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두바이,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일 : ‘16. 3. 12(토) - 20(일)
일 정 :
○ 3.13(일) : 두바이
○ 3.14(월) : 스위스(루체른)
○ 3.15(화)-19(토) : 이탈리아(밀라노, 피렌체, 로마, 소렌토, 폼페이, 나폴리, 베니스, 볼로냐)
여행 다섯째 날 오전 : 나라 안의 나라 ‘바티칸시국(Vatican City State)’의 박물관(Musei)
특징 : 유럽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이탈리아’이다. 그중에서도 여행객들이 빼놓지 않고 꼭 들리는 곳이 바로‘바티칸시국(Vatican City State)’이다. 이탈리아의 로마 북서부에 있는 면적 0.44km²에 불과한 이 곳은 인구 1,000명이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다. 하지만 ‘바티칸’은 교황이 지배하는 독립국으로, 가톨릭 최고의 성지다.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에 미치는 영향력만큼은 매우 강력하다. 가톨릭의 본거지로 종교적 구심점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문화예술의 보고’이기도 하다. 강력한 권력을 누렸던 교황들이 수집한 고문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명작을 비롯해 뛰어난 예술품들이 가득해 발길 닿는 곳마다 당대의 명작이 눈을 사로잡는다. 가톨릭신자는 물론 로마를 방문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꼭 한번 바티칸을 들리는 이유다.
♧ 바티칸박물관(이탈리아어 : Musei Vaticani) : 세계 최대급 규모의 미술관 가운데 한 곳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세워진 광대한 전시관에는 수세기에 걸친 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바티칸 궁’은 총 1400개가 넘는 방들로 이루어진 궁전이다. 그중 교황들이 모아 온 예술 작품들을 전시한 몇몇 건물이 박물관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바티칸 궁’은 1377년 교황이 아비뇽 유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퇴락한 권위를 다시금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궁전이다. 그러다 보니 그 화려함과 웅장함이 극치에 달한다. 건물들은 1550년대부터 짓기 시작한 것이다. 박물관은 안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뿐만 아니라 건물의 외관 또한 하나의 예술품이라는 얘기이다. 바티칸 박물관은 교황 율리우스 2세(1503~1513)가 개인적으로 모아 두던 소장품들의 전시에서 그 기초를 찾을 수 있다. 현재의 박물관의 모습은 교황 클레멘스14세(1769~1774)와 피우스 6세(1775~1799)가 적극적으로 후원해 기초를 다졌다. 이후에 고레고리우스 16세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서 수행되던 발굴 작업으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들을 가지고 에트루스코 박물관을 설립한다(1837). 또한 바티칸 궁궐에서 소장할 수 없던 이집트 탐사에서 발견한 고대 물품들과, 바티칸과 카피톨리노 박물관에 소장되던 물품들, 그리고 로마 시대의 석상들과 모자이크들을 소장한 이집트 박물관(1839)도 설립했다. 이후 1900년대에 박물관 모습이 정비되었고 1970년도에 들어서서 지금의 박물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00년도에는 지금의 박물관 입구가 건립되어 본격적인 바티칸 박물관의 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일반 관람객들에게 모든 전시물이 공개되지는 않는다.
▼ 버스에서 내려 바티칸시티(Vatican City)로 가는 길, 가이드의 채근이 심하다. 조그만 차이로 인해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많이 늘어나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입장객들이 늘어선 줄이 시간과 비례해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버린단다. 그 덕분에 우린 뛰다시피 해서 바티칸시티의 성벽(城壁) 아래에 도착했다. 바티칸 전체를 둘러싼 이 성벽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845년 외세의 침략을 받은 이후에 쌓은 것이라고 한다. 서두른다고 부산을 떨어봤지만 그게 그거였나 보다. 먼저 도착한 여행자들이 만들어 놓은 줄이 그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었기 때문이다. 입장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 늘어선 줄이 들어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속도는 지렁이가 기어가는 수준에 가깝다. 왜 그렇게 속도가 느린지는 게이트 앞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 반대편의 줄이 끝나야만 우리 쪽 줄의 입장이 허락되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의 관람 시스템(system)이 ‘온라인(on-line) 예약’을 위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때문에 우리같이 현장에서 티켓을 구입한 사람들은 입장을 하다가도 온라인 예약자들이 오면, 그들을 먼저 들여보낸 후에야 다시 입장이 가능한 것이다.
