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아크로폴리스(Acropolis)

 

여행일 : ‘23. 3. 22()-29()

 

세부 일정 : 아테네수니온아테네산토리니아테네델피테르모필레메테오라아테네

 

특징 : ‘높은 도시라는 뜻의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유적의 중심이자 그리스 전체를 상징하는 랜드 마크이다. 아크로폴리스만 봐도 그리스의 절반 이상을 봤다고 할 수 있단다. 아테네 어느 곳에서도 한눈에 쏙 들어오는 높은 언덕위에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해 에레크테이온, 프로필라이아 신전, 헤로데스 음악당, 디오니소스 극장 등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많은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아크로(높은)와 폴리스(도시)의 합성어이다. 그러니 등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르막길을 제법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아크로폴리스는 페르시아 전쟁의 산물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델로스 동맹을 맺었고, 그 중심 역할이 아테네로 이동하면서 방어와 종교적 중심축인 이 신전을 건축했다.

 매표소 옆 빗돌은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려준다. 그중에서도 첫 번(1)란다. 그래선지 유네스코 도안에 파르테논 신전을 그려 넣었다. 유네스코가 자신의 얼굴마담(심벌마크)으로 내세울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다.

 안내도는 아크로폴리스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대 도시 하나가 성스러운 바위로도 불린다는 바위 절벽위에 오롯이 걸터앉았다.

 날선 바위절벽으로도 모자라 그 위에다 성채를 쌓아올렸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 아크로폴리스 투어는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대리석이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닳았기 때문이다. 하긴 해마다 1,8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니 어련하겠는가. 아무튼 세계 제일의 문화제에 너무 정신을 빼앗겨 미끄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자.

 첫 만남은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Herodes Atticus Odeon)’이다. 아크로폴리스로 오르는 도중 만나게 되는데, 그동안 보아오던 극장(음악당)들에 비해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온전한 형태를 보존하고 있었다. 기원전 161년 마라톤(Marathon) 출신의 부유한 정치가 아티쿠스가 죽은 아내 레기나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가파른 경사지를 이용해 건축한 공연장은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1951년 지금의 모습으로 고쳐졌는데, 매년 여름철 아테네 페스티벌이 이곳에서 열리는가 하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성악가, 연주자들이 저 무대에 서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성악가 조수미도 저곳에서 공연을 했단다.

 프로필라이아(Propylaia)는 철옹성인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었다. 기원전 437년 파르테논이 완성된 직후에 시작되었으나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스파르타와 아테네를 주축으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양분)이 일어나면서 중단되었고 이후로도 완성을 시키지 못했단다.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더 뒤숭숭했다. 앞부분은 미완성 기둥만 남아 있고, 뒷 건물의 지붕은 거의 다 소실되었다.

 회랑의 왼쪽 아래쪽에 큰 사각 구조물이 있었다. 전차를 탄 로마 장군 마르쿠스 비프사니우스 아그리파(BC 62~BC 12)’의 동상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빈 좌대만 남아있다. 아그리파는 초대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를 도와 로마의 제정 시대를 여는 공을 세웠다.

 이러한 사실들은 안내판에서 엿볼 수 있다.

 맞은편에는 아테나 니케(Athena Nike)’신전이 있었다. 이 여신은 아테나와 동행하는 조력자다. 보통 올빼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아테나의 시중을 들며 그녀와 늘 함께 한다(때문에 아테나를 지칭할 때 언제나 같이 언급된다). 니케는 그리스어로 승리를 의미한다. 전쟁에서 늘 승리를 바라던 아테네 시민들이 승리의 여신이 아무데도 못가도록 날개를 잘라내고 이 신전에 모셨다고 전해진다. 영어로는 Nike, 최고의 브랜드로 알려지는 나이키가 여기서 유래되었다나?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이 신전에는 날개 없는 아테나 니케 상이 안치되어 있었단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신전은 큰 기둥과 부서진 유적으로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아크로폴리스 초기 이오니아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신전은 18세기 요새를 지을 석재를 구하려는 터키인들에 의해 허물어졌지만 나중에 파괴된 요새에서 돌을 가져와 저런 상태로 다시 복구시켰다고 한다.

