 페인트 선(線) 하나로 겨우 나뉘어있는 인도를 따라 걷는 위험천만한 여정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한국관광공사에서도 국도 구간(6.5km)을 버스로 이동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 ‘승일교’를 빼놓고는 특별한 볼거리도 없다.

▼ ‘음식과 예술의 만남’. 철원지역을 찾는 수도권 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의 일환일 것이다. 철원 오대쌀과 지역 식재료로 만든 아름다운 음식들, 거기에 오대쌀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보여주겠다는 것 말이다.

▼ 09 : 07. 국민관광단지를 빠져나와 ‘태봉로(463번 지방도)’를 따라간다. 오늘도 역시 ‘두루누비(한국관광공사의 공식 앱)’의 트랙이 길을 안내해준다. 마진(摩震)으로 국호를 바꾼 궁예는 도읍을 이곳 철원으로 옮긴다. 궁예는 또 대동방국의 이상을 품고 911년에는 국호를 태봉(泰封)으로 바꾼다. 궁예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왕건에게 나라를 빼앗겼지만 철원 지역에서는 궁예와 그가 세운 ‘태봉’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단다. 지금 걷고 있는 도로가 ‘태봉로’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 09 : 13. 한탄교차로. ‘태봉로’에서 구(舊) 도로가 갈려나가는 지점이다. 아니 ‘태봉대교’를 새로 놓으면서 463번 지방도도 함께 이설(移設)했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냈다(長江後浪推前浪)’고나 할까?

▼ 길 건너에는 ‘고석정 꽃밭’이 있었다. 한 송이 꽃으로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고 했다. 그런데 갖가지 꽃들이 시샘하며 피어 있으니, 내 얼굴에 웃음꽃 피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빠듯한 나그네는 곁눈질에 만족하며 지나칠 뿐이다. 참고로 고석정 꽃밭은 넓이가 24만㎡에 이른다. 축구장 33개를 합친 크기의 광활한 들판에 형형색색의 온갖 꽃이 황홀하게 피어난다. 원래 군부대가 포사격 훈련을 하던 곳이었는데, 부대가 이전하면서 철원군이 2016년부터 꽃밭으로 조성했다. SNS에서 ‘인생 샷’ 명소로 입소문을 타며 매년 찾는 이가 늘어나고 있단다.

▼ 옛 ‘463번 지방도’를 따라간다. 승일교가 노후로 인한 위험으로 차량통행이 금지되면서, 지금은 겨울철 ‘한탄강 물윗길’ 트레킹을 하려고 찾아오는 차량들이나 들어가는 한적한 길로 변했다.

▼ 09 : 19. ‘승일교’ 입구. 무턱대고 승일교로 가버리는 우(愚)는 범하지 말자. 왼쪽으로 내려가면 ‘승일교’를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광장에는 ‘한탄강 물윗길 트레킹’ 매표소 말고도 철원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화산지대임을 암시하는 현무암(玄武巖)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서는 군조(郡鳥)인 두루미(鶴)가 힘찬 날갯짓을 한다. 참고로 ‘한탄강 물윗길’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록된 한탄강의 주상절리를 물 위를 걸으며 감상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매년 10월 개장하여 3월까지 운영되는데 1만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 ‘통일기원 망향비’도 눈에 띈다. 망향비는 고향이 있어도 찾아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이 통일을 기원하며 세운 빗돌이다. 그러니 강원특별자치도의 미수복 지역인 ‘이천군(伊川郡)’ 출신 실향민들이 세웠을 것이다.

▼ 강변으로 나가자 ‘한탄강(漢灘江)’의 양안을 어찔하게 걸친 다리 하나가 눈길을 끌어당긴다. 승일교(承日橋)로, 태봉국 말년에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건너가면서 한탄했다는 한탄강의 슬픈 역사만큼이나 남북 분단의 비극을 간직하고 있는 유적지다. 다리는 자신의 탄생비화처럼 갈라진 조국이 하나 되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묵묵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섰다. 하나 더. 아래서 다시 거론하겠지만, 시공자가 달라지면서 큰 아치 위의 상판을 받치는 작은 아치의 모습이 서로 다른 것은 이 다리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북한 쪽에서 지은 아치(오른편)가 둥근 반면, 나중에 완성된 남한 쪽(왼편)은 둥근 네모 형태로 차이가 난다.