▼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색대들 통과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통과절차가 거의 국제공항 수준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겠다. 비록 작다고는 하지만 바티칸시티(Vatican City)도 어엿한 국가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국경을 넘어가고 있는 셈이 된다. 거기다 세계적인 문화재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니 어찌 허술하게 통과를 시켜줄 수 있겠는가.
▼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하면 이어폰 달린 수신기가 지급된다. 이곳에서 잠깐의 짬이 허락된다. 박물관 안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미리 다녀오라는 것이다. 그 시간에 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사진에서 보아오던 조각품들이 보인다. ‘벨베데레의 토르소(Belvedere Torso)’는 알겠는데 다른 것들의 이름은 생각이 안 난다. 나도 기억이 흐려지는 나이가 되었는가 보다. 참고로 이 조각품들은 모조품이다. 진품은 잠시 후 박물관 안의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오른다. 이번에도 역시 조각품들을 만나게 된다. 하나 같이 맨몸이다. 그리고 거침없이 성기(性器)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누구하나 그것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없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예술과 외설(猥褻)의 차이인가 보다.
▼ 바티칸 투어는 기본적으로 미술관 여행이다. 본격적으로 관람하기 전 개략적인 해설과 눈 여겨 봐야 할 작품에 대한 설명이 30분 이상 이어진다. 이를 위한 공간이 '피냐의 안뜰(Cortile della Pigna)'이다. '피냐의 안뜰'은 '천체 중의 천체'라는 현대 조각 작품과 고대 로마를 상징하는 거대한 '솔방울의 분수'가 인상적이다.
▼ 본격적인 투어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햇볕을 쬐며 숨을 고르는 곳이다. 박물관 안에서 지켜야할 기본 에티켓과 전시된 예술품에 대한 기초 소양을 미리 알아두는 것은 물론이다.
▼ 정면으로 바티칸 박물관(이탈리아어 : Musei Vaticani) 건물이 보인다. 바티칸박물관은 성 베드로성당(바티칸대성당)에 인접한 교황궁 안에 있는 여러 미술관 등을 아우른다. 하지만 곳곳에 작품이 있어 발길 닿는 곳은 전부 박물관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참고로 박물관의 시초는 1503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아폴론 상’을 궁 안의 벨베데르 정원에 들여온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3년 뒤 ‘라오콘 군상’이 더해졌는데, 이때부터 박물관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보는 탓에 2006년 500주년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라오콘 군상’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 로마를 상징한다는 4미터가 넘는 거대한 '솔방울의 분수'이다. 저 솔방울로 인해 ‘솔방울 정원’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단다. 솔방울 조각 아래 계단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고 계단 앞 양쪽에 위치한 두 사자 조각은 BC 4백년에 만들어졌는데 이집트의 것이라고 한다.
▼ 지구의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지구 보양의 조형물 ‘천체 속의 천체’도 눈에 띈다. '아르날도 포모도로(Arnaldo Pomodoro)'의 작품이란다.
▼ 광장의 한켠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등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이는 시스티나 예배당에서는 사진 찍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그림의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작품 설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이드들도 보인다. 시스티나 예배당 안에서는 작품에 대한 설명도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설명은 대부분 기독교와 로마의 역사, 성경의 주요 장면들,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미술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더 없이 좋은 기회이고, 그렇지 않은 여행자에게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다.
▼ 바티칸 박물관 내부로 들어간다. 바티칸의 궁전을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다. 박물관 입구 왼쪽에 있는 계단으로 오르면 바로 이집트 박물관 쪽으로 갈 수 있다. 계단에 오르기 전 오른쪽으로 길고 넓은 통로에 각종 조각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키아라몬티 전시관(Museo Chiaramonti)’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을 그냥 지나쳐버린다. 앞으로 보게 될 예술품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상당히 중요한 곳이다. 브라만테가 만든 복도이며, 이곳의 조각물은 기원전의 작품에서 기원후 1, 2세기에 걸친 오래된 작품들이 많다. 이탈리아 고대사와 복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키아라몬티(Chiaramonti)는 1800~1823년에 교황으로 재직한 인물이다. 1807년에 안토니오 카노바의 계획으로 이 복도에 1000개가 넘은 조각물을 전시했다.
