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홍콩  마카오

 

여행일 : ‘24. 2. 24() - 2. 27()

 

세부 일정 : 홍콩(1881헤리티지·소호거리·빅토리아산정·스탠리베이·웡타이신사원)마카오(성바울성당·세나도광장·원팰리스분수쇼·마카오타워)

 

특징 : 중국의 특별행정구. 조차기간 만료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넘겨받았으나 일국양제에 의거 중국과 다르게 독립적으로 굴러가는 도시국가 형태를 띤다. 면적은 서울의 1.82, 하지만 개발이 어려운 산지가 대부분이라서 750만 명의 주민이 구도심인 침사추이(尖沙咀)와 홍콩섬(香港島), 신계(新界) 등에서 옹기종기 모여 산다. 실제로 이 지역은 서울보다 훨씬 더 조밀하며 아파트의 가격도 상상을 초월한다.

 

 오후 늦게 찾은 스탠리 베이(Stanley Bay, 赤柱灣)’. ‘홍콩섬의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해변으로 최근 가장 핫한 핫 플레이스이자 홍콩을 대표하는 휴양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림과 수공예품·실크제품·골동품·의류 등 다양한 기념품을 파는 재래시장을 만날 수 있으며, 식민지시대의 건물인 머레이 하우스도 이곳에 있다. 바닷가를 따라 들어선 서구적 상점 및 카페, 레스토랑들이 젊은이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홍콩은 구룡반도와 홍콩섬, 그리고 홍콩 국제공항이 있는 란타우섬을 비롯한 라마섬, 청차우섬 등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에 점령 및 조차된 기간 차이로 홍콩섬, 구룡반도, 신계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 셋은 엄연히 행정단위가 다르며 특히 신계는 초록색 택시, 란타우 섬은 파란색 택시로 택시 색깔도 타지와 달라 사실상 도시 내 도시로 별개 행정구역 취급한다. 홍콩인들도 신계를 갈 때나 란타우 섬을 갈 때 시외로 간다고 표현할 정도로 꽤 다르다.

 스탠리 빌리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스탠리 마켓(Stanley Market, 赤柱市集)’을 통해 해안으로 간다. 중국 전통의 치파오, 수영복, 장난감, 도장, 가방 등 여행 기념이 될 만한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재래시장이다.

 스탠리 베이는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들로 유명하다. 하지만 시장은 그런 바깥 풍경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적한 것이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선사한다고나 할까?

 시장을 빠져나오니 붉은색 암반으로 이루어진 해안이 나온다. ‘적주(赤柱)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근원일지도 모르겠다.

 스탠리 베이의 역사. 1841년 영국이 홍콩을 점령했을 당시 식민지 담당 영국 국무장관 스탠리경의 이름을 딴 곳으로, 홍콩섬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이다. 영국 수비대의 기지였고, 경찰서가 들어서기도 했으며, 해적들의 끊임없는 위협으로 1930년대 중반에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포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938년에는 홍콩에서 가장 큰 스탠리감옥이 지어졌다.

 왼쪽에는 작은 모래사장(Stanley Back Beach)이 형성되어 있었다.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시선을 조금 더 옮기면 해안과 맞닿은 곶()이 거대한 대양을 맞아들인다.

 반대편 풍경, 오른편은 스탠리 베이의 중심지다. 하지만 해안에는 모래사장이 없었다. 축대가 높아 바닷가로 내려가 볼 수도 없다.

 바닷가에는 작은 사원이 요새처럼 들어서 있었다. ‘수선고묘(水僊古廟)’라는데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을 모시는 곳이 아닐까 싶다.

 도교에는 이렇듯 수천수만의 신들이 있다. 부뚜막을 지키는 조상신에서부터, 최고의 신인 원시천존, 가장 인기 있는 옥황상제, 심지어는 삼국지의 관운장처럼 죽은 뒤에 신이 된 인물도 있다. 세상에 널린 게 신이라는 얘기다. 그래선지 도교의 신들은 신분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고 했다. 때로는 진급과 강등도 이루어진다나?

 바닷가에는 꽤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일몰의 명소라더니 해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머레이 하우스가 있는 반대편으로 간다. 바닷가를 따라 둑을 쌓고 그 안쪽에 워터프런트 산책로를 조성해놓았다.