 뒤돌아본 프로필라이아’, 고대 아테네 시대 저 문은 신과 인간의 경계였다고 한다. 아테네인들은 평소 신의 세계를 아무 때나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 중앙 기둥들 사이로는 신성한 행렬만 지나 다녔고, 일반인들은 양 옆에 있는 좁은 문들로만 다닐 수 있었단다.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아레오파고스 언덕(‘전쟁의 신 아레스의 언덕)이 내려다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저곳은 신들의 재판이 열렸던 곳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자기 딸을 겁탈하려 한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를 살해한 죄로 포세이돈에 의해 기소되었지만, 올림포스 12신의 재판 결과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저 언덕은 귀족들의 회의가 열리는 장소이자 재판정으로 기능했다. 후일 민주주의의 확대와 함께 민회의 힘이 커지면서 아레오파고스 회의는 약화됐다. 하지만 지금도 그리스에서는 대법원 아레오파고스라 일컫는다고 한다.

 저 언덕은 사도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설교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이 바울을 비웃었고, 몇 사람만이 바울을 따랐을 따름이다. 그중 아레오파고스 법정 판사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가 있었다. (사도행전 제17)

 프로필라이아의 마지막 열주를 지나면 널따란 분지가 나온다. 그 오른쪽에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이 있다. 신전은 제법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쉽게 구분이 된다. 기원전 570년 경 건축된 파르테논 신전은 여러 번의 건립과 파괴, 복구를 거쳤다. 현재 모습은 기원전 447~438년의 페리클레스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전은 역사와 함께 많은 부침을 겪었다. 아테네 여신을 섬기는 신전으로 지어졌으나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우상의 잔재를 없앤다는 이유로 모든 조각은 파괴되고 성 소피아 교회로 사용되었다. 15세기 터키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는 회교사원으로도 사용됐다. 17세기 베네치아와 전쟁을 할 때는 화약고로 사용되다가 베네치아 군대의 포격으로 크게 파괴되기도 했다.

 파르테논은 전쟁과 지혜의 신이자 아테네의 수호신이기도 한 아테나 여신을 모시던 신전이다. 기둥 받침대 없이 직접 기단위에 세웠으나 세계에서 가장 균형 잡힌 건축물로 분류된다. 유네스코 문화유적 1호이자, 유네스코의 고로로까지 사용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신전은 직선과 평면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곡선과 곡면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곡선·곡면으로 건축된 탓에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조금씩 좁아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쌓아올릴 경우 지상에서 3.9km 지점에서 서로 만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기둥 46개를 포함한 대리석의 엄청난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인데, 그렇게 해서 중량을 분산시켰단다.

 신전의 안은 텅 비었다. 페이디아스가 봉헌했다는 금과 상아로 만들어진 높이 12미터의 아테나 동상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옮겨갔다가 화재로 인해 소실됐다고 한다. 피라미드와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한 구조물이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신전은 멀리서 볼 때 기둥의 위에서 아래까지가 일직선으로 보인다. 기둥의 가운데를 볼록하게 만들음으로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 탓이라고 한다. 실제 같은 두께의 기둥을 세울 경우 윗부분은 작게 보일 수밖에 없단다.

 대단한 디테일이다. 도리아식의 간결한 기둥머리 양식과 기둥에 연이어 세로로 파인 타원형의 홈은 대리석 기둥의 웅장함과 힘찬 수직미를 돋보이게 만든다. 크기는 더 놀랍다. 3단의 기단 위에 대리석 기둥이 정면 6, 측면 17개의 직사각형 건물로 총 46개의 기둥이 거대한 신전을 떠받치고 있다. 기단 부분이 동서로 69미터, 남북으로 25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신전이다.

 지붕은 완전히 없어진 상태다. 원래는 천정과 기둥 사이에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장식조각들이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유명 조각가들이 만든 아름다운 부조들로 꽉 차여 있었단다. 하지만 상당수가 동로마제국시절 지금의 터키 땅으로 옮겨갔고, 19세기에는 영국으로도 대거 반출되었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예술적 가치를 알려주는 안내판도 여럿 보인다. BC 480년경 이전에 있었던 구 파르테논 신전을 설명해주는가 하면, 페리클레스 시대에 건축된 현재의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했던 조각물들도 소개한다.

 신전의 한쪽 귀퉁이는 홍보용으로 할애했다. 아크로폴리스의 발굴·복원에 대한 일화들을 사진과 함께 게시하고 있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뭔가로 새롭게 변신 중인 모양이다. 아크로폴리스의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중심으로 소장·전시하던 고고학 박물관이다. 현재는 새로 지은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New Acropolis Museum)’으로 그 기능이 옮겨졌다.

 언덕의 동쪽 끝에는 전망대가 있었다. 흰색과 파란색의 그리스 국기가 펄럭이는 전망대에 서면 파르테논·에레크테이온 신전은 물론이고, 아테네 시가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담아왔노라! 이만하면 아크로폴리스를 다녀왔다는 증거로 충분하겠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1호 문화유산이자, 유네스코의 심벌마크로까지 사용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배경으로 넣었으니까.

