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 2코스

 

여행일 : ‘18. 6. 16()

소재지 : 부산시 해운대구와 기장군 일원

산행코스 : 미포(2.4km)달맞이공원 어울마당(4.5km)송정해변(4.3km)해동용궁사(5.1km)대변항(16.3)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해운대의 삼포라 불리는 미포·청사포·구덕포를 거쳐 대변항에 이르는 코스다. 이번 코스도 역시 길맷길과 겹친다고 보면 되겠다. 특히 미포~청사포 구간은 해운대의 명품 산책로인 문텐로드를 따른다. 달맞이공원 어울마당으로 올라가는 오솔길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청사포로 이어진다. 성철스님이 주석했다는 해월정사를 지나 또 하나의 스카이워크인 다릿돌전망대를 구경하고 나면 오솔길을 통해 송정해변으로 연결된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문탠로드와 삼포길을 들락거렸다고 보면 되겠다. 송정해변에서부터는 대부분 바닷가를 따른다. 시랑대와 오랑대 등 해식애(海蝕崖)가 잘 발달된 암벽해안이 펼쳐지는가 하면 동해용궁사라는 명품 절간을 만나기도 한다. 훌륭한 눈요깃감을 제공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공수마을로 넘어가는 구간 등에서는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기도 한다. 아무튼 부산을 대표하는 길 중에 하나로 꼽혀있을 정도로 경관이 뛰어난 구간이다


 

트레킹 들머리는 미포 로터리(rotary, 해운대구 중1)

승용차나 대중교통 등 문텐로드로 오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겠다. 지하철 해운대역에서 내려 100·141·200번 버스를 이용 미포 문텐로드 입구까지 오면 된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미포교차로에서 바닷가로 잠시 내려가면 해운대해수욕장의 끝자락인 미포이다. 지난번 1코스를 마치면서 보았던 커다란 표지석이 반갑게 맞을 것이다. '중동역'에서 하차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10~15분 정도를 걸어야하므로 버스로 오는 것을 추천한다.




로터리에서 달맞이고개가는 쪽으로 오르막을 잠시 오르면 옛 철길이 나온다. 2013년 해운대 도심을 지나는 우동~기장구간의 복선화가 완료되면서 동해남부선 해안철길이었던 이곳은 역사의 뒤안길로 묻혔다. 지역으로 봐서는 그게 더 득이 되었던 모양이다. 자연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 이 길을 걷는 인구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의 젊은 연인들 사이에는 데이트 코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 들머리에 위의 내용을 적은 동해남부선 옛길 안내판을 세워놓았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쯤 읽어보고 갈 일이다.




조금 더 올라가면 이번에는 미포교차로(해운대구 중동)이다. 이곳에서는 오른편 달맞이 길을 따른다. 들머리에 달맞이길이라고 적은 커다란 표지판을 세워놓았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근에 있는 아트센터와 갤러리들의 위치를 표시해놓은 달맞이 미술의 거리 현황도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곳 달맞이 언덕을 한국의 몽마르트(Montmartre)‘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 살았던 몽마르트 언덕처럼 이곳에도 다양한 갤러리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 ’들머리에 문텐로드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다는 걸 깜박 잊을 뻔 했다. 해운대구청에서 도보꾼들을 위해 만든 주차장이란다.



입구에는 갈맷길안내판도 보인다. 2코스(문텐로드~오륙도 유람선선착장)까지란다. 그렇다면 오늘도 갈맷길을 걷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걸 더 세분화시키면 문텐로드를 걷게 되는 것일 게고 말이다. 아무튼 가로수로는 벚꽃나무들을 심어놓았다. 나이가 족히 수십 년은 넘어 보이는 큰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중간 곳곳에는 벤치도 배치했다. 문텐로드의 장점 중 하나라 하겠다. 걷는 도중에 쉴 수도 있고 바다를 보며 소중한 사람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문탠 로드(Moontan Road)‘달맞이 고개를 향해 500m 정도 오르다가 오 해피데이 레스토랑을 지나자마자 오른편으로 열린다. 들머리에 문탠로드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문탠로드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탠 로드(Moontan Road)‘란 달빛을 받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정서적 안정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만든 해운대 특유의 둘레길로 총 길이는 2.5라고 한다. 코스는 달맞이길 입구~바다 전망대~달맞이 어울 마당~해월정~달빛 나들목으로 이어진다. 또한 달빛 꽃잠 길(0.4, 설레는 마음으로 달빛 맞으러 가는 길), 달빛 가온 길(0.4, 은은한 달빛 속에 마음을 정리하는 길), 달빛 바투 길(0.7, 달빛에 몸을 맡겨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길), 달빛 함께 길(0.5, 나와 달빛이 하나 되는 길), 달빛 만남 길(0.5, 아쉬움에 다시 오길 약속하는 길)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계속해서 도로를 따를 경우에는 해월정이라는 정자(亭子)가 나온다. 해월정의 앞바다는 2013년에 우리나라 동해와 남해의 경계로 정해진바 있다.



