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스페인 및 포르투칼

 

여행일 : ‘15. 11. 12() - 19()

여행지 : 스페인(바로셀로나, 몬세라토, 발렌시아, 그라나다, 미하스, 론다, 세비아, 톨레도, 마드리드), 포르투칼(리스본, 까보다로까, 파티마)

 

여행 둘째 날 오후 : 람브라스거리(Las Ramblas)와 몬주익언덕(Montjuïc Hill)

 

특징 :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로 꼽히는 바르셀로나(Barcelona)는 여행전문 잡지 ‘Travel+Leisure’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도시탑 10(World's Best Cities Top 10)’에서 8위를 차지한 곳이다. 그만큼 문화나 음식, 친절도 등 많은 면에서 뛰어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천재건축가였던 가우디의 흔적들은 단연 돋보인다. 가우디가 만들어낸 우아한 건축미가 바르셀로나를 예술과 디자인의 도시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중 구엘궁전(Palau Güell)’카사 밀라(Casa Mila)’ 등 가우디의 흔적들이 많은 곳이 람브라스거리이다. 또한 이 거리는 자라(Zara), 망고(Mango), &베어(Pull&Bear) 등 스페인 태생의 SPA 브랜드들이 늘어서있는가 하면 행위예술, 댄스, 서커스, 스페니쉬 기타연주 등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예술가들이 즐비한 예술의 거리이다. 때문에 바르셀로나를 찾은 사람들이라면 빼놓지 않고 들르는 필수코스이다. 다른 한편으론, 한국인이라면 가우디보다도 황영조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마라톤에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던 곳이 이곳 바르셀로나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먼저 손기정선수가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었으니 거론하지 않겠다. 하여튼 한국인들의 관광코스에는 올림픽 주경기장이 있는 몬주익언덕(Montjuïc Hill)을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 당시의 영광이 우리 국민들에게 주었던 감명이 그만큼 컸던 게 그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성가족성당(Sagrada Familia)‘을 둘러본 후에는 지중해와 접해 있는 항구, 포트 벨(Port Vell)로 간다.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빠야라는 스페인 전통음식을 맛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항구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엘 치피론(El Chipiron)’이란 식당으로 찾아간다. 맛있는 빠야(Paella)’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가는 중에도 눈길은 바쁘기만 하다. 항구 옆으로 난 길가에 빼꼭히 늘어선 조형물들이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신경을 쓴 흔적들이 역력하다.

 

 

 

포트 벨(Port Vell)은 온통 요트들의 세상이다. 가끔 호화스런 요트들도 눈에 띈다. 요트에도 빈부의 격차가 있나보다. 하긴 작은 요트일망정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의 상징일 테지만 말이다.

 

 

 

식당은 마레마그넘(Maremagnum) 쇼핑몰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음식 잘한다는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첫 번째 증거는 많은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식당풍경이다. 점심시간이 약간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붐빈다는 것은 그만큼 음식이 맛있다 얘기일 것이다. 두 번째 증거는 음식 맛이다. 홍합과 여러 가지 해물을 밥과 함께 볶아 내놓는 빠야는 우리들 입맛에도 딱 맞았다. 부둣가의 싱싱한 해물을 사용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창밖으로 지중해의 푸른 물빛을 바라보는 눈의 호사(豪奢)까지 누릴 수 있었으니 더 말하면 잔소리가 아니겠는가. 참고로 빠야(빠에야)주재료는 우리에게 익숙한 쌀이며 빠에야팬에 여러 재료를 넣고 쌀과 물을 넣어 끓인 후 살짝 쫄인 음식으로 크게 나눠 해산물 빠에야먹물빠에가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손님의 입맛에 맞춰 '야채빠에야', '버섯 치즈 빠에야' 등 다양한 메뉴가 개발되어 있다. 여기서 드리는 팁(tip) 하나, 스페인 음식은 소금이 많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이때를 대비해 소금을 빼달라는 말, 'sin sal(씬 쌀)'이란 문구를 기억해 두자. 빠야를 주문하면서 이 말을 같이 한다면 우리 입맛에 맞는 짭쪼름한 빠에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람브라스 거리(Las Ramblas)’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넌다. 파도가 넘실대는 모양을 형상화한 갑판모양의 다리이다. 림블라스 거리의 연장선이라는 뜻으로 'Rambla de Mar', 바다의 람블라라고도 불린단다. 이 다리는 가끔 상판이 위로 올라가기도 한단다. 큰 배가 지나갈 때란다. 오래 전에 보았던 부산의 영도다리를 떠올리며 직접 눈으로 볼 것을 기대해보았지만 그런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배도 부르고 하늘은 쾌청하니 저절로 느긋해진다. 캔맥주 하나를 들고 다리를 건넌다. 하지만 걸음걸이의 속도는 최대한으로 늦춘다. 그리고 현지인들처럼 부둣가 햇살 아래에 최대한으로 몸을 노출시켜본다. 초겨울의 햇살은 여름처럼 따갑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부둣가의 바다는 기대 이상으로 깨끗하고 실눈을 헤집고 들어오는 바다의 반짝임은 보석처럼 잔잔하게 눈부시다.

