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맞이산(297m)-철봉산(鐵峰山, 449.5m)-서발산(西鉢山, 308m)
여행일 : ‘16. 6. 25(토)
소재지 : 충북 옥천군 동이면
산행코스 : 금강2교 입구→해맞이산(고수봉)→전망봉→철봉산(큰단우리)→팔음지맥 갈림길→헬기장→서발산→우산보건진료소(산행시간 : 3시간 20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경부선 하행선을 타고가다 옥천군 관내에 이르면 금강휴게소를 만나게 된다. 이 휴게소에서 바라볼 때 거의 절벽에 가까울 정도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산이 시선을 끈다. 이 산이 바로 철봉산이다. 하지만 산은 겉보기와는 다르다. 막상 산에 들고나면 산은 순하기 짝이 없다. 바위다운 바위 한번 구경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육산(肉山)인 것이다. 때문에 기암괴석 등 시선을 붙잡아 둘만한 볼거리는 일절 없다. 특징 없는 산행이 계속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해맞이산과 철봉산 정상에서의 조망(眺望)만은 뛰어나다. 유장하게 흐르는 금강은 물론이고, 서대산과 월이산 그리고 천성장마(天聖壯馬 : 天台山·大聖山·壯龍山·馬城山) 능선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다시 찾아보는 것은 몰라도 한번쯤은 올라볼만한 가치가 있는 산으로 분류하고 싶다.
▼ 산행들머리는 옛 경부고속도로의 금강2교(옥천군 동이면 적하리 17-1)
경부고속도로 금강 T.G(금강휴게소 안에 있다)를 빠져나와 우산로(郡道)를 타고가다 구(舊) 금강3교를 건넌다. 이어서 옛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잠시 달리면 구(舊) 금강2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기 바로 직전이 오늘의 산행들머리이다.
▼ ‘금강2교’ 바로 못미처에서 왼편 산자락으로 올라붙으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철봉산 건강운동정보’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철봉산의 등산코스를 4개로 나눈 다음. 각 코스별로 소요되는 칼로리의 양을 표기해 놓은 안내판이다. 잠시 후 언덕 위에 있는 민가(民家)의 마당을 스치듯 통과하게 되니 참조한다. 또 하나, 보초를 서고 있는 개가 짖는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도 없다. 단단히 묶여있기 때문이다.
▼ 생각보다 길은 거칠다. 잡목(雜木)과 넝쿨식물들이 등산로까지 밀고 들어와 갈 길 바쁜 산꾼들의 발걸음을 자꾸만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지 않는 코스라는 의미일 것이다.
▼ 10분 후 능선에 올라선다. 이제부터는 팔음지맥(八音枝脈)을 따른다. 요 아래 금강이 팔음지맥이 숨을 다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팔음지맥이란 백두대간의 봉황산(740.8m)에서 분기하여 남서진하면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낮은 지대를 지나다가 천택산(683.9m)과 팔음산(762.3m), 천금산(464.9m), 천관산(445.4m), 철봉산, 해맞이산(일명 고수봉) 등을 일군 후 옛 경부고속도로 금강2교 부근의 금강에서 그 숨을 다하는 도상거리 57.7km의 산줄기를 말한다.
▼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라 10분 쯤 걸었을까 군(軍)이 사용하던 벙커가 나타난다. 생김새로 보아 포(砲)가 놓여있던 자리인 모양이다. 그만큼 이곳 철봉산이 전략적 요충지라는 의미일 것이다. 앞서가던 김선배가 열변(熱辯)을 토하고 계신다. 6.25전쟁 당시 사단장 한명이 전쟁포로가 되었었는데, 그가 잡혔던 곳이 바로 이 부근이라는 것이다. 혹시 미(美) 육군의 24사단장이었던 ‘윌리엄 딘(William Dean)’ 소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론 6.25전쟁 때 인민군의 포로가 되었던 장성(將星)은 ‘윌리엄 딘’ 소장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론 그는 이 부근이 아닌 진안에서 포로가 되었었다. 그것도 길을 안내해주겠다는 젊은이를 믿고 따라갔다가 공산당 자위대에 붙잡혔을 게다. ‘포로가 된 유일한 장성’이라는 오점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홀로 낙오가 된 이유가 바로 부하를 아끼는 마음에서 생긴 사고였기 때문이다. 부상당한 부하에게 물을 떠다 주려고 어두운 밤에 산속을 헤매다가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것이다. 옛날 삼국지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의로운 이를 어느 누가 흉볼 수 있겠는가. 오늘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정확히 66년이 되는 날이다. 의미 있는 날에 의미 있는 사람을 떠올리게 해준 김선배께 감사를 드려본다.
