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長島)
여행일 : ‘17. 10. 7(토)
소재지 :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장도리
트리킹 코스 : 선착장→습지홍보관→마을길→능선→짝지기미 삼거리→습지 보호구역→팔각정→나무계단→마을길→선착장(거리 : 3km)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신안군 서부 해상에 있는 작은 섬으로 행정구역상 흑산면에 속한다. 목포시에서 서남쪽으로 약 94㎞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 약 2㎞ 지점에 대흑산도가 있다. 소장도와 대장도가 전체적으로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다고 하여 장도라고 한다. 하지만 두 섬의 중앙에 사주(砂洲, sandbar)가 발달하여 간조(干潮)시에는 하나의 섬이 된다. 대장도 북동쪽 해안과 소장도 남동쪽 해안 일대에 101명의 주민(2016년 기준)이 취락을 이루고 있으며, 주민들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한다. 연근해에서는 장어·우럭 등이 잡히며, 인근 해역에서는 전복 양식과 함께 김·톳 등이 채취된다. 이 섬의 특징은 흑산도와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으며 자연경관이 빼어나다는 점이다. 하지만 장도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대장도의 산에 있는 습지(濕地)이다. 2005년 3월 국내에서 세 번째로 ‘람사르 등록습지(Ramsar wetlands)’로 지정되었다.
▼ 찾아오는 방법
장도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흑산도까지 와야만 한다. 장도로 들어가는 배를 이곳 흑산도의 예리항에서만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장도 선착장에서 흑산도 예리항까지 1일 1~2회 왕복 운항하는데, 미리 전화를 해놓을 경우 약속된 시간에 배를 대어 준다.
▼ 장도로 들어가는 뱃전에 서면 흑산도 연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안군에서 가장 먼 바다에 자리한 흑산도는 홍어 등의 풍부한 해산물은 물론이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는 자연공원이다. 바닷가 곳곳에 해식애(海蝕崖)가 발달되어 있어 해안선을 따르는 내내 눈이 호사를 누리게 된다.
▼ 배가 출발한지 20분쯤 되었을까 진행방향 저만큼에 장도(長島)가 나타난다. 본섬을 왼편에 두고 작은 섬들이 오른편으로 길게 도열해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섬의 이름에 ’길 장(長)‘자를 썼나보다 했더니 배를 몰던 마을 이장님이 그게 아니란다. 본섬의 길이가 동서로 칼 같이 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참고로 장도에는 그 흔한 가게나 식당도 없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오지의 섬이다. 섬이 작다보니 농사를 지을 땅도 없다. 쌀이나 배추를 사려면 배를 타고 흑산도나 목포까지 나가야만 한단다.
▼ 선착장에 가까워지자 기이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시선을 끈다. 본섬과 부속섬 사이에 거북이를 쏙 빼다 닮은 바위섬 하나가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등(背)의 문양까지도 닮은 것이 영락없는 거북이다. 그것도 금방 물속에서 빠져나온 놈으로 말이다. 아무튼 그동안 보아온 수많은 거북이들 중에서 가장 흡사하지 않을까 싶다.
▼ 배에서 내리면 달팽이 모양으로 생긴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 공동창고‘인데 장도습지 생태탐방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주변 경관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 지은 것이란다. 누군가는 저 건물을 보고 ’장도습지 모형을 형상화한 외관장식‘이 특징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런 특징에 대한 감이 전해지지 않는다. 하긴 예술에 문외한인 내게서 그런 심미안(審美眼)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 마을로 들어서면 ’습지 홍보관‘이 길손을 맞는다. 2013년 습지 생태탐방로를 조성하면서 함께 만든 ’산지습지 보전 이용시설‘ 중 하나란다. 국비(환경부)와 지방비(군비)를 반반씩 합쳐 지상2층 건물(170㎡)로 지었는데, 1층은 대합실로 만들의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게끔 했고, ’습지홍보관‘은 이층에다 꾸며놓았다. 홍보관에 장도 산지습지의 생성원인 및 습지에서 살고 있는 생물종들을 전시해 놓았으니 먼저 들러보고 탐방을 나서는 게 옳은 순서가 아닐까 싶다.
