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두바이,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일 : ‘16. 3. 12(토) - 20(일)
일 정 :
○ 3.13(일) : 두바이
○ 3.14(월) : 스위스(루체른)
○ 3.15(화)-19(토) : 이탈리아(밀라노, 피렌체, 로마, 소렌토, 폼페이, 나폴리, 베니스, 볼로냐)
여행 넷째 날 오후 : 황제들의 휴양지, 카프리섬(Isola di Capri)
특징 : 나폴리 만의 남쪽 입구 부근에 있으며, 소렌토 반도와 마주보고 있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섬으로 최고봉은 ‘솔라로 산(589m)이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이 섬은 그리스의 식민지이었으며, 로마 제국 초기에는 황제들의 휴양지로 이용되었다. 중세 때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에 귀속되었고 아말피 공화국의 일부였다가 나폴리 왕국에 넘어갔다. 나폴레옹 전쟁 중에는 프랑스와 영국에 번갈아가며 점령당하다가 1813년 양 시칠리아 왕국에 반환되었다. 이후 카프리는 남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 중 하나가 되었다. 물이 부족하지만 기후가 온화하여 식물이 잘 자라는 곳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다양한 식물상이 분포하며 수많은 종류의 철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섬의 이름은 카프라(capra : '염소')나 카프로스(kapros : '멧돼지') 두 단어 중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섬에는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수많은 호텔 및 별장들이 있으며, 나폴리와 소렌토로 이어지는 증기선과 수중익선들이 자주 운행된다. 관광업 이외의 산업으로는 농업(포도·올리브·감귤류)과 어업이 이루어진다. 1978년 본토와 연결된 해저 수로가 완공되어 담수가 공급되면서 각종 산업부문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 소렌토를 출발한 쾌속선은 30여분 만에 카프리섬의 북쪽 해안에 있는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 항으로 들어간다. 방파제로 보호되고 있는 것이 파도가 거셀 때도 있는 모양이다. 하긴 북풍이 특히 강하게 불 때를 대비해서 남쪽에다 마리나 피콜라 (Marina Picolla) 항을 따로 만들어 두었다니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참고로 이곳 카프리섬은 여행사들이 옵션 투어로 판매하는 상품 중의 하나이다.
▼ 배에서 내리자마자 거대하면서도 가파른 바위 절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섬이 온통 바위벼랑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모양새이다. 바위의 색깔이 하얀 것으로 보아 아마 석회암인 모양이다. 로마 초기 황제들은 이 섬을 휴양지(카프레아이)로 이용하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거주했으며, 티베리우스 황제는 여러 채의 별장을 지었다. 그들은 뭣 때문에 이런 척박한 땅에다 별장을 지었는지가 궁금하다. 섬을 둘러보는 동안 주의 깊게 살펴볼 일이다. 하여간 카프리는 ‘세기의 결혼식’ 주인공 영국 다이애나 비의 허니문 여행지로 알려져 유명세를 더한다. 축구 스타 박지성도 이곳에서 밀월의 단꿈을 꿨다. 파블로 네루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아 화제가 됐던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 항구 옆에 있는 해수욕장을 찾았다. 셔틀버스를 타려면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버스가 시간제로 운행하는지가 궁금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올시다’이다.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비해 버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던 게 그 원인이었다. 결국 가이드들끼리 ‘가위바위보’로 순번을 정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 팀이 맨 꼴찌로 밀려나버렸던 것이다. 당연히 시간이 남을 수밖에 없었고, 그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찾은 곳이 이곳에서 유일하다는 해수욕장이다.
▼ 자그만 해수욕장에는 우리와 함께 섬에 들어온 사람들뿐이다. 여름철이면 비키니 차림의 휴양객들로 넘쳐나겠지만 지금 같은 비수기에는 관광객들 차지가 되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근처의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곤 피자와 생맥주를 시켜 놓고 잠시나마 망중한을 즐겨본다. 하지만 계산을 치르다가 난 까무러질 뻔 했다. 맥주 값이 피자 보다 더 비싼 것이다. 두둑한 자릿세가 포함된 가격이란다. 주인장과 잠깐의 실랑이 끝에 그냥 값을 치루고 말았다. 미리 물어보지 않고 주문한 내 잘못이 크니 어쩌겠는가.