▼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傾斜)까지도 완만(緩慢)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파른 구간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날 뿐이고 거기다 그 거리까지 짧기에 그런 표현을 썼을 따름이다.
▼ 얼마쯤 올랐을까 길가에 매어진 로프가 보인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곳에 매어진 것으로 보아 난간용으로 만들어 놓은 게 분명하다. 오른편이 벼랑이니 더 이상 나가지 말라는 경고용으로 말이다.
▼ 이 즈음에서 오른편으로 시야가 열리며 나뭇가지 사이로 적하리 일대의 금강(錦江) 여울목이 얼굴을 내민다. 적하리는 최상품의 올갱이가 잡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그 올갱이로 만들어 낸 ‘올갱이국’은 이곳 옥천고을의 대표적인 토속음식이다. 또한 저곳은 여름 휴가철이면 피서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올갱이가 서식할 정도로 물이 맑은데다가 수심(水深) 또한 너무 깊지 않아 안심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 조망을 즐기다가 이내 정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 후 해맞이산 정상에 올라선다. 산행을 시작한지 37분 만이다.
▼ 해맞이산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산이다. ‘해맞이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도 확실하지가 않다. 그저 정상표지석에 적혀있는 이름이 해맞이산이기에 그저 그러려니 할 따름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곳을 ‘고수봉’이라고도 부르는 사람들도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괜찮은 편이다. 동쪽으로만 트이는 것이 다소 아쉽지만 금강휴게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풍광이 나타난다. 산을 비집고 관통하며 직선으로 달리는 경부고속도로와 조령리와 우산리를 지나며 휘돌아 나가는 금강줄기가 묘한 대조를 이루는 풍광이다.
▼ 철봉산으로 향한다.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낭떠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라는 얘기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안전로프가 길게 매어져 있다. 로프에 온 몸을 실어가며 조심조심 내려선다.
▼ 7분 후 안부사거리에 내려선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를 보면 ‘분지벌고개’라는 지명(地名)이 나오는데, 위치로 보아 이 고개를 이르는 지명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설 경우 금강유원지로 연결될 것 같은데, 오른편은 민가(民家)가 없는 것으로 알기에 감이 잡히지 않는다.
▼ 맞은편 능선으로 향한다. 오르막구간 임에도 불구하고 산길은 고운 편이다. 마음씨가 곱다는 얘기이다. 봉우리 끼리 연결시키는 능선만을 고집하지 않고 우회로(迂廻路)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불필요한 봉우리를 올라가지 않고도 정상으로 향할 수가 있다.
▼ 편안한 산길에 고마워하며 10분 정도 오르면 또 다시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왼편 나뭇가지 사이로 작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거기에는 철봉산을 에돌아 흐르는 금강이 들어있다. 강은 마치 멈춰진 것처럼, 그리고 한편의 산수화처럼 보인다. 그 아름다움에 반해 다시 한 번 바라본다. 금강휴게소와 금강유원지가 눈에 들어온다. 덤인 모양이다.
▼ 능선은 가파른 편이다. 하지만 미리부터 주눅 들어 할 필요까지는 없다. 곳곳에 로프가 매어져 있으니 힘이 들 경우에는 붙잡고 오르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 헉헉 거리며 오른다. 그렇다고 너무 힘들어 하지는 말자. 그리고 가끔가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금강의 물굽이가 눈앞에 펼쳐진다. 지렁이처럼 구불거리고 있다. 혹자는 ‘소금 맞은 미꾸라지가 꿈틀 거리 듯’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표현이 어떻든 간에 강여울이 만들어내는 그 아름다움만은 변함이 없다. 누군가는 한강의 상류인 ‘동강’의 줄기와 절경이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곳 금강의 풍경도 그에 못지않다는 생각이다. 강변에 위치한 금강휴게소도 한눈에 잘 들어온다. 그 앞은 물론 금강유원지이다. ‘도리뱅뱅이’가 입소문을 타면서 미식가(美食家)들의 발걸음이 요즘 부쩍 늘었다는 곳이다.
▼ 10분 후 밋밋한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첨부된 지도에 전망봉으로 표기된 지점이다. 오른편, 그러니까 동이면 방향으로 시야가 뻥 뚫려있다. 동이면과 옥천읍내가 한눈에 잘 들어오면서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낸다.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산들은 아마 서대산과 식장산, 그리고 대성산 등일 것이다.
