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스페인 및 포르투칼
여행일 : ‘15. 11. 12(목) - 19(목)
여행지 : 스페인(바로셀로나, 몬세라토, 발렌시아, 그라나다, 미하스, 론다, 세비아, 톨레도, 마드리드), 포르투칼(리스본, 까보다로까, 파티마)
여행 첫날 오후 : 몬세라트
♧ 스페인 : 정열의 나라로 알려진 스페인은 프랑스나 독일, 영국 등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다소 생소한 나라이다. 그리고 스페인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플라멩코이나 투우 그리고 축구를 떠올리게 된다. 중세나 고대 유적들을 떠올리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는 얘기이다. 그런 스페인이 최근 한국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곳곳에 산재한 유적들이 이슬람교, 카톨릭, 유태교 등 다양한 종교가 접목돼 독특한 문화를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피카소 등 위대한 예술가들의 흔적과 함께 현대적 세련미가 돋보이는 가우디의 건물들도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스페인은 유럽의 남서쪽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포르투칼, 북쪽으로는 프랑스 그리고 남쪽으로는 모로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지리적 위치 등으로 인해 아랍과 유럽 문화가 뒤섞여 있다. 또한 스페인은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유럽 국가 중에서 농업의 비중이 가장 높으며 감귤, 포도, 올리브 등이 특히 유명하다. 동시에 천혜의 어장인 대서양을 무대로 어업도 활발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광산업이 중요한 소득원이다.
찾아오는 길 ; 인천공항에서 스페인의 양대 도시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까지 다니는 직항노선이 있다. 물론 국적기(國籍機)이다. 하지만 우리를 인솔하는 여행사(노랑풍선)는 카타르항공(Qatar Airways)을 이용했다. 덕분에 우린 인천에서 카타르의 수도 도하(Doha)를 거쳐 바르셀로나까지 오는 장장 21시간(도하에서 환승하는데 걸린 4시간 포함)에 이르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 경비로 일정을 맞추어야만 하는 패키지(package)상품의 특징이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여성들에게는 힘든 일정이었나 보다. 집사람과 처제 등 이번 여행을 함께 다녀온 여성 일행들 모두 앞으로는 환승상품 이용은 사양하겠단다.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는 남자들은 예외였지만 말이다.
▼ 아래 지도에 표기된 행선지 표시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그라나다에서 론다로 가는 길에 말라가나 프리헬리아나 대신에 미하스를 들렸으며, 리스본과 호까곶을 둘러본 후 마드리드로 가는 길에는 포르투 대신에 파티마(포르투갈)와 톨레도를 경유했다.
▼ 몬세라트의 특징
몬세라트(카탈루냐어: Montserrat, 스페인어: Montserrat)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산이다. 해발 1235m의 이 산은 해저(海底)의 융기(隆起)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탓에 태초의 자연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6만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세가 마치 톱처럼 생겼다고 해서 '톱니 산'이라는 의미의 '몬세라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특이한 산세보다는 ‘검은 마리아상’이 주는 이미지가 더 강하지 않았을까 싶다. 12세기 어느 날, 양치기가 성스러운 빛을 보고 검은 마리아상을 발견해 수도원에 모시면서 더욱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 ‘검은 마리아상’은 산 중턱(해발 725m)에 위치한 아서왕의 성배 전설에 등장하는 ‘베네딕트수도회’의 ‘산타 마리아 몬세라트 수도원’에 모셔져 있다. 참고로 해발 1235m에는 산 호안(Sant Joan) 전망대가 있으며, 수도원보다 약간 낮은 곳에 산타 코바(Santa Cova) 전망대가 있다. 수도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산 호안 전망대에 오르면 하늘과 맞닿은 산 정상이 나온다. 수도원과 기암괴석이 내려다보이고 날씨가 좋은 날은 지중해와 피레네 산맥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1시간쯤 차를 타고 달리면 몬세라트 산자락에 도착한다. 몬세라트 탐방의 시작은 산 아래에 있는 케이블카 (cable car)승강장에서 시작된다. 물론 버스를 이용해서 산의 중턱에 위치한 수도원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톱날을 닮았다는 몬세라트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궤도차(軌道車)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괜찮은 방법이지만 내려올 때 이용하기로 하고 뒤로 미룬다.
▼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창밖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의 풍경은 마치 천국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듯한 신비로운 감회를 자아내게 만든다. 수도원에 이르기도 전부터 속세(俗世)를 벗어나버린 느낌이다.
▼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몬세라트 산의 절경(絶景)이 다시 한 번 눈앞에 펼쳐진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면서 올려다보이던 풍경들이 이제는 정면에서 나타난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경관이니 발걸음을 서둘지 말고 실컷 즐겨볼 일이다.
▼ 이제 되었다 싶으면 수도원으로 이동하면 된다. 가는 길에도 몬세라트의 절경들이 한눈 가득히 들어옴은 물론이다.