▼ 키아라몬티 전시관에 있는 여러 조각 작품들은 전부 ‘진품’이란다. 그리고 이 전시관에 있는 작은 조각품 하나에 불과할지라도, 다른 박물관에 가면 최고의 대접을 받고도 남을 작품들이 수두룩하단다. 그러나 이곳에는 워낙 뛰어난 작품들이 많아서 안타깝게도 대개의 작품들은 작은 명찰 하나만을 달고 구석에 전시되어 있다. 누군가 그랬다. ‘이곳 구석의 조각물 5개만 있으면 한국에다 큰 미술관을 만들고도 남는다.’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닐 수도 있겠다.
▼ 벨베데레 궁전의 뜰(Cortile Ottagonable)에 든다. 팔각형 형태의 뜰로, 역대 교황들이 모아 놓은 조각상들이 있다. 이 곳에서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를 거쳐 1800년대까지의 다양한 조각들이 전시돼 있는 ‘피오-클레멘타인 박물관(Pio-Clementine Museum)’을 접할 수 있다. 박물관은 ‘동물의방’, ‘뮤즈의 방’, ‘원형의 방’, ‘그리스 십자가의 방’ 등 여러 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 미술관에서 가장 주목해봐야 할 작품은 ‘라오콘 군상(Laocoon and His Sons)’이다. 이 조각상이 미술관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1506년 1월 14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0년 전.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인근의 포도밭에서 조각상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 신의 점술사이자 신관인 라오콘(Laocoon)을 새긴 조각상이다. 당시 교황이었던 율리오 2세는 이 조각상을 구매하여 바티칸에 진열하여 일반 대중들이 볼 수 있게 했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 시점을 ‘비오-클레멘스 박물관(Pio-Clementine Museum)’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라오콘(Laocoon)은 독신을 지키겠다던 맹세를 어기고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로 아폴론 신이 보낸 포르케스와 카리보이아(또는 쿠리시아나 페리보이아)라는 2마리의 큰 바다뱀에 깔려 그의 쌍둥이 아들인 안티파스와 팀브라이우스(또는 멜란토스)와 함께 죽었다. 이런 벌을 받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인들이 놓고 간 목마를 성내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트로이인들에게 경고함으로써 천기를 누설했기 때문이다. 앞에 있는 조각상은 뱀에게 질식당해 죽어가는 장면이라고 보면 된다. 고통으로 뒤틀린 라오콘의 육체와 일그러진 표정,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핏줄과 뱀을 떼어 내려 안간힘을 쓰는 그의 팔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마저 느끼게 한다. 다른 곳에 비해 커진 손과 다리, 그리고 지나치게 왜소하게 묘사된 두 아들 때문에 전체적인 비례는 맞지 않지만 강렬한 감정 표현을 저해하지는 않는다. 미켈란젤로는 이 조각을 '예술의 기적'이라고 했으며 그의 후기 작품들, 특히 미완성의 '피에타'들은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 ‘티그리스강 석상(Stautue of the Tigirs River)’도 눈여겨 볼만하다. 나일강을 의인화한 조각상인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일강의 신(Staute of the Nile recumbent)’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작품으로 ‘라오콘군상’과 마찬가지로 헬레니즘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 그리스 신화의 가장 이상적인 남성상인 ‘벨베데레의 아폴로(Apollo del Belvedere, Apollo Belvedere)’도 눈에 담는다. 활을 쏜 직후 날아가는 화살을 응시하고 있는 ‘아폴로 상(像)’은 미(美)와 조화, 그리고 균형감까지 갖춘 고전미(古典美)의 표준이다. 기원전 4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 대해 독일의 미술사가이자 고고학자인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은 ‘자연과 예술,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성취’라고 평가했을 정도이다. 남성의 육체를 어쩌면 이처럼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을까? 또 하나 아폴로의 어깨와 팔에 걸쳐진 망토의 사실적인 주름과 그의 발에 신겨진 샌들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 비너스 펠릭스(Venus Felice), 기원전 4세기경에 프락시텔레스(Praxiteles)가 만든 비너스상을 모방하여 만든 작품이란다. 이 조각의 얼굴은 2세기경의 한 여왕후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부인인 파우스티나이거나 혹은 코모두스의 부인이며, 파우스티나의 며느리인 크리스피나의 모습으로 추정 된단다.