▼ 홍보관을 둘러봤다면 이젠 습지 탐방에 나설 차례이다. 마을 안길로 들어서니 ’장도습지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해안가를 따라 돌아서 습지에 이르는 길과 마을을 가로질러 곧장 산 위로 오르는 길이다. 이곳에서는 해안가를 따를 것을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만 하는 후자보다는 훨씬 더 쉽게 습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장점은 습지를 둘러보고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소장도와 흑산도의 절경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방향으로 진행한다고 해서 그런 절경을 못 본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 절경을 앞에다 놓고 보느냐, 아니면 뒤에다 놓고 보느냐만 다를 뿐이다.
▼ ‘장도습지 안내도’도 한번쯤은 꼭 살펴보고 길을 나서자. 어디로 가야할지를 선택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장도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은 머리에 심어 넣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해안가로 난 탐방로를 따른다. 마을 안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기는 조릿대 숲이 나타나고, 울창한 숲을 뚫고 나가자 이정표(짝지기미 1094m/ 습지 540m/ 마을입구 200m)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도 습지로 곧장 올라가는 길이 있는 모양이지만 별 생각 없이 짝지기미로 향한다. ‘습지 해설사’ 역할을 하는 마을 주민이 앞장을 서고 있으니 사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장도 산지습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방문객들이 협조해야 할 사항을 적은 안내판과 습지에서 서식하고 있는 ‘검은이마 직박구리’의 특징을 적어놓은 안내판도 세워놓았다. 이런 안내판들은 탐방 막바지 코스인 팔각정 근처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 길은 어느덧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이후부터 탐방로는 산의 사면(斜面)을 옆으로 헤집으면서 조금씩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조금도 힘이 들지 않다는 얘기이다.
▼ 그렇게 얼마간 진행하면 어느덧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장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233.7m봉을 우회(迂回)해서 6~7부쯤 되는 능선에 올라선 셈이다. 보다 수월하게 능선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일 테고 말이다.
▼ 능선에 오르면 장도에서 가장 높다는 큰산(267m)이 맞은편에 나타난다. 정상은 이따가 만나게 되는 팔각정에서 능선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지금은 길을 막아놓았다고 한다. ‘습지 보존구역’으로 지정된 곳이어서 출입금지구역으로 묶어져 있단다. 그러니 눈요기라도 실컷 하고 가자.
▼ 오른편에는 보이는 233.7m봉은 이곳에서 능선으로 연결된다. 제법 높아 보이는 것이 우리가 얼마만큼 수월하게 올라왔는지를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 아무튼 요 아래, 즉 이 능선과 맞은편에 보이는 ‘큰산’의 사이에 장도 습지가 들어앉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 아래 사진은 장도 전체를 입체적으로 담은 사진이다. 항공(航空)으로 촬영한 모양인데, 산지습지의 전체적인 감을 잡아보기엔 이만한 것이 없을 것 같아 신안군에서 빌려왔다. 대장도의 산지습지가 마치 화산(火山)의 분화구(噴火口)처럼 보인다.
▼ 바다 쪽으로도 시야(視野)가 막힘이 없다. 바다 건너에 있는 흑산도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이루어진 암봉들은 물론이고, 순환도로가 만들어내는 허리띠까지도 시야에 잡힌다.
