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중남미의 멕시코 및 페루

 

여행일 : ‘18. 4. 23() - 5.2()

여행지 : 멕시코, 페루. 쿠바(비행기 사정으로 인해 취소)

 

일 정 :

4.23() : 멕시코시티(소깔로광장, 과달루페성당)

4.24() : 멕시코시티(테오티우아칸)

4.25() : 쿠스코(마추픽추)

4.26() : 쿠스코(12각 돌, 쿠스코대성당, 산토도밍고성당)

4.27() : 리마(아르마스광장, 사랑의 공원, 라르꼬마르)

4.28() : 파라가스(바예스타 섬), 이(와카치나 사막)

4.29() : 나스카(나스카라인)

4.30() : 멕시코시티(소우마야 미술관)

 

여행 여섯째 날 : 작은 갈라파고스라는 바예스타 섬(Isla de Ballesta)

 

특징 :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10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갈라파고스 제도(Galápagos Islands, official name으로는 Archipiélago de Colón)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에 많은 영향을 준 곳이다. 이 섬들을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바예스타 섬(Isla de Ballesta)‘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못지않으나 상대적으로 가기 쉬워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갈라파고스(the poor man's Galapagos)‘ 혹은 작은 갈라파고스라고 부른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무인도(無人島)이자 수십 개의 암석과 동굴로 이루어진 바예스타 섬은 바닷새의 배설 퇴적물인 구아노(guano)의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구아노가 많다는 건 바닷새들이 그만큼 섬에 많이 서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가마우지, 물떼새, 펠리컨, 갈매기들이 이 작은 섬에 무려 100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아밖에도 엄청난 수의 물개와 바다사자도 볼 수 있어 일명 물개섬이라고도 불린다.

 

 

 

바예스타로 가기 위해서는 리마에서 남쪽으로 300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파라카스(Paracas)‘까지 와야만 한다. 바예스타섬을 왕복하는 보트 투어가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주민이 4천 명쯤 되는 해안마을 파라카스(Paracas)‘는 역사적으로는 1821년 칠레를 출발한 호세 데 산 마르틴(José de San Martín)‘ 장군이 이끄는 여섯 척의 페루독립군 함대가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참고로 파라카스는 비를 의미하는 케추아어 ‘para’와 모래를 의미하는 ‘aco’가 합쳐진 이름으로 모래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입구에 ‘marina turistica de Paracas’라고 적힌 간판이 내걸려 있다. 투어용 보트의 정박지임을 알려주려는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바예스타 제도(Islas Ballestas)’를 왕복하는 보트의 매표소가 있다. 투어는 하루 종일 진행되니 시간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다만 신청인원이 많을 경우에는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탑승권을 구입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파라솔을 꽂은 테이블들이 길게 놓여있다. 배를 탈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라는 모양이다. 음료나 간식을 앞에 놓고 시간을 때우면서 말이다.

 

 

앉아서 기다리기 지루하다면 바닷가 풍경을 즐기면 된다. 넓고 푸른 바다와 수많은 보트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나름대로의 볼거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다는 잔잔하기 짝이 없다. 항구가 파라카스 반도로 둘러싸인 만()의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싫증이 났다면 사진이라도 찍어볼 일이다. 바예스타 섬의 물속에서 물고기들과 함께 노니는 풍경이 연출될 것이다.

 

 

길게 놓인 선착장을 따라 진행하면 투어용 쾌속정의 탑승장이 나온다. 차례차례 배에 올라탄 다음 의자에 놓인 노란색 구명조끼를 입으면 된다.

