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스페인 및 포르투칼
여행일 : ‘15. 11. 12(목) - 19(목)
여행지 : 스페인(바로셀로나, 몬세라토, 발렌시아, 그라나다, 미하스, 론다, 세비아, 톨레도, 마드리드), 포르투칼(리스본, 까보다로까, 파티마)
♧ 둘쨋날의 일정은 바르셀로나(Barcelona) 시내 투어이다. 바르셀로나는 이베리아반도 북동부의 지중해를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카탈루냐 지방(autonomous community)의 중심도시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이다. 바르셀로나는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와 그의 후원자였던 에우세비 구엘(Eusebi Güell Bacigalupi)이 연상되는 도시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꽃할배’의 이순재나 신구, 백일섭, 박근형 등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이서진은 덤으로 말이다. 그만큼 꽃할배가 낯선 이국땅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그들 덕분인지는 몰라도 스페인 관광을 하는 중에 심심찮게 한국어를 들을 수가 있었다. 지중해연안에 있는 바르셀로나는 따뜻했다. 11월 중순인데도 한낮에는 여름날씨처럼 무덥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팔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띌 정도였다. 겨울철에도 선글라스는 꼭 챙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바르셀로나는 기원전 3세기의 바르시노(Barcino)라는 이름의 도시가 시초이다. 기원전 201년에 로마의 지배에 들어갔고 아직 구시가지의 고딕지구라 불리는 곳에는 당시의 성벽이 일부 남아 있다. 이슬람이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했을 때는 프랑코왕국에 편입되었다가 10세기 후반에 독립을 선언한다. 이후 아라곤왕국의 수도로서 해운, 수공업, 금융의 중심지로 황금기를 누렸으며 14세기에 그 절정에 달했다. 당시의 건축물 가운데 상당수가 구시가지 중심부에 많이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을 정도다.
▼ 아래사진은 어제 저녁 바르셀로나에서 머물렀던 ‘Bluebay Sant Cugat’. Sant cugat del valles에 위치한 호텔인데, 대중교통(지하철, 버스)의 접근성이나, 규모(객실 96개), 내부시설 등 나름대로 괜찮은 호텔이었다. 하지만 아침 식사는 별로라는 느낌이 들었다. 슬라이스(slice) 햄과 치즈에다 빵은 토스트와 크로와상, 그리고 시리얼(Breakfast Cereal)에다 사과 한 개, 밀크, 주스가 전부인 초간편 메뉴였기 때문이다. 계란 등 유럽이나 미주 등 다른 여행지들에서 보아오던 메뉴들이 많이 빠져 있었던 것이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느낌은 여행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톨래도와 마드리드를 빼곤 말이다. 혹시 스페인 소재 호텔들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둘째 날 오전 : 구엘공원(Park Güell)
특징 : 안토니 가우디의 오랜 후원자이자 사업가, 작가, 정치가였던 에우세비 구엘(Eusebi Güell)은 쾌적한 환경의 주택단지를 만들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산 아래의 땅을 사서 가우디에게 설계와 시공을 맡겼는데, 영국식 정원의 형태로 자연과 어우러지게 길을 내고, 부지를 나누어 주택을 짓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을 만드는 식이었다. 부지는 총 60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당시 가격에 비해 약간 비싸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불리한 지리적여건 때문에 두 부지만 분양이 되었다고 한다. 이 두 집 중 하나가 지금 가우디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고, 나머지 하나가 카사 트리아스(Casa Trias)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구역은 공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1914년에 공사가 중단되었고, 1918년에 에우세비 구엘이 사망하면서 이후에 그의 상속자들이 이곳을 바르셀로나 시에 판매하여 1926년에 공원으로 개방되었다. 참고로 구엘 공원(Parque Güell)은 구엘 궁전(Palacio Güell)과 카사밀라(Casa Mila),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탄생의 파사다'와 예배실, 카사비센스(Casa Vicens), 카사바트요(Casa Batlló), 콜로니아 구엘 성당의 지하 예배실(Crypt in Colonia Güell)과 함께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Works of Antoni Gaudí)'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주차장에서 내리면 저만큼에 구엘공원의 입구가 보인다. 그러나 이곳은 공원의 정문은 아니고 후문이다. 정문에는 매표소가 없어서 입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마침 매표소 옆에 공중화장실이 지어져있으니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볼일을 미리 보고 들어가는 게 좋을 것이다. 투어 중에는 화장실 찾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길을 내는 과정에서 생긴 듯한 벼랑이 나타난다. 그리고 곧이어 돌들을 얼기설기 쌓은 축대(築臺)가 보인다. 축대의 위에도 제멋대로 생긴 돌들을 쌓아 올렸다. 그런데 그게 나름대로의 모양을 갖추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우리가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기괴한 외형이다. 