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봉도(昇鳳島 )
여행일 : ‘17. 5. 30(화)
소재지 :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 승봉리
산행코스 : 선착장→이일래해수욕장→장골해수욕장→능선너머 반대편 해안→목섬→촛대바위→주랑죽공원→선착장↔코끼리바위 왕복
함께한 사람들 : 갤러리산악회
특징 : 인천 연안부두에서 서남방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면적 6.39㎢, 해안선 길이 9.5㎞) 섬이다. 370여 년 전에 신씨(申氏)와 황씨(黃氏)라는 두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이곳에 정착하면서 이들의 성을 따서 처음에는 신황도(申黃島)라고 하였는데, 그 후 섬의 지형이 마치 하늘을 비상하는 봉황을 닮았다고 해서 지금의 명칭(昇鳳島)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전체적으로는 작은 단애(斷崖)와 사빈(沙濱)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일부 구간에서는 서슬 시퍼런 해식애(海蝕崖)를 보여주기도 한다. 목섬과 촛대바위, 코끼리바위 그리고 부채바위 근처인데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왕에 승봉도에 왔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아무튼 작고 아름다운 승봉도는 한적한 시골 풍경과 탁 트인 시원한 바다 그리고 고즈넉한 사색까지 즐길 수 있는 일석삼조의 공간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느낌’, ‘마지막 승부’ 등을 비롯해 영화 ‘패밀리’, ‘묘도야화’ 등 TV드라마와 영화 배경의 단골 무대가 되기도 했다.
▼ 찾아오는 방법
승봉도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방아머리선착장까지 와야 한다. 승봉도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승봉도까지는 차도선(車渡船 : 대부고속페리 7호)이 1일 1회(9:30)운항하는데 성수기에 한해 1일 2회(8:00와 12:00, 일요일은 14:00) 운행된다. 참!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이용할 수도 있다. 성수기에는 매일 5∼6회 정도 쾌속선(우리고속페리)이 운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승봉도(첫배 오전 8시, 마지막배 오후 3시), 승봉도~인천(첫배 오전 9시40분, 마지막배 오후 4시 40분)로 운항하니 참조한다.
▼ 방아머리선착장에서 승봉도까지는 1시간20분이 걸린다. 비록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깝다고도 할 수 없다. 지루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 항로(航路)에는 지루함을 해소시켜 줄만한 또렷한 볼거리가 없다. 대신 즐길 거리는 있다. 갈매기가 떼로 몰려다니기 때문이다. 매점에 들러 새우깡 한 봉지만 산다면 까짓 한 시간 정도야 금방 흘러가버릴 것이다. 갈매기들을 희롱하다보면 말이다.
▼ 그렇게 갈매기들과 놀다보면 유난히도 큰 건물이 들어앉은 섬 하나가 나타난다. 봉황이 날아가는 형세라는 승봉도이다. 건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승봉도의 랜드마크(landmark)였던 동양콘도이다. 150실이나 갖춘 이 대형콘도는 여름철이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었다.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쪽빛 바다를 내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고 시설도 망가진 채로 을씨년스러울 따름이란다. 2010년 모회사가 부도나면서 다른 이에게 넘어갔지만 회원분양권과 시설보증금 등의 문제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 배에서 내리면 ’승봉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대형 아치(arch)가 여행객들을 맞는다. 그 뒤에서 개그맨 이용식씨가 활짝 웃고 있다. 산과 바다가 하나가 되는 섬에 오신 걸 환영한다면서 말이다. 옹진군의 섬에서 만나게 되는 익숙한 풍경들이다. 참! 그 옆에 세워진 ’승봉도선착장 안내도‘를 깜빡 잊을 뻔 했다. 그 안내판에 적혀있는 ’치유의 섬‘이라는 문구는 뭘 의미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 섬이 온통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남쪽 백사장 뒤편에서 북동쪽으로 밀식되어 있는 수령 20∼30년의 곰솔은 이 섬의 자랑거리이다. 아무튼 소나무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가장 많이 배출되는 나무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 피톤치드는 몸으로 스며드는 각종 병균의 살균기능을 갖고 있다. 안내도에 ’치유의 섬‘이라는 문구를 쓴 이유가 아닐까 싶다.