들머리 오른편에는 전망대도 만들어져 있다. 해운대와 광안리 해변은 물론이고 저 멀리 오륙도까지 한눈에 쏙 들어오니 자리를 제대로 잡은 셈이다.



오솔길로 내려선다. ’문탠로드‘(Moontan Road)’의 다섯 개 구간 가운데 달빛 가온길일 것이다. ‘은은한 달빛 속에 마음을 정리하는 길이라는 구간 말이다. 이 구간의 특징은 짙은 소나무 숲속을 걷는 다는 것이다. 어느 기사에선가 문탠로드를 솔숲으로 이루어져 눈은 물론이고 몸까지 즐겁게 해주는 멋진 산책로라고 소개한 걸 봤는데,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다. 이 길의 또 다른 특징은 어지럽다 싶을 정도로 많은 안내판들이 아닐까 싶다. ’삼포해안길 안내도문탠포드 안내도‘, ’달맞이길 안내도등의 여러 안내도(案內圖)와 지명을 설면해 놓은 안내판(案內板)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시판(詩板)까지 세워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문텐로드를 소개하는 안내판이지 싶다. 황옥공주, 대마도에 대한 조망, 청사포의 망부송에 대한 전설 등이 적혀있으니 잠깐의 소일거리 삼아 읽어보고 갈 일이다.




오솔길을 따라 잠시 걷자 데크 전망대가 나타난다. ’달빛마당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바다전망대로 보이는데, 벼랑에 가까운 비탈진 산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았다. 하지만 동해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등 조망만은 나무랄 데가 없다. 날씨 좋은 날에는 바다 건너 대마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고는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이다. 아무튼 누군가는 문탠로드‘(Moontan Road)’에서의 문탠(Moontan)‘선텐(suntan)‘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했다. ’달을 선텐하는 것처럼 만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망대가 문탠로드‘(Moontan Road)’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휘영청 밝은 달빛을 받아들이기에 이보다 더 나은 장소가 어디 있겠는가.



이 일대 44000달맞이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어 있다. 공원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청사포로 넘어가는 와우산 중턱 달맞이 고개 일대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그러니 체육시설을 갖추지 않았을 리가 없다. 산비탈에 조그만 터를 닦은 뒤 운동기구 몇 점을 설치했는데 주민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기구에 매달려 유유자적 하고 있는 게 보인다.



길은 한마디로 잘 닦여 있다.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난간을 만들었고, 가파른 곳에는 어김없이 계단을 놓았다. 길가 곳곳에 벤치를 배치했음은 물론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게 있다. 길가 곳곳에다 나무토막 모양의 키 작은 조형물을 꽂아놓은 것이다. 반달, 초승달 등 각종 달의 모양이 그려진 유리로 윗면을 덮어놓은 걸로 보아 조명시설이 아닐까 싶다. ! 밤이 되면 달빛 모양의 조명이 숲을 밝혀준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이를 두고 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기사는 비록 인위적인 맛이 가미되긴 했지만 운치를 더해주는 시설이라는 부언까지 했었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망망대해도 빼놓을 수 없다. 탁 트인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고도 환성을 지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길가에 달빛 바투길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항상 달빛과 내가 함께 하는 길... 달빛 바투길에서 달빛을 바다처럼 느껴보세요라는 부언(附言)까지 늘어놓았다. ‘바투의 뜻이 두 대상이 아주 썩 가깝게라는 순수한 우리말이니 달빛 바투란 길의 이름을 제대로 풀어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문텐로드를 구성하는 나머지 넷은 달빛 꽃잠길과 달빛 가온길, 달빛 함께길, 달빛 만남길 등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삼거리(이정표 : 어울마당/ 청사포/ 미포)가 나온다. 오른편이 다음 행선지인 청사포로 가는 길인데 선두대장의 방향표시지는 왼편으로 향하고 있다. 아마 어울마당에 들렀다가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어울마당 쪽으로 한참을 오르다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는 어울마당의 반대편으로 인도 해버렸기 때문이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이정표(구덕포 3/ 해수욕장 2.8)에는 이 길이 구덕포로 연결된다고 표기되어 있다. 아무튼 이 구간을 지나는데 길가에 십오구비 달맞이길 관광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그래 문텐로드의 옛날 이름이 달맞이길이었다. 해운대구청에서 새로운 이름 공모전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문텐로드기 선정되었던 것이다. 선텐(suntan)과 비슷한 개념으로 달을 선텐하는 것처럼 만난다고 해서 문텐로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다른 한편으로 미포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송정해수욕장까지 가는 동안 15번 이상 굽어진다고 해서 ‘15곡도(曲道)’라고도 불린다. 저 안내판이 십오구비 달맞이길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 이유일 것이다.