가우디의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구엘과 가우디는 이곳에 60호 이상의 고급주택을 지으려고 했단다. 물론 부유층 분양용(分讓用)이다. 하지만 경사(傾斜)가 심한 부지는 돌들이 너무 많아 공사를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 많은 돌들을 어떻게 치우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었을 것이다. 다른 곳에다 버리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심장전문의사인 로버트 엘리어트(Robert S. Eliet)의 저서 (스트레스에서 건강으로 - 마음의 짐을 덜고 건강한 삶을 사는 법)에서 나온 말이다. 가우디는 이 말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골칫덩어리였던 돌들을 치워버리는 대신 건축재(建築材)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멋대로 생겨먹은 돌들을 쌓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를 시켰다. 가우디가 아니라면 결코 이루어내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 기둥의 모양이 나무를 쏙 빼다 닮았다. 마치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듯 기둥도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진다. 그런데 저 기둥의 상부(上部) 돌들 하나하나는 인부들이 일일이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돌이 떨어져 다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주위에서는 설계변경을 요구하는 항의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가우디의 신념대로 공사는 이루어졌고 그 결과 저런 멋진 건축물들이 생겨난 것이다.
▼ 기둥 아래에는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돌로 만들어졌지만 막상 앉아보면 의외로 편한 느낌이다. 이 모든 게 인체공학적 설계가 가미되었기 때문이란다. 설마 거짓말이야 하겠는가마는 내 가슴에까지 와 닿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 의자의 외형이 너무나 거친 게 그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 돌기둥의 위는 도로이다. 엉성한 돌기둥의 외형만 보면 그게 믿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동차가 다녀도 끄떡없다니 어쩌겠는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 맨 위는 도로이다. 이 곳도 역시 양쪽 난간에 돌기둥들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기둥의 위에다 화분(花盆)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화분에는 하나같이 선인장이 심어져 있다.
▼ 구엘공원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자갈과 돌로 이루어진 가교(Viaduct)이다. 이런 가교형식의 건축물은 공원 내 다섯 곳에 만들어져 있단다.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각기 다른 모양새이다. 하지만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일일이 살펴볼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싶다.
▼ 이 길(산책로)을 따라 위로 오르면 산 위까지 오를 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저 이곳 돌기둥 지역만 둘러보고 하나같이 아래로 내려가 버린다. 하긴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보려는 관광객들에게는 산책(散策)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길을 따라 올라가는 사람들도 몇몇 보인다. 산책 삼아 나온 지역주민들인 모양이다.
▼ 이런 것들을 과연 건축물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그저 자연의 일부로 보이기 때문이다. 돌기둥 주변에 심어진 종려나무나 넝쿨식물들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주변의 환경에 거슬리지 않고 일체가 되어버린 느낌인 것이다. ‘자연과 건축의 조화’라는 가우디의 신념이 아닐까 싶다.
▼ 가우디가 살던 집, 워낙 분양실적이 저조해서 가우디와 구엘백작 그리고 가우디의 변호사, 이렇게 세 가구만 분양되었다고 한다. 가우디의 집은 현재 박물관(博物館)으로 변했고, 구엘백작의 집은 현재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 중이다. 하지만 변호사의 집만은 아직도 그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단다.
▼ 공원의 하이라이트인 ‘자연의 광장(Plaça de la Natura)’으로 가는 길, 이곳도 역시 돌기둥들의 연속이다. 그만큼 부지 조성과정에서 나온 돌들이 많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보수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도 보인다. 관광지들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수기(非需期)에 보수공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곳 스페인은 겨울철이 비수기인 모양이다.
▼ 길가에는 노천카페도 보인다. 간단한 요깃거리나 커피, 음료 등을 팔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맥주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카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는 길에 노점상들도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단속을 피해 다니는 것을 보면 불법이 분명할 것이다.
