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산(文殊山, 599.8m)-남암산(南巖山, 542.9m)-영축산(352m)
산행일 : ‘15. 4. 25(토)
소재지 :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과 범서읍, 웅촌면, 삼동면의 경계
산행코스 : 율리농협→망해사→영축산→전망대→문수산→문수사→남암산→마당재→문수초교(산행시간: 3시간50분)
같이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색 : ‘부산일보’의 '산&산'에 들어가 ‘문수산’편을 들여다보면 울산의 ‘대표 산’을 놓고 문수산과 무룡산(舞龍山·452m)이 경합했다는 얘기를 읽을 수 있다. 논란은 흐지부지 되었지만 울산시민들은 문수산을 '울산의 허파'로 추켜세우고 즐겨 찾으면서 사실상의 판정승을 거뒀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산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내가 과연 산속에 들어왔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는 울산시민들이 그만큼 문수산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산세(山勢)는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다. 문수산이나 남암산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 육산의 고질적인 특징대로 특별한 볼거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조망(眺望) 하나는 뛰어나다. 비록 시야(視野)가 자주 열리지는 않지만 남암산 정상 부근과 문수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시원스럽기 짝이 없다.
▼ 산행들머리는 청량농협 율리지점(울주군 청량면 율리)
동해고속도로 문수 I.C에서 내려와 우회전, 7번 국도를 타자마자 나오는 문수사입구 교차로(청량면 율리)에서 좌회전하면 저만큼에 청량농협 율리지점이 보인다. 농협에서 안쪽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등산로로 연결되는 오른편 도로는 대형버스의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산행이 시작되는 율리마을은 신화(神話)의 마당이다. 신라 백제 고구려의 역사를 기록하던 일연스님은 이곳에다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삼국시대에 일어난 수많은 얘기들을 고르고 또 골라내면서 이 고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5개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다 옮겨 놓았다. ‘역사책’에 등재될 정도로 귀한 신화들이 이렇게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할 것이다. 전설의 첫 번째는 이차돈의 불교 공인을 위해 영취산에서 지원법회를 연 낭지법사이고, 매에 쫓기던 꿩이 두 새끼를 껴안고 있는 모정을 보고 지었다는 영축사가 그 두 번째이다. 세 번째는 보현수(普賢樹)이다. 지통이라는 어린 노비가 까마귀의 안내로 보현보살을 만났다는 나무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문수사에 얽힌 연회스님의 설화, 그리고 마지막은 망해사에 얽힌 헌강왕과 처용랑에 관한 설화이다.
▼ 산길은 삼거리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서 오른편으로 열린다. 길이 널따란데다가 반질반질하게 윤까지 나 있을 정도로 잘 닦여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등산로는 자연 그대로이다. 나무나 바위 등 지형지물(地形地物)을 그대로 놓아둔 채 길이 나있는 것이다. 걷기는 다소 거추장스럽지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좋지 않나 싶다. 연초록으로 물든 산길을 따라 15분 남짓 오르면 오른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 ‘망해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정표에 적힌 망해사는 갈림길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들러볼 것을 권한다. 조상들이 남긴 흔적을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망해사(望海寺)의 절터(寺址)가 나온다. 사지에는 ‘석조부도(石造浮屠) 2기(보물 제173호)’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형적인 신라 하대 부도의 양식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 전체 평면이 팔각을 이루는 승탑)이다. 9세기 말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양식상 884년에 제작된 전 흥법사염거화상탑(傳 興法寺廉居和尙塔)과 893년에 제작된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實相寺秀澈和尙楞伽寶月塔)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각각의 높이가 3.4m(동쪽)와 3.3m(서쪽)인 두 부도는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데, 전체 규모나 조성 양식, 세부의 조각 수법은 같다. 다만 서쪽 승탑에 비해 동쪽 승탑은 손상된 부분이 많은 편이다. 이 부도들은 절의 창건설화와 관련해볼 때 헌강왕 때 또는 그 직후에 세워졌던 것으로 추측되며, 조각수법으로 보아서도 창건연대를 헌강왕 이전이라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나저나 주변에 석등 부재임이 분명한 석재들이 ‘벤치’처럼 놓여 있다. 발굴과정에서 나온 유물들일 것이다.