 시선을 북동쪽으로 옮기자 리카비토스(Lykavittos)’ 언덕이 다가온다. 신다그마 광장 동쪽에 솟아있는 높이 277m의 바위산으로, 아크로폴리스와 함께 아테네의 핫 플레이스로 꼽힌다. 날씨가 좋으면 아테네 시가지는 물론이고 피레우스 바다까지 조망할 수 있으며, 특히 아크로폴리스의 아름다운 야경을 가장 시원스럽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소문났다.

 정상에는 전망대와 19세기에 세워진 흰색의 작은 성당 아기오스 조르지오스(Agios Georgios)’가 있단다. 일몰이 환상적이므로 낮보다는 해질 무렵 들리는 것이 좋은데,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다니 전망 좋은 곳에 앉아 야경을 안주삼아 캔 맥주나 커피를 마셔보는 것도 좋을 듯.

 제우스 신전(Temple of Olympian Zeus)’ 터도 눈에 들어온다. 배경은 근대올림픽 경기장으로 삼았다. 아크로폴리스의 동쪽에 있는 제우스 신전은 올림포스 12신 중 최고신인 제우스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기원전 6세기, 참주 정치의 아테네 시대에 건설이 시작됐지만, 성전의 완성은 2세기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1.67m의 코린트양식 기둥 104개가 높이 17m로 세워진 그리스 최대의 신전이었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보다도 4배나 더 컸단다. 하지만 이방인들의 침략과 다른 건물을 짓는데 신전 석재가 이용되는 등 아픔을 겪었다. 지금은 폐허가 돼 16개의 기둥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넓디넓은 아테네 시가지는 기본이다. 도시는 온통 하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줌을 당겨보면 지중해 연안 주택들이 지닌 일반적인 특징들이 눈에 띈다. 백색 벽면에 붉은 지붕 말이다.

 아크로폴리스 성채의 남쪽 아래, 기슭에는 디오니소스 극장(Theater of Dionysos)’ 유적이 있다.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기원전 4세기 무렵 지어졌단다)으로 알려지는데, 당시엔 17천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술과 연회의 신인 디오니소스에게 바쳐졌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함께 모여 축제를 벌이고 연극도 구경했단다.

 극장은 원형으로, 열려 있는 무대는 점점 높아지는 타원형 구역 안에 위치한다. 매우 탁월한 음향 효과를 제공해 주었던 이러한 설계는 고대 그리스 전역에 생겨난 다른 극장의 원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을 따름이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건너편 산꼭대기에 있는 저 건축물은 대체 뭘까?

 파르테논 건너편으로는 돌 유적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그마저도 보존의 대상인지 관광객들의 출입을 못하도록 금줄을 쳐놓았다. 그곳에 이오니아 양식으로 지어진 작은 신전 에레크테이온(Erechtheion)이 있었다. 기원전 421~406년에 건립된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헌정된 신전이다.

 이 건물은 고대 아테네의 신화적 영웅인 에레크테우스(헤파이스토스와 大地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테나 여신이 길렀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색다른 평면과 외관을 갖추게 된 것은 대지가 부정형인데다 신전을 여러 개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전에는 늘 이슈가 되는 카리아 여성의 기둥(女像柱)이 있다. 아름답게 주름 잡힌 천을 걸친 젊은 여성들이 여섯 개의 기둥으로 서있는 이 유명한 포치(porch)는 세계 건축의 최고 보물 중 하나라고 한다. 스파르타 인근의 도시 카리아의 처녀들을 모티브로 삼았는데, 아름답고 훤칠하고 건강해서 튼튼한 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이 바탕이 됐단다.

 다른 주장도 있었다. ‘카리아티드로 불리는 이 돌기둥이 그리스를 배신하고 페르시아 편에 섰던 카리아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동맹군은 카리아 남자들은 모두 죽이고 여자들은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니는 노예로 만들었다 한다. 저 돌기둥이 제2의 카리아가 등장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

 신전 옆에는 아테나의 올리브 나무가 있다. 아테나 여신이 그리스인에게 선물로 내렸다는 나무로, 에게해·지중해 올리브의 원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1917년에 심었다는 얘기가 있다는 것도 알아두자.

 불레 문(Boule Gate)을 빠져나오면서 아크로폴리스 투어는 끝난다. 불레 문은 프로필라이아 문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내성이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초문 말고도 외적 침입의 보호 문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