▼ 길가에 ’승봉도 관광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한번쯤 살펴보고 트레킹을 나서볼 일이다. 아니 꼭 숙지하고 출발하라고 권하고 싶다. 승봉도의 가장 큰 단점은 꼭 필요한 곳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섬에서 자랑하는 명소(名所)들까지도 들머리를 찾을 수 없었다면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트레킹을 나서기 전에 지도(地圖)부터 숙지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될 수가 없다. 필수사항인 것이다.
▼ 바닷가로 난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여객선승객 대합실과 특산물판매장을 지나면 캠핑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왼편으로 나뉜다. 420m 지점에 위치한다는데, 계속해서 진행할 경우 연꽃단지(1000m)도 만날 수 있단다.
▼ 잠시 후 바닷가가 끝나는 곳에 이르자 ’나의 고향 승봉도‘라고 쓰인 표지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주변을 꽃밭으로 가꾸어 놓은 것이 정성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하다. 자신들의 고향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일 것이다.
▼ 표지석을 지났다싶으면 왼편으로 모내기가 한창인 들녘이 펼쳐진다. 자그만 섬치고는 제법 너른 들녘이다. 그리고 이런 들녘들은 섬의 곳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농사를 지을 만한 경작지가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 최고지점의 높이가 93m에 불과한 승봉도의 대부분은 높이 40~60m 정도의 구릉지(丘陵地)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 드나듦이 심한 만(灣)의 안은 간석지(干潟地)가 널따랗게 펼쳐진다. 그 간석지가 현재는 농경지로 바뀌어져 있다. 그래서 주민들 대부분은 어업보다는 농업에 종사한다. 농산물로는 쌀과 보리, 콩, 마늘, 고추 등이 생산되는데, 특히 쌀은 자급을 넘어 수매까지 이루어 질 정도라고 한다.
▼ 선착장에서 10분 남짓 걸었을까 70호 정도 되는 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빨갛고 노란 지붕을 가진 집들은 띄엄띄엄 있지 않고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이마를 맞댄 채 옹기종기 모여 있다. 승봉마을로 섬에서 유일한 마을이라고 보면 되겠다. 다른 곳에서도 여행자들을 위한 민박집 한두 채씩 보이긴 하지만 마을의 여건을 이루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마을은 제법 번화하다. 마을회관은 물론이고 보건진료소와 치안센터, 초등학교, 발전소 등의 공공기관이 들어서 있다. 성당과 교회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이곳은 시설 좋은 민박이 여럿 운영되고 있다.
▼ 마을을 통과해 언덕에 오르면 ’도깨비마트‘가 나타나고, 곧이어 오른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 ’이일레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이정표(이일레해수욕장→ 0.3Km/ 촛대바위↑ 2.3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일레해수욕장은 섬의 남쪽 해안에 위치하는 해수욕장으로 길이 1.3Km에 폭이 40m쯤 되는 백사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래사장 뒤로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어 시원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서해안 해수욕장들의 대부분이 갯벌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 ’이일레해수욕장‘은 썰물 때라도 갯벌이 나타나지 않는다.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는 얘기다. 백사장의 경사도 완만한데다 수심까지 낮아 어린아이나 노인이 있는 가족이라도 안심하고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바다 건너편에서 대이작도와 사승봉도가 고개를 내민다. 그 왼편에 보이는 섬은 상․하공경도일 것이다.
▼ 이일레해수욕장은 물이 빠질 경우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해수욕장과 연결된다. 한적하기로 소문난 장골해수욕장이다. 두 해수욕장의 경계선은 크고 작은 갯바위들로 구분된다. 걷는 게 쉽지만은 않은 구간이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갯바위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자연산 굴을 따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런 장점을 그냥 지나칠 집사람이 아니다. 냉큼 쭈그려 앉더니 호미부터 꺼내들고 본다. 평소부터 챙겨 다니던 호미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집사람이 건네주는 굴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꺼내든다. 하지만 딱 한 잔이다. 기념이라고 보면 되겠다. 지금은 굴을 먹는 시기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자칫 장염비브리오균(Vibrio parahaemolyticus)에라도 감염된다면 낭패가 아니겠는가. 참고로 굴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말부터 다음해 4월초까지가 제철이다.