▼ 트레킹을 위해 되돌아나갈 필요는 없었다. 승일교로 곧장 올라가는 계단이 놓여 있다.

▼ ‘주상절리길’은 한탄강지질공원에서 지정한 지오트레일 중 하나로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연천·포천 등 접경지역의 발전을 돕고 한탄강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개발한 코스다. 안내판은 이중 한여울길(1·2코스)을 설명하고 있다. 이 길의 가장 큰 특징은 국내 유일의 화산강이라는 한탄강의 기암절벽을 따라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도로가 협곡의 상부지점으로 나있어 다소 먼발치에서 한탄강의 비경을 내려다봐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야기가 있는 문화 생태탐방로’로 선정한 이유일 것이다.

▼ 평화의길은 ‘승일교’를 건넌다. 길이 120m에 폭은 8m, 차량의 교행이 가능할 정도로 널찍하다.

▼ ‘승일교’는 1948년 8월 북한이 착공하여 1958년 12월 3일에 남한이 완공시킨 다리이다. 시작과 완성의 주체와 시공법이 달라 아치의 크기 등 교각의 모양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인공 치하이던 1948년 북한은 군사도로로 활용하기 위해 한탄강의 남부와 북부지역을 잇는 다리 건설에 착수한다. 설계는 일제 때 진남포 제련소 굴뚝을 설계한 김명여(철원농업전문학교 교사)가 맡아 소련식 유럽공법으로 시공됐다. 당시 철원·김화지역 주민들이 ‘노력공작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됐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다리가 절반(2개의 교각 설치)쯤 완성될 즈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공사가 중단됐고, 남쪽 부분은 교각도 없이 덩그러니 남게 됐다. 이후 국군이 임시 목조 가교를 설치했다가 1958년 정부에서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마무리했다. 이로 인해 다리 하나에 두 가지 공법이 혼합된 형태가 되었단다. 분단과 전쟁이 빚어낸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 승일교 서단의 북쪽 난간. ‘승일교’라는 다리 이름과 함께 준공일(단기 4291년 12월 3일)을 적어놓았다. 단기에서 2333년을 빼는 계산법을 적용하면 서기 1958년이 된다. 70년 전, 이 다리가 놓이기 전 주민들은 솔다리와 돌다리로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수위라도 높아질라치면 10여 일간이나 통행을 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어야만 했단다.

▼ 남쪽 난간에는 이 다리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26호)’으로 지정되어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 왼쪽은 천 길 낭떠러지다. 겨울철이면 저 벼랑은 바위에서 얼음으로 옷을 바꿔 입는다. 이 일대가 ‘한탄강 얼음 트레킹 축제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축제는 며칠 가지 않아 끝나지만 ‘한탄강 물윗길 트레킹’은 3월까지 즐길 수 있다. 한탄강 물윗길은 한탄강의 주상절리를 물 위에 설치된 부교를 걸으며 감상할 수 있는 길이 8.5km(부교 3.3km·강변길 5.2km)의 트레킹 코스로, 직탕폭포-송대소-은하수교-승일교-고석정-순담대교까지 이어진다.

▼ ‘한탄대교’는 승일교를 대체하기 위해 지어진 다리로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 내대리를 이어준다. 승일교의 차량 통행을 금지하면서 1999년 길이 166.8m에 폭 9.5m, 높이가 24m인 다리를 새로 놓았다.

▼ 승일교 동단에서 ‘한탄강 생태탐방 순환로’가 열리고 있었다. 안내판은 ‘순환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승일교에서 ‘태봉대교’까지 한탄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코스만 그려놓았다. 탐방로도 정비가 안 되어선지 초입을 꽁꽁 막아놓았다.

▼ 09 : 26. 이젠 ‘승일공원’을 둘러볼 차례이다. 잘 단장된 꽃길을 따라가면 된다.