▼ 사지(寺址)의 바로 아래에 망해사(望海寺)가 있다. 이 절은 한국불교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신라 헌강왕(재위: 875∼886)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당시에는 망해사라는 이름 이외에 신방사(新房寺)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삼국유사’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 望海寺條)에 따르면,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 현재의 울산광역시)에 유람을 다녀오다가 갑자기 구름과 안개에 덮여 길을 잃고 말았다. 신하에게 물으니 동해의 용이 심술을 부린다며 좋은 일을 해야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왕이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지으라고 명령하자 구름이 걷히더니 동해의 용이 아들 7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용은 왕의 덕을 칭송하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아들 하나를 보내 왕을 돕도록 하였으니 그가 바로 처용(處容)이었다고 한다. 이때 지은 절이 망해사(신방사)라는 것이다. 아무튼 고려시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출토된 기와편이나 ’울산부여지도(蔚山府與地圖 : 정조10년 편찬)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절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1800년대 중후반기에 폐사되었던 것을 1957년 영암(影庵)이 중창하고, 1988년부터 혜학(慧學)이 대웅전을 중건하는 등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절에서 빠져나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에는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왼편으로 조망(眺望)이 트인다. 이곳이 혹시 ‘망해대(望海臺)’가 아닌지 모르겠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방금 지나왔던 망해사에 망해대라는 조망 좋은 곳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멀리 바다가 보여 선비들이 자주 찾아와 시를 읊었다는 것이다. 정포(鄭浦 : 고려말의 문신)가 지은 작품 중에도 ‘망해대’라는 시(詩)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망해대라는 전망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절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절 근처에서는 이곳이 유일하게 조망이 트이기 때문에 해본 말이다.
▼ 전망대에서 조금 더 오르면 산길이 왼편으로 휘면서 맞은편 산봉우리를 우회(迂廻)시킨다. 지금 피하고 있는 산봉우리가 바로 영축산이다. 망해사를 나와 15분 쯤 더 오르면 삼거리(이정표 : 문수산 정상 1.9Km/ 우신고등학교 1.8Km, 신복초등학교 2.6Km/ 율리)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구태여 이곳 삼거리까지 올 필요 없이 아까 우회를 시작했던 지점에서 곧바로 영축산 정상으로 치고 오르는 것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비록 그곳에서 길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 삼거리에 이르면 고속도로처럼 시원스럽게 뚫린 길이 오른편으로 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신고등학교나 문복초등학교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영축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우신고등학교 방향으로 열린다. 다만 그쪽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로 찾아봐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일단 들머리만 찾으면 그 다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정표에 나타나 있지도 않을 정도로 방치되고 있는 산봉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는 등 등산로는 생각보다 잘 정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 오른쪽 들머리를 찾지 못한 난 영축산의 반대방향에 있는 쉼터까지 가고야 말았다. 혹시라도 나 같은 경우를 당한 사람들에게 당황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쉼터에서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면 영축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희미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만한 산길을 5분 정도만 치고 오르면 영축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알바까지 해가면서 어렵게 올라온 정상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 대여섯 평 남짓한 분지(盆地)에는 정상표지석과 이정표(문수산 2.3Km/ 자연체험학습장 1.8Km), 그리고 ‘119구호지점 표시목’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다른 볼거리는 일절 없다. 물론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는다. 아니 하나 있기는 하다. ‘국가지점번호’를 적어 놓은 표시목이다. ‘국가지점 번호’란 전 국토와 인접해양을 좌표체계 격자(grid)로 나누어 한글과 아라비아숫자를 조합한 10자리로 표시된 번호로서 지금까지 지역별(시․군․구), 기관별(구청, 소방, 경찰, 산림청, 국립공원관리공단 등)로 사용하던 위치표시 체계를 국가에서 통일한 제도이다. 조난 및 응급상황 발생 시 정확한 신고가 가능하도록 전국의 위치표시를 하나로 통일시켰다고 보면 된다. 그건 그렇고 삼국유사에서는 문수산을 영취산(靈鷲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영취산은 가사굴산의 번역어로 인도 마갈타국 부처님이 설법하던 산이다. 취(鷲)는 독수리 추, 또는 수리 취이지만 불가에서는 축으로 익는다. 그러니까 문수산은 청량산이고, 또 영취산이며, 불가(佛家)식으로 읽으면 영축산이 되는 것이다. 그런 영취산을 문수산으로 고쳐 부르면서 그게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문수산 산줄기 중의 하나를 골라 영축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문수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영축산을 다녀오는 데는 16분이 걸렸다. 문수산으로 향하면 조금 후에 긴 나무계단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철탑을 지나자 산길을 둘로 나뉜다. 오른편은 404m봉을 넘는 능선길이고 왼편은 사면(斜面)으로 난 우회(迂廻)길이니 마음 내키는 대로 진행하면 된다.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다음 안부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오른편의 능선길을 권하고 싶다. 가는 길에 뛰어난 전망대를 만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다만 이때에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는 고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 삼거리를 출발한지 15분쯤 지나면 울산대가 세운 앙증맞은 표지석을 만난다. 404m봉이다. 앞서 지나간 일행 중 누군가가 종이에다 ‘문수봉’이라고 적어 놓은 것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산행을 나서기 전 인터넷에서 문수산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던 중에 이곳을 문수봉이라고 적은 글들을 몇 개 보았던 기억이 난다.