▼ 잠시 후 수도원 앞에 이른다. 그런데 의외의 풍경에 놀라고 만다. 한적하면서도 엄숙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많은 상업시설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베네딕트의 산타 마리아 몬세라트‘라는 이름의 이 수도원은 남자 수사만 80여 명이 사는 곳으로 초기에는 성당, 수도원, 박물관으로 이뤄진 작은 수도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원을 들어준다는 검은 성모상이 발견된 후 곳곳에서 순례자와 관광객이 인산인해로 몰리면서 상업시설과 숙박시설들이 들어섰단다. 그 시설들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원은 나폴레옹의 침략 때뿐만 아니라 과거 카탈루냐가 박해 받던 시절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카탈루냐의 성지이자 스페인 가톨릭의 성지로 유명하다.
▼ 수도원 안으로 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물론 전면에 보이는 대성당 건물을 제외하고 말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Sagrada Familia/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ilia)’의 '수난의 파사드' 조각을 맡았던 조각가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의 작품이다. 카탈루냐의 수호성인 '산 조르디'인데, 이 조각과 마주보며 앞에서 움직이면 조각의 눈이 움직이는 사람을 따라 같이 움직인다고 한다. 참고로 수비라치의 작품은 서울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1987년, 그러니까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한 해 전에 전 세계 유명조각가들을 국내로 초빙해 ‘올림픽공원’ 야외에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한 일이 있었다. 그가 만든 ‘하늘 기둥(The Pillars of the Sky)’이라는 거대한 작품이 지금도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페인과 한국의 전통을 융화시키고자 의도적으로 한국적인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거인 같은 수직적 형태는 태극기의 음양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고, 그 위에 올려 진 세 개의 입면체는 하늘을 상징한단다. 시간이 된다면 한 번쯤 찾아볼 일이다.
▼ 수도원 입구에는 박물관과 기념품 숍이 있다. 수도원과 몬세라트에 관련된 저명한 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들어가 보는 것은 생략한다. 꼭 유료(有料)라서 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성당을 빨리 둘러본 뒤, 몬세라트의 전경을 보기 위해서 주차장 아래에 있는 전망대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탓에 두 가지를 다 둘러볼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안타깝지만 조예가 별로 없는 미술품 감상을 포기하기로 한다.
▼ 성당 앞 광장에 서면 또 다시 몬세라트의 절경이 펼쳐진다. 몬세라트(톱니 모양의 산) 라는 이름에 걸맞게 밝게 노출된 기암절벽의 신비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과연 천재 건축가로 알려진 가우디에게 건축적 영감을 주었을 만도 하겠다. 참고로 이곳 몬세라트는 자연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신앙심이 깊었던 가우디가 자주 찾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이라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던 이유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따라주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만 얻었을 뿐 그 결과는 바르셀로나의 시내에다 쏟아 놓았던 모양이다.
▼ 대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문 근처에 마치 방처럼 만들어진 코너들이 있고, 각기 다른 조각품들이 새겨져 있다. 성당과 관련된 성직자들이거나 아니면 성당에 영향을 끼친 이들의 묘(墓)가 아닐까 싶다.
▼ 문을 통과하면 널따란 광장(廣場)이 나온다. 집사람이 갑자기 양팔을 벌린다. 그녀와 같이 고개를 들고 팔을 하늘로 향한 뒤 기도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하지만 집사람의 표현에서는 진지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무래도 믿겨지지 않는 모양이다.
▼ 예수와 ‘열두 사도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성당의 안마당을 지나면 두개의 문이 있는데 중앙의 문은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오른쪽 끝의 문으로 들어가면 통로를 따라 성당의 안쪽 제대 위에 있는 성모상으로 가게 된다. 성당은 오른편으로 들어가 왼편으로 빠져 나오는 구조로 되어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난다. 이곳도 역시 아까 성당으로 들어설 때와 비슷한 풍경이다. 벽면에 코너를 만들고 인물상을 세워 놓았거나, 아니면 벽면에 돋을 문양으로 사람을 새겼다. 느낌으로 봐서는 성당과 관련된 성인(聖人)들이 아닐까 싶다.