▼ 전망대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아나카프리(Anacapri)’까지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까지 왕복하는 리프트가 그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아나카프리까지는 마이크로버스(Microbus)가 운행된다. 물론 유료이다. 하지만 19세기에 마차 길이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스칼라 페니차(Scala Fenicia, 페니키아의 계단)라고 불리는, 800개의 계단을 통해서만 왕래가 가능했다고 한다.
▼ ‘아나 카프리’로 올라가는 길은 까마득한 절벽을 따라 나있다. 절벽에다 만들어 놓은 나선형의 길을 따라 미니(mini) 버스가 흡사 곡예라도 하듯이 올라간다. 오금이 저리고 아찔하다. 도로는 차 한 대 겨우 비켜갈 정도로 좁다. 빨간 소방차를 비치해 놓은 작은 소방서와 커다란 화분 하나 크기의 로터리는 세계에서 가장 작다고 한다.
▼ 아찔한 절벽도로를 따라 달리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쪽빛 바다를 낀 하얀 집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옛날 그리스의 지배하에 있었다더니만 그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하여간 하얀 집들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코발트빛 바다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낸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그리고 탄성이 절로 나온다.
▼ 곡예운전은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그리고 기나긴 가슴조림의 고통을 겪게 하고 난 뒤에야 아나카프리에다 내려놓는다. 아나카프리는 주민들의 고통스런 역사이다. 해적들의 약탈을 피해 해변가의 정착지를 버리고 해안보다 훨씬 높은 지대로 피난을 와서 만든 마을이기 때문이다.
▼ 관광객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안도의 숨고르기에 들어간다. 손바닥이 촉촉하게 젖어있다는 것은 잊어버린 지 이미 모래이다. 그리고 리프트 탑승장으로 이동한다.
▼ ‘안나 카프리’는 산위에 있는 또 다른 도시이다. 그래선지 카프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카프리가 레스토랑과 상점들로 번화한 편이라면 ‘아나 카프리’는 카프리보다 작지만 고즈넉하고, 소박하고 서민적이다. ‘아우구스투스 정원(Giardini di Augusto)’과 움베르트광장의 시계탑, 작고 예쁜 성당 등 옛 건물들과 아기자기한 상점, 호텔들이 있어 평화로운 휴식을 취하기 알맞다. 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다 취락지(聚落址)를 조성한 것은 조망을 위해서가 아니란다. 해적들의 침범과 약탈을 피해서이다. 숨어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래선지 외부에 알려진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근대에 들면서 카프리섬이 ‘제2의 지브롤터’라 불릴 정도로 지중해 방어의 요충지가 됐고, 우여곡절 끝에 영국에 점령당하면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후 19세기 후반부터는 유럽 예술가들이 즐겨 찾으면서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명소가 됐다.
▼ ‘아나 카프리’의 빅토리아광장에서 1인용 리프트(lift)를 타고 ‘몬테 솔라로(Monte Solaro, 해발 589m)’에 오른다. 허공에 매달리는 것이 두려운 고소공포증 환자들이라면 다소 부담이 될 수도 있겠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떨어져도 죽지 않을 정도의 높이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발아래에 펼쳐지는 수채화 같은 풍경은 자신이 지금 리프트에 매달려 있다는 것까지도 잊게 만들어 버린다.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름 모를 야생화는 물론이고, 산자락에 자리 잡은 그리스풍의 하얀 집들이 한시도 눈길을 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일인용 체어리프트(chair lift)에 앉는다. 나무로 된 것이 약간은 허술해 보인다. 거기다 안전장차까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리프트가 출발함과 동시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발아래에 펼쳐지는 풍경에 쏙 빠져버렸는데, 그런 걱정이 어느 틈새를 비집고 들어올 수 있겠는가. 이런 걸 보고 ‘눈이 호사를 누린다’고 말하는가 보다.
