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발봉(周鉢峰, 489m)
산 행 일 : ‘19. 9. 28(토)
소 재 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과 청평면의 경계
산행코스 : 가평역→능선→삼각점봉→주발봉→발전소고개→호명호수 입구→상천역(소요시간 : 3시간 50분)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특징 : 한북정맥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기가 귀목봉(1,036m)을 지나 연인산과 대금산으로 이어지다 ’빗고개‘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마지막으로 솟구쳐 오른 봉우리이다. 이 산줄기는 주발봉에서부터 솟아올라 호명산(632m)에서 그 절정을 이룬 다음 서서히 북한강으로 사라지게 된다. 주발봉의 특징은 높이가 500m도 채 되지 않는 나지막한 산이라는 점이다.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라는 또 다른 특징도 갖고 있다. 이러니 내세울 만한 산세가 있을 리가 없다. 흙산의 특징대로 조망도 트이지 않는다. 정상과 벌목으로 인해 생긴 개활지(開豁地)가 아니었더라면 눈요기 한번 해보지 못하는 산행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볼거리도 일절 없다. 그저 산행 내내 만나게 되는 잣나무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볼 때 일부러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호명산과 연계해서 걸어본다든지, 아니면 운동 삼아 올라본다면 몰라도 말이다.
▼ 산행들머리는 경춘선 전철 ’가평역‘
모처럼의 근교산행이다. 그것도 최군의 배려로 수도권전철인 경춘선으로 접근이 가능한 주발봉을 찾았다. 이곳 가평역을 산행 들머리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봉역에서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1시 20분까지 약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춘천행 전철을 이용하면 손쉽게 가평역에 이를 수 있다.
▼ 가평시내와 반대방향으로 걸으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참고로 가평서 들어온 군내버스는 이곳 가평역 앞에서 180도로 회전을 한 후에 다시 시내로 돌아나간다. 100m 조금 못되게 걷자 ’T‘자형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오른편은 ’46번 국도‘로 연결되고, 왼편은 75번 국도로 연결된다. 하지만 왼편 도로는 아직까지 개통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곳 삼거리에서는 왼편 ’75번 국도‘ 방향으로 진행한다.
▼ 코스모스가 곱게 핀 길을 따라 50m쯤 걸었을까 오른편으로 비포장 임도가 하나 나뉜다. 이곳도 역시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다. 주발봉을 찾는 사람들이 이곳 가평역을 들머리로 삼기를 피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정표가 없다보니 들머리를 찾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튼 임도로 접어들자마자 왼편 절개지(切開地)를 치고 올라야 한다. 원래는 길이 있었던 모양이나 도로를 새로 내면서 없어져 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위로 올라서자마자 또렷한 길이 나타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 산으로 접어들자마자 ’평산 신씨(平山 申氏)‘ 가족묘역을 만났다면 제대로 길을 들어선 셈이다. 가평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묘역은 풍수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명당(明堂)으로 보인다. 이런 묘역은 이후로도 두어 번 더 만나게 되는데 가선대부(嘉善大夫)와 통정대부(通政大夫) 등 묘(墓) 주인들의 품계도 만만찮다. 발복(發福)이라도 받았던지 많은 묘들이 당상관(堂上官)의 품계를 갖고 있었다.
▼ 산은 잣나무 천지다. 그러고 보니 이곳 가평은 잣나무 고장이다. 전국에서 잣나무가 가장 많고 잣 생산량이 전국 생산량의 40%나 차지하는 잣 특산지이기도 하다. 참고로 소나무 과에 속하는 잣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해 온 가장 오래된 수종 중의 하나라고 한다. 옛날부터 백자목(柏子木), 해송(海松), 유송(油松), 오엽송(五葉松), 홍송(紅松) 신라송(新羅松)등으로 불리어 왔으며, 학명이 한국소나무(Pinus koraiensis) 라고 불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다. 그러나 소나무의 학명은 안타깝게도 일본소나무(Japenese Pine)다. 지난 36년 동안의 일제 강점기 시절을 거치는 동안 전국의 많은 동식물들 명칭이 대부분 일본인 학자에 의해 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인들에게 소나무는 일본나무로 알려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잣나무는 일본지역에 흔치 않은 편이어서 그들의 명칭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소나무는 잣나무인 셈이다.