▼ 09 :28 – 09. 38. ‘승일공원(承日公園)’은 승일교와 태봉대교 옆에 위치한 근린공원이다. 2,700평의 공간에 태봉국의 기상을 나타내는 ‘태봉구문’과 승일펜션, 4개의 참전·전적비, 정자(승일정) 그리고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태봉구문(泰封九門)이라는 조형물이다. 천년의 꿈 태봉국에서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로 가는 9개의 문이라는 뜻이다. 하나의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단단한 바위를 뚫듯이 방문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이 모여 9개의 문을 통과하면 머지않아 통일 한국의 문도 열릴 것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 ‘승일펜션’이란다. 공원이나 펜션은 이웃에 있는 ‘승일교’에서 이름을 따왔다. ‘승일교’라는 이름은 김일성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 이승만 대통령 때 완공했다고 해서 이 대통령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6·25 전쟁 중 큰 공을 세우고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간 국군 연대장 박승일(朴昇日) 대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도 꽤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김일성을 이기자’는 뜻에서 ‘勝日橋’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 동쪽 끝은 네 개의 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6·25 참전기념비와 베트남 참전기념비, 마구르드장군 송덕탑, 맹호부대장 송덕비 등이다.

▼ 6·25 참전기념비. 1950년 6월의 그날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다. 공산이념으로 중무장한 붉은 세력의 기습침략으로 조국강산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파죽지세로 쳐들어오는 적도 앞에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요. 겨레의 신세는 백척간두이었다. 피 끓는 대한의 청년들이 어찌 초연할 수 있으랴! 조국의 부름은 추상이었고 우리의 기백과 의지는 지축을 울렸다. 시대는 변하고 역사는 돌아간다. 하지만 오늘의 번영이 어제의 헌신에 기인하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마구르드장군 송덕탑. 마그루드 장군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철원군과 실의와 절망에 빠진 철원군민들에게 정착지를 마련해 주고 식량과 생활필수품 등을 공급하여 생활 안정을 꾀하여준 미 9군단장이다. 특히 후진 양성과 교육을 위해 신철원초등학교와 신철원농업고등학교 가교사를 신축하고 군농협창고, 교회, 재판소 등을 건립하여 철원 주민들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 맹호부대장 송덕비. 주인공은 한신(韓信) 장군이다. 후면에는 ‘맹호부대장 한신 장군은 당 지구 주둔 당시 다방면으로 물심양면에 선(宣)하야 공헌하신 바 업적이 지대함인져! 그(其) 공적을 영겁히 찬양할지어다’라는 인근 문혜리·내대리 주민들의 건립 취지문이 적혀있다. 함남 영흥군에서 태어난 장군은 공산 치하를 벗어나 월남, 법학도의 꿈을 접고 이등병사(이등병)로 입대한 애국청년이었다. 또 육사 2기생으로 임관, 6·25전쟁 중에는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태극무공훈장을 받는 등 승전의 전투지휘관이었으며 휴전 후에는 사단장, 군단장, 합참의장을 역임하면서 강군 육성에 이바지했다.

▼ 09 : 48. 승일공원에서 ‘갈현육교’까지 5km쯤 되는 구간은 산악회 버스로 이동했다. ‘문혜2리 버스정류장에서 불당천까지는 버스를 이용해 달라’는 ‘한국관광공사’의 안내를 따랐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석암 작가님의 강력한 appeal이 있어 불당천까지 가지를 않고 갈현육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볼거리도 없는데 ‘백골부대 조형물’까지 놓칠 수야 없지 않겠느냐하시는데 어쩌겠는가.

▼ 09 :50. 몇 걸음 걷지 않아 ‘갈현고개 버스정류장’에 이른다.

▼ ‘백골부대’ 조형물은 버스정류장 근처에 세워져 있었다. 철의 삼각지 ‘김화축선’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배 전우들의 백골혼을 되새겨 조국통일의 염원을 기리고저 세웠단다. 참고로 백골부대는 6·25전쟁 당시 죽음을 불사하는 조국수호의 정신으로 전공을 세운 부대로 명성이 높다. 백골상은 현재 철원군의 랜드마크로 인식되고 있단다.