▼ 장골해수욕장으로 향한다. 해안선 산책코스로 제격이라니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모래밭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저만큼에 어선(漁船) 두 척이 매어져 있는 작은 선착장(船着場)이 나타난다. 선착장 조금 못미처의 왼편 산자락에는 낡은 폐가(廢家)가 한 채 보인다. 이쯤에서 바닷가를 빠져나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목섬으로 넘어가는 일주도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첫 번째 실수가 아닐까 싶다.
▼ 바닷가 끝자락에 만들어진 선착장에 이르면서 해변을 따르는 진행은 불가능해진다. 마침 산자락에 오솔길이 나있다. 밧줄까지 매어 놓은 것이 동네주민들이 배를 대기 위해 오갈 때 이용하는 길인 모양이다. 잠시 후에 올라선 능선에서 길은 둘로 나뉜다. 왼편 능선을 따라 길이 나있는가 하면 반대편 바닷가를 향해서도 밧줄이 매어져 있다. 우린 반대편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두 번째로 저지른 실수였지만 말이다.
▼ 해안은 조금 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모래사장 일변도였던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바위투성이로 변해있는 것이다. 크고 작은 갯바위들로 이루어진 해변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은 풍경을 보여준다.
▼ 갯바위는 갈수록 사나워진다. 그리고 저만큼에 목섬이 보이는가 싶으면 결단이 요구된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갯바위를 타느냐를 갖고 말이다. 우리 일행은 그만두기로 했다. 육십을 넘긴 여성들이 오르내리기에는 갯바위들이 너무 험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부근의 바위들에는 줄무늬가 나있다. 퇴적암이 변성된 변성암이 아닐까 싶다. 중간에 마그마가 관입한 흔적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걸로 보아 오래 전에 강한 화산작용이 있었던 모양이다.
▼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는 아무 곳이나 선택해서 위로 치고 오르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결정은 현명했다. 잠시만 고생하면 능선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능선을 따라 난 길을 만나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린 왼편으로 진행해버린 것이다. 아까 고개를 넘어 다른 편의 바닷가로 내려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지 하지 못했던 게 그 원인이었다. 우리가 저지른 세 번째 잘못이었다.
▼ 결국에는 아까 지나왔던 선착장으로 내려서고야 말았다. 가시덤불이 가득한 길을 헤쳐 나오느라 엄청나게 고생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장골해수욕장에 내려선 다음 이번에는 앞에서 거론했던 폐가 방향의 산자락을 치고 오른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희미하게나마 길이 나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 잠시 후 목섬으로 연결되는 일주도로가 나타난다. 이제야 제대로 된 길을 걷는 셈이다. 이어서 고갯마루에서 오른편으로 갈려나가는 능선 하나를 만난다. 아까 우리가 길을 잃었던 능선이다. 또렷하게 길이 나있는 것이 아까의 실수가 더욱 안타까워진다. 길만 헷갈리지 않았더라면 수월하게 이곳까지 왔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고개를 넘어 내려서니 삼거리(이정표 : 목섬↗ 0.5Km/ 촛대바위↖ 0.7Km)가 나온다. 오른쪽은 목섬 해안탐방로, 왼쪽은 촛대바위로 가는 길이다. 먼저 섬 동쪽의 목섬으로 방향을 잡았다. 잠시 후 오른편으로 너른 백사장이 펼쳐진다. 이곳 주민들은 이 일대를 일러 ‘부두치’ 또는 ‘부디치’라고 부른다. 파도가 많이 부딪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바다로 내려가는 들머리에 ‘해양생태계보전지역’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 승봉도 주변은 모래갯벌과 바위해안 등 뛰어난 자연경관과 하벌천퇴(下伐川退, 모래섬)의 특이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넙치와 가자미 등 수산생물과 기타 기저생물들의 주요서식처란다. 그래서 학술적 연구와 자연경관의 유지를 위하여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며 이곳에서 금지해야 할 행위를 나열해 놓았다. 아무튼 바다에는 김 양식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 승봉도가 먼 바다가 아니라 앞바다라는 증거일 것이다.