▼ 작은 산이라는 선입감 덕분에 마음까지도 다들 여유로워졌나 보다. 앞서가던 집사람과 최군이 잣송이에서 열매를 빼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잣나무는 목질이 단단하고 무늬가 고와 목재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식용으로 사용되는 씨앗으로 더 유명하다. 이 열매는 송자(松子)·백자(栢子)·실백(實栢)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특산으로 명성이 높아 예로부터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당나라 때의 ‘해약본초(海藥本草)’에는 그 생산지를 신라로 기재했고, 명나라 때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아예 신라송자(新羅松子)라 칭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잣' 하면 바로 가평 잣을 손꼽는다. 생산량도 가장 많고 품질도 좋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잣에는 지방유가 약 74% 정도 들어 있고 그 주성분은 올레인산·리놀렌산이다. 오래 먹으면 장의 유동운동을 촉진시키면서 배변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마른기침을 하는 사람이 복용하면 폐의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기운이 없을 때 먹으면 기운이 소생하며, 피부가 윤택하여지고 탄력을 얻게 되므로 미용에도 좋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약용보다는 식용으로 주로 쓰여 왔다. 각종 음식에 고명으로 들어가며 죽을 끓여 먹기도 한다. 또, 정월 보름날에는 잣을 열두 개 준비하여 불을 붙여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민속도 있다.
▼ 그렇게 20분 남짓 진행했을까 갑자기 길이 넓어진다. 오른편에서 올라온 널찍한 길과 만나면서부터다. 경사도 대체로 완만해졌다. 바닥에 바퀴자국이 나있는 걸로 보아 오프로드용 자동차인 ‘버기카(buggy car)’가 다니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 10분쯤 더 걷자 또 다른 ’평산 신씨(平山 申氏)‘ 묘역 앞에서 첫 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처음으로 만났으니 반가울 만도 하련만 마냥 그렇지만도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정표에다 출발점을 가평역으로 표기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들머리에는 이정표를 세워놓지 않은 가평군청의 처사에 대한 불만 때문이지 싶다.
▼ 이정표(주발봉 4.1㎞, 청평역 14.3㎞/ 가평역 2.3㎞)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곳은 좌우로 길이 나뉘는 사거리이다. 널찍한 길이 좌우로 갈려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주발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다시 오솔길로 변한다.
▼ 다시 시작되는 잣나무 숲길을 10분쯤 더 걷자 고갯마루에 내려선다. 움푹 파인데다가 양 옆으로 희미하게나마 길이 나있는 걸로 보아 오른편 상색리와 왼편의 이화리 사람들이 넘나들던 옛길이 아닐까 싶다. 맞다. 고갯마루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하나씩 쌓아올렸을 돌무더기까지 있는 걸로 보아 분명할 것이다.
▼ 돌무더기 위에는 스님 조형물 넷이 올라앉았다. 탁발 나온 스님이 있는가 하면, 물통을 지고나온 스님도 보인다. 둘은 불경공부에 여념이 없다. 정진(精進)하고 있는 스님들을 나머지 스님들이 성심껏 돌보고 있는 모양새이다.
▼ 조금 더 걷자 벌목을 마친 개활지(開豁地)가 나온다. 그 덕분에 오른편으로 조망이 트인다. 억지춘향인 셈이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불기산과 대금산, 약수봉, 깃대봉, 연인산 등 이미 올랐거나 앞으로 오르게 될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말이다.
▼ 뒤이어 나타난 오르막길에는 잣나무들이 그 뿌리를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뿌리들이 엮기거나 흩어지면서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을 감상하며 걷는 재미가 나름대로 쏠쏠한 구간이다.
▼ 그렇게 올라선 봉우리에는 삼각점(춘천 316, 2005복구)이 설치되어 있었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난 지점인데 지도에 나오는 360m봉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삼각점 외에는 눈여겨 볼 것이 하나도 없는 밋밋한 봉우리에 불과하다. 조망도 트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이유이다.
