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55코스(진포 해양테마공원-장항도선장 입구)
여 행 일 : ‘24. 6. 29(토)
소 재 지 : 전북 군산시 장미동·경암동·내흥동 및 충남 서천군 마서면·장항읍 일원
여행코스 : 진포해양공원→서래포구→경암동 철길마을→진포 시비공원→금강하구언→김인전공원→평화공원→장항도선장(거리/시간 : 14.9km, 실제는 15.8km를 3시간 5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55코스를 걷는다. 5개로 이루어진 김제·군산 구간(51-55코스)의 마지막 코스이기도 한데, 금강 하구역의 남·북쪽 연안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전북특별자치도(군산시)에서 충청남도(서천군)로 넘어가면서 진포해양태마공원과 서래포구, 경암동 철길마을, 진포시비공원, 김인전공원 등 주요 볼거리들을 차례로 만난다. 난이도는 별이 하나(전체 5개)로 분류된다.
▼ 들머리는 진포 해양테마공원(전북 군산시 장미동)
서천-공주고속도로 동서천 IC에서 내려와 29번 국도를 타고 장항방면으로 달리다가 ‘원수교차로’에서 4번 국도(군산방면), 동백대교를 건너자마자 21번 국도(시청방면)로 옮긴 다음 내항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곧이어 ‘해양테마공원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서해랑길(군산 55코스) 안내도는 2번 ‘부잔교’ 앞에 설치되어 있다.
▼ ‘진포 해양테마공원’을 출발, 금강 하구역의 남·북쪽 연안을 걸어 ‘장항 도선장’에 이르는 14.9km짜리 여정이다. 오르내림이 일절 없는데다, 산들바람까지 맞아가며 걸을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강 건너로 펼쳐지는 예쁜 풍경화는 덤이라 할 수 있다.
▼ 10 : 10. 내항 쪽으로 걸어가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이곳은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인 진포대첩의 역사적 현장이다.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50척의 배로 왜선 500척을 이곳에서 물리쳤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선지 ‘해양테마공원’을 조성하고 육·해·공군의 퇴역 군장비 13종 16대를 전시하고 있었다.
▼ 1번 부잔교(浮棧橋, 뜬다리부두). 부잔교는 밀물 때 다리가 수면에 떠오르고 썰물 때는 수면만큼 내려가는 수위에 따라 다리의 높이가 자동 조절되는 선박 접안시설물이다. 3천t급 배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었고 이 다리를 통해 쌀 등이 일본으로 반출됐었다. 일제강점기 4기였으나 지금은 3기만 남아 있다.
▼ 4200 t급 위봉함(676함)은 아예 관람시설로 꾸몄다. 지하 2층, 지상 4층의 거대한 선체 안에 병사들의 생활상을 그려 볼 수 있는 각종 용품들을 전시 재현하는 등 체험 위주의 전시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창고도 헐지 않은 채로 그냥 놓아두었다. 아니 안내판과 함께 안중근 의사가 쓴 ‘大韓國人’이라는 글씨를 적어 넣어 일제 침탈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게 해준다.
▼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WBA 밴텀급타이틀전에서 챔피언에 오른 ‘홍수환’씨가 경기 직후 어머니와의 통화 때 외쳤던 일성이다. 하지만 군산시에서는 동향 출신의 복서 ‘김득구’가 하고 싶었던 말로 표현했다. 1982년 라스베이거스의 시저스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레이 맨시니’와의 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KO당하면서 숨을 거둔 비운의 복서이다.
▼ 10 : 21. ‘째보선창(군산 내항)’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래선지 그 어디서도 어항의 모양새가 그려지지 않는다. 참고로 째보선창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이 됐고,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서도 일제가 이곳을 통해 쌀을 수탈해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째보’는 언청이를 이르는 우리말이다. 와이(Y)자로 살짝 째진 강언덕에 석축을 쌓아 조성한 포구가 언청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이곳에 힘센 째보가 살았는데 부둣가에서 노점 등에게 자릿세를 받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째보 객주가 사는 선창이라는 것이다.