▼ 잠시 후 목섬으로 연결되는 목조데크 탐방로가 나타난다. ‘승봉도산책로’라는 의젓한 이름까지 갖고 있는 길이다. 그런데 시설물을 보수한다며 입구를 막아버렸다. 공사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의 말로는 탐방로의 이용이 불가능하단다. 그럼 이곳 승봉도의 3대 볼거리 중 하나라는 목섬을 포기하란 말인가. 절대 그럴 수는 없다.
▼ 데크 아래로 내려선다. 길이 없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걷는 게 여간 사납지가 않다. 집사람과 친구들을 떼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촛대바위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 혼자서 목섬으로 향한다. 하지만 오래 이어갈 수는 없었다.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바윗길이 사나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별 수 없이 데크로드로 올라선다. 공사하는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목섬으로 향한다. 묵인을 해주는 것으로 보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걸 그도 알고 있었음이리라.
▼ 1.2Km 정도 되는 데크로드의 끝에는 정자(亭子)가 지어져 있다. 바로 앞의 목섬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이다. 바닷가로 내려서니 삼각형 모양의 목섬이 바로 코앞이다. 뒤에 보이는 섬은 ‘금섬(金島)’이다. 마침 물이 빠져나가는 썰물 때인지라 섬까지 모래밭으로 연결되어 있다.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이다. 밀물 때는 섬이지만 지금과 같이 썰물 때는 육지로 변하는 특이한 섬이라고 보면 되겠다. 혹자는 목섬으로 들어가는 길을 일러 ‘모세의 기적’이라고도 한다. 조금 옹색하기는 하지만 옳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 목섬을 둘러보고 난 뒤에는 승봉도의 또 다른 명물인 촛대바위로 향한다. 아기자기한 해벽(海壁)으로 이루어진 바닷가를 따라 최근에 목제데크 탐방로를 만들어 놓았다. 아기자기한 해벽과 함께 모래와 자갈, 조개껍데기가 한데 어우러져 형성된 아름다운 해변이다.
▼ 데크로드가 끝나면 길은 왼편 산자락으로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능선에 오르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 능선을 따른다. 최근에 지어진 정자(亭子)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소리개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 정자에 오르면 일망무제의 조망(眺望)이 펼쳐진다. 조금 전에 지나온 목섬 방향의 해안선은 물론이고 이따가 걷게 될 동북방향의 해안선까지도 한눈에 잘 들어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다에는 부도와 풍도, 난지도, 육도군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파도에 떠밀려 다닌다. 그 너머로 보이는 뭍은 당진 땅일 것이다.
▼ 정자에서 내려와 이번에는 오른편 길을 따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밀가루처럼 고운 흙먼지가 풀썩풀썩 올라온다. 그만큼 가물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잠시 후 길이 두 갈레로 나뉜다. 두말할 것 없이 바닷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렇게 잠시 내려서면 ‘부두치’ 해안의 끄트머리에 이른다. 소리개산의 밑이라고 해도 되겠다. 규암 성분의 암석들이 널린 이곳에는 촛대를 쏙 빼다 닮은 ‘촛대바위’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해변은 잠깐의 놀이터로 충분하다. 그중에도 성인의 키로 세 길쯤 되어 보이는 바위가 가장 뛰어나다. 마침 밧줄까지 매어져 있으니 올라가는 것을 사양할 필요는 없다. 주변 풍광에 어울리는 갖가지 포즈를 취하다보면 사람과 바위, 그리고 바다가 언제부턴가 하나로 되어있다.
▼ 놀이터를 벗어나 촛대바위로 향한다. 설치한지 얼마 되지 않은 목제데크 탐방로를 따른다. 거대한 바위벼랑 아래로 지나가는 탐방로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 잠시 후 탐방로가 끝나는 곳에서 촛대처럼 뾰쪽하게 솟아오른 바위 하나를 만난다. 어찌 보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촛대바위’라는 이름을 붙였다. 촛대에 더 가깝게 보인다는 증거일 것이다. 참고로 촛대바위는 시스텍(sea stack, 암석이 파도의 침식을 차별적으로 받아 만들어진 굴뚝 형태의 지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씨 아치’가 파도에 의한 침식과정을 한 번 더 거치면서 생겨난 바위라는 얘기이다.