▼ 10분쯤 더 걷자 두 번째 이정표(주발봉 2.5㎞, 청평역 12.7㎞/ 가평역 3.9㎞)가 세워져 있다. 오른편으로도 오솔길이 나있으나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알아둘 필요도 없겠다. 얼마나 사람이 다니지 않았으면 길의 흔적이 저렇게 희미하겠는가.
▼ 잠시 후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라선다. 아니 아까 올랐던 삼각점봉 보다도 더 높으니 낮다는 표현은 옳지 않겠다. 아무튼 봉우리에 올라서니 주발봉으로 여겨지는 산이 시야에 잡힌다. 그렇다고 속아서는 절대 안 된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안부까지 뚝 떨어졌다가 정상으로 여겨졌던 다음 봉우리에 오르면 정상은 또 다시 저만큼에서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까지 깊어 힘든 산행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 왼편 산자락은 철조망을 쳐 사람의 통행을 막고 있다. 간벌(間伐)까지 깔끔하게 마친 걸 보면 산양삼이라도 재배하려는가 보다.
▼ 철조망이 끝나는가 싶더니 앞서가던 집사람이 발걸음을 멈춘다. 모처럼 시야가 트이니 반가운가 보다. 그녀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수많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가평 시가지를 받쳐주고 있는 산들은 물론이고 춘천에 있는 새덕산도 눈에 들어온다.
▼ 아까 정상이라 오해했던 봉우리에는 송전탑(送電塔)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사 9929-7609‘라고 적힌 국가지점번호판을 이름표로 달고서 말이다.
▼ 산길은 텅 비어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건만 우리 일행 외에는 인기척을 찾을 수가 없다. 사람 소리는커녕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최군의 말로는 이 능선을 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반대편 능선을 타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했을 경우 아직까지 이곳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가평역 부근에 있는 들머리를 찾기가 만만찮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식당 등의 편의시설들을 감안할 경우 우리처럼 가평역을 들머리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 얼마쯤 더 걸었을까 정상이 가까워질 무렵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길가에 밧줄난간까지 쳐놓았을 정도로 가파르다. 해발고도가 500m도 채 되지 않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명색이 정상이니 내놓고 자신의 품속으로 들이기가 민망했던가 보다. 참! 오는 도중에 에덴동산(알곡성전)에서 올라오는 삼거리(정상에서 1.5km정도 떨어진 지점)를 만났었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명지지맥 상에 있는 ’빗고개‘로 연결되는 중요한 지점이지만 지맥답사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무의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사진촬영이라고 해뒀을 리가 없다.
▼ 정상에 다와 갈 무렵 바위지대를 만났다. 그래봤자 커다란 바위 몇 개가 일렬로 누워있을 따름이지만 말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오늘 산행에서 처음 만난 귀한 바위였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마침맞게 물결무늬를 하고 있는 바위의 생김새까지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하다.
▼ 그뿐만이 아니다. 바위는 또 다른 생명을 품고 있었다. 영양가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푸르름을 한껏 자랑하면서 말이다. 조그만 난관에도 곧잘 좌절해버리는 인간들이 보고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싶다.
▼ 초입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군(軍)의 시설물이 정상에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니 교통호(交通壕)였던 것이 참호(塹壕)로 발전했으니 오히려 더 강화된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폐허로 변해있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주던 보루가 평화라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젠 아픈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 드디어 ‘주발봉’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40분 만이다. 정상은 뽈록하니 솟아오른 분지형태로 이루어졌다. 그 모양새가 ‘밥주발’을 빼다 밞았다고 해서 ‘주발(周鉢)’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런 모양새가 만들어지지 않으니 문제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했으니 내 수양이 그만큼 부족했음이리라.