▼ 군산시가 운영하는 ‘군산 비어포트’는 맥주 마니아들 사이에는 핫 플레이스로 소문이 자자하다. 시는 ‘째보선창’에 있는 옛 수협어판장을 개조해 2021년 수제맥주 공동양조장 및 체험판매장으로 문을 열었다. 아울러 옥구 들녘에 맥주보리 전용 재배단지를 조성하고, 수제맥주에 최적화된 품종(광맥)을 재배했다. ‘보리 재배-맥아 가공-맥주 양조-판매’ 등 수제맥주 일괄 생산·판매체계를 갖춘 것이다. 지난 주말 54코스 때 만났던 ‘2024 군산 수제맥주&블루스 페스티벌’도 그런 일환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 어항으로 개발된 ‘째보선창’은 일제강점기 번영을 누렸고, 해방 이후에는 ‘동부어판장’이 그 명성을 이어왔다. 하지만 근해어업 환경이 바뀌면서 그동안 침체해왔다. 이를 고민하던 군산시가 2018년부터 이 일대에서 ‘째보스토리1899’라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단다. 군산항이 문을 연 1899년부터의 역사를 담자는 뜻이라고 한다.
▼ 10 : 26. ‘해망로(21번 국도)’로 빠져나와 왼쪽으로 간다.
▼ 이때 ‘몽깃돌 길’을 걸어보자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몽깃돌’이란 밀물과 썰물 때 배가 밀려나가지 않도록 배꼬리에 다는 돌을 말한다. 몽깃돌을 매단 배들로 넘쳐나던 째보선창이, 지금은 폐선이 나뒹구는 생기 잃은 공간으로 변해버렸단다. 그러면서 잠자던 어선이 몽깃돌을 걷어 올리고 다시 바다로 나가듯, 몽깃돌길을 걸어보자는 것이다. 그게 바닷길이 아닌 어촌의 골목길이긴 하지만...
▼ ‘군산 시간여행 마을’이란다. 옆에는 ‘군산시간여행 1930´s’란 문구도 보인다. 옛 도심의 활성화에 고심하던 군산시는 2018년부터 이 일대에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해왔다고 한다. 그 사업이 만들어놓은 ‘모던 타임즈 투어’를 해보라는 모양이다.
▼ 10 : 29. 경포천의 ‘서래교’ 입구 삼거리에서 서해랑길은 횡단보도를 건너 ‘해망로’를 따라간다.
▼ 10 : 31. 몇 걸음 더 걷다가 이번에는 왼쪽으로 난 골목(서래5길)으로 들어간다. 또 다른 근대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옛 풍물을 담은 저 벽화가 ‘군산 시간여행 마을’에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 ‘만신집’도 시간여행에서 만나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가 보다.
▼ 저 이발관은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을까? 간판에 전화번호까지 내걸었지만 내부는 불이 꺼져있었다.
▼ 도시재생사업이 만든 변신? 철판 울타리가 중동 지역을 소개하는 홍보의 장으로 바뀌었다. ‘중동(仲洞)’은 1980년대까지 동부어판장의 배후 지역이었다. 신영동에서 금암동 째보선창까지 이어지는 어업관련 및 상거래 지역의 한 축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내항의 기능약화로 어업관련시설은 사라지고 공설시장 배후지역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하고 있단다.
▼ 서래포구 마을도 중동의 행정구역 안에 들어있다는 얘기겠지? 맞다. 서래포구(경포)는 지금의 ‘중동로터리’ 부근이었다. ‘슬애포구’로도 불리는데 ‘슬애’란 서래의 군산식 발음으로 ‘서울로 가는 포구’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걸 한자화하면서 ‘경포(京浦)’가 되었다.