▼ 촛대바위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에는 바닷가를 걷는다.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모여 있는 코너를 지나자 또 다른 해안이 나타난다. 승봉어촌계 소유의 면허어장이니 사전허가 없이는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까지 걸어 놓았다. 그렇다면 우린 처벌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해안을 벗어나기로 한다. 그리고 일주도로로 올라선다.
▼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걸으면 길이 두 갈래(이정표 : 주랑죽공원→/ 산책로입구←/ 촛대바위↓)로 나뉜다. 주랑죽공원으로 내려서자 오른편에 또 다른 해안선이 펼쳐진다. 널따랗게 펼쳐진 바닷가에는 커다란 바위들을 깔아 놓았다. ‘해양생태계보호구역’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걸로 보아 생태계 보호를 위한 조치가 아닐까 싶다.
▼ 잠시 후 ‘주랑죽공원’에 이른다. 수목(주목 외 9종, 해당화 외 7종)과 자생화(섬 기린초 외 18종)들을 심어놓은 녹지공간에는 정자(亭子)와 피크닉 테이블, 급수대,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다리품을 쉬어가며 준비해온 간식으로 요기하기에 딱 좋은 공간이 아닐까 싶다. 운동기구들까지 몇 개 설치해 놓은 것을 보면 이곳 주민들의 쉼터로도 이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 공원은 온통 해당화 천지다. 울타리는 물론이고 조그만 틈이라도 날라치면 해당화들이 비집고 들어섰다. 아름다운 꽃망울을 활짝 연 해당화가 정자 등 주변 풍물과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참! 이 정자 옆에서 바닷가로 내려서야 ‘코끼리바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물론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버리는 이유이다. 우리 역시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愚)를 범하고야 말았다.
▼ 꽃의 지름이 평균 5cm를 넘는 해당화는 바닷가 모래땅에서 잘 자라며 오뉴월에 꽃이 핀다. 꽃잎은 분홍색, 진분홍색, 검붉은색 등 빛깔이 다양하고 때론 흰색도 있다. 다섯 장의 꽃잎 가운데에는 노란 꽃술이 튀어나와 벌과 나비를 꼬드긴다. 장미과 식물답게 줄기에는 가시가 무성하다. 향기가 좋아서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 공원을 지나 고개 하나를 더 넘자 또 다른 해안이 나타난다. 길가에 화장실을 갖춘 헬기장까지 만들어진 해안이다.
▼ 그런데 이곳에서 봐서는 안 될 풍경을 만나고 만다. 오른편 해안에 눈에 익은 바위 하나가 우뚝 서있는 것이다. 승봉도가 자랑하는 명물 중 하나인 ‘부채바위’이다. 그렇다면 우린 ‘코끼리바위’를 그냥 지나쳐버린 셈이 된다. 아까 주랑죽공원에서 바닷가로 내려서야 했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은 탓으로 봐야 할 것이다. 되돌아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선착장으로 향해버린다. 주문해놓은 점심에 때를 맞추려면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 이정표 하나 제대로 세워놓지 않은 행정당국을 향해 육두문자(肉頭文字)를 쏟아내며 승봉리로 향한다. 안말 해변에서 긴 오르막을 통과하면 승봉도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선다.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섬 속의 분지(盆地)에 수많은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섬은 물이 풍부해서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아왔다. 그 때문인지 이곳 승봉도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섬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유물 패총(貝塚)이 이를 증명한다. 서쪽 해안가에 위치한 구릉에서는 2줄의 평행심선문(平行深線文)이 그어진 토기편이 채집되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파손부의 보수공(補修孔)으로 보이는 작은 구멍이 있는 빗살무늬토기 아가리부분 1점이 수습되었다고 한다.