▼ 넓지도 높지도 않은 봉우리에는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평군에서 세워놓은 정상표지석이다. 밥주발을 형상화했는데 여간 앙증스럽지가 않다. 그밖에 삼각점과 이정표, 등산로안내도는 물론이고 ‘산 입양사업’ 안내판과 공청안테나 등도 보인다. 조금은 너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 이정표(발전소고개 2.2㎞/ 가평역 6.4㎞)도 눈길을 끈다. 아까 보았던 이정표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올레길’용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양쪽에 표시된 지명의 위에다 ‘가평올레길 6코스’라는 용도를 보무도 당당히 올려놓았다. 참고로 ‘가평올레길’이란 가평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건강과 문화를 함께 얻을 수 있게끔 만들어놓은 둘레길이다. 총 10개 코스 118㎞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평의 자랑인 북한강 수변(水邊)은 물론이고, 관내 산골·농촌마을, 명산·계곡, 호수 등이 포함됐다. 가평군이 자랑하는 수려한 경관과 생태자원, 역사와 문화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 이왕에 세워놓은 시설물이니 ‘등산로 안내판’도 한번 살펴보자. 들머리는 가평역, 우리가 올라온 코스이다. 이후는 발전소고개와 호명호수, 기차봉, 호명산을 거쳐 청평역까지 이어지는데 거리는 총 16.6㎞, 모두 걸으려면 7시간 정도가 걸린단다. 그게 길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발전소고개에서 상천역으로 하산하면 된다. 이 경우 거리가 12.4㎞로 줄어든다.
▼ 조망이 터지는 북쪽 방향에는 전망데크를 배치했다.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가평읍내와 북한강의 풍광이 일품이다. 가평읍내 너머 멀리로는 경기 제1봉인 화악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읍내를 둘러싸고 있는 산은 물론 보납산과 물안산, 마루산일 것이다.
▼ 주발봉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쉼터의 기능을 겸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정상 바로 아래에다 평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평상의 두 면에는 벤치를 놓아 식탁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막걸리 한잔 앞에 놓고 신선놀음하기에 그만이지 싶다.
▼ 다시 길을 나선다. 1시간 반이나 쉬었으니 피로도 다 가셨다. 다만 청평역까지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되어버린 시간이 좀 아쉬울 따름이다.
▼ 몇 걸음 걷지 않아 헬기장을 만난다. ‘H’자를 만들기 위해 깔아놓은 보도블록(步道block)이 새것인 것으로 보아 최근에 새로 만들었지 않나 싶다. 정상의 시설물들을 설치할 때 말이다.
▼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경사가 완만할 뿐만 아니라 느낌도 매우 포근하고 아늑하다. 흙산의 전형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 벌목(伐木)을 해놓은 탓에 시야가 열리기도 한다. 하나같이 오른쪽으로 열리는데 아까 정상으로 오르면서 보았던 불기산과 대금산, 약수봉은 몰론이고 이번에는 정우산과 깃대봉, 축령산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 호명산을 바라보며 산행을 계속한다. 그리고 이내 고민에 빠져든다. 청평역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상천역으로 하산할 수밖에 없는데, 능선을 벗어나는 지점을 어디로 삼아야 할까를 놓고 말이다. 결론은 발전소고개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났다. 도중에 상천저수지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발견했지만 길의 흔적이 너무 희미했기 때문이다.
▼ 고개라도 들라치면 에메랄드빛 하늘이 펼쳐진다. 가을이 완연하다는 느낌이다. 하긴 한로(寒露)가 이제 열흘 밖에 남지 않았으니 누가 뭐래도 가을 아니겠는가. 농부들은 가을이 깊어져 더 추워지기 전에 추수를 마쳐야 할 것이고 말이다. 참! 그러고 보니 설악산의 단풍이 오늘(9월28일) 시작된다는 뉴스도 있었다.
▼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가 보다. 집사람의 눈이 밝은 덕분이지만 그 귀하다는 ‘노루궁댕이버섯’을 땄으니 말이다. 불로장생의 효능을 갖고 있다는 ‘영지버섯’ 서너 개와 1㎏도 넘는 ‘잔나비걸상버섯(Elfvingia applanata)’도 땄다. 항암효과가 있다는 상황버섯과의 버섯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가평역에서 집사람과 주고받았던 얘기가 생각난다. 광화문에서 아베에게 ‘미안합니다.’를 외치던 여자가 지나가기에 ‘재수 없다’며 침을 뱉는 나에게 ‘액땜 했다’고 생각하라던 집사람의 충고를 그냥 흘려버렸는데 그 매국노가 액땜 치고도 제대로 된 액땜이었나 보다.