▼ 서래포구 상인 벽화. 조선 후기, 농업생산력이 높아지고 수공업 생산이 다양해지면서 상품 유통이 활성화되었고, 더불어 서래포구와 서래장터도 수공업자와 상인들의 무대가 되었을 것이다. 개화기의 집배원(당시는 ‘체전부’라고 불렀다)과 어머니(모성애를 물씬 풍기고 있는)의 벽화도 눈에 띈다.
▼ 10 : 34. 벽화와 사진 등의 게시가 끝나는 ‘서래5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서래안2길’로 들어간다.
▼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당산제당(堂山祭堂)’이 맞는다. 중동당제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군산 유일의 동제(洞祭)로, 주민의 안녕과 복을 축원하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해오고 있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농토는 대부분 주택단지가 되었으나, 어업은 지금도 주민들의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길가 조형물이 ‘서래포구’에 들어섰음을 알린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군산에는 경포(서래포구)와 죽성포(째보선창)가 있었다. 개항(1899) 전후만 해도 군산의 민간무역은 경포(서래장터)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국권피탈(1910) 이후 일제가 장재시장을 개장하고 죽성포(째보선창)를 근대식 어항으로 조성하면서 경포는 장시와 포구 기능을 죽성포로 넘겨주게 된다.
▼ 경포천과 서해안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서래포구는 오랫동안 뱃길의 요지로 존재해왔었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근해어업 환경의 변화를 피해가지는 못했나 보다. 노후화된 포구는 활력을 잃었고, 선착장에는 꼬맹이 어선 십여 척이 쉬고 있을 따름이다.
▼ 10 : 40. 카페와 식당들이 여럿 늘어선 포구길을 지나 ‘경포천’을 건넌다. 하나 더. 옛날 이 거리는 간판도 없는 오두막 분위기의 대폿집(선술집)이 즐비했단다. 허술한 목로주점으로 지게꾼과 구루마꾼들은 막걸리 한 사발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랬다나?
▼ 잠시 후 군산천연가스발전소 앞을 지나는데, 발전소(서부발전)에서 세워놓은 시설물 몇 개가 눈길을 끌게 만든다. 풍력발전시설과 태양광발전시설을 한 몸에 품었으니 소형이지만 복합발전소라고 불러야할지도 모르겠다.
▼ 10 : 46. ‘진포사거리’에 이르러 횡단보도를 연이어 건넌다. ‘구암3.1로’와 ‘진포로’를 ‘ㄱ’자 모양으로 가로지른다.
▼ ‘경암동 철길마을’로 진입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철길을 따라 걸으며 옛 풍경을 감상한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군산 원도심은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어 ‘군산 시간여행 마을’이라 부른다. 이곳 경암동 철길마을도 그중 하나다.
▼ 나로서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가깝게는 2년 전 이맘때쯤 찾아왔었다. 대형마트 건너편,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그 뒷골목은 지금도 현란한 간판과 호객행위를 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가게의 모양새도 예전과 똑 같았다.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상품은 거의 없고, 그저 기억의 저편에서나 나올 법한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 골목은 옛날 군산역과 ‘북선제지’ 공장만 오가는 화물기차를 위한 철도였다. 그 당시 철길 주변은 논밭이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철길 바로 옆에 오두막집을 지었고, 선로에서 겨우 1미터도 안 되는 거리만큼 떨어져 지은 무허가 집들이 늘어나 동네가 되었다. 2008년 기차는 운행을 중단했다. 하지만 철길마을 사람들은 기차가 사라진 철길 옆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 옛날 교복으로 갈아입고 철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골목은 가득 찼다. 그런데 너나없이 불량스러운 폼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학창시절에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불량학생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르겠다.