▼ 벽감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고대 로마의 조각들. 하나하나가 미술의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말 그대로 '고전'의 작품들이 계속 이어진다.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의 작품인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Perseus and the head of Medusa)’도 그중의 하나이다.
▼ 뮤즈의 방(Sala delle Muse)에는 그리스 로마시대에 나오는 9명의 뮤즈여신상이 전시돼 있다. 학물, 예술, 시 등을 주관하는 신으로, 티볼리에 있는 하드리아누스 별장에서 발굴한 것을 복사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방에서 최고 인기 있는 작품은 ‘토르소’이다, 미켈란젤로가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하다고 극찬한 작품이다. 애초부터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형상으로 발견된 ‘벨베데레의 토르소(Belvedere Torso)’는 강렬한 남성미를 느끼게 한다. 짐승 가죽을 깔고 앉아있는 남성의 상체만 남아있는데, 아테네의 아폴로니오스가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중 한 명인 아이아스 장군이 자결하는 모습으로 추정된단다. 특히 이 작품을 좋아했던 미켈란젤로는 작품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자 '이것만으로도 완벽한 인체의 표현'이라 극찬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예술 정신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 이곳은 동물들의 조각을 모아놓은 ‘동물의 방(Sala Degli Animali)’이다. 훌륭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는 동물모양으로 기초를 닦은 후 인체조각으로 넘어가는 수순을 밟았다고 한다.
▼ 원형의 방(Sala rotonda)은 돔으로 된 천장이 인상적이다. 이 돔은 로마 ‘판테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크기가 21.6m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큰 원형을 그리고 있는 이 방에는 헤라클레스, 주피터, 안토니우스, 하드리아누스황제, 헤라 등 로마 황제의 두상과 그리스, 로마의 신상들이 전시돼 있다.
▼ 중앙의 커다란 그릇모양의 대리석 욕조(浴槽)는 ‘희대의 폭군’이었던 네로황제가 사용했던 것이란다. 원경 5m 크기의 적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적색대리석이 하도 귀하던 시대라서 황제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욕조가 꽤 높아 어떻게 올라갔을까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노예를 엎드리게 한 다음, 그의 등을 딛고 올라가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욕조가 놓인 바닥은 모자이크로 되어 있다. 오트리꼴리 욕장 유적에서 통째로 가져온 것인데, 고대 로마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섬세한 무늬가 특징이다. 이 모자이크는 로마신화를 주제로 한 1세기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 다음은 ‘그리스 십자가의 방(Sala a Croce Greca, Greek Cross Gallery)’이다. 입구 양쪽을 지키고 있는 텔라몬(Telamons)은 파라오(Pharaoh)로 분(扮)한 안티누스(Antinous)의 상(像)을 말하는데, 이탈리아어로는 ‘텔라모네(Telamone)’라 하고 치오치(Cioci)‘로도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아스완에서 가져온 붉은 화강암이나 섬장암으로 된 이 조각상의 높이는 3.35m로 1450년경 ’빌라 아드리아나(Villa Adriana‘에서 발견되었다.