들머리에 들어선지 40분이 조금 지났을까 도로(이정표 : 구덕표 2.5/ 신시가지/ 해수욕장 2.3)에 내려선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더 내려가니 묘하게 생긴 조형물 하나가 나타난다. 귓전에 맴도는 청사포의 파도소리를 해와 달의 원형인 소라모양으로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 앞에는 청사포마을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을 세웠다. 이 마을에서 박편과 원판형 석기 등 구석기시대의 유적지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의 마을 역사도 적혀있지만 가슴에 기억해볼 만한 내용은 아니다.



청사포(靑砂浦)의 본래 이름은 청사포(靑蛇浦)로 전해진다. 남편을 간절히 기다리던 여인을 용왕이 보낸 푸른뱀(靑蛇)이 찾아와 여인을 용궁으로 안내하여 남편을 만나게 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는 그런 이름이 영 탐탁지 않았나 보다. 푸른 뱀의 청사에서, 맑은 모래라는 뜻의 청사가 되었고, 현재는 푸른 모래라는 뜻의 청사(靑砂)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청사포에는 모래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옛 이름을 다시 되찾자는 의미에서 원래의 푸른 뱀으로 돌리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고 한다.



조형물을 지나자마자 도로를 건넌다. 탐방로가 해월정사(海月精舍)’ 앞을 지나도록 나있기 때문이다. 청사포는 횟집으로만 유명한 게 아니다. 사진작가들의 출사지(出寫地)로 유명한 쌍둥이등대를 끼고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벽화(壁畫)가 담벼락을 온통 장식하는 문화마을도 있다. 거기다 구덕포도 들러보지를 못했다. 해운대의 삼포(三浦), 즉 미포와 청사포, 구덕포 가운데 둘을 통째로 빼먹어버린 셈이다. 아쉽지만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니 어쩌겠는가. 아무튼 해월정사는 성철스님이 말년에 머물며 수행하던 절이다. 해월정사라는 이름도 그가 지었다고 한다. 넓은 바다와 밝은 달빛(月光)이 부처님 지혜를 뜻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지었단다. 하지만 청정(淸淨)을 모토로 삼았던 스님으로 봐서는 절집이 너무 크지 않나 싶다. 4층으로 이루어진 봉훈관의 생김새도 눈에 영 거슬린다. 전통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외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초 단위로 바뀌어 가는 요즘 세상에 나 혼자만의 아집일지도 모르겠다.



해월정사를 지났다싶으면 탐방로는 또 다시 숲속을 파고든다. 경사가 거의 없는데다 일행끼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걸어도 될 정도로 길의 폭 또한 넓다. 그렇게 잠시 걷다보면 서슬 시퍼런 암벽 위에 걸터앉은 전망대 하나가 나타난다. 해월정사에서 0.77, 구덕포까지는 1.55를 남겨놓은 지점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널디 너른 동해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하지만 시선을 집중시켜야 할 것은 그게 아니다. 이 전망대는 바로 아래에 만들어 놓은 다릿돌전망대의 조망용으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다릿돌'이란 청사포 전망대 바로 앞에서 해상 등대까지 가지런히 늘어선 다섯 개의 암초를 말하며 돌(징검)다리를 뜻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청사포 주민들은 다섯 암초가 마치 징검다리 같다고 해서 '다릿돌'이라 불렀단다.