▼ ‘안녕하세요?’ 반대방향에서 오는 등산객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비켜 지나간다. 호명산 쪽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우리들과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사람이다. 이미 네 시간을 넘긴 시점인데도 처음으로 만난 등산객인 걸 보면 주발봉이라는 곳이 그만큼 인적이 뜸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인근 호명산과는 달리 입소문을 덜 탔다는 얘기일 것이고 말이다. 참! 이 근처 능선의 양쪽은 경사가 매우 급한 비탈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하지만 느낌은 완전히 딴판이다. 한쪽은 잣나무 숲이 빽빽한데 비해 다른 한편은 잡목이 우거졌기 때문이다. 좌우로 갈려 난장판을 치고 있는 요즘의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입안이 씁쓸해진다. 아니 기왕에 좋은 산에 왔으니 속세의 생각은 잠시 떨쳐버리기로 하자.
▼ 잣나무 숲 향기에 취해 능선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발전소고개’이다. 이 고갯마루는 상천마을과 청평댐 가에 위치한 복장마을을 잇는 도로가 지난다. 차량통행도 가능함은 물론이다. 그래선지 두 개의 이정표(#1 : 호명호수 1.8㎞, 청평역 8㎞/ 주발봉 2.2㎞, 가평역 8.6㎞, #2 : 호명산 정상↑ 6.6㎞/ 복장리방←향/ 상천역방향→/ 주발봉↓ 2.2㎞)와 함께 예쁜 팔각정까지 지어놓았는데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 서너 분이 둘러앉아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 사이클을 형상화한 그림이 그려진 기념비도 보인다. ‘18회 아시아 여자 사이클 선수권대회‘와 ’5회 아시아 여자주니어 사이클 선수권대회‘, 그리고 ’1997.9.2.-9.6‘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걸로 보아 그 기간 중에 열렸던 사이클 대회가 이곳을 지나갔다는 얘기일 것이다.
▼ 이젠 낙석방지시설 설치공사가 한창인 도로를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청평역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길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구불구불하다. 단풍나무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이미 식상해져버린 벚나무 가로수길이 아닌 것만 해도 고마운데 그 단풍나무들이 울긋불긋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그렇게 내려오길 30분여 만에 ’청평댐입구 삼거리‘에 이른다. 호명호수와 복장리, 그리고 상천리로 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로 버스정류장은 ’호명호수 제1주차장‘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카페와 식당, 거기다 펜션까지 줄줄이 늘어서있는 이곳은 유원지로 틀을 잡은 모양새이다. 계곡을 끼고 있는데다 호명호수를 찾는 관광객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 내가 좋아하는 ’닭요리 전문점‘이 눈에 띄자 최군이 전화부터 걸고 본다. 식사를 마친 후에 상천역까지 태워다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흔쾌한 승낙과 함께 들어선 식당은 ’돌쇠네(TEL : 031-584-5382)‘다. 더덕구이, 더덕주물럭, 더덕닭갈비’ 등 더덕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식당인데 서브 메뉴로는 양푼보리밥과 막국수, 감자전, 양평막거리를 내놓고 있었다. 우린 ‘토종닭 더덕백숙’을 시켰는데 더덕향이 울어난 국물이 일품이었다. 술국으로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물김치 등 기본으로 깔아놓은 밑반찬의 숫자나 맛도 훌륭했다. 그 덕분에 우린 소주를 각기 두 병씩이나 마시게 되었지만 말이다.
▼ 산행날머리는 경춘선 전철, 상천역
날머리인 상천역까지는 식당 주인아저씨가 자신의 승용차로 태워다 주었다. 그렇다면 이 아저씨는 주인마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돌쇠’가 분명하다. 그것도 끝내주게 주인마님을 잘 모시는 사내일 게고 말이다. 상천역까지 오는 동안 우리와 주고받았던 스스럼없는 얘기들이 그 증거라 하겠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총 5시간 30분이 걸렸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느라 정상에서 1시간 40분을 쉬었으니 실제로는 3시간 50분을 걸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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