 

 

 

 

 

 

 

배가 부두를 떠나 바다로 향하자 왼편으로 야트막한 모래언덕이 나타난다. 그 자체가 사막과 해변, , 절벽 등 온갖 다양한 지형들이 공존하는 경이로운 지질학적 보고라는 파라카스 국립보존지구(Reserva Nacional de Paracas)’일 것이다. 그런데 이곳 해안의 경관이 장난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굳어진 모래가 바닷물에 침식되면서 기괴한 모양의 해안선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여느 유명해안에 뒤질 게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반도의 모래언덕을 끼고 얼마쯤 달렸을까. 삼지창처럼 생긴 문양(文樣)이 나타난다. ‘엘 칸델라브로(El Candelabro)’라는 지상화인데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단다. 그러나 촛대의 가운데 부분이 정남향을 가리키고 있어 뱃사람들에게 중요한 표지가 되어온 것만은 분명하단다. ‘엘 칸델라브로는 스페인어로 촛대를 의미하는데 이 그림은 크기가 181m나 되어 19km 밖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로는 삼지창을 계속해서 연장시킬 경우 내일 들르게 될 나스카지역으로 연결된다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엘 칸델라브로는 흙을 약 2피트 정도 파내고 그곳에 돌을 쌓아 만든 문양이라고 한다. 부근에서 발견된 토기를 방사성 탄소로 연대를 측정해보았더니 기원전 200년경으로 나와 파라카스문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은 되지만, 연계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현지사람들은 남아메리카에 널리 전해오는 전설에 나오는 비라코차(Viracocha)신이 가지고 다니는 삼지창 모양의 번개몽둥이와 흡사하다고 믿고 있단다. 이밖에도 호세 데 산 마르틴(José de San Martín, 1778-1850)’ 장군과 관련이 있다거나, 프리메이슨(Freemason)의 표지라는 등의 설이 전해진다니 참조한다.

 

 

빠른 속도로 30분 정도 물살을 가르자 작은 바위섬들이 물 위로 떠오른다. 12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바예스타 제도(Islas Ballestas)‘로 모두를 다 합쳐도 면적이 0.12km²에 불과한 작은 섬들이다. 참고로 바예스타제도는 서식하고 있는 생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허가된 사람만이 상륙할 수 있다고 한다.

 

 

섬에 이르자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섬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처럼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눈이 호사를 누린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독한 냄새가 맡아지기 때문이다. 온갖 새들과 물개들이 만들어놓은 배설물들에서 나는 냄새라고 한다.

 

 

오랜 세월 침식작용을 거쳐 온 해안은 기괴한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그중에서도 압권(壓卷)은 동굴이 아닐까 싶다. 섬의 등성이를 뻥 뚫어 놓으며 뒤편의 작은 부속 섬들을 액자(額子) 속에다 가두어 버렸다. 그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그림들을 그리면서 말이다.

 

 

 

 

 

 

섬은 새들의 천국이다. 나무, 아니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민둥의 섬은 물론이고 하늘까지도 온통 새들로 덮여있다. 이 섬에는 펠리컨, 갈매기, 칠레 홍학 등 70여종의 새가 서식한다고 한다. 특히 빨간부리 바다제비는 페루의 천연기념물로 이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빨간부리 바다제비는 암컷과 수컷의 모양이 똑 같아 모습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지만, 짝짓기 할 때는 구분이 가능하단다. 암컷이 바다를 향해 멍 때리고 있으면 수컷은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다 암컷에게 준다는 것이다. 이때 암컷은 여러 마리의 수컷이 잡아오는 생선 가운데 마음에 드는 수컷이 잡아온 생선을 받아먹고, 그 수컷과 짝짓기가 이루어진단다.

 

 

 

 

 

훔볼트 펭귄(Humboldt Penguin)‘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세상에, 남극도 아닌데 펭귄들이 아장아장 걷고 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참고로 훔볼트 펭귄은 칠레와 페루의 해안에서 서식하는 펭귄종류로 아프리카펭귄, 마젤란펭귄, 갈라파고스펭귄의 친척뻘이 된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 가까이 다가가자 모여 있던 펭귄들 또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너희들은 왜 왔니? 귀찮게!’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해안절벽에 들어붙은 빨강색의 게도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곳에는 조개 등 다른 종류의 어류들도 풍부하단다. 바다 깊은 곳에서 수면으로 올라오는 영양 가득한 해조류가 풍부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선지 해안에서 어로작업(漁撈作業)을 하고 있는 꼬맹이 배도 눈에 띄었다.