▼ 백골상(白骨像)은 이 지역에 주둔하는 백골부대를 상징한다. 부대원들에게 ‘필사즉생(必死卽生), 골육지정(骨肉之情)’의 부대혼을 계승하고자 부대 창설 50주년(1999년)을 맞아 세웠다고 한다. ‘백골부대’란 명칭은 1948년 북한에서 월남 반공단체를 결성한 서북청년단원들이 부대에 자진 입대하여 죽어 백골이 되더라도 공산당과 싸워 조국을 수호하는 한편, 두고 온 북녘 고향땅을 되찾겠다는 백전불굴의 투철한 반공정신과 애국심, 멸사보국의 징표로 철모에 백골을 그려 놓고 전투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이후부터는 4차선인 ‘호국로(국도 43호선)’를 따라간다. 길이 널찍해서인지 오가는 차량들이 하나같이 씽씽 달려댄다. 그런데도 흰색 페인트선 하나로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을 따름이다. 목숨을 담보로 걸을 수도 있겠다는 얘기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버스로 이동하라고 권했던 이유이지 싶다.

▼ 그러다보니 가끔가다 만나는 교차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굴다리가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잠깐이나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국도 43호선은 ‘일반국도’이다. 하지만 오가는 차량들의 속도는 ‘자동차 전용도로’는 저리가라였다. 참고로 일반국도의 제한속도는 시속 70km 또는 80km이다. 반면에 자동차 전용도로는 시속 80km 또는 90km가 적용된다.

▼ 일반국도라서인지 횡단보도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참고로 자동차전용도로에서는 차량만을 사용해서 통행하거나 출입하여야 한다(도로법 제49조 제1항).

▼ 한탄강은 철원의 얼굴이 분명하다. 여름이면 ‘래프팅’, 겨울에는 얼음 트레킹이 가능하다며 한탄강으로 오란다. ‘사시사철 철원 한탄강길’이란 브랜드로 포장했다.

▼ 잔뜩 움츠러들어 걷다보니 문득 앞으로는 나 자신부터 교통법규를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가 교통법규만 잘 지킨다면야 이런 구간도 문제 될게 하나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감시용 카메라가 없다고 속도나 신호를 위반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여럿 보였다. 술을 마신 채로 차를 모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 없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백골부대’에 소속된 포병대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창설되었던 모양이다. 하단에 ‘1948’이 적혀있는 걸로 보아 한국전쟁 이전부터 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보다도 5살이나 더 먹은 셈이다.

▼ 10 : 04. 선돌버스정류장. ‘선돌마을’은 ‘지경리(地境里)’에 속한 자연부락이다. 이는 문혜리를 달려온 평화의길이 이곳에서 지경리에 바톤을 넘겨주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마을 이름이 된 ‘선돌’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마을 이름이 될 정도라면 입소문을 탈만도 하건만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 앞서가는 부녀의 발걸음이 부쩍 빨라진다. 차량 통행이 뜸할 때 조금이라도 더 진행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4차선의 길은 무척 널찍했다. 그런데 지나다니는 차들이 드문 탓인지 필요 없이 넓어 보인다. 하지만 이 길은 언젠가는 뚫려야 할 길이고, 통일이 되면 사람들이 부지런히 남북을 왕래해야 하는 길이다.

▼ 이 일대는 농장이 밀집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저런 폐농장이 눈에 띄는 걸 보면.

▼ 10 : 12. 서해랑길은 ‘7301부대(1대대)’ 진입로 앞에서 도로변을 벗어나고 있었다. 도로 오른쪽 아래로 자동차의 통행이 가능한 평화누리 자전거길(평화의길도 함께 쓴다)이 따로 나있다.

▼ 진입로 근처에 ‘불당천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요 어디쯤에 지경리를 구성하는 자연부락 중 하나인 ‘불당골’이 있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 그나저나 들녘이 온통 진록으로 물들어 있다. 모내기를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도 모들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오늘이 하지(夏至)가 아니겠는가. 일부 농작물의 수확이 시작된다는 절기 말이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하지에 파삭한 햇감자를 캐서 쪄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 먹는다고 한다.