 이왕에 왔으니 이곳에서도 한 컷.

 해안을 따라 다양한 음식점과 비지베이처럼 입소문을 탄 펍(pub)이 들어서 있었다. 호객행위를 하는 곳도 일부 눈에 띈다.

 해안에서 바라본 블레이크 선착장. 2007년 머레이하우스 외부 워터프런트에 지어놓은 부두이다.

 머레이 하우스(Murray House, 美利樓), 홍콩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식민지 시대 건물 중 하나로 총 40만 개의 벽돌로 구성된 3층 규모의 석조 건물이다. 1844년 센트럴에서 영국군 영지로 사용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군의 기지 및 고문실과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다. 1982년 센트럴 개방 정책으로 철거되었다가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금의 스탠리로 이전하여 1988년 재건축되었다. 해체된 벽돌 하나하나에 이름을 새겨 보관했다가 이리로 옮겨왔다나?

 1층에는 홍콩 해양박물관, 2~3층에는 와일드 화이어, 스페인 음식점 미하스 등 레스토랑이 입주해있다고 했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식사를 원할 때 딱 좋은 곳이라고 한다. 테라스석에 앉아 맛좋은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단다. 소시지 등 안줏거리를 겻들인 생맥주 바도 눈에 띄었으나 주어진 시간에 쫓겨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건물 앞에 도열해 있는 십여 개의 돌기둥은 야우마때(Yaumatei) 지역의 상하이거리(Shanghai Street)를 재개발하면서 철거한 기둥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한다.

 머레이 하우스 부근에 위치한 블레이크 선착장(Blake Pier at Stanley, 赤柱卜公碼頭)’. 어두운 나무를 쌓아 올린 높은 천장과 검은 철골 기둥이 돋보이는 곳이다. 1900년 홍콩의 12대 제독(1898-1903)이었던 헨리 블레이크경의 이름을 딴 지명으로 요트와 바지선 등의 접안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원래는 센트럴 구에 있었으나 1993년에 매립공사를 위해 철거되었고, 당시의 건물을 2007년 스탠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바다 한가운데에 지어진 덕분에 선착장에서의 조망은 일품이었다. ‘스탠리 베이의 전모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해변의 끝은 태평양과 맞닿지 않았을까? 하나 더. 해안 절벽에는 고급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먼 바다 풍경이 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모양이다.

 젊은 연인들의 밀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조금 더 가니 스탠리 마항 공원(Stanley Ma Hang Park, 赤柱馬坑公園)’이 나왔다.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면 북제고묘(Pak Tai Temple, 北帝古廟)’라는 작은 사원도 나온단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에 쫓겨 탐방까지는 사양하기로 했다.

 그 아쉬움은 안내판으로 대신해 본다.

 돌아오는 길. 쉼터를 겸한 작은 공원을 지난다. 주변에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모여 있다. 그곳에서 산 햄버거나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쉬어가기에 딱 좋은 곳이라 하겠다.

 대왕궁(大王宮)’이라는 작은 사원도 만날 수 있었다. 청나라 건륭 32(1767)에 세워진 곳으로 홍성대왕과 천후를 모신단다. 사당은 영남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진식, 삼진식 사당이 아닌 단칸 건물 3채를 이어 붙인 형태였는데, 사당의 배치나 규모가 인상 깊었다.

 나올 때는 메인스트리트를 통해 버스정류장으로 왔다. 작은 해안과 이국적인 건물들이 인상적인 곳이다. 그런 건물들뿐만 아니라 요렇게 오래된 나무 아래를 지나기도 한다. 홍콩과 마카오에는 이렇게 굉장히 오래된 나무들이 많았다.

 해거름 무렵, 침사추이로 돌아와 유람선을 탄다. 이어서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홍콩 항구를 한 바퀴 돌아온다. 하지만 갑판이 따로 없는 탓에 유리창 너머의 풍경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흠이라 하겠다.

 홍콩의 물줄기들을 누비며 홍콩섬과 구룡반도의 마천루 및 야경을 실컷 구경하게 된다.