2017년 말 완성된 다릿돌전망대는 부산의 3번째 해상 스카이워크전망대다. 청사포와 구덕포 사이 돌출된 돌무덤을 들어내고 바다로 쭉 뻗은 해안 절벽 위에 우뚝 선 폭 3~11m, 길이 72.5m의 상판이 바다 쪽으로 돌출돼 있다. 전체가 푸른 바다를 형상화한 것 같은 특이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끝자락에서 송정 쪽과 중심 쪽을 강화유리로 만들어 아름다우면서 아찔한 바다풍경을 볼 수 있도록 했단다. 오륙도의 스카이워크와 마찬가지로 입장 가능 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입장을 위해서는 상자에 담겨있는 덧신을 신어야 한다. 가장 끝에는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다. 대마도라도 찾아보라는 모양이다.



구덕포 방향으로 향한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비좁은 오솔길이다. 길을 가다보면 참호(塹壕) 등의 군() 시설들도 눈에 띈다. 한때는 민간에 개방되지 않던 지역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게 5분쯤 진행하자 해마루 갈림길(이정표 : 구덕포 1.2/ 해마루 0.3/ 청사포)’이 나타난다. 문텐로드에 해월정이 있다면 송정고개에는 해마루가 있다. ‘일출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산둥성이의 꼭대기라는 뜻을 가진 해마루는 지어진지 오래 되지 않았다. 2005년에 지어졌기에 부산 사람들도 이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한다. 들러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이유이다.



삼거리를 지나면서 탐방로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어진다. 수렛길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폭도 제법 넓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마을 뒤편에 내려선다. 거리표시가 없는 이정표(송정해수욕장/ 청사표)에는 현재 위치를 구덕포로 표기하고 있다. 해운대의 삼포(三浦)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포구는 보이지 않았다. 오른편 방향으로 조금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모양이다. 시간에 쫒긴 우리 곧장 송정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이어서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심을 통과하자 송정해수욕장을 만난다. ‘다릿돌전망대를 조망했던 전망대에서 40, 트레킹을 시작한지는 1시간30분 만이다. 길이 1.2에 폭 57m의 길고 넓은 백사장을 가지고 있는 이곳 송정해수욕장(松亭海水浴場)은 수심이 얕고 파도도 잔잔할 뿐만 아니라 수질 또한 맑고 깨끗해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 피서지로 적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널디 너른 해수욕장은 텅 비어있다시피 하다. 개장한지 이미 15일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어느 글에선가 해운대해수욕장이나 광안리해수욕장 등에서 느껴지는 번잡하고 화려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조용하고 아늑하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가 보다. 그는 또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수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고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백사장 뒤편에 횟집과 카페들이 즐비한 걸 보면 말이다. 바다로 눈을 돌리자 특이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보드(board)를 챙겨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툴게나마 파도에 몸을 실어보려고 용트림을 하고 있다. 이곳 송정해수욕장이 또 하나의 파도타기(surfing) 명소로 자리 잡아가나 보다.



모래사장이 끝나면 죽도공원(竹島公園)이 길손을 맞는다. 옛날에는 육지에서 떨어진 섬이었으나 송정천에서 흘러내린 모래가 쌓임으로 해서 지금은 그저 바다를 향해 뽈록하니 불거져 나간 육지의 모양새로 변해있다. 흠사 호리병처럼 말이다. 섬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죽도(竹島)라는 이름이 어색할 정도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나는 대나무를 좌수영으로 보내 화살로 만들었을 정도란다.



섬은 전체가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전망대와 벤치 등 편의시설들을 곳곳에 놓아 도심공원으로서 손색이 없도록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곳은 섬의 뒤편에 지어놓은 송일정(松日亭)이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해수욕장의 풍경은 일품이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월출은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공원을 빠져나오면 곧이어 송정항(松亭港)을 만난다. 양쪽 방파제 끝에 흰색과 붉은색의 마주 보는 쌍둥이 등대가 특징인 송정항은 조선시대 기장 구포의 하나인 가을포에 속했다고 한다. 1975년 연안어업 지원의 근거지로 삼기 위해 지방어항으로 지정된바 있다.