▼ 골목은 옛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가게들도 옛날 모습 그대로이다. 특히 열차와 당시 사람들의 풍경을 묘사한 모형들이 더욱 더 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 복원된 군산역. 기존의 철길에 옛것을 보존하려는 저런 노력들이 더해지면서, 철길마을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원하는 이들의 성지가 된다. 그리고 드라마 ‘고맙습니다’와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의 주인공들이 철길마을의 선로 위를 걸었고, 시청률이 올라갈수록 철길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 10 : 57. 연안사거리로 빠져나와 이번에는 ‘조촌로’를 따라 금강으로 간다. 6분 후쯤 만나게 되는 ‘강변삼거리’에서는 ‘강변로’로 옮겨 동진한다. 6차선 도로에 통행량까지 많으나 도로 가장자리에 보도가 따로 나있어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 11 : 04. 하지만 ‘강변삼거리’에서 서해랑길을 벗어나 샛길(외산4길)로 들어갔다. ‘구암역사공원’을 들러보기 위해서이다. 역사공원이 들어선 ‘구암산(龜岩山, 34m)’은 한강이남 최초로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특히 구한말 선교사들이 정착하면서 세워진 ‘구암교회’는 군산 3.5만세운동의 발화지점이다.
▼ 아쉽게도 그런 내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역사공원이 위치한 ‘구암산’까지의 거리가 만만찮은데다, 공원을 둘러본 다음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결국 군산 3.5운동의 진원지라는 ‘구암교회’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2018년에 건축된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에 볼거리가 제법 많다고 했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11 : 13. 다시 강변로로 빠져나와 이번에는 강변로를 따라간다. 금강 물길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가는 멋진 구간이다.
▼ 11 : 16. ‘구암천(주민들의 귀띔이었으나 맞는지는 모르겠다)’을 건너자마자 ‘강변로’와 헤어진다. 그리고는 강변에 잇대어 내놓은 산책로를 따라 ‘금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 이즈음 금강의 하구역이 함께한다. 발아래로 천리길을 내달려온 금강이 거센 기세로 서해와 몸을 섞고, 강 건너 충남 서천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 산책로와 ‘강변로’ 사이의 공간은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구불길 안내석’도 눈에 띈다. 금강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쳐가는 ‘비단강길(공주산↔군산역)’이 이곳을 지나간다면서, 강물이 흐른 세월만큼이나 전설과 역사, 자연과 생태를 두둑이 품은 구간의 특징을 알려준다.
▼ 11 : 41. 그 공간에는 ‘진포 시비공원(鎭浦詩碑公園)’도 들어서 있었다. 국내외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비석에 새겨 전시해놓은 공원으로, 서해랑길이나 ‘구불길’을 여행하는 도보 여행자들의 휴식의 공간이자 군산 시민의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시비는 공원 곳곳에 들어서있었다. 1.5-2.5m 크기의 자연석에 신석정(부안), 이병훈(군산), 고은(군산) 등 전북 출신을 포함한 국내 시인 14명과 외국 시인 6명의 작품을 새겨 넣었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시들이라서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가다 그만두기로 했다. 42점이나 되는 시를 일일이 음미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했기 때문이다.
▼ 사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序詩’를 올려본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 말인가. 30년 가까운 공직생활, 아니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늘 되새기던 금과옥조(金科玉條)다.
▼ 워즈워드는 저 시보다도 그의 생가가 더 생각난다. 몇 번의 영국출장. 한번은 워드워즈의 생가를 둘러보고파 글라스미어지방의 원더미어 호수를 찾았었다. 그리고 내셔널 트러스트라는 단체에서 18세기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던 워즈워드 생가를 만났다. 하지만 내 가슴에는 하룻밤을 묵으며 거닐었던 원더미어 호숫가가 더 많이 저장되어 있다. 호젓함에 가슴을 떨며 울먹이던...
▼ 시비공원을 지나자 등치를 한껏 키운 ‘금강 하굿둑’이 성큼 다가온다. 전북을 떠날 때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 11 : 46. ‘금강체육공원’을 지난다. 축구장은 하나인데 야구장은 정규 규격 말도도 자그맣지만 두어 개나 더 갖고 있다. 군산 시민들이 바라보는 야구의 위상을 실감케 해주는 풍경이라 하겠다.