 대형 크루즈도 눈에 띈다. 홍콩을 찾는 관광객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배에서 내려 근처에 위치한 침사추이의 카오룽 공공부두’ 2층 전망대로 간다. 이때 눈에 익은 풍경을 만났다. ‘치맥을 파는 것으로도 모자라 안내문까지 한글로 적어놓은 것이다. 양식, 일식, 중식으로만 분류되던 글로벌 음식 시장에 이젠 ‘K-푸드가 당당하게 한자리를 꿰찬다던 언론보도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자연친화적인 벽화가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침사추이의 랜드 마크인 시계탑도 저녁을 맞아 빛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주변 분수대도 조명 탓인지 낯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2층 전망대는 공간이 넓은 편이다. 어느 곳에 자리 잡아도 멋진 공연을 다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명당자리인 앞쪽 난간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때문에 조금 덜 붐비는 곳을 찾아 빛의 축제를 즐겼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 幻彩詠香江)’는 매일 밤 8시부터 13분 동안 펼쳐지는 빛의 축제로, 화려한 레이저 광선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그것도 음악과 함께...

 카우룽 반도의 빅토리아 하버 일대와 홍콩섬의 센트럴, 완차이에 늘어선 빌딩 45채가 18분간 화려한 조명 쇼를 펼친다. 홍콩의 백만 불짜리 야경이다.

 주변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홍콩섬에 자리 잡은 건물들의 조명 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홍콩섬의 빌딩에서 조명과 레이저를 쏘는 만큼 침사추이 쪽에서 보면 전반적인 빅뷰를 느낄 수 있다. 아무튼 시동을 거는 듯한 일렉트릭 비트 음악과 함께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시작되고 홍콩섬의 조명들도 하나둘 음악소리에 맞춰 각자의 색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음악의 템포가 점점 고조되고,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에 보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깻짓으로 흥을 맞춘다. 그리고 최종적인 환희의 종점을 알려주는 음악과 함께 멋진 공연도 마무리된다.

 빛의 축제가 끝나고 1881헤리티지로 이동했다. 빛의 옷으로 갈아입은 옛 건물을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조금 전에 본 심포니 오브 라이트에서 받은 감명이 진했던지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은 없었다.

 이곳도 야경의 명소인 듯 광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다음에는 이층버스를 타고 홍콩 야시장으로 이동했다. 지극히 편한 자세로 홍콩의 야경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는데, 휘황찬란한 고층빌딩들을 멀리서보다 아래서 올려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형의 이동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몽콕(Mong Kok)은 활기와 열정이 가득한 곳이다. 특히 야시장은 이곳을 홍콩에서도 손꼽히는 명소로 만들었다. 홍콩의 밤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먹거리와 쇼핑 아이템, 독특한 거리 분위기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가장 큰 매력은 풍성한 먹거리(식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맛을 보지는 못했다)가 꼽힌다. 홍콩의 전통 음식에서부터 현대적인 퓨전요리까지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전통시장이라서 옷이나 가방, 액세서리, 기념품 등도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특히 최신 패션 아이템과 스타일리시 한 액세서리들이 많아 쇼핑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밖에도 다양한 기념품과 특산품이 판매된다. 전통적인 중국 공예품, 홍콩 특산품, 각양각색의 기념품 등을 구입하여 여행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에서 홍콩의 에너지를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렇듯 홍콩의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홍콩인의 일상과 속살, 그리고 홍콩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게 어디 그리 흔한 일이겠는가.

 다음 날 아침, 구룡반도의 산기슭에 있는 웡타이신 사원(黃大仙祠)’을 방문했다. 주거지역이나 번잡스러운 거리에서 살짝 비켜 있어 여유가 느껴진다. 참고로 홍콩 최대의 도교사원인 윙타이신은 중국인들의 도교적인 전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홍콩 시민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에게도 자신의 운명을 예언하며 기도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원으로 가는 길에 알록달록 치장된 예쁜 건물이 눈에 띈다. 사원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무료 양로원이라고 한다. 건강을 상징하는 웡타이신이 노약자들을 돌보는 시스템이라고나 할까?

 웡타이신 사원(黃大仙祠)의 이름이 된 웡타이신은 건강을 상징하는 인물로 원래는 절강성의 한 지방에서 살던 양치기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는 15살 때 황화제수은으로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법을 익혔고, 이를 이용해 많은 공덕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1915년 도교 승려 리앙 런안이 웡타이신의 초상화를 광둥에서 홍콩으로 가지고 오면서 사원이 시작되었다. 종교적인 관광지지만 아름답게 치장한 전통 건축물들을 볼 수 있어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고 했다. 특히 새해 첫날은 자신과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향을 피우려 찾아오는 사람들과 겹쳐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빈단다.