 

 

 

다리를 건너면 콜럼버스동상(Mirador De Colom)’이 여행객들을 맞는다. 동상이 서있는 광장은 차와 사람들로 붐빈다. 무엇이 그 지역 사람들의 성품과 느낌을 결정짓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서는 명랑하고 활달한 색조가 진하게 배어 나온다.

 

  

 

 

 

 

 

 

 

람브라스거리 주변이 골목 풍경,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차도(車道)가 좁은 대신에 이를 가운데에 두고 양편으로 난 인도(人道)는 그 두 배에 이를 정도로 널따란 게 이색적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그네들의 관념이 만들어낸 풍경이 아닐까 싶다.

 

 

 

청동과 철,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동상은 왼손에는 지도(地圖)를 그리고 오른손은 저 멀리 바다를 가리키고 있다. 그 쪽 끄트머리에 신대륙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모양이다. 쭉 뻗은 팔과 손가락, 쫙 벌린 다리와 당당한 가슴과 어깨위에 드리워진 망토가 바람에 펄럭인다. 그 기세가 만만찮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무튼 바르셀로나 시민들에게 지중해로 대서양으로 신대륙으로 향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저 동상은 우리에게 뭔가에 대한 결정을 주문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볼 것인가 아니면 그가 가리키는 희망을 볼 것인가

 

 

 

 

콜럼버스 동상(Mirador De Colom)’이 있는 이곳에서 도시 중심 카탈루냐 광장(Placa de Catalunya)’까지의 약 1.3km람브라스 거리(Las Ramblas)’이다. 이 거리는 유서 깊고 매우 로맨틱한 거리다. 거리에서는 행위 예술가, 뮤지션, 플라멘코 댄서들이 자신들의 예술을 공연 하고 있는데 유럽에 있는 도시들 중 수준 높은 예술가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참고로 람블라(rambla)는 스페인어로 나무가 있는, 중앙에 보행자 도로가 있는 길이란 뜻이란다.

 

  

 

거리는 초입부터 눈길을 끄는 퍼포먼스(performance) 들이 기다리고 있다. 신화에서나 나옴직한 새가 있는가 하면, 돈키호테(Don Quixote)를 닮은 말 탄 기사도 보인다. 그리고 짝퉁 마이클 잭슨과 조각상을 흉내 낸 카우보이, 문명 비판적인 폐기물 퍼포먼스 등 보기만 해도 즐거운 풍경들이다. 다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행위예술가들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그들 앞에 놓인 모금함에 1유로 정도를 넣는 매너를 잃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장터 또한 발목을 잡는 또 하나의 블랙홀이다. 아기자기하고 탐나는 갖가지 액세서리에 의류, 장난감 등이 주머니 사정을 보아 주지 않는다. 가죽 제품이 특히 강세라는 스페인이고 보니 작은 가죽 소품 하나라도 챙겨 가고픈 마음에 이곳저곳 샅샅이 훑어보느라 여념이 없다.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들에는 규격화된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가끔 유명제품을 팔고 있음을 알리는 간판들도 본인다. 람브라스의 또 다른 풍경이다. ‘람브라스 거리(Las Ramblas)’는 아름다우면서도 개성이 있는 거리로 유명하다. 아랍에미리트 최대 도시이자 중심 토후국(土侯國)인 두바이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도시를 설계하면서 이곳 람브라스 거리의 디자인을 주요 모티브(motive)로 활용했을 정도라니 그 유명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길거리 화가들도 거리 풍경을 만들어내는데 한몫을 한다. 바르셀로나의 몽마르트로 불리는 ‘Placa josep Oriols’가 아님이 분명한데도 꽤 많은 화가들이 자신들의 그림을 그리며 팔기도 하고 있다.