▼ ‘그리스 십자가의 방(Sala a Croce Greca)’은 그리스 십자가 모양으로 디자인 된 방으로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붉은 석관(石棺)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쟁하는 장면의 부조가 있는 석관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딸 콘스탄차이다. 또한 전쟁의 여신 ‘아테네’와 ‘이지스’가 그려진 원형 모자이크로 장식된 바닥도 눈길을 끈다. 모자이크는 투스콜라나(Tuscolana) 지역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 ‘그리스십자가의 방’과 연결된 계단을 올라가면 시스티나예배당으로 연결되는 복도가 길게 이어진다. 복도의 양 옆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교황 ‘클레멘토 14세’가 만들고 ‘피오 6세’가 확장한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Museo Pio Clementino)이란다. 이 구역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공간은 ‘촛대의 방(Galleria dei Candelabri)’이다. 고대에 무덤 속을 밝히기 위해 놓았던 촛대와 꽃병, 컵, 그리고 작은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천장화가 더 눈길을 끈다. 성서의 이야기를 알려주는 화려한 프레스코로 장식돼 있는데, 화려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촛대의 방은 8개의 촛대 모양의 조각상들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곳의 대표 작품은 ‘아르테미스 여신상’과 주신 ‘바코’와 ‘사티로스’상이다.
▼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공간은 아라찌의 방(Galleria degli Arazzi)이다. 예술가들의 그림 위에 직공들이 수를 놓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각 그림은 원근감과 입체감을 최대로 살려, 100% 그림이지만 마치 섬세하게 조각을 해 놓은 듯하다. 이 곳은 타피스트리 회랑이라고도 불리는 데 ‘타피스트리’는 두꺼운 실로 직조된 것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어로는 ‘카펫’. 그래서 ‘카펫의 방’ 또는 ‘융단의 방’으로도 불린다. 이 곳의 대표작품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이 작품은 어느 곳에서 바라봐도 그리스도의 시선이 따라온다고 해서 유명하다. 또 19세기 교황 레오 13세 조각품이 아라찌의 방문 입구에 있다.
▼ 아라찌의 방에 있는 천정화도 눈여겨 볼만 하다. 얼핏 보면 조각처럼 보이지만 그림이란다. 부조처럼 보이도록 입체감을 살려 그린 회화라는 것이다.
▼ 맨 마지막으로 들르게 되는 곳은 지도의 방(Le Galleria delle Mappe)이다.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가기 직전의 길이 120m에 너비가 6m인 복도이다. 이곳에는 교황이 주재하는 성당 40개가 있는 지역을 그린 지도를 통해 그 당시의 역사와 지도 작성법을 엿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 하지만 사람들은 지도에는 도통 관심이 없나보다. 다들 치켜든 고개를 내릴 줄 모르는 걸 보면 말이다. 그들을 따라 고개를 들어본다. 천장이 온통 황금빛의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름답다. 그런데 그림이 조금 이상하다. 그림의 중간 중간에 사람을 조각해 놓은 것이다. 새로운 장르인가 하는데 곁에 있던 외국인이 놀라 부르짖는다.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눈을 치켜 떠본다. 그의 말대로 그림이 맞았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작품을 창조해낼 수 있었을까 싶다.
▼ 지도의 방을 지나면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만난다. 한 달 내내 구경을 해도 부족하다는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두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끝내버렸다. 처삼촌 벌초하듯이 한 셈이다. 그러다보니 빠뜨린 곳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웠던 곳은 ‘바티칸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라는 ‘라파엘로의 방(Stanza di Raffaello)‘이다.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에 있다는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을 구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간다. 극비리에 만들어진 요새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드디어 시스티나 예배당의 안이다. 예배당의 천장은 온통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시스티나에서는 사진촬영 금지는 물론이고 절대정숙이 요구된다. 천장의 그림은 프레스코화로 그려졌는데 이 프레스코화라는 게 단순한 붓질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벽에 물감이 스미게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물감을 먹여야 하는데 이토록 어려운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보존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란다. 미켈란젤로는 천장에 매달려 천장화를 그렸다. 9개의 틀로 나누고 9개의 틀을 다시 34개의 면으로 나누어 창세기의 내용을 그렸는데 천장의 중앙에다가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는 최초의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공평하게 표현했다. 이번에는 눈을 돌려 벽화를 본다. 역시 미켈란젤로가 그렸다는 '최후의 심판'이 있다.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에서 예수님을 나체로 표현했다. 그리고 천사들로 하여금 흑인노예 둘을 하늘로 인도하도록 했다. 미켈란젤로는 박애주의자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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