▼ 2층으로 올라간다. 성당의 상징이랄 수 있는 ‘검은 성모마리아상’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입구에 촬영금지 표시가 되어있다. 가이드의 말로는 촬영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글쎄다. 명색이 가톨릭신자인데 어찌 하지 말라는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참고로 ‘검은 성모마리아상’은 12세기 말의 로마네스크양식(Romanesque style)의 조각품으로 이 조각품은 성모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 또는 ‘지혜의 왕위’로 묘사하며 여왕, 어머니 그리고 동정녀를 대표한다. 오른손에는 지구를 뜻하는 구술을 들고 있고 왼손은 ‘태중의 복된 열매’인 아이 예수를 소개한다. 아이 예수는 우리를 축복하고 생명과 다산을 뜻하는 솔방울을 들고 있다. 마리아상은 12세기 ‘산타 코바(Santa Cova)’ 동굴 안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왜 검은 성모마리아인가 라는 것에 여러 가지 설(說)이 있는데. 원래는 검은 색이 아니었는데 오랜 세월 신도들이 바친 등불에 그을려 검어진 것이라고 하는 설(실제로 보면 그냥 검은 대리석 같은 느낌도 있다고 한다.)과 또 다른 설로는 세계 각지의 여러 모습의 성모마리아 중 흑인을 표현 한 것이라는 설 등이 있는데 전자가 유력하다고 한다. 1811년 나폴레옹군의 진격으로 수도원이 파괴되었을 때도 이 마리아상은 독실한 신도들에 의해 지켜졌고, 1881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카탈루냐의 수호 성모가 되었다고 한다.
▼ 위에 오르면 또 다시 여러 조각상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예배당들도 보인다.
▼ <사진 없이 설명만> 수도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은 성모마리아상’은 2층의 중앙어림에 있다. 성상(聖像)은 유리벽으로 둘러져있다. 목재로 만들어진 성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게다. 유리벽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성모 마리아 손 위의 지구를 상징하는 구슬 부분이 뚫려져 있는데, 이를 만져보기 위해서이다. 구슬을 정성스레 쓰다듬으며 소망을 기원하면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성모상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꾹 참는다. 참고로 ‘검은 마리아상’은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이라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나폴레옹군이 침략했을 때에도 검은 마리아상을 지켜냈고, 카탈루냐 언어가 금지된 독재 치하에서도 검은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카탈루냐어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면 수도원 광장 앞에서 카탈루냐의 민속춤인 '사르다나'를 추며 결속을 다진단다.
▼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도 대성당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일조를 한다.
▼ 성당 밖으로 나오자 수많은 양초들이 보인다. 소원을 담은 것들이란다. 하나 켜볼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만둔다. 걸음을 서둘러야 하나라도 더 많이 가슴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다시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대성당에 들어서면 이렇게 거친 산속에 너무나 아름다운 성당이 숨어있다는 것에 놀란다. 이 성당과 수도원은 15~16세기에 걸쳐 지어졌으며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된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19세기 초에 전쟁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원되기도 하였다. 그나저나 미사 시간을 맞추지 못해 ‘소년성가대’의 합창은 들을 수 없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하지만 찬찬히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이점은 있었다. 성당은 한마디로 화려하기 짝이 없다. 몇 년 전에 업무를 겸해서 러시아를 둘러봤던 적이 있었다. 그때 러시아정교회 몇 곳을 둘러보면서 참 화려하다 느꼈었는데, 그에 못지않은 것 같다. 다만 색상(色相)을 이용한 정교회와는 달리 이곳은 조각의 화려함이 돋보였지만 말이다.
▼ 종교가 다르거나 없는 사람도 속세를 벗어난 화려하고 웅장한 분위기에 압도돼 절로 숙연한 마음을 갖게 되니 가히 ‘스페인 신앙의 중심지’ 라고 불릴 만도 하다.
▼ 몬세라트의 전경(全景)을 보려고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검색해본 결과 주차장 아래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볼 때 몬세라토의 전경이 가장 잘 나타났기 때문이다. 비록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에는 못 미치겠지만 말이다. 전망대로 가는 길가에는 마을사람들이 손수 만든 꿀, 무화과, 치즈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일부는 호객행위까지 하고 있었지만 그냥 지나치고 만다. 서둘러야 전망대를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전망대로 내려가기 전에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眺望)부터 즐기고 본다. 건너편에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몬세라트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벼랑 위에 세워진 십자가까지 시야에 잡힌다. 아마 저곳까지 트레킹코스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보면 바위산에 얹힌 듯 걸쳐지어진 수도원이 나타난다.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은 식당 등 편의시설이다.
▼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에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의 또 다른 조각품을 만날 수 있다. ‘천국의 계단’이라는 작품으로 절벽가까이에 1m높이의 돌덩어리를 계단 모양으로 만들었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천국에 도달한다는 의미로 만들어 졌다고 하지만 구태여 실험까지 해볼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참고로 이 작품은 이곳 카탈루냐 출신의 작가인 ‘라몬 유이(Ramon Llull, 1232~1315)’가 카탈루냐어로 철학서를 집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이란다.