▼ 404m봉에서 조금만 더 가면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는 바위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바위에 오르면 맞은편에 있는 남암산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그리고 남암산을 기준으로 왼쪽에 대운산과 꽃장산 그리고 동해바다가, 오른쪽으론 천성산과 정족산 그리고 솥발산 등이 시야(視野)에 들어온다.
▼ 전망대를 지나면 산길은 다시 내리막길로 변한다.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러니까 404m봉에서 7~8분쯤 떨어진 안부에서 아까 404m봉을 오르기 전에 헤어졌던 길과 다시 만나게 된다.
▼ 삼거리에서 깔딱고개 아래에 있는 안부사거리까지는 2~3분만 더 걸으면 된다. 경사가 거의 없는 편안한 길이다. 주변은 온통 신갈나무 천지, 녹음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는 나무들이 싱그럽기 짝이 없다. 거기다 도심의 공원에서나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길까지 잘 닦여있으니 걷는 것 자체가 곧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안영축 및 천상리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널따란 안부는 평상과 벤치 등을 갖춘 쉼터로 조성해 놓았다. 조금 후에 만나게 될 깔딱고개를 대비해서 잠시 숨을 골라보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에게까지 주어질 공간은 없다. 앉을만한 곳은 이미 사람들로 꽉 들어차있기 때문이다. 별수 없이 산행안내도와 이정표(#1 : 문수산 0.7Km/ 안영축 1.1Km/ 신복초등학교 3.3Km, #2 : 약수터 0.3Km/ 안영축 1.0Km/ 천상리 3.8Km)들 앞에서 가야할 방향만 가늠해본 후에 곧바로 산행을 이어간다.
▼ 문수산으로 오르는 구간은 깔딱고개, 물론 내가 지어낸 것은 아니고, 산행안내도에 표기되어 있는 이름이다. 호된 가풀막을 통상 깔딱고개라고 부른다. 그러나 고개 이름을 아예 깔딱이라 대놓고 붙인 경우는 많지 않다. 과연 얼마나 가파를지가 자못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결과는 간단했다. ‘삼악산보다 한참 뒤지는데요.’라는 집사람의 말마따나 이곳과 마찬가지로 ‘깔딱고개’라는 공식 이름을 지닌 삼악산의 깔딱고개에 비하면 깔딱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할 정도로 그 가파름이 약했다.
▼ 안부에서 20분 조금 못되게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약수터갈림길’(이정표 : 약수터 0.4Km/ 안영축 1.5Km)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다시 한 번 10분 정도를 더 치고 오르면 드디어 문수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40분이 지났다. 문수산은 신라와 고려 때에는 영축산(靈鷲山)이라 불렸다.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했던 고대 인도의 마가타국에 있던 산 이름이 불교를 따라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영취산(靈鷲山) 또는 청량산(淸凉山)으로 불린다고도 했다. 산 이름이 대부분 불교색이 짙은 것을 보면 요 아래에 있는 문수사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 정상은 널따란 분지, 가운데를 초지(草地)로 남겨 놓고 빙둘러가며 길을 내 놓았다. 그리고 곳곳에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게 했다. 가을에라도 찾는다면 바람에 나풀거리며 춤을 추는 하얀 억새꽃 잔치를 만날 수 있겠다. 정상에는 예쁘장한 정상표지석과 이정표(#1 : 문수사 0.5Km, 범서·천상 4.4Km/ 깔딱고개 0.6Km) 외에도 반듯하게 쌓아올린 돌탑도 보인다. 가장 높은 곳을 점령하고 있는 이동통신사의 중계시설만 아니었어도 멋진 공원이 되었을 텐데 안타깝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일품이다.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이 넓은 탓에 제대로 된 조망을 즐기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울산 시내와 태화강을 보려면 북동쪽으로, 낙동정맥과 영남알프스의 가지산, 간월산, 영축산 산줄기를 보려면 서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물론 동쪽으로의 전망도 광활하다. 그래서 울산사람들에게 문수산은 가장 사랑받는 해돋이 전망대의 하나라고 한다.