 입구는 용() 두 마리가 지키고 있었다. 복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까?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만졌는지 용의 코와 발이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난다.

 십이지신상은 의인화했다.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곳이다. 자신의 띠를 찾아 발복(發福)을 빈다나?

 본전(本殿)으로 올라간다.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본 다음 다른 길로 사원을 빠져나오게 된다. 하나 더. 사원은 온통 붉은 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붉은 색을 행운과 성공의 상징으로 여기는 중화권의 전통 때문일 것이다. 또한 붉은 색은 신화 속, ‘니안 같은 불운의 영혼을 쫓아버릴 수 있다고 믿어지는 색이기도 하다.

 본전, 아니 사원 전체가 향냄새로 진동하고 있었다. 태우는 향의 숫자만큼 복이 이루어지는지는 몰라도 기도를 드리는 사람마다 서너 개씩, 심지어는 열 개도 넘는 향을 태우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본전 마당에서 뭔가를 빌고 있었다. 쿠션이 있는 방석을 놓아 맨땅에서도 절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통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미래를 점쳐보고 있는 중이란다. 그들은 먼저 점괘가 든 대나무 통을 흔들어 한 개만 튀어나오도록 한다. 다음에는 그 막대(번호가 적혀있다)를 점술가에게 보여주고 풀이를 듣는다. 이때 소정의 대가를 지불해야함은 물론이다. 시도는 해보지 않았지만 영어로도 점괘를 알려준다니 궁금하다면 직접 경험해 보자.

 우리나라에 삼신 할매가 있다면 중화권에는 월로 할아버지가 있다. 빨강색 실로 연을 맺어준다는 월로(月老)이니 짝 없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꼭 빌어보시길...

 경내는 각양각색의 꽃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맞다. 홍콩 사람에게 꽃은 복()을 상징한다고 했다. 잎이 달린 오렌지색 금귤나무는 재물과 풍요, 부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나타내고, 분홍색 복숭아꽃은 불타는 로맨스, 수선화는 성공, 모란은 풍요를 상징한단다.

 본전 말고도 꽤 많은 전각이 들어서 있었다. 그만큼 모시는 신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신선들이 산다는 세외선경(世外仙境)은 금박을 입힌 벽화로 그려놓았다.

 사원 창립 백주년 기념탑쯤 되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사원은 시장바닥을 연상시킬 만큼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맞다. 홍콩에는 유구필응황대선(有求必應黃大仙)’이라는 말이 전해온다고 했다. 황대선에게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준다는 뜻이란다. 황대선은 의술이 뛰어났었기 때문에 이곳을 참배하면 질병이 치료된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러니 어찌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고 배기겠는가.

 뒤란에는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정원이 중국풍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는 ‘Good Wish Garden’인지도 모르겠다.

 경내에서 만난 또 다른 전각들. 영관정, 삼신각, 유교전 등 손가락으로는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전각을 거느리고 있었다.

 누구를 모시는지는 몰라도 그 신을 통해 복 받기를 원하는 곳일 것이다. 이렇듯 중화권에서는 사원에 들러 길흉화복을 점치고 향을 올리며 복을 기원하는 게 하나의 일상이다. 이 사원들은 도교, 불교, 유교의 다양한 신과 신격화된 인물들을 모시고 있다.

 사원을 빠져나오는데 낙서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는 문구가 자신의 소원을 적는 곳이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하긴 홍콩에서는 아직도 일력(日曆, 매일 매일 한 장씩 뜯어내는)을 쓰고 있을 정도라니 어련하겠는가. 홍콩의 일력에는 단순히 날짜를 넘어서 띠별 운세,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방위나 시간대에 따른 길흉화복까지 주역에 나올 것 같은 모든 점괘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홍콩 사람들은 중요한 이벤트는 이 일력을 참고해 가장 좋은 날을 고르는 경우가 많단다.

 한글로 적힌 소원도 여럿 보였다. 함께 온 연인과의 행복한 미래를 바라는 문구가 대부분이다.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준다는 이국의 신. 그에게까지 빌어보고 싶을 정도로 영원한 사랑이 간절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