▼ 11 : 52. 야구장 끄트머리에서 습지에 발이 묶인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러자 ‘군산 장애인체육관’이 커다란 몸집을 드러낸다. 장애인체육관과 발달장애인 평생학습관으로 꾸며졌는데, 장애인들의 신체 기능회복이나 재활뿐 만아니라 체계적 평생교육을 통한 통합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단다.
▼ 산책로 좌우로는 거대한 습지가 펼쳐진다. 연안(沿岸)의 습지는 생태계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습지 안에 탐방로를 만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11 : 57. 잠시 후 도착한 ‘금강 시민공원’에는 ‘진포대첩기념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을 이용한 함포로 왜구 500여척을 무찌른 최무선(崔茂宣, 1330-1395)의 진포대첩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1999년 개항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것인데 돛을 상징하는 큰 화강암 날개 모양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두 조형물이 만나는 가장 높은 곳에 진포대첩에서 왜구를 쳐부순 화포가 하늘을 향해 화구를 겨누고 있다.
▼ ‘진포대첩사적비’도 눈에 띈다. 진포대첩이란 고려말 군산에서 있었던 전투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화포를 사용하여 적을 물리친 전투를 말한다. 우왕 6년 8월 왜선 500여척이 진포에 침입하였다. 이때 침입한 왜구는 최소 25,000여 명의 대병력이었다. 이때 나세, 심덕부, 최무선 등이 최무선이 설계한 80여척의 병선과 역시 최무선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화약병기인 화통, 화포를 갖추고 적을 소탕했다.
▼ 12 : 06. ‘강변로’로 빠져나와 금강시민공원을 왼쪽에 끼고 돈다. 그러자 ‘금강 하굿둑’이 길손을 맞는다. 길이 401km의 금강 하구를 막아 건설한 둑으로, 담수된 물은 전북 및 충남 일원에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한다. 금강 주변지역의 홍수 조절도 주요 기능 중 하나다.
▼ 도크(dock)로 여겨지는 시설이 있는 걸 보면 작은 선박의 출입도 가능한 모양이다. 밀물 때 하부갑문을 열어 배를 도크 안으로 들이고, 하부갑문을 닫은 다음 상부갑문을 서서히 개방해서 수위를 맞추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 1,841m의 제방은 충남과 전북을 잇는 교량역할을 한다. 배수갑문만도 20개(714m)에 이른다.
▼ 둑에는 도로 말고도 철길이 지나가고 있었다. ‘장항선’을 연장시킨 이 철길은 군산을 지나 익산에서 전라선과 합쳐진다.
▼ 둑길은 가고 또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하긴 도에서 또 다른 도로 넘어가는 여정이 어디 그리 수월하겠는가.
▼ 12 : 29. 하굿둑 북단에는 ‘금강하구둑관광지’가 들어서 있었다. 사계절썰매장과 바이킹, 회전목마 등 놀이시설이 있는 드림랜드와 게임월드, 자동차극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식당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에게 안성맞춤형 관광지로 꼽힌다.
▼ 관광지 맞은편은 ‘김인전 공원’이다. 이 고장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인전(金仁全, 1876-1923)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으로, 선생의 흉상과 건립기비,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 서천(舒川)에서 태어난 김인전 선생은 1914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교육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영명학교에 재직 중이던 1919년에는 군산의 ‘3.1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다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1922년 임시의정원 의장에 올랐고, 독립운동의 활성에 온 힘을 쏟으며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와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조직하는 등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하다 1923년 5월 과로로 사망했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1993년에는 중국에서 선생의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 초입의 관광안내도. 서천군 관광은 ‘9경(景)·9미(味)·9품(品)’으로 집약된다. 서천을 대표하는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살거리를 각각 9개씩 선정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서천을 ‘구경’하고 ‘구미’당기는 ‘Good품’을 사가라는 것이다.