▼ 문수사로 향한다. 서쪽으로 난 시멘트포장 임도를 따라 40~50m쯤 내려가면 왼편(이정표 : 문수사 0.3Km)으로 길이 열린다. 내려가는 길은 경사(傾斜)가 거의 없어 편안한 편이다. 잠시 후에 ‘삼동갈림길’(이정표 : 문수사/ 삼동(둔기)/ 문수산 정상)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연초록으로 물든 참나무 군락을 통과하면 10분 후에는 문수사에 이르게 된다.
▼ 바위 협곡에 들어앉은 절집인 문수사(文殊寺)는 터가 비좁은 데도 불구하고 일주문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종각이나 대웅전 등 전각(殿閣)들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롯데그룹에서 도움을 주었다는 글을 본 것 같은데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문화재는 보잘 것이 없다. 석가모니후불탱화(幀畵), 지장탱화, 칠성탱화 등 겨우 탱화 3점만이 울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제16호)로 지정되었을 따름이다. 그건 그렇고 종각에 매달린 현판은 ‘청량산 문수사’라 적혀있다. 문수(文殊)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났다. 반야경의 지혜와 도리를 사부대중에게 설파했다. 그리고 길상과 복덕을 상징한다. 이 보살은 중국 산시성(山西省)의 청량산(일명 오대산)에 기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문수사가 문수보살을 모시는 절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 문수사(文殊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신라 때 창건 되었다고만 알려졌을 뿐 누가 어떤 연유로 지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연회도명문수점(緣會逃命文殊岾)’편에 문수보살과 변재천녀(辨財天女)에 얽힌 설화가 나오는데, 연회라는 승려가 이 절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읽자 연못에 있던 연꽃이 사시사철 시들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아 신라 때부터 존재했던 절이라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원성왕이 연회를 국사(國師)로 초빙하려 했고, 번거로움이 싫어 도망가던 연회가 노인(文殊大聖:문수대성)과 노파(辨財天女:변재천녀)를 만나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닫고 마침내 국사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는 얘기가 ‘연회도명문수점(緣會逃命文殊岾)’편이다. 참고로 문수사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에 대한 얘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경순왕이 나라의 장래에 대한 계시를 받고자 문수산의 동쪽에 위치한 문수보살을 찾아가던 길에 동자승을 만났고, 가는 길을 안내해 주겠다는 그 동자승(문수동자)을 따라가다 갑자기 동자가 사라져버린 것을 보고 나라의 운명이 이미 다한 것으로 알고 고려의 태조에게 항복하기로 결심하였다는 것이다. 후세 사람들이 동자승이 자취를 감춘 태화강 근처를 무거(無去)라 불렀고, 설화의 이름 또한 무거(無去)설화라 하였다.
▼ 문수사에서의 하산 길은 절 입구와 식당 사이로 나있다. 계단을 밟고 내려서서 3분 정도를 더 가면 아름드리 소나무 옆 바위전망대가 천하의 명당처럼 앉아있다. '문수 암장'으로 불리기도 하는 전망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정면에 있는 남암산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 전망대의 바위 틈새로 난 길을 통과하면 산길은 사면(斜面)을 따라 이어진다. 곧바로 아래로 길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산자락이 가파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면을 따라 10분 정도를 더 내려가면 문수사 주차장이 나온다. 전망이 보잘 것 없는 3층짜리 전망대와 간식을 파는 가게가 있다.
▼ 주차장에서 잠깐 내려오면 사거리이다. 도로공사로 인해 주위가 비록 산만하지만 이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영축마을, 오른편은 둔기리(울주군 삼동면) 행두나무골로 연결된다. 그리고 남암산으로 가려면 맞은편 청송마을(울주군 청량면 율리) 방향으로 곧장 직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 사거리에서 비포장 임도를 따라 5분쯤 걸으면 송전탑 옆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3층 석탑(보물 제382호)이 있는 청송사지(寺址)를 거쳐 청송마을로 연결된다. 남암산으로 가려면 ‘성불암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오른편 시멘트포장 임도로 들어서면 된다. 갈림길에 문수산·남암산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살펴보면 길 찾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 남암산의 들머리는 성불암 방향으로 10분 조금 못되게 더 들어가다 왼편으로 열린다. 등산로 입구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임도를 따라 걷던 집사람의 입이 갑자기 함박만큼이나 벌어진다. 그리고 그녀의 손길이 바람 같이 날렵해진다. 길가에 널려있는 두릅나무의 새순을 따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난 다음 주 내내 봄 내음이 가득한 밥상머리에 앉을 수가 있었다.