▼ 이젠 능선을 따라 아래로 향한다. 물론 짝지기미 방향이다. 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낮추어간다. 바닥이 작은 바위들이 널린 너덜길이어서 내려서는 게 쉽지만은 않은 구간이다. 그저 조심조심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 하지만 지루하다거나 짜증나지는 않는다. 곳곳에서 터지는 조망을 즐기다보면 까짓 불편하다는 느낌 정도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버리니까 말이다. 한없이 푸른 바다에 갑자기 고운 무늬가 만들어진다. 그 범인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 나가는 보트. 그 솜씨가 어느 유명한 화가에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 아래 사진의 움푹 파진 곳이 짝지기미이다. 최근 저수지를 만들어 마을의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 조망을 즐기며 내려서다 보면 이정표(짝지기미 340m/ 마을입구 900m) 하나가 나타난다. 혹시 짝지기미 가는 길이 나뉘는가 싶어 찾아보지만 갈림길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얼마쯤 남았는가를 알려주는 게 세워진 목적의 전부인 모양이다.
▼ 조금 더 내려서면 이번에는 개울이 나온다. 요 위에 있는 습지에서 흘러내린 물은 이곳을 지나 요 아래에 있는 짝지기미에서 저수지를 이룬다. 그리고 그 물은 파이프를 통해 장도리 주민들의 식수로 공급된다.
▼ 개울을 지나면서 탐방로는 다시 오름짓을 시작된다. 걷기에 딱 좋을 만큼의 경사로 이루어진 것이 산책로나 다름없다. 탐방로는 후박나무의 상록수림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인적이라곤 우리 일행뿐인 한적한 숲길이다.
▼ 울창한 숲이 끝나는가 싶더니 주변이 갑자기 조릿대 숲으로 바뀐다. 엄청나게 웃자란 조릿대들이 아예 원시의 숲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조릿대들은 이따가 습지를 벗어날 때 다시 만나게 된다. 이로보아 습지를 빙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가 아닐까 싶다.
▼ 조릿대 숲을 벗어나자 물을 모으는 집수정(集水井)으로 보이는 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 마을주민들의 식수(食水)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 아래 짝지기미에 저수지를 새로 만들고, 그곳에서 물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갑자기 눈이 훤해지는가 싶더니 습지(濕地)가 나타난다. 산봉우리 두 개 사이에 분지형태로 들어앉아 있는 모양새인데, 나무들로 채워진 다른 지형과 다르게 습지의 중심부에는 키 작은 풀들이 자리 잡고 있다. 장도 습지는 2005년 ‘람사르 등록습지(Ramsar wetlands)’로 지정되었다. 국내에서는 대암산용늪, 우포늪에 이어 세 번째이고 세계적으로는 1423번째이었다.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에 의한 습지등록은 물새 서식지로서의 중요성을 가진 습지를 대상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지정된다. 그런 과정을 통과했으니 이곳 장도습지의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참고로 ‘람사르협약’은 습지의 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국제 조약이다. 공식 명칭은 ‘물새 서식처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Convention on Wetlands of International Importance, especially as Waterfowl Habitat)’. 1971년 2월 2일에 이란의 람사르(Ramsar)에서 체결되었기 때문에 ‘람사르협약’이라 부른다. 일명 ‘습지협약’(Convention on Wetlands)‘이라고도 한다.
▼ 보(堡) 모양으로 물길을 막아놓은 나무판자들이 가끔 눈에 띈다. 토사(土砂)의 유입을 막아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게 아닐까 싶다. 습지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장도 습지’는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농경지로 이용되었으며, 1980년부터 1990년까지는 소와 염소의 방목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습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마을의 간이상수원으로 이용되면서 방목과 논 경작은 중단되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생명수이자 뭇 생명들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 탐방로는 습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있다. 가끔은 습지(濕地)를 가로지르기도 하는데, 깊이 들어갈수록 발이 푹푹 빠지는 늪으로 이루어져 있다. 땅 밑 수십 센티까지 물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물은 썩지 않고 흘러 저수지를 이루는데 이는 습지의 흙이 이탄층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란다. 이탄층이란 썩지 않은 식물의 유해가 진흙과 함께 습지에 퇴적한 지층이다. 수질정화 기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는 물은 장도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생명수와 같은 습지를 보존하고자 섬 주민들은 오랜 세월 습지의 보존에 노력해 왔다. 20년 전부터는 가축의 방목도 금지했단다. 수질오염이 되면 마을 또한 유지할 수 없음이리라.