▼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눈앞의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꼭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 ‘하늘로 오르는 그네’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하지만 마냥 빠져있을 수만은 없다. 앞서가는 집사람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런 집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보면 어느덧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 전망대는 다양한 꽃과 나무로 아기자기하게 조성되어 있다. 정상은 서는 곳마다 모두 조망처이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그림이고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된다. 이런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있어 로마의 황제들이 이곳에 별장을 지었나 보다. 그래서 혹자는 이곳 카프리를 일러 ‘속이 붉은 카프리의 오렌지처럼 달고 상큼한 휴양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 카프리섬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보이는 주택의 대부분이 흰색이다 보니 섬 전체가 온통 흰색 천지이다. 여기에 코발트색 바다가 흰색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면서 이국적(異國的)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한마디로 아름답다. 왜 이곳이 ‘지중해의 보석’이라 불리는지 수긍이 간다. 참고로 카프리는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카프리 섬의 빼어난 경치에 반해 몇 배나 더 큰 이스키아 섬을 내놓고 카프리 섬을 사들여 자신만의 낙원으로 만들었다. 이후 티베리우스 황제도 이 섬에 12개의 별장을 세워 여생을 보냈다.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인 부호들의 별장이 세워지고, 많은 영화의 촬영지로 이용되고 있을 정도로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 코발트블루 빛 바다와 깎아지른 듯이 서 있는 절벽이 연출하는 절경이 조화롭다. 잉크를 물에 풀면 저런 빛이 나올까? 푸른 바닷물 빛에 눈이 시리다.
▼ 뒤로 나아가니 수영장이 보인다. 산꼭대기에 수영장이라니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로마 황제들이 이곳 가프리섬을 휴양지로 삼았다더니 그때에 지어진 시설일지도 모르겠다.
▼ 조금 더 나아가본다. 또 다시 너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에메랄드빛으로 나타나는 바다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곱다. 그리고 그 뒤로 소렌토반도가 눈에 들어온다. 폼페이를 삼킨 베수비오산도 아득하게 보인다. 날씨가 좋은 탓인가 보다.
▼ 바위틈 사이에 핀 작은 꽃까지 예쁘게 보이는 것은 내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행복에 취하다보면 보는 것마다 모두 아름다운 법이니까 말이다.
▼ 내려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리프트에 오른다. 일정에 맞춰 이동해야만 하는 패키지의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눈에 담았던 극한의 아름다움들을 가슴으로 옮겨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다.
▼ 가프리섬을 출발한 배는 50분쯤 후에 나폴리의 ‘산타 루치아(Santa Lucia)항’에 도착했다. ‘세계 3대 미항(美港)’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탈리아 남서부 나폴리 만(灣)에 면하여 있는 거대한 항구도시 나폴리는 캄파니아 주(Campania州)의 주도(州都)이다. 지적(知的) 활동의 중심지이자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금융 중심지이다. 나폴리 왕국과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폴리를 보다 널리 알린 건 따로 있다. 나폴리가 끼고 있는 해안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灣)의 하나란다. 이탈리아에는 'Vedi Napoli e poi muori!‘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나폴리를 보고 죽자‘는 얘기란다. 그 정도로 아름다운 항구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폴리를 세계 3대 미항(美港)의 하나로 꼽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 우리나라의 통영을 보고 사람들은 ‘한국의 나폴리’라고 부른다. 그 증거로 사람들은 통영 앞바다의 물결이 잔잔한 것을 든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가곡 ‘산타 루치아(Santa Lucia)’를 들먹인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코트라우(Cottrau, T.)가 작곡한 나폴리 민요(民謠)이다. ‘창공에 빛난 별 물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별이 물빛에 어릴 정도로 나폴리의 앞바다가 잔잔하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바다이되 바다가 아닌 것’처럼 바다가 잔잔하다는 것이다. 실제 나폴리에 와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폴리의 전체적인 풍경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바닷물만은 위에서 말한 표현과 너무나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잔잔하다는 얘기이다.