▼ 도로 표지판이 300m 전방에 ‘지경교차로’가 있음을 알려준다. ‘지경리’로 들어가는 길(464번 지방도)이 나뉘는 곳이지만 ‘평화의길’은 굴다리까지 조금 더 가다가 ‘⊃’자 모양으로 되돌아와 464번 지방도로 오른다. 교차로에 횡단보도가 없기 때문이다.

▼ 오늘 새벽까지 내린 비 탓인지 가끔은 물웅덩이를 만나기도 했다.

▼ 10 : 20. 지경교차로에서 200m쯤 더 온 지점에서 굴다리를 통과한다.

▼ 굴다리를 통과하자 ‘지경리(地境里)’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철원군 갈말읍에 속한 법정 동리로, 갈말읍과 김화읍의 경계에 있다고 해서 ‘지경대(地境垈)’로 부른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1956년 갈곡, 불당곡, 신촌을 통합하여 ‘지경리’를 만들고 토성리에서 분리시켰다고 한다.

▼ 10 : 23. 잠시지만 ‘청양로(464번 지방도)’를 따라간다. 지경리 시가지(마을이 제법 크다)로 들어가는 길이다.

▼ 마을이 크다보니 방음벽까지 만들어 놓았다. 제 고향으로 돌아갔어야 할 기러기 무리가 헤어짐이 아쉽다는 듯 그 벽에서 날고 있었다.

▼ 10 : 27. 지경리 시가지에 들어섰다. 마을은 생김새부터가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느낌이 든다. 시외버스정류장(동서울↔와수리)이 있을 정도로 나름 규모를 갖추고 있다. 모텔에 카페, 당구장 심지어는 아파트까지 들어서 있다. 웬만한 면소재지가 부럽지 않은 규모라 하겠다. 하지만 군부대 이전과 위수지역 기준변경, 인구공동화 등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쇠락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오른쪽으로 가면 ‘두루웰 숲속문화촌’이 나온단다. ‘두루웰’은 철원군의 군조인 ‘두루미’에 ‘웰빙’을 합친 것 같고, 숲속문화촌은 자연휴양림의 진화된 표현이지 싶다. 숲속의 집, 산림욕, 산책, 등산이 주를 이루던 기존의 ‘자연휴양림’에 치유, 문화, 어드벤처, 캠핑 등이 추가되면서 요즘은 숲속문화시설로 이름부터 바꾸는 추세라고 한다.

▼ 평화의길은 ‘털보카센터’ 앞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간다.

▼ 마을안길(지경길)을 따라 ‘불당천’으로 간다. 지경리의 속살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는 구간이다. 이곳은 원래 토성리에 속한 조그마한 자연부락이었다. 그러다 1953년 휴전이 되면서 많은 실향민들이 모여 들었고, 등치가 커진 마을은 인근 마을들을 합쳐 1956년에는 ‘지경리’로 독립된다. 그러니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마을이라고 보면 되겠다

▼ 길은 이제 ‘불당천’을 따라간다. 둑 위로 자동차가 다녀도 될 정도로 널찍하니 길이 나있다.

▼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 잠수교가 하도 예뻐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 둑길은 느티나무를 가로수 삼아 심어놓은 게 특이했다. 크기가 작은 지금은 특별한 경관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몸집을 불리다보면 어젠가는 철원에서도 으뜸가는 명소로 발돋움 할 수도 있겠다.

▼ 오른쪽에 지경리를 끼고 간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리(里)’ 단위의 마을치고는 무척 큰 규모다. 그 규모를 어림잡다 문득 허기가 느꼈다. 어느 지방지에 실렸던 ‘노포식당’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평강에서 피난 온 실향민이 운영한다는 ‘고향식당’. 1965년 문을 열었다니 실향민의 아픔이 깃들어 있는 접경지역 철원의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은 곳이라 하겠다. 그 집의 주 메뉴도 마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짬뽕이라니 어찌 군침이 돌지 않겠는가. 하지만 주어진 시간에 제약을 받는 처지라서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 오른쪽이 도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가지라면, 반대편에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뒤를 받혀주는 산은 ‘덕령산(588m)’이 아닐까 싶다.