이후부턴 해안도로를 따른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해서 따르지는 않는다. 진행방향에 아래 사진과 같은 돌출부분이 나타나지만 탐방로는 그쪽 해안을 피해 나있기 때문이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니 걷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대한민국 대표라는 명품 물회, 숫불 장어구이간판을 놓치지 말자. 그 다음에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편 골목으로 들어서야하기 때문이다. 아니 들머리에 대변항, 해동용궁사의 진행방향을 표시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주의만 한다면 길이 헷갈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골목길을 지나면 곧이어 공수마을이 나온다. 해운대구에서 기장군으로 넘어가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기장읍 시랑리에 위치하지만 고려시대에 관청의 경비나 출장 나온 관리의 숙박이나 접대비를 충당하기 위한 밭을 뜻하는 공수전(公須田)이 있던 곳이라 하여 공수란 마을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서니 배를 형상화한 어촌체험마을안내소가 지어져있다. 길가에는 어촌체험마을 관광안내도도 세워놓았다. ‘공수항보다 공수체험마을로 더 널리 알려진 이유인 모양이다. 500명 정도가 살고 있는 공수마을은 주민의 대부분이 미역과 다시마양식, 어로 등의 수산업에 종사하는데, 2001년도에는 어촌체험시범마을로 지정된바 있다. 해조류 말리기 체험장, 지압산책로, 물고기체험장, 나무다리 산책로 등이 설치되어 있고 바닷가에서 양쪽으로 그물을 끌어당겨 물고기를 잡는 후릿그물이라는 전통어법체험, 해녀체험, 조간대 체험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제부터는 기장군 소관의 갈맷길이 시작된다고 보면 되겠다. 공수마을을 지나면서 탐방로는 해안을 따른다. 시랑산을 가운데에 놓고 오른편으로 빙 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웃자란 갈대들이 뒤덮인 분지를 지나면서 탐방로는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산자락을 잘라가며 내놓은 좁다란 오솔길이다. 비탈길 아래로는 갯바위들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강태공들이 노닐기 딱 좋은 장소일 것 같다.




시랑산의 모퉁이를 돌아 제법 규모가 큰 군부대옆길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탐방로가 넓어진다. 바위벼랑을 깎아 만든 비포장 길인데도 말이다. 군부대의 진입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도로이지 싶다.



도로를 따라 잠시 걷자 오른편으로 목제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바위벼랑에 기대어가며 만들어놓은 탓에 선뜻 들어서기가 망설여지나 그렇다고 들어가 보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들머리에 시랑대(侍郞臺)’에 대한 안내판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기장 제일의 명승지로 알려졌다는 글귀가 특히 호기심을 끈다. 계단을 내려가니 목제 대()가 만들어져 있다. 안전을 위한 조치로 보이나, 바위 가운데가 넓고 평평하다는 시랑대의 본 모습은 엿볼 수 없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참고로 시랑대의 원래 이름은 원앙대였다고 한다. 부근에 비오리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 바위에는 용이 잡아놓은 고기를 빼앗아 먹고 살던 젊은 장사와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그의 처()와 갓난아이에 대한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자기가 잡아온 고기를 빼앗기던 용이 그의 처와 갓난아이를 삼켜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용과 장사의 싸움이 일어났고 끝내 둘 모두 죽게 되었단다. 이후 시랑대의 동굴에 파도가 몰아칠 때면 부인의 절규가 들려온다고 한다. 부산시의 스토리텔링 사이트에는 또 다른 전설인 해동용궁사의 스님과 용왕의 딸이 사랑을 나눈 이야기가 등재되어 있으나 옮기지는 않겠다.



시랑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는 뒤편의 기암괴석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바위를 살펴보던 중 바위에 음각(陰刻)되어 있는 시랑대(侍郞臺)’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1733(영조 9)에 시랑직(이조 참의)을 지낸 권적(權樀)이 기장 현감으로 부임하여, 이곳 바위에서 놀다가 바위 위에 새겼다고 전해지는 글귀이다. 이후 홍문관 교리였던 손경현(孫庚鉉)이 학사암(學士嵓)으로 불렀다고도 하나, 지금은 시랑대라는 이름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또 다른 볼거리가 있을까 해서 바위의 위로 올라가봤지만 가슴에 담아둘만한 특별한 볼거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시랑대에 대해 설명해 놓은 안내판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따름이었다.