▼ 육지가 아닌 섬 가운데, 그것도 해발이 273m나 되는 높은 산자락에 어떻게 이런 너른(9만여㎡) 습지(濕地)가 형성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을까? 인터넷 서핑을 해가면서 찾아낸 전문가들의 의견을 옮겨본다. 전문가들은 이곳의 독특한 지형과 자연환경이 습지를 키웠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장도에 고산습지가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이곳이 스푼 모양의 형태라 물을 담아 둘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한 장도는 다도해의 다른 섬들과 달리 변성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지질구조라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30cm의 이탄층이 발달해 항상 물을 머금고 있다는 것이다. 이탄층은 기온이 낮고, 물이 많은 곳에서 식물이 죽어도 썩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는 형태를 말한다. 이탄층은 마치 스펀지처럼 물을 저장하고 수질 정화 기능을 한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해무다. 장도의 지형상 바람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부는데, 이때 산 정상에서 수분이 많은 바다 구름이 머물게 된다. 해무는 장도 산지습지에 수분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수분의 증발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단다.
▼ 이렇게 물을 머금은 습지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보물이 되었다. 장도의 강수량은 연간 1100㎜로 소우(小雨) 지역에 해당되지만, 이곳 사람들은 습지에서 내려온 물로 365일 식수는 물론이고 생활용수까지 충족할 수 있단다. 20여 년 전에는 인근의 홍도에서 물을 구하러 장도까지 오기도 했다니 어느 정도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습지는 사람 이외의 생명들에게도 귀중한 터전이 되어 주었다. 장도에는 천연기념물 매(323-7호), 흑비둘기(215호) 등과 함께 205종의 야생동물과 보춘화(춘란) 등 습지식물 294종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습지가 있어 다양한 동식물이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동물 중에는 천연기념물(330호) 수달도 포함되어 있다. 민물에서 사는 놈이 어떻게 바다 한가운데 섬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믿어지진 않지만 사실이란다. 수년 전, EBS에서 환경프로그램인 ‘하나뿐인 지구’을 취재하던 중 해안가 바위 부근에서 수달의 배설물을 발견했다고 한다. 자신의 영역 표시를 위해 배설을 하는 게 수달의 특성이니 사실일 것이다.
▼ 억새밭 초원의 습지대를 지나자 조릿대 숲이 나타난다. 어른의 키로 두어 길이 넘을 정도로 웃자란 조릿대들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휘이잉~ 휘위잉~ 울어댄다. 그 소리가 마치 고기잡이 나간 낭군을 기다리는 섬 아낙네들의 한숨소리 같이 들리기도 한다.
▼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예쁘게 지어진 팔각의 정자(亭子) 하나가 나타난다. 정자에 오르면 습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큰산의 정상 아래에 분지(盆地) 형태로 들어앉은 모양새이다. 널디 너른 평원에는 온통 억새들로 가득 차있다. 참고로 아래 사진에서 정자의 뒤편을 따를 경우 ‘큰산’의 정상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습지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금지되고 있으니 섣부른 탐방은 삼갈 일이다.
▼ 바다풍경이라고 빠질 리가 없다. 짝지기미 방향에는 망망대해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하지만 반대편 바다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옥(玉)을 갈아 물에 풀어 놓은 듯 푸른빛이 반짝이는 바다에는 작은 섬들이 떠다니고 있다. 마치 파도에 몸을 실은 돛단배라도 되는 양 작은 물결에도 반항하지 않고 몸을 맡겨버리는 모양새이다. 내망덕도와 외망덕도, 호장도 등일 것이다. 그 뒤에 옆으로 길게 늘어진 섬들은 승섬과 다물도, 대둔도 등일 것이고 말이다.