▼ 선착장 근처에 있는 ‘승봉선창’이라는 음식점에 자리를 잡는다. 산악회에서 점심을 예약해 놓았기 때문이다. 준비된 메뉴는 ‘생선회 비빔밥’, 자그마한 섬에 있는 식당치고는 맛이 뛰어났다. 생선회 또한 넉넉하게 넣어 별도의 안주를 주문하지 않고도 소주 한 병을 너끈하게 비울 수가 있었다. 이 식당의 또 다른 장점은 노래방기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타고 나갈 배가 들어올 때까지 어깨춤을 추며 놀다가기에 딱 좋다.
▼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시 길을 나선다. 출항시간(16:20)까지 남아도는 1시간 정도의 자투리시간을 이용해서 아까 놓쳤던 ‘코끼리바위’를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재빠른 걸음으로 20분이면 만나게 되는 ‘주랑죽공원’에서 바닷가로 내려선다. 몽돌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운치 있는 풍광을 그려내는 해안이다.
▼ 바닷가로 들어서자 해식절벽(海蝕絶壁)이 나타난다. 절벽의 곳곳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파도가 만들어낸 해식동굴들이다. 잠시 후에 만나게 되는 ‘코끼리바위’와 아까 눈요기를 즐겼던 ‘촛대바위’와 함께 해식지형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는 중요한 자료가 아닐까 싶다. 해식절벽에서 해식동굴을 거쳐 ‘씨 아치(sea arch, 독립문처럼 암석 기저부가 뚫린 다리모양의 파식지형)’로 변하고, ‘씨 아치’가 세월이 흐르면 ‘시스텍(sea stack, 암석이 파도의 침식을 차별적으로 받아 만들어진 굴뚝 형태의 지형)’이 되기 때문이다.
▼ 이어서 잠시 후에는 승봉도 제일의 절경으로 꼽히는 ‘코끼리바위’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바닷가 기암괴석들 모두가 다 그렇듯 이 바위도 긴 세월 동안 파도에 깎이고 비바람에 씻긴 끝에 만들어졌다. 이 바위가 그중에서도 유명한 이유는 썰물 때만 그 모습을 나타내고 각도에 따라 문(門)의 형상, 또는 코끼리의 형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독립문바위’라고 부르지만 난 ‘코끼리바위’라는 이름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내 눈에는 코끼리가 코를 대고 물을 마시는 형상을 쏙 빼다 닮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바위는 연인들이 찾는 필수코스로 알려져 있다. 이 바위 아래를 지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俗說)이 전해지는데 어느 연인인들 이를 놓칠 리가 있겠는가.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썰물 때까지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꼭 통과해 볼 일이다.
▼ ‘코끼리바위’ 해변에서 물 빠진 바닷가를 따라 조금만 더 걸으면 승봉도의 또 다른 명물인 ‘부채바위’가 나타난다. 그 생김새가 부채와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바위에는 유배생활의 지겨움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서 시를 쓰던 선조들이 유배가 풀린 후 시험장에서 그 글을 쓰니 장원이 됐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 에필로그(epilogue), 승봉도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섬 중의 하나이다. 모래사장의 경사가 완만한데다 썰물 때도 갯벌이 드러나지 않는 뛰어난 해수욕장들이 널려있는가 하면 목섬이나 촛대바위, 코끼리바위, 부채바위 등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을 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관할 지자체의 노력만 조금 더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여행객들이 몰려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지자체의 노력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곳곳에 공원과 쉼터, 화장실, 테크탐방로 등의 편의시설들을 만들어 놓은 것이 그 증거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은 현재도 진행 중이었다. 목섬에서 부채바위로 이어지는 해안선에 새로운 탐방로를 개설하면서 목제로 데크로드를 만들고 소리개산에는 정자를 짓는 등 부단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흔적들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들이 모두 공허하게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여행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하나가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행자들이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지도를 찾을 것이다. 어떤 때에는 나침반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이때까지의 준비는 물론 여행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도의 기점(基點)으로 삼을 만한 그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그 무엇을 이정표로 삼는다. 그런데 이곳 승봉도는 꼭 필요한 곳에서 이정표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덕분에 지도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이런 중요한 부분까지 놓쳐가면서 어떻게 여행객들 유치하겠단 말인가. 불편한 심기를 추스르며 관할 지자체인 옹진군에 고언(苦言)을 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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