 

 

 

 

배가 천천히 섬 주위를 돌자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람들의 호들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새들은 유유히 하늘을 날고 물개들은 일광욕을 하거나 바다에서 먹이 사냥을 한다. 새때만 있는 게 아니다. 물개와 바다사자 같은 포유류들도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무리를 지어 살고 있다. 거북이와 돌고래 같은 어류도 살고 있다는데 눈에 띄지는 않았다.

 

 

 

 

조금 더 들어가자 물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작은 바위섬을 온통 물개들이 차지해 버렸다. 물개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영역싸움을 벌이는데 수컷 한 마리가 12-15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고 한다. 새끼를 낳아서 수영을 가르치고 먹이 잡는 법을 가르친 후에는 건너편에 있는 섬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2-3월에 물개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단다. 그렇다면 지금은 제철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물개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섬은 붉은 색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위가 온통 하얗다. ‘구아노(guano)’인데 바닷새의 배설물이 바위 위에 계속 쌓이면서 하얀 석회질처럼 딱딱한 광물질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구아노는 페루의 중요한 수입원일 뿐만 아니라 해안생태계 유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얀 황금으로 불린다. 구아노가 풍부한 땅은 식물이 자라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바다로 흘러들어간 구아노는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어 바다의 생태계 균형과 정화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구아노가 결정적으로 하얀 황금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19세기 농업혁명 이후였고, 비료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지면서 그 가치는 치솟게 된다. 한때는 페루 국고 수입의 약 80%를 구아노가 담당할 정도였다고 하니, 새똥이 모여 한나라의 경제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 놀랍기 이를 데 없다.

 

 

 

 

붉은 색 섬이 본래의 색깔을 잃어버렸다. 하얀색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만큼 구아노(guano)’가 두텁게 쌓여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구아노는 질소, 인산, 칼륨 등이 풍부하기 때문에 아주 좋은 비료로 사용된다. 잉카제국에서도 이미 구아노를 사용하고 있었다니 그 효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를 세상에 알린 것은 독일의 지리학자이자 탐험가였던 알렉산더 폰 훔볼트(Friedrich Wilhelm Heinrich 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였다. 탐험 중에 우연히 이를 발견하고 페루의 칼라오(Callao)에서 비료로서의 효능을 조사했고, 그 결과를 유럽사회에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오랜 세월을 두고 쌓인 구아노는 두께가 50m에 이르기도 했는데, 먼저 발견한 자의 소유를 인정해주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1864년부터 1866년 사이에는 스페인과 페루-칠레 동맹군 사이에 친차(Chincha) 섬의 구아노를 둘러싸고 전쟁을 치루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페루정부는 구아노 자원의 고갈을 우려하여 자국 농업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제한을 두기도 했다.

 

 

 

 

새와 물개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인간이 지어놓은 시설물들도 보인다. 숙도로 보이는 건물은 물론이고 항구에서나 볼 법한 장치들도 보인다. 3-4년에 한번 씩 채굴하는 구아노를 실어내기 위한 서설들일 것이다. 숙소는 섬에서 상주하는 경비원들이 머무는 곳일 테고 말이다. 참고로 경비원들은 15일에 한 번씩 교대된다고 한다.

 

 

 

 

 

 

 

 

 

 

바예스타섬은 물개 섬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새 섬이라는 별명이 더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수의 새들이 섬을 뒤덮고 있다. ‘인간 없는 세상의 완벽한 유토피아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간이 오직 구경꾼으로만 존재할 때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 자태로 스스로의 진면목을 드러내는지, 바예스타는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만 같다.

 

 

 

 

 

 

 

머리 위로는 새 떼가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바다사자만큼이나 새소리도 시끄럽다. 고요한 바다 위의 섬일 것만 같았는데 무척이나 요란한 섬이다. 여기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수많은 새들이 날아다니기도 하고 어떤 새들은 바위에 모여 앉아 시끄럽게 수다를 떨기도 한다. 만화 속에서 보던 펠리컨도 실제로는 처음 본다. 그 자태가 하도 특이해서 눈길이 간다.