해동용궁사로 향한다. 절간의 담장을 끼고 100m 남짓 걷다가 도로를 벗어나 왼편 산자락으로 올라선다. ‘갈맷길 가는 길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들머리의 조금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주의 깊게 살펴봐야만 들머리를 찾을 수 있겠다. 이어서 비좁은 오솔길을 2~3분쯤 더 진행하자 커다란 교통안전기원탑이 문지기처럼 버티고 있는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에 이르게 된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절이라는 해동용궁사는 진심으로 기도하면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사찰이다.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인 1376년에 고려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나옹이 경주 분황사에서 주석하며 수도할 때 나라에 큰 가뭄이 들었는데, 어느 날 꿈에 용왕이 나타나 말하기를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비가 내리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다.’고 하더란다. 이에 나옹이 이곳에 와서 지세를 살펴보니 뒤는 산이고 앞은 푸른 바다가 있어 아침에 불공을 드리면 저녁 때 복을 받을 곳이라 하여 절을 짓고 산 이름을 봉래산, 절 이름을 보문사(普門寺)라 했다는 것이다. 이후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1974년에는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절의 이름 또한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로 바꾸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굴법당·용왕당(용궁단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불사리 7과를 봉안했다는 사사자 3층 석탑이 있다. 이밖에도 단일 석재로는 한국 최대의 석상이라는 약 10m 높이의 해수관음대불, 동해 갓바위 부처라고도 하는 약사여래불이 있다. 절 입구에는 교통안전기원탑과 108계단이 있고, 계단 초입에 달마상이 있는데 코와 배를 만지면 득남한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 절의 특징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라 하겠다. 특이하게도 산속이 아닌 바닷가에 지어져 있어 바다와 절이 함께 어우러지며 멋진 풍광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어찌나 바다에 가까운지 얼핏 절이 바다 위에 떠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이색적인 풍광을 사람들이 놓칠 리가 없다. 절간 전체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오늘뿐만 아니라 늘 그렇단다.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는 외국인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절로 들어가는 돌다리(용문교) 위에서 동자가 들고 있는 항아리에다 동전을 던지고 있는 중국인들도 상당수 됐다. 도박을 좋아하는 나라 사람들답게 자신이 던진 동전의 위치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는 게 재미있어 보인다. 감로약수(甘露藥水)도 빼놓을 수 없다. 서출동류(西出東流)의 암반수(巖盤水)로 이 물을 마시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니 꼭 한 모금 마셔 볼 일이다. TV에도 소개가 되었을 정도라니 그 효과는 이미 보증된 셈이 아니겠는가. 약수터 입구 반대편에는 관욕불(灌浴佛)이란 자그만 전각을 짓고 수반(水盤) 안에다 동자상(童子像)을 모셔놓았다. 길게 줄지어선 사람들이 차례로 바가지로 뜬 물을 동자상의 머리 위에다 붓고 있는 게 보인다. 뭔가 간절한 소망이라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절간을 다 돌아봤다면 이젠 또 길을 나설 차례이다. 아까 들어왔던 길로 되돌아갈 필요는 없다. 용문교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으로 빠져나가면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일출암 위로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진심으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고 알려진 곳이다. 지장보살상 앞을 지나면 국립수산과학관 앞길로 연결시키는 돌다리가 나타날 것이다. 국립수산과학관은 19215월에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으로 창설되었다가 1991년 해양수산공무원교육원에 편입, 현재에 이른다. 1997년 수산과학관을 개관하여 해양 보존 방법과 지식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며 미래 해양 대국을 지향하고 있다. 또한 과학관에는 해양자원과 어업기술, 수족관 등 15개 주제별 전시영역을 갖추고 참고래 실물골격과 국내 최대크기의 산갈치박제 등 7,300여 점의 전시물을 전시하고 있단다.