▼ 철봉산으로 향하는 길, 잠시 아래로 내려서던 능선이 오르막으로 변하면서 가파르게 변한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그리고 12분 남짓 후에는 철봉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18분 만이다. 참고로 철봉산의 옛 이름은 ‘달우리산’이었다. 달이 뜨기 직전과 직후 그 빛이 우린다(희미하게 비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정월대보름 망월일에 이 산의 어느 봉우리에서 달이 뜨느냐에 따라 그 해의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만난 바위, 하도 바위가 귀한 곳이라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옛말에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고 했다. 이 바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산이었더라면 눈에 띄지도 않았을 정도로 초라한 바위에 불과하지만 자리를 잘 잡은 덕분에 산행기에까지 올라오는 영광을 누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 널따란 정상은 헬기장을 겸하고 있다. 정상에는 말뚝 모양의 정상표지석과 삼각점 말고도 또 다른 표지석이 두 개나 더 세워져 있다. 하나는 철봉산의 유래를 적어 놓았다. 그런데 다른 하나가 좀 낯설다는 느낌이다. ‘철봉산을 찾아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산행을 해오면서 수많은 종류의 빗돌들을 보아왔지만 저런 내용이 적힌 빗돌이 정상에 세워진 것은 처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산에 ‘쇠말뚝’이 박혀있다는 데서 ‘철봉산’이란 이름이 유래됐다고 비석에 적혀있다. 임진왜란(1592년) 때 원군(援軍)으로 온 명나라 장수들 중에는 풍수지리에 밝은 장수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전란의 와중에서 조선의 빼어난 산세(山勢)가 그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결국에는 명나라에 해가 될 수도 있는 인재(人才)들이 태어날 것을 우려한 그들의 해코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국의 명산(名山)들을 찾아다니며 인위적으로 산맥을 끊어 놓기도 하고, 불로 지지는가 하면, 또 어떤 곳에는 쇠말뚝을 박아서 그 정기를 죽이는 등 이른바 ‘명산 기(氣)죽이기 사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곳 철봉산도 당시에 피해를 입은 산 중의 하나란다. 철봉을 박은 것으로도 모자라 불로 떠서 그 지기(地氣)를 쇠퇴시켰다고 전해지며, 그런 이유로 산의 이름 또한 철봉산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빼어나다. 사방으로 시야가 트이기 때문이다. 옥천과 영동이 자랑하는 명산 월이산을 마주보는가 하면 서쪽으로는 대성산과 장령산이 조망되고, 그 너머에는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솟아있다. 그리고 마성산과 삼성산, 식장산도 조망되며 북쪽으로는 군북면의 환산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 서발산으로 향한다. 하산길은 시작부터 가파르다. 하지만 아까 해맞이산에서 내려올 때에 비하면 이건 애들 장난 수준이다. 아무런 안전시설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 7분 후 안부삼거리에 내려선다. 왼편으로 난 길은 ‘한국불교 여래종(如來宗)’의 총본산이라는 대약사사(大藥師寺)에서 올라오는 길인 모양이다. 서발산으로 가려면 계속해서 능선을 타야함은 물론이다.
▼ 이후부터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능선의 소나무들이 제법 굵어진 것 외에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구간이다. 아니 곳곳에 지어진 폐 벙커를 볼거리로 삼으며 걸어도 되겠다.
▼ 다행이도 길은 곱다. 보드라운 흙길만 해도 여간 폭신폭신한 게 아닌데, 거기다 솔가리들까지 수북하게 쌓여있다. 이건 숫제 양탄자 위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볼거리까지 더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에 만족하며 산행을 이어간다.
▼ 그렇게 30분쯤 걸었을까 길이 둘로 나뉜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왼쪽 방향이 옳은데도 능선에서 벗어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침 누군가가 커다란 통나무로 직진방향을 막아 놓았다. 무리하게 넘지만 않는다면 길을 잘못 들 염려는 없을 것 같다.
▼ 또 다시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길은 변함없이 곱다.
▼ 6분 후 흔적만 있는 사거리를 지난다.
▼ 다시 5분 정도를 더 걸으면 생뚱맞은 풍경과 맞닥뜨린다. 깊고 깊은 산중에 플라스틱 의자가, 그것도 두 개나 놓여 있는 것이다. 얼핏 보면 산불감시요원이 갖다 놓았으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는 산불감시요원이 있을 만한 장소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이질적인 풍경까지도 반가운 것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눈이 너무 한가로웠다는 증거일 것이다.
▼ 잠깐 가파르게 내려서면 산길은 둘로 나뉜다. 팔음지맥과 헤어지는 지점이다. 서발산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 갑자기 길이 거칠어진다. 잡목(雜木)들이 등산로까지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코스라는 의미일 것이다. 얼마쯤 갔을까 왼편이 철망으로 막혀있다. 지역 주민들이 약초라도 재배하고 있는 모양이다.
▼ 이 구간도 역시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그러면서 능선은 서서히 고도(高度)를 낮추어간다. 그렇게 25분 정도를 진행하면 헬기장을 만난다.