▼ 선착장에 내리자 썩 내키지 않는 안내가 전해진다. 나폴리에서는 시가지(市街地) 투어가 없단다. 선착장에서 주차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200~300m, 고작 이 정도를 걷는 일정을 갖고 어떻게 패키지여행의 경유지라고 버젓이 홍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일종의 사기 같아 보여서 하는 말이다. 급히 여행사에서 나누어준 안내서를 살펴본다. 그냥 ‘나폴리 항구 관광’이라고만 적혀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나폴리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이 적혀있다.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어쩌겠는가. 저렴한 가격으로 따라 나온 여행이니 안내를 하는 대로 따라다닐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항구를 빠져나오다 보면 커다란 성채(城砦)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앙주(Anjou)가의 요새’인 ‘카스텔 누오보((Castel Nuovo ,새로운 성)’란다. 이탈리아인들이 ‘마스키오 안조이노(Maschio Angioino)’라고 부르는 이 요새는 샤를 1세가 지은 13세기의 건축물이다. 앙주가와 뒤를 이은 아라곤 왕들이 거처로 사용했으며 탑의 가운데에 보이는 승리의 아치는 15세기에 아라곤의 알폰소가 나폴리에 입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상 이 성은 15세기 알폰소에 의해 많이 개조되었기 때문에 현재 모습의 대부분으 아라곤양식을 보인단다. 현재는 시청의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 버스를 이용해 나폴리를 빠져나오면서 창밖에 비치는 시가지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아쉽기 짝이 없다. 시내 곳곳에 널려있는 문화재들을 무의미하게 그냥 지나치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 전에 보았던 ‘카스텔 누오보’는 물론이고, 노르만의 지배 시대에 지어진 성채 ‘카스텔 델로보(Castel dell’Ovo, 달걀의 성)’와 앙주가의 무덤이 있는 14세기의 교회 ‘산타 키아라(Basilica di Santa Chiara)’, 프란체스코회의 교회안 ‘산 로렌초 마조레(San Lorenzo Maggiore)’, 17세기 ‘도메니코 폰타’가 에스파냐 왕족들을 위해 지었다는 나폴리의 왕궁인 ‘팔라초 레알레(Palazzo Reale)’, 그리고 로마의 판테온을 연상시키는 플레비시토광장(Piazza Plebiscito)의 ‘산 프란체스코 디 파롤라(San Francesco di Paola)’ 등 수많은 유적들이 시내 곳곳에 널려있다.
▼ 호텔에 도착했다. 사위는 아직까지도 훤한데, 남은 일정은 저녁식사뿐이란다. 이렇게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나폴리에서 관광지 하나쯤 들러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야 최소한 나폴리를 다녀왔다는 얘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여유로운 일정 덕분에 좋은 일도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 근처를 배회하다가 멋진 카페를 만났기 때문이다. 배가 불러 그냥 ’하우스 맥주‘만 주문했는데 간단한 안주까지 가져다주는 센스는 기본, 거기다 맥주의 맛 또한 거의 환상적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난 ’몰핀‘이라는 이름의 하우스맥주를 가장 좋아한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맥주가게에서 파는데 그 맛이 새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것이 여간 마시기 좋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마시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취해버리기 때문에 더욱 좋아한다. 그래서 난 술에다 마약을 탄 게 아닌가 하고 의심까지 했었다. 마침 맥주의 이름까지도 아편의 일종인 ’몰핀(morphine)‘이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끝내주는 맥주 맛이었다. 거기다 또 하나 좋은 점이 있었다. 주인여자가 젊은데다 미모까지도 빼어나다는 것이다. 친절은 기본이고 농담 끝에 맥주 값까지 깎아준다. 이보다 더 나은 맥주집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다. 오늘과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폴리를 그냥 지나친 것은 못내 아쉽지만, 그 덕분에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 이런 게 바로 새옹지마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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