수산과학관 앞 해안은 해식바위(海蝕巖)가 잘 발달되어 있다. 바닥도 갯벌이 아니라 자갈과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이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손색이 없겠다. 아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걸로 보아 이미 입소문을 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며 잠시 걷다보면 어느덧 동암(東岩) 마을에 이르게 된다. 해동용궁사에서 1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이다. ‘동암(東岩)’이란 동쪽 바다에 바위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보아왔던 바위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시랑대와 오랑대라는 두 대의 안에 있다고 해서 대내(臺內)’로 불리었다니 참조한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점심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점심 먹기 딱 좋은 정자 앞에 이정표(오랑대 1.5, 대변항 4.2/ 동해용궁사 1.0. 공수항 4.0)가 세워져 있으니 진행방향을 찾느라 걱정할 일은 없다. 잠시 후 바닷가에 너른 꽃밭이 조성되었는가 싶더니 오시리아 해안산책로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오시리아는 기장읍 남부에 조성되는 면적 3662725.4의 대규모 관광단지를 이르는 말이다. 관광단지 내에 위치한 오랑대와 용녀(龍女)와 미랑 스님의 사랑이야기를 간직한 시랑대의 머리글자에다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사인 이아(~ia)를 합성시켜 오시리아라는 새로운 지명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아무튼 귀에 익은 발음도 아닌데다 길가에 늘어선 이국적인 건물들까지 겹치다보니 마치 외국에라도 나온 기분이 든다. 그만큼 주변 풍광이 뛰어나다는 얘기이다.



탐방로는 해안선을 따라 나있다. 해식애까지는 아니어도 파도와 바람에 닳고 닳은 기암괴석들이 널려있다시피 한 아름다운 해안이다. 길가 경관 좋은 곳에는 벤치도 놓아두었다. 빼어난 주변경관을 실컷 즐기다 가라는 모양이다.



해안가 벼랑에는 군부대도 들어앉았다. 아까 시랑대 근처에서 보았던 부대보다 그 규모가 훨씬 더 커졌다. ‘남북 또는 북미대화가 한창인 요즘은 금방이라도 통일이 이루어질 것 같은 추세이다. 하지만 이념이 다른 두 체제가 공존하고 있는 것 또한 무시 못 할 현실이라 하겠다. 화해무드라는 분위기에 너무 휩쓸리지 말고 국가 안보에 충실해야 되겠다는 얘기이다.



잠시 후 탐방로는 오랑대공원(五郞臺公園)’에 이른다. 오랑대의 자연 경관을 보존함과 동시에 시민들에게는 휴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총면적이 17334인 공원은 첩첩의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과 해안가에 툭 튀어나온 넓고 편편한 잔디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원 내에는 산책로가 잘 나있는데, 바닷가에는 카메라의 삼각대를 펼쳐놓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도 여럿 보인다. 일출 명소를 찾아온 사진 동호인들이 자리 잡기에 딱 좋을 것 같다.



동쪽 바닷가에는 자그만 바위봉우리가 솟아올랐다. 그 위에는 자그만 암자가 지어져 있다. ‘용왕단이라는데 지붕에 탑을 쌓아올렸는가 하면 지붕 모서리에는 용의 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안에는 용왕(龍王)으로 보이는 상()을 모셨는데 그 앞의 제단(祭壇)에는 물 말고도 소주가 두 병이나 올려져있다. 술깨나 좋아하는 용왕님인 모양이다. ‘미랑대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오랑대(五郞臺)는 지명과 관련해 정확히 알려진 설화(說話)는 없다고 한다. 다만 옛날 기장으로 유배 온 친구를 만나러 시랑 벼슬을 한 다섯 명의 선비들이 이곳에 왔다가 술을 마시고 즐겼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밖에 이곳에 오랑캐가 쳐들어와서 오랑대라고 불렀다는 주장도 있으니 참조한다.



대변항으로 향한다. 탐방로는 차량이 지나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넓어졌다. 비포장 길이지만 바닥에다 야자매트를 깔아놓아 질퍽거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폭신폭신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걷기에 무척 좋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주변의 자잘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바닷가 풍경도 괜찮은 편이다. 하긴 부산을 대표하는 길 중에 하나로 꼽힌다니 두말하면 뭐하겠는가.



주변 풍광에 도취되어 느긋하게 걷다보니 어느덧 서암(西岩) 마을이다. 서암마을의 옛 이름은 여리개(여리포, 餘里浦)’였다고 한다. ‘남을 ()’는 남어(넘어)의 뜻을 가지므로 한글로 표기할 경우에는 남이개가 된다. 즉 남(넘어)+(동네)+(포구)로 구성된 합성어인 것이다. 신암 마을에서 보면 언덕 너머에 있는 포구 마을이라고 해서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서암(西岩)이라는 지명도 신암의 서쪽이라서 붙여진 지명이란다.