▼ 천국의 계단 옆에 원형으로 지어진 건물이 하나 보인다. 위층은 흡사 그리스의 옛 신전(神殿)을 닮았다. 그래서일까 이것 또한 예술품으로 보인다. ‘천국의 계단’이라는 유명작품을 이웃으로 둔 덕분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 전망대는 천 길 낭떠러지의 위에 만들어져 있다. 거기다 난간이 무릎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금물(禁物)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그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 모양이다. 난간에 걸터앉아 사랑노름을 하고 있는 연인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그 위에 올라가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는 처자들도 보인다. 그래서 젊음은 거칠 것이 없다고들 하는가 보다.
▼ 전망대에 서면 건너편 암릉 위에 세워진 십자가가 보인다. 저기가 바로 십자가전망대(Creu de Sant Miquel)이다. 몬세라트의 정상 능선에 위치한 전망대로서 산호안(Sant Joan)전망대와 함께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저곳에 가보기 위해서는 먼저 산악열차를 이용해 산의 위로 오른 다음 능선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한다. 하이킹을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패키지 여행객들이 가볼 수 없는 이유일 것이고 말이다. 빈틈없이 꽉 차있는 스케줄(schedule)을 소화하면서 하이킹이라는 호사까지 누린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일 것이다.
▼ 전망대에서 조망(眺望)을 즐기는 것을 끝으로 수도원 투어(tour)는 끝을 맺는다. 산악열차 탑승장으로 이동하는데 뭔가 개운치 못한 느낌이 든다. 이유가 뭘까? 그렇다. 어렵게 찾아온 곳인데도 모두 다 둘러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몬세라트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들은 크게 세 가지라 할 수 있다. 첫째는 물론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몬세라트의 자연경관이다. 둘째는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검은 성모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서 깊은 '에스콜라니아 소년합창단'의 성가(聖歌)이다. 그런데 시간을 맞추지 못한 관계로 합창단의 성가공연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몬세라트의 자연경관은 절반만 볼 수밖에 없었다. 경관의 나머지 절반은 산악열차를 타고 산의 꼭대기 까지 오른 다음 꽤 길게 하이킹((hiking)을 해야만 하는데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 모두 둘러봤다면 이젠 내려갈 때다. 이번에는 푸니쿨라(Funicular)를 이용하기로 한다. 푸니쿨라는 밧줄의 힘으로 궤도를 오르내리는 산악열차를 말한다. 물론 엔진은 없다. 수직의 절벽을 꿰며 만들어 낸 구불구불한 궤도길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고 한번 없었다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참고로 이곳 탑승장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산타코바(Santa Cova)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는 ‘검은 성모상’을 발견한 동굴이 있고, 그 동굴까지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산책로가 나있다. 다녀오는 데는 1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단다. 그곳에 가면 가우디를 비롯한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걸 어쩌랴. 아쉽지만 내일 보게 될 다른 작품들로 위안을 삼기로 한다.
▼ 산 아래 주차장에서 올라다본 몬세라트산, 한나절을 봤는데도 결코 질리지가 않는 풍경이다. 헤어져야 하는 발걸음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어쩌랴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내키지 않지만 버스에 몸을 싣는다.
♧ 에필로그(epilogue), 여행 첫날이니 남들이 하는 데로 스페인 여행에서의 주의할 점을 적어보겠다. 첫째는 화장실 문제이다. 명색이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인 스페인이니 공원이나 광장에 공중화장실이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문이 닫혀있을 때가 많은데다 불결한 편이다. 가급적이면 백화점이나 카페에 딸린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하긴 여러 대륙의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해 봤지만 우리나라의 공중화장실 만한 화장실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둘째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스페인에서 동양인들이라 하면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니는 사람들로 인식된단다. 그렇다면 더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관광지의 유명도와 소매치기의 숫자는 비례하는 법이니, 그들이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긴 치안(治安) 역시 우리나라만한 나라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머지 하나는 음료수에 관한 문제이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석회수라서 끓여먹어도 외국인에게는 맞지 않는단다. 하긴 스페인 사람들도 잘 마시지 않는다니 괜히 모험을 하는 우(愚)는 범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현지인들의 낮잠 자는 관습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시에스타(siesta)’라고 부르는 이 시간(오후 1시에서 4시까지)에는 상점이든 회사든 대다수의 스페인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문을 닫은 채 단잠에 빠진단다. 관광지에서조차 예외가 아닐 때가 종종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해외여행(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포르투갈 여행 ③ : 가우디의 찬란한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 (0) | 2016.05.27 |
---|---|
스페인·포르투갈 여행 ② : 가우디가 만든 도심 공원의 또 다른 세계, 구엘공원 (0) | 2016.05.18 |
발칸 및 동유럽 여행 ⑯ : 슈니발렌의 본고장인 로멘틱가도의 보석, 로텐부르크 (0) | 2015.07.20 |
발칸 및 동유럽 여행 ⑮ :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중세도시, 프라하 (0) | 2015.07.17 |
발칸 및 동유럽 여행 ⑭ : 중세의 모습 그대로인 작은 동화마을, 체스키크롬로프 (0) | 2015.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