▼ 공원 안쪽에는 ‘국민여가캠핑장’이 들어서 있었다. 금강을 뜨락 삼았으니 입지조건은 좋은 편, 하지만 물가인데도 물을 접할 수 없다는 점은 흠으로 작용한다. 그래선지 잔디밭에 이동식 물놀이장을 만들어놓았다.
▼ 탐방로는 강변을 따라 간다. 이때 만나게 되는 캠핑사이트는 쉼터 겸 전망대로 안성맞춤이었다. 강둑에 테라스처럼 걸쳐놓은 덕분에 시야가 툭 트이기 때문이다.
▼ 발아래서 금강이 거센 기세로 서해와 몸을 섞는다. 그 너머로는 고층빌딩이 숲을 이루는 군산시가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 12 : 38. 잠시 후 ‘장산로’로 올라서서 55코스의 종점인 ‘장항도선장’을 향해 간다. 이때 ‘고려 해도원수 나세 진포대첩비’ 안내판이 눈에 띈다. 나세(羅世, 1320~1397)는 원나라에서 온 귀화인으로, 1380년 해도원수(海道元帥)가 되어 ‘진포해전’에 참여했고, 심덕부·최무선 등과 함께 왜구를 쳐부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같은 해전이지만 최무선의 공적을 기리는 군산과는 달리 이곳 서천에서는 나세의 공적을 더 크게 보는 모양이다.
▼ 도로 건너는 ‘당선리(堂仙里)’다. 마을 뒤에 당산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인데, 마을 앞에 정자에 산책로까지 갖춘 소담스런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 탐방로는 계속해서 ‘장산로’를 따라간다. 당선리를 지나자 금강이 몸집을 한껏 부풀렸다. 강인 듯, 바다인 듯, 구분이 안 되게 너른 연안은 이제 갯벌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 갯벌에 누운 채 물이 차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어선도 여러 척 눈에 띈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금강하굿둑이 성큼 다가온다. 하굿둑 뒤로 보이는 산. 즉 기상관측소의 레이더가 걸터앉은 봉우리는 ‘오성산’일 것이다. 소설 ‘탁류’의 저자 채만식이 ‘임피팔경(臨陂八景)’ 중 하나인 ‘오성낙조(五聖落潮)’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며 조망을 즐겼다는 산이다.
▼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그래선지 나라꽃 ‘무궁화’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무궁화(無窮花)란 ‘끝없이 핀다’는 꽃의 특성에서 유래했다. 100일 동안 매일 새 꽃이 줄기차게 피어나는데, 여기에 풍족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자하는 우리 민족의 바람을 더했다고 한다.
▼ ‘음식문화 특화거리’ 조형물. 머리글 삼아 적어놓은 ‘라온제나’가 눈길을 끈다. ‘라온제나’는 ‘기쁜 나, 즐거운 우리’를 뜻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금강 풍경을 감상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다보면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즐겁고 기쁜 하루가 될 것이라는 암시가 아닐까 싶다.
▼ 조형물의 예고대로 큼지막한 음식점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하지만 대부분이 해산물 요리 전문점이라서 메뉴의 선택은 자유롭지 못해 보였다.
▼ 맛있는 음식거리로 입소문이라도 탔는지 음식점의 주차장마다 차량들로 가득 찼다.
▼ 앗! ‘백악관’이 망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선거로 시끄러운 미국인데, 백악관까지 저렇게 문을 닫아버렸으니 차기 당선자는 어디로 들어갈까?
▼ 12 : 58. 평화공원. 금강과 도로(장산로) 사이는 이렇듯 녹지 공간으로 놓아두었다. 가끔은 이런 작은 공원들을 들어앉혔음은 물론이다.
▼ 공원 안에는 ‘월남참전기념탑’이 세워져 있었다. 세계평화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싸운 서천지역 참전유공자들의 위훈과 충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 차도와 보도가 너무 가까워진 곳에는 이렇듯 또 하나의 길을 내놓기도 했다.