▼ 돌기둥들을 구경하며 걷다보면 구엘공원의 하이라이트인 ‘자연의 광장(Plaça de la Natura)’에 이르게 된다. ‘꽃보다 할배’에서 할배들이 한바탕 너스레를 떨었던 곳이다. 이 광장은 둘레를 모두 벤치로 만들어 놓았다. 모자이크 무늬의 벤치이다. ‘혹시 세상에서 가장 긴 벤치가 아닐까?’ 누군가가 너스레를 떤다. 뒤이어 나오는 가이드의 대답은 물론 ‘맞습니다. 맞고요’였다. 돌기둥들을 배경으로 들어앉은 광장의 앞은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잘 들어오는 테라스(terrace)로 되어 있다. 광장이면서도 테라스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구조이다.
▼ 광장의 테라스를 둘러싸고 있는 타일과 유리장식의 벤치는 한마디로 동화적이며 환상적이다. 그리고 아랍식의 이국적인 면모와 미래적인 이미지까지 동시에 담고 있다고 한다. ‘까탈루나 스타일’이기도 한 트랜카디스기법(Trencadis : 타일과 유리, 거울 등을 깨서 모자이크화)이라고 한다. 하나하나의 파편들이 모여져 일정하면서도 창의적인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이 보면 볼수록 경이롭다. 가우디의 아이덴티티(identity)이기도 한 ‘곡선의 미’가 파도를 치듯 물결을 이루는 형식으로 벤치를 이루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 벤치는 가우디 본인의 작품은 아니라고 한다. 가우디의 오른팔이었던 Josep Maria Jujo가 디자인한 것이란다. 물론 큰 틀과 콘셉트(concept)는 가우디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공원의 곳곳에는 가우디 측근들의 흔적들도 담겨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세상에서 가장 긴 벤치’라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설사 그게 누군가가 농담 삼아 던진 거짓말일지라도 말이다. 스페인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있던 집사람이 냉큼 벤치에 앉고 본다. 그리고 해맑게 웃는다. 아니 개구쟁이의 민낯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나라고 어찌 사양하겠는가. 집사람의 옆에 앉아 망중한(忙中閑)을 즐겨본다. 벤치가 타일로 만들어져서 딱딱하겠다 싶었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편안했다. 이 모든 게 인체공학적 설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란다.
▼ 벤치를 따라 광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정문 쪽으로 나아가면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시내의 너머에는 지중해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또렷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만일 눈에 들어왔더라면 또 다시 눈물 한 방울 떨어뜨렸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3년 전쯤 일게다. 세미나 참석차 프랑스의 마르세유에 들렀었다. 그리고 이른 저녁을 마친 후, 와인 한 병을 들고 지중해의 해안으로 나갔었다. 저녁 반주로 마신 와인으로 인해 이미 불콰해져 있었음은 물론이다. 해변에서 만난 지중해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에메랄드빛으로 물든 바다를 본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눈물, 그저 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가지고 갔던 와인은 마셔보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던 바다가 바로 지중해였던 것이다.
▼ 정문 앞 광장으로 내려가기 전에 잠깐 산책로에 들른다. 이 산책로는 최대한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록 나무 모양처럼 만들었는데, 이 또한 부지를 닦을 때 나온 돌들을 활용한 것이다. 그리고 모티브(motive)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실제로 파도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재료나 모티브를 자연에서 얻어 자연으로 승화시킨 가우디,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천재 건축가로 치는가 보다.
▼ 산책로를 둘러보았으면 이번에는 ‘살라 이포스틸라(Sala Hipóstila : 기둥을 많이 세운 홀)’라고 불리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여러 개의 열주(列柱 , colonnade)들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데, 공간의 위는 조금 전에 둘러보았던 타일광장이다. 건축 당시 이곳은 시장(市長)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애초에 이곳이 공동주택단지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90개가 넘는 기둥들은 고대 그리스의 신전(神殿)을 연상시키는 도리스양식(Doric style)이다. 하지만 기둥의 직경을 넓히고 조금 더 육중한 느낌을 주었으며 다주실 천정에는 가우디만의 패턴(pattern)들을 가미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창출해 냈다고 한다.
▼ ‘살라 이포스틸라(Sala Hipóstila)’는 또 다른 용도를 갖고 있다. 바로 연회(宴會)를 열기 위한 공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외부로 울려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천장을 일부러 돔(dome)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멀리서 볼 때에 중간 라인이 일직선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가우디는 가까이 있는 것은 낮게,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열주의 길이를 점차 높여갔다고 한다.
▼ 깨진 타일 조각과 버려진 술병 등을 재활용하여 장식한 천장은 섬세함이 돋보인다.