▼ 하산을 시작한다. 내려오는 길, 바람이 거세다. 이 섬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2016년 10월, 이곳 장도는 KBS-2TV에서 소개된바 있다. ’다큐멘터리(documentary) 3일‘이란 프로그램에서 ’바람과 함께 살아가다‘라는 제목으로 장도 섬사람들의 일상이 소개되었다. 당시 작가는 ’바다의 주소‘라는 문구를 만들어냈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주소를 ’속세의 주소‘로 부르면서, 이와 대비되는 뭔가를 아련한 아픔에 담아 만들어낸 어휘로 보인다. 그러면서 그는 이곳 ’장도‘의 주소를 ’바람의 길목‘이라고 했다. 농사지을 땅이 없는 이곳 주민들에겐 고기잡이나 가두리양식이 삶의 전부라고 한다. 그런데 외해(外海) 중 외해에 위치하다 보니 일 년 내내 바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기 한 마리를 건저 올리려 해도 종잡을 수 없는 바람과 씨름을 해야만 하고, 태풍 한 번 몰아치면 땀 흘려 키운 양식장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기도 한단다. 그가 굳이 ’바다의 주소‘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면서까지 강조하고 싶었던 이곳의 현실은 바로 ’바람의 길목‘이었던 것이다.
▼ 잠시 후 진행방향이 시원스럽게 열리며 환상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내망덕도와 외망덕도, 호장도 등 작은 섬들이 줄을 지어 서있는 것이 가히 환상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을 ’장도 탐방‘의 백미(白眉)로 꼽는다. 아무튼 맨 앞의 섬은 무인도인 소장도이다. 언뜻 배를 타고 나가야만 닿을 수 있는 독립적인 섬으로 보이나, 하루 두 번, 간조 때가 되면 바닷물이 빠지면서 소장도까지 길이 열린다. ’모세의 기적‘이 이곳에서도 열리는 것이다. 비바람이 불어 바다로 나갈 수 없는 날이면 섬마을 어머니들은 뭍이 드러난 소장도 길에서 고동이나 따개비를 따면서 소일 한단다.
▼ 한참을 옆으로 돌던 탐방로가 아래로 향한다. 이어서 데크계단으로 변한다. 마치 뱀이 똬리를 틀듯이 요리조리 몸통을 흔들어가며 한없이 아래로 향하는 모양새이다. 덕분에 계단 자체만 갖고도 훌륭한 눈요깃거리가 된다. 계단 아래는 장도리 마을이다. 섬사람들이 겪어온 굴곡의 세월만큼이나 비탈진 골목골목 위로 빨간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온통 붉은색 지붕 일색인 것이 흡사 유럽의 옛 도시에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이색적이란 얘기이다.
▼ 마을 앞바다에는 가두리양식장이 종(縱)과 횡(橫)으로 반듯하게 열을 이루고 있다. 행여나 바람이라도 거세질세라 주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근심의 근원이기도 한 시설이다. 섬사람들에게 바람은 곧 풍파다. 어떤 삶에 풍파가 없으랴.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바람에 맞서 싸우기보단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풍요를 가져오게 되었고 말이다. 여기서 ‘아재개그’ 하나. 이곳 주민들은 기르고 있는 해산물의 몸값에 따라 양식장의 호칭을 구분해서 부른다고 한다. 가격이 비교적 싼 다시마와 미역은 '오피스텔'과 '원룸'이라 하고, 비싼 전복과 우럭은 '맨션' 또는 '아파트'라고 한단다. 양식장 외에 봄부터 가을까지 행해지는 멸치잡이도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이라니 참조한다.
▼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러더니 소장도와 대장도를 잇는 작은 바위섬들까지도 한눈에 쏙 들어온다. 한마디로 눈이 호사를 누리는 뛰어난 풍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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