▼ 녹지 공간 곳곳에는 조형물을 배치했다. 누가 만들었고, 또 무엇을 나타내고 싶었는지를 알려주는 안내판 하나쯤 세워놓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풍경이다.
▼ 13 : 01. ‘송내천’을 건너 ‘장항읍’으로 들어선다. 갈대만이 무성했던 긴 목에 시가지가 들어섰다고 해서 ‘장항읍(長項邑)’이란 지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 푸름으로 물든 강변의 갈대밭, 그 뒤에는 고층빌딩이 숲을 이루는 군산시가지가 길게 늘어서있다. 그게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잘 그린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 ‘서래야’는 서천군 농산물의 ‘대표 브랜드’이다. ‘넓은 들에 비옥한 토지’라는 의미로 서천군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산물 브랜드로 사용되고 있다. 한자(舒來野)로 풀면 ‘서천에서 온 좋은 농산물’이 된다나? 엄격한 품질관리를 거친 농산물만 출하시키겠다는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 13 : 33. 서해랑길은 ‘동백대교’의 아래를 지난다. 55코스를 동백대교 남단 근처에서 시작했으니, 다리 남단에서 시작해 북단으로 온 셈이다. 지척에 두고도 ‘ㄷ’자 모양으로 멀리 에돌아왔다고 보면 되겠다.
▼ 다리 근처에는 ‘동백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세멀부락’이라는 표지석도 눈에 띈다. 원수리(元水里)의 자연부락 중 하나인 ‘세멀마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마을 뒤로 보이는 저 산은 ‘왕제산’이 분명하다. 옛날 백제왕이 내려와서 제사를 지냈다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산이다.
▼ 13 : 39. 동백대교를 지나면서 장항시가지로 진입한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장항중학교’ 앞을 지나간다.
▼ 이즈음 만나게 되는 방음벽. 축대를 홍보의 장으로 삼았다. 마량리 동백나무숲 등 ‘서천의 8경’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아까 서천군으로 들어오면서 눈여겨봤던 관광안내판과 다른 게 아닌가. 2018년 서천군은 문화관광 콘텐츠를 구축하면서 ‘9경(景)·9미(味)·9품(品)’를 선정했다. 하지만 기존의 ‘서천팔경’에 하나를 더하지 않고, 두 곳은 바꾸기까지 했다. 둘 모두 군에서 추진한 결과물이니 관광객들을 위해서라도 조정이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나 싶다.
▼ 13 : 38. ‘장항항(長項港) 물양장’은 서해랑길에서 살짝 비켜나있었다. 하지만 ‘꼴갑축제’까지 열리는 명소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운이라도 좋아 갓 잡아 올린 꼴뚜기나 갑오징어 회라도 맛볼지 누가 알겠는가.
▼ 길 건너 담벼락의 벽화가 눈길을 끈다. 다가가보니 ‘늙은 노동자의 노래’ 가사가 적혀있다. 노인의 구부정한 등이 세월의 무게를 겨우 버티고 있는 듯한데, 자존심만큼은 젊은이들 못지않아 보인다. 삶의 무게를 지팡이에 의존하고 있지만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나? 내 또래의 늙은이들에게 딱 어울리는 가사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김민기가 작사·작곡하고 양희은이 불렀던 ‘늙은 군인의 노래’와는 어떤 관계지?
▼ 13 : 54. 잠시 후 ‘도선장 입구’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도선장’은 이제 빛바랜 사진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추억 속의 공간은 직장인과 통학생으로 항상 붐볐다. 지역 주민들의 발이었던 도선은 황포돛배를 시작으로 경남환·경남호·군산호·서천호·금강호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루 이용객이 수천에서 수만을 헤아리는 시절도 있었으나 2009년 운항이 중단되어 오늘에 이른다.
▼ 서해랑길(서천 56코스) 안내도는 육교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아래 사진은 출발지에서 찍은 것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3시간 50분을 걸었다. 앱이 15.8km를 찍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은 셈이다. 이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내부 관람시설이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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