▼ 나뭇잎 모양으로 만들어진 철제 담장이 보인다. 이 또한 가우디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철(鐵)에 얽힌 그의 젊은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20세기의 미켈란젤로(Michelangelo)'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건축가였던 가우디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덕분에 가우디는 풍부한 볼거리와 대장간에서 쌓은 실험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재료나 형태를 직접 다루면서 그것의 표현적인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또한 대학 재학 중에는 생활비를 벌 겸해서 여러 장인들의 작업장에서 일을 했다. 장인(匠人) 호세 폰트세레 메스트레스와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랴르 이 로사노(Francisco de Paula del Villar Y Lozano)밑에서 제도공으로, 19세기 절충주의 양식의 대가로 바르셀로나에서 유명한 에밀리오 사라 코르테스에게는 조수로 일을 도우며 건축과 장식공예에 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고 한다.
▼ 공원의 정문(이곳으로의 입장은 불가능하다)에는 경비의 거처와 관리실로 쓰려고 했던 두 채의 건물이 있다.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것이 동화책에서나 보았음직한 집들이다. 특히 독특한 모양의 지붕은 신비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마치 반짝거리는 거대한 버섯처럼 보인다. 이는 잘게 부서진 세라믹 파편들이 둥근 지붕 위에서 햇빛을 굴절시키기 때문이란다. 구엘공원에는 허투루 지어진 것들이 하나도 없다. 그 때문인지 서있는 곳마다 멋진 포토존(photo zone)이 되어준다.
▼ 기능적인 면으로 볼 때 ‘살라 이포스틸라(Sala Hipóstila)’는 물을 모으는 곳이기도 하다. 천장으로 내린 비는 가운데가 뚫린 기둥을 통해 아래로 흘러내린다. 배수로 역할을 하기도 하는 기둥을 따라 흘러내린 물은 기둥 밑바닥에 설치된 저수 창고에 모이게 된다. 로마시대에 사용하던 시스템을 가우디가 활용한 것이라고 한다. 저수조에 모인 물은 분수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아래 사진의 중앙에 그 분수들이 배치되어 있다.
▼ 계단에 있는 3개의 분수는 구엘 공원을 더욱더 활기차게 만든다. 지상에 떨어진 빗물이 모이면 세라믹 재질로 된 용의 입으로 토하듯이 나오게 되는데, 이 역시 아폴로 신에 의해 죽임을 당해 매장된 용이 땅속에서 물을 지키고 있다는 그리스 신화를 재구성한 것이란다. 그러니까 저 도마뱀이 지하수의 신 ‘퓨톤(Python)’이라는 얘기이다.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용의 형태는 반짝거리는 색색의 타일 조각들과 태양 빛을 쏟아내는 물줄기로 인해 더욱더 생생하게 보인다.
▼ 모자이크문양의 ‘도마뱀 분수’는 구엘공원의 마스코트 (mascot)라 할 수 있다. 스페인 관광책자의 바로셀로나 편에 한번쯤은 꼭 등장하는 명물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분수 앞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구엘공원을 다녀갔다는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다.
▼ 까탈루나의 문장(紋章)인 ‘뱀머리’이다. 민족주의자였던 가우디의 의지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닐까 싶다.
▼ 조용하고 고즈넉해 보이는 구엘공원은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휴식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원 내의 분위기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사뭇 다르다. 울긋불긋한 건물과 알록달록한 조형물 등 가우디의 톡톡 튀는 작품들 덕분에 상상력과 꿈이 담긴 재기발랄한 공간으로 탈바꿈되어 있다. ‘가우디 동산’ 이라고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유이다.
▼ 관람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만난 담장,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시설이지만 구엘공원에서 만난 담장은 지나가는 길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끔 만든다. 담장 위의 디자인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디자인뿐만 아니다. 가이드의 말로는 비로부터 담장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기법이란다. 원리에 대한 설명을 못 들었으니 맞는지는 모르겠다.
▼ 공원을 빠져 나오는 길, 아까 들어올 때와는 달리 거리의 악사(樂士)가 보인다. 오늘은 스페인 여행의 둘째 날, 여행객들의 눈에는 이색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는 걸 보니 말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무턱 대고 셔터를 누르는 우(愚)는 범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최소한 동전 몇 닢이라도 악기 케이스 안에다 넣어 준 뒤에 셔터를 누르는 것이 최소한의 매너(manner)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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