 

 

 

주얼리(jewellery) 등 장신구를 파는 행상들과 달콤한 맛의 아이스크림 가게 등 다른 눈요기 거리도 많다. 주말에는 걸어가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는 틀린 것 같다. 주중인데도 불구하고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쳐야 할 정도로 붐비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밝다. 친절하기로 소문난 카탈루냐 사람들의 특성이 아닐까 싶다.

 

 

 

느긋하게 걷다가 이내 발길을 돌리고 만다. 집사람을 콜럼버스동상 근처에 버려두고 왔다는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화장실이 급하다며 혼자 다녀오라고는 했지만, 그녈 버려두고 나 혼자서 거리구경을 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가우디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만 했던 것이다. 조금만 더 걸으면 가우디가 지었다는 구엘궁전(Palau Güell)’과 고급아파트 카사 밀라(Casa Mila)’를 볼 수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좋은 구경거리일지라도 내 사랑보다는 한참 아래가 분명하니 말이다.

 

 

 

람브라스 거리를 둘러본 후에는 몬주익언덕(Montjuïc Hill)으로 향한다. 올림픽경기장(Olympic Stadium)이 있고 시내 전경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황영조선수가 일본선수를 제치고 선두로 나섰음직한 언덕길을 오르면 올림픽주경기장이 나타난다. 버스는 경기장의 맞은편에다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커다란 바위들이 몇 개 놓여있는 작은 공원 앞이다. 황영조선수의 올림픽 제패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조형물이란다. 참고로 몬주익의 몬(mont)’, 주익(juic)유대인이라는 뜻으로 유대인의 산을 말한다.‘ 기원전 3세기 전부터 유대인들이 모여 살아온 곳이라는 것이다. 또 한편으론 14세기말 스페인이 통일될 때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많은 유대인들이 스페인 전역에서 모여와 살던 곳이라고도 한다. 어떤 얘기가 옳던 간에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곳임에는 분명하다.

 

 

 

 

한국 교민들은 이곳을 황영조공원이라고 부른단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의 상()과 풋프린팅(foot printing)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경기도와 바르셀로나가 상호 협의하여 조성했는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황영조의 마라톤 금메달을 기념하기 위해서란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경기도에서 세웠을까? 황영조는 강원도 출신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이곳 교민들이 강원도에다 건의를 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그 대안으로 경기도에 부탁하여 만들게 되었다고 가이드가 알려준다. 강원도로서는 좋은 홍보기회를 놓친 셈이다.

 

 

 

황영조선수를 만났다면 이젠 주경기장(主競技場) 안으로 들어가 볼 일이다. 이 경기장은 1992년 제25회 하계올림픽이 열렸던 장소이다. 그리고 삼척 출신의 황영조선수가 몬주익의 영광을 안고 일약 스타가 되었던 곳이다. 어제 공항에서부터 함께 해온 태권도사범 출신 현지가이드가 열변을 토한다. 기존의 경기장을 거의 손보지 않은 채로 재활용했다는 등 당시의 상황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황영조선수가 뛰어 들어왔음직한 메인출입구와 그가 테이프를 끊었을 결승점을 눈과 가슴에 넣기 바빴던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고래 모양으로 생긴 올림픽 성화대

 

 

 

황영조 선수가 월계관을 쓴 이곳 몬주익경기장의 본래 이름은 에스타디 올림픽 유이스 콤파니스(Estadi Olímpic Lluís Companys)’이다. 이는 몬주익언덕의 채석장 묘지(Fossar de la Pedrera)에 있다는 유이스 콤파니스(Lluís Companys)’라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란다. 그는 나치 정보원들에게 체포되어 죽임을 당한 카탈루냐의 마지막 대통령이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지원하는 프랑코 독재와 싸우기 위해 미국·영국을 포함한 세계 53개국에서 3만 명 이상의 진보세력이 모여들었던 에스파냐(스페인) 내전은 반드시 이겨야 했던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졌다. 그리고 이 내전에 참전했던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정의가 패배할 수 있음을, 폭력이 정신을 꺾을 수 있음을, 용기가 보답 받지 못할 수 있음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들이 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은 그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말했다. 그들이 지게 만들던 사소한 이유, 작은 차이에의 지나친 집착을 떠올리며 조금은 더 유능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주기경기장을 빠져나오면 각종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 널따란 광장이 나온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거대한 실내체육관이 버티고 있다. 이곳 몬주익은 1888년 바르셀로나만국박람회를 위한 전시장 개발을 시작으로 올림픽경기장이 들어서고 미술관과 공원 등이 조성되면서 관광의 명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