대변항의 특징 중 하나는 등대들이 아닐까 싶다. 서암마을 앞의 젓병등대와 닭볏등대(일명 차전놀이 등대)는 물론이고 외곽의 방파제에도 여러 개의 등대를 만들어 놓았다. ‘마이징가Z 등대태권V 등대’, ‘월드컵기념 등대등 하나같이 특이한 이름을 가졌다. 이 등대들은 붙여진 이름에서 모티브(motive)를 딴 외관(外觀)이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서암항의 남방파제에 있는 젓병등대가 아닐까 싶다. 한눈에 보아도 아기 젖병 모양을 본떠 만든 등대는 여행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할 만큼 독특하고 귀엽다. 계속해서 감소하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부산 지역 144명 영유아의 손과 발을 찍은 타일이 등대의 벽면에 붙어있단다.



이곳은 바닷가, 그 가운데서도 제법 큰 마을이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가장 먼저 찾아봐야 할 곳은 횟집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곳은 횟집을 찾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비록 가건물 형태이긴 하지만 신암(新岩) 마을앞에다 집단 회촌을 조성해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횟감보다는 조개종류가 많아 보인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포구 근처에서 회를 사먹을 때의 재미 중 하나가 상인과의 실랑이다. 실랑이를 재미로 여기는 내가 좀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깎고 깎이는 관계에서 생기는 기싸움은 곧 삶의 현장이 된다. 당사자로서는 썩 재밌는 일이 못될 수도 있으나, 곁에서 살짝 구경만 해봐도 흥미진진한 볼거리다. 아무튼 이곳 상점 대부분은 가격대를 맞추어 손님을 끌고 있지만, 덤으로 주는 것은 제각각이라고 한다. 하긴 사람들도 그게 무엇이든 무엇 하나 더 주는 재미에 찾아드는 법이니 부창부수(夫唱婦隨)인 셈이다.



횟집이 즐비한 신암마을 물양장에서 오른편으로 놓인 다리(蓮竹橋)를 건너면 죽도(竹島)’가 나온다. 대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지금은 대나무보다 동백나무가 더 많다고 한다. 아무튼 이 섬은 기장군의 유일한 섬으로 기장팔경의 하나이다. 하지만 개인 소유가 되어 철조망이 쳐진 지 이미 오래다. 그렇다면 이미 다리를 건너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내가 본 그들은 섬의 옆구리에 붙어있는 널디 너른 갯바위에서 노닐고 있었다. 참고로 회촌이 있는 신암(新岩) 마을의 옛 이름은 무재이다. 무재에서 의 고어이고, ‘이라고도 부르는데 ()’의 고어로 수성(水城)으로 해석된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포구에 수군영이 있어 새바오, 동영(東營)’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잘못 발음해 새바우가 되며 한자명으로 신암(新岩)이 되었다고 한다. 신암의 은 새롭다는 뜻으로 해 뜨는 곳’, 동쪽을 의미하며, ‘()’의 옛말인 바오를 오기해 쓰인 지명으로 본다.



트레킹 마무리는 대변항 조형물 앞

죽도에서 빠져나와 다시 대변항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어촌 100곳 중 하나로 해양수산부가 선정한바 있는 항구이다. 기장의 자랑인 멸치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신암마을 회촌을 벗어나도 음식점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집단으로 모여 있지 않고, 파는 종류도 회와 곰장어구이로 바뀌어 있을 따름이다. 그렇게 잠시 걷다보면 널따란 주차장에 이른다. 멸치광장이란다. 광장에는 거대한 은빛 조형물 하나가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다. 은빛 멸치의 역동적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낸 조형물이라는데 예술에 문외한인 내 눈에는 멸치의 형상이 잡히지 않는다. 그나저나 오늘 트레킹은 총 4시간50분이 걸렸다. 물론 산악회에서 제공한 점심을 먹는데 소요된 시간까지 들어있으니 엄청나게 빨리 걸은 셈이다. 아무튼 버스가 풀발하려면 50분 정도가 남았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지역 특산물을 안주삼아 소주 두어 병 정도는 너끈히 마실 시간이다. 이 지역의 먹거리는 멸치회와 곰장어구이라 할 수 있겠다. 일단은 크고 깨끗한 집으로 들어서고 본다. 장어구이를 시켰는데 별로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같이 간 친구는 맛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내 식습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