▼ 10 : 41. ‘토성교’로 불당천을 건넌다.

▼ 다리 초입에 ‘토성리’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갈말읍의 북쪽에 위치한 ‘토성리(土城里)’는 농경지 한가운데에 있는 삼한 시대 축성된 ‘토성(土城)’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불당천과 화강을 따라 상류에서부터 상토동, 중토동, 하토동으로 나뉘는데 상토동 뒷산이 덕령산이다.

▼ 이즈음 논 가운데 있는 ‘철원토성(鐵原土城, 강원도기념물 제24호)’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갈말읍토성 또는 토성리토성으로도 불리는데,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나, 방형의 평지성이라는 점에서 원삼국시대 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토성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도 원삼국시대 타날문토기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 다리에서 내려다본 ‘불당천(佛堂川)’. 갈말읍 문혜리의 대득봉(628m)과 태봉(560m)에서 발원하여 문혜리·지경리·토성리를 거쳐 ‘화강’으로 유입되는 지방하천이다. 지경리에 있는 ‘불당곡(佛堂谷)’이 하천 이름이 되었는데, 불당곡(또는 불당골)은 불당(절)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지명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조선시대에 어느 불교신자가 이 산에 가옥과 작은 암자를 지어 석불을 봉안했었다고 전해진다.

▼ 10 : 44. ‘토성길’을 따라가다 ‘일출목장’의 끄트머리쯤(토성초등학교 조금 못미처)에서 맞은편으로 들어간다.

▼ 농로를 따라 북진한다. 불당천의 둑을 저만치에 놓아두고 왼쪽으로 에돌아가는 모양새이다. 둑 위로 길을 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 10 : 49. 농로를 빠져나와 불당천에 놓인 ‘성계교’를 건넌다. 철원토성과의 경계를 이루는 다리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동·남·북벽 등 성벽 대부분이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있던 성벽마저도 464번 지방도가 관통해버렸지만, 원래의 성벽이 이곳까지 연결되어 있었을 줄 누가 알겠는가.

▼ 다리를 건넌 다음, 이번에는 불당천을 왼쪽에 끼고 간다. 느티나무 가로수가 아까보다 많이 굵어졌다. 그래선지 보여주는 풍광도 아까보다 한결 낫다.

▼ 불당천이 화강으로 합류되는 ‘두물머리’. 장마가 시작된 탓인지 커다란 몸집을 자랑한다.

▼ 10 : 54. 이번에는 ‘화강(花江)’의 강둑을 따라간다. 화강은 북한의 김화군 금성면 수리봉에서 발원하여 철원군 근동면·김화읍을 거쳐 한탄강으로 유입되는 한탄강의 지류이다.

▼ 가로수에 묶여있는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백골하사관대학’ 생도들의 훈련을 위해 설치한 표적이란다. ‘독도법’ 훈련이라는데 카투사 출신이 나에게는 모든 게 생소한 표현들이다. 3년을 책상에만 앉아 근무했으니 군사훈련에 대한 용어들은 생소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제대 후 동원예비군 훈련 때는 고문관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 오른쪽으로는 토성리와 청양리의 들녘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 ‘남대천교’가 눈에 들어온 걸 보면 ‘16-2코스’도 막바지에 이르렀나 보다. ‘남대천(南大川)’으로 불리던 ‘화강’은 주민들의 노력으로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그런데도 다리는 고집스레 옛 이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 11 : 00. 남대천교의 남단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16-2코스는 7.83km를 1시간 40분에 걸었다. 원래 길이는 12.8km이나 위험구간을 생략하라는 한국관광공사의 조언에 따라 5km를 단축했다.

▼ 평화의길 인증 QR코드는 다리 초입의 이정표에 붙어있다. 이정표는 3개 방향을 가리킨다. 이곳이 3개 코스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화강의 둑길을 따라 16-2코스를 걸어왔고, 다음 구간인 17코스는 반대편 둑길을 따라간다. 반면에 두루미평화타운에서 시작되는 16코스는 남대천교를 건너 이곳으로 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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