▼ 일단 산자락으로 들어서면 길은 고와진다. 부드러운 흙길에다 낙엽까지 수북하게 쌓여있어서 폭신하기 짝이 없다. 덕분에 약간의 가파름 정도는 힘든 줄도 모르고 진행하게 된다. 가는 길에는 ‘청송자연농원’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세 번이나 만나게 된다. 산자락에 들어서자 만나게 되는 갈림길(이정표 : 정상 1.1Km/ 청송자연농원/ 문수사 1.0Km)을 위시해서 4~5분 정도의 간격으로 연이어 나타나는 두 번째(이정표 : 남암산 정상 1.1Km/ 청송자연농원 0.7Km/ 문수산 2.3Km)와 세 번째(이정표 : 남암산 정상 0.7Km/ 청송자연농원 1.3Km/ 성불암 0.5Km/ 문수산 2.7Km) 갈림길이다.
▼ 마지막 갈림길에서 7분 정도를 더 오르면 멋진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울산시내가 한눈에 잘 들어오지만 구태여 바위전망대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바로 위에 데크로 만들어진 진짜 전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두 곳에서의 조망(眺望) 수준은 얼추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 산길은 전망대를 지나면서 엄청나게 가팔라진다. 그러나 다행이도 계단이 놓여있다. 비록 힘은 들지만 어렵지 않게 올라설 수 있는 이유이다. 전망대에서 15분 정도를 힘겹게 치고 오르면 드디어 남암산 정상이다. 문수산에서 1시간 15분이 걸렸다.
▼ 제법 너른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외에도 지역의 한 업체에서 세워 놓은 또 다른 비석(碑石)도 보인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라이온스클럽에서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정상판까지 세워 놓았다. 거기다 이정표(한솔그린빌아파트 2.9Km/ 성불암 1.0Km/ 전망대 0.3Km, 문수산 3.4Km)와 또 다른 안내판까지 더하니 차라리 어수선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참고로 남암산은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동생 범공이 해인사에 머물다 옮겨와 암자를 짓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썩 좋지 않다. 동쪽 멀리 울산 시가지와 동해 바다가 보이지만 확 트인 것은 아니다. 정상으로 올라오는 길에 만났던 전망대보다 훨씬 못하다고 보면 된다.
▼ 정상에서 남서쪽(이정표 '한솔그린빌아파트' 방면)으로 내려선다. 가파르지 않는 호젓한 산길이 이어진다. 길가는 온통 철쭉들의 세상, 어른 무릎 정도의 높이로 낮게 자란 철쭉들이 무리지어 연분홍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있다. 길가에 널려있는 널찍한 바위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광경은 한 폭의 잘 그린 그림을 연상시킨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 아닐까 싶다.
▼ 하산을 시작해서 5분쯤 걸으면 이정표(한솔그린빌아파트 2.6Km/ 율리 2.4Km/ 남암산 정상 0.3Km)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다시 율리 쪽으로 10분쯤 더 가면 마당재에 다다른다. 사거리이지만 이정표(청송자연농원/ 대복/ 남암산)가 부실해서 이정표만 보고는 방향을 잡기가 어려운 지점이다. 갑자기 그동안 만났던 이정표들과는 완전히 다른 지명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무조건 왼편의 청송자연농원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 산행날머리는 문수초등학교 앞
마당재에서 다시 7분쯤 더 걸으면 이번에는 이정표도 없는 갈림길, 이곳에서는 오른편으로 진행한다. 가파르지도 그렇다고 밋밋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산길은 정갈하면서도 호젓하기 짝이 없다. 이웃 문수산의 유명세 덕에 도심의 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오염되지 않은 산으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17분 정도를 더 진행하면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청량면 청송부락이다. 이제부터는 도로를 따른다. 산행이 종료되는 문수초등학교까지는 10분 이상을 더 걸어야 한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5분이 걸렸다. 중간에 간식을 먹느라 쉬었던 시간을 뺄 경우 3시간 50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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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조망에다 진달래꽃 잔치까지 갖춘 상투봉-광려산-대산(‘15.4.18) (0) | 2015.04.23 |
가덕도에서 만난 뜻밖의 보물, 연대봉-응봉산(‘15.3.30) (0) | 2015.04.07 |
본섬의 산들에 가려있던 남해의 보물, 속금산-대방산(‘15.3.21) (0) | 2015.03.26 |