 

 

 

 

 

 

뱃전을 스쳐가는 바람이 세찬데도 불구하고 집사람은 모자를 쓰고 있다. 집사람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모자를 쓰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이다. 여행자들의 머리 위에 하얀 새똥이 수직으로 낙하할 수도 있다는 가이드의 겁박 아닌 겁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개들은 끼리끼리 모여 있기도 하고 수영을 하는가하면 바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기도 한다. 널따란 해안을 아예 전세 내버린 곳도 있다. 움푹 들어간 해안에서 득시글거리는 바다사자와 물개들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특히 바다사자들이 늑대처럼 울어대는 소리가 절벽에 부딪혀 만들어내는 합창은 마치 서라운드 음향시스템을 연상시킬 정도로 웅장하다. 한마디로 장관이라 하겠다. 살면서 언제 이렇게 많은 무리의 바다사자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까?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한낮, 배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사막을 달군 태양은 어김없이 해변에도 쏟아져 그 진가를 발휘한다. 땡볕에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식당가로 향한다. 기념품가게를 기웃거리다 해변으로 시선을 돌리니, 무심하게 날아온 펠리컨이 더위에 지친 날개를 쉬고 있다.

 

 

 

해안가를 따라 조금 걷자 마치 우리나라의 해운대나 속초의 유원지에 온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해변과 식당가가 나타난다. 거기서 우린 태극기가 그려진 식당에 들어가 페루산 맥주 쿠스케냐(Cusqueña)‘를 마시며 모처럼 느긋하게 점심을 즐겼다. 그것도 엘 콘도르 파사를 라이브로 들으면서 말이다. 팬플루트(panflute)와 기타를 든 동네가수들은 우리나라 가요까지도 능수능란하게 불러주고 있었다. 물론 약간의 팁을 위해서겠지만 말이다. 오늘의 요리는 세비체(Ceviche)‘, 신선한 생선살을 깍둑썰기해 레몬즙이나 라임즙에 재운 뒤 각종 토핑과 타이거 밀크를 올린 차가운 샐러드이다. 유럽과 일본의 식문화가 혼합된 페루의 대표 메뉴로, ’세비체를 먹어보지 않고는 페루를 논하지 말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니 메뉴 선택을 제대로 한 셈이다. 매콤하면서도 새콤하고,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것이 맛 또한 괜찮은 편이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산 소주에 딱 맞는 안주로 보였다. 그래서 난 가이드의 동의를 얻어 페트병에 넣어 다니는 소주를 꺼내 식당에서 주문한 맥주에다 섞어 마셨다. 알콜의 도수가 올라가니 맥주 맛이 한결 더 좋아졌다.

 

 

 

에필로그(epilogue), 오늘은 원래 쿠바에서의 여정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우린 페루의 남부지역을 여행하고 있다. 쿠스코에서 비행기가 뜨지 않은 탓에 하루 늦게 리마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린 쿠바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탈 수가 없었다. 이날이 마침 노동절과 겹친 탓에 다른 비행기로 바꿔 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대안이 바로 페루의 남부 해안을 따라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쿠바를 못 가본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나마 남부지역에 나스카라인과 이카사막, 바예스타제도 등 뛰어난 볼거리가 널려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여간 남미 여행을 할 때는 여행 계획을 촘촘하게 짜지 않아야 한다.’는 남미여행자들 사이에 떠도는 얘기가 정설이었음이 입증되는 날이었다 하겠다. 남미에서는 변수가 너무 많아 계획을 짜봤자 그대로 지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항공은 끊임없이 연착되고 취소되며, 기차나 버스 같은 교통편도 제시간에 출발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페루 역시 이런 정설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경비행기도 떴을만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운행 자체를 취소해 버린 것이다. 아무튼 오늘 난 또 하나의 팁을 얻었다. 냠미 여행, 아니 어느 지역을 여행하건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그 예상치 못함에 자신을 던져 넣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자유로움이 여행의 첫 번째 매력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