▼ 그리고 잠시 후에는 폐 벙커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서발산’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봉우리이다. 하지만 서발산은 이곳에서 조금 더 걸어야 만날 수 있다.
▼ 벙커 근처에서 시야가 열린다. 철봉산을 지난 뒤 처음으로 열리기에 반갑기 짝이 없다.
▼ 능선을 따라 걷는다. 약간 경사가 진 오르막길을 5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서발산 정상이다. 철봉산에서 출발한지 1시간30분 만이다. 폐(廢) 벙커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정상은 한마디로 좁다. 거기다 봉우리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밋밋하기 까지 하다. 독립된 산의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서발산은 발음부터가 괴이쩍은 이름이다. 자칫 욕설로 오해를 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하필이면 왜 그런 이름을 지었을까가 궁금하다. 그러다가 문득 가설(假說) 하나가 머릿속을 맴돈다. 김선배의 말로는 6.25전쟁 당시 이 부근이 피아간에 사투(死鬪)를 치른 격전지였다고 했다. 연대 병력이 몰살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에이 十八’이라는 욕설을 내뱉으면서 죽어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게 산의 이름으로 굳어졌을 수도 있겠고 말이다. 웃자고 한 얘기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서발산’이 나와 있지 않다. 또한 팔음지맥에서도 비켜나 있다. 해맞이산이나 철봉산보다 그 격이 한참 떨어진다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산세(山勢)가 뛰어난 것도 아니다. 조망(眺望) 또한 꽉 막혀있다. 그래서 버려졌나보다. 다른 산들과는 달리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그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정상표지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 이제는 하산이다. 산길은 처음부터 가파르게 시작된다. 그리고 중간에 폐 안테나를 만나는 것 말고는 특별한 볼거리 하나 없이 줄곧 내려서기만 한다.
▼ 납골묘역(納骨墓域)을 만나면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눈의 호사가 이루어지는 구간이다. 흐드러지게 핀 망초꽃밭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망초의 어원(語原)을 ‘망할 놈의 풀’이라는 데서 찾는다. 아무리 뽑아내도 또 다시 무성해지는 잡초를 보고 내뱉은 농부의 넋두리가 ‘망초’의 어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망할 놈의 풀’도 어딘가에는 쓰임새가 있을 게 틀림없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창조주께서 아무 생각 없이 허투루 만들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쓰임새라는 게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일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나올 가치는 충분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순(蘇洵)의 변간론(辨姦論), 즉 ‘간신을 변별하는 의론’에 ‘事有必至(사유필지) 理有固然(이유고연)’이란 구절이 나온다. ‘일이 꼭 그렇게 된 데는 반드시 그렇게 된 이유가 있다.’ 뜻이다. 소순이 얘기하고자 했던 논지(論旨)에서는 어긋나겠지만, 망초가 만들어 놓은 아름다움을 보면서 그의 주장이 떠오른 건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각지 못했던 아름다움과 마주친데 대한 놀라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 그뿐만이 아니다. 이 구간에서는 먹는 즐거움도 누리게 된다. 길가가 온통 산딸기 밭인 것이다. 그리고 빨갛게 익은 산딸기들이 사방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저 손과 입만 부지런히 놀리면 된다. 달다. 새콤하다. 아니 미치도록 맛있다.
▼ 산행날머리는 우산보건진료소의 위, 구(舊)경부고속도로의 페(廢)차선(동이면 우산리)
눈과 입의 호사를 누리며 얼마쯤 걸었을까 저만큼에 옛 경부고속도로가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왕복 4차선이던 고속도로는 이제는 2개 차선만 사용하고 나머지 2개 차선은 그냥 비워놓았다. 하산지점에 버스를 세워 놓아도 충분한 이유이다. 하지만 버스는 이곳에서 7~8분 정도를 더 걸어야만 하는 우산보건진료소 근처에다 세워 놓았단다.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한 모양이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총 3시간 4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3시간 20분이 걸린 셈이다.
▼ 도로 아래는 우산리, 토속음식점들이 자리하고 있는 강변마을이다. 이곳 사람들은 풍부한 어족자원 덕에 어부로 살아 온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피라미가 많이 잡히는데, 그 크기가 너무 작아 매운탕 거리도 안 된다고 해서 고기잡이의 목록에 포함되지도 않았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피라미가 이 마을 토속음식의 주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도리뱅뱅이’라는 음식으로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도리뱅뱅이는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적당히 튀긴 후 고추장과 갖은 양념을 발라 비린 맛을 없애고 맛을 내는데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또한 매운탕의 귀족으로 불리는 쏘가리 